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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대학문화 -러시아
    세계의 대학문화『 러 시 아 』목 차서론 ............ 3본론Ⅰ. 역사적 배경 .......... 4Ⅱ. 사회적 문화적 배경 ...............Ⅲ. 러시아의 교육제도 1. 유아교육 ...........2. 초?중?고등교육 - 쉬콜라 ....1) 기술학교 ........3. 상급교육제도 ....Ⅳ. 러시아 대학문화 ...1. 대학의 역사 ......2. 대학의 분류 ......3. 학제 ........와 군사학교가 있다. 재능이 우수한 학생을 교육하는 일종의 영재학교는 명성이 높아 우수한 상급학교 진학률이 높다. 그리고 러시아의 상급 교육기관으로는 종합대학과 특수대학으로 나뉘어 진다. 특수대학은 의학, 교육학, 전기공학, 도시계획, 농학, 국제학 외에 예술분야 등의 전문분야를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흔히 「연구?! 納?, 「학교」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상급학교 입학시험은 1년에 1번 여름에 실시되며 평균 입학경쟁률이 5대1 정도이다. 그러나 학교의 명성에 따라 경쟁률 차이가 극심하며, 모스크바 대학, 모스크바 국제 관계 연구소, 모스크바 외국어연구소, 모스크바 연극 및 예술 연구소 등은 평균경쟁률이 50 대 1에 달하고, 최고 100 대 1을 넘기도 한다. 대학의 수학기간은 보통 5년이며 졸업자격시험에 해당하는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학사학위 제도가 없고, 대학졸업 후 보통 3년 과정의 「아스피란트」(한국의 대학원과정)를 마치면 「칸디다트」라는 박사취득 자격학위를 받는다. 다시 일정자격을 갖추고 논문을 제출하면 박사학위를 받는다Ⅰ. 역사적 배경러시아는 역사상 다섯개의 러시아로 구분될 수 있다. 즉, 키예프의 러시아, 타타르 시대의 러시아, 모스크바 시대의 러시아, 피터대제의 제국 러시아, 그리고 새로운 소비에트 러시아의 러시아이다. 이중 키예프러시아의 문화적 배경 및 역사적 의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키예프러시아시대의 러시아는 같은 시대의 서구라파의 문화보다도 높은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14세기에는 러시아에 고전적으로 완벽한 성상화 라든가 우수한 건축이 있었다.러시아 정신의 부조화와 일관성의 결함은 러시아의 역사의 복잡성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동방적인 요소와 서방적인 요소와의 알력에 기인한다. 러시아 민족의 혼은 오르도독스 처어치(Orthodox Church : 正敎敎會)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그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주형(鑄型)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혼가운데는 러시아의 광막한 그 자든 영역에서, 특히 교육 영역에서 인종 고유 언어와 문화 신장.- 러시아어가 국가의 공식 언어로서, 또한 인종간의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실질적인 기회 조성.- 인종적 문화의 특수성 보존과 발전을 위한 주요 전제조건으로서 국가적인 중등 및 고등 교육제도를 강화하고, 다른 인종의 가치관을 수용할 태세를 갖춘 젊은 세대들에게 자신이 속하는 인종의 자의식을 고취.- 러시아연방에서 살고 있는 인종들의 생활과 문제, 인종간의 정신적 단결, 인종간의 평화와 화합, 러시아 국민으로서의 인종간의 협력 등의 이상과 관련한 객관적인 정보 전파.- 러시아 문화의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고, 사회안에 이같은 보존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수세기에 걸친 문화적 상호 작용의 전통을, 특히 슬라브족들 사이의 상호관계와 아울러 단일 “유럽-아시아 인종 및 문화권”의 테두리 안에서의 슬라브족, 터키족, 코카서스족, 핀-우그리아족 문화와 기타 문화 사이의 연계를 가일층 발전.- 상이한 인종들의 종교 및 信條上의 특수성을 존중하고, 각 종교의 동등한 지위를 준수하며, 인종들 사이의 존경과 신뢰를 촉진시킴에 있어 전통적 종교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며, 상이한 신앙을 포용; 모든 종교 성직자들의 평화 유지 활동과, 인종간 화합 공고화 및 러시아국가의 완전성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 성직자의 노력을 지원.인종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연방 국가 권력기관들과 러시아 연방주체 국가 권력기관들은 인종 및 문화적 자율성을 지원하고 발전시킨다는 중요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러한 인종정책은 체첸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등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Ⅲ. 러시아의 교육제도1930년대에 설립된 러시아의 교육제도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러시아 연방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모든 교육은 무료이며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연금 또는 최저임금 수준의 보조금을 받는다. 의무교육기간은 8년이며, 일주일 중 6일, 하루 5 ~ 6시간의 수업을 받고 과목은 러시아어와 과학에 편중되라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이 획일화되어 있어 선택 폭이 적고, 초등의무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모두 화학, 물리학, 수학, 그리고 지정된 과목을 배워야 했다. 이처럼 러시아 교육제도의 기본 틀은 193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그 특징은 모든 교육은 무상교육이며, 그 중에서도 의무교육 기간을 8년으로 규정한 것이다.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보통 10년을 포괄하는 과정으로 「쉬콜라」라고 부른다. 10년 중에서 모든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교육기간은 8년이지만 7년간만 교육을 받아도 된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아동들은 6∼7세에 정규교육기관에 취학하여 의무교육기간이 끝나는 8학년(초급학교 4년과 중학교 4년)까지는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초등학교도 전문적인 학교들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음악을 가르치는 학교가 별도로 있고 대학교육처럼 피아노, 율동 등의 권위 있는 분들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다는 것이다.그리고 학생들은 대학생처럼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선생님)을 찾아 교실을 이동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위가 오래 지속된 나라지만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의 사고와 방식을 훨씬 앞선 다른 선진국에서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일반적인 초, 중등 과정에는 다양한 분야의 학교가 있다. 예를 들면 외국어, 예.체능, 과학, 수학, 기술 등 영재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들이 있다.