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워크들어가는 말많은 크리스챤이 직장이나 삶의 터전에서 믿음생활과 삶을 분리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주일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활동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삶과 지역사회에서의 일하는 수동적인 삶이다. 크리스천의 삶이 영적인 부분에서는 성경을 기둥으로 삼는 반면 나머지 부분은 국가의 문화적 가치관에 그대로 순응하며 살아간다.직장을 살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며 열심히 일하면서 일하는 의미를 모르며 살아간다. 크리스천 개개인의 감당하는 역할은 제각각이며 이 모든 역할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큰 그림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우리의 일은 이 땅에서 실현될 하나님의 사명의 일부이다. 일이 단순히 ‘직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직업 역시 일의 중요한 부분이다. 일은 삶의 모든 영역,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명 장차 오실 그분의 나라에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일을 재통합하는 과정,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과정이 우리의 출발점이자 기초다. 자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우리가 힘써 일하는 목적인 하나님나라가 모든 영광 가운데 반드시 임할 것이지만, 그 나라는 ‘가까이’에 있으며 오늘 이 시각 크리스천 개개인의 삶과 일을 통해 임하고 있다.우리의 삶과 일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연계되는‘라이프워크’로 변화한다. 우리의 삶과 일의 의미를 찾으며 신앙을 따라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목적이 분명한 크리스천은 온 우주가 도덕적이며 열려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인정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이 땅의 재원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잘못된 패러다임우리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하는데 일이란 무엇이고, 왜 일을 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만 해도 우리의 삶의 질서가 급격히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은 세계관에 의해서 결정된다. 많은 세계관 가운데 오직 성경의 세계관만이 객관적이다. 그 외의 모든 세계관은 하나님이 만드신 실체를 왜곡한다.세속주의 세계관은 영적인 실체가 없으며 오직 물질적 대응하기 위해 세계관을 재천명하며 교회를 세상으로 불러냈다.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세상은 돌아가고 분명한 목적의식과 인식을 따라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경적 세계관을 회복해 나아가게 된다.경건주의 17세기의 이 운동은 독일 루터교내에서 시작됐고, 기독교 전통의 확증보다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며 영적영역에 몰두하고 이원론을 부추겼다.계몽주의 17C-18C 계몽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과도기적 형이상학이신론을 바탕으로, 이성을 높이고 영적영역을 평가절하 하며, 교회는 정통적인 신앙과 실천으로 회귀했다.18-19C 기독교 부흥이 시작되면서 성경적 신앙으로 돌아가 영적인 삶을 통해 사회적 개혁이 일어난다. 영국에서는 존웨슬 리가, 미국에서는 조너던 애드워즈와 조지 핫필드가 부흥의 불씨를 당겼다.근대(19-20세기) 근대의 유물론은 1859년 찰스다윈의 종의기원이 발간되면서 더욱 공고해졌고, 교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거나 또는 거부하고 고대 그리스의 패러다임을 수용한 결과 교회는 분열됐다.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실체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세계도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우주의 본질과 인류의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요, 피조물에 관여하시는 편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삶의 일부가 아닌 모든 영역의 주님이시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자연적, 영적자본을 사용해 문화와 세계에 간여하라는 임무를 맡기셨고, 므나의 비유는 삶과 일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하나님 나라의 광대함을 보여주시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야 한다.우리는 이원론을 넘어 구분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자신을 드리며, 우리의 삶에서 참된 직업관을 가져야 한다.성경적 직업신학을 향한 발걸음크리스천은 상당한 일관성을 가지고 자신의 진전한 신학을 삶으로 드러내게 된다. 크리스천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학에 대해 생각하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생활, 지역사회, 직장 속에서 살아계신 그 그리스도의 초림과 우리들의 삶이 라이프워크의 의미이며 우리는 하나님 나라 전개에 각자의 자리만을 지키도록 부르심 받았다.문화적 사명문화의 어원은 “신적인 존재에게 바치는 예배 또는 경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문화 창조자로 지으셨으며 우리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그 사명을 수행해야할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든 그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창세기에 기록된 문화적 사명에는 사회적 사명과 개발의 사명이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참된 본질과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드는 일이며,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에게 책임과 기회를 주셨다. 문화는 사람의 숭배와 종교의 산물이다.사회적 사명은 인간이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늘리고 이 땅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도록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다.문화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영역과 물질영역 교차점에 있다. 문화비평의 지침이 되는 주된 문화적 틀은 하나님나라의 문화, 거짓문화, 자연문화 이 세 가지이다. 거짓문화는 진리에 관한 사탄의 거짓말을 믿는 결과물이고 이 말을 믿으면 나라전체가 빈곤, 죽음에 허덕이며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 자연적 문화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만 해당민족에게는 풍미와 생명을 더해주고 우리가 즐거워할 대상이다.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것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실체, 피조물을 더 많이 드러낼수록 선한문화이다.개발의 사명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권속을 관리할 청지기로 지으셨다는 것이다.