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ome town is guang-ju but I lived there for a short time. Because of my parents job my family moved many times. when I was 9 years old I lived in sun-chun where I was very happy with many friends and the nature. But that time was also so short. Instead of guang-ju, tae-jon became my second home town. I lived there for almost 15 years. There I graduated from Sam chun elementry and middle school. And I entered Tae -jon foreign language high school. In high school, I learned many things about the way of life and made many good friends who remained my longlife friends and I also met my girlfriend in high school. However, my school face with a risk which will moved to other spot violently. All my high school mates struggled from the policy and that the education ministry made
최고 催告 (재촉할 최, 알릴 고)①재촉하는 뜻으로 내는 통지 ②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청구하는 일돈을 지급하라든가 가옥을 명도 하라든가 무능력자의 행위를 인정하라는 등 어떤 행위를 할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통지이다.부동산 不動産 (아닐 부, 움직일 동, ①낳다②나다 3자라다④출생⑤산물⑥업⑦자산)토지 및 그 정착물을 부동산이라 한다(민99).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라는 뜻이고 동산은 일반적으로 물건을 의미한다. 토지의 개수는 등기부에 따라 일필을 1개로 취급하며, 토지소유권은 법령의 제한 내에서 일필의 토지의 상하에 미친다(민212). 토지의 정착물이란 토지에 계속적으로 밀착하였거나 또는 밀착시킨 물로서 법적 처리의 차이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그 하나는 토지의 일부로서 취급되는 것으로 다리·돌담·연못·도랑·뿌려진 씨앗이나 비료 등이 그것이다. 그 다른 하나는 토지와는 별도의 부동산으로 취급되는 것으로 건물이나 입목에관한법률에 의하여 등기된 수목의 집단이 그것이다.대리 代理 대신할 대 다스릴 리 (도리, 깨닫다, 결)넓은 의미에서 대리라고 하면 타인(본인)을 대신하여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민법 총칙편에 정해진 대리란 대리인이 본인을 위하여 한다는 것을 나타내어 의사표시를 하거나 또는 의사표시를 받아 그 법률효과가 본인에게 직접 생기는 것을 말한다.使者와 비교할 것금치산자 禁治産者 한정치산자, 미성년자 비교할 것심신상실, 즉 자기 행위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는 자로서 본인·배우자·사촌 이내의 친족·후견인·검사 등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으로부터 금치산의 선고를 받은 자를 말한다(민12). 정도가 심한 정신병자라고 생각해도 좋겠으나 일단 선고를 받으면 치유하더라도 선고를 취소받을 때까지는 아직 금치산자이다(민14). 금치산자의 일체의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민13). 따라서 금치산자에게는 반드시 후견인을 두어야 하는 데 그 순위는 직계혈족, 3촌이내의 방계혈족의 순으로 되어 있다. 후견인은 요양·감호와 재산관리, 그리고 법률행위를 대리하도록 정하고 있다(민933·947). 그런데 금치산자도 정상으로 회복되었을 때에는 혼인, 이혼, 입양, 파양, 유언 등 이른바 신분행위에 대해서는 단독으로도 완전히 행할 수 있다. 후견인이라고 하더라도 신분행위를 대리하여 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시효 時效 소멸시효 취득시효 설명할 것.일정한 사실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되어 온 경우에, 그 사실상태가 진정한 권리관계와 합치하는가 여부를 불문하고 법률상 그 사실상태에 대응하는 법률효과를 인정하여 주는 제도이다. 즉 일정한 사실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됨으로써 법률상으로 권리의 취득 또는 권리의 소멸이 일어나게 하는 법률요건을 시효라 한다. 시효에는 타인의 물건을 오래동안 점유함으로써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취득시효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권리가 소멸되는 소멸시효가 있다. 이와 같이 사실상태에 대하여 진정한 법률관계를 부여하는 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는 ⑴어떤 사실상태가 영속하게 되면 이를 기초로 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가 구축되는데, 후에 진정한 권리자가 나타나서 이 사실상태를 뒤엎어 버리게 되면 사회질서가 혼란에 빠진다는 점 ⑵영속한 사실상태가 과연 진정한 권리관계와 합치하는가 여부의 다툼은 결국 소송에 의하여 가려지게 되는데 그 동안 증거자료의 산일·멸실 등 채증의 곤란이 따른다는 점 ⑶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오래도록 방치하고 권리행사를 하지 않는 것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원리에서 보호의 가치가 없다는데 있다고 설명된다. 시효가 완성되어 권리나 의무가 득실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더라도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이상 법원은 시효완성사실을 가지고 재판할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의 시효의 주장 을 시효의 원용이라고 한다. 또 시효의 효과는 기산일에 소급한다(민167). 그러므로 취득시효에서는 처음 점유를 하거나 권리행사를 한 때부터 권리자였던 것이 되고, 소멸시효에서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때부터 소멸한 것이 된다. 시효의 완성을 방해하는 사유로는 시효의 중단과 정지가 있으며 이미 완성한 시효의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 즉 시효의 포기가 인정되고 있다(민184).
