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윤회를 통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나’의 발견- 중국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과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상적 억압을 받는 시대적 상황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희생양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 고대에서 일찍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중앙집권체제 안에서의 ‘나’라는 인간의 주체성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불교가 수용될 그 당시 원래의 유교의 의미를 정치 이데올로기화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私益보다는 公益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지배층의 강요와 그 사회체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존재는 어두운 무의식 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인도를 통한 중국의 불교 유입은 기본 사회체제와 개인의 의식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공(空) 사상, 업보윤회(業報輪廻) 사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업보윤회 사상을 통해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나’의 발견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2. 중국에 업보윤회(業報輪廻) 사상의 유입과 가치관의 변화불교의 업보윤회(業報輪廻) 사상 들어와서 중국인들에게 충격인 것은 윤리의 문제였으며 윤리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윤회업보 사상이 그들의 가치관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그것에 대한 관심과 이질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윤회업보와 유사한 사상이 중국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고대에 감응(感應)사상이 있었는데 특히 天과 人의 관계에 대한 감응을 말한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하늘이 지켜봐서 그 행위에 따라서 하늘이 거기에 보답을 하는 것이다. 일종에 응보설과 업보설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주역 에서는 선행을 쌓은 가정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고 악행을 쌓은 가정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즉, 그 행위에 대한 결과가 일어난다는 인과응보 사상이 있다. 원래 중국에 있던 인과응보 사상은 대부분 인간 자신의 한 생애에 국한되어 있었다.고대의 삼명설(三命說)을 보면 첫째 명을 받고(受命, 수명의 길고 짧음), 둘째 명과 만나고(遭命 , 선을 행하였으나 불행한 응보를 만나는 것), 셋째 명에 따르는 것(隋命, 선과 악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인데, 이 모두는 현세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또 이와 유사한 사상이 있는데 그것이 도가의 ‘氣’사상이다. 氣에 의해서 인간과 천지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된다고 보았으며 氣라는 것도 모였다 흩어지고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또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한다. 그래서 새로운 개체로 발생하며 이것은 전생이라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환생한다는 개념으로 윤회사상과 비슷하다. 윤회사상은 한 개체가 반드시 다음 생애 다시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전생사상은 그렇지 않다. 氣가 흩어지면 내 氣가 다시 모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구성했던 氣 자체는 흩어지지 않는다.불교의 업보윤회 사상이 중국에 이질적이긴 했지만 유사한 것도 있었다. 엄밀하게 보면 중국에 있었던 응보, 감응, 전생 사상과 윤회업보 사상은 구별이 된다. 응보, 감응, 전생 사상은 한 개인의 책임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으로 이야기한다. 감응 사상이나 주역의 내용이 있지만 한 개인의 구체적인 행위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즉. 나의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나의 책임을 묻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불교에서는 철저하게 나의 행위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진다는 엄격한 원칙이 있다. 그런데 감응, 전생 사상에서는 행위와 행위의 결과는 애매한 자세로 이야기한다. 윤리 또는 도덕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원래 불교와 유교 내지 도교에서 이야기 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데 특히 전생 사상도 존재론적 측면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원래 불교의 윤회사상은 존재론적 측면보다는 가치론적 측면, 특히 윤리, 행위의 문제를 따진다. 윤회사상은 내가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는데 전적으로 내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전생 사상의 경우 행위의 문제보다는 당시 인간과 세상의 모든 개체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측면이다. 도가에서 이야기 하는 것들은 윤리적인 문제와 거리가 있으며 개인의 주체적 행위와 그것의 결과보다는 공동체의 문제 속에서 애매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의 윤회업보 사상은 한 개인의 행위, 즉 나의 행위가 그것에 대한 결과로 인해서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큰 자극이 되었다.3. ‘죄의식’을 통한 ‘나’의 발견앞에서 언급했듯이 연기(緣起)나 공(空) 사상은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반면, 업보윤회 사상은 행위의 문제와 관련되어 가치론적 측면에서 말하며 실천적이고 수행론적이며 물리적이다. 공동체 중심의 사회인 중국에 불교가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졌던 불교 사상은 업보윤회설이며 중국인들에게는 이질적인 이론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행위의 결과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인식이 부족했으며 대부분은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이고 계급적인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겼다.