타락한 세상에서 문화의 창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락 후 무질서해지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타락전의 세상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뜻을 따라 인간 간의 관계,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를 질서 있게 회복하는 것이다.라이프워크우리 삶과 일 전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생명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에게 임무가 주어졌다고 밝힌다. 삶 가운데 개개 있지만 똑같이 귀중하고 소중하다.하나님은 다양성 가운데 연합을 강조하셨다. 우리 각자의 은사는 서로 간 유기적 특징이 있고, 교회는 허물어지고 깨진 세상에서 하나님치유의 도구가 되기 위해 존재한다.하나님을 예배하고 청지기로써 피조물을 섬기라는 명령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주시는 부르심이다. 그 부르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 통찰력, 인내, 강건함을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라이프워크는 시공간을 구속해야 한다.라이프워크의 경제학경제학은 하나님의 정하신 법의 경계선 안에서 청지기로 자원을 관리하는 것이다.일과 돈의 사용에 대한 존 웨슬리의 좌우명은 경제에 대한 명쾌하게 설명하는 단순명료한 틀이다. 물질세계와 영적세계 모두는 하나님이 만드신 통일된 하나의 실체로 이해해야하며 존 웨슬리는 건강하고 도덕적인 일, 총체적으로 자신과 이웃에 덕을 세우는 일을 하라고 촉구한다.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경제적 시민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영적 존재이자 경제적 존재로 지으심 받았다. 나눔의 핵심은 예배로 하나님께 드리며, 공동체에 가장 큰 유익을 끼칠 직장을 택해야하며 시간, 재능, 자원과 삶의 방식은 청지기라는 위치를 반영해야하고 너그러운 공동체가 되어 진리, 복음, 정의를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규례에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섬기며 다양한 일터에 참여하고 말과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열방이 변하기 시작한다. 우주는 도덕적이며 우리는 형제를 지키는 자이자, 피조물의 청지기라는 이중책임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문화, 자선활동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 상황에서 성경적인 궁휼은 분명히 이해되고 적용돼야 한다세상속으로한 개인의 변화는 가족과 교회라는 제도를 통해 밖으로 퍼져 나가 공동체와 나라, 궁극적으로 온 세계까지 미친다. 예수님, 하나님 나라를 향할 때 가정과 사회가 변한다.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진리와 아름다움을 투영하는 공동체와 나라를 갈망하지만 생각 속에서 정의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고는 공동체에 정의가 실삼기 위해 준비하고 흩어진다. 천국 확장자들이 일하는 주된 목적은 돈이 아닌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인 것이다. 크리스쳔은 리더십과 섬김으로 어그러진 부분을 바로잡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대표해야한다. 우리는 청지기로써 라이프워크를 통해 성문을 취해야한다. 모든 크리스챤이 각자의 성문을 점령해야 한다.그리스도의 교회는 대적의 영토에서 활동한다. 개개인도 문화도 대적의 영향력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승리 하지만 그리스도의 종들은 일과 삶에서 타고 난 은사와 재능 능력을 사용해서 대적의 영토를 점령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에서 이스라엘가운데 거하셨듯이 담장 없는 새 성전에 거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할 특권과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염두에 두고 건설해 가야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하나님 나라의 ‘지금’과 ‘그러나 아직’의 중간기에 살고 있다. 우리의 직업은 우리의 고유의 영역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오실 날을 앞당기기 위해 일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열방을 제자 삼으라는 경이로운 명령을 주셨다. 주님은 분명히 명하셨다.“내가 돌아 올 때까지 점령하라!”성경적 관점..구약성경은 사람의 노동에 앞서 하나님의 노동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몸소 노동을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1장7절,16절,25절은 하나님께서 각각 궁창을,두 큰 광명을, 짐승을 '만드셨다'고 말하고 있고, 창세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그분을 즐거워하고 또한 그분의 피조 세계를 돌보고 경작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 26~28). 말씀하셨다. 2장7-8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사람을 위하여 동산을 '심으시는'노동을 하셨다.“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이다.
'철학자 예수' 서평도서명: 철학자 예수지은이: 더글러스 그루타이스옮긴이: 이경직교수출판사: 연암사들어가는 말'철학자 예수' 정말 낯선 표현이다. 철학자라고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를 떠올린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예수도 그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상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는 철학자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미국 덴버신학대학원 철학교수인 더글러스 그루타이스 박사의『철학자 예수』는 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는 자신의 신앙이 철학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인류의 문화와 사상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한 기독교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옮긴이의 말을 통한 간략한 내용요약과 예수의 여성관에 대하여 더 집중하여 살펴보려고 한다.2. 내용요약1장 저자는 종교가 비이성적이고 초월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이성적이고 내재적인 측면까지도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수가 인류문화와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현대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사상과 철학을 알 필요가 있으며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철학적 시각에서 제시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 저자의 관심은 기독교의 역사나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아닌 예수의 철학에 있다.2장은 역사에 나타난 예수”에서는 예수를 역사의 인물로 다루므로 이 책에서 다룰 전체적인 논의에 필요한 기초로 삼는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서 철학적 시각에서 묘사할 수 있는 근거를 복음서에서 찾는다. 3장에서는 예수가 논리와 합리성을 무시하지 않고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증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논리적 능력을 보여 주었다. 