양귀자 - 인물의 분석, 플롯 전개, 작품의 주제 -* 시점25살 때 결혼한 엄마와 이모의 결혼생활을 지켜 보며 모순을 관찰하면서 25살의 안진진 시점으로 바라 보고 있다. -> 1인칭 관찰자 시점1. 인물의 분석1)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내외 : (초반에 잠깐 등장) 쌍둥이를 만우절(만우절이란 황당한 날의 설정은 이 소설속의 이야기가 4월 1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가미하여 소설 속에서 딸 쌍둥이에게 일어나는 행복과 불행에 관한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데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 함으로서 또 하나의 모순)에 낳으시고, 동시에 결혼 시키는 역할을 한다.“한꺼번에 주신 자식이니까 보낼 때도 한꺼번에 한 날 한 시에 보내야지요. 거짓말처럼 오늘 깨끗하게 치워 버리기로 했습니다.”(『모순』, 1998, 24쪽)2) 엄마와 이모 : 소설의 주인공인 안진진의 교과서격인 일란성 쌍둥이 자매 결혼하기 전 25년 동안 같은 환경에서 같은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180도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 결혼이라는 단 한 번의 선택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 자매이면서도 주정뱅이 남편의 매 맞는 아내와 성공한 사업가의 사모님으로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3) 아버지 :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식과 아내를 사랑한다.4) 이모부 :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너무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지녔으며,엄마와 이모의 상반된 삶을 결정하게 된 큰 요소이다. 무뚝뚝하고 빈 틈 이 없다.5) 안진진(이 소설 속 주인공) : 25살로 휴학생이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사회인으로 이 소설에서 독특하게 본문에 등장한다. 엄마와 이모, 두 사람의 살아온 환경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앞으로 삶의 태도를 결정한다.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으며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적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된 계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이 인물의 생각과 행동, 대화내용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고 준비하는 여학생이나 이미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여자들을 대변하기도 한다.6) 나영규 :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기차처럼 인생을 완벽한 계획표에 따라 운행하는 전문직 샐러리맨. 안진진을 사랑한다. 너무나 정확하게 시간을 계산하고 미리 정해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며 한 치의 오차도 허용이 되질 않는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까지 생각 한다면 이모부와 비슷하다. 그녀는 나영규와 데이트 할 때에는 걱정거리가 없어진다. 만나서 무엇을 할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등등 몇 일 전부터 나영규가 정해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영규는 진심으로 안진진을 사랑해서 급기야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머릿속에 계산기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남자. 이 남자 나영규와 앉아 있으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현실이 보인다. 너무나 일목요연해서 어디 제멋대로인 꿈이나 상상 같은 것은 전혀 끼어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잘 정리가 된 남의 집보다 적당히 너저분한 남의 집이 묵어가기에는 편한 법이다.(『모순』, 1998, 70쪽 )7) 김장우 : 야생화를 찍는 가난한 사진작가 . 안진진을 사랑한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량한 미소와 눈빛을 지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사람, 생활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아주 의미 깊게 생각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 나영규같이 치밀함이 없어 그녀와 만나면 뭐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 주로 리드를 맡기는 편으로 안진진은 자신의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나영규같이 안정적인 직장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는 프리 렌서 사진작가로 소득원이 일정하지가 않다. 