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지배계층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아무런 죄의식과 반성의식 없이 대하고 부렸으며, 권력자는 자기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람을 대하고 노비나 천민계층을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여긴다. 이런 사회적 상황을 불교에서는 사회적이고 권력적인 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며 죄의식과 반성 없는 태도를 용납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자신의 행위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다시 말해 그 행위의 결과가 자신의 자식이나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불교 수용 이전에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상이 희박했었다. 자기가 좋은 행위를 하면 우리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가정, 자손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은 자신의 행위의 책임에 대한 회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업보윤회설은 중국인들에게는 무서운 의미였고 업보윤회설이 중국인들의 ‘죄의식에 대한 자각’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지금도 진지하게 업보사상을 접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드시 되돌아보게 되고 죄의식의 자각, 자신의 책임에 대한 반성적 삶을 살아간다.
인위적 가치와 자연스러움- 도덕경 을 통해 본 승자독식 사회 -과목 : 노장철학학과 : 철학과학번 : 200313857성명 : 정진묘제출일 : 08. 12. 02.1. 들어가며“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매년 들어봤을 것이다. 꿈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나중에 졸업하고 사회 나가서 뭐해서 먹고 살래?”일 것이다. 현재 2008년 대한민국의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이나 길면 30대 초반까지 먹고 살 걱정에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다. 초등학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을 하는 일이 발생하고 중?고등학생은 학교를 다니는지 학원을 다니는지 구분을 할 수 없다. 대학교 안에서는 매년 올라만 가는 등록금에 공부에 매진해야 할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다른 이는 등록금 납부할 돈이 없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학교 밖 사회에서는 비정규직과 최저생활을 하지 못해 허덕이는 사람들의 문제 등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말하는 ‘상위 1퍼센트’를 제외하고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사회’로써 경쟁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사회 인식이 굳어져만 간다. 그리고 살아남아 강자가 된 사람들은 그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고서 자신처럼 올라설 것을 강요한다. 이러한 생존투쟁을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이 세상에 나와서 하고 싶은대로 살다가 죽어도 짧은 인생인데 하고 싶은대로 하기는커녕 그들이 사는 세상은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위적 가치’에 몸을 맡기고 적당히 타협할 것을 요구한다. 老子는 ‘인위적 가치’를 사회의 惡으로 규정하고 無爲自然을 주장한다. 본론에서는 ‘승자독식사회’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노자의 道德經 을 통해 ‘승자독식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2. 승자독식사회 - ‘더 이상 빠져 나갈 수 없다’“‘승자독식’이라는 말은 1 온 양극화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대한민국은 1970~8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과 끝을 모르던 성장이 1997년 IMF 경제위기로 인해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기던 사람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상위 10퍼센트의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게 된다. 또한 IMF 경제 위기는 기업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고 많은 감원과 명예퇴직 등 덩치 줄이기가 시작됐다. 그러한 상황은 무한 자유경쟁 시장을 낳았고 대한민국을 경쟁의 전쟁터로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승자독식사회 라는 책에서 ‘승자독식사회’의 원인과 멈추지 않는 이유를 운송비와 관세의 하락, 정보혁명, 국제어가 된 영어, 생산 방식의 혁신, 싸움을 붙이는 사회 현상 등으로 들었다. ‘승자독식사회’의 원인들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세계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원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싸움을 붙이는 사회’이다.미국 스포츠계는 가장 뛰어난 선수를 둘러싼 구단주들의 경쟁을 금지하는 조항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야구선수인 앤디 메서스미스가 유보조항(reserve clause: 트레이드나 계약해지가 없는 한, 선수는 자기 마음대로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에 도전하면서 이런 조항들은 하나씩 폐기되었다. 오늘날 모든 프로선수들은 제한적이나마 자유계약권을 갖는다.)현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야구, 농구 등 자유계약권을 갖는다. 자유계약권은 구단은 최고 기량의 선수를 영입해 팀 전력 강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고 선수로써는 능력을 인정받는 점, 다른 선수들의 동기 부여라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특급 선수들의 경쟁이 아닌 모든 선수들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겠다.단순히 ‘승자독식’은 스포츠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승자독식’은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나는데 잘 알고 있다시피 미국의 경우 대선이나 선거 때 주(state)에서 승리하면 그 주(state)의 표를 모두 가져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영화, 출판, 자동차 등 경쟁이묘한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우위를 점한 쪽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 예를 들자면 흥행보증 수표라 불리는 영화배우는 그렇지 않은 영화배우들보다 영화 한 편으로 몇 십억의 이익을 올리고 그로 인한 인기가 CF, 드라마 등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한다.