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4강의 대한반도정책- 미국과 일본의 대한반도정책 -- 目次 -Ⅰ. 서론Ⅱ.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1. 최근 미국의 대남 정책2. 한-미 안보관계의 최근 쟁점Ⅲ.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1.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인식2.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3.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일본의 협력유도 방안Ⅲ. 결론Ⅰ. 서론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휴전상태가 5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휴전은 평화가 아니다. 휴전은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이 계속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행이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이 대화를 함으로써 전쟁보다는 대화의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분쟁은 발생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한다면 필연적으로 주변 국가의 개입으로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분쟁을 근원적으로 억제하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1950년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이들 4개 강대국의 대리전쟁과 같은 성격도 있었다. 한반도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4개 강대국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4개 강대국들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온 것이다.따라서 한반도에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이들 4개 강대국들의 힘의 완충지대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된 한반도는 비동맹 중립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는 군사력 밀집지역이다.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한미양국과 북한은 200만의 병력을 대치시키고 있다. 미국은 3만 7천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91년까지 한국에 핵폭탄을 600발에서 1,000발정도 배치하였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통일은 세계적인 군사력 밀집지대인 한반도에서 군축과 비핵지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반도와 같은 군사력 밀집지대에서 통일이 되어서 분쟁의 가능성이 약화되고, 비핵지대가 실시되며, 군사력을 감축하는 것은 그 자체로써 동북아교를 전개함으로써 범세계적 반미 감정을 야기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의 리더십에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므로 집권 2기 부시 행정부는 동맹국과의 협의 체제 강화 등‘스타일’상 의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테러와 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강경한 어조를 유지하였다. 911테러로 불안함에 사로잡힌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은 반테러와 반확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특히 WMD를 사용한 테러가 발생하게 되면 911테러 때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낼 우려가 있기 때문에 WMD 테러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다. 핵과 테러에 관한 문제에 예민하다 보니, 핵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이견 차가 생기게 되었고, 그 사이에 있는 남한 역시도 이 문제와 무관할 수 없었다.부시 2기 외교 안보팀에서는 남한에 대한 정책에 관련하여 먼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연계성을 강조하였다. 빅터 차 보좌관은 유사 동맹(quasi alliance) 모델을 제시하면서 유사 동맹을 ‘(미국이라는) 동맹국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상호간에는 동맹을 맺고 있지 않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로 정의하였고 한미일이 한일간의 안보협력을 강화해 가는 가운데 유사 동맹 체제에서 삼각 동맹 체제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2004년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에 양국이 합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한미동맹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 과정에서 ‘한미 안보 정책구상(SPI)나 차관급 전략대화, 한미전략 대화 등 한미 동맹의 비전을 모색할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 또,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에도 대비하였다. 졸릭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이 통일문제를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안보 구도 속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하면서, 한미일 삼각협력을 강화하고 중국, 러시아와 통일에 대한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다자적 논의를 통해서 북한과의 긴장을 줄이고 협력적으로 문제문제를 바라보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사실에 근거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북 인식에 기초하여 대북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비핵화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대화와 협상을 주장하면서 강인하고 직접적인 외교(tough and direct diplomacy)를 주장하는데, 내면적으로는 ‘실질적 동기부여와 실질적 압력(real incentives and real pressures)’을 혼합한 강·온 혼합 전략을 구사를 통한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는 등 장기적인 시각으로 꼼꼼하고 치밀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기존 정부와 어떤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서 비핵화를 실현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의 북핵 문제 논의와 관련하여 적극적인 자세로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고립되지 않도록 하고, 한미 동맹 역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핵에만 국한되어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 군사·안보상의 도전, 인권과 같은 전체적인 북한 문제를 모두 고려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 보니 한국 역시도 북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경제나 통상과 같은 비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하다 보니,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를 생각할 것이고, 대외 정책보다는 대내 