< 폴리테이아의 교육철학 : 플라톤 >3. 폴리테이아의 교육이념 : 정의1) ‘정의’의 이해와 ‘인식의 인식’- 정의는 플라톤 철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데아이다. 정의는 어떤 것으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데아로서 영원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 자체에서 정의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플라톤은 정의를 인간 안에서 찾기를 중단하고 국가 안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참된 왕의 인식과 기술이다. 의로운 행동은 이론으로 설명되고 이론의 법칙에 따라서 다시 실천으로 강조된다. 이러한 실천적 행위가 좋은 삶을 살게 하고, 좋은 삶을 사는 자는 행복하다. 즉, 삶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혼의 덕은 정의이다.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내릴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이나 학문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인식의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정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변증법을 도입하고 있다. 변증법은 이성적 사유의 능력을 집중적으로 배양하며 지배하기 때문에, 이성의 국가에서는 변증법이 최고의 법률이다. 변증법은 정의를 정의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정의에 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의의 이해는 인식의 인식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정의는 인식의 인식이기 때문에 변증법이다. 정의는 전체에 관한 지식이요 덕이다.2) 국가 안에서의 정의의 탐구- 플라톤은 정의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비교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서로 동일한 작은 글자와 큰 글자를 학습함에 있어서, 큰 글자를 가지고 먼저 학습한 뒤에 작은 글자를 학습하는 것이 용이한 이치와 같다. 정의는 인간 개개인에서도 확인 되지만 국가 전체에서도 확인 된다. 그러나 인간에서는 정의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먼저 국가에서 정의를 찾는다. 그래서 국가를 알기 위해 이성으로 국가를 세워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는 공동체의 개념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더욱 완벽하게 해낼 수가 있다. 그래서 국가 안에서 각 지체들이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수행하게 되는 것이 정의이다. 즉, 지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탁월하게 감당해내면 그 결과는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창출하게 된다. 이 최선의 것이 곧 정의이다. 다시 말해서, 정의는 국가 안에 있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 안에 내재한 고유한 덕을 도야하고 이를 통하여 갖게 되는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완전성이다. 건강이 신체적 최고 상태인 것처럼, 정의는 정신적 최고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영혼의 이상적 형성을 교육의 과제로 보는 시각은 옳다. 그리고 변질된 교육의 현상들에 대한 탐구와 극복을 위한 교육이 또한 교육의 과제이다.로고스의 국가는 변증법이 지배한다. 교육이 좋으면 법률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법의 제정을 통하여 통치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오로지 좋은 교육의 이론과 실천을 통하여만 실현될 수 있다. 즉, 국가는 정의로 확인되는 좋은 교육의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정의의 본질을 더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국가의 구성은 교육의 결과이므로, 구성된 국가 전체는 곧 참된 교육과 같다.정의는 각자가 자신에게 고유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이해는 정의의 본질을 꿰뚫고는 있으나, 서로 상이한 목적 관련 아래서 다의미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정의는 선의 이데아와 관련되어져서 비로소 이익을 주며 쓸모 있게 된다. 모든 국가는 법이 국가에 큰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과 기대를 가지고 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제정된 법이 어느 정도로 정의에 가까운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변증법적 인간인 철인으로부터 온다.3) 의로운 행동- 자유롭고 의로운 행동은 공동체의 형성과 기본 덕으로서 정의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정의는 다만 말로만 규명되어서는 안되고 행동을 통하여 말한 바가 일치됨으로서 확인되어야 한다. 행동들은 그 고유한 본질에 있어서 우리들의 견해에 따라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고, 행동들 자체의 이데아에 따라서 수행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행동은 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4) 에이도스로서의 정의- 플라톤은 정의를 다루면서, 국가의 에이도스와 인간의 에이도스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국가와 인간을 서로 비교하고 있다. 에이도스는 원형이고 본질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정의는 이미 있는 것들이 그렇게 있어야할 상태로 있는가를 인식 가능하게 하는 원형의 개념이요, 참으로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능력의 개념이다. 또한, 정의는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관계 개념으로 묘사된다. 즉, 정의는 정의의 이데아와 정의의 그림들 사이의 관계 개념이다. 세계는 이데아들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정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보존하는 기초로서 시민권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유란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많이 이뤄냈으며 또한 지금도 사람들이 갈구하고 있는 대상이 아닌가. 이런 자유로부터 도망간다는 뜻의 의미인 책 제목에서 나는 도통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현대 사회의 많은 제도는 개인에게 계속해서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러한 동시에 인간을 더욱 더 무력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발전은 인간이 가지는 자유를 증가시켰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종류의 의존심을 갖게 하였다. 즉,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보다 더 독립적, 자율적,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것보다 더욱 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격리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자유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은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이러한 과정의 양면성을 보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순되는 두가지 경향이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기에 우리는 이것에 일종의 의심을 품게 된다. 