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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프랑스문화와예술
    프롤로그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는 역사 속에서나 나오는 유럽 얘기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 복학하면서 프랑스 문화와 예술을 수강하게 된 것은 복학 첫 학기에 좀 부담이 없는 교양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수강 신청했는데… 학기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프랑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또 이번 레포트 준비하느라 이것저것 프랑스에 대한 것 찾아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직접 가보고 나의 느낀 점이나 생각들을 쓰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가상으로나마 여행하는 형식으로, 프랑스에 대한 나의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2002년 7월 10일오전 10시…드뎌 프랑스의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준영이,진원이,배건이와 함께 꿈에 그리던 배낭여행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파리에 도착해서 맨처음 어딜갈까를 비행기 안에서 논의를 했는데, 베르사유 궁전을 가장 먼저 보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약간 떨어져 있어서 기차를 탔다. 한 20분쯤 기타를 탔고, 내려서 약 30분쯤 걸었는데, 가다보니 멀리 궁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규모가 엄청났다. 안으로 들어가서 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거울의 방’에 갔는데 정말 거울의 방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휘황찬란한 장식들이 내 머리속을 어지럽게 했다.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 정도로 규모도 크고 화려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궁에서 볼 수 있는 고풍적인 이미지는 없는 듯했고 단지 규모만 크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를 나와서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 위에 올라갔는데 경치가 장관이었다. 파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질뻔 했는데, 한참동안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다. 홍세화씨가 왜 뒤통수로만 구경하지 말고 앞통수로 좀더 오래 구경하라고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2002년 7월 11일아침일찍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들은 얘기인데, 전시 품목수가 30만점이나 된다고 했다. 심심해서 계얘기를 들었던 터라 꼭 듣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듣지 못했다. 이틀정도 파리에 머물면서 좀 이상한 것을 봤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질서가 잘 유지되는 듯한데 부분 부분을 보면 신호등도 잘 지키지 않는 것 같고 쓰레기도 아무데나 버리는 광경을 몇 번 봤다. 경찰이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게 확실한데도 단속을 하지 않는 모습도 봤다.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교통사고 발생이 우리나라가 1등이라니… 자유로움 속에서 전체적인 조화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 프랑스 사회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헤깔렸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통제라는 원시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성숙한 사회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간 친구들과 이 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핍박과 지배 속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진원이가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상한 점은 우리는 프랑스보다 더 많은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아직도 공권력을 동경하고 힘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눈으로 보고 그것을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왜 우리는 그것을 동경하는 것일까…단순히 프랑스에 비해 흘린 피가 적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닌데… 홍세화씨가 말한대로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서 우리와는 틀린 것인가…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중용의 도’, ‘정(情)’, ‘관용’, ‘겸손의 미덕’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도덕적 지표가 되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만약 프랑스 사회의 특징이 ‘똘레랑스’로 대표된다면 나름대로 정체성이 있는 사회임에 틀림없다. 자유분방함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굳이 통제를 하지 않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듯하다. 이에 반해 우리는 왜 통제를 싫어하면서도 통제 받는 것을 좋아하는 듯 보일까… 이것은 군대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는 거대한 하나의 군대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자좀 배워야 할 점이다.2002년 7월 12일아침 일찍 우리들은 프랑스 북동부지역으로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세계사에서 배운적이 있는 솜지역(솜전투)으로 가보고 싶어서였다. 친구들은 파리에 더 있자고 했지만 난 역사 유물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가자고 우겼다. 1916년 7월1일부터 11월21일 사이에 연합군 60여만명, 독일군 46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땅을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상상이 되지 않는 숫자다. 우리나라의 전 병력이 60만명정도 인데 죽은 사람 숫자만 100만이 넘는다니… 당시 참호 1미터를 파서 나가기 위해 수백명이 기관총의 총알받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솜계곡에서 대충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우리는 샹파뉴로 향했다. 