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의 11학년이 한 학교에서 교육 되어지고 있기도 하고 고등과정은 다른 학교에서 이루어 지기도 한다. 또 다른 학교는 초등교육만 분리되어 있기도 하다. 예.체능 같은 경우에는 고등과정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의무교육기간 8년 동안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치고 나머지 3년 과정에서 좀더 전문적인 과정을 배우게 된다. 중등 직업기술 학교의 경우에는 2~3년간 직업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졸업 후에는 최소 2년간 사회봉사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직장에서 근무하도록 되어있다. 예.체능 같은 경우에는 3년간의 전문기관을 거치고 음악이면 음악 발레면게 확대되었다. 1899년 러시아에는 9개의 대학이 존재하였으며, 학생 수는 17,000명이었다. 당시 러시아 대학은 러시아 지성의 산파역할을 했다. 농노제와 철저한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하는 러시아사회에서 대학생들은 역사와 시대에 대한 의무감으로 충만하여 짜르 전제에 대항하는 혁명가의 요람이었다.그러나 대학교육의 이러한 팽창 속에서도 여성들에게는 대학입학이 허용된 것은 1869년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고급여성강좌'를 통해서이다. 1870년대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키예프에서 여성들을 위한 대학이 설립되었고 여성의학전문학교도 만들어졌다. 당시 크림전쟁에 여성들이 간호사로 대거 진출하면서 러시아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2. 러시아 대학의 분류러시아인의 교육과정은 보통 유치원을 거쳐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합친 교육기관인 슈콜라에서 11년 동안 수학하며, 이를 마친 후에 대학에 가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는 대학교를 포함한 모든 교육기관에서 학기의 시작을 9월에 하고, 6월에 종료되며, 5?6월에 학년말 시험 또는 졸업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러시아의 대학(상급교육기관)은 대부분의 대학이 모두 구 소련 체제 하에서 설립?운영되어 온 학교인데 설립 당시부터 국가차원의 부문별 인력 양성, 배치를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소수의 종합대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대학이 단일 계열(예: 공대, 음대, 체육대 등)의 대학으로 운영되고 있다.러시아의 상급 교육기관은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으로 나뉘어진다. 종합대학은 대부분이 모스크바 등의 대도시에 1개씩 위치하고 있으며 종합대학의 구성은 몇몇 단과대학으로 나뉘어지며 그 아래 여러 개의 학과가 있다. 주요 학과로는 자연과학과 수학, 사회학 및 정치학, 인문과학과 법학 등이 종합대학에 의해 운영된다. 단과대학은 의학, 교육학, 전기공학, 도시 계획학, 공학, 농학 또는 국제학 등과 같은 분야로 전문화된 학교를 말하며, 미술 아카데미, 음악 콘스브토리 등도 있다. 요즘은 대학별로 전문화?특성화를 추다.
    교육학| 2007.12.05| 21페이지| 2,500원| 조회(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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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치에 대하여
    전통식품유래특징★-한국인의 생명, 김치에 대해서-★Ⅰ.서론(한국인과 김치)『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내에 정히 씻어 함담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 무우 알암밤도 얼잔케 간수하소.』이 노래는 조선조 헌종 때 지어진 「농가월령가」가운데 시월의 노래이다. 이러한 월령체의 노래는 달과 절후에 따른 농가의 일과 풍속을 노래한 것으로 달거리라고도 부른다. 이 달거리 노래는 서민들의 삶을 그 내용으로 하여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 가장 적절한 때에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하면서 일년을 보냈다.김치에 관한 내용이 「농가월령가」와 같은 문헌에 기록으로 남은 것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김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의 대표적 음식인 김치를 통해 그 속에 담긴 민족 정서와 철학만의 고유한 특성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누군가 한민족이 조상 대대로 먹고 살아온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밥과 김치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말은 곧 김치를 먹는다는 말과 같다. 김치가 없다면 ‘밥도 못 먹는다’고 이해하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동양인들의 사고는 자연 친화적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생활의 모든 면에서 자연과의 친화를 보여 준다. 김치도 그렇다. 고춧가루로 김치를 물들이기 이전에는 자주색 갓이나 장독 가의 맨드라미, 잇꽃의 추출물로 붉게 물들였다. 자연을 식생활에 적용하는 독특한 정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조상의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다.또한 김치에는 우리 민족의 뛰어난 색채 감각이 담겨 있다. 배추와 무 등의 담색 채소는 고추의 붉은색을 잘 받아들여 고운 빛깔을 내는 음식이 된다. 일반적으로 김치 하면 떠오르는 것은 붉은 배추김치이지만 그 밖에 다른 색을 내는 김치도 많다. 쌀도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김밥, 김칫국, 김치볶음 등 김치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요리를 하였다. 최근에는 김치 햄버거, 김치 커틀릿, 김치 그라탕 같은 메뉴를 개발하여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이렇듯 김치는 음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잘 숙성된 김치에서는 우리 음식에 숨겨진 많은 비밀들을 찾아낼 수 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훌륭한 문화 유산인 ‘김치’를 전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우리의 독특한 김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하겠다.Ⅱ. 본론1.김치의 어원과 역사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발효 식품인 김치는 자연 환경과 조상의 슬기로운 음식 솜씨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민족은 농경 민족으로서 곡물 위주의 식생활을 영위하면서 채소를 즐겨 먹었다.우리나라는 청명한 기후와 산수가 풍요로워 채소가 연하고 향미도 뛰어나다. 또 계절 변화가 뚜렷하여 다양한 채소를 즐길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생산되지 않고 저장도 어려워 건조 처리나 소금 절임 등 가공에 남다른 슬기가 필요하였다. 