하지만 그녀는 감성적인 김장우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서로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희미한 존재에게로 하는 사랑... 강함보다는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더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모순』, 1998, 93쪽 )8) 동생 안진모 : 그는 드라마 모래시계속의 주인공인 최민수나 영화 대부의 알파치노의 흉내를 내면서 자신이 마치 그들인양 흉내를 낸다. 사고를 치면서 자기의 모습을 찾는 쉽게 말해서 요즘 쓰는 말로 ‘그냥 들이대는’ 성격인 것이다.주리 남매는 유학파로 가정보다 자신의 일이 더 소중하게 여기는 현대사회의 개인주의를 대표하여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2. 플롯의 전개1) 안진진의 새롭게 살겠다는 다짐. 느닷없이 ‘나’를 설명해 보라는 스스로의 요구를 함(꽃 피는 3월의 어느 날 아침) 빈약한 인생 깊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2) 어머니의 삶에 대한 회상, 스물다섯의 다 커버린 ‘나’에게 어머니 삶을 들춰내야 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변명처럼 느끼지만, 내 삶의 뿌리를 더듬기 위해서 검토하기로 마음먹는다.3) 어머니와 이모가 일란성 쌍둥이로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결혼을 하게 된다.4) 4월1일 어마와 이모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에 나는 장미꽃을 사들고 엄마가 아닌 이모 집으로 간다.5) 이모부부와 레스토랑에서 화려하지만 지루한 식사를 하면서, 초등학교 시절 이모가 초라한 엄마 대신에 일일 교사를 해 주던 것을 회상한다.6) 의미심장한 만우절 날, 레스토랑에서 ‘김장우’와의 우연한 만남.7) 말로 브랜도의 와 최민수의를 교과서 삼아 보스 세계를 꿈꾸고 있는 동생 안진모에 대한 소개.8) 속옷가게를 그만두고 일본 사람 상대로 인삼, 김, 장아찌 등을 팔아 보겠다고 일본어를 배우는 엄마9) 일요일 아침, 내가 김장우와 나영규, 둘 중 누구를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둘 다에게 일요일 오전에 만나자고 연락한 뒤,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걸려온 전화는 나영규였다. 그래서 나영규와 약속은 정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김장우에게서도 전화가 온다. 하지만 먼저 정한 나영규와의 약속 때문에 김장우의 데이트를 거절하고 몹시 섭섭해 한다.10)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고, 통나무 집 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치명적인 결함이 없는 나영규와의 빈틈없는 데이트를 즐긴다.11) 아버지의 소개 (술주정뱅이, 도박꾼에 가출해서 잊을 만 하면 돌아옴 )12) 김장우와의 데이트는 신통찮은 먹 거리와 미리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실패하게 되는 계획으로 빈틈없는 나영규와 비교하게 된다.13) 본격적인 7월의 날씨를 보여주는 일요일, 다음 주 중에 다시 여름에 피는 야생화들을 찍기 위해 산으로 떠난다는 김장우와 오늘을 함께 보내기 위해 약간의 편법을 쓴다. 그리고 나는 지난번 나영규와 같이 갔던 드라이브코스를 우유부단한 김장우를 내가 리드하여 고스란히 다시 달린다.14) 이모가 이모 집으로 나와 엄마를 초대한다. 주리와 주혁이 외국에서 돌아왔고, 나와 어머니까지 함께 있어준 그 날, 이모의 행복은 절정에 달했다. 어머니 또한 그런 이모에게 제대로 넘어가 주는 것 없이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꽃이며, 음악을 틀며 토를 다는 어머니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15) 이모 집으로 가던 날, 동생 진모가 이모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여자 친구 비둘기가 배신했다며 나의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가지고 집을 나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제복을 입은 형사들이 ‘살인 미수’라는 죄명을 들고서 집으로 찾아 왔다. 어디까지나 살인 ‘미수’일 뿐이니 자수하라는 나의 몇 번의 연락을 받고, 진모는 그렇게 돌아왔다. 일본 손님들을 맞이하려던 계획들이 연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활력을 잃지 않는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감탄 한다.16) 이 지루한 8월 동안에도 나영규와 끊임없이 소통했고 나에게 우안이 되 주었지만, 그의 결혼 계획서에 포함되고 싶지는 않았다.17) 이모만큼 착한 이모의 딸 주리가 집으로 찾아 왔지만 누추한 가정환경이 부끄러움.이모에게는 아름다운 것 만 편집해서 주리와 나와의 대화를 들려줌.18) 김장우와의 10월 여행을 감.