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 대지진은 1923년 일본지역을 강타한 진도 7이상의 강한 지진이였다. 이로 인해서 일본은 국가적, 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내각은 민심수습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야했고,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위기 의식을 조성해야 했는데, 이 위기의식을 조성하는데 재일 한국인이 이용된 것이다. 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경우인가. 이런 상황에 그쳤다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조선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그들이 자행한 일들은 실로 엄청난 것들이였다. 수업시간에 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의 참사에 관한 다큐는 그들이 가장 많이 학살당했던 아라카와 강을 보여줌으로써 시작되었다. 아라카와 강은 그냥 보기에는 한강과 다를바 없는 여느 아름다운 강이였지만 그당시에 죽어간 조선인들의 피와 한이 맺혀있는곳이였다. 이 강주변에서 영문없이 죽어간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은 일명 ‘봉선화회’라는 모임이였다. 나는 으레 그들의 주체는 한국인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들은 한국인들이 아닌 일본인이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이 억울한 조선인들의 시체발굴식이 사건이 있은후 약 50여년이나 지나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그 주체마저 봉선화 회원들이 조선인에게 바치는 첫째 사죄로서였다니 과연 우리 한민족이 죽어간 사건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 다큐를 보다보면 아주 잔인하고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조선인을 말살하려한 일본인들의 행태가 자주 나온다. 아이들마저 조선인들을 죽이기 위해 죽창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처음에 하나 둘씩 퍼져나간 유언비어로 인해 결국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한 일본인들의 생각자체는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였고 그 유언비어마저도 사전에 은밀히 계획된 것이라는 사실은 만약 그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데 추호의 재고의 가치도 없다. 일본에서 40여년간 관동대지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강덕상 교수의 “관동대지진때 중국 사람들도 많이 학살을 당하였지만 정작 중국인에게는 보상금이 나오지만 한국에게는 보상금이 나오지 않는다”라는 말은 그 사건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일본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주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과 일본인의 잔혹한 만행으로 흐름을 이끌어 가던 이 프로는 중반부부터 한국인들의 문제점에도 하나둘씩 내비치기 시작한다. 물론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들의 사건 하나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영락없는 피해자요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가해자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건이 흐른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잊혀질 수 없는 불행한 사건에 대한 대처는 뭔가 바뀌어도 단단히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즉, 세월이 지날수록 더 그 사건을 파헤치고 죽어간 영혼들을 추모하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쪽은 피해자인 우리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누가 보아도 그에 합당한 대처를 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가까운 실례를 들어도 알 수 있는데 일본은 이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언급이 모든 전 교과서에 78년부터 실리기 시작했고 그 내용도 점점 상세해 지는 추세라고 한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작년에 비로서 교과서에 실리기 시작했고 그 내용이나 실상도 한두줄에 그치는 어처구니 없는 실상이다. 그에 대한 결과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양국간의 시민들에 대한 인터뷰에 대한 반응에서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들의 참사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모든 일본인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반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피해를 당하고도 가해를 한 나라보다 그 사실을 빠르게 잊어간다는, 아니 오히려 그 사건조차 모르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까 언급했던 봉선화 모임 말고도 일본내에는 중학교 교사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에 대한 추도모임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모임에 대해선 일절의 소개도 그들의 활약상도 소개하지 않았는데 물론 그런 모임이 없진 않겠지만 일본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인식자체가 큰 문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다큐에 나온 일본에 사는 박복순 할머니는 관동대지진 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경우이다. 