이처럼 채소가 나지 않는 겨울철에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김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김치의 재료는 한반도에서 재배하는 채소뿐 아니라 자생하는 산나물, 들나물이 모두 이용되었다.채소류를 건조시키기는 쉬우나 건조된 상태에서 조리하였을 때 채소 특유의 신선미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금에 절이면 채소가 연해지며 사각사각 씹히는 맛도 있고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해진다. 채소와 어패류를 묽은 농도의 소금에 절이면 자가효소작용과 호렴성 세균의 발효 작용으로 각기 아미노산과 젖산을 생산하는 숙성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이 김치와 젓갈의 저장 원리이다. 소금은 삼투압 작용으로 수분을 빼앗아 대부분의 미생물 생육을 억제하고 유익한 발효 과정을 하도록 돕는다. 아미노산이나 젖산 발효가 식품을 보존하고 저장하는 효과도 있지만 우수한 맛을 가진 발효 가공 식품을 만들기도 한다.김치의 기원은 채소의 소금 절임으로 다른 민족도 자연스럽게 이 방법을 채소는 고려시대에 채소 가공품을 다스리는 ‘요물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태종조 9년의 기록에도 ‘침장고’를 두었다고 하였다. 이런 문헌 기록을 볼 때 김장을 보관하던 곳이 따로 있었으며 김장이 ‘침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시대별 변천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어떤 김치무리를 담가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왔던 중국과 일본의 기록을 참고하여 김치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김치무리에 대한 모습을 대강 알 수 있다.중국의 『시경』에 “밭 속에 작은 원두막이 있고 외가 열려 있다. 이것으로 정성껏 ‘저’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수를 누리고 하늘의 복을 받는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의 ‘저’가 최초로 기록된 김치무리로 보인다. 그 후 진나라 때 편찬된 『여씨춘추』에는 “주 문왕이 저를 즐겼다는 말을 듣고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며 ‘저’를 먹어 3년 후에야 비로소 그 맛을 즐겼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의 “저는 신맛의 채소이고 저는 초에 절인 오이”라고 한 구절에서도 김치무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주례』에는 ‘칠저’가 나오는데 이것은 부추, 순무, 순채, 아욱, 미나리, 태(죽순의 일종)와 죽순 등으로 담근 김치무리로 보인다.그러나 이러한 문헌으로는 구체적인 조리법을 알 수 없다. 후위 말엽에 편찬된 『제민요술』에는 젖산 발효를 이용한 김치무리 12종과 초절임 김치무리 16종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리법을 추정하는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제민요술』이 편찬된 때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이므로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김치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일본의 문헌으로도 우리의 김치무리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기원전 2,3세기경에 일본 규슈 북부로 건너간 한반도인들은 벼농사와 앞선 문화를 전하여 일본의 야요이 문화를 꽃피웠고 한문, 불교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전수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일본의 「정창원문서」에 나오는 채소 발효 식품은 우리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일본에 술 빚기와 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한편 백제 문화로서 서기 600년경에 창건된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토기 중에는 100센티미터 이상 되는 대형 토기들이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승려들이 생활하였던 곳에서 출토되었다. 크고 형태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땅을 파고 묻어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대형 토기는 겨우살이에 대비한 김장독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며 삼국시대 김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 되고 있다.이외에도 신라시대 성덕왕 19년에 세워져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법주사 경내에 있는 큰 돌로 만든 독은 김칫독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김치무리를 만들어 저장한 것으로 생각하면 김장의 기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②고려시대의 김치무리고려 초기는 사회 전반에 숭불 풍조가 만연하여 육식을 절제하고 채소 요리를 선호하였다. 전시대의 김치 형태에서 순무, 무, 가지, 오이, 부추, 미나리, 고비, 아욱, 박, 고사리, 도라지, 토란, 대산(마늘), 죽순, 형개, 동과(동아), 산갓, 황과, 상추, 파, 생강 등으로 재배 채소의 종류가 더욱 많아지고 나박지형의 김치가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김치에 있어 절임 형태의 김치무리와 함께 새롭게 개발된 국물 있는 김치무리 곧 동치미류가 등장하여 분화된 형태를 보여 준다. 이 시기에도 단순 절임형 김치무리에 마늘 등의 양념과 천초, 파, 귤피 등의 향신료가 가미되는 양념형 김치무리가 등장하게 된다.『동국이상국집』의 「가포육영」에는 “무청을 장 속에 박아 넣어 여름철에 먹고 소금에 절여 겨울철에 대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장아찌와 김치가 분리된 것을 나타낸다. 또한 겨울을 대비한다는 것으로 보아 김장의 풍습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소금에 절인 김치류는 오늘날의 짠 무를 물에 희석하여 먹는 나박지, 동치미 등의 침채류를 생각할 수 있다.고려 말 이달충이 지은 「산촌잡영」이라는 시에는 “여뀌풀에 마름을 넣어 소금 절임을 하였다 때문에 향토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꿩(생치)이 김치의 재료로 이용되는 등 채소에 육류가 가미된 형태를 보여 주기도 한다.김치는 단순 절임의 장아찌형과 싱건지 형태의 김치가 있으며 나박지형, 동치미형 물김치까지 등장하고 있다. 김치의 국물색을 낼 때는 맨드라미나 잇꽃, 연지 등으로 붉은색을 내기도 하였다. 또 김치에 양념 사용이 많아져 주재료와 부재료의 구분이 뚜렷해진다.④조선 중기 이후의 김치조선조 중기 이후에는 상업의 발달에 따라 상품 작물의 재배도 활발해졌다. 각종 전래 채소와 과수 재배, 원예 작물과 약초가 널리 보급되었고 이것들이 김치의 주재료, 부재료로 이용되었다.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래 식품으로는 호박, 고추, 옥수수, 고구마, 동아, 사과, 수박 등인데 특히 17세기 초에 유입된 고추는 우리 식생활에 큰 변화를 주었다. 