정책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며 그 과정에서 관련국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경기 활성화와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오바마 정부는 외국과의 무역관계에 있어서 공정성을 더욱 강조함과 동시에 국내산업 보호와 육성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일정 부분에 있어서 보호주의적 색채와 조치를 수반하게 되고, 그 결과 무역과 통상에 있어서 마찰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과 통상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oriented)8) 결합력 중심(coherence-oriented)(표) 재래식 작전과 신속결전개념[출처: Chris Shepherd, Campaign Plan 2001 Status Briefing, (U.S. Joint Forces Command, 2000)])2003년 4월부터 10월까지 다섯 차례의 한미동맹구상 회의를 통해 한미양국은 한국의 안보가 약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주한미군 기지의 통폐합과 재배치를 추진하고, 제2사단 이전 1단계 작업(통폐합)과 용산기지 이전을 완료하기로 하였다. 양국은 미군 기지 시기와 관련하여 이견을 보여왔으나 결국 2014년까지는 용산 기지를 이전할 것으로 합의를 마무리했으며, 발표 시기 등과 관련하여 최종 조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주한미군 제2사단을 대북 억지용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향후 동아시아 지역차원의 기동군(expeditionary force)화, 즉 역내 분쟁이나 테러사태 발생 시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기동타격전력으로 운용하길 원하는데, 이것은 한미 동맹 개념의 확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즉, 한미 동맹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한반도 차원의 동맹에서 지역 내 패권경쟁을 저지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지역적 차원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미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의 준수를 강조해 오면서도 당파에 관계없이 주요계기마다 주한미군의 병력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왔다. 앞으로 단행될 제2사단 재배치가 경량화·신속화·첨단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주한 미군의 감축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주한 미군이 주둔해서 한국의 국방 능력이 향상되고 안보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었는데, 주한 미군이 감축 되면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공짜로 얻어 쓰던 막대한 군사적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기 위해 엄청난 국방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다. 또, 미국이라는 하나의 ‘보험 장강경책을 폈던 남한의 상황이 불리해질 수 있다. 훗날의 유연성 있는 외교 전략을 위해서라도 PSI 전면 참여와 관련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Ⅲ.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1.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인식1) 냉전 종식과 남북간의 국력 차 심화로 통일 가능성 상승(1) 기본 인식일본은 냉전의 종식에 의한 이데올로기 대립구조의 종언과 교차승인의 모색, 다국간 세력균형 구도의 확립, 한국의 경제성장과 북한의 폐쇄적 경제구조로 인한 국력 차의 심화 등으로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냉전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상승하였지만 통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2) 북한의 붕괴에 의한 남한주도에 의한 흡수통일이 일반적 인식한반도의 통일과정은 북한의 내부 붕괴로 인한 남한 주도의 흡수 통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북한의 개혁, 개방은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북한 경제의 비효율성으로 북한이 와해될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 개방에 의한 남북간의 합의에 의한 통일의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으나, 북한의 현 체제 하에서의 통일의 가능성은 비교적 낮게 평가하고 있다.(3) 급속한 개혁 개방에 의한 통일의 가능성은 낮음한편 북한의 급속한 개혁, 개방은 현실성도 낮을 뿐 아니라, 북한의 급속한 개혁, 개방은 체제이완과 북한정권의 붕괴로 이어져, 이로 인한 남한주도의 흡수통일의 가능성 역시 일정한 정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통일 가능성은 매우 낮게 인식하고 있다.(4) 통일에의 장애요인 - 남북체제의 상이성과 상호불신의 최대의 문제한반도 통일의 장애요인으로서는 국제적 환경의 문제, 남, 북한의 경제적 현실, 군사적인 대립과 정전 상태의 불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나, 최대의 장애요인은 남북한 간의 체제의 상이성과 상호불신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적 환경의 정비보다 남, 북한간의 상호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도 .
위정척사사상과 윤리- 目 次 -1. 척사위정론의 시대적 배경2. 척사위정론의 전개1) 이항로(李恒老)의 척사위정사상2) 기정진(奇正鎭)의 척사위정사상3. 척사위정론의 의의와 한계1. 척사위정론의 시대적 배경한국근대사에 있어 19세기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개항(開港)을 전후한 19세기 중엽 이후의 조선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대내적으로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시작되었다. 세도정치는 정치적 혼란과 부대의 극(極)을 초래하였다. 삼정(三政)이 문란해지고,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민란(民亂)이 잇달아 일어나, 조선의 통치 질서가 근본적으로 동요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내부적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던 조선의 정치 체제에 또 하나의 심각한 도전이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서양 함선의 출현과 그들의 통상(通商) 요구가 그것이었다.19세기 이전의 서양의 함선이 조선 해역에 접근하여 해안선을 탐사하고 측량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에 접어들면서 서양 함선의 잦은 출몰과 통상 요구는 조선의 지식층으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팽배하게 하였다. 이렇게 내부적인 모순과 서양 세력의 도전으로 인한 심각한 위기의식 속에서, 특히 1870년대의 개항을 전후로, 몇 가지의 서로 다른 대응 논리가 대두되었다.첫째, 서구 열강의 도전을 제국주의적 침략이라 규정하여 그들의 문명일체를 배격하고, 유교적 문물의 계승을 통하여 민족 보전의 길을 찾으려한 척사위정사상(斥邪爲政思想).둘째,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고자 한 개화사상.)셋째, 전통적 민간신앙에 기반하여, 안으로는 학정(虐政)에 시달리는 농민 대중을 살리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물리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포덕천하(布德天下)의 이념을 구현하려 한 동학사상(東學思想).이러한 사상 가운데 조선 말기 도학(道學)의 정맥은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춘추시대에 의하여 척양?