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법사회학적으로 소송이라 할 때 그것은 현대 법학자들이 관념 하듯이 사법부에 의한 분쟁처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이라는 근대적 헌정제도가 성립되기 이전까지는 사법부가 따로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때라고 소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사회의 소송은 지방수령(원님재판)에 의해서도, 중앙국가기관(사헌부, 형조, 국왕)에 의해서도 수행되었다. 그렇다면 소송은 국가기관의 강제력에 의존하는 분쟁처리 양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국가라는 제도가 성립하기 이전에는 소송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국가 성립 이전에도 당사자들의 분쟁에 강제적으로 개입하여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제3자가 존재한다면 소송은 존재할 수 있다. 국가 직전의 사회형태인 족장사회(chiefdom)에서도, 나아가 그 이전의 부족사회(tribal society)에서도 족장이나 추장에 의한 소송은 발견된다. 다만 소송은 중립적인 제3자가 충분한 강제권력을 가질 것을 전제하므로 대단히 원시적인 수렵채집사회의 평등한 사회구조하에서는 발견하기가 곤란하다.이렇게 볼 때 소송은 분쟁에 대한 중립적인 제3자의 강제적인 결정과 집행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한국사람들이 왜 소송을 기피하는지에 대하여 법사회학적으로 설명해 보겠다.Ⅱ. 소송기피 의 역사적 기인성1. 외세의 침략과 국민성역사적으로 보면 중국·몽고 및 일본 등의 침략과 유학을 숭상하는 일부 식자층에 의해 사대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일본의 36년간의 침략과 지배로 인해 수치스러운 葉錢主義思想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해방이후에는 6.25사변으로 인해 미국의 구제품과 원조를 받고 살아 乞人主義思想까지 나타났다.한국사람은 언제부터인지 인본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군자다운 면모의 주체성이 무의식적으로 사라지고 종속이론에 의한 자기가 아닌 외세의 사고와 문화가 주입되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저질적인 사고와 문화가 우리 의식구조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심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의 견해에 의하면일시된 현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와 같이 상처받은 의식구조를 가진 우리 한국인이 법의 개념과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2. 선비사상의 문제점선비사상은 전대로부터 전래한 사대부간 유학사조로 선비가 자랑하는 성리학을 연구하는 마음이 어질고 순박한 군자의 사상이다. 이러한 선비사상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종속이론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피폐시켜 경제적으로 속국을 만들기 위해 유포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조시대에는 역사상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가 되었다. 이 사상은 시와 예문을 좋아하고 충과 효를 논하면서도 무위도식하여 식자와 양반이 일을 하지 않으므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져 경제적으로 후진국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선비와 관련된 격언으로는 1 선비 노는데 용 나고, 학 노는데 비늘만 쏟아진다. 2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 수영하지 않는다. 3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도 안 쬔다. 4 양반은 죽을 먹어도 이를 쑤신다. 이러한 격언은 선비의 청렴강직한 성품과 학덕을 찬양하면서도 무능과 비생산적인 면을 성토하는 말이다.3. 조선시대 향약의 문제점향촌자치체로서의 향약은 명백한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사회가 신분제에 의해 운영되었다는 점에 기인하였다. 향약의 상층부를 양반이 장악하고 이들에 의해 시행이 주도되었던 만큼, 상하의 명분은 엄중히 구분되었다.따라서 양반을 능멸하는 자를 철저히 규제하였고, 같은 죄에 대한 처벌도 양반은 마당에서 벌서는 立庭 정도가 고작인데 반해 상민에게는 매질이 가해졌다. 그래도 뉘우치지 않는 양반에 대해서는 그의 종이 대신 매질을 당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하간의 엄격한 구분은 향약이 한편으로는 교화라는 명분 아래 양반에 의한 향촌민 통제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향약에 의한 자치는 지배층인 양반의 향촌민에 대한 통제와 그들 중심의 지배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시기가 지나면서 향약은 때때로 지역사자치의 본질이 양반들의 지배권 확립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견제의 대상이어야 할 관권과 결탁이 이루어졌을 때 일반 백성들이 받는 피해의 정도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4. 사법의 형식주의 피해사람은 그 대부분이 사법생활 속에서 영위하고 살아간다. 우리나라 법은 형식주의를 채택하여 진실과 정의가 보호받지 못해 많은 사람이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이러한 사상도 일본의 법률문화를 전수받은 법률후진국의 피해이다.또한 사법재판제도는 변론주의와 소송권 처분주의를 개선하여 적극적 증거주의를 채택하여 재판에 있어 법관이 적극적으로 국민을 보호하는 제도로 수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법부는 제3자의 입장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적 증거제출 명령권을 채택하여 실질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해야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Ⅲ. 한국인의 법의식의 문제점1. 