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주량이 꽤 쌘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필름이 끊겨서 김장우에게 술주정을 하게 됨. 그리고 내 마음은 김장우를 사랑하는 것으로 결정 되었으며 나영규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기로 마음 먹음.19) 집나간 아버지가 돌아왔다.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치매까지 겹쳐서 돌아왔다. 추억 속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정에 다달았을때 현실속의 아버지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내 추억을 희롱했다. 엄마는 더욱 적극적으로 생기를 찾음.20) 이모의 죽음. “엄마처럼 살고 싶었다, 무덤 속처럼 편안하게 말고 ”이렇게 편지를 남기고 이모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떠나서 20년대에 전개되는 문학운동의 양상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근대문학은 그 성격상 민족문학이며 따라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띤 것이다. 프로문학이든 민족문학이든 함께 민족문학범주에 넣을 수가 있음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대전제 아래 이 시대의 문학운동을 살핀다면 우선 대외적 조건과 대내적 조건을 들어야 할 것이다.전자에서 특히 문제되는 것을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세력으로서의 사회주의사상을 들 수 있다. 이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일본의 대정(大正) 데모크라시 운동과도 연결되지만, 한국·중국·인도 등 서구제국주의 침략 하에 놓여있던 나라들의 민족주의 운동과 이어졌다는 점이 중요한 사실로 부각되었다. 한국의 경우 천황제 제국주의인 일본에 사상적으로 대결하는 방식의 하나가 이 사회주의운동이었지만 또한 여기에는 종래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의 異同點에 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 대내적인 문제가 잠복되어 있다.이 대외적 대내적 두 문제도 거시적 자리에서 명철히 검토·분석한다면 당시의 역사의식과의 낙차가 선명히 부각될 것이다. 가령 서구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주의(계급주의사상) 역시 그 종주국인 소련의 국가이익에 봉사한 것으로 일족의 제국주의이다. 만국 노동자의 단결을 구호로 내세운 계급사상도 국가이익 앞에서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었음을 지난 역사가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내적인 문제에서도 역시 논리적 허점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계층의식을 초월한 3·1운동이 종래의 민족주의의 집약이지만 그것이 실패한 원인중의 하나로 그 이데올로기자체의 취약성을 들 수가 있는 것이고 바로 이 점에서 계급사상에의 傾斜가 급진적으로 만연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심리적 역학관계를 더 심화시켜 본다면 논리적 偏向性과 심정적 偏向性의 분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전자가 이데올로기로서의 명분주의라면 후자는 다분히 실감의 단계에 멈춘다. 전자가 주자학적 세계관에의 복귀 즉 天의 개념, 국가개념 등 공주었으며 러시아혁명 성공의 소식은 모든 피압박민족과 피착취 대중들에게 일종의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러시아의 혁명정부가 일련의 선언들을 통해 독립과 평화와 평등을 천명했으며, 실제로 민족해방운동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의해 사회주의이념의 수입은 더욱 적극적인 것이 되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이해의 수준과는 관계없이 사회주의와의 접촉경험과 지적 전통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볼셰비즘이 거의 절대적으로 도입되었다. 두 번째 원인은 소비에트 혁명정부가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했던 것에 비해 제국주의 열강들은 식민지 민중들의 민족독립 열망을 철저히 저버렸다는데 있다. 