고추가 김치 양념의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담백한 맛의 김치무리가 조화미로 바뀌게 되었고 주재료와 양념 재료의 종류가 늘어나게 되었다. 고추는 『지봉유설』에 그 기록이 보이나 김치에 이용되었다는 문헌 기록은 『산림경제』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김치에 고추가 들어가면서 젓갈이 다양하게 쓰이게 되었다. 식물성 재료에 동물성 재료를 첨가하여 맛과 영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으며 김치의 감칠맛을 더욱 향상시켰다.김치의 주재료도 배추와 무기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특히 김치의 대명사인 통김치는 배추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져 반결구형, 결구형 배추가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대표적인 김치가 되었다. 김치 담그는 법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소박이형, 섞박지형, 식해형 김치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하였고 제조 방법도 퇴렴하여 김치를 담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하였다.대략 고려시대의 절임형 김치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던 단순한 양념이 이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사용한 김치 담그는 법으로 발달하여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음식디미방』은 마늘 김치에 천초가 양념으로 사용되었고 또 육류인 꿩을 오이와 함께 담근 생치김치가 기록되어
    자연과학| 2003.12.01| 8페이지| 1,500원| 조회(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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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문화와 관광지 평가B괜찮아요
    Ⅰ.서론독일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독일은 유럽의 중심부이며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지도를 살펴보면 독일은 덴마크,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와 네덜란드 둥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다. 따라서 자동차로, 선박으로 그리고 항공기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다른 주변 국들과 철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영국과는 여행선이 다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항공기는 유럽 대도시와의 연결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독일의 항공교통 중심지로는 프랑크푸르투(Frankfurt) 국제공항이 있으면 이외에 뮌헨, 베를린들이 중요한 항공 중심지이기도 하다.지금부터 저와 함께 독일여행을 떠나보실까요? Viel Spass!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Ⅱ.본론1.출발하기 전에▣ 교통수단한국에서 독일로 가는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루프트한자항공 등 2개사가 운항하고 있다.대한항공은 서울-프랑크푸르트행 주5회(화,목,금,토,일) 운행하며 비행시간은 약 12시간 소요된다.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은 화요일을 제외한 주6회 운행하고,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들에 운항한다.▣ 언어독일어 이외의 영어도 많이 쓰이긴 하지만 지방의 소도시 소도시에서는 영어 사용이 일반화 되어 있지 않으므로 간단한 회화 정도는 암기해 두는 것이 좋다.▣ 물가독일의 국민소득은 매우 높지만 생활비가 적게드는 이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특히 대분분의 도시에 있는 물건값이 저렴한 수퍼마켓을 이용할 경우 더욱 경제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독일의 국민소득은 매우 높지만 생활비가 적게 드는 이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기후와복장비교적 온난한 기후 속에 대륙성기후와 해양성기후의 성질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여름철에는 간단한 스웨터를, 봄.가을에는 따뜻한 자켓을, 그리고 겨울철에는 두꺼운 코트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영업시간사무실과 상점들은 월~금 오전 9시, 또는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영업하며, 토국을 제외한 21개국을 결속하여 북부 독일연방을 결성하고 맹주로 등장해 비스마르크는 에스파냐 왕위 계승문제를 이용, 프랑스에 전쟁을 도발,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고 파리를 정복(1871)했다.독일 제2 제국의 성립(1871)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로이센왕인 빌헬름 1세(재위 1871~1888)가 황제로, 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취임하여 통일된 독일제국 수립(25개로 구성된 연방국가) 상원인 연방의회(Bundesrat)와 하원인 제국의회(Reichstag)가 구성, 입법부 구실을 하였으나, 실질적 권한은 황제와 제상이 보유했다.마. 독일제국과 제1차 세계대전독일제국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 추진 1890년 비스마르크 은퇴후 젊고 모험적인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재위 1888~1918)는 범 게르만주의를 표방하고 "신행로 정책"이라 불리우는 적극적인 세계정책을 추진, 국제적 긴장 조장해서 시효가 다 된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 갱신을 거부하고, 1898년에는 영국의 해군력에 도전, 치열한 건함 경쟁 촉발되었다.1차 세계대전 發發(1914) 세르비아인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드공 암살사건(1914.6.28)으로 폭발,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연결1차 세계대전 패배 1918.11월 1차 세계대전 패배후 독일제국은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Die Weimar Republik) 성립했다.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과 시련(1919~1933)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1918년 혁명이 일어나 호엔촐레른 왕가의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에 망명하고, 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되어 1919년 2월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여 18개 공화국으로 구성되는 연방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사회 민주당의 Friedrich Ebert(1871~1925)를 선출되었다.