법에 대한 부정적 태도유교적 윤리의 우위를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는 법은 부차적인 규범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인은 법을 下視하는 정도를 넘어 법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우리나라에 있어 법은 역사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장·확대하는 기능을 하였다기 보다는 통치자의 지배·억압의 수단으로 기능하여 온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일제강점, 군사독재 등 정통성 없는 정권의 입법과 법 집행 그리고 사법에 대하여는 이를 부인 또는 무시, 나아가 반항하는 것이 미덕으로까지 인식되었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현재도 법은 지배자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은 부도덕한 지배계급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라 인식되었다.2. 법에 대한 이중적 기준유교적 법률관하에서는 사회질서유지를 위하여 일반인에 대하여는 법을 엄격하게 집행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자신이 그 법 적용의 대상이 되면 법 집행자의 또 다른 미덕인 관용을 요구하며, 이와 같은 이중적인 기준이 모순 없이 병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 앞에 만또 기아사태의 방치에 큰 몫을 한 것은 화의신청이었다. 원래 화의제도는 채권자수가 적은 중소기업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수 만 명 이상의 채권자가 존재하는 기아그룹의 갱생을 위하여 화의신청을 한 것은 화의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형식적 합법성에 기초하여 행위를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한국인의 법의식을 보여주는 현저한 예라 하겠다.4. 법의 필요성법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통하여 법의 규범력에 대한 인식을 물었는데,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라는 응답이 76.5%나 차지했다. 연세대 이근식 교수 외 3인의 1981년 조사에서 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 결과는 통치의 수단 30.3%, 권리의무의 실현수단 53.9%, 사회개혁 4.5%, 제재 10.9%로 나타났다. 비슷한 차원의 질문에 대한 응답의 대부분이 통치의 수단 30.3%과 권리의무의 실현 수단 53.9%오 나타난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70년대 및 80년대 초반의 지배적이었던 법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사라지고 민주화 개혁과정 이후 계층간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혼란양상이 야기되자 법에 대한 기대는 사회질서유지기능으로 쏠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소득층일수록 법의 사회질서유지기능을 더욱 중히 여기는데, 이는 중산층 이상 계층의 안정 회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5. 분쟁해결한국의 전통적 소송회피문화 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에 호소하는 것을 합리적인 해결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아직도 농후하여 법적으로 해결합시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몰인정하다거나 23.9%, 불쾌하다 26.9%는 반응이 과반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과거 법의식 설문조사에서의 동일한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법치주의 실현과 국민 법의식 제고에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람직하다 또는 합리적이다 라는 반응을 보인 응답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발정향을 주었다. 분쟁의 해결방법으로서 법을 선택하려는 경향, 탈법행위자에 대한 높은 비판의식 등은 법치주의 실현과 법의식 제고를 위한 청신호로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그러나 국민의 법에 대한 인식과 정서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 즉 법불신풍조가 아직도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극복하여야 할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특히 연령·학력·직업·소득수준별로 법에 대한 인상과 교차분석할 때 연령이 낮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소득이 높을수록, 성향이 진보적일수록 법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이는 계층간의 이질성이 국민의 법생활에서도 조장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7. 준법정신전체응답자 중 82.4%가 우리 사회에서 법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고 응답하여 준법질서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응답자 스스로의 진단을 묻는 설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진단을 다소 증폭되었다고 본다. 준법정신의 결여는 법정립 및 법집행기관에 대한 불신과 상승작용을 하여 법경시풍조를 낳고 나아가서 법치국가 실현을 요원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일면 높은 준법정신의 수준을 요구하는 국민의 비판정신의 반영으로서 전반적으로 나타난 권리의식의 신장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 정신이 자리를 잡아가는 징후로 받아들일 수 도 있다.한편 법이 발 지켜지고 있지 않은 원인에 대하여 주로 법이 불공평하므로 19.9% , 법의 절차가 복잡하고 자주 바뀌니까 33.2% , 법의 집행이 엄격하지 못하므로 24% 에 치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법정립기관이나 법집행기관에 그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불공평해서 법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자는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퇴치하여야 할 범죄로 부정부패를 제1순위로 꼽았다. 이와 아울러 정치인 61.8%, 기업가 15.6%, 공무원 11.0%을 사회의 준법질서를 깨뜨리는 주요 집단으로 지적하였고, 기타사항에 응답자 스스로 기입한 응답내용도 주로 법을 알거나 주도.