꿈에서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남편이 자주 등장한다는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마지막에 의미있는 말을 하셨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한다”라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 참 인상적이였다. 아픈 과거를 생각하면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 그녀의 남은 삶은 하루하루의 미래를 위해서 사는 것이였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가 과연 뭘 느껴야 하는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간을 생각하게 해주었다.지난 주말에 집에서 신문을 읽다보니 흥미로운 칼럼기사가 눈에 띄였다. 일본의 역사바꾸기란 내용의 칼럼이였는데 일본의 일부 우익 정치가들이 한일합방에 대해 “한일합방은 원래 100만명의 한국인들도 바랬던 것” 이라며 이를 일본내 국민들에게 하나의 역사적인 이슈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내용이였다. 여기서 나온 100만명이란 수치는 확인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당시 일본내의 문서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그들의 역사바꾸기의 끝은 정말 대책이 안설 정도로 어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본의 망언들을 언론에서 접하면서 그저 탄식하고만 있다. 행동으로 실천으로는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냥 앉아서 대책없는 탄식만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일본이 강대국인 것,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것과 역사적인 진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분적인 외교에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있을 수 있겠으나 역사의 뿌리가 되어야 할 진실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당연히 받아야 하지 않나. 그러나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될 사실은 그것을 행하는 주체가 국민의 일부가 아닌 국민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며,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조선적 문제에 관하여)재일동포의 국적은 '조선'과 '한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많지 않다.설령 안다 하더라도 조선 국적은 곧 북한 국적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쉽상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다큐를 보기전에 조선적이라는 말의 뜻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던 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다큐를 보면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조선적의 단어가 가지는 의미와 그들의 처한 상황, 우리의 잘못된 시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조선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 정부는 아직도 한민족의 대우를 해주고 있지 못하다. 여권이 없는 이들은 일본에서 발급해주는 '재입국허가증'으로 다른 외국을 드나들 수 있지만 한국 방문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 민족이 분명한데도 이들은 말 그대로 국적이 불분명하게 되버린 국제적인 미아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다큐에서 나온 ‘오덕주’라는 사람은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적이다. 그는 일본에서 온갖 차별을 다 경험했지만 가장 슬픈 현실은 자신의 나라를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조선적에 대한 문제는 이들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한 원인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즉, 아직 한국내의 시각은 이들을 북한에 소속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였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런면이 없잖아 있었다. 실제로 언론에 비쳐지는 그들의 모습들이 북한의 실생활과 흡사한 면이 많고 그들의 의식, 문화, 말투까지 한국보단 북한에 많이 근접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 살아가는 실생활을 단편적으로나마 수업시간을 통해 보면서 그것은 하나의 잘못된 오해이고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다큐에서는 조선족의 90%는 경상도, 제주도, 전라도 등 남한의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실제로 죽을때까지 고향땅 한번 밟지 못하는 그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다큐속 인터뷰 한 조선적은 말한다. “우리를 북한과 연결시키는 것은 남한의 조선호텔, 조선대, 조선일보가 북한단체가 운영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즉, 조선적은 북한단체이다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조선적은 남북이 합쳐진 개념이지 북한의 개념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위대한 게츠비개츠비의 사랑은 결국 데이지를 얻지 못하고 그녀의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서 씁쓸한 허망함으로 종결된다. 화려하게 살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병고에 시달렸던 피츠제럴드의 삶 자체가 어쩌면 개츠비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서사적 기법에 있어서도 이 작품은 나름대로 독특하다. 