샴페인도 좋지만 난 랭스 대성당을 한번 보고 싶었다. 백년 전쟁때 샤를 7세의 대관식을 했던…그 곳… 당시 샤를 7세는 랭스가 영국군에 함락되어 있어서 왕 즉위식을 하지도 못하고 그 결과 프랑스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게 된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게 왜 프랑스 왕들은 랭스에서 즉위식을 해야만 했는가다. 11세기 이후에 프랑스의 모든 왕들은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대관식의 도시’인 랭스로 왔다고 한다. 프랑스인들도 나름대로 전통을 상당히 고수하는 보수적인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하고 활발하고 낭만적인 이미지 이면에는 전통을 존중하고 고수하고자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점들을 볼 때는 우리문화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왕조들도 전통에 의해 권력을 이양받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그 시대의 왕은 항상 불안해 했었다. 이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서로 많이 달라보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닮은 점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각 서양과 극동아시아에서의 지리적인 위치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도 결국은 서구 열강으로서 제3세계를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방의 사과는 대부분 ‘시드르’와 ‘칼바도스’라는 사과 브랜디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정말 반대되는 현상인데,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인들은 우리민족 못지않게 술을 좋아하는 것같다. 우리는 최상질이 아닌 사과는 기껏해야 사과 주스 정도 밖에 안되는데, 프랑스에선 좋은 술의 원료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준영이가 프랑스에 물이 부족해서 그런거 같다고 말했다. 어느덧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왔는데, 한 프랑스인이 점심식사 초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인의 집으로 갔다. 잠시 후에 식사가 나왔는데, 거의 해물잡탕 같은 음식이 나왔다. ‘프뤼 드 메르’라는 음식이었는데 새우와 바닷가재, 대합, 굴 등이 해초와 얼음위에 얹혀서 나왔다. 간만에 우리는 식사를 제대로 했는데, 비록 소스가 입맛에 맞진 않았지만, 3일간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워온 우리들에겐 정말 꿀맛이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주인이 술을 한잔 권했다. 칼바도스였다. 맛이 매우 독특했다. 운이 좋게 포식한 우리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에 노르망디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평온한 광경이었다. 13만 5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상륙작전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 영화의 기억을 되살린 우리들은 여운을 뒤로 한채 몽셸미셸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매혹적인 곳이라 불리는 그 곳… 정말 놀라우면서도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어떻게 바다물 안에 저런 수도원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수도원을… 엄청 사람들이 고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문화의 건축물 특색은 일단은 크기로 보는 사람을 제압한다. 물론 정교하지만,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정교함을 초월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 거의 모든 건축물의 컨셉(Concept)이다. 우리문화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인공의 미학이 자연을 초월하고 있음이 계속 느껴진다스티유 감옥이 공격당하던 날이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피를 흘려가면서 자유를 되찾았으니, 억압과 통제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민족이다. 그러다보니 통제와 구속을 싫어하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민란이 발생하긴 했지만 항상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중의 민란이 아니라 누군가가 주도한 민란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주모자가 처형되면 거의 난이 평정되어 버리는…항상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성격이 좀 달랐다. 물론 프랑스 혁명이 전반적으로 거의 매우 거칠고 피를 많이 본 혁명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이지만, 혁명의 사상이 뿌리내리고 전파한 점에서는 높이 평가 받을만하다. 파리 시민들이 저렇게 즐겁게 놀고 있는 광경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지배계층이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계층에 대항하여 거둔 첫 승리로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개념을 형성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이념을 형성하고, 그 밑거름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기에 며칠을 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점은 배워야 하는데, 휴일이 많다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킨 것은 아직까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날들은 국가공휴일로 지정하여 반드시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야 한다. 파리시민에게 프랑스의 공휴일을 물어봤더니 ‘설날(1월1일), 부활절 일요일과 월요일, 예수승천일, 성신강림절 월요일, 노동절(5월1일), 유럽전승기념일(5월8일), 프랑스혁명기념일(7월14일), 성모 승천일(8월15일), 모든 성인의 날(11월1일), 성탄절’ 이었다. 모두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나라도 약 10여개 정도의 공휴일이 있는데, 어떻게 식목일 같은 역사적 의미가 없는 날도 공휴일이 되는데, 한글날이 사라진다는 것이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덧 개선문 근처까지 오게 되었는데
    인문/어학| 2003.05.01| 8페이지| 1,000원| 조회(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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