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장과정 및 학창시절에 대해서 작성해주십시오(2000byte)[세상에 공짜는 없다]“왜 그 게임을 사야하는지 말해봐, 동생하고 비교해서 더 설득력 있는 사람이 원하는 게임을 사는거야.” 초등학교 6학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게임을 고르다 다투고 있던 저와 동생에게 아버지가 하신 말씀입니다. 하루 종일 동생과 방안에서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을 하다가 게임은 쉽게 질리기도 하고, 한번 엔딩을 보고나면 끝이기 때문에 100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슈퍼팩을 사면 더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이처럼 부모님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시며 매사에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 따른 행동이 자연스레 몸에 배여 주변으로부터 분석적이고 설득력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보석의 아름다움 보다는 인격의 아름다움으로 장식되고 싶습니다.]한정된 대학생활동안 자기계발을 위해 크게 4가지 노력을 하였습니다. 먼저 동아리 AIESEC에 가입하여 대외협력부서에서 활동했습니다. 신입생모집과 대외홍보활동을 하면서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어학실력과 글로벌감각을 키우기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1년간의 어학연수는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을 접할 수 있었고, 타문화에 대한 열린사고방식과 도전정신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세 번째, 대북지원단체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서의 인턴십을 통하여 수업시간에는 배울 수 없는 구매와 대금결제, 협상 같은 실무적인 부분을 보고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의 멘토가 되어 형처럼 상담도 해주고 선생님처럼 공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얻는 보람보다 남을 통해 얻는 보람이 더 값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위의 다양한 4가지 경험과, ‘더불어 사는 삶’을 글로써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이해한 것, 이것이 학창시절을 통해 얻은 제 미래의 역량입니다.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연한 사고와 도전정신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GS칼텍스의 새로운 Energy, 지원자 기영헌입니다.GS칼텍스의 인재상을 쓰면서 이러이러한 지원자, GS칼텍스에 지원합니다.라고 쓰기2.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일을 추진했던 경험에 대해서 작성해주십시오.(1600byte)[글로벌 역량을 위하여]워싱턴DC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초기에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거금을 들여 미국인과 함께 사는 홈스테이를 신청했는데, 뭔가 따뜻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무심했습니다. 1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학원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제 태도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홈스테이에 들인 비용 때문에 손님 대접을 받고자 했던 저의 태도는 합리적인 미국인 Kay에게 한명의 고객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미국에선 미국문화를 따르자]그 다음부터는 홈스테이의 고객이 아닌 가족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면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도우며 이야기를 나눴고, 매주 수요일이면 Kay대신 쓰레기통을 비우는 등 남자가 할 만한 궂은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또한 취미가 정원 가꾸기 이던 Kay가 뒤뜰에서 정원 일을 하고 있으면 방안에서 구경하고 있는 대신 ’Do you need some help?'를 외치며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Kay는 저를 가족처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이면 그녀의 친구들과 Brunch를 함께 했고, 벼룩시장이나, 관광지에 같이 놀러 다녔습니다. 그리곤 어느 날, 저녁식사 도중에 지금까지 온 학생들 중에 한국학생인 제가 최고라며 ‘어른을 공경하고 친절한 한국 사람이 좋다’고 했습니다. 또한 특별히 가격을 낮춰 줄 테니 자기 집에 계속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경험을 통해 배운 글로벌 감각]한 미국인의 작은 칭찬과 배려였지만, 처음엔 제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그녀였습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에서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그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걸 배울 수 있었고, 어디를 가던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열린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열정과 도전정신, 경험을 GS칼텍스에 모두 쏟아내겠습니다.3 새로운 환경이나 조직에 들어가서 갈등을 겪었던 경험과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사례에 대해서 작성해주십시오(1600)[추진력으로 얻은 탁월한 결과]올해 3월, TOEIC Speaking시험을 준비하고자 만든 영어 회화스터디에서 문법공부 문제로 2명의 팀원과 갈등이 있었고, 이를 설득과, 추진력, 그리고 탁월한 결과를 통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Win-Win의 결과를 얻었습니다.