‘승자독식’ 시장은 승리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희망을 부여하고 패자들을 끌어 모으며 규모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서 제 2의 인생을 살아야지’라는 ‘희망의 마약’은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1등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2등은 필요 없다. 오직 1등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승자는 보이지 않고 패자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패자에게 구원의 손길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패자들 속에서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서로를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이 났다.386세대가 말하는 ‘대학의 낭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은 대학의 달콤한 기대를 버리고 고등학교 때 지겹게 했던 공부와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학과 공부가 아닌 취업을 하기 위한 학원을 다니는 듯하다. 과 활동은 전무하고 학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력서 공란을 없애기 위해 토익, 공모전, 어학연수 등을 준비한다. 자기계발을 위해 그렇다면 쓸데없는 노력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고 그 구멍을 통과해 보고자 쏟아 부은 노력은 그에 비해 터무니없는 대가로 돌아온다. 취업만이 살 길이고 나만 벗어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개인주의를 넘어 극한의 이기주의를 낳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구의 책임인가? 어떻게 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3. 老子의 無爲사상 - 자연스러움에 대하여재주 많은 자를 떠받들지 않아야 백성들이 (재주를 가지고)다투지 않을 것이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며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아야 백성들의 뼈는 강하게 해주며 오직 백성들로 하여금 앎도 없고 욕심도 없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 있는 자를 필요치 않게 한다. 무위無爲를 행하니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도다.)도덕경 3章은 ‘승자독식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꼬집고 있다. 도덕경 3章에 의하면 ‘승자독식사회’는 재주 많은 자를 떠받들고 있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겨 인간의 욕구를 자극시켜 경쟁을 강요한다. 사회는 상위 1퍼센트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재력을 떠받들고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조장하고 정부는 그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다. 국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서민들은 이미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도덕경 3章에 등장하는 무위無爲는 老子哲學의 중요한 개념이다. “老子는 어떠한 사물도 모두 자신의 상황에 알맞게 변화하고 발전하므로 굳이 人爲로서 제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무위無爲는 개체의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강압이나 외압에 의한 것을 부정한다. 무위無爲는 곧 ‘自然’의 다른 차원의 이름으로 일컬을 수 있기에 흔히 無爲自然이라 하는데 自然은 우리 눈에 보이는 객관적 세계가 아닌 ‘저절로 그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自然이라는 개념은 無目的?無意志的으로 일체사물을 생성?운용하는 道의 기능을 나타내주는 언어로, 자연스러움이라는 무위無爲의 상태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老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人爲가 작용하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 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무위無爲가 작용하는 사회는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단적으로 대한민국은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는 사회인가?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당당하게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다. 老子의 사상의 출발은 전쟁으로 살육이 난무하고 혼란했던 春秋戰國時代였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뿐이지 그 당시의 사회상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무의미한 경쟁을 조장하면서 그 속에 몰아넣으면서 그 안에서 도태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능력이 그것 밖에 않 돼서 그래. 조금 더 노력을 하든지 정 않는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상위 1퍼센트나 대한민국에서 알아준다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거나 백화점에서 한 달에 1천만 원씩 소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혹자는 사회를 돌아보면 얼마든지 희망적이고 밝은 미래를 위한 것들이 많다고 말을 한다. 삶이 희망적이라거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기본적 바탕이 깔려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당장 오늘 살기가 힘들어 아등바등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내일은 더욱 희망적일 것이라고 하는 말은 그 사람들을 달리고 있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4. 人爲的 가치 속에서의 자신을 안 다는 것人爲的 가치는 누가 기준을 정했는지도 모르고 단순히 그것에 따라야 하는 획일성 강요한다. 그리고 사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도망치는 것으로 단정 짓는다. 이러한 획일적 가치는 사회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를 야기한다. 