척왜를 주장한 척사위정사상에 이어진다고 하866년 3월에 베르누(Simeon Berneux)를 비롯한 9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남종삼(南鍾三)?홍봉주(洪鳳周)를 비롯한 수천 명의 천주교도들을 체포하여 처형하는 병인교옥(丙寅敎獄)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결국 프랑스 함대의 무력 침공의 구실이 되어 프랑스군과 조선군 사이에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다〔丙寅洋擾〕. 이 양요로 인하여 조선 내에서는 주전척화(主戰斥和)의 척사위정론이 고조되었다.1866년에 일어난 또 하나의 큰 사건은 미국 상선 제너럴 셔면호를 소각한 사건이었다. 평양의 왕릉을 약탈할 목적으로 침입한 제너럴 셔면호의 선원들은 약탈을 자행하는 과정에서 조선 사람들을 살상하였다. 결국 평안감사 박규수(朴珪壽)가 지휘하는 군민의 반격을 받아 제너럴 셔면호는 불타 버리고 선원들은 모두 사살되었다. 그 뒤에 이 사건의 해명을 요구하는 미국 군함의 내항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척사위정론자들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원군의 선친인 남연군(南延君)의 묘 도굴 미수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조선에의 통상요구에 실패하고 상해(上海)에 머물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박해를 모면하고 탈출한 프랑스인 신부 페롱과 알게 되어, 함께 남연군묘를 도굴하기로 계획했다. 이들은 1868년 여름 기선 차이나호를 빌려 충청도 아산만에 내항하였는데, 이 배에는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도망갔던 조선인 천주교도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들의 도굴 시도는 실패로 그쳤으나, 조야(朝野)에 서양인과 천주교도에 대한 경멸과 분노를 다시 한번 자아냈다. 이 사건은 조선의 위정척사론자들에게 서양은 이적(夷狄)?금수(禽獸)라는 신념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을 강화함과 동시에 더국 철저한 쇄국양이책을 추진하게 되었다.그러나 미국은 조선을 개항시키려는 정책을 변경하지 않았으며, 드디어 1871년 로(Frederick Low)의 지휘 아래 군함 알래스카(Alaska)호를 비롯하여 5척의 군함을 인솔하고 한강 입구에 정박하여 제너럴 셔면호 사건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항로(李恒老)는 이미 1835년이 국내적으로 실세한 남인세력의 움직임과 대외적으로 서양세력의 동점을 깊이 염려하였다. 이와 같이 서양세력과 열강은 19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조선연안을 점차 침입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 조정과 재야에서는 ‘정(正)’과 ‘사(邪)’라는 위정척사사상의 이분법적 논리가 형성되고 신유(1801)?기해(1839) 등 몇 차례의 천주교 탄압을 거치면서 위정척사사상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 외도?이단?방술에 더하여 서학(천주학)이 ‘사’로 설정되고 유학은 ‘정’으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그런데 1866년 1월에는 또다시 천주교도가 다수 처형되었고 천주교서책의 소각과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강화가 시달되었다. 이해 7월에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안부(平壤府)의 신장포항(新場浦港)에 정박하자, 평안도관찰사 박규수(朴珪壽)가 셔먼호의 입국경로와 목적을 묻고 퇴거를 요구하였으나 셔먼호가 퇴거를 거부하고 양곡을 약탈하며 총기를 난사하여 사상자 10여명이 발생하였다. 이에 평양 관민(官民)이 셔먼호를 적시선(積柴船)으로 화공(火攻)하여 영국인 선교사 토머스(崔蘭軒)와 중국인 최능봉(崔凌奉) 등이 살해되어 제너럴셔먼호사건이 발생하였다. 1871년 4월에는 주청미국공사 로가 아시아함대사령관 로저스와 군함 5척을 이끌고 통상 요구차 남양부(南陽府) 풍도(楓島)연안에 도착하여 신미양요가 발발하였다. 그리하여 미육전대 450여명이 광성진(廣城鎭)을 점령하여 전투가 벌어져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 등 80여명이 전사하였다. 이 해에 대원군은 1866년에 지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다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니 나의 만년자손에게 경계하노라”(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라는 척사 문구를 비에 새겨 전국의 군현에 세우게 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18세기말부터 시작된 서양의 종교적 침략이 1866년과 1871년에 군산양(山陽:지금의 문경시 산양면)에서 도회(都會)를 열고 이만손(李晩孫:이황의 11대손)을 소수로 하여 2월 26일 만인소를 올렸다. 또한 충청도에서도 3월 23일에 황재현(黃載顯)?홍시중(洪時中)이 통호반대상소(通好反對上疏)를 올렸으며, 영남·경기·충청의 척사소가 5월 9일 봉입(捧入)되고 이어 5월15일 척사유소(斥邪儒疏)를 종식시키기 위해 조정에서는 전국에 척사윤음(斥邪綸音)을 반포하였다. 그러나 척사운동은 지속되어 윤7월 6일에는 경기도 신섭(申?), 강원도 홍재학(洪在鶴), 충청도 조계하(趙啓夏)?한홍열(韓洪烈), 전라도 고정주(高定柱) 등 4도 유생이 개화정책 반대상소를 올렸다.1880년대에는 정부의 개화정책에 반대하여 척사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처럼 경상도를 비롯하여 경기?충청?강원?전라 5도의 유생들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민씨정권의 개화정책과 서양과 일본세력의 배척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척사운동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8월 29일 안기영(安驥泳)?권정호(權鼎鎬) 등이 국왕을 폐하고 대원군의 서자 이재선(李載先)을 추대하려다 이풍래(李豊來)의 밀고로 체포되었으며, 9월 3일 이재선은 자수하여 10월 27일 처형되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 안기영사건을 계기로 대원군의 측근세력과 척사파를 철저히 탄압하게 된다. 그 뒤 1882년 3월 25일 미국전권위원(美國全權委員) 해국제독 슈펠트가 조미조약체결차 인천에 도착하였고, 4월에는 조영수호조약(朝英修好條約), 5월에는 조독수호통상조약(朝獨修好通商條約)이 조인되는 등 서양과의 본격적인 국제관계에 돌입하게 되었다. 또한 정부에서는 임오군란 이후 개화로의 정책선언을 분명히 하고, 8월 5일 전국에 세워진 척화비(斥和碑)를 모두 철거케 함으로써 조선정부에서의 척사는 사실상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이후의 척사는 오직 재야 유림의 몫으로 남았으나 1894,5년 이후에는 척사사상과 운동은 의병운동의 사상적 기저로서 기능하게 된다.1) 이항로(李恒老)의 척사위정사상이항로는 일정한 스승이 없이 독자적으로론으로 이어졌다.그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는 이(理)이고 서양은 기(氣)이다. 우리는 선을 추구하고 있고, 서양은 형기의 노예가 되어 물질과 기계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재자가 되어 서양을 부린다면 만사가 순리에 맞게 움직여 전세계에 평화가 깃들 수 있지만, 서양이 주재자가 되어 우리를 누르게 되면 만사가 뒤틀리어 전세계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다.이항로는 이러한 화(禍)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서학에 동조하는 자를 가려 엄단하고, 양물(洋物)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외물에는 사목(事目)이 많아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으나 양물(洋物)의 해(害)가 가장 심합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전하의 마음에서부터 단안을 내리시어 일상으로 접하는 의복(衣服)?식용(食用)?기용(器用)에 양물이 하나라도 있으면 모두 찾아내어 궁궐의 뜰어 모아 놓고 태워 버려 전하의 뜻의 소재(所在)를 보이십시오. 그리한다면 그것이 바로 극기(克己)?