[추진력과 설득]모임 첫날, 스터디 원들에게 준비해온 커리큘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2시간의 일정 동안 처음 30분은 기본적인 gossip에 대해서, 1시간은 준비된 주제에 대해 자유토론, 나머지 30분은 문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커리큘럼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문법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 찬성을 했지만, 2명은 회화스터디인 만큼 회화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였습니다. 찬성했던 친구들도 알아서 해보라는 눈짓만 보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화스터디이지만 기본적인 문법을 알아야 회화실력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반대하는 친구들을 설득하였습니다. 또한 어학연수시절 느꼈던 경험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30분이면 큰 시간이 아니니 한 달 동안 먼저 시행해 볼 것을 제시하였습니다.[탁월한 결과, 모두의 만족]4달의 스터디 기간 동안, 문법공부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반발했던 그 친구들도 자신들의 영어회화가 문법공부를 통해 더 풍부해지고, 세밀해짐에 만족해했습니다. 또 TOEIC Speaking 점수도 2명은 LV 7, 나머지 4명은 LV 6를 탁월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두 친구의 강한 반발에 추진력을 잃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분석이 추진력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추진력과, 탁월한 결과로 어제와 다른 오늘의 GS칼텍스를 만드는 Energy가 되겠습니다.4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작성해주십시오.(1600)[시작하기 전에 신중히 준비하라]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몇 번씩 가슴속에서 되뇌는 말입니다. 대학 3학년 때 국제경제관계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중간고사가 다가오기 한 달 전 교수님께서는 중간고사 대신 ‘한국경제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전망’에 대한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비판까지 곁들인다는 게 경제학도 3학년으로서는 조금 벅찬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성공의 기쁨도 큰 법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습니다.[신중히 세운 계획]먼저 대주제를 정하기 위해 무슨 자료가 필요한지 정리를 했습니다. 당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던 국제유가급등, 원화강세, 북한핵실험문제,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구조 문제에 대한 자료와 데이터를 수집하였고 이 중 당시 핫이슈이자 우리나라에 가장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북한핵문제와 내수와 수출의 구조 문제를 대주제로 정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앞서 정한 두 주제에 대해 소목차를 세우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수집한 자료와 연구소 보고서를 참고, 분석 해가며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된 생각을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검토를 받으며 날카롭게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너무나도 큰 성취감]신중한 계획과 예리한 분석력, 그리고 성실한 자세로 근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한 결과, 저의 레포트는 교수님께서 1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을 호명하시며 극찬을 해주시는 값진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최선이라는 경험에 좋은 결과까지 더해져 성취라는 최고의 기쁨을 얻었던 날이었습니다. GS칼텍스에 입사하게 된다면 저와 GS칼텍스를 위해 더 큰 기쁨 Energy를 만들 것을 약속합니다.5) 본인이 GS칼텍스에 꼭 입사해야 하는 이유와 지원 직무를 위해 했던 노력, 그리고 GS칼텍스에 입사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작성해주십시오.(2800)[짝사랑에게의 고백]저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양 볼엔 수줍은 듯 복숭아 같은 홍조를 띄고, 구김 없는 명랑한 성격에 남자애들은 물론, 동성 친구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많은 친구입니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인 그 친구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주변에 너무나도 잘나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 친구에게 다가간들 눈에 띄기나 할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가꾸었습니다. 그 친구의 눈에 띄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헬스클럽에서 아령을 들며 탄탄한 몸매를 만들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좋아한다는 소문에 1, 2학년 때 바닥이었던 학점을 중상위권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남자가 멋있다고 해서 카투사 지원조차 하지 못했던 영어 성적을 930점 까지 올렸습니다. 활동적이고 다양한 사회경험으로 자신에게 언제든지 본보기가 되는 남자가 좋다는 말에 스타벅스 아르바이트부터 통일부 산하 재단 인턴사원까지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것을 갖추었어도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남자가 최고라는 말에 생전 해보지 않았던 헌혈을 하고, 성동구청 무지개 멘토링에 참여하며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주었습니다.