Ⅰ. 서론21세기 우리 농업은 경쟁력 강화를 통한 지속적 발전과 함께 확고한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위상 확립을 통해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러나 반만년 동안 민족의 생존을 지탱해왔던 우리농업은 농산물의 전면개방과 함께 농업투자의 위축으로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물론 농업 내부에 우리농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비효율적인 밝은 구조 등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한국농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고 개방화 국제화라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농업의 구조를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보다 경쟁력 있는 21세기형 첨단산업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농업 내부의 구조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함께, 농업 및 기타 산업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변화가 미래의 농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나타난 변화를 남보다 앞서 수용함으로써 변화로부터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찾아낸 후, 그것을 소화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따라서 본 레포트는 한국 농업발전을 위하여 우리 농업구조의 변화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한 한국농업의 발전방향과 해결과제를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Ⅱ. 농업구조의 변화1. 농업위치의 변화국민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농가인구는 1960년 1,455만 명에서1970년의 1,442만명, 1980년의 1,083만명, 1990년의 666만명, 1995년에는 485만명, 1999년 421만 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농가수도 농가인구의 감소와 함께 1960년 235만호로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1970년248만호, 1980년의 216만호, 1990년의 177만호, 1995년 150만호, 1999년에는 132만호로 감소하였다< 표 1 > 참조 이러한 감소현상은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격한 감소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와 같은 농업인구의 감소는 공업화에 필요 더욱 가속화시킨 요인이 되었다.3. 농가경제구조의 변화1995년도 중 농가소득은 2180만 3천원으로 5년전인 1990년 1102만 6천원의 1.3배로 증가하였고, 농업소득은 1.2배로 증가하는 반면, 농외소득은 1.4배, 이전소득은 1.3배로 증가하였다. 또한 농가소득중 농업소득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995년에는 48.0%이다. 그러나 농외소득의 비중이 31.8%로 잠차 그 비중이 증가하고는 있으나 일본 및 대만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특히 우리 나라는 이전 수입의 비중이 높아 농업소득이외 소득의38.8%에 달한다.1999년 농가소득은 가구당 평균 2,232만 3천원으로 1998년의 2,049만 4천원보다8.9% 증가하였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경기가 연도 중에는 다소 회복된 결과 1998년도에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던 농산물의 소비가 증가하고 쌀 가격 및 한우가격이 상승하여 농업수입이 증가하였고 또한 환율도 안정세를 유지함에 따라 1998년에 큰 폭으로 상승했던 비료·농약 등 영농자재 가격이 안정된 결과이다. 또한 농업소득은 1,056만 6천원으로1998년의 895만 5천원보다 18.0% 증가하였다. 이는 1998년도에 IMF 영향으로 크게 인상되었던 비료, 농약 등이 영농자재의 가격이 안정되어 농업경영비가 5.2%로 소폭 증가한 반면 쌀 생산량의 증가와 가격의 상승, 한우가격 회복 등에 따라 농업 조수입이 12.1% 늘어났기 때문이다.농외소득은 전반적인 경기회복에 따라 겸업소득이 22.3% 증가하였으나 임금소득이 대부분인 사업이외의 소득은 전년에 이어 3,7%가 감소하여 1998년의 697만 6천 원과 비슷한 703만 4천원으로 0.8% 증가에 그쳤다 참조. 농가소득 추이 (단위 : 천원, %){구분1990199519981999증감률95/9099/98농가소득16,928(100)21,803(100)20,494(100)22,323(100)1.38.9농 업 소 득농 외 소 득이 전 수 입8,427(49.8)5,040(29.8)3,461(20는 등 고미가 정책이 추진되었으나, 증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다수성 품종인 통일벼를 1971년부터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하여 1976년에는 벼 재배면적의 45%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며, 통일벼 재배면적의 확대 및 단위면적 당 수확량 증가 등의 증산운동에 박차를 가한 결과 1977년에는 주곡의 자급을 실현하게 되었다.아울러 1970년부터 추진된 새마을운동으로 농촌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새마을운동은 정신개발과 환경개선을 중심으로 추진되었으나 1972년부터는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소득증대특별사업이 실시되어 도농간의 소득균형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 성과를 나타내기도 하였다.3) 농정갈등기(1978-88년)1978년과 1980년의 자연재해, 1978년의 고추·양파·돼지의 가격 파동, 1983-83년의 소 파동으로 농촌경제가 침체되고 농가부채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자연재해와 농산물 가격파동이 겹치면 도농간 소득격차가 확대됨에 따라 복합영농 및 농촌공업개발 등을 통한 농외소득론이 새로운 농정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농촌경제의 전반적인 침체에 따라 긴급대책 마련이 불가피해지면서 1986년에는 농어촌종합대책, 1987년에는 농어가부채경감대책이 수립되었다.한편 1980년의 냉해로 쌀 생산이 크게 감소하여 1981년에는 사상 최대의 쌀 수입을 포함하여 1983년까지 총 273만톤의 미곡을 포함하여 수입함에 따라 국내 가격의 하락을 초래하였다. 