주로 ‘승자독식사회’로써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개인적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人爲的 가치로 획일화 되어진 사회에서는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로 인해 상실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인간성과 주체성의 상실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는 개별성과 특별성은 무시된 채 정해진 틀 안에서만 살아갈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산다.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같이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서’라는 말들로 人爲的 가치에 가려져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우선 人爲的 가치에 가려진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老子가 강조한 自然처럼 꾸밈없는 삶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것 말이다. 자연은 획일적 가치를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며 이것은 인간 사회가 닮아가야 할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무모한 경쟁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승자에게 밀려.
주역의 자연 생명사상1.들어가는 말생태학의 문제가 동서 철학의 중심 주제로 자리 잡은 오늘날 동양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주역의 자연 생명관을 고찰한다는 것은 우리 전통 사상의 생태학적 자연 사상을 반추해 보는 것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자연 생명, 자연 환경의 생태학적 문제가 동서 사상계에 중심 화두로 자리 잡고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생태학적 위기가 세계적으로 오히려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은 파괴의 정도가 이미 자연의 복원 능력을 넘었고 문명자체의 내부적 근본 요소가 자연성과 원천적으로 대치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본문은 먼저 自然, 天地, 萬物의 의미와 주역에서 말하는 생명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생명창생의 주체가 되는 天地乾坤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생명창생의 원리와 운동에 대해서 이차 자료보다는 주역 원문에 근거하여 차례로 논하겠다. 이어 역전에서는 생명이 도덕적 善으로 이해되어 가치론적 자연관으로 자리 잡았음을 설명하겠다. 본문에서 천지건곤과 생명의 원리로서의 感應槪念, 그리고 생명운동으로서의 一陰一陽에 대한 내용 전개는 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씩 서로 겹친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 이는 분산 기술된 역전의 질박한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체계적으로 기술해 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였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2. 自然. 天地. 萬物의 의미“時空中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 같은 生命을 가지고 있으며, 宇宙는 바로 끊임없이 生生하고 쉬지 않고 굳세게 運行하여 時時로 움직이면서 변화하고 있는 大生命이다.”라고 陳立夫는 말한다. 方東美도 中國思想이란 한마디로 生命秩序의 思想이라고 말한다. 周易은 바로 이러한 生命秩序의 이치를 연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전의 자연 생명관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이라는 개념어가 역전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역의 경 본문이나 역전에는 자연이라는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주역뿐만 아니라 선진시대 유가문헌에서는 자연이란 용어가 위에서 말한 단 한 가지 의미로만 한정되어 사용된 것은 아니고 道를 형용한다든지, 사리의 당연한 이치가 순리대로 진행되는 것 혹은 현대적 의미에서 인간의 작위적 의지가 가해지지 않는 상태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중 역전의 사상적 시각에서 중요한 의미는 아무래도 物化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그 자체로서 완벽한 조화의 기능을 가졌다는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의미다. 자연이라는 용어대신 사용된 개념어를 찾아야 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유가 경전의 용어는 천지 혹은 만물이라는 개념이다. 諸典籍에서 천지라는 용어는 단순히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궁극적 원리나 최상의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자연은 천지 안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만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경의 경문 즉 괘. 효사에는 천지 만물이란 용어가 보이지 않는데, 역전에는 천지만물이라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역전의 주된 내용 중의 하나가 천지 만물 변화론이다. 이 천지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 생성에 대한 주장에서 역전의 자연 생명관이 드러난다. 역전에서의 천지는 구체적으로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늘과 땅으로 대변되는 개념들을 나타내는 추상관념이기도 하다. 천지는 구체적인 만물로 나타나고 만물은 다시 천지로 환원된다. 천지는 생명의 원천이 되고 만물이 생장하는 터전이 된다. 자연이 천지를 의미할 경우 이는 궁극적 존재 혹은 이법, 법칙이라는 의미이므로 이런 천지자연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어떤 다른 원인이나 절대자에 의해서 생성 혹은 창조된 것이 아닌 스스로 그러한 존재라는 의미를 갖는다. "천지가 지닌 큰 덕은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다(天地之大德日生).", "만물을 낳고 또 낳음을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 [生] 혹은 [生生] 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삶. 생명과 생명을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하므로, 위 구절들은 주역의 작자가 생명을 乾坤으로 대변되는 天地 作用의 所産으로 또 생명창생을 유기체적 작용으로 파악하여 生生의 작용을 易이라 불렀음을 알 만물이 생성된다고 하면 天地를 생명창조의 주체로 여기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역에서 乾坤은 음양의 대표적 상징체로서 天과 地를 의미하므로 천지와 건곤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생명이 천지로부터 創生된다면 이는 곧 천지가 전체 생명의 궁극적 근원으로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乾은 위대한 시작을 맡고 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 乾은 쉬움(易)으로서 시작을 맡고 坤은 간단함으로써 완성한다.