Friedrich Schiller - Wilhelm Tell*******************1. 작가 소개요한 크리스토퍼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 11. 10 ~ 1805. 5. 9)는 독일 고전주의 극작가이자 시인, 문학이론가이다.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 주의 마르바흐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로 군의관이었고, 어머니는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이었다. 14세 때 영주(領主)의 명령으로 칼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후에 의학으로 바꾸었으며, 이때부터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엄격한 기숙사생활과 구속받던 젊은 시절에 그는 셰익스피어·레싱·호메로스·괴테 등의 작품을 읽으며 습작을 계속하였다.1780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슈투트가르트 연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재학 중에 쓰기 시작한 《군도(群盜)》를 1781년 완성하여, 만하임 극장에서 상연함으로써 커다란 반응을 일으켰다. 이는 독일적인 개성 해방의 문학운동인‘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1789년에는 예나 대학교 역사학 객원교수로도 일하기도 했고 1784년에 《간계와 사랑》을 발표하면서 극작가가 되었다. 1794년에는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괴테가 협력함으로써 친분을 나누었고 그 후 그가 죽을 때까지 문학·사상에서 보기 드문 두 사람의 우정이 계속되어 갔다. 그는 작품마다 새로운 수법을 구사하며 내면적인 자유의 테마를 추구하였으며, 민족극《빌헬름 텔 Wilhelm Tell》(1804)을 마지막으로 바이마르에서 죽었다.실러는 일생에 9편의 완성된 희곡을 집필하였으나, 총괄적으로 구분하면《돈 카를로스》(1787)를 경계로 하여, 그 이전의 작품에는 외적이며 정치적인 자유를 주제로 하여 격렬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그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적 자유를 추구하여 숭고하고 유구(悠久)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는 독일 고전주의문학에서 괴테와 더불어 2대 거성으로 추앙되고 있으며 소를 빼앗아가는 총독의 하인을 때려주고 피신중인 멜히탈은 란덴베르크의 총독이 자기 아버지의 눈알을 빼게 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제 2막 : 조국을 사랑하는 아팅하우젠 남작은 영주들의 총애나 받으려 하고 폰 브라우넥 아가씨에 대한 열정만 불태우며 조국을 등지려는 조카 울리히 폰 루덴츠와 언쟁을 벌인다. 내분이 이는 귀족사회와는 대조적으로 초기 3개주가 옛 동맹을 근거로 새로운 동맹의 맹세를 하기 위해 뤼틀리에 모인다.‘우리는 형제들로 이루어진 유일한 민족으로 곤궁이나 위험을 당하여서도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들은 맹세한다.제 3~4막 : 민족 공동체의 형성에 따라 귀족인 베르타 폰 브라우넥과 울리히 폰 루덴츠가 단합한다. 이 희곡의 핵심적인 사건인 사과쏘기 장면에서 총독의 폭정은 최고조에 달하며 그 반격을 유발한다. 슈비츠와 우리 주의 총독인 게슬러는 장대에 모자를 매달아놓고 행인들에게 인사를 강요한다. 텔은 이를 지키지 않아 아들 발터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쏘라는 게슬러의 명을 받는다. 결국 사과를 쏘아 맞히기는 했지만 그가 두 번째 화살로는 총독을 쏘려고 했다는 죄로 체포되어 이송된다. 호송 도중 탈주한 텔은 폭압 통치의 화신인 게슬러를 살해하게되고 텔은 이 거사를 하기 전에 긴 독백을 통해서 살해의 동기를 성찰한다.제 5막 : 민중과 귀족들이 힘을 합하여 봉기한다. 집으로 돌아온 텔은 친족 및 황제 살해범인 파리치다와의 대화에서 그와 자신의 행동의 모티브가 다른 점을 확실히 하며 파리치다에게는 속죄의 길을 가라고 권합니다. 동맹의 동지들은 정치적인 해방과 함께 인류 역사에 자유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한다.? 내용 해설실러는 전생애에 걸쳐 9편의 희곡작품을 썼는데 그 중에서 6편이 역사극이다. 그리고 빌헬름 텔은 이 6편의 역사극 중에서 비극적 결말을 지니지 않는 유일한 희곡이며 또한 실러의 마지막 작품으로 실러의 역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유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나타낸 작품이다.빌헬름 텔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반영하고 있는데 프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이 유혈혁명에 이은 독재와 공포정치로 이어진 것과는 달리 작품 속에서 스위스 민중봉기는 절제와 관용 속에서 이루어진 무혈혁명이다. 또한 츠빙 우리 파괴 장면은 평화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황제 살해 사건은 실제로는 봉기 이전에 발생했으나, 작품에서는 민중봉기 이후 일어난 사건으로 처리함으로써 텔의 게슬러 살해에 대한 정치성을 배제하고 있다.