정심(正心)하셨다는 증거가 될 뿐만 아니라 전하의 몸도 바르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궁내와 종실에 경계하고 힘을 쓴다면 궁내와 종실이 전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어서 전하의 집안이 바르게 될 것이고, 이로써 조정에 경계하고 힘을 쓴다면 안으로 조정에서부터 밖으로 전국 방방곡곡까지 전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어 전하의 나라가 바르게 될 것입니다.)따라서 그는 내면적인 수심의 요체인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덕치를 확립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하였는데, 『사동부승지겸진소회소(辭同副承旨兼陳所懷疏)』에서, 조정의 대신들을 경신(敬信)하게 하여 체통을 존중하게 해야 하며, 삼사(三司)의 밖에까지 언로를 넓혀야 하며, 장수를 뽑고 군사를 훈련시켜 무비(武備)를 갖추어야 하며, 덕망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다.(『화서집』권3)2) 기정진(奇正鎭)의 척사위정사상기정진은 일생 동안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에 전념하여 도학(道學)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는 이항로와 함께 조선 후기 척사)
J. Dewey의 윤리관에 대한 고찰- 目 次 -Ⅰ. 서론Ⅱ. 본론1. J. Dewy에게 가치는 어떤 성질을 가지는가?1) 도구적 가치론2) 페리의 심리주의 가치설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3) 개인주의 윤리설인가?2. 실천판단으로서의 도덕판단1) 실천판단2) 도덕판단3. 성장으로서의 도덕Ⅲ. 결론Ⅰ. 서론20세기 초반의 도덕철학이 무어의 확신에 찬 주장, 즉 선(the good)은 단순하고, 비자연적인 성질의 것으로서 어떤 지적으로 명백한 도덕적 인식의 대상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정의주의적 주장, 즉 도덕판단은 옳음과 그름에 관한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더불어 끝이 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듀이의 자연주의적 도덕철학이 20세기 초반의 윤리학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이후 21세기의 윤리학에까지 미친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듀이의 윤리설은 무어와 페리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듀이는 가치란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데 있어서는 무어와 같은 입장에 선다. 그러나 가치의 실재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인식주관과 독립하여 가치가 실재한다는 무어의 입장에서 벗어나 대상과 인간의 마음가짐이 관계하는 곳에 비로소 가치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페리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듀이의 윤리설은 같은 자연주의의 입장에 서는 페리와는 달리 가치는 보다 세련된 반성적인 판단(평가함)가운데서 생겨난다.Ⅱ. 본론1. J. Dewy에게 가치는 어떤 성질을 가지는가?듀이에게서 가치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인간이 문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로서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의 윤리설을 도구주의 윤리학설이라고 칭한다. 이러한 윤리설의 특징을 가치의 개념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도구적 가치론자연주의 윤리학자인 듀이는 관심의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정의하는 페리와는 달리 다른 입장에 있다. 왜냐하면 페리의 경우에는 도둑질에 대한 관심을 정당화시켜 줄 수도 있이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할 때에 바꾸거나 개량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학문에 있어서도 학문자체란 있을 수 없다. 단지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듀이에게 있어서 모든 과학은 인간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학문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도덕적 학문이어야 하며, 도덕학은 인간을 더 높은 단계로 고양시켜 주는 수단으로서의 학문이고, 그러한 도구적인 역할을 떠나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듀이에게서 학문은 도구적인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또한 낙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늘 진보와 관계를 맺고 있는 발전하는 것이며, 이런 계속 발전하는 과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도 나날이 성장될 수 있는 존재로 본다.그러므로 이러한 도구주의 사상에서 볼 때, 가치라는 것도 어떤 고정된 형이상학적인 실체가 아니라 단지 도구로서의 가치에 불과하다. 이것은 약과 비교해 보면, 더욱 설명이 쉬울 것 같다. 약(특히 한약의 경우에는)은 곧 인간의 나뿐 상황을 좋은 상황으로 바꾸어 주는 데만 의미가 있다. 즉 도구에 불과하다. 만약 아무리 수백 년이나 된 산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나의 신체의 특질 상 아무런 효과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아니 더 나빠지게 하는 것이라면 산삼도 나에게는 쓸모없는 것에 부로가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무가 산삼보다 나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도구,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나올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평가(산삼을 먹는 것이 나에게 좋은가? 아니면 무루를 먹는 것이 나에게 좋은가?)이다. 바로 이 점에서 페리의 심리주의 윤리설과 차이가 나는 것이다.듀이의 철학적 활동(career)은 헤겔의 관념론과 신칸트주의의 영향하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초기의 관심사는 주로 인식론이었다. 그 당시 인식론은 사유와 판단의 본성에 대한 논리학과 심리학의 이론들 및 문제들의 혼합물이었다. 그후 그는 다윈의 진화론 및 신행동주의 심리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퍼어스와 제임스의 프래그머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때 헤겔의 통합사상에 심취하였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헤겔의 절대론적 관념론을 배격하고 실천적?상대주의적 입장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는 ‘선험적 실재’니 ‘선험적 영속성’과 같은 것은 철학자들의 역사적 창작물로서 그것은 불확실하며 단지 사유의 관습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과 자연, 이상과 실천, 수단과 목적, 주체와 대상, 사실과 가치, 개인과 사회 등의 잘못된 이원론을 극복해야한다”고 믿었으며, 관념과 행동, 이상과 행위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한 신념의 철저한 개조를 주장하였다. 따라서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은 전통적인 철학의 기본적 신념들의 개조를 발판으로 하여 수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듀이에 의하면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믿고 있는 세계는 닫힌 세계로서 이러한 세계는 한정되고 고정된 형상들로 구성된 분명한 한계를 지닌 세계이다. 그러나 현대과학에서 파악하는 세계는 열린 세계로서 무한히 변화?확장하는 세계이다. 그리하여 외적으로는 시공적으로 무한한 세계이고, 내적으로는 어떤 공식으로 요약되거나 파악될 수 없는 무한히 복잡한 세계로 이해된다. 그리고 실재 혹은 존재를 파악하는 척도도 고정성(fixity)이 아니라 변화(change)가 된다. 