……쉽고 간단해서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니,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면 올바른 자리가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이 繫辭上傳 1章의 끝 문장에 대한 韓康白(東晋의 易學家)의 註에서 “천지의 道는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니(不爲) 잘 시작하고 애쓰지 않으나(不勞) 잘 완성하므로 쉽고 간단하다.”고 한 것을 새겨 보면 우리는 여기서 하늘과 땅의 길, 즉 自然의 이치는 자연스럽게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역전에 의하면 "천지의 가장 큰 덕은 생명을 낳는 것이다." 천지의 큰 덕이 [생]이라는 것은 천지의 가장 중요한 功能이 生作用, 즉 생명의 산출에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생] 이란 것은 生生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체 생명의 끊임없는 영속적 창생을 뜻한다. 이 生生이란 관점은 주역을 관통하는 중심원리 중의 하나인데, 주역 64괘의 순서도 개체생명이 生生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배열되어 사물의 생성 순서에 맞게 배열되어 있다. 즉 乾卦로 시작하여, 사물이 최초 창생을 의미하는 屯卦로 점진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蒙卦로 성장에 꼭 필요한 여러 요소의 공급을 상징하는 需卦로 순서가 차례로 이어지는 것은 주역의 작자가 괘 배열에서 생명의 창생과 생장이라는 시간성을 크게 의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즉 64괘 자체가 만물의 생성과정이라는 생명론의 입장에서 순차적으로 배열된 것이다.2) 생명창생의 원리- 감응주역에서는 乾을 "大生", 坤을 "廣生" 이라 칭하였으니 乾이 천지생명의 시작이 되는 창생력이며 이 새 생명의 싹을 키워 나가는 역할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렇듯 주역에서는 생명의 의미. 의의와 같은 생명에 대한 의미규정이나 생명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생명 현상을 끊임없는 변화로 인식하여 [易]으로 묘사하고 생명변화 과정의 주체가 되는 천지건곤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역경의 否卦, 歸妹卦에서 음양의 두 기운이 만나도 인온. 감응되지 않는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음양의 감응에 일정한 원칙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건곤은 각각 자시와 자생하는 것으로 건은 생명을 베풀고 (施) 곤은 이를 양육하는 것으로 음양의 상호작용 시 陰上陽下의 모습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드러난 형태로서는 乾上坤下로서 天尊地卑지만 功能上에 있어서는 陽인 乾이 자신을 낮추어 陰인 坤을 받들어야 비로소 원만한 감응이 있게 되고 생명의 창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역경에서 개체 생명의 창생은 단독, 고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두 가지 두 가지 對等 요소의 변화과정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나아가 생명의 형성이후에도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상호 共存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주장된다. 역에서 어떤 상반된 두 존재가 있을 경우 이를 대립과 부조화, 모순, 양자택일의 투쟁 관계로 보지 않고 상호대등의 화합, 조화, 상생의 관계로 파악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음양 각각의 독존의 존재형식이 아니라 공존이 우주생명 창달의 근본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즉 개별적으로 독립화 된 원자적 개체상태가 아닌 상호공존의 원리와 타자에 대한 열린 마음이 주역적사고의 바탕에 깔려 있다.3) 생명창생의 운동- 일음일양일음일양은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한다는 의미와 음양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의미의 두 가지로 이해 할 수 있다. 음양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한번 음하고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운동이 천지생명의 운동이고, 이것이 궁극적인 道의 운동이며 이 운동에 의해서 모든 존재가 생성되게 된다. 즉 일음일양의 운동을 떠나서는 생명창달의 變易이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생명창생의 과정을 "生生"으로 들어가면 음적인 것이 그 자리의 뒤를 이어 생성 활동하게 된다. 또 이 생성 활동을 음양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음양의 동시성이 강조된다. 이런 생명의 쉼 없는 왕복 순환운동을 자연사나 인간사에 적용시키면 무엇이나 극단에 이르게 되면 그 극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反(돌아 감)운동에 의하여 반대쪽으로 운동하게 된다는 易理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이 易의 原理를 自然의 運行과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利가 있으면 害가 있고, 得이 있으면 失이 있기 마련이고 그 반대로 失이 있으면 得이 있기 마련이다. 萬物은 일정한 限界空間에서 무궁한 循環生成을 해왔다. 만물을 全體大用의 커다란 고리 속에서 각기 자기를 조절하여 상호관계를 형편과 조화로 이끌어 가는 균형과 조절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것이 이러한 능력을 상실하면 다른 것과의 交感이 두절되고 나아가 변화에 적응할 수 없게 되고 종내에는 괴멸하고 만다. 이렇게 볼 때 주역이 기본 원리인 변화는 단순한 생성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창생을 뜻하고 또 중단 없는 생명의 자기발전, 자기창조를 의미한다. 천지의 이런 이치는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다. 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천지의 道며 일정한 것은 영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 주역이 관점이다. 즉 주역에서 우리는 생명의 발전과 나아가 그 생명의 자기발전을 소중히 여기는 적극적 가치 부여와 존중을 본다. 주역의 생명은 일반화시킨 추상적인 생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체의 생명으로서 경험적 현실로서의 생명관에 기초한 우리 존재의 원초적인 모습이다. 또 이 경험적 자연생명은 자기발전을 기약하여 인문생명으로 비약할 수 있는 자기 창조성을 갖춘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주역에서 말하는 천지는 궁극적인 말하는 천지는 궁극적인 존재를 상징 하는데 이 천지는 만물의 창조와 양육을 목적으로 하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어떤 것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태초부터).