증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4-6장 예수의 존재의 문제, 실재적인 것을 어떻게 아는지의 문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언급하며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 철학의 세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또 실천적 삶에서 구현되는 건전한 기독교 세계관이 예수의 철학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7장에서는 여성문제와 관련하여 예수가 여성에게 큰 가치와 존엄을 부여했는지 설명한다. 마지막 8장에서는 예수의 부활이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주장의 옹호를 위해 여러 가지 논증을 제시하고 있다. 앞 선 장들이 예수를 철학자로 다루고 있지만 8장에서는 예수의 정체와 십자가의 죽음, 부활이라는 주제가 철학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음을 인정하며 판단의 고민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다.3. 예수의 여성관예수 당시 시대에는 여성의 영향력은 매우 낮아 가정생활에만 제한되어 있었다. 물론 히브리 성경은 존경 받을만한 여러 여성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선지자였으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드보라'가 있으며, 미리암과 휼다, 에스더와 같은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이들의 경우 규칙이라기보다 예외였다. 이런 문화적 맥락에서 예수의 여성관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도마복음의 마지막 말에는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당시 여성의 지위를 짐작케 한다.당시 남성들은 성적범죄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여겼지만 예수는 남자의 개인적 책임이라고 판단했다.여자에게만 해당되었던 간음 또한 남녀 모두에 해당하는 죄로 여겼으며, 회개한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여성들 중 가장 멸시 받은 창녀가 예수의 메시지에 보인 반응으로 칭찬을 받았다.예수는 여성들을 관심을 보이고 존중함으로 경멸의 대상에서 여성존엄성을 회복시킨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성에게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다고 선언했으며 구원을 받았다.(눅7:50) 많은 여성들의 질병을 고쳐 줌으로 여성에 대한 동정심을 보여 주었다. 사회적 종교적 관습을 외면하면서 접촉을 허락한 혈우병 여인(마9:20), 18년 동안 다리를 절었던 여성을 고치고 '아브라함의 딸'이라 불러 칭찬과 존경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종교적 유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확인이다. 그 밖에 베드로의 장모(마8:14-17), 야이로의 딸(눅8:40-56)등이 있다.또한 예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막12:41-44)등 여성들을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훌륭한 사례들로 여겼으며 남성적 종교 엘리트에 반하여 많은 비유의 말씀들(마24:40-41, 마12:42) 성차별을 보여주지 않는다. 예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두었으며 그 기준을 삼았고, 마르다 마리아(눅10:38-42) 등 말씀에서 여성들에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것은 유대인 집단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일이었다.예수는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요4:5-42) 같은 버림받은 여성들과의 상호작용에도 꺼리지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예배에 대한 신학적 예언이 나오고 있는데 예수가 당시 여성과 신학적 논의를 하신 것은 주목 받을 만 했다.예수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하나님이 인류와 함께 걷는 길들에 대해 대화할 가치를 지닌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여성사도가 없음이 여성을 배제한 것 아닌가하는 주장이 있으나 성경속의 여러 고찰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는 무방비 상태의 과부들을 착취하는 사람을 탄핵한다(마12:38-40). 복음서에서는 여성들이 예수의 가까운 제자들 가운데 있었다고 보고한다. 마르다와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수산나 그 밖의 여성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예수와 남성 제자들과 함께 여행한 것을 볼 수 있다.예수의 여성 제자들의 신실함은 예수 사역의 마지막 날들에 잘 드러나 있다.남성제자들과 달리 예수의 십자가 처형 때 그 곳에 있었으며(마27:55-56), 예수의 장례를 지켜보았고(마27:61),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 남성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증언한 인물들도 여성들이다.여성들이 예수 사역 동안 제자와 전도자로 포함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초기의 유대인 사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초기 이후에는 더 이상 교회의 리더쉽의 모델 역활을 하지 않은 것에도 주목한다. 당시 신실한 이방인들과 여성 리더쉽들도 섬겼다는 증거들이 있다.나가는 말간략한 내용 요약을 살펴보았다. 예수 당시 신약시대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낮았다. 요세푸스도 “여자는 모든 것에서 남자보다 열등하다”라고 그 시대 상황을 요약하였을 정도다. 그런 배경 가운데 여자들을 치유하고 그들이 자신을 만지고 따르도록 허용 했을 뿐 아니라 여성들과 더불어 제약 없이 말씀하셨다. 이 같이 예수님의 여성에 대한 관심과 인격적인 존재로 존중함은 매우 개혁적이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사역과 여성 제자들의 역할은 긴밀하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1. 다원주의 문화 속의 도그마와 의심유럽 사회는 차 세계대전 이래 종교 다원주의 방향으로 이동해 왔다. 많은 도시들 속에 힌두교, 시크교, 불교, 그리고 무슬림 공동체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사회에서 복음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이 이미 틀림이 없는 존경받을 만한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종교를 억지로 그들에게 주입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교만이 아닐까?성경적 세계관과 인본주의적 세계관의 긴장과 갈등성경에 의해 형성된 세계관과 인본주의적 세계관의 갈등에 있어서 둘 사이에는 긴장이 있고 그 가운데 인본주의적 전통, 세계관이 둘 가운데 더 강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성경은 이성과 양심의 심판대 앞에서 더욱 자신의 정당화해야했고 그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자 긴장은 분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비판적 검사를 통한 것들만 공적인 진리로써 사실이라고 가르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교의(도그마)였다.