게다가 그간 이중곡가제로 누적되어 온 양특적자가 통화 증발을 통해 물가상승을 주도한다는 비판론이 대두되면서 저곡가 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양정전환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4) 개방농정기(1989-현재)1986년 UR 농산물 협상이 시작되고 1989년에는 우리나라가 GATT/BOP 조항을 졸업하게 됨에 따라 농산물시장의 개방 압력이 가시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농정의 좌표를 새로이 설정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이러한 맥락에서 1989년에는 농어촌 발전종합대책이 수립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장예·축산 등에 있어서도 시설 현대화 및 자동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토지생산성과 노동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예를 들어 노동 생산성은 1970년에 시간 당 1백원(경상가격) 수준이었으나 1997년에는 1만원이 되었고, 토지 생산성도 1970년에는103당 2만원 정도였으나 1997년에는 97만원 수준이 되었다.최근에는 유전공학, 생명공학, 신소재 이용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생력화·비용절감을 추구하는 농림수산업을 실현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농림수산물의 생산과 저장·가공을 연계시킴으로써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창출하여 수출 증대에도'기여하고 있다.3) 농가소득 증대와 복지향상그 동안 농가소득도 꾸준히 증가하여 1997년에 호당 2,349만원으로서 특히 1990년대 들어 경상가격으로 2배나 증가형T다. 또한 축산농가의 평균 소득은 3,959만원, 특작농가는 2,828만원, 과수농가는 2,798만원 등으로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농외소득 비율은 1960년대의 20% 수준에서 1997년에는 35%로 증가하였으며, 겸업농가도 41%로 늘어났다. 또한 농외소득원도 다양해져서, 과거에는 대개회사 등에 취업해서 얻는 급료가 많았으나, 이 부분이 점차 줄고 상업이나 서비스업에 의한 수입이나 노임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반면에, 최근 수년간 농어민에 대한 정책지원이 늘어나면서 부채도 아울러 증가하여, 1997년의 농가부채는 호당 1,301만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채는 토지나 영농시설 및 농기계 구입 등을 위한 생산성 부채가 75%에 달하고 있다. 또한 부채의 상환 능력을 판단하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농가자산에 대한 부채 비율이 7%에 불과하고, 농가저축액(1,909만원)이 부채 보다 많아 농업경영이 건실화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그 동안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농어촌 생활환경은 과거에 비하여 크게 향상되었으나 아직도 도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수준이다. 예를 들어 1996년 현재 농어촌의 도로포장률은 40%(도시 84%)에 불과하고, 상수아니더라도, 다른 산업과 같이 조세제도와 사회복지제도로 성취할 수도 있다.다섯째는, 시장에 대한 대응방식을 수요관리 위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세계시장이 통합화되는 조류는 판매시장을 확보하고, 새로운 추가적인 시장수요를 만들어 나가는 활동이 없이 어느 산업이든지 경쟁에서 이겨내기가 어렵다 농산물이 생산된 이후의 시장대책에 치중하던 전통적 접근을 탈피해서 확보된 시장을 보고 생산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다. 과거와는 달리 저렴하고 쉽게 쓸 수 있는 정보화 기술이 이 같은 작업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길을 넓혀두고 있다.2. 한국농업의 발전과제1)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한 대책마련UR 농업협정의 이행 및 WTO의 후속협상 그리고 새로운 라운드의 대두 등으로 국내 농업지원은 점차 축소되는 반면 시장개방의 확대요구가 더욱 거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2005년 이후 우리의 쌀시장은 최소시장접근(MMA)의 확대 또는 관세화에 의한 개방이라는 두 가지 방법 중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있는데 이에 대한 대처가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WTO 후속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도록 국제협상의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FAO 식량정상회담 결과인 식량안보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확산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며, 아시아국가와 연대하여 미국 및 케언즈그룹 등 수출국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 또한 OECD 가입당시에 유보되었던 농업부문에 대한 예외인정과 개발도상국 지위를 확보해야한다.특히 우리 쌀의 존속을 위해 쌀에 관한 수입자유화 재협상(2004년 예정)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일본, 대만 등 쌀 수입국과의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수입물량확대(MMA), 관세화 등의 방안을 재검토하여 2004년 이후 한국의 쌀시장은 부분적인 개방만 되게끔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검사·검역체계의 강화, 식품 안정성 기준의 과학화 긴급 피해구제제도 등을 적극 활용하여 무분별한 수입의 범람을 방지해야 한다.2)
Ⅰ. 한시란?중국의 전통적인 시가 양식으로는 주대(周代)의 시경시(詩經詩), 한대(漢代)의 악부(樂府), 한(漢) ·위(魏) ·육조(六朝)의 고시(古詩), 당대(唐代)의 근체시(近體詩), 당(唐) ·송(宋)의 사(詞)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국이 창작상에 채용한 것으로는 근체시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고시가 그 다음이며 시경시에서 연원된 4언체(四言體)와 악부 ·사에서와 같은 장단구(長短句)의 양식은 훨씬 낮은 정도에 그쳤다. 당대에 완성된 근체시는 1수(首)의 구수(句數), 매구의 어수(語數) ·압운(押韻), 평측(平仄)의 안배, 대구(對句) 등에 있어 매우 복잡하고 엄격한 규칙성을 가진 정형시(定型詩)로서 율시(律詩) ·절구(絶句) ·배율(排律)의 구별이 있고, 또 각각 5언(五言)과 7언(七言)으로 나뉘는데 그 기준적인 양식은 율시에서 볼 수 있다.율시 정격(正格)의 형식을 도식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부호 ∥은 평성자(平聲字), \은 측성자(仄聲字), ◎은 운자(韻字), ∨은 호흡의 잠시 멈춤).5언율시:\\∨∥∥\/∥∥∨\\◎//∥∥∨∥\\/\\∨\∥◎//\\∨∥∥\/∥∥∨\\◎//∥∥∨∥\\/\\∨\∥◎//7언율시:∥∥\\∨\∥◎/\\∨∥∥∨\\◎//\\∥∥∨∥\\/∥∥\\∨\∥◎//∥∥\\∨∥∥\/\\∥∥∨\\◎//\\∥∥∨∥\\/∥∥\\∨\∥◎//이 도식에서 보듯이 5언율시는 매구 5언의 8구로 1수가 이루어지며 평측의 안배는 보는 바와 같다. 