전승국들이 내건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대와 이에 대한 실망은 반사적으로 소련에 대한 기대와 사회주의이념에 대한 경도를 더욱 촉진했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민족자결주의가 고창되자 이에 기대를 가진 독립운동지도자들은 파리강화회의·태평양회의 등의 국제회의와 미국정부에 대표를 파견하고 독립을 청원했으나 전혀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들 각종 국제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에 따라 제국주의국가 간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회의였으므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원조하기는커녕 세계적인 차원에서 식민통치를 더욱 효율적으로 강구하는 회의였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전승국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국가들의 이성과 호의에 근거한 외교독립운동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반해 소비에트 혁명정부의 민족해방운동의 지원은 매력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3·1운동과 외교독립운동의 실패와 반성을 통해 민중 스스로가 주도하는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위해,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을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자신들의 조직과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민중들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국가들에 대한 실망은 물론 당시까지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해온 부르주아민족주의세력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민중들은 3·1운동과 외교독립활동 과정에서 부르주아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평화적이고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일제의 식민통치방식이 사회주의이념의 수용·확산을 허용했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탄압 일변도의 무단통치만이 효과적인 식민통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식민통치사상 유례가 없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적 국제여론과 일본 국내에서의 ‘대정(大正)데모크라시’가 전개되는 여건 등에 힘입어 일제는 문화통치를 내걸었다. 이러한 문화통치는 본질적으로 민족분열정책으로서 매우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유화국면을 조성했으며 사회주의이념이 수용·확산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임대식,「사회주의 운동과 조선공산당」을 참고하여 요약하였다.이러한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문예방면에서 프롤레타리아문화단체가 새롭게 나타났다. 1922년에 '해방문화의 연구와 운동'을 목적으로 '염군사(焰群社)가 조직되었고, 1923년에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단체가 조직되었다.이시기 문학을 신경향파 문학이라고 말하는데 신경향파의 대표 작가인 최서해의 작품을 생각해보면 당시 문학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민중들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분노를 문학적으로 표시하는 것, 그러나 그 대응이 방화, 약탈, 살인 등 개인적 수단에 국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서해 개인의 삶이 그러했듯이 당시 조선 민중들의 삶은 정상적이지 못한 삶이었다. 일제에 의한 착취 뿐 아니라 이미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계급 모순에 의한 착취 또한 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나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민중들은 '아내가 저 몰래 무엇을 처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기본적 가족 관계의 구성마저도 무너져가고 있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민중 문학의 기수라고 할 수 있었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가 노동자들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있었던 것처럼 최서해의 작품들이 당시 민중들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당이것은 문학이라는 것, 문화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맑스가 역사는 발전·진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로마 시대의 예술에 대해서 유보해둔 적이 있었다. 만일 이 시기 문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또한 북한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많은 문학 작품들은 폐기처분해야 할 작품들이다. 말하자면 카프 시기의 작가들과 이론가들은 너무 경직화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카프의 해산은 내부적으로는 자체내의 분규와 전향(박영희의 전향선언-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문학, 예술 그 자체이다)에 따른 것이었으며 내부적으로는 객관적 정세의 변화 탓이었다.