따라서 현대과학은 본질보다는 운동?생성?결과의 법칙을 논하는 데 관심을 두며, 어떤 불변적 존재를 정의하고 한정하기보다는 변화의 질서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하여 듀이는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믿고있던 ‘존재’, ‘자연’, ‘우주’, ‘진리’ 등이 갖는 ‘고정성’의 개념을 ‘과정’(process)의 개념으로 대치하고 이를 그의 도덕철학에 도입하고 있다. 말하자면 고정적?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던 도덕의 법칙, 기준, 목적 등이 이제는, 이론과 실제 양면에 있어서, 시공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측면에서 파악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 및 변화의 개념은 듀이로 하여금 모든 이원론적 사상을 배격하게끔 하였고 그의 철학을 경험의 세계에 국한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초자연 극복하려고 하지만, 듀이에게서는 그런 과정이 없다. 단지 그는 사회가 개인데 우선한다는 생각이 앞서 있다. 그렇게 보면 듀이의 윤리설은 어떻게 개인과 사회 쉽사리 조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먼저 설명되어야 한다. 다만 듀이는 그것을 자신의 윤리설의 전제로 삼고 있을 뿐이다.2. 실천판단으로서의 도덕판단1) 실천판단듀이에 의하면 문제상황을 만족스러운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서 요구되는 행동(대안)에 대한 판단이 ‘실천판단’(practical judgement)이다. 말하자면 “행동이 요구되는 사태에 관한 판단”, 즉 “어떠한 행동을 요구하는 판단” ― 예컨대 “의사에게 보여야 한다”, “집은 지금 짓는 것이 좋다”와 같은 판단 ― 이 실천판단이다. 이러한 판단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지시해주는 판단이므로 실천적 판단이다. 이러한 실천판단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첫째, 실천판단의 주제가 되는 사태는 불완전한 사태, 즉 문제상황이다. 이러한 사태의 불완전성은 단순히 심리적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 사태 그 자체에도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것을 채워 줄 어떤 행동이 요구되는 사태이다. 즉 실천판단의 주제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미완성의 상태이며 따라서 실천판단은 미래에 관한 판단이다.둘째, 실천판단은 그 자체가 상황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요인이 된다. 즉 그 판단의 주제가 되는 사태는 그러한 실천판단이 내려졌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셋째, 실천판단은 수단과 목적에 관한 가설이다. 즉 실천판단은 현존하는 사태를 알려주는 동시에 그 사태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면 어떠한 방법이 좋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는 판단이다.그런데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의 특징이다. 즉 문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판단인 실천판단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진술하는 가설로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특수한 행동이 발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진술하는 판단이다. 이것은 “만약 행위 X가 일어난다면, 그때에는 사건 Y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명제로 공식화될 수 있다. 이때 예언되는 것치의 종류에 의해서 구별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수한 종류의 가치명제들은 사물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그 적합성과 편리성에 의하여 평가될 때마다 발생한다. 이러한 명제들은 일어났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들이나 사건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요컨대 도덕판단은 사실판단과 내용에 있어서만 차이가 나며, 미래에 관한 판단으로서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진술하며, 지성의 도움을 받는 판단이며 그리고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판단이라는 것이 듀이의 주장이다.듀이에 의하면 도덕판단은 “당신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혹은 “동정은 선이다”와 같은 진술이 아니라 수단과 결과에 관한 진술이다. 따라서 선(good)이 어떤 판단 속에서 진술될 때 그것은 “그러한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혹은 “~에 대해서 효과적일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듀이는 “선이란 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 것으로서 결과와 어떤 관련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당신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라는 진술은 진실을 말하거나 그렇지 않을 때의 조건과 결과에 대한 일련의 진술로 환원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진술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만약 당신이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대가 혹은 실망을 경험할 것이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떤 도움 혹은 방해를 받을 것이며, 당신의 성격을 어떤 방향으로 발달시킬 것이다”라는 진술로 환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라는 진술의 충분한 의미는 진실을 말하는 것과 그밖의 다른 대안 ― 예컨대 거짓말 ― 에 의하여 일어나는 모든 결과들을 상세히 비교함으로써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3. 성장으로서의 도덕(Growth sis the only moral end)정적이고 정체적인 것을 싫어했던 듀이는 ‘성장’(growth)과 ‘개선’(improve- ment)과 ‘진보’(progress)를 강조한다. 듀이는 그의 저서 『.
장자사상의 특색- 目 次 -Ⅰ. 서 론Ⅱ. 본 론1. 순수경험의 세계2. 절대적 소요유3. 장자학과 양주의 비교Ⅲ. 결론 및 소감Ⅰ. 서 론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그 진행 방향을 바꾸어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몸이 우리에 갇혀 있으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리하여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사고의 틀(우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갇혀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우리에 갇힌 구속의 고통은 육체적 구속의 우리에 갇힌 고통보다 더 심한 부자유스러움과 압박과 아픔을 가져와 우리의 삶을 곤두박질치게 하고 있다.장자는 바로 이러한 정신과 마음을 가두어 놓는 우리로부터 탈출하여 완전 자유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생각을 여러 가지 우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장자』라는 책일 것이다.장자는 노자를 계승하여 도가를 발전시킨 사상가이다. 유교의 예교 사상이 그 사회를 지배해 온 중국에서, 언제나 인간 본연의 위치에서 ‘자유’를 추구해 온 장자의 사상은 정체되려는 그 문화에 끊임없는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장자가 ‘완전한 자유의 경지’를 추구함으로써 인위적인 규범으로 사람들을 구속하려는 유교에 의한 지배에 숨 돌릴 여유를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완전한 자유의 경지’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행위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Ⅱ. 