데이지의 사촌에 의해 철저한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그 관찰에 의해 추적되는 개츠비의 행동과 심리가 단연 압권이라 할 만하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도 언급되어 있는 이 작품은 미국 자본주의의 일면을 냉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람들에 의해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빌게이츠는 자신의 결혼식 때, '위대한 개츠비'의 영화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페로우과 입었던 복장을 그대로 재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황폐한 현대 물질주의 문명 속에서 미국인의 꿈이 어떻게 무너져가는가를 묘사한 20세기 미국문학의 대표작이다.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프란시스 스코트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의 대표작 를 읽었다. 도입 부분은 참 잘 읽혀졌는데, 뒤로 갈수록 지루하고 따분했다.작가의 1925년 발표작. 이 작품은 '눈부신 예술적 성공'이니 '완벽한 장편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이 작품은 영화 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책표지 그림이 그 영화의 한 장면이다. 두 남녀 주인공의 모습.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 역. 기회가 되면 영화로도 보고 싶다.이 작가는 191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활동한 풍속 소설가로 평가된다고 한다. 작품에 묘사된 그 당시 미국 상류층의 모습은 따분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만큼이나 따분했다.개츠비의 옆집에 사는 캐러웨이가 소설을 전개한다. 작중 화자다. 호화 저택에서 연일 파티를 여는 수수께끼의 인물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 가난한 청년(개츠비)이 부잣집 여자(데이지)를 사랑했으나, 신분 격차를 느끼고 5년 후에 성공을 거두어 데이지를 다시 만나 사랑하고자 한다 오기를 바래서다. 작중 화자가 데이지와 개츠비를 재회시켜 준다. 다시 옛사랑을 떠올리는 두 사람. "데이지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데이지의 남편 앞에서 당당하게 단언하는 개츠비. 5년이나 지났는데,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다니. 개츠비, 너무 멋있당!데이지가 차 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이는데, 그 죄를 개츠비가 뒤집어쓰려고 한다. 아직 확실한 사고의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차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월슨)이 무작정 범인이 개츠비라고 추측하고 그를 쏴 버린다. 5년만에 만나 데이지와 제대로 사랑도 못하고 죽은 개츠비. 아구, 불쌍해라!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개츠비의 파티에 왔었건만, 장례식에는 한 사람도 안 온다. 데이지마저 오지 않다니. 쓸쓸한 죽음. 한 여자를 위해 5년간을 성공을 위해 바쳤건만,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 버리다니. 데이지, 너 참 나쁜 년이다. 어떻게 장례식에도 오지 않니. 여자란 정말 못 믿을 동물이야.소설 시작 부분에 주인공 개츠비는 그 호화롭고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술도 안 마시고 조용히 혼자만 있다. 이거 주인공의 쓸쓸한 죽음을 미리 암시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단편으로 쓸 수 있는 것을 애써 비교적 짧은 장편으로 쓴 듯하다. 작중 화자 방식으로 쓰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면 분명히 단편으로 쓰여질 소설. 작중 화자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 작품의 문학적 아름다움이다. 이런 소설 구성의 이유로 장편이 된 듯.이 소설을 번역한 사람은 그 유명한 시인 정현종 씨다. 을 쓴 시인. 그는 작품 해설에서 시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이 소설을 평했다. 그런 소설의 특징 때문인지 문예출판사에서는 번역을 시인에게 맡긴 모양이다.작중 화자인 캐러웨이가 주인공 개츠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시적이랄까. 매우 감각적이고 심리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주 독특한 묘사다. 작가의 재능.기억에 남는 구절은 두 군데다.소설 첫 시작하는 부분. 작중 화자의 아버지가 한 충고.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이런 걸 생각하거라,5쪽작품에서 개츠비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성공에 질투를 느끼며 마구 험담을 하는데, 그의 성공은 사실 철저한 자기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었다.개츠비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중간에 조금씩 작중 화자를 통해 알려준다. 특히, 주인공 개츠비의 결심에서 출세를 향한 강한 욕망이 느껴진다. 여기 옮겨 본다. "샤프터즈나 혹은 이름이 있으나 알아볼 수 없는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담배 피우기나 껌 씹는 걸 삼가한다.('삼간다'가 맞다.) 이틀에 한 번씩 목욕한다. 매주 유익한 책 한 권이나 잡지 한 권을 읽는다. 매주 5달러 저금한다. 부모에게 더 잘한다." 225쪽 샤프터즈나 혹은 이름이 있으나 알아볼 수 없는 곳? 술집이나 창녀촌을 말하는 것 같다. 부모에게 더 잘한다? 미국 사람들에게도 효라는 것이 있기는 있군. 단어들로 요약하면 이런 거 아닐까. 금연. 건강 유지. 꾸준한 독서. 절약. 효. 성공의 비결은 역시 철저한 자기 관리다.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럼.