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러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자연적 질서가 독재자인 오스트리아의 태수 게슬러의 침입으로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꾀하는 3주)의 민중과 주인공인 텔의 노력, 그리고 이를 통해 일시적으로 파괴되었던 그들의 전원적인 사회와 자유를 다시 쟁취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유 쟁취의 과정은 이 작품에서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억압받던 스위스 민중이 자신들의 옛 자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동맹을 결성하는 ‘뤼틀리 맹약’장면과 순수한 자연인으로 살기를 원하던 텔이 아들의 머리에 활을 쏘아야하는 극한 상황이 대두되는 ‘사과쏘기 장면’을 계기로 혁명에 동참하기까지의 사건, 즉 텔의 행위가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각기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해오던 민중의 행위와 텔의 행위가 사과쏘기 장면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마침내 자신들의 자유를 찾기 위한 혁명이 발발되고 자유를 쟁취하게 되는 것이다. 실러는 이 책에서 텔 전설을 소재로 사용하여 스위스인들의 독특한 민족성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전개시켜나가면서 자신의 역사관을 피력하고 인간과 역사 간의 대립에서 빚어지는 현상, 즉 이원성의 대립(자유와 독재, 개혁과 보수, 구세대와 신세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속에서 점차로 평화적인 균형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나폴레옹에 대한 해방전쟁 이후 실러는 자유사상의 전파자로 칭송되었고 당시에 정치적 소요에 가담하였던 대학생 연합회에서는 빌헬름 텔이 항상 인용되었을 만큼 많은 영향을 미쳤슈타우파허:(음성을 높이면서)“아들은 놓쳤지만 네놈은 잡았다!”하며 그를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뾰족한 쇠꼬챙이로 눈알을 후벼파도록 했답니다.발터퓌르스트:자비로우신 하늘이여!멜 히 탈:(뛰어나온다) 눈알을 후벼팠다고 말씀하셨나요?-중 략-멜 히 탈:결코 못 본다! 더 이상 결코 못 본다!(그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잠깐 동안 침묵하다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몸을 돌리고 부드럽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 눈의 시력이란 고귀한 하늘의 선물이로다. 모든 존재는 빛으로 살아가고, 모든 피조물은 식물조차도 기꺼이 빛을 향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분은 밤 속에서, 영원한 칠흙 속에서 더듬으며 앉아 있어야 되다니... 풀밭의 따사로운 초록색도, 꽃의 광채도, 황혼의 햇빛을 받아서 붉게 빛나는 만년설도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상쾌하게 하여 드리지는 못하겠구나.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냐 하지만 살아 있으면서 못본다는 것은 불행이지. 왜 나를 그렇게 가여워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십니까? 저는 두 눈이 멀쩡하지만 아버지에게는 하나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찬란하게 눈이 부실 정도로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바다에서 단 한 줄기라도 드릴 수가 없어요.멜히탈의 아버지가 아들의 사소한 실수로 두 눈을 잃게됐다는 것을 발터 퓌르스트의 집에 숨어있던 멜히탈이 슈타우파허에게서 듣게되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는 장면눈을 잃었다는 것은 자연현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폭군들에 의해 하늘이 만든 만물이 손상되는 즉 신의 영역의 침해를 의미하는 것.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들로서는 이런 자연의식과의 단절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 것석수 장인:당신들의 금으로... 당신들에겐 모든 것이 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지. 당신들이 어린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를, 아내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왔어도, 그리고 이 세상에 비탄을 가져왔어도 금으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시오! 당신들이 오기 전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었소. 당신들과 함께 절망이 들어왔소.아팅하우젠:낯선 것충고하건데 단번에 사과를 쏘아 맞히도록 잘 겨냥하여라. 만약 못 맞히면 그대의 목이 날아갈 것이니라.(모두가 놀라는 표정이다)빌헬름 텔:나으리, 무슨 끔찍스러운 일을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제 자식의 머리에서 안됩니다. 정말 안됩니다. 나으리, 그런 생각을 않으시겠지요. 자비로우신 하느님 이 일을 막아주소서. 그런 일을 아비에게 진심으로 요구하시지는 못하실 것입니다.게 슬 러:그대는 저 소년의 머리에 사과를 쏴서 맞히도록 하라. 나는 그것을 요구하고 원하는도다.빌헬름 텔:나보고 내 자식의 머리에 활을 겨누라고? 차라리 죽으렵니다.게 슬 러:너는 활을 쏘던지 아니면 네 아들과 같이 죽어야 된다.-중 략-슈타우파허:(소리친다)사과가 떨어졌다!뢰셀만:소년은 살아있다!많은 외침:사과에 맞았다!-중 략-게 슬 러:너는 두 번째 화살을 뽑았다. 그럼, 그렇고말고, 내가 다 보았다. 그게 무슨 의도였느냐?빌헬름 텔:좋습니다, 나리 저의 생명을 보장하셨으니 진실을 바로 말씀드리도록 하지요.(그는 조끼에서 화살을 빼어들고 총독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만일 나의 사랑하는 아이를 맞췄다면, 이 두 번째 화살로는 당신을 관통시켰을 것입니다.이 장면은 가장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장면으로 이전까지 텔은 자연그대로 소박한 자연인으로 생활한다. “모두가 조용히 머물러 있으면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평화가 주어지지요”라고 말하는 텔은 뤼틀리 동맹에도 가담하지 않았는데 이런 소박한 자연인인 텔이 게슬러에 의해 행동하고 사고하는 인간으로 변한다. 텔이 잡혔다는 것은 나라전체의 체포를 의미하며 이러한 장면은 텔과 민중의 행위를 변화시키고 따로따로 행동하던 민중과 텔의 행위를 하나로 모으게 된다.빌헬름 텔:너의 계산은 하늘과 하거라 총독이여. 너는 사라져야 된다. 너의 시간은 끝났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악의 없이 살아왔다. 나의 무기는 숲 속의 동물들만 향해서 겨누었고 살인할 생각은 없었다. 너는 나의 평화를 깨뜨렸고 경건한 사고방식의 젖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의 )