현대 사람들은 낡은 관습으로 부터의 탈피 과정에서 생겨난 우리 내부의 새로운 적, 그전과는 다른 성질의 그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적은 본질적으로 보면 외부에서 오는 속박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 실현을 방해하는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자유의 최후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고, 많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낡은 속박에 대항해 우리가 일궈낸 가장 중요한 승리이긴 하다.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생각하고, 그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의 대부분을 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 누구나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독창성의 결핍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읽다 보면 개인은 하나의 독립적인 자아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자연과 결합되는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프롬이 말했듯 우리는 자신의 독립성과 자유를 확대해 나가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연대감을 가지기 위해서 '...로의 자유'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자발성은 자기 중심 주의나 이기심의 원리가 아닌 평등의 원리와 조화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평등은 근본적인 인성을 다같이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연대성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현대사회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시다의 희망인 대학생들이 먼저 적극적인 자유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향락적인 소비문화에 빠져 허우적 거릴것이 아니라 밝은 눈빛으로 사회의 제반 문제에 참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여 고립된 인간상의 끈을 끊어버리는 것이 이시대 대학생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한다. 새싹이 바르면 장차 그 싹이 자라 나무전체도 튼튼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현재 나의 위치에서 정말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고, 또한 그렇다고 생각하는 자유의 가치와 자발적인 자아의 형성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고 프롬이 말한 진정한 자유로의 길과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들의 대한민국바둑을 두다보면 상대가 나의 허를 찌르는 한 수가 내판의 상황을 아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이때 나의 한 수가 정말 중요하다. 이 한 수로 어떻게든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하게 된다. 상대의 수를 막기 위한 최상의 한 수를 생각해내는데 그 순간 모든 전력을 다한다. 만약 이 순간 누군가 옆에서 탁월한 한 수를 가르쳐 준다면 - 이것을 바둑에서 훈수라 하는데 - 이 훈수는 나의 상황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물론 바둑에서 훈수를 두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인생을 다르다.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 나에게 던져주는 훈수는 내 삶을 풍성하게 변화시킬 뿐 아니라 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 하며 나의 꿈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던져주는 훈수를 새겨들어야 한다.’고들 하는 것이다.나라도 마찬가지리라. 나라가 살림을 하다보면 역경과 고난, 때론 감당하기 힘든 위험에 빠질 때가 있다. 지난 IMF가 한 예일 것이다. 그럴 때에 나라는 적절한 한 수가 필요했고 비록 그것이 누구의 의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금모으기 운동’이 적절한 한 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박노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훈수의 의미로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박노자 교수는 현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러시아 출신 한국 사학자이다. 그는 러시아에서 한국사학 분야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고, 5년간 한국에 살면서 한 때는 학생으로(1991년 3개월간 고려대 어학연수), 한 때는 대학 강단에서 교편을 잡는 교수로(1997~2000.3 경희대 노어노문학과 전임강사) 대학 사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병폐와 폐단에 심도 있게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좋은 조언을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쉽게 여기고 지나간 일들을 잘 꼬집어 보이고 있다.필자에게 가장 와 닿는 것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군대’라는 파트에서 군대 제대 후의 심정 변화를 살펴보면 권위주의를 체득하여 폭력과 강요에 무감각해지고 인간성마저 파괴된다면서 현재 군대의 일그러진 상을 잘 고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군대를 제대한 이들의 성격과 행동 양식이 변화하여 군대에서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크게 입은 예비역들에게 국가가 적절한 보상과 대우를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필자도 군대 생활 가운데서 격고 본 일들 중에 인격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잘 알고 있다. 직접 격은 일이라 그런지 더욱 실감이 난다. 군대라는 사회 조직의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부패와 부당한 폭력등으로 생기는 인간성 파괴의 실상을 빨리 회복해야 할 것이다.또하나, 도덕과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내심으로 벼슬과 돈만 생각하는 조선조 말기 관료사회의 퇴폐적 분위기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대학에서의 커닝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크게 잘못 된 생각임을 고발하는 것이 그렇다.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이기적 부정행위이며 사회적 진보를 위해 법률적, 도덕적 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박노자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여러 가지 좋은 지적을 하고 있다.하지만 박노자는 한국 사회만이 지니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지역적 특수성'을 배재한 채, 인류 보편적인 시각에 너무 치우쳐 있다. 모든 사회는 제 각각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에 의해 파생되어지는 사회현상도 차이를 보일 수 있으며 그것은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힘든 '가치중립적'인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잣대로 한나라의 오랜 전통과 역사에 의한 사회 현상을 너무 쉽게 옳다 그르다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은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우리들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