이런한 상황에서 복음을 진리하고 전 할 수 있겠는가?기독교에서 말하는 교의의 본래적 의미‘도그마(교의)는 …인 것 같다는 의미로 교회사를 보면 권위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교의에 대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이 지적인 성숙과 능력을 나타내는 특징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가 권위있게 그 무엇을 선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선포라는 것, 곧 예수님의 사역과 죽으심 부활하심, 계시하시고 성취하시는 것 등은 믿음을 요구하며, 유일한 진리로 선포 할 뿐이다. 복음은 인간의 경험으로 인해 진실성 여부가 증명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재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즉 믿음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도그마에 대한 반발과 다원주의적 사고도그마(교의)는 목음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교의는 은혜의 선물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 복음 believe) 사이의 이상한 분리현상이 있다.개인적 믿음만을 중시하는 사회자연과학의 성공은 목적에 관한 문제를 제쳐두고 자연현상 가운데 인과관계를 추적하는데 집중했기에 가능했다. 어떤 물건이 무슨 목적으로 설계 된 것 인지를 알아야 좋은지 나쁜지는 평가가 가능하다. 만일 인간의 삶의 설계 목적을 모른다면 어떤 생활방식에 대한 말할 수 있는 토대가 없어진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하는 일은 인격적 존재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각자 나름 판단한다. 그런 판단은‘개인적 신념’의 문제이다. 만일 누군가 우주와 인간의 창조의 목적을 말해주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써 아주 중대하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사실이 될 것인데 우리 사회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의 타당성 구조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란블룸은 「미국적 지성의 종말」에서 상대주의와 주관주의가 군림하는 세상을 말하는데 ‘가치’의 언어가 전통적인 ‘옳고 그름’의 언어를 대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언어를 사용할 만한 사실적, 존재론적 토대가 제거된 것이다. 그 이유를 막스베버나 니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권력에의 의지밖에 없다. 사실이란 우리가 인정하지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가치란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며 가치는 사실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새로운 도그마로 등장한 회의주의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란 책에서 사물은 언제나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 것은 바로 망원경의 발명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것은 너무도 뻔한 사실이라 생각하지만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겨났다. 데카르트의 작업이 바로 이런 불안에 대한 반응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자기 생각 속에서 의심의 여지없는 출발점을 찾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로부터 유럽사상을 지배했던 급진적 이원론이 전개되었다. 우리의 감각으로 실재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는 태도는 그 후 등장기경계선이 그어지게 된 계기는? 현미경의 발명이다. 사물이 자기가 생각 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 보이는 것과 똑같이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겉으로 보이는 사물에 대하여 속지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확신하는가? 하는 의문을 출발점으로 유럽 역사가 새롭게 전개되었다. 결론은 회의론이 등장하게 되었다.데카르트 회의론 비판(1)지식의 확고한 토대를 찾았으며 그가 원했던 것은 분명하고 뚜렷한 개념, 단어 그리고 의미가 확실한 관념의 토대 위에 체계적으로 지식을 구축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 이상은 수학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수학에서는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분명하고 뚜렷하며,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일관된 방식으로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회의주의의 경우처럼 다시 몇 가지를 들어서 데카르트의 회의론을 비판해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출발점을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에서 찾았다. 저자는 세 가지 의문점을 제시한다. 첫째로 거기에는 이미 상당한 신앙의 행위가 존재한다는 점인데 사물의 실상을 인식하는 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오류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일까?둘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는 말을 의심할 수 없는 증거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생각하는 자아 밖에 있는 실재와 접촉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셋째, ‘명석하고도 판명한 관념’에 도달하려는 프로그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개념이라는 것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을 때에만 유용하다는 것이다. 단어의 완전한 의미는 그 언어의 형성 배경이 되는 문화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개’라는 의미가 확정적일 수는 없다. 개는 일부 문화에서는 애정의 대상, 또 어떤 문화에서는 쓰레기를 뒤지는 경멸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개’라는 단어가 두 문화에서 명확하게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며, 그 단어의 의미를 남김없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데카르트 회의론 비판내재적인 아름다움과 온전함 때문에 사실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뒤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 인해 증명되었다. 이는 우주의 합리성으로부터 그것을 믿고 또한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기에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이론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주의 합리성을 믿는 신앙행위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정당성이 믿음으로 확증된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신앙도 이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개념들 자료의 분류, 과학의 도구 역할하는 이론 등이 하나의 전통을 이룬다. 