압운은 제2 ·4 ·6 ·8구의 꼬리에 하되, 평성자의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한 운으로 일관해야 하는 일운도저격(一韻到底格)이다. 2구가 1련(聯)을 이루며, 첫째 연을 수련(首聯), 둘째 연을 함련(役聯), 셋째 연을 경련(頸聯), 넷째 연을 미련(尾聯)이라 부르고, 시상의 전개 구성상 수련은 기(起), 함련은 승(承), 경련은 전(轉), 미련은 결(結)의 성격을 가진다.그리고 함련과 경련은 반드시 대구(對句)를 이루어야 한다. 7언율시는 매구 7언이라는 점, 제1구의 꼬리에도 압운하는 점, 그리고 체시 전체를 ‘율시(律詩 ; 격률에 맞게 쓰인 시라는 뜻)’라 칭하기도 한다. 이 근체시는 절구(絶句)와 율시(律詩), 배율(排律)로 나누어지는데 각기 오언과 칠언이 있다.2. 절구(絶句)근체시의 한 양식으로 4구로 이루어지는 가장 길이가 짧은 시체이며, 한 구의 자수가 5자인 오언절구와 7자인 칠언절구로 나뉜다.(간혹 6자구로 된 절구도 있다) 절구의 제1구를 상(想)을 일으키는 기구(起句), 제2구를 1구의 뜻을 이어받는 승구(承句), 제3구를 뜻을 전환하는 전구(轉句), 그리고 제4구를 1,2,3구의 뜻을 종합하여 묶는 결구(結句)라고 한다. 구의 구성은 1 1,2구는 산구(散句 : 對偶의 형태를 취하지 않은 구)로 기(起)하고 3,4구는 대구(對句)로 결(結)한 경우, 2 1,2구는 대구로 기하고 3,4구는 산구로 결한 경우, 3 4구 모두 대구를 쓰는 경우, 4 4구 모두 산구를 쓰는 경우로 나누어진다.절구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8구로 구성되는 율시(律詩)를 반절(半絶)한 것이라는 설〔단구(斷句), 절구(截句)〕과 일구일절(一句一絶)이라는 뜻에서 취했다는 설 등 여러 견해가 있으나 정설은 아직 없다. 오언절구는 육조(六朝)의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때 양자강(揚子江) 하류와 중류지역에서 유행한 나 와 같은 민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들 민요에는 남녀의 애정을 경쾌한 표현으로 노래한 것이 많았는데, 이것이 문인들의 주목을 받아 제(齊)나라와 양(梁)나라 이후에 크게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민요풍으로 출발하였던 단시(短詩)는 점차 무게와 깊이가 더해지고 운율(韻律)도 정비되어 당나라에 이르러 마침내 근체시(近體詩)의 하나로 정착하게 되었다. 한편 칠언절구는 300년간 성행했던 당대(唐代)의 신체시로 당시문학의 정수였지만 칠언체가 모두 그러했듯 오언의 발전에 편승하는 형태로 육조 말에서 당 초기에 걸쳐 급격하게 번성하여 초당(初唐) 말엽에 그 형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오언과 칠언 모두 성당(盛唐) 시기에 최고조에 달하였는데, 칠언절구듯 붙지도 아니하고 떨어지지도 아니하듯이 하고, 경련은 1만 길이나 되는 큰 파도의 이면에 반드시 그만큼의 근원이 있듯 하며, 미련은 회오리바람에 기가 모여 깊은 연못 속에 쌓여 있듯 해야 한다"라 하며 작법의 전형을 제시하였다.Ⅲ. 오언절구-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홀로 쓰라린 시 읊조리니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인생길에 내 노래 알아주는 이 없네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에는 삼경의 비만 내리는데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앞에 내 마음은 어느덧 만리 밖에 가 있네□ 핵심정리* 지은이 : 최치원(崔致遠)* 형 식 : 오언절구* 어 조 : 서정적, 번뇌적, 고뇌적* 성 격 : 번민과 고독* 특 징 : 신분적 한계로 좌절을 겪은 화자의 심정이 표현됨, 대구의 구조로 이루 어짐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감정의 형상화* 제 재 : 가을비가 내리는 밤* 주 제 : 가을비 오는 날 밤의 외로움 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뜻을 펴지 못한지식인의 고뇌* 출 전 : □ 시어연구* 苦吟(고음) : 괴로이 시를 읊조림* 世路(세로) : 세상 살아가는 길. 처세의 방법* 少(소) : 드물다. 적다.* 知音(지음) : 서로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벗을 이르는 말.* 三更(삼경) : 한 밤중,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자시, 병야* 萬里心(만리심) : 먼 고향을 그리는 마음. 향수, 사향□ 구절연구*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조리나, 세상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드무네. :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고뇌하는 작가의 심정을 드러낸 표현이다. 힘들게 시를 읊고 있지만 더 힘든 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지식과 포부를 펼 수 없게 된 데 대한 좌절감이 표현되어 있다. ‘알아주는 이(知音)’라는 말에는 고사가 있다. 옛날 중국 거문고의 달인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에서 그의 부모는 금돼지의 새끼로 잘못 알고 내다 버리지만, 선녀와 연꽃 및 백조들이 아기를 돌보는 기적이 나타나자, 다시 데려다가 키워 최고운은 학문과 문장으로 크게 떨치게 된다. 하루는 중국 황제가 들으니 시 읊는 소리가 하도 낭랑하여 알아보게 한 즉, 그것은 신라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즉시 신하를 신라로 보내어 알아보았더니, 신라에는 재사(才士)가 수백 명이나 된다는 보고에 황제는 신라 석함(石函)에 달걀을 넣고 초로 밀봉한 다음 다시 신하를 시켜 석함 속의 물건을 시로 지어 보내지 않으면 대국(大國)을 가볍게 본 죄로 다스리겠다고 위협하였다. 이에 최고운은 시를 지어 이미 그 내용물인 달걀이 병아리가 되었다고 답하였다. 이에 탄복한 황제는 최고운을 중국에 초빙한다. 중국에서 장원급제한 그는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적장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마침내 난을 다스리니 황제는 더욱 감탄한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중국인 신하들의 모함으로 외딴 섬에 유배되어 몇 차례의 위기를 도술로 모면한 뒤 무사히 신라로 돌아온다. 왕은 그에게 벼슬을 주었으나 끝내 사양하고 가야산(枷倻山)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이다.Ⅳ. 오언율시-김시습의 도중(途中)도중(途中) 김시습貊國初飛雪(맥국초비설) 맥의 나라 이 땅에 첫눈이 날리니,春城木葉疏(춘성목엽소) 춘성에 나뭇잎이 듬성해지네.秋深村有酒(추심촌유주) 가을 깊어 마을에 술이 있는데,客久食無魚(객구식무어) 객창에 오랫동안 고기 맛을 못보겠네.山遠天垂野(산원천수야) 산이 멀어 하늘은 들에 드리웠고,江遙地接虛(강요지접허) 강물 아득해 대지는 허공에 붙었네.