그러나 카프의 해산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내부적 요인이 컸다. 제 1차 카프맹원 검거사건과 제 2차 카프맹원 검거사건을 겪으면서 1935년 소장 극좌파(김남천, 임화)등이 해산기를 제출하면서 카프는 해산되었다.KAPF 결성과 방향전환조선 프로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을 약칭하여 KAPF(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 라는 에스페란토 성어)라 통칭하는데, 이 명칭이 일반화된 것은 1927년 소위 방향전환 이후부터이다.) 김팔봉 : "한국문단측면사"(「사상계」1056.12.)p.64, p.197.KAPF의 결성 연대는 구구불일이나 1925년 8월이 옳은 듯하다. KAPF는 1922년 9월 이호(李浩), 이적효(李赤曉), 김두수(金斗洙), 최승일(崔承一), 박용대, 김영팔(金永八), 심대섭(沈大燮), 송영(宋影), 김홍파(金紅波) 등이 조직한 염군사(焰群社)와 1923년 박영희(朴英熙), 안석영(安夕影), 김형원(金炯元), 이익상(李益相), 김기진(金基鎭), 김복진(金復鎭), 연학년 등이 조직한 파스큘라(PASKYULA)가 결합하여 1925년 8월 결성되었다.창립 당시 구성원은 박영희, 김기진, 이호, 김영팔, 이익상, 박용대, 이적효, 이상화(李相和), 김은, 김복진, 안석영, 송영, 최승일, 심대섭, 조명희(趙明熙), 이기영(李箕 못할지라도 좋다는 결심으로 해야 하오. 투르게네프의 『처녀지』와 같이 조선이라는 '처녀지'에 사회변력의 씨를뿌리고 개척할 때란 말이오."라고 권했다고 한다. 김기진 「麻生씨와의 어느 날」, 1972.12 P.371) 그리하여 그는 당시 일본 문단에 새롭게 일어는 프로문학에 대한 열기와 함께 잡지 「씨뿌리는 사람」에 매혹되어 프로문학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특히 「씨뿌리는사람」의 영향은 지대한 것으로 그의 초기 프로문학의 주장은 전적으로 여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씨뿌리는사람」에 소개된 '크라르테운동'에 크게 자극을 받아 민중문학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한편으로 한국에 민중문학을 전파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박영희의 소개로 이름을 알게된 박종화에게 월탄이 제창학 '역의 예술'을 적극 찬동하면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다.월탄형, 死에 대한 불복 - 즉 운명에 대한 항의, 현실에 대한 반역, 여기에서 우리의 문학이 산출치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형의 도피적 영탄조의 시가 일 전기를 획하여 현실의 강경한 熱歌가 되기를, 형이 「개벽」에서 「역의 예술」이라고 부르짖은 것이 형의 시가 위에 나타나기를……(중략)……지금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 수 없습니다. 민중의 인도자, 허위에 대한 전쟁, 제1선에 선 戰卒의 두 어깨가 무거운 것이외다.박월탄, 「백조시대의 그들」, 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27쪽 재인용그런가 하면 자신과 함께 일본에 있다가 1922년에 귀국한 박영희에게 '예술을 위한 예술'로부터 '인생을 위한 예술'로 거리에서 다시 '현실을 개혁하는혁명사상'에로 함께 전진하기를 권유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는 박영희와 함께 초창기 한국 프로문학의 맹자으올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김기진이 이해하고 있었던 프로문학은 아직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막연히 민중을 위한 새로운 문학으로서 계급문학을 주장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그가 최초로 발표한 「프로므나
1.발음(1)자음북한의 발음 가운데 남한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어두에서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ㄹ'과 'ㄴ'이 발음되는 것이다. 1966년에 발간된 「조선말규범집」의 '표준발음법'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1966년에 발간된 「조선말규범집」과 1988년에 발간된 「조선말규범집」을 비교하여 둘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1966년에 발간된 「조선말규범집」에 일차적으로 근거한다. 이것은 1966년의 「조선말규범집」에 대해서는 1971년의 「해설」이 나와 있어 북한 화법의 양상을 살피는 데 여러 가지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1988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에서 개정한 「조선말규범집」에서는 '문화어발음법'의 '제2장. 첫 소리 자음의 발음'에 어두 'ㄹ'과 'ㄴ'의 발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여 놓고 있다.제5항. 은 모든 모음앞에서 [ㄹ]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례: 라지오, 려관, 론문, 루각, 리론, 레루, 용광로제6항. 