과학자들이 작업은 그런 전통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공동체적 성격을 가진 전통의 권위이 전통의 권위는 과학자 공동체에 의해 유지 된다. 전통의 권위는 회원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지탱된다. 과학 저널에 보내진 논문 가운데 빛을 보지 못하는 논문이 많은 것은 공인된 전통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을 신중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과학은 발달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또한 파격적 변화의 여지를 열어 놓지 않으면 과학은 정체되고 말 것이다. 정리하면, 혁신은 전통을 이미 섭렵하고 있는 사람, 즉 전통이 이미 몸에 익숙해져 있고 완전히 전통 안에 거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숙련된 전문가들만이 책임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새롭게 주장되는 사실 또는 심지어 많은 사실도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신뢰를 불신하게 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고 말한다.전통의 권위는 무엇에 의존하는가?전통의 권위는 그 내부에 기반을 둔다.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시각과 마찬가지로 과학도 순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즉 처음부터 자기를 증명하려는 그 진리를 가정하고 들어가야 된다. 그리고는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증명한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글에서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하였다. 어떤 개척자가 기존의 전통에 도전하고 파격적 대안을 제시할 시점에 도달했다면, 전통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에 더욱 부합하게 만듦으로 강화시키기 위함이다.기독교 전통의 권위 문제전 하나는 이성에 달려 있다는데 있지 않다. 진정한 차이는 본래의 경험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나는 발견했다’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이다.마틴 부버가 말하는 두 가지 경험 세계부버는‘나-그것’세계의 경험과‘나-너 세계의 경험을 구별했다. 전자는 자율적 이성의 세계로서, 이성이 통제권을 갖고 마침내 나는 발견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그것(대물 관계)의 세계에서는 내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 내가 무근 질문을 던질지, 무슨 테스트를 할지 내가 모든 것을 통치한다. 대인관계의 세계는 이와 다르다. 상대방이 협조하지 않으면 별 성과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고 그것을 난 자율적 이성과 더불어 개발된 도구들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 관한 엄청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 범위는 사실상 무한하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내가 인격적인 관계에서 얻는 지식과 전혀 다르다. 즉 내가 상대방을 자유로운 주체로 신뢰하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고 도전을 받는 등 주권적 자율성을 포기하고 - 상대를 신뢰하고 경청하는 사람이 될 때 얻는 지식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 차이는 이성의 사용과 이성의 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데 에 있다. 하나는 자아가 왕좌를 차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입장이다·이성과 계시에 대한 바른 이해전통적인 신학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이분법은 이성과 계시를 구분하는 심각한 오해에 빠졌다. 문제는 사물의 실상에 대한 두 개의 다른 견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을 자기 형상에 따라 만드셨고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에 증거를 남겨 두셨다면, 하나님이 존재하신 다는 가설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자료도 분명 존재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유의 지식과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고 신뢰 하는 어떤 사람을 아는 지식 사이에는 근본적인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자연신학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다.
바울유대인, 로마인, 그리스도인제1장 회심 이전의 바울바울에 대한 정보는 신약의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 그리고 베드로의 서신에서 볼 수 있다. 성경 이외의 글에서도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런 정보는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신약에서 바울에 대한 처음 언급은 스데반의 죽음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 앞에 놓았다(행7:58) 이 구절에 나타나는 청년이라는 단어는 40세 이하의 젊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25세에서 40세까지의 사람에게 넓게 사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바울이 성경에 처음 등장 할 때에 그의 나이는 40세 이하였다는 것이 확실하지만,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바울은 성경에 등장하기 전에 그의 어떤 삶의 배경 속에서 살았을까?바울은 자신의 고향을 다소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와 거의 동시대에 다소에서 태어났고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행 9:11, 31장 11:25, 21:39, 22:3) 그는 다소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같다. 당시 다소는 소아시아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다소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고 무역 도시였다. 또한 학문이 발달한 도시로 유명한 대학이 있었고 학문적이고 철학이 왕성한 도시로 스토아 철학의 중심지였다. 바울의 조상은 다소에 정착하여 헬라 문화 속에서 살았다. 바울의 조상이 언제 어떻게 다소에 정착했는지 알 수 없다. 헬라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지중해 세계로 흩어졌다. 경제적인이유로, 혹은 전쟁에 패하여 노예로 끌려가기도 했다. 유대인인 바울의 조상도 헬라 문화 속에서 살았다.로마 시민권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받은 사람이다(행22:28) 로마 시민들은 헬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소는 제국의 동부에 속하므로 헬레니즘의 영향이 컸던 곳이다. 바울이 이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헬라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했 다메섹까지 가는 열정을 가진 자였다. 그러므로 바울의 교회에 핍박에 관한 소식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음을 알 수 있다(행9:13-14)바울의 열심과 나무에 달린 예수바울은 왜 이렇게 혹독하게 교회를 핍박했을까? 