본 론1. 순수경험의 세계순수경험 속에서 개체는 우주와 합일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순수경험(Pure experience)은 [이지적] 지식이 없는 경험이다. 순수경험을 할 때에는 경험자는 경험내용에 대해서 단지 그것이 “그러함”(제임스가 말한“that”)을 감각할 뿐 그것이 “무엇”(제임스가 말한 “what”)인지는 모른다. 제임스에 따르면, 순수경험은 경험의 “액면가치”(Face value), 즉 순수감각내용으로서, 개념에 의한 구별이 섞이이 사는 세계도 이런 종류의 경험의 세계이다. 「제물론」은 말한다.옛 사람은 그 지식이 지극했다. 어떻게 지극했는가? 물(物)의 개념조차 가진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즉 그들은 경험만 있고 이지적 지식이 없었다). 이는 가장 지극한 지식으로서 더할 나위 없다. 그 다음 인물은 물(物)의 존재는 알았지만 물에 대해서 아직 분별을 행하지 않았다. 그 다음 인물은 물에 대해서 분별은 행했지만 아직 시비를 느낀 적이 없었다. 시비의 판단이 창성하자 도는 훼손되었다. 도가 훼손된 까닭은 [사물에 대한] 사적 편애가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성취와 훼손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성취하자 훼손이 생긴 경우는 소씨(昭氏)가 거문고를 탄 경우이고, 성취도 훼손도 없는 경우는 소씨가 거문고를 안 탄 경우이다.)경험은 있지만 사물이 있음을 모르고, 분별이 있음을 모르고, 시비가 있음을 모른다는 것인데, 모르면 모를수록 경험은 더 순수하다. 경험에서 경험대상인 사물은 구체적이고, 이름이 지시하는 바는 추상적이다. 그래서 개념으로써 지시하는 바는 사실상 경험의 일부일 뿐이다. 비유하건대 “사람”이라는 이름이 지시하는 바는 단지 인류의 공통적 특질일 뿐이다. 각 개인의 구체적인 특질이나 개성은 모두 포괄될 수 없다. 따라서 한 개념이 있게 되면 성취한 바가 있는듯하나 실제로는 훼손된 바가 있다.모든 사물은 가하다면 가하고 그렇다면 그렇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가하다고 하거나 그렇다고 할 필요는 없다. 막대기면 막대기, 기둥이면 기둥, 문둥이면 문둥이, 서시이면 서시이므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분별할 필요는 없다. 개념적 분별이 있으면 성취가 있고, 성취가 있으면 훼손이 있지만, 순수경험에는 성취도 훼손도 없다. 따라서 달인(達人)은 분별은 피하고 순수경험에 머무르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 그 지극한 경지는 머물러 있으면서도 머물러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 경지에 이르면 만 가지로 상이한 사물일지라도 우리의 인식상으로는 사실상 이미 구별이 없어진다. 이 경지에 이르면 진정 “천지는 고 하겠다.1) 심재(心齋))심재는 무위자연의 도에 도달하는 심리적 수양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잡념이 조금도 없이 심중(心中)을 정결하게 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가다듬는 과정이 심재인 것이다. 그리고 심재를 하는 목적은 마음을 비움으로써 수양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온갖 잡념을 없애고, 정결한 마음을 길러 결국 허정(虛靜)한 마음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심재의 고요한 경지는 맑은 물에 비유된다.물이 고요하면 밝은 빛은 수염이나 눈썹을 비추고, 수준기(水準器)에 꼭 맞아 목공도 이것을 법(法)삼는다. 물의 고요함도 밝은데, 하물며 성인의 고요함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천도」)이와 같이 장자는 심재한 경지를 바로 ‘맑은 물의 상태’로 비유하였다. 그리고 장자는 심재의 방법을 여러 가지로 들고 있는데, 특히 심재의 방법상 주의할 것으로서 바른 심재를 하라고 한다. 무조건 마음만 맑히고, 어떠한 기준과 표준이 없이 행한다면 이는 그가 말한 심재가 아니다. 그래서 장자는 외적인 형식의 재계(齋戒)가 아닌 마음속의 재계(齋戒)를 제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장자의 심재는 도와 합일되어 허(虛)를 이뤄 지켜 가는 것이다.도와 하나되어 변하지 않음은 고요함의 지극함이며, 무엇에도 거슬릴 바가 없는 것은 허(虛)의 지극함이며, 사물과 더불어 섞이지 않음은 담담(淡淡)함의 지극함이다.(「각의」)따라서 심재는 수양을 함으로써 도와 하나가 되는 수양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허의 경지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므로, 사물과 자아 간에 간격이 없어져 물아일체의 경지가 된다.2) 좌망(坐忘))좌망이란 가만히 앉아서 모든 물체의 시비와 차별을 잊어버리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정신 상태는 장자에 의하면 인의와 예락을 잊어버리는 단계를 거친 후에야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런 후에 심신의 속박을 벗고 도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안회가 “저는 진보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하기를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공자안회가 말하기를 “저는 예락을 잊어버렸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괜찮기는 하지만 아직은 미흡하다.” 뒷날 다시 만나 안회가 말하기를 “저는 진보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하기를 “저는 좌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공자가 놀라 묻기를 “무엇을 좌망이라고 하는가?” 안회가 말하기를 “손발이나 신체를 잊고, 귀와 눈의 작용을 물리쳐 형체를 떠나고 지각을 버려 대도(大道)에 동화하는 것, 이것을 좌망이라고 합니다.”(「대종사」)여기서 장자는 ‘육신을 무너뜨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없애며, 일체의 지식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몰입하는 것’이 좌망이라고 한다. 이로써 보면 좌망은 앞서 언급한 심재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심재가 마음을 단순히 하나의 기(氣)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것인데 반해서, 좌망은 이미 들어간 기의 상태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자기와 자기 이외의 바깥 세계를 잊어버리는 단계이기 때문이다.소위 “심재”와 “좌망”은 모두 사려와 지식을 제거하여 마음을 비워 “대통에 합일함”을 주장하는데, 이런 상태 속에서의 경험이 곧 순수경험이다.2. 절대적 소요유(逍遙遊)인간은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절대적 소요가 가능하다. 모든 존재는 본성에 순응하면 소요(逍遙)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물의 활동에는 의뢰하는 대상이 있으니「소요유」에서 말한 “의존”이다. 소요유는 장자사상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이며, 최고의 이성(理性)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어원적 의미에서 살펴보면 ‘이리저리 거닐다’는 뜻을 지닌 소(逍)와 ‘거닐다’라는 요(遙)와 ‘즐겁게 지내다’라는 유(遊)라는 개념이 합성되어 ‘자적하다’하는 의미를 지닌 합성어가 된 것이다. 「소요유」는 말한다.열자(列子)는 무척 신기하게 바람을 타고 다녔는데, 한 보름 만에 돌아오곤 했다. 행복에 도달한 사람 가운데 그런 인물은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비록 걷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에 의존했다.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녔으므로 떤 사람은 명예를 얻어야 기쁘고, 어떤 사람은 애정을 얻어야 기쁘니, 그들의 소요는 부귀, 명예, 애정에 의존해 있다. 