한국 불교는 일제 식민지 시대 불교 억압정책에어떻게 저항하였나1.들어가며불교는 고구려를 시작으로 삼국에 유입되어 고려시대까지 호국불교라 불리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의 건국 이후 줄곧 왕권에서 배제된다. 종단을 잃고 도성 출입이 금지 되어 포교활동에 제약을 받고 산중 불교가 되면서 불교는 체계성을 잃게 된다. 개항 이후 일본 불교가 들어와 포교활동을 하고 한일합방 이후 식민지 시대가 되면서 일본은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조선을 통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가 생기고 결과 민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널리 퍼져 있는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 그 중에 불교를 선택하고 억압정책을 실시한다. 그로 인해 불교는 통치 수단의 하나로 이용되는 신세에 놓인다. 억압정책은 3.1운동 이후에 조금 완화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정신적 개조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 포교 규칙 등의 불교 억압정책에서 한국 불교의 저항과 의의, 그리고 한계점을 보여주고자 한다.2. 개항 이후 한국 불교개항 이후 외래 종교가 들어오고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한다. 그에 따라 대한제국에서도 불교에 대한 억압이 조금씩 풀렸다. 1895년 일본승 사노 젠레이의 건의에 의해서 도성 출입 금지령이 해제되었고 이로 인해 도성 안에서 포교의 자율권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도성 출입 금지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영향으로 생겨난 군국기무처의 개혁안에는 도성 출입 금지를 해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승려인 사노 젠레이에 의해 먼저 도성 출입 금지령이 해지됨으로 일본에 의해 불교가 산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 불교도들에게 인식되었다. 이후에도 일본 불교는 꾸준히 조선에서 포교활동을 펼치며 세력을 확장시켜갔다. “1902년 대한제국은 사사관리서를 새로 설치하여 궁내부에 소속시키고 사찰과 승려의 관리를 맞게 하였다.”) 그리고 ‘국내사찰시행규칙’을 반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원흥사를 대법산으로 삼고 각 도에 중법산 16개소를 두어 사찰 사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국내 불교의 자주적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 후 일본의 간섭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정부는 관리체제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채 2년 만에 관리서가 폐지된다.을사조약 후 일본은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공포한다. 일본 불교의 포교활동을 제약하는 듯 보이는 이 규칙은 사실 일본불교의 포교활동을 도와 일본 불교 세력을 후원한다.) 이에 따라 일본불교의 포교활동이 활발해지자 조선의 승려들은 불교의 중흥을 위해 불교 연구회를 창립한다. 불교 연구회는 명진학교를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힘쓰며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만 이 또한 일본 정토종에 지원을 받고 있었다.)3.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 포교 규칙의 공포와 조선총독부의 의도조선 총독부는 조선의 통치 수단의 하나인 불교를 원활하게 통제하기 위해 1911년 불교계에 치명타를 날리는데 그것이 7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진 사찰령의 공포이다. 사찰령은 일본에서도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여 통과 되지 못했던 ‘종교법안’이라는 정책을 조선의 통치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먼저 사찰령의 내용을 보고 사찰령의 악질적 의도를 따져보자.제1조 ; 사찰을 병합 이전하거나 또는 폐지하고자 할 때는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음이 가함. 그 터나 또는 명칭을 변경하고자 할 때도 또한 같음.제2조 ; 사찰의 터와 가람은 지방장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면 전법 포교 법요 집행과 승려 거주의 목적 이외에는 사용하거나 사용하게 함을 얻지 못함.제3조 ; 사찰의 본말 관계, 승규(僧規) 법식 기타 필요한 사법(寺法)은 각 본사에서 정하여 조선총독의 인 가를 받음이 가함.제4조 ; 사찰에는 주지를 둠이 필요함. 주지는 그 사찰에 속하는 일체의 재산을 관리하여 절의 사무와 법 요의 집행의 책임을 맡아 사찰을 대표함.제5조 ; 사찰에 속하는 토지 삼림 건물 불상 석물 고문서 고서화 기타 귀중품은 조선총독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면 이를 처분함을 얻지 못함.제6조 ; 앞 조목의 규정을 위반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또는 5백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재7조 ; 본 사찰령에 규정한 것 이외에 사찰에 관하여 필요한 사상은 조선총독이 정함.(현대말로 고쳤음))사찰령 1조에 사찰을 새로 짓는 경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것으로 조선총독부가 불교를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사찰령을 제정하였다는 것이 허구임이 들어난다. 2조는 독립운동가의 은신처를 미리 차단하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된다. 3조는 사찰의 행정권을 빼앗은 것이고 4조는 원래 조선 불교계의 전통이라면 자율적 선출에 의한 것이어야 하지만 총독부에서 주지를 임명함으로 인사권을 빼앗았다. 이로 인해 본사 주지를 총독부에서 임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일 행위를 주도할 수 있는 주지를 임명하면서 그들을 이용해 수월한 친일 정신의 주입과 통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5조는 사찰의 재산권마저 침해했으며 7조로 인해 사찰령시행규칙을 발표하는 조건을 세운 것이다. “사찰령시행규칙은 주지를 정하는 방법, 전조선의 사찰 가운데 30개의 巨刹을 본사로 지정하고 있으며 3, 4, 5, 6조는 사찰의 주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의 자격, 임기, 면직 사유 등을 규제하고 있으며 7조는 주지는 취임 5개월 이내에 사찰의 재산 목록을 작성해 총독부에 제출함을 명시했다.”)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은 조선의 불교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조선총독부의 막무가내 조치였다는 점에서 비난 받을만하다.