- -프랑스 혁명과 빌헬름 텔소 속학 번학 년이 름Ⅰ. 서 론프랑스 대혁명과 빌헬름 텔. 이 둘을 얼핏 보기엔 그냥 아무 상관없는 사건과 책 이름인 것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혁명과 자식 머리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을 쏘아 명중시켰다는 어릴 적 동화책으로 많이 읽었던 친숙한 이야기. 하지만 빌헬름 텔과 프랑스 대혁명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빌헬름 텔의 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에게 프랑스 대혁명이 미친 사상과 영향에 대해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작가가 빌헬름 텔이라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내용을 알 수 있다.독일 고전주의의 양대 산맥 중 한명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빌헬름 텔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Ⅱ. 본 론1. 프랑스 대혁명프랑스 대혁명은 자유와 평등, 박애 사상을 외치며 1789년 7월 14일부터 약 5년에 걸쳐 일어난 시민혁명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 사회는 봉건적 신분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때 지배층은 전체 인구의 약 1%였음에도 불구하고 전 국토의 40%에 달하는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모든 관직 및 요직은 독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99%의 제 3계급 즉, 평민과 농민, 상공시민들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발언권은 전혀 갖지 못하였으며 여러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특히 시민계급은 재력을 축적하여 지배층에 대항할 힘이 있었지만, 신분적인 구속과 절대주의의 통제로 자유로운 발전을 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상공업자와 농민들 간에 사회를 개혁하려는 기운이 조금씩 싹트게 되었다.결국 당시 미국 독립전쟁지원으로 파산 상태에 이른 국가의 재정 문제가 계기가 되어,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시민계급 사이에서 혁명의 열기가 불타올랐고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미국 독립의 성공은 그들을 더욱 크게 자극하여 마침내 1789년 7월 14일 약 1만 명의 시민이 시의 동부 요새이며 정치범을 수용하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진압을 위해 달려온 군대도 시민의 열렬한 열기에 위압되어 감히 손을 쓰지 못하였고 성은 함락되어 성내의 장병은 무참하게 살육 당하였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과 함락은 순식간에 지방으로 전해져 각지에서 격렬한 혁명운동이 시작되었다.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기본이념으로 한 이 혁명은, 귀족 중심의 봉건체제와 전제 정치를 타도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근대 자본주의로의 길을 개척하였다.2. 프리드리히 실러의 역사관처음 프랑스 혁명의 발발을 보고 프리드리히 실러는 그때 당시 대부분의 독일 지식층이 그랬던 것처럼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실러는 이 혁명을 통해 인간의 진보와 역사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였다.그러나 혁명을 통해 공화국을 세웠으나 유혈혁명과 이어지는 폭력과 독재로 인해 변질되어 가는 프랑스를 보고 혐오감을 나타내며 혁명을 옹호했던 자신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실러는 프랑스 혁명의 경험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의 모든 힘을 발달시킬 수 있는 자유의 상태에 이르려면 외형적인 국가체계에 관한 문제 보다 먼저 그러한 자유에 인간이 내면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실러는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혁명의 자유원칙에 그만큼 성숙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의 원칙과는 달리 무질서와 폭력으로 변질되었다고 본 것이다.실러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인간은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정신적 자유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의 발전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내면적인 성숙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인간의 내면적 성숙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진실한 자유와 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가이념의 구현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유혈과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실러는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에서 볼 수 있는데 인간의 감성을 대표하는 감각충동과 이에 대비되는 인간의 이성을 대표하는 형식충동, 그리고 이 두 가지 충동이 조화를 이루는 유희충동은 미적 감각을 나타내며 이러한 미적 감각을 기르는 미학적 교육을 통해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통한 인간의 성숙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역사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창조적인 자기 발전이 곧 역사발전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하였다.3. 