그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핍박했던 열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었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경건한 바리새인이었기에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한 이유는 율법에 대한 열심 때문이었다. 율법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당시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보면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성전에 대한 바울의 열심 때문에 교회를 핍박했는데 유대인들은 성전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생각했다(행7:48) 그러므로 성전을 모독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바울은 하나님, 율법, 성전에 대한 열심히 특별했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했다. 바울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표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또 바울이 교회를 크게 핍박한 이유는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나무에 달린 자가 저주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3) 기독교도들은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신 메시아라고 선포했기 때문에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초대 교회의 선포는 신성모독에 속한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말씀을 따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이기 때문이다.제3장 바울의 회심과 소명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남과 아나니아와의 만남하나님의 섭리는 바울의 핍박을 통해 기독교를 세계 속으로 흩어지게 하여 복음이 증거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울의 핍박을 피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간 이유는 다메섹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기 위한 것이 아니고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Perga)로 향했다.바울과 그의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 사도행전 13장은 바울이 회당에서 설교하는 내용이 나온다. 회당장들이 “백성을 권할 말이 있으면 권하라”라고 말하자 바울이 손을 들고 일어서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회당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있었다. 이방인 중에 일부는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아직 유대교로 개종하지 아니한 이방인들도 있었다. 유대교로 개종하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 개종하지 않음으로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당시 헬라 사회에서 할례는 야만인의 풍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할례를 받고 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유대인에 대한 복음의 우선권, 즉 구원사의 우선순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율법 준수와 음식물법 준수 그리고 할례 같은 것을 억지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음 그 자체였다. 결국 바울의 복음을 가장 먼저 수용한 자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방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바울의 설교가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선포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선포는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신성모독이라 생각하여 교회를 핍박했었다. 바울의 설교에 대한 초기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그러나 회당에 모여 있던 이방인, 즉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추종했다. 이방인들이 바울 일행을 따르자 바울 일행을 유대인들은 노골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들 이방인을 중심으로 안디옥에 교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선동하여 바울 일행을 핍박하도록 했다. 그러므로 바울 일행은 안디옥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고니온으로 향했다. 그들은 안식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복음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행동이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대했다. 디모데는 할례를 받은 후 바울과 동행이 되어 전도 여행을 떠났다.바울 일행은 소아시의 여러 도시들에 있는 교회들을 다니면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정한 규례를 전했다. 그러나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지나 무시아에 이르렀다.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드로아로 내려갔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복음 증거를 위해 마케도냐로 갈 것을 권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바울 일행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었다.바울, 실라, 디모데 그리고 누가는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본 후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가기 위해 떠났다. 아마도 바울 일행은 밤에 사모드라게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네압볼리로 향했을 것이다. 네압볼리에 도착한 것은 기독교 역사에 아주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네압볼리에 도착한 후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빌립보 성으로 들어갔다.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거의 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유대인의 회당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회당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도처에 모여 있는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때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 장사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저와 그 집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성경에 기록된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빌립보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울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쫒아내자 그녀는 더 이상 예언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그녀를 통해 많은 수입을 얻은 주인들은 자신이 더 이상 그녀를 통해 소득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을 알자 바울과 실라반대가 일어났고 사도권에 대한 도전도 일어났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서 많은 수모를 당하고 고린도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울은 슬픔을 안고 아시아로 다시 돌아왔다. 