# 평론가들의 작품평조던 베이커는 날카롭고 빈틉없는 남자를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나는 그 원인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세상의 일반 도덕에서 벗어난 행동 같은 것을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남자를 상대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솔직하지 못한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었던 만큼, 세상을 향한 자신의 냉소적이고 거만한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활기차고 발라한 육체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려서부터 속임수를 써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운전이 서툰 다른 사람을 만날 때까지만 안전하다고. ...(베이커와 닉의 대화중 서로 헤어지는 이유를 이야기 할때..)- 인류는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과거로의 역행형이지, 군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미워하고 좋아하는지를 모르고 있거든. 집단 행동에 익숙해져서, 무엇인적을 맞춘 거지. 지금 뉴욕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어. 오늘이 메이 데이니까.(메이데이 중에서)# 게츠비 평론2추천도서목록에도 많이 올랐던 책이다.몇개월전에 몇장을 읽었다가,다시 덮어버렸던 책이기도 하다.솔직히.다시 손에 잡게 된 계기는 순전히 "상실의 시대"덕분이다.주인공이 몇번이나 읽고,읽고 하던 책.대체 어떤 책이길래..우선 결론은참.도대체 하루키는 이책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상실의시대"주인공에게 몇번이나 읽게 했는지...이다.나에게는 한글자 한글자,한문장 한문장 읽기가 참 곤욕스러웠었다.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주인공 닉의 시선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베일에 가린 개츠비의 진짜 신분을 하나하나씩 알려주면서..사랑에 목숨건 남자.개츠비.그래서 위대하다는 말인지.....아니면,어리석은 개츠비의 반어로써 "위대한"이란 단어를 쓴것인지..닉은 한적한 시골에서 살다가.증권업을 하기 위해.뉴욕으로 이사를 온다.닉의 이웃에는 거대한 부자,개츠비가 살고 있고,이 사람은이유도 없는 성대한 파티를 자주 연다.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사람들도,누구라도 와서 즐기면 되는 파티이다.개츠비가 이 파티를 여는 까닭은 단 한가지 이다.바로 개츠비의 첫사랑 데이지가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해서다.하지만 건너편에 사는 데이지는 한번도 그 파티에 오지 않는다.개츠비는 데이지가,자신을 사랑했지만,자신이 가난해서,돈이 없어서,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톰)과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부지런히돈을 모왔고,이젠 데이지가 자신과 다시 사랑할수 있다고굳게 믿어버린다. 데이지가 운전한 차에,톰의 정부가 치여 죽고.개츠비는 데이지의 사고를 자신이 한것처럼 해준다. 결국,사고당한 여자의 남편에게 개츠비는 총살당한다. 씁쓸한건, 개츠비의 장례식에 아무도,그누구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데이지조차도.. 오직 한사람,개츠비가 신경도 쓰지 않았던,책장에 쳐박혀 있던 한 남자만이찾아와 주었다. 소설 한권을 다 읽은 지금.그저..나도 씁쓸한 따름이다.첫사랑은 첫사랑으로써 아름답다.지나간 사랑은,지나간 과지를 그저,지난 사랑의 일부분으로써만 바라봤더라면.....# 반론잘못아셨어요.ㅡ.ㅡ;;그 데이지가 차에 치여서 죽는거용..가 게츠비가 아무에게도 데이지가 했다고 말하지 안을려고 했는데...그만.. 말실수로..닉이 알게되가주구요.. 데이지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요.. 데이지 남편..탐이.. 게치비가 했다구.. 말하가꾸.. 그 윌슨이 죽은여자 남편 이 게츠비를 죽이는 거죠.ㅡㅡ.;;; 아 그리구.. 게츠비가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비지니스를 가치하던 사람이 ..게치비한테..엄청 만은 돈을 줘가구주.ㅡㅡ;; 돈이 많아용....# Besides신분상승의 꿈이 유일한 존재 이유였으나 한 여인만을 사랑하게되고 이로 인해의 그의 꿈마저 아무것도 아니게 여기게 되었으며 그 여인을 되찾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명마저 잃은 게츠비의 삶을 3자 (켈러웨이)의 입장에서 그린 작품. 문제는 그 여인이 처음에도 그랬고 마지막까지 세속적인 여자요 아무 생각없는 여자였다는 점이다. 한여인을 잊지 못해 괴로와하던 그 모습이 단지 혼자만의 집착이었다는 데에 그러면 의미있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이 작품은 일인칭 소설로 닉 캐러웨이라는 청년의 서술로 시작된다.야심에 가득 찬 주인공, ‘개츠비’는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여인 ‘데이지’를 만난다. 하지만 불같은 사랑도 잠시, 전쟁은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고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간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사랑은 5년이 흐른 뒤,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데이지와 해후하면서 다시 이야기는 전개된다.개츠비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데이지라는 여자, 즉 오로지 하나의 이상만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열정을 다 바치는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시대 상황은 그의 이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는 좌절하고 만다.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개츠비의 이상에 대한 동경이 잘 나타나 있다.“내일이 되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그렇게 우리다.”