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30본사(나중에 화엄사가 본사로 승격됨에 31본사가 됨) 주지들의 권력 독점을 초래하고 본사와 말사간의 불신과 대립을 야기 시켰다. 사찰령은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그 골격이 유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불교계의 많은 폐단과 친일 행각이 일어났다. 이러한 일들은 당시 조선 불교계가 사찰령이 승려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주적 발전을 저지하는 악법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듯 보인다. 그저 사찰의 재산을 보호해 주고 조선시대 보다 승려를 위해주는 법 정도로 여긴 것이다. 이는 조선왕조 때부터 오랜 기간 동안 억압에서 오는 근대적 교육기관의 부재로 인한 민족의식의 발아가 늦어진 면도 있다.) 사찰령을 반대했던 세력들도 있었으나 출판의 자유를 빼앗긴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세력들은 자주적 의식이 강한 임제종의 세력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사찰령 시행 후 일본은 종교 단체의 통제를 확대, 정비하기 위해 포교규칙을 1915년에 공포한다. 포교 규칙의 주된 내용은 포교자에 대한 통제인데 포교자는 조선총독부에 신고하여 인가를 받아야 했다. 이로 인해 종교의 통제는 보다 강력해졌으며 모든 종교적 행위가 총독부의 관리 하에 이루어짐을 더욱 굳혔다.4. 만해 한용운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만해 한용운 스님은 조선 불교가 친일화의 길을 겉는 것을 비판하면서 지금 이대로 불교는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자각하고 개혁을 주장하며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사회 진화론에 입각하여 불교의 평등주의, 구세주의에 개혁에 이상을 설정하였다.) 그는 승려들에 의해서 도심 속의 민중들을 구제하여 참 불교를 실천하라고 하였다. 또 구걸을 금지하고 불교 예불 격식을 간소화하고 염불당의 폐지와 교단의 통일기관 설립을 주장하였다. 특이한 점은 13년 뒤에나 이루어 질 대처승 허가에 대한 주장인데 승려들의 결혼을 허락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유는 불교 신자의 증가를 들었다. 이것은 그 시대에 목사나 일본 승려가 결혼한 것을 보고 주장한 듯하다. 이러한 불교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불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세속에 빠진 승려들을 비판하였다. 개혁안들은 시대적 한계에 부딪치지만 조선 불교계를 변화 시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개혁론은 불교청년운동으로 이어졌고 그 이론적 논거를 제공해주기도 하였다.”)5. 조선불교청년회와 조선불교유신회의 활동1910년대 조선 불교계를 보호하고 장려한다는 명분 속에 일본 식민 정책을 보다 쉽게 투입하기 위한 일본의 정책에 저항하는 승려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 여파로 일본의 통치 성격이 완화되고 표면적 단체의 설립 허용과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민족 자각적 움직임을 통해 1920년 조선청년불교회가 창립되면서 사찰령과 일본의 불교정책에 반기를 들며 나타난다. 불교청년회는 중앙학림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회광의 2차 매종행위(1차 매종행위는 원종 창립 후 1910년)를 저지하였다. 그리고 당시 불교계의 주지 임명권에 대한 문제와 중앙학림의 전문학교 승격을 건의 하였다. 총독부에서 주지를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고 산중공의제의 시행으로 인해 교육과 포교사업의 부진을 면할 수 있고 제정운영이 투명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자율적 활동이 표면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총독부의 감시 하에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조선불교청년회는 주위의 여건에서 별개의 활동을 해야 했고 그래서 탄생된 것이 ‘조선불교유신회’였다. 유신회는 불교계의 최대 장애물인 사찰령 폐지 운동에 나섰다. 1922년, 1923년 두 번에 걸쳐 건백서를 작성하여 총독부에 사찰령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번번이 묵살당하고 주지 계층의 지원 부족과 외면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후 유신회는 1924년에 총무원이 30본사 주지들 중심으로 친일적 성향이 강하였던 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 흡수 통합되면서 또 하나의 저항 세력이 침체기에 빠진다.
1. 인물성론 이론의 논쟁의 본격적 발단“퇴계?율곡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은 천인(天人) 관계에서 주체적인 인성론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성리학의 객관적?우주론적 경향과 구별된다.”) 조선 중기의 후반에 인물성동이론 및 인간의 미발심체(未發心體)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조선 중기에 겪었던 국내외적 환란으로 실학?예학?의리학?양명학 등이 현실지향적 성격을 띤 학문이 성행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주체적 위상과 심성의 본질에 대한 논의도 전개되었다. ‘인물성동이론’과 ‘미발심체’에 관한 논쟁은 추상적이며 공소한 이론이라고 비평받기도 하지만, 성리학적 심성론이 심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성리학은 우주 만물과 인간 만사를 원리적으로 해명하려 시도한다. 특히 한국 성리학은 인성론(人性論)을 중요시 하였다.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인성(人性)의 문제를 더욱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그 첫째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 문제로 나타났고, 둘째가 미발(未發) 시의 심성문제로 깊어졌다. 인물성동이론은《중용》천명지위성(天命之爲性)과《맹자》‘생지위성(生之爲性)’에 대한 주자의 주석에서 발단되었다. 이른바 ‘건순오상(建順五常)’ 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성이 사람과 동물에게서 같은 형태로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였다.호락논쟁으로 불리는 인물성동이론의 본격적 논쟁은 권상하의 문인이었던 한원진과 이간의 입장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동론과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거주지가 달랐는데 이에 따라 호론(湖論)과 낙론(洛論)이라 명칭이 붙게 되었다. 호락논쟁에서 이간은 인물성 동론을, 한원진은 인물성 이론을 폈다. 이들의 주장이 완전히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리학 안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양론은 모두 인간만이 ‘정통(正通)’한 기운 또는 오행의 ‘수기(秀氣)’를 갖추었다는 기본 입장에서는 차이나지 않는다. 