바울은 다시 혹독한 내용의 편지를 써서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로 보낸다. 복음을 위해 드로아로 갔지만 고린도에 편지를 보내 놓고 마음이 편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디도가 마케도니아로 와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바울은 고린도에서 머문 후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함으로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돌아가기로 작정했다(행 20:3). 바울은 빌립보로 갔고 그곳에서 누가가 바울과 합류했다. 바울과 누가는 빌립보를 떠나 드로아로 행했다. 바울 일행은 앗소와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한다. 바울이 에베소로 가지 아니하고 밀레도로 간 이유는 예루살렘에 정한 기간 안에 도차가기 위해서였다. 즉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배소 교인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을 청하였다.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이 도착하자 바울은 자신이 지난 3년 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의 회상과 더불어 자신의 사역의 정신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이익을 위해 일하지 말고 본을 보이라고 권하며 교회를 진리로 잘 가르치고 거짓 교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회를 돌보라고 권고했다.바울의 심경이 착잡했던 것 같다. 그는 성령의 인도 속에서 결박과 환난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사명감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주을 위해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담대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바울이 가이샤라 빌립의 집에 머무는 동안 유대로부터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결박되어 이방인이 손에 넘겨지리라고 예언했다. 그곳에 모인 자들이 울면서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권했지만 바울은 단호하게 말했다.
신약신학: 현대 논쟁의 기본 이슈들 -게하르드 하젤1장: 신약신학의 시작과 발전본 장에서는 성경신학의 시작부터 주요 동향을 역사적으로 개관한다. 신약신학의 범위, 목적, 본질 및 신약신학이 가능한가 하는 근본 문제의 해결은 신약신약이 성경 신학에서 나온 가지이므로 신약신학과 성경신학이 함께 연구되어야 한다.1. 종교개혁으로부터 계몽시대까지초대 기독교 속 신약시대 교회는 성경신학이나 신약신학을 개발하지 않았다. 이유는 정경문헌이 바로 보편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믿어진 교회의 교리와 동일한 것이었다. 종교개혁 전까지는 신약 또한 교회의 전통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스콜라 철학자들과 교회 전통에 대해 "오직 성경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성경은 전통보다 우월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리가 도입되면서 성경신학이 발전하는 계시가 되었다. 개혁자 중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참된 성경이며, 그 결과 율법과 복음이 구분됨을 말했다. 이러한 구분은 성경의 “통일성”과 “정경 속의 정경”이라는 쟁점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성경신학은 초기 개신교 전통신학의 전통적인 교리학에 대한 보조적인 역할만으로 이해되었다. '성경 신학'이라는 용어는 재세례파에 속한 1530년대의 사람 오스왈드 글래이트와 피셔에 의해 제시되었고, 100년후에 볼프강 야콥 크리스트만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독일 경건주의의 주장은 성경신학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고, 이들은 “성경신학”으로 정통주의 교리체계를 반박하였다. 1745년에는 계몽시대에 합리주의의 영향 하에서 성경신학은 '교리(조직)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었고 독립적인 학문으로의 한 분야가 되었다.2. 계몽시대계몽주의 시대에는 성경 연구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들이 개발되었다. 먼저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의 최종 권위가 거부되며, 역사비평이라는 새로운 해석법 등장과 성경에 대한 급진적인 문서비평의 적용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성경은 영감에 대한 고, 그것은 1918년 자신의 명저 로마서 주석의 서문에 강하게 반영되었다. 그는 변증법적 신학을 태동시켰는데, 그는 신인관계에서 계시의 출처로서 하나님을 강조하는 신학을 주창했다. 그는 “후 비판적(역사 비평 이후의) 성서 해석을 요구하고 실천하였다불트만은 종교사학파 출신으로 순수한 역사적 방법을 사용했다. 양식비평과 비신화화 이 양자를 창시했다. “종말 일관론”의 입장 안에 머물렀으며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을 자신의 신학의 전제를 삼았고 신약의 메시지(케리그마)를 재해석하여 신신학적 문제와 역사적 문제를 결합시키는 시도를 하였다.후볼트만 학파는 에른트 케제만, 폭스, 로빈슨, 마틴켈러 등 불트만의 제자들로, 역사의 예수가 신앙에 적실성이 없다는 불트만의 주장을 반발했다.페터 스툴마허는 승인의 해석학을 주장했는데 성서 말씀의 내재적인 능력, 신앙의 지평과 교회의 경험, 초월성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리와 만나기 위한 개방성, 신앙의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을 위한 충분한 여지를 포함하는 해석학이다.구속사적인 신약신학 방법에 이르러서는, 이 방법이 폰 호프만, 짠, 쉴레터 등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연구방법은 쿨만을 통해 가장 열정적으로 추구되었다. 차일즈는 미국의 ‘성경신학 운동’을 탁월하게 정리해서 소개한 사람이다. 그의 ‘성경신학 운동’의 특징은 철학 체계들에 대한 반대, 히브리 사고와 헬라 사고의 대조,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 강조, 환경에 대조되는 성경의 독특성, 예전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 역사 속의 하나님의 계시 등이다.성경신학의 역사적인 개관을 통해 신약신학의 기원과 다양한 역사를 조명했지만, 근본적인 이슈들은 미해결로 남아 있고, 학자들이 계속 논쟁해야 할 주제이다. 다만 신약신학의 본질, 기능, 목적과 한계 등에 대한 현재의 논쟁의 주요한 뿌리를 조명하는 것이며, 현재의 성경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생각해야하고 보완·수정해야하고, 발전시켜야할 부분이 어디인지 그 윤곽을 제시해 준다.제 2장 신약신학의 방법론방법론의 문제는 근본저 예수를 신약신학의 전제로 보는 불트만과는 달리 역사적 예수를 신약신학의 전제도, 주제도 아니라고 한다. 