베어울프 작품의 핵심 문제 5가지1. 베어울프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여 적어보시오.베어울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데네국(덴마크)의 왕 흐로트가르의 궁전 근처 늪에 사는 아벨을 살해한 카인의 후예인 괴물 그렌델이 흐로트가르 왕이 신하들에게 보물을 하사하고 연회를 여는 장소인 헤오로트 궁에서 들려오는 소란함에 분노하여 밤마다 찾아와 신하들을 납치하다가 살해한다. 이웃나라의 젊은 무사 베어울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용감한 부하 14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데네국으로 찾아와 용감무쌍하게 카인의 후예라고 하는 그렌델을 무찌른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의 복수를 위해 침입하여 흐로트가르 왕의 중신을 살해하지만 베어울프는 역시 이 어머니와의 싸움에서도 이긴다. 이에 왕은 베어울프에게 많은 보물을 선사하고 귀국후 베어울프는 자신의 군주에게 흐로트가르 왕으로부터 받은 보물들을 바친다. 여기까지가 베어울프 줄거리의 첫째 부분인데 신하로서 베어울프가 괴물일당들과의 결투에서 이기는 장면이 중심이 되고 있다.그렌델과 그의 모친을 무찌른 공로로 베어울프는 게아타스의 왕이 되어 50여년에 걸쳐 선정을 베풀게 된다. 그때쯤 한 사람의 죄인이 어느 동굴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여 훔쳤는데 마침 그 보물을 지키던 용이 노하여 게아타스의 국토를 어지럽힌다. 왕 베어울프는 자신의 국민을 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용과 싸워서 이기지만 막상 베어울프 자신도 그 용의 독기를 받아 사망한다.이처럼 베어울프의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눈 기준을 살펴보면 그렌델과 그의 모친을 타도하여 왕이 되기까지의 베어울프와(1부) 왕이 된 후의 베어울프(2부)를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첫 부분에서는 덴마크 왕가의 내력과 그렌델 모자와의 격투 등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으며 2부에서는 왕이 된 베어울프의 50여년간의 통치기간, 화룡과의 격투 그리고 마지막에 베어울프의 죽음이 중심이 된다.2. 베어울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웅주의 사회의 가치관(Heroic Ideal)에 대해 쓰시오베어울프가 살던 시대는 싸 위해 전쟁에서 죽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있다. 또한 왕은 보물과 재물 등의 선물로써 이를 보상하는데 여기서 보물의 의미는 단순한 '재물'적인 가치가 아닌 '명예'의 징표로 널리 후세에 전해지도록 되어 있다. 즉 이 선물의 의미는 서로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하나의 의미이기도 하였다. 두 번째 보여지는 사회적 구조에 따른 가치관은 친족간의 복수에서 드러난다. 고대 영국에서 친족은 자신의 명예를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에 따라 친족에 대한 관계는 왕과의 관계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친족들 중 한명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면 전사는 반드시 그 복수를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의 명예는 실추되는 것이다(벤데타 의식). 이런 벤데타 의식, 즉 친족의 복수는 베어울프 작품에서도 선명하지는 않지만 번번이 보여지고 있다. 베어울프는 자신의 군주이자 삼촌인 히옐락이 전투에서 죽었음에도 끝까지 싸움을 해서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닌 귀국 후 나중에 원수를 죽임으로써 복수를 하는 어떻게 보면 벤데타 의식에 좀 모자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전제된 가치관 속에는 분명 삼촌의 복수에 대한 의식이 있었음은 확실하다. 또한 헤아르드레를 죽인 오넬라에 대한 복수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나 용과 싸우는 모습, 죽어가는 베어울프의 대사 (자신의 마음은 즐거운 이유에 대해 친족살해에 대한 부분 언급) 등에서도 이런 가치관은 드러난다. 즉 베어울프 속에서 드러나는 벤데타적인 의식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고 그 시대에 만연하던 전통적 벤데타의 정의와는 약간 거리가 먼, 희미한 모습들이지만 그 배경이 된 생각에는 역시 친족복수라는 시대적인 가치관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웅적인 힘의 논리가 우선시되던 시대이니 만큼 영웅들 사이의 경쟁 의식도 엄청났다. 왜냐하면 영웅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는 상대나 불특정 다수들 보다 뛰어나고 우세한 행위를 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영웅이 탄생하기 는 용사 운페르드와의 대화에서도 한층 더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운페르드가 베어울프의 과거 실패담을 얘기하며 그를 견제하려고 하자 베어울프는 자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았고 더욱 큰 성취를 이루었다고 대응하는 장면이 그것이다.3. (베어울프)는 8세기 초에 쓰여진 작품으로 작가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소재는 비기독교적(pagan)의 내용이다. 기독교적인 것과 비기독교적인 내용들이 이 작품에서 어떻게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적어라.베어울프 작품은 방랑시인들이 여러 궁궐을 편력하면서 단편적으로 그들의 민족영웅 베어울프의 무용담을 불러 구전되어 오던 것을 영국 땅에 와 세기경에 성문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 후 기독교가 영국땅에 들어온 후인 8세기 말경에 한 시인이 단편적인 원작을 모아 이 이도교적 민족영웅에 대한 전설 재료를 기독교적으로 수정 및 정리했다. 주목할 부분은 8세기 초까지는 전 영국이 기독교화됐다는 사실이다. 즉, 이 시의 시대적 배경과 무대는 기독교화되기 전의 이교도 시대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를 기록한 시인은 기독교인이다. 