의존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의존대상을 얻어야 소요한다. 따라서 그 소요도 의존대상의 제한을 받으므로 절대적일 수 없다. “심재”하고 “좌망”한 사람의 경우, 이미 “사생을 같은 일로 여기고 옳고 그름을 한통속으로 여기니”,) 그 소요는 의존대상이 없고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이다.“자연의 법칙에 따라 육기(육기(六氣):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의 변화를 다스리며 무궁의 세계에 소요하는 사람”은 즉 우주와 합일한 사람이다.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자아가 없고”, “공적이 없고”, “명성이 없기” 때문인데, 무엇보다도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지인(至人:완전한 사람)이라고 한다.3. 장자학과 양주의 비교“은자(隱者)”나 양주(楊朱)등이 “전생보전(全生保眞)”의 방법으로 은거(隱居)와 피세(避世)를 고집한 것은 천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가 철학의 출발점은 생명을 보존하고 상해를 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주는 은둔의 방법을 썼다. 이것은 바로 사회를 떠나 산림에 숨어 사는 은자들의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그들은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세상의 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너무도 복잡하므로 아무리 잘 숨어산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둔 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있었다. 이후, 노자의 사상은 우주 내 사물의 근원이 되는 도를 밝히려는 것이다. 사물은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근원이 되는 도는 불변한다. 이 도를 이해하고 도에 따라 행동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된다,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절대적인 보장은 할 수 없었다. 사물의 변화에서 자연계와 인간계에는 보이지 않는 요소가 있다. 그렇게 사사건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데서 위험을 당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노자는, “내게 큰 환난이 있는 까닭은 내 몸이 있기 때문.
성 불평등1. 문제제기한국의 성문화란 우리사회에 보편화되어 있는 성생활의 특정한 양식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사회성원의 집단적 산물로서 한국적 전통과 그 변화, 그리고 현대적 특성들을 포괄하는 것이다. 즉, 성문화는 역시 집단간, 계층간, 개인간의 차이들을 내포한다. 이 글에서는 양성간의 차이에 대해서, 특히 이 차이가 성불평등성을 내포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성애적 성문화가 지배적인 성문화로 실천되어온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문화에 내포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즉 우리의 성문화가 우리사회에 뿌리 깊은 성차별, 성불평등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양성간의 대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성적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안고 있음을 말한다. 이성간의 불평등한 성관계는 가족을 이루는 부부관계를 비롯하여 이성간의 결합 그 자체에 불평등성을 내포하게 되며, 이는 우리의 성문화가 성불평등을 생산, 재생산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왜곡된 성문화의 양상들이 점점 늘어나고 이로부터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야기되어온 상황에서 ‘우리의 성문화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면, 바로 이 물음의 초점은 일차적으로 성불평등성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성불평등성의 내용과 근거는 무엇이며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또 어떠한 문제들을 야기시키는가?2. 성규제의 편향성우리의 성문화의 전통이 이중적 성윤리에 근거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가부장적 결혼제도는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르게 적용되는 성윤리를 형성시켜왔는데, 이는 한 마디로 순결과 정절을 여성 한 쪽에만 강요하는 전통을 지닌다. 이러한 전통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뿌리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전통에 내포된 성불평등성은 기본적으로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일부일처제가 여성의 성규제를 극대화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에 있다. 가족의 일차적 기능이 성규제라고 한다면 여성의 순결과 정절은 사회는 이들에게 외도와 매춘을 왜 삼가해야 하는 지를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가? 더구나 성의 상품화가 증대되고 외도와 매춘을 더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오늘의 상황은 청소년 세대로 하여금 아버지세대의 성적 특권을 더욱 노골적으로 행사하도록 부추긴다. 자본주의 성산업은 외도와 매춘의 남성문화를 바탕으로 번창하는 산업이고 동시에 그러한 성문화를 확대 재생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기능은 청소년세대의 혼전 성을 더욱 더 문란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 문제는 청소년들에게 외도와 매춘을 허용하는 성문화를 계속적으로 답습하게 할 것인가에 있다.한편 여성들은 어떠한가? 남성의 외도를 당연시해온 풍토속에서 여성들 자신도 이에 길들여져왔다.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풍토를 문제시하는 여성들이 차츰 늘어나면서 남성의 외도와 매춘은 이혼의 사유가 될 소지가 많다. 이러한 이혼이 야기하는 문제는 바로 성문화의 성불평등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여성 개개인의 문제, 또는 개별 가정의 문제로만 방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가정을 깨는 여성을 비난하면서 여성들이 과거처럼 가족을 유지시키기 위해 남성의 외도와 매춘을 참아내도록 강요할 것인가? 남편의 상습적인 외도와 매춘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가정을 지켜낸 여성을 모범적인 여성상으로 예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사회이며 또한 이것이 바람직한 성문화인가? 아니면 여성들이 이러한 남성의 성문화를 절대로 묵인하지 말 것을 기대한다면, 가정생활이 과거처럼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 또는 여성들도 남성의 외도와 매춘문화를 그대로 모방하여 성적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의 성쾌락주의를 성평등적으로 실현시키는 길인가? 여성의 성을 일방적으로 억압해온 가부장적 성문화의 성불평등성을 문제삼는 것이 여성에게도 남성과 대등한 성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성평등적 성문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 때의 가족의 성규제 기능은 유지되기 힘들 것이고 결국 종전의 가족제도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남성이 성순결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성욕을 숨기거나 성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보이도록 사회화되고 있다. 이로부터 갖가지 모순적 상황이 초래하게 될 소지가 많다. 