그는 역사적인 예수는 신약신학의 주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약신학의 문제는 왜 신앙이 승귀하신 분을 부활 후 현현 이후에 나사렛 예수와 동일시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둘째는 책의 구조를 바꿔 자신의 신약신학서에 일관성을 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공관복음의 내용을 신약신학의 개념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런 방법론 외에도 그는 신앙의 본래 본문들, 신조의 가장 오래된 형태들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초기 기독교 신조를 전제하고 그것과 공관복음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연결하길 거부했다. 전체적으로 콘첼만의 경우도 신학이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신학은 곧 인간학이다. 신앙이 새로운 자기 이해를 가져온다. 불트만은 본문의 재구성이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매체를 통해 현대인을 위해 해석되는 “해석”을 강조했지만 콘첼만은 “역사적 재구성, 즉 신약시대에 의해서 조건화된 신약시대의 사고 세계에 대한 제시”강조했다. 이런 작업에도 불구하고 불트만과 콘젤만의 실존주의적인 접근법은 신약 전체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여러 질문들이 제기되었다.3. 역사적 접근법역사적 접근법에 있어서는 킴멜과 요아킴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신약신학에 대한 콘첼만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가장 대조되는 사람이 킴멜이다. 그는 예수의 선포, 원시 공동체의 배경에 비추어 바울과 요한의 신학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제시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선포 형태들에 나타난 통일성에 대하여 조사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킴멜은 예수의 선포, 원시 공동체의 배경에 비추어 본 바울의 신학, 요한 복음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메시지(그 본질적인 특성면에서)를 제시하고 이러한 제시에 근거하여 이러한 선포 형태들에 나타난 통일성에 대해 조사한다. 킴멜은 불트만과 달리 바울은 예수의 건전한 증인이며 해석자라고 한다. 요한은 예수의 인격뿐 아니라 예수가 이룬 구원을 한 방법론적 문제들 중의 하나는 신약신학에 있어서 예수의 위상이다. 기독교 신앙이 실로 예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가? 혹은 그것이 초기 기독교회의 구조물인가 하는 것이다. 셋째는 방법론의 문제에 있어서 신약신학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혹은 신약과 그 세계의 역사적 연구가 브레데가 말한 것처럼 “초기 기독교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넷째는 신약신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본문들의 역사적 재구성과 신학적 해석의 문제이다.제 3장 신약신학의 중심과 통일성1. 이슈신약 연구에 있어 가장 뜨겁게 논쟁되고 있는 이슈들 중 하나는 신약의 중심과 통일성에 대한 문제이다. 신약의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신약신학을 하나의 중심에 근거하여 제시하느냐 아니면 복합적인 중심에 근거하여 하느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신약의 중심에 대하여 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 첫째는 신약 자체의 중심과 통일성 문제, 즉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을 분별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밑을 하나로 묶어 주는 어떤 것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둘째는 신약신학을 체계화하는 원리로서, “정경 속의 정경”을 주장하는 “내용비판”에 대한 기준으로서의 중심 문제이다. 후자는 “권위/분해”, “전체/선별”, 그리고 “객관성/주관성” 같은 반제들을 암시한다. 신약의 가장 적절한 중심에 대한 문제는 신약신학을 제시하는데 중심이 필요한가의 문제와 함께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2. 신약의 중심을 향한 연구1) 인간론:불트만과 제자 브라운은 인간론이 신약의 중심으로 보았다. 불투만은 이것을 갖고 신약을 재구성하는 실존적 해석의 길잡이로 사용하였다. 그는 바울신학과 요한신학의 인간론적인 중심이 신약신학을 구조적으로 정리하는데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제는 신약에 통합된 기독론이 결여 되었다면 통합된 인간론도 결여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브라운의 신악적인 인간론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 않고 기독교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시도였다. 브체를 적절하게 살리려는 신약신학의 방법은 임의성, 주관성, 축소주의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는 성경 바깥(전통)으로부터 혹은 안으로부터 하나의 중심을 선택에서 찾는 선택원리에 내재하고 있는 문제이다.제 4장 신약신학과 구약1. 비통일성과 불연속성의 형태들1) 신약의 과대 강조-구약의 과소 강조:말시온적 입장은 기독교 안에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하르낙 ,프리드리히 델리취 등에게도 말시온적 입장이 나타났다. 불트만은 신구약의 연결을 말시온적 입장으로 실제의 역사과정 속에서 추구했다. 그러나 불트만은 구약이 실패의 역사라는 식으로 이러한 연결을 규정해 버렸다. 그는 구약을 역사의 유산으로 보았고 구약은 이러한 실패를 통하여만 일종의 약속이 된다고 하였다. 구약은 신약의 전제일 뿐이다. 불트만은 구약과 신약의 완전한 신학적 불연속성을 주장했다. 바움게르텔은 불트만과 함께 신구약의 불연속성을 루터적 율법과 복음의 이분법 면에서 강조했다. 바움게르텔 역시 신구약의 불연속성을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은 구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성육신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접근법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붕괴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도 붕괴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슈미트는 바움게르텔의 “기본적 약속” 개념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언 성취에 대한 신약의 논증들이 반유대적 변증에 불과한 것이고 신약시대에만 적실성이 있다는 식으로 논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불트만이 그랬던 것처럼 “정경으로부터의 증거”의 의미가 신앙에 의해서 신약의 인용 방법을 현대 문헌비평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비판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신약의 인용구들은 전통의 통일성을 전제하고 구약 안에 있는 보다 넓은 맥락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주요 단어들과 주요 모티프들과 개념들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2) 신약의 과소 강조-구약의 과대 강조:스펙트럼 반대편에 신약을 희생하면서 구약을 너무 많이 강조함으로 신약과 구약 사이에 비통일성이나 불연속성이 있다고 보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