바이마르 공화국은 좌익과 우익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등 공화국 출범 초기부터 시련에 봉착해 좌익 스파르타쿠스단이 소비에트를 조직, 히틀러의 나찌당은 1923년 뮌헨에서 공화국 타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등 국경 접경 지역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약 1억 명에 달한다.독일 민족은 게르만족에 속한다. 남부와 서부, 스위스에서는 기원전부터 정착해 있던 켈트족과 혼혈이고, 엘베 강, 잘레 강 동쪽 지역과 상부 마인 강 지방 및 오스트리아에서는 슬라브족과 혼혈을 이루었다. 혼혈도가 가장 낮은 곳은 작센 지방이다.독일의 종교 분포는 신교(49.1%), 카톨릭(42.7%), 이슬람교(2.7%), 무종교(7%) 순이다.2) 국민성근면 검소하며 질서 의식이 강하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교적이지 못하며 약간 폐쇄적이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열면 끝까지 진실한 관계를 유지한다. 예로 유학생들과 독일 학생과의 관계에서 보면 독일 학생은 상대방이 청하기 전에는 스스로 도움을 주지 않는 편이나, 도움을 청하면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적극적으로) 도와준다.이것은 음산한 독일의 기후와도 관련이 있는데 독일은 집안에서의 생활 문화가 강해서 베를린,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등 유명 관광지를 제외한 곳에서는 가게 문이 닫히는 저녁 6시 이후가 되면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어진다.3) 음식하루에 한 번만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이 독특하다. 주로 점심식사 때 수프를 비롯한 고기, 감자, 야채 등으로 이루어진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독일인의 음식 문화는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그리 발달되어 있지 못한 편인데, 고기와 빵, 소시지를 주식으로 먹는다.독일의 전통 요리로는 200~300가지 정도의 소시지와 햄, 뮌헨 지방의 돼지 족발 요리(Schweinehaxe), 고기 경단 스테이크, 돈까스, 여러 가지 수프가 있다.소시지 종류 중에서 석쇠에 구운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구운 흰소시지)와 삶은 소시지인 보크부르스트(Bockwurst:붉은색의 쇠고기 소시지), 그리고 카레 가루를 뿌린 카레부르스트(Curry-wurst) 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물이 안 좋은 탓인지 맥주를 많이 마시고, 아침에는 커피, 저녁에는 맥주 아니면 차를 주로 마신다.4) Graf)에 의해 붐을 이루기 시작한 테니스는 요즘 상당히 높은 인기를 차지하고 있으며, 1994년 세계 프로 복싱 챔피언의 탄생을 계기로(핸드리 마스케) 복싱 또한 한창 인기 종목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그 외에 사격 단체(Deutsche Sch zen-bund:140만 명)가 있으며, 이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교의 의미가 큰 운동 종목이다.또한 통독 이후 육상(90만 명)도 구동독 선수들에 의해 붐을 이루며 세계 수준에 달한다. 수영의 경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수적인 운동이며, 유사시에 생명 보호의 관점에서 신생아의 경우 3~4개월 후면 수영장에 데려가 일찍 물에 적응을 시키는 것이 특징이다.독일에는 영화보다 연극 문화가 발달되었다. 텔레비전 프로 가운데는 대담 프로(Talkshaw)가 발달한 것이 특징적이다. 우리 나라에서처럼 화려한 쇼 프로는 보기 어렵다. 스포츠 중계가 많고 보도 프로 비중이 크다.스포츠인으로 유명한 사람은 보리스 베커, 슈테피 그라프, 핸드리 마스케, 마이클 슈마허(자동차 경주 세계 챔피언) 등이며 모델로는 클라우디아 쉬퍼가 유명하다.8) 교통독일의 대중 교통 수단은 크게 도시와 도시를 이어 주는 철도와 비행기, 그리고 도시 내의 대중 교통 수단인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 있다.①철도독일의 철도는 통일 전 서독의 연방 철도(Bundesbahn)와 동독의 제국 철도(Reichbahn)가 있었으나 통일 후 연방 철도(DB)로 합병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철(私鐵)은 없으며, 철도는 가장 빠른 ICE(Interciry Express), 특급인 IC(Inter City)와 EC(Euro City)가 운행중이며 그 외 D-Zug(schnell Zug), E-Zug(Eil Zug)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대도시와 외곽을 이어 주는 통근 열차 개념의 S-bahn이 있다. 철도 요금은 꽤 비싼 편이지만 우리 나라와는 달리 고속 버스가 없으므로 이용률이 높다.②비행기루프트한자(Lufthansa)가 유일한 민항 회사이며, 199불리는 아돌프 바스티안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박물관은 유럽민족음악, 아프리카, 동아시아 등 9개의 부분으로 약 34만 점의 수집품이 소장되어 있다. 베를린의 남서쪽 달렘에 있는 이 곳은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까지 이 방면의 박물관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곳의 하나였다.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서쪽으로 15분 정도 가면 달렘돌프 역이 나온다.⑥전승기녑탑 (Siegessaeule)과 동물원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서쪽으로 뻗은 "6월17일" 거리 양쪽이 동물원이다.이 공원의 북쪽 끝에는 현재 수상관저로 이용되는 벨레브궁전(Bellevue)이 있고 이 동물원 중심에 황금의 전승기념탑이 있다.이것은 프러시아가 1864년 덴마크에 대해, 1866년 오스트리아에 대해, 1871년 프랑스에 대해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⑦옛 의사당 (Reichtag)1894년 지어진 석조건물로 1933년 방화사건과 제2차대전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나 앞으로 통일독일의 의회로 이용될 예정이다.⑧베르나우어 거리 (Bernauerstr.)이 거리는 베를린 통일 이전 망명을 시도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장소로 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십자가가 많이 서 있다.⑨브란덴부르크문1788-1791년에 세워진 개선문으로 동서 베를린 통합때 많은 베를린사람들이 이곳에서 집합하였다.⑩포츠담포츠담은 우리에게 직접 관련있는 1946년의 포츠담 미영소 3국의 선언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이곳의 상수시 공원 (Park Sanssouci)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 비엔나의 쉔브른 궁전 등과 함께 유럽의 대표적 궁전이다.정원이 무척 넓고 잘 단장되어 있으며 조각품과 궁전이 아름답다.상수시 궁전은 로코코양식의 건물로 1745년 프리드리히 2세가 여름 궁전으로 조성한 것이다.포츠담에는 체칠린호프궁전도 있으나 아주 멀리 있다.포츠담은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으로 이곳에서 1945년 8월에 미국, 영국, 소련 3국의 포츠담선언이 채택된 곳이다.베를린의 먹거리베를린에는 6천여개의 레스토랑이 있는도다.