호락론에서 성론(性論)의 차이는, 성(性)이 기질에 내재적인가 초월적인가에 있다. 이간은 성의 초월적 측면에서 ‘이통성(理通性)’을 지적해 동론을 주장했고, 한원진은 성의 내재적 측면에서 ‘기국성(氣局性)’을 지적하여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변론은 성리학에서 불명확하였던 부분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2. 인물성 이론과 인물성 동론인물성동이 논쟁의 구체적 차이는 오상(五常),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달려있다.이간은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고 그 근원을 세부적으로 지칭할 때 오상이라고 하므로 사람과 사물이 오상을 온전히 받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는 이(理)를 부여받아 기로써 형태를 이루고, 이때 각기 부여된 이가 곧 성이 되므로, 인간을 포함하는 만물의 성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간과 천지만물이 오상을 보편적으로 구비하기 때문에 인?물의 성은 같다고 하였다.한원진은 이에 반해 이(理)가 기(氣) 안에 들어갔을 때는 그 원인이 氣이든 理이든 이때의 이는 이미 기와 결합하면서 성으로 변화되어 모든 사람의 성이 온전한 오상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천명의 이’는 형기(形氣)를 초월한 것이고, ‘오상의 성’은 기질로 인해 이름 붙인 것이므로 인?물의 성은 서로 다르다고 하였다.이간은 본성이 초월적?근본적이어야 한다고 보았고, 한원진은 성의 개념은 기(氣)를 말미암지 않으면 성립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이간은 본연지성이 부여되는 일원처(一原處)에서 인물성의 동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기질의 정통편색(正通偏塞)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인?물의 기질적 차이는 인정하였다.한원진의 경우 성(性)이란 형기를 초월한 이(理)와는 달리 이(理)가 기(氣)에 ‘떨어져 있는 것’을 일컫는 것이므로, 기를 떠나서는 성을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기의 편전으로 인해 인성과 물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성은 인?의?예?지?신의 오상을 완전히 갖추고 있지만, 물성은 그렇지 못해 미소(微少)하거나 전무하다고 보았다. 한원진의 주장이 인물성의 차이를 주장하지만, 인성과 물성이 유래한 궁극적 근원은 ‘일원무대(一原無對)’의 ‘태극천명(太極天命)’이라고 한 점에서 이간의 일원지리(一原之理)와 다르지 않다.이간은 일원일체(一原異體) 또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주장한다. 태극, 천명, 건순오상의 덕을 합해 본연지성이라 하는데 사람과 물이 다른 것은 기(氣)의 같지 않음으로 인한 것으로, 사람은 기의 바르고 통한 것을 받았으나, 物은 그 치우치고 막힌 것을 받았을 뿐이라 한다.) 이처럼 본연지성으로 보편성을 설명하고 기질로써 인성과 물성의 차이를 설명했다. 한원진은 초형기(超形氣)?인기질(因氣質)?잡기질(雜氣質)이라는 성삼층설을 주장했다. 여기서 한원진이 인물성 이론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은 인기질(因氣質)을 통해 알 수 있다. 한원진이 의도한 인기질의 의미는 ‘사람과 동물이 다르면서도 순선한 덕’이며 이 삼층설에 의해서 사람과 동물의 고유한 본성을 개념화시킬 수 있고, 인성과 물성의 동이문제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간, 한원진 모두 일원만수(一原萬殊)라는 공통적 인식을 깔고 있다.또한 호락논쟁에서는 성리학의 기본 명제인 순선(純善)한 본연지성과 선악을 겸한 기질지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간은 본연지성이 궁극적 원리인 천도나 태극지리(太極之理)와 동인한 것이며, 인간의 본성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였다. 형이상의 이(理)인 본연지성은 마치 ‘도(道)’가 ‘기(氣)’에서 생하거나 ‘태극’이 ‘음양’에서 생하지 않듯이 “성리의 선은 심기(心氣)에 근원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선(性善)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성리 자체에 있지 않고 심기(心氣)의 선악에 관련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심(心)이 부정한데 성이 스스로 중(中)하거나, 기(氣)는 불순한데 이가 스스로 화(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간은 순수 형이상의 성리를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형이하의 심기를 요구하고 있다.3. 미발심체의 선악에 대하여이간은 미발순선(未發純善)을 주장했고, 한원진은 미발기질유선악(未發氣質有善惡)을 주장했다.) 이간에 의하면,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모두 외물에 의해 촉발되지 않은 미발지성(未發之性)이다. 미발에도 깊고 얕음이 있다. 깊은 것은 허령불매(虛靈不昧: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신령하여 어둡지 아니함. 심상(心狀)과 명덕(明德)의 본질이다)하고 담연허명(湛然虛明)한 명덕본체(明德本體)의 본연지심이기 때문에 ‘중저미발(中底未發)’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얕은 것은 기품(氣稟)에 구애되어 혼매잡요(昏昧雜擾)한 기질지심이므로 ‘부중저미발(不中底未發)’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이발(已發)의 정(情) 으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발시의 순선한 본연지심과 선악을 모두 겸한 기질지심으로 분류하였다.이간은 인성을 논할 때 선악을 모두 겸한 기질지성 보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본연지성(本然之性)을 인간의 진정한 본성으로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미발시의 허령불매한 본연지심(本然之心)을 중시해 확보하려고 하였다.한원진의 경우도 이간과 마찬가지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모두 마음의 미발 상태인데, 본연지성은 순선하고 기질지성은 선악을 겸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미발을 외물에 접촉하지 않은 고요한 상태에서 기가 발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그러나 한원진은 이(理)와 기(氣)는 분리될 수 없고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두 개의 성이 아니라는 전제에 철저하였다. 허령(虛靈)한 마음(心)의 이(理)만을 가리키면 본연지성이고, 마음에 있는 기품(氣稟)의 청탁미악(淸濁美惡)을 겸하면(兼指) 기질지성이라고 보았다.허령한 마음의 본연지성은 성범을 막론하고 동일하지만, 성인과 범인의 차이가 있는 것은 심의 허령에 기인하지 않고 기품에 연유한다고 생각하였다. 기품의 부제(不齊)에 구애받는 것이 중인(衆人)이고,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 본래적 허령상태의 본연지성을 드러내면 성인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