프랑스 혁명과 빌헬름 텔프랑스 혁명을 경험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사상은 그의 저서인 빌헬름 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혁명을 지지하는 파리 시민들은 모두 붉은색, 흰색, 푸른색의 3색 띠를 두른 모자를 썼는데, 이것이 바로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되었다. 작품 속에서도 막대기 위에 세워놓았던 모자는 전통적인 독재와 압제정치의 상징이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민중들이 자유를 쟁취한 이후, 모자를 흔듦으로써 자유를 상징하게 된다.작품속의 뤼틀리 동맹은 처음에는 귀족들의 참여 없이 순수하게 민중들로만 이루어지다가 마지막에 귀족들도 민중들과 손을 잡고 혁명을 완수 한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귀족들도 민중과 평등하게 지낼 것임을 약속한다. 이는 프랑스 혁명이 쟈코뱅당의 독재와 전제정치로 이어진 것과 상당히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극중에서 주인공인 빌헬름 텔은 처음에는 혁명 속에서 배제되어 있는 듯 하다가 사과 쏘기 장면과 그 이후 게슬러를 살해하면서 혁명운동에 참여하여 민중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여기서 먼저 실제로는 황제 살해 사건이 먼저 일어났음에도 작품에서는 나중에 일어난 것으로 하였고 민중들이 계획한 혁명도 텔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구성하여 텔의 게슬러 살해에서 정치성을 배제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타난 혁명은 잃어버린 자연 질서의 회복, 즉 기존의 것의 재창조를 의미하며 자유, 평등, 박애를 실현하기 위한 민중운동을 의미하고 있다.
국 제 경 제 관 계국제경제관계 REPORT소 속학 번성 명1. 내가 생각하는 한국경제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전망작년(2006년) 한국경제는 이란 핵문제 같은 국제 정세의 불안과 미 휘발유시장에서의 공급 차질 우려라는 악재로 국제유가가 72.2달러까지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까지 도달했던 국제유가 상승과 2006년 5월에는 1997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인 930원 선이 무너지며 원화강세현상, 현대차와 기아차, 포스코 건설 같은 강성 노조 등 각종 악조건 속에서도 2005년보다 나은 성과를 일구어 냈다. 수출은 4년 연속 두 자릿수라는 경이적인 증가세를 달성하였고 기업들은 그동안 쌓아온 품질경쟁력으로 원고 현상을 이겨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1/4분기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점점 하향하여 초기 6%대의 성장률을 지켜내지 못하고 4%대에서 끝나고 말았다.우리나라의 문제점으로는 먼저 북한의 핵문제를 들 수 있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인들과 내국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북한은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 한 후 6일 뒤인 10월 9일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핵실험 발표 이후 며칠간은 금융시장이 동요를 보였지만 이내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북한의 핵보유로 인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는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6자회담 중 이루어졌던 2.13 합의(북한에 대한 중유 제공과 북한의 핵시설 폐기)가 기한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지금까지 북한의 행동에 비추어 봤을 때 언제 모르는 척 할 지 알 수 없으므로 아직도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언제든지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두 번째로 내수와 수출의 선순환구조의 단절을 들 수 있다. 2006년 상반기에 우리나라는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나 하반기에는 4%대로 떨어졌고 더군다나 일 년 내내 수출이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며(조선업은 사상 최대의 호황 이였다.) 호조를 보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상승세가 이어지지 못한 것은 내수가 경기를 견인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한국경제의 성장기반이 튼튼하지 못함을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수출이 증가하면 기업은 투자를 하고 투자를 하면 일자리의 증가로 고용이 증가하고 이로 인한 소비가 증가하는 순환구조를 띄어야 하는데 1997년 IMF 사태이후 수출의 호조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기업의 내부 유보자금으로 쌓아두고 있는게 문제다.한편 수출물품의 구조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가 없는데 예전의 자동차나 중공업, 섬유, 화학 산업보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IT부분의 수출 증가로 수출에 따른 산업 연관 효과가 약화되어 수출로 인한 생산 증대에 비해 부가가치 확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또한 IT는 필요인력도 타 산업에 비해 낮은데다가 앞으로 더욱 낮아지는 추세여서 IT에 의존하는 수출은 고용 창출 효과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할 수 있다.