孤鴻落日外(고홍락일외) 외로운 기러기 지는 해 밖으로 날아가니,征馬政躊躇(정마정주저) 나그네 발걸음 가는 길 머뭇거리네.□ 핵심정리* 지은이 : 김시습(金時習)* 연 대 : 세조 때* 갈 래 : 오언율시* 제 재 : 늦가을 산촌* 특 징 : 객관적인 자연 묘사에서 내면적인 서정의 세계로 시적 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주 제 : 초가을 산촌 풍경에서 느, 의인법* 구 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주 제 : 산중에 은둔하고 싶은 심정, 자연을 통해 현실적 고뇌 극복,자연 속에 침잠해 세속과 거리를 두고자 함.* 출 전 : □ 시어연구* 狂奔(광분) : 미친 듯 달리다.* 疊石(첩석) : 첩첩이 쌓인 바위* 重巒(중만) : 겹겹이 들어선 산봉우리, 만은 뫼 만* 人語(인어) : 사람들의 말소리* 難分(난분) : 분간하기 어렵다* 是非聲(시비성) : 옳으니 그리니 하는 말다툼 소리* 故(고) : 짐짓* 籠(롱) : 싸다* 狂噴疊石(광분첩석) : 첩첩의 바위를 미친 둣이 달림* 吼重巒(후중만) : 겹겹의 봉우리를 울림* 人語難分(인어난분) : 사람의 말소리를 분간하기 어려움* 咫尺間(지척간) : 매우 가까운 거리* 常恐(상공) : 항상 두려워 함, 행여 ~ 할까 늘 마음을 씀* 是非聲到耳(시비성도이) : 시비를 따지는 소리가 귀에 들리다* 敎流水(교류수) : 흐르는 물로 하여금 ~ 하게 하다* 盡籠山(진롱산) : 온 산을 감싸다□ 구절연구* 첩첩 바위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사람 말소리 지척에서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 첩첩 바위를 미친 듯 달리면서 겹겹 봉우리를 울리는 주체는 ‘흐르는 물’이다. 이 물소리가 얼마나 크고 우렁찬 지 바로 곁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소리는 속세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고 모함하며 다투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아니다. 그야말로 사심 없는 자연의 소리이다. 시인은 이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속세의 시끌벅적한 다툼의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걱정되어,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 시인은 기울어 가던 신라 왕조의 천년 사직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고자 열정을 지닌 채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보았다. 하지만 시인에게 돌아온 것은 옳으니 그르니 시비(是非)하며 서로 다투고 모함하는 소리뿐이었다. 현실적 한계를 절감한 시인은 가야산에 은거하며 속세와의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시인이 속다.
Ⅰ. 서론최근 남북한간에는 그전 냉전시대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문화 예술분야에서 몇 번의 교류와 만남이 이루어지고, 스포츠분야에서는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해방이후 남과 북이 분단 된지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그 동안 남과 북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여 치열한 대결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1989년 구소련 연방의 해체와 동구권의 자유화의 물결로 인해 북한이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타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와 남한의 외교관계 수립에 이어 중국과도 국교를 맺게 되자 북한은 더욱 더 고립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1994년의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곧 이어 닥친 자연재해로 인해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생존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북한 국경을 넘는 탈북자가 엄청나게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북한의 체제 붕괴의 위기는 오히려 남북한간의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2000년 6월 15일의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은 전 세계에 희망을 안겨주는 동시에 민족의 숙원이었던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주춧돌을 놓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분단 58년은 언어의 이질성과 역사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상호 배타적인 문화를 잉태하였다. 특히 정치적 경제적인 측면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문화 유산에 대해서도 상호간의 평가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민족유산을 고전문화유산과 혁명전통유산으로 구분하면서 후자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의 계승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선례는 다른 분야로 확산될 전망이며 멀지않아 우리 국문학 분야에서도 조만간 학문적 교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학계의 연구동향과 북한문학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의 당면과제로 등장하고 있다.『장화홍련전』은 17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칠산사건을 소재로 하여 지어진 소설이다. 17세기 중반은 조선사회에서 사회세하게 반영되는 「사회주의 현실 주제」의 작품들이 제출되었으며, 이와 대비적으로 체제에 대한 위기감의 발현으로 ‘주체’를 강조한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의 작품들이 재평가되고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우리의 관심은 전자에 있다. 문학이 존재와 세계의 팽팽한 긴장을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북한 문학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존재의 내면과 욕망이 의식적으로 거세된 작품들이 북한 문학의 주류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개인의 욕망이 북한의 문학 속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주체문학의 미세한 균열을 드러내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2. 