    인문/어학| 2003.12.01| 25페이지| 2,000원| 조회(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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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투어리즘을통한농촌활성화방안
    Ⅰ. 서론1. 연구의 배경과 목적'90∼'01기간 중 우리나라 농업부문 부가가치는 연평균 2.5%씩 증가해 왔다. 그러나 농산물에 대한 국내 수요 감퇴와 시장 개방의 확대에 따른 농산물 실질가격의 하락으로 농가의 실질 농업소득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3.4%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에 따라서 1990년도의 농가소득은 도시 근로자가구 소득의 97.4% 수준이었으나 2000년도에는 80.6%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재와 같이 농산물의 가격이 감소할 경우 2010년경에는 농가소득이 도시 근로자가구 소득의 70.0%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정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농외소득원개발촉진법(1984)과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1990)을 제정하여 농외소득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농가 인력의 노령화로 기존의 농외소득 정책에 의한 농가소득증대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95∼'00기간 중 농외취업이 가능한 25∼49세 연령층도 농가 호당 0.95명에서 0.78명으로 감소하였음을 감안해 볼 때, 농공단지 등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취업에 의한 농외소득은 앞으로 크게 증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이와 같이 농업소득이 감소하고 농외소득도 증가하기 어려운 상황하에서 농가 경영체의 지속과 농촌지역사회의 유지가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농가소득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키고 농촌지역사회의 활성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그린투어리즘은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 생활과 산업을 매개로 도시민과 농촌주민간의 교류형태로 추진되는 체류형 여가활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농가에서 숙박시설을 제공하고, 특산물과 음식 등 상품을 개발하며, 여기에 이벤트와 농사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함으로써 농촌지역의 농업외 소득을 증대시키려는 농촌관광전략이다.그린 투어리즘(Green Yourism)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 녹음이 짙은 전원에서의 관광을 '녹색관광'이라고 부르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유흥과 위락 중심, 대규모 로 한 관광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린투어리즘은 농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자원을 생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또한 농촌자원의 생산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체험기회의 확대와 여가에 대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린투어리즘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농촌자원의 공익적이면서 서비스 기능을 가지고 최대화하여 자연을 파괴하기보다는 생태적이면서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지향하면서, 농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와 역사. 자원을 근간으로 생태계의 균형과 인간성 회복을 그린투어리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유지와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는 그린투어리즘에 대한 논리가 생태적, 경제적 기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 기반을 근거로 한 인간 중심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정현욱·이동기, 2002).2) 그린투어 등장배경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환경보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관광분야에서도 녹색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한국에서도 이미 관광농원이나 민박, 어촌관광마을, 자연휴양림 등 녹색관광의 범주에 포함 시킬 수 있는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에서 말하는 의미의 녹색관광 개념을 개발컨셉으로 한다고 볼수는 없다.또한 녹색관광에 관한 연구는 개념 및 사례 소개에 그치고 있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개념의 정립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유럽 및 일본 등 선진국에서의 녹색관광의 등장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농촌지역에서의 점차 고용기회와 소득이 감소하였으므로 관광으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녹색관광이 시도되었다. 그동안 산업화 정책으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이 가속화됨으로서 농업취업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였다.이로인해 농업생산이 감소하고 나아가 농업의 경제적 기반의 붕괴 뿐만 아니. 환경자원은 관광의 경제적 효과를 확대시키고 확대된 관광효과는 환경의 보전·관리에 더욱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이익집단과 지역주민의 참여이다. 생태관광은 소규모적이고, 지방적 공간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관광의 한 형태이므로 이들의 상호협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생태관광도 광의로 보면 인접유사개념과 비슷한 개념적 영역과 구성요소를 가지겠지만 협의로는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생태관광은 "관광대상에 대하여 관광자가 매우 목적적·환경의식적 인식하에서 원시성이 두드러진 자연환경지역이나 특이한 야생동물과 생물자원을 가진 관광생태계를 관찰·학습·체험하는 여행"으로 정의 할 수 있다(김홍운 · 김사영, 2000).4) 그린투어 도입의 필요성농촌지역의 아름다운 경관, 문화자원을 활용한 21세기 관광사업의 대안으로서 녹색관광(Green tourism)이 지역사회와 괴리된 자연파괴적인 대규모 리조트에 대한 비판과 함께 도입되었다. 즉, 녹색관광은 농촌지역의 자연생태공간과 생활,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도시민과의 교류를 통한 지역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추진되고 있다.녹색관광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그 사회경제적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첫째, 21세기 여가활동의 증가추세 및 향후 주 5일제근무제의 단계적 도입에 따른 새로운 여가공간수요의 증대에 부응하여 농촌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관광으로 점차 관광행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따라 환경친화적인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거나, 농촌지역의 전통향토문화와 자연생활을 체험하는 녹색관광은 국민관광패턴을 다양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둘째로, 녹색관광은 환경친화적 농업의 발전을 촉진시킴으로써 청정농산물의 생산을 위한 환경농업기술등의 발전에 기여한다.셋째, 녹색관광은 개발 방식에 있어서 밑으로부터의 개발방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개발전략이다. 