은 모든 모음앞에서 [ㄴ]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례: 남녀, 냠냠, 녀사, 뇨소, 뉴톤, 니탄, 당뇨병결국 1966년의 규범과 아무런 차이가 없이 단지 예만 몇 가지 달리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제5항. 은 모든 모음앞에서 [ㄹ]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례: 론문 락하산 리론리 로 린. 화학 기호 인(燐 : 분자 기호로는 P)을 가리킨다.라지오 로케트제6항. 은 모든 모음앞에서 [ㄴ]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례: 니탄, 뇨소, 니켈, 뉴톤그런데 1971년에 발간된 「해설」에서는 이에 대하여 '오늘날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는 새로운 발음현상이 발생하여 우리 말의 발음을 더욱 풍부화시키고있다. 제2장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발음현상을 규범화하기 위하여 단어 첫머리의 발음법을 규정하고있다.'고 하고 있다. 결국 두음법칙을 무시하는 현상은 새로이 등장한 현상이라는 말이다.단어의 첫머리에서 이 발음되게 된것은 우리 말 발음에서 나타난 'ㄹ'과 'ㄴ'의 발음은 '우리 말의 발음을 더욱 풍부화시키'기 위하여 새로이 만들어 낸 발음법이라는 사실은 리상벽(1975)의 「조선말화술」의 설명에서도 확인된다.는 모든 모음앞에서 [ㄹ, ㄴ]로 발음하는것이 원칙이나 력사적으로 한자말에서 온 첫소리 는 입말에서 첫소리 가 홑모음앞에서 로 발음되며 겹모음앞에서는 발음되지 않는것들을 볼수 있다.겹모음앞의 첫소리 도 발음되지 않은것을 볼수 있다. 이렇게 지난날 단어의 첫머리에서 나 를 발음하지 않는것은 하나의 관습으로 되여왔던것이다.「조선말규범집」이나 「해설」에는 그 규범적 성격 때문에 이른바 '허용발음'이 없지만 「조선말화술」에 보면 이러한 어두 'ㄹ'과 'ㄴ'에 대해 몇 가지 '허용발음' 조항을 설명하고 있다. '허용발음'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홑모음앞이라 하더라도 생활에서 이미 굳어진 단어들은 를 로 발음하는것을 허용한다.례: 래일 - [내일], 람용 - [남용], 랭장고 - [냉장꼬]. '랭장고'는 「조선말대사전」에 '랭장창고'의 준말로 표기되어 있다. '창고'의 발음을 [창꼬]로 규정하여 놓았기 때문에 '랭장고'의 '고'는 [꼬]로 발음된다., 로인 - [노인], 람색 - [남색], 뢰성벽력 - [뇌성벽력]가 홑모음앞에 오더라도 다음 소리마디가 로 이어질 때 첫소리 를 로 발음하는것을 허용한다.례: 로력동원 - [노력동원], 로련하다 - [노련하다], 랑랑하다 - [낭낭하다], 래력 - [내력], 랭랭하다 - [냉냉하다], 름름하다 - [늠늠하다], 롱락하다 - [농낙하다]이러한 관습으로 하여 등 겹모음앞의 은 발음되지 않는 현상을 볼수 있는바 그것을 허용발음으로 한다.례: 량강도-[양강도], 력력하다-[영역하다], 륙백-[육백], 례절-[예절], 료리-[요리], 략력-[양녁], 련락-[열낙], 륭성-[융성], 령감-[영감]우와 같은 어음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과 이 올 때는 이 발음되지 않는것을 볼수 있는바 이것을 허용발음으로 한다.례: 대렬-[대열], 치렬-[치열], 라렬-[라열], 규률-[규율],어두 'ㄹ', 'ㄴ'이 남한과 달리 그대로 발음되는 쪽으로 변화를 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이것은 1992년에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에 실려 있는 '바른 발음법'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말대사전」에서는 '발음규범을 바로 지키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발음상 주의하여야 할 경우에 그 바른 발음을 [ ] 안에 넣어서 표시'하여 놓고 있다. 그렇다고 바른 발음이 현실을 전연 무시한 발음은 아니다. 이것은 '대렬, 치렬, 라렬, 규률, 비률' 등의 발음이 각각 '[-열]'과 '[-율]'로 실린 것과 '람색'의 경우 '람색'이란 말을 잘못된 말로 규정하고 '남색'을 올바른 말로 규정하여 놓은 것. 「조선말대사전」에서는 '람색'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람색 -> 남색그런데 「조선말대사전」의 일러두기에서는 '->' 기호를 '비규범적인것을 규범적인것에 보내주는 경우에'라고 풀이하고 있다. 결국 북한에서는 어두에 'ㄹ'과 'ㄴ'으로 구성되는 한자말의 경우 한자의 원발음에 충실하게 표기하고 읽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것은 '람색'의 발음이 완전히 '남색'으로 굳어졌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을 보아 알 수 있다.3.1.2.1. 모음 /ㅣ/는 [ㅔ]로 발음된다.어디 [어데]왜 그럽니까 [왜 그럽네까]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네까]누이 [누에]이것은 자음 'ㄷ, ㄴ' 등의 조음 위치가 남한과 같이 치경이 아니라 치간이라는 방언적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누이'가 '누에'로 발음되는 것에서 보듯이 'ㄷ, ㄴ'의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자음의 경우로도 확산되어 가는 것 같다./ㅣ/는 [ㅢ]로도 발음된다.