북한 문학의 흐름의 갈래1980년대의 북한 문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980년대 북한 문학은 크게 두 경향으로 나뉜다. 먼저, 『불멸의 역사 총서』로 대표되는,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이 계열의 작품은 항일혁명투쟁의 복원과 사회주의 건설의 당위성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 정책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다.다음으로 ‘사회주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이다. 주체 문예이론에 입각하여 제작된 작품들이 대중성 확보에 실패하자, 절대적 과거에서 벗어나 실제 현실에서 인민들이 느끼는 애환이나 생활을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존의 이념적인 작품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인민들의 생생한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체 문예이론에 입각한 기존의 작품들과는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요컨대, 북한의 1980년대 문학은 비적대적 모순에 바탕한 사회주의 건설의 문학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 시기는 문학 예술의 자율성이 표출되어 주체 문예이론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1980년대 북한 문학은 주체사상에 순응하는 문학과 개인의 욕망이 표출되는 균열의 문학으로 양분할 수 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개인의 세속적 욕망이 표출된다는 점에서 후자는 주체사상과 갈 새겨지고 지워진다. 바야흐로 ‘우리/타자’라는 이분법적 척도로 이질적인 문화를 재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열린 네트워크에 대한 성찰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팽팽하게 맞서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길항작용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잡종의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한다.지금껏 우리는 북한의 현실을 바라보는데 이중적 잣대를 적용해 왔다. 북한은 늘 지리상으로는 가깝지만 이념상으로는 먼, 감성적으로는 친근하지만 이성적(현실적)으로는 낯선 괴물이었다. 우리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이러한 양면성을 교차시키는 작업, 즉 북한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좁혀지는 지점에서 문화의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중심주의적인 동일성(남한)의 시각으로 타자(북한)를 흡수하려 할 때, 우리는 북한의 희생을 재물로 중심의 권좌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심력으로서의 권좌는 자본의 논리로 타자를 지배하는 근대 담론의 본질을 함축한다.{) 박태상, 「북한 문학의 현상」, 깊은샘, 2001그러나 중심에 대한 욕망을 잠시 유보하고 타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을 때, 두 세계가 중첩되고 교차되는 보다 큰 영역에서 열린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잡종의 담론은 ‘타자가 왜 우리와 다를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나와 타자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관점에서 차이를 맥락화하고, 이들 통해 좁혀나갈 수 있는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다름을 유지하되 대화를 가능케 하는 공통 분모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점에서 잡종의 시각은 북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절실하게 요청되는 태도의 하나라 할 수 있다.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이익이 일치될 때 가장 행복한 문학이 탄생한다. 그러나 남한의 문학과 북한의 문학은 모두 그렇지 못하다. 남한에서는 개인의 욕망이 중시되고, 북한에서는 집단의 이익이 강조된다. 남·북한 문학의 의사소통 가능성은 서로의 ‘타자’, 즉 남한 문학에서는 공동 한 팔, 한 다리를 잘라가 장쇠는 병신이 되었다.이에 계모는 홍련을 더욱 학대하고 죽이려 하였다. 홍련은 장쇠에게서 장화가 죽은 것을 알았고, 또 꿈에 장화가 홍련의 꿈에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사실을 알려주자, 홍련은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그로부터 그 못에는 밤낮으로 곡소리가 났으며, 원통하게 죽은 두 자매가 그 사연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었다. 이런 이상한 일 때문에 부사로 올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전동우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부사로 부임하였다.도임 초야에 장화·홍련이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원인과 원을 풀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튿날 부사는 좌수 부부를 문초한바,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더니 야음을 틈타 가출하고 소식이 없으며, 장화의 낙태물이라고 증거물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사실인 것 같아, 좌수 부부를 훈방하였다. 그 날 밤 꿈에 두 소저가 나타나 계모가 제시한 낙태물의 배를 갈라 보면 알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는 다시 그 낙태물을 살피고 배를 갈라 보니 쥐똥이 나왔다. 이에 부사는 계모를 능지처참하고, 장쇠는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좌수는 훈방하였다.그리고 못에 가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碑)를 세워 혼령을 위로하였더니, 그 날 밤 꿈에 두 자매가 다시 나타나 원한을 풀어 준 일을 사례하며, 앞으로 승직 할 것이라 하였다. 그 뒤 그 말대로 부사는 승직하여 통제사에 이르렀다.