기타 다른 이유로는 고유가로 인하여 구매력이 하락하여 소비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이 있었고 일자리 창출의 부진으로 소득 창출 능력 부족하였다. 또한 예전 구조조정 등의 과정을 통해 예전처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고용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보다는 저축을 하려는 의식이 널리 퍼져있고 계속되는 사교육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과열로 인해 생산적인 곳에 돈이 쓰이지 못하고 있으며 고령화와 부실화된 국민연금 등으로 인한 불안한 노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출과 소비의 연결고리가 약화되었다고 생각한다.내가 생각하는 한국경제의 전망은 아무래도 세계경기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경기 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음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조금 하향하거나 작년과 같은 성장률을 보이게 될 것 같다.글로벌 증시의 동반급락을 이끌어 냈던 미국 경기의 연착륙으로 인해 불안감이 일단 일단락되었다. 작년보다 조금은 안정되겠지만 그래도 재작년에 비해 현저히 높은 국제유가와 올 초 한번 급락하기는 했었지만 여전히 원화 강세는 올해에도 계속 되어 수출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이는 작년부터 이미 대두 되었기에 지금에 와서 경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가 원만히 타결되어(물론 2.13합의를 이행하는지 더 지켜봐야하겠지만) 북한 핵 문제로 인한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또 최근의 금융시장 추이를 볼 때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해외 경기변동이나 사건 같은 외부 리스크에 의한 충격파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또한 대통령선거가 올해에 잡혀있는데 이는 앞으로의 한국경제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되리라 생각된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각 당의 대통령 후보자들은 향후 5년간의 정책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게 되므로 선거에서 정책 혼선과 갈등이 심화될 경우 경제의 안정성은 저하될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마지막으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한?미 FTA의 타결로 우리나라는 미국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됨으로써 교역증진 및 자원 배분의 효율화와, 투자환경 개선에 따른 외국인의 투자확대와 민간부분 소득증대 및 투자효율 증가로 인한 국내투자의 증가, 경쟁촉진, 신기술 도입 및 시스템 선진화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소득 증대와 물가 안정 등을 통한 소비자 후생이 증가하여 우리 경제 성장과 후생 증대에 기여할 것이다.2. 한?중 경제협력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전망한국과 중국은 1949년 10월 중국이 모든 친미국가와 외교 단절을 하면서 북한만을 유일한 합법 국가로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한지 약 43년만인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수교를 맺을 당시 50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던 한국과 중국의 교역규모는 2003년 노무현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합의한 5년 내(2008년) 교역규모 1,000억 달러를 달성키로 약속 했던 것을 무려 3년이나 앞당겨 2005년 약 1,005억 달러로 약 20배 이상 증가되었다. 안정적인 정치와 경제우선정치, 수출우대정책, 공업화, 시장화, 개방화, 세계최대의 투자 시장화, 거대한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30년간 평균 9%의 성장률로 급속히 성장하여 2004년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첫 번째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하였고, 우리나라는 중국의 3번째 교역대상국이 되었다.(홍콩 포함 시 4위)또한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 1의 무역적자국이며 우리나라의 중국 투자는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투자 흡입력과 저렴한 인건비, 거대한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대중 투자로 2004년 기준으로 총해외투자 520.1억 달러 중 대중(對中) 투자가 135.5억 달러로 제2의 투자대상국이며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된다. 중국의 대한(對韓) 투자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중국 정부의 해외투자장려 정책과 함께 기술이전 및 한국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크게 증가하리라 예상 된다.그리고 2005년 11 월 한중 정상회담시 양국은 수교 20 주년이 되는 2012 년까지 2 천억 달러 교역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양국 간 경제통상관계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표명하였다. 이처럼 지리적, 역사적, 민족적으로 가까운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더욱 중요시되어가는 가운데 이러한 한중간의 경제협력을 방해하는 문제점을 살펴보자.