언니 [언늬]할아버지 [할아버듸]이런 현상은 /ㅣ/가 [ㅢ]를 거쳐 [ㅔ]로 발음되는 것이란 의심스러운 가정을 해 보게 한다.. 김영배(1992)에서는 평안 방언에 '표준어의 이중모음인 'ㅢ'가 없고 [ ], 또는 [i]로, 관형격의 '-의'는 [e]로 대응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표준어 'ㅢ'에 관한 점이나, 위의 예들이 광범위하다는 것으로 보아 이런 현상은 상당히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그대로 [어머니]로 발음되고 남한에서 흔히 쓰이는 [오마니]라는 '북한' 발음은 없었다.그리고 단편 소설집 「의리」에서 '어머나'를 '어마나'로 표기한 부분이나 위의 의 표기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런 현상은 어두만이 아니라 어중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진건(1990)의 「조선말의 어원을 찾아서」에서는 '어마나'에 대하여, '는 로부터 변하여온것인데 는 그냥 보류되고 는 로, 는 로 변화되었다. 가 로, 가 로 변하게 된것은 감탄할 때 높은모음이 낮음모음보다 더 세기때문이다.'(p. 239)라고 풀이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똑같은 말이 '어머나'인 점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ㅓ'가 [ㅏ]로 되는 것은 'ㅓ'의 발음이 [ ]에 가깝기 때문이다./ㅓ/가 [ㅗ]로 발음되는 현상은 둥그런 입술을 연상시키는 북한 말의 전형으 /ㅕ/는 [ㅔ]나 [ㅓ]로 발음되고, /ㅓ/는 [ㅕ]로 발음된다.명령[명넹]유복녀[유봉네]녀석[너석]놀러오너라[놀려오너라]리상벽(1975: 69-70)에서는 '를 로 발음하는 것은 그릇된 현상'이며 'ㅑ, ㅕ, ㅛ, ㅠ가 홑모음으로 발음되는 현상은 그릇된 현상'으로 사투리의 영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ㅕ'가 'ㅓ'로 발음되는 예로 '녀성->너성'을 들고 있다.이중모음의 단모음화는 방언의 잔영이다는 사실을 김영배(1992)의 예들을. 선녀[선네], 측량[측랑], 수료[수로], 가셨다[가셋다], 가면서[가멘서], 녹여서[노게서], 양반[낭반], 졌다[젯다], 벼[베], 비벼서[비베서], 천년[천넌], 면장[멘당]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영배(1992)에서는 평안 방언의 경우 '음소 연결에서 상승적 이중모음은 자음을 선행시키지 않고는 자유로우나, 자음이 선행되면 상당한 제약이 있어 소수의 예만 있고, 語中에서도 /ㄴ·ㄹ·ㅅ·ㅈ·ㅊ/ 다음에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북한에서는 입말과 글말을 어휘, 발음 등에서 탕, 제꺽'과 같은 어휘들이 김일성의 교시를 비롯하여 모든 곳에서 자연스럽게 쓰인다.이런 입말과 글말의 차이는 문체적인 부분까지 확산되어 있다."글말에서는 , , , , 등으로 비유법을 써서 형용을 강조하나 입말에서는 억양으로 빛갈을 내여 강조하므로 구태여 비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 , , 로 길게 힘을 주어 그 정도를 나타낸다."(리상벽1975:205)토를 그대로 발음하는것이 원칙이다. 통속적입말을 할 때 특히 대화를 할 때에 , , 라고 발음하는것을 허용한다.례: , , (리상벽 1975: 65)숫자리상벽(1975:65)은 아라비아 숫자에 대한 북한의 발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수자를 읽을 때는 될수 있는대로 고유조선말로 읽으며 굳어진것만 한자말로 표현한다. 수자는 세가지로 발음한다.1 2 3 4 5 6 7 8 9 10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일 이 삼 사 오 륙 칠 팔 구 십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 열째아라비아숫자를 언제나 표기대로 발음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년, 월, 일 발음은 고유말로 표현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한자말로 발음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고, '수사와 단위를 발음할 때에도 될수 있는대로 고유조선말로 읽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5년 - [다섯해], [오년]. [다섯해]가 원칙이 되는 발음이고 [오년]은 허용 발음이다.3개월 - [석달], [삼개월]10말 - [열말] (십말). ( ) 속의 발음은 틀린 발음으로 제시되어 있다.50그루 - [쉰그루] (오십그루)225g - [이백스물다섯그람] (이백이십오그람) (리상벽1975)김일성의 교시에 의하면 숫자를 한자말로 읽는 것은 사대주의 경향이다.지금 우리 사람들속에는 말을 하는데서도 사대주의경향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도 한자말을 섞어쓰고있으며 그래야 유식한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이를 부를 때도 이라고 하면 듣기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라고 합니다.숫자의 한자말로 읽지 않는 것은 잘못 알아듣기 쉬운 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