베어울프 작품에서 유럽인과 영국인들의 생활과 규범에 깊숙이 관여하였던 기독교적 모습과 이교도적인 모습들은 혼용되어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베어울프의 시인은 이교도와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모두 수용될 수 있는 단어들로 시를 쓴 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두가지 색을 다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모티브가 되었다. 두 가지 색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인의 의도와 시의 배경이 되는 가치관을 명확하게 파악하는데 큰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베어울프에서 이런 혼란을 느끼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바로 그렌델(괴물)의 등장이다. 괴물의 등장은 이교도들 사이에서 흔히 등장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의 저자가 이 괴물을 카인의 후예라고 말함으로써 빚어지는 혼란이다. 카인의 후예라는 명칭으로 인해 이 괴물은 이교도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홍수의 의미를 안다. 그러나 막상 흐로드가르는 노아의 대홍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와 비기독교적인 충돌은 작품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비록 만백성을 위한 전투였다고는 하지만 베어울프와 그렌델과의 전투는 베어울프의 세속적인 욕심이 엿보이고 마지막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화룡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화룡의 희생자가 되어 백성들의 구세주로 추앙받지만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그는 구세주가 될 수 없다. 개인적 명예를 위한 싸움은 결론적으로는 만인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 동기는 세속적인 것이라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그가 죽어서 화장되는 풍습또한 이교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때 베어울프 작품은 시 전체가 게르만 전통과 기독교적 전통이 함께 어우러져 때로는 충돌하기도 때로는 각각의 의미에서 빛을 발하기도 때로는 두 이념사이에서 새로운 타협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4. 기독교 이전에 영웅적인 전사들이 지녔던 덕목은 무엇이고, 그 덕목이 기독교적 덕목과 어떻게 일치하고, 또 어떻게 배치되는가?게르만 시대의 전사들은 영웅주의와 귀족주의의 성격을 띠었다. 상대적으로 남보다의우월감을 힘의 우세와 권력의 우세에서 찾았던 것이다. 1번 문제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힘의 논리는 잦은 싸움과 전투를 낳았고 그 싸움의 원인은 명목상으로는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결국 상대를 이겨서 자신이 올라가는 약육강식의 모습을 띠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전사들에게 용기는 그 시대 최고의 덕목이었다. 구지 종교적인 면과 관련짓지 않더라도 용기라는 것은 전 시대, 전 세대를 초월한 인간적 본능의 하나이다. 게르만 시대에서 전사들의 행동에 깔린 이 용기는 때로는 위협적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일가 중 누군가가 살해를 당했다면 그 살해자를 죽이거나 합당한 복수를 해야한다는 벤데타 의식은 그당시 어찌보면 당연시 되는 용기에 해당되었다. 그' 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흐로트가르는 여기서 과거를 거울삼아 헤레모드처럼 독점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지 말 것을 베어울프에게 충고한다. 그러면서 흐로트가르는 베어울프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유명한 용사여 거만하지 마라. 지금 너의 그 힘은 일시적이니라." 이부분은 기독교화가 되기 이전의 게르만 민족의 전사들이 가져야 할 덕목을 나타낸 것으로 호로트가르는 그의 충고에서 지도자의 통솔력과 명예, 선물, 그리고 그가 사회에서 수행해야 될 역할 그리고 운명의 변덕스러움에 대해 들려준다. 자만하지 말라는 그의 말과 함께 그의 충고는 기독교의 칠죄종(일곱가지 죄의 근본), 즉 자만, 질투, 과식, 쾌락, 분노, 욕심, 게으름과 일치되는 부분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게르만 전사들이 추구했던 덕목과 기독교 가치관의 일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흐로트가르가 강조한 선물의 의미 또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욕심의 억제를 강조하는 기독교적인 윤리가 베어울프의 시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베어울프가 살던 기독교 이전의 시대에서 선물의 의미는 순수 그 선물의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소유욕이나 욕심의 배제라는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일치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 이 작품 속에서도 베어울프는 웨알데오우 왕비로부터 받은 목걸이를 자신의 고향에 돌아온 후 히엘락왕비에게 줌으로써 그의 충성을 나타낸다. 또한 그가 받은 선물들을 다시 자신의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즉 선물은 단지 주고받는것 자체에만 의미가 있지 그것의 물질적 가치를 따지거나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베어울프의 태도에 반해 용의 태도는 대조적이다. 용은 그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독점한다. 그러다 보물중의 하나인 술잔을 도난당하게 되고 결국 자유롭게 선물하는 베어울프와 소유욕의 전형인 용사이의 결투가 있게 된다. 이처럼 이 시대에 선물이라는 것은 단순한 선물의 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