먼저 중국의 계속되는 역사왜곡으로 인한 반중감정의 확산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의아시아지역 종주국이자 중심으로써의 이미지와 국력을 확보하기 위한 동북공정으로 엄연히 우리나라의 역사인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려고 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감정이 나빠지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문제가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에 악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일반적인 의식은 많은 외침을 받았던 탓에 삼국통일의 승자인 신라보다 고구려에 묘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국민의식 탓에 고구려를 중국에 뺏긴다는 감정이 들 수 있고 반중감정으로 이어져 한중간의 외교관계는 물론 경제관계까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매매춘의 합법화가 정당한 것인가?매매춘은 너무나도 당연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합법화를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매매춘의 합법화는 매춘을 완전히 직업으로 인정하여 국가에서 세금도 징수하고 간섭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매매춘에 대한 법적 대응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지주의나 규제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매매춘을 하는 남녀를 모두 잡아들인다면 정상적인 사회인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매춘 한번 안 해본 남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합법화는 어쩌면 매춘여성의 일시적인 복지를 위해서는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매매춘이 난무한 사회에서 법적인 구속은 단지 매춘여성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쌍방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매매춘에서 매매춘의 금지는 남자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화대를 받는 여자만이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매매춘의 합법화가 곧 매춘여성들에게 자유로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순결, 정절이 그대로 존재하는 억압적인 현실에서는 매춘여성들의 자유로움은 없기 때문이다.매춘의 유형1. 매춘의 대표적인 유형은 매음굴의 창녀이다.이들은 특정지역에서 집단적으로 상주하며 전문적으로 몸을 팔고 펨프나 포주의 보호와 협조를 받고 있는 조직적 전업매춘의 전형으로 우리사회에서도 지배적인 유형이다. 그러나 향락산업의 번창과 함께 다른 매춘의 유형으로 점차 지배적인 매춘유형의 지위를 물려주고 있는 단계이다.(그림설명) 위- 청량리588 / 아래- 이태원‘후커힐’이라 불리는 뒷골목2. 두번째 매춘의 지배적인 유형은 바로 거리의 창녀이다.거리의 창녀는 고객접촉이 쉬운 길거리나, 호텔로비 등의 장소에서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는데 이들은 대체로 비조직화되어 있으며 자영업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는 비교적 그 수치가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3. 세번째 매춘의 유형은 겸업매춘이다.이들은 대개 호스티스나 웨이트리스, 바아걸, 댄서, 스트립퍼 등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겸업매춘여성은 매춘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지만 때에 따라 몸을 팔며 이를 통해서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계층이다.4. 네번째 매춘의 유형은 콜걸이다.여관 및 숙박업소나 여행사 등에 적을 두고 개인적인 연락망을 갖추고 매춘행위를 하는 콜걸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한남동이나 이태원 등 전국의 주요지역마다 보도 사무실에서 집단기거하며 숙박업소를 찾아가는 조직매춘의 한 형태로 전업매춘과 겸업매춘의 중간형이다.5. 다섯째는 부업매춘이다.이들은 상류층을 상대로 독립적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으로 파트타임으로 윤락을 한다는 점에서 콜걸과 비슷하기도 하나 상대하는 남성이 상류층에 한정되어 있고 겸업이 아니라 부업의 형태이다. 또 이들은 주로 고객들간의 소개에 의해 은밀하게 매춘행위를 한다. 전문적 부업매춘여성은 활동이 매우 자율적이고 누구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6. 매춘의 마지막 유형은 잠정적 매춘이 있다.이들은 안마 시술소나 이발소 등의 퇴폐업소에서 면도나 안마와 더불어 잠재적으로 매춘행위에 노출되어 있고 항상 매춘행위의 개연성이 있는 계층이다. 이들은 합법적인 시설과 연계되어 있고 불특정한 지역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수와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도 티켓다방과 인삼찻집은 물론이고 등산로와 유원지 같은 곳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는 담요부대도 있다. 또한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여행사와 연계되어 있는 '닷지(기생)' 매매춘까지 있다.)고속도로를 점령한 박카스, 담요아줌마박카스, 담요아줌마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생계형 매춘의 대표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이들은 왜 ‘박카스 아줌마‘?담요 아줌마?로 불리게 되었을까. 그 배경은 그녀들의 매춘 고객은 고속도로를 수시로 운행하는 화물차 운전기사다. 아마도 특정 직업군(군인을 제외한)을 겨냥한 유일한 매춘형태란 점에서 고속도로 매춘은 특이하다. 아줌마부대라는 점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매춘을 하는 윤락녀들과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은 연령대가 30대에서부터 40대까지로 조금 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