농업농촌을 바탕으로 한 어메니티(Amenities)를 상품화하여지역주민이 서비스주체가 되는 것으로 그 뿐 선진사례 벤치마킹 등을 실시해 우선 주민들 스스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캐릭터와 이야기 등으로 변형시켜 가치를 높인다.(2)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지역의 자체 역량을 축적하면서 자연경관 정비, 환경친화적 기반시설 건설 등을 장기적으로 추진하여 지역컨셉에 맞고 매력 창출이 가능한 사업에 자원을 집중 투입한다.농지구입과 농가주택 임대 농가주택 개조 등에 대한 규제와 세부담을 완화하여 지역주민의 부담을 줄이고 농림부, 행자부, 문광부, 각 지자체가 정책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도시민과 지역주민을 고객으로 하는 시책을 구사한다.또한 관광서비스업에 대한 마인드와 노하우가 부족한 주민들을 위해 전문지식 및 서비스 능력을 배양해야한다.내외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외부 전문가를 초빙 주민들에게 지역문화, 마케팅, 고객접대, 회계, 시설관리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3) 기업의 투자농촌관광은 종업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며 기업이 농촌관광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경우, 종업원의 스트레스 가중, 건강악화 등 생산성 저하요인을 극복할 수 있다.자연친화적인 생태관광, 농촌문화 체험 등은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단순한 자아실현과 재창조의 기회로 활용 될 수 있다.농업·농촌은 전체 경제사회의 안정을 지키는 버팀목으로 상생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기업 입장에서 농촌 활성화는 새로운 내수기반의 창출이며 60~70년대에는 농업·농촌이 산업화를 지원했듯이 이제부터는 기업이 농업·농촌의 활성화를 위해 아이디어와 자원을 제공해야한다.농촌은 고향, 전통문화, 자연 느림과 소박함 등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 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로 농촌을 소재로 한 광고들이 히트하는 추세이다.기업철학에 맞는 지역과 협력을 하고, 농촌관광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기업이미지 홍보에 활용한다(권오욱 · 김천성, 2002; 강신겸, 2002).Ⅲ. 그린투어리즘의 도입 현황과 사례분석1. 그린투어리즘의 도입 실태1) 신비의 건강여행 금산문, 제주의 자연체험을 위한 야자수를 포함한 조경, 열대작물 하우스와 펜션 이용자를 위한 장독대, 텃밭, 바비큐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귤림성의 인력은 농장관리직 10명을 포함해 총 27명이다. 지난해 연간 방문객수는 76,200명으로 총 매출액이 15억원이며, 순이익은 1억 5,000만원이었다.올해의 순수익 목표는 2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본 농원의 마케팅 전략은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귤림성 홈페이지 개설을 통해 객실 농특산물 판매에 대한 문의. 예약, 판매등을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무료 회원가입제도로 약 5천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브로슈어 제작, 신문·잡지 광고게재, TV프로그램 촬영장소 제공, 관광안내 정보 등을 이용하고 있다.향후 계획으로 펜션 방문자 지속적 '농원가족화'작업, 인터넷 공간에서의 귤림성가족행사 진행, 특산품 판매제품의 지속적 개발, 귤림성 이미지 홍보 전력을 기울일 예정이다(www.tourlab.com/greensympo3.htm).5) 농사체험 포천 교동마을마을 리더격인 이수인씨가 1994년에 한 관광학 교수의 '보고, 듣고, 느끼는 예술적 농업을 하자' 는 강의를 듣고 감명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논농사 위주의 교동마을은 체험 민박(farm-stay)마을로 변신이 추진되었다.한탕강, 제 2땅굴, 궁예성 등 주변 관광자원을 연계하여 있는 그대로의 시골 모습을 체험 상품으로 개발, 내·외국인을 유치하였다.현재 30가구 중 21가구가 참여하고 있고, 청정지역임을 내세워 농산물 직거래도 시작했다.'토종마을'을 브랜드로 '정'을 상품으로 하여 마을가꾸기를 계속하여 목화재배과 솜타기. 재래식 탈곡기로 벼수확하기 등 새로운 체험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다.2001년에는 2,3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서 4,50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한국관광공사의 주선으로 200명의 외국인이 참가해 외국인들의 감사편지가 쇄도 마을 사람들이 더욱 용기를 얻었다.6) 산촌휴양마을 양평 명달리명달리는 90%가 산지이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된 두메산골 마이다.
    경영/경제| 2003.12.01| 19페이지| 3,000원| 조회(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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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문화와 교육제도
    목 차Ⅰ. 서론 -------------------------------------------------------------------- 3Ⅱ. 본론 ---------------------------------------------------------------- 3 ~ 241. 역사적 배경 ------------------------------------------------------------ 3 ~ 11* 1917년 혁명이전 ---------------------------------------------------- 3 ~ 81) 러시아 교육의 시초와 19C의 교육유산 ------------------------------------- 42) 1917~29년 간에 있어서의 소련 교육론 --------------------------------- 4 ~ 53) 1930년대의 교과과정 개편 -------------------------------------------- 5 ~ 64) 스탈린 시대(1939~54)의 교과과정 개편 ---------------------------------- 6 ~ 75) 스탈린 격하운동기(1954~61)의 교과과정의 개편 ------------------------------ 76) 브레즈네프시대(1964~78)의 교과과정의 개편 -------------------------------7 ~ 8* 소비에트 러시아의 학교제도 ------------------------------------------- 8 ~ 9*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교육 (복합법) ------------------------------------ 9 ~ 112. 사회적, 문화적 배경 ---------------------------------------------------- 11 ~ 141) 인구와 언어--------------------------------------------------------------112) 종교---------------교회와 종교에 관한 규칙」을 발표했고 내용은 국가로부터의 교회의 분리, 그리고 교회로부터의 학교의 분리독립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학교와 국가, 학교와 교회간의 이중적인 교육행정은 폐지됨으로써 교회는 교육권은 완전히 박탈당하고 말았다. 또한 모든 동종의 교육기관과 학습기관의 통폐합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 소련교육의 집중화, 단일화의 기초가 시작됐다.우선,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및 고등교육은 하나의 조직과 기관, 그리고 비종교적인 체제로 들어가게 됐다. 1928년 8월부터 레닌은 두 가지 형태로 러시아 공화국의 교육은 통합된다고 했다. 즉, 5년간의 초등과정과 4년간의 중등과정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두가지의 교육제도가 일반노동 교육과 종합기술 교육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러한 일원적인 학교조직은 당시까지의 복합적이었던 학교제도, 즉 3~5년 간의 국민하고, 상급 국민학교, 상업학교, 농업학교, 직업학교, 소련 문법학교, 종합 중등학교, 소녀 문법학교 등등의 학교형태를 극히 단순화시키는 결과였다.