하나는 이성애적 성문화가 극히 불균형적인 관계에서 성립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남성의 과도한 성적 관심과 성의 과시적 태도, 그리고 성에 대한 여성의 은폐적이고 회피적인 입장이 대조되는 상황에서 성적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대조적 입장을 양성간의 성역할 분담의 규범과도 연계시켜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해왔다. 즉 여성은 매사에 수동적, 소극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남성은 능동적, 적극적,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역할분담체계로 간주해왔듯이, 성관계에서도 여성은 소유적, 남성은 적극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당연시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조는 결국 이성간의 성관계가 남성 주도적으로 더 나아가서 남성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문화를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다.또 하나는 오늘날 자유연애가 늘어남에 따라 순결상실로 인한 여성들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늘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순결은 여성적 가치로 인지되기 때문에 순결상실은 곧 여성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순결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있는 여성들은 혼전 성관계에 대해 죄의식이나 피해의식를 갖게 될 뿐 아니라 실제로 혼전 성경험이 여성의 결혼과 이성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연애관계에서의 성경험은 흔히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성을 증가하게 만들거나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감내하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다. 또한 여성의 순결상실에 대한 사회적 오명과 비난은 여성으로 하여금 순결을 위장하게 하거나 여성적 가치를 포기한 존재로 만들거나 또는 미혼모가 될 경우 잉태된 생명을 거침없이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 피해들은 모두 여성 혼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유연애의 증가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여성을 순결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방치할 것이며 지식, 성적 호기심, 성경험의 괴리는 더욱 커질 소지가 있다. 조사결과에서도 청소년세대에게서 실제로 성정보를 접하는 방식과 내용과 정도에서 남녀간의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기성세대이상으로 청소년세대에게서도 양성간에 성문화의 이질성이 해소될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3. 소유, 지배, 정복의 성개념가부장제 하에서 남녀간의 불평등한 관계는 가장권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의 권력과 권위의 점유에 근거한다. 이것은 이성간의 성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남성이 결혼을 계기로 여성의 성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을 전제하며 이것이 또한 우리의 성문화에 성불평등성이 내재하는 요인이다. 남성 혈통의 순수성을 보장해주는 여성의 생식 기능이 중시되면서 여성의 성은 부계부권가족의 소유물로 취급되어온 것이다. 남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결혼 가족제도를 근거로 형성된 성문화는 근본적으로 여성의 성적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성과 남성 가문에 의해 소유된 상태에서만 여성의 성이 인정되고 그러한 소유대상으로서 여성의 성은 일종의 자산가치를 지니게 되며 이는 남아생산에 이르러 더 확실하고 절대적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남성을 여성의 보호자로 간주하는 내용속에는 여성의 성에 대한 보호, 즉 성적 소유자로서의 남성의 책임과 권리가 내포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개념은 결혼이 개입되지 않는 이성간의 성관계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온 것이다. 즉 이성간의 성관계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여성을 정복하는 것, 요컨대 성관계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인격적 지배가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남성으로 하여금 성을 매개로 권력을 유지 강화하도록 만들거나 여성을 통제하게 만드는 한편 여성에게는 성경험이 남성에 대한 의존성, 순종성, 심지어는 종속성을 조장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이러한 성문화의 전통은 오늘날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성문화에 여전히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형태로 심다.근래에 점점 더 심각성을 드러내는 각종 성폭력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성문화의 연속선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성의 폭력적 행사는 강제적으로 그리고 폭력을 사용하여 여성의 성을 소유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남성적 성문화가 그 토양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성을 소유, 지배, 정복한다는 개념은 상황에 따라서 강제성, 공격성, 폭력성을 불러올 소지를 안고 있으며 그러한 성규범을 내면화해온 남성들에게 강제적, 폭력적 성은 비교적 익숙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간의 성관계가 상호적인 교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소유하고 정복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고 이를 당연시하는 성문화는 바로 성을 일방적으로 침범할 수 있는 것으로 오도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통제하는 목적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성문화 역시 성폭력을 여성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아내를 구타하고 학대하는 남편들의 경우에 성관계는 흔히 아내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또는 순종과 복종을 유도하는 방편으로 이용되는 것에서 그 극단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현대의 성산업은 성쾌락주의를 고조시키는 방편으로 보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성행태들을 조장하고 있으며 폭력적, 가학적인 성을 미화하면서 변태적인 성행태의 취향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포르노 영상물들은 여성을 가학적, 폭력적 성의 노예로 표현하는 동시에 여성 스스로가 이를 즐기는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성산업의 발달과 함께 왜곡된 성문화가 파급될 소지를 안고 있으며 특히 성폭력이나 성학대를 남성적 성향락문화로 극대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우선적으로 남성을 강제적인 성관계, 지배와 통제의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성행태들에 길들여지게 하는 성문화이다.4. 성의 대상화, 상품화우리의 성문화에 내포된 또 다른 성불평등성은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에 있다. 이것은 앞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