또한 「노동학교의 설치 기준령」으로 소비에트 교육학의 기본원리로서 학교와 정치와의 결속에 역점을 두게 되었으며 물론 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은 일체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에서 체육과 예능교육을 강조하고 아동들에게 자존심과 권위, 자립심, 적극성 그리고 도덕적인 성격을 개발하는 것을 단순한 지적 교육보다도 더 중요하게 다루었다. 집단적인 체벌은 엄금하였고 「교육선언」으로 극단적인 급진주의를 교육에 적용했다. 시험이나 숙제를 폐지하고 아동들로 하여금 노동교육과 기술을 익히도록 강조했다.1919년 볼세비키 제 7차 러시아 공산당 대회에서 학교는 완전한 공산주의의 성취를 위하여 대중을 이끌고 훈련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8세부터 17세까지는 강압적인 교육으로 행해질 것과 취학 전 교육의 강화, 남녀공학 제도의 시행등을 강조하게 되었다. 또한 문맹문제는 새로운 공화국 건설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 당시 250만에 달하는 부랑아들의 문제또한 심각했다. 그적이고 혁명적인 세력의 압력에 의해 실시되었다. 1905년 혁명에 의해서 불완전하나마 이럭저럭 입헌대의제가 성립되어, 교육의 문제도 국회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국회는 물론 보수세력이 좌우하였다. 이러한 국회의 보수세력과 정부에 의해 이 시기에도 또한 진보적 혁명세력을 억누르려 하는 노력이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에서는 그러한 세력의 요구에 대해서 양보하여 제도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마침내 1912년 6월에는 제 3국회에서 고등소학교 설치법이 가결되었다.이것은 그때까지의 도시학교를 개조하여 4년제 고등소학교로 만들고, 교구학교 등 소학교(4년제)를 이러한 고등소학교의 전단계로 하려고 했다. 그래서 고등소학교에서 2년 과정을 수료한 뒤 기타 중등학교의 제 3년차로 전입할 수 있도록(외국어 시험을 거쳐서) 했기 때문에 단선&사다리형으로의 기초작업을 꾸며낸 개혁이었다. 이 법률에 의해 개조된 고등소학교 및 신설한 학교를 통해서 1912년의 고등소학교수는 1천5백이고 1915년의 재학 아동 수는 20만 명이었다.1915년에는 「개정 소학교법안」이 제출되었는데 그것은 지방자치제에 취학강제권을 준다는 것(1870년의 영국의 초등교육령과 동일한 방식)으로 러시아에서 최초로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혁명의 발발과 국회의 해체 등 새로운 변혁이 도래함에 따라 성립되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그러나 혁명 직전의 러시아에서는 이미 전국민의 취학이라는 초등학교제도의 실현과 그것에 접속되는 방향으로의 출발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917년 혁명 전야의 러시아는 저 광막한 제국의 벽촌 어느 구석에 살고 있는 농민의 자녀라도 입학 할 수 있는 초등교육망을 갖추고 있었다. 중등학교와 대학은 그 특권적 성격을 상실하고 있었으며 학생의 대부분은 국민 중에서 중하층에 속해 있었다. 농민과 노동자의 아들과 딸 사이에서 새로운 인텔리겐차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보적이었으며 사회주의적 이었다. 이러한 학생들과 그 선배들은 여론을 움직여 지역 갈등이 예상된다. 이들 개별 민족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자치 지역들은 민족 종교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러시아와는 이해를 같이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명분과 존재 이유에 합당한 새로운 정치 체제의 형성과 유지를 바라고 있고, 이러한 바람은 러시아 연방과는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요구가 러시아로부터의 완전한 이탈보다는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 획득이라고는 하나 지방의 독자적인 외교권, 대외 경제 관계의 설정에 있어서의 독립성 확보, 석유를 비롯한 천연 자원의 관할 등 근본적으로 연방의 이해와 상충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1994년 러시아 연방 내에서 발생한 체첸 사태는 러시아의 중앙 권력과 자치 공화국 간에 마찰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같이 구소련 아래에서 강력한 힘을 간직하고 있던 러시아는 현재 많은 타민족의 반러시아 감정과 자체 연방 내의 소수 민족 문제를 안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4) 여성과 결혼관오늘날의 러시아 여성은 경제적으로 자립되어 있다. 여성 대부분이 거의 모든 직종에서 일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있고, 전문 직종에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여성의 취학률은 남성의 4분의 1, 문자 해독률은 남성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은 여성에게 참정권, 고용과 교육의 기회 균등, 동일 노동과 동일 임금, 이혼의 자유, 임신 중절의 자유, 모성보호 등을 보장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혁명과 내전기 동안 여성들이 새국가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도록 기여하였다. 스탈린 집권시에는 가정 제도의 강화 조치가 취해져 임신 중절 금지, 다산 여성에게 원조, 이혼 제한 등이 강요되었으나, 흐루시초프의 집권 이후 다시 여성의 지위는 상승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완전하게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볼 수 없는 사례들이 남아 있다. 저임금 직종에 여성이 많은 것과 승진이 늦고, 가사, 육아, 직장일 등 1인 3역의 역할을 해야 하고, 정치권과 노동 조합 내에처리된다. 또 과제를 주면 교과서,참고자료 등 모든 자료를 참고로 하여 자신의 의견을 기술해 평가를 받는다.⑤예체능교육의 활성화 : 음악,미술,체육 등 아름다움의 기초를 이루는 예체능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명한 예술인,예술품이 많이 있음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⑥전통 교육의 중시 : 러시아 사람은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러시아 곳곳에 전통을 중시하는 자취들이 많이 남아 있다. 모스크바에만 박물관이 180여개나 있으며 박물관에서의 현장학습과 견학 등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전통 악기 익히기를 비롯해 전통 의상,전통 미술,전통 놀이 등을 계승 발전시키는 활동이 활발하다.⑦문학교육의 보편화 : 국어시간 마무리단계에 시를 낭송할 만큼 시와 문학을 중시한다.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푸시킨 동상앞에 헌화하는 꽃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학가가 다수 배출된 배경에는 문학을 중시하는 교육이 있었던 것이다.⑧능력별 이동 수업 : 러시아 대부분의 학교에서 능력별 이동 수업을 하고 있다. 한민족 학교인 모스크바 공립 제1086번 학교,성 빼쩨르부르그 공립 제622번 학교 등 방문한 모든 학교는 물론 심지어 제31번 공립 유치원에서도 능력별 이동수업을 하고 있었다."러시아를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시인 축체프의 시 제목처럼 러시아는 잘 알 수 없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러시아가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원이 풍부하고 인적 자원이 우수하고 기본적인 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어 쉽게 망할 수 없는 나라라고 판단된다. 구 소련 말기에 경제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사 감축이나 폐교 조치를 절대 하지 않고 학급당 인원을 20명,교사 1인당 학생 7~8명으로 운영하였다고 한다.2)교육체제취학 전 교육제도탁아소(1∼3살) , 유아원(3∼6살)초·중·고등학교초등학교(1∼3학년), 중학교(4∼8학년), 고등학교(9∼10학년)기술 학교 제도상업학교(고등학교의 9∼10학년과 동일)상급 교육 제도기술학교(상업학교,
    인문/어학| 2003.12.01| 26페이지| 2,000원| 조회(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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