한편, 배좌수는 윤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는데, 꿈에 두 딸이 나타나 상제가 전세에 못다 한 부녀의 연분을 다시 이으라고 하였다는 말을 전하고, 윤씨부인은 꿈에 상제로부터 꽃 두 송이를 받은 태몽을 꾸고 쌍동녀를 낳아 꿈을 생각하여 장화와 홍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두 자매가 장성하여 평양의 부호 이연호의 쌍동이와 혼인하여, 아들딸을 낳고 복록을 누리며 잘살았다.이상의 장화홍련전의 줄거리를 기본 모티브 중심으로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강씨부인 夢兆(선녀→꽃송이)2 장화·홍련의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민족문학적인 순수지향성을 띠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20년대 중엽부터 팽팽하게 대립해오던 카프파의 프로문학 추종자들이 월북하여 북한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것과 대조된다. 역시 민족문학파 성향을 지닌 문인 중심으로 계급투쟁과 항일적인 것보다는 본격문학을 지향하는 것이다.2) 인물의 전형과 인물간의 대립·갈등양상가. 인물의 전형성장화·홍련은 극심한 어머니 콤플렉스의 소유자들이다. 심리학자 융은 "심한 콤플렉스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말하는 것, 느끼는 것 전부에 퍽 민감하며, 어머니의 모습이 늘 그의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장화·홍련의 고난 극복방법은 어머니를 향한 '정신적 逃避'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된다. 이러한 왜곡된 성격과 태도가 계모 허씨의 마음을 더욱 더 자극하게 되고 갈등을 점점 더 심화시키게 된다.계모 허씨의 경우 극도의 '열등 콤플렉스'에 휩싸인 인물로 묘사된다. 허씨는 융의 이론에 의하면 '퍼소나'와 '퍼슨낼리티'의 부조화로 인해 갈등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트러블메이커이다. 따라서 지나친 열등감에 빠져 있는 허씨는 이에서 탈피하기 위해 돌파구를 찾게 되고, 그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바로 '전처 소생에 대한 학대'이다. 그러므로 사사건건 시기심(猜忌心)을 발동하여 긴장상태를 야기 시킨다. 또 그는 사디즘(sadism)의 병자이기도 하다. 그는 전처 자식을 학대하여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가학증(加虐症)의 인물인 것이다.배좌수는 중간적 인물이다. 그리고 상황수용적 인물로 묘사된다. 따라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며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진다. 작품 속에서는 용렬한 사람 또는 미련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는 가부장중심사회에서의 가장이지만,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중간적 존재로서 화해와 조정의 소임을 떠맡지 못하고 가정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전부사(田府使)는 공명심이 드높고 조선의 유교적 윤리에 집착하는 전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전부사는 폐읍이 다 된 마을에 군수로 자원할 만큼 담대하
Ⅰ. 서론1997년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유례 없는 새로운 시련을 안겨준 한 해였다. 국가 부도(moratorium)의 상태까지 직면하여 태국, 인도네시아 및 한국은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좀 더 좁혀 말하면 금융위기, 금융위기 중에서도 외환위기 특히 외환 단기 유동성 위기로 정의될 수 있다.한국은 외환 유동성 위기로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여 총 583.5억 달러를 2000년까지 단계별로 지원 받기로 되었다. 한국 금융위기의 원인을 해외적요인과 내국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볼 때, 해외적 요인은 상황분석과 전략적 차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며 내국적 요인은 구조조정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여 줄 것이다.본 레포트는 금융위기의 의의를 말하고, 금융위기에 관한 주요 가설을 전개하고자 한다.Ⅱ. 금융위기의 의의와 특성1. 금융위기의 의의금융위기란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금융공항, 금융불안정, 금융정책 등으로 표현되며, 이에 대한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은 학자들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첫째, 광의의 금융위기 : 금융위기의 조건을 엄격히 제안하지 않은 경우로 민스키는 금융위기를 소득과 가격의 하락은 물론 금융기관과 기업의 대규모 채무불이행 상태로 규정하였다. 또한 킨들버거는 예기치 않은 충격이 발발하여 자산가치가 폭락하기 시작하고 부채비율이 높은 경제주체들의 부도와 파산이 잇달아 결제제도와 신용창조의 기능의 실패로 경제전체가 붕괴로 이어지는 현상이라 정의하였다.둘째, 협의의 금융위기 : 금융위기의 조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경우로 골드스미스는 각종 금유지표(단기금리, 주가, 부동산가격 등)의 짧은 기간의 갑작스런 악화와 더불어 전반적인 금융제도의 파산 및 붕괴를 금융위기로 보았다. 또한 울프슨은 금융불안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직면하여 자재적인 금융위기와 금융기관의 파산 등에 의해 정상적인 경제 및 금융제도의 기능이 와해되는 것을 금융위기라고 정의하였다.2. 금융위기승과 확신이 부채비율을 증가시킨다. 이런 경향은 개인, 기업차원 모두에서 발생하는데, 신용수요 확대와 금리상승 동반, 화폐유통속도 증대, 유동성 증가,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확대 및 경기 팽창을 나타내어 호황이 가속화된다. 그래서 버블과 매니아가 발생한다.한편, 은행의 대출 및 자산구성에 대한 정보는 사적정보이다. 따라서 은행은 계속해서 시장의 자산구성에 대한 정보를 공시할 수 없다. 따라서 예금자의 자금인출에 응할 수 없고 예금인출사태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반면에 은행자산은 비유동적이다. 따라서 정책적 개입이 없으면 은행의 안정을 유지하기 곤란할 것이며, 특히 사람들의 예상이 자기 충족적 예견으로 실현될 경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자기 충족적 예견에 따른 불안정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황에서 더욱 확대된다.첫째로, 한 은행의 부도는 타 은행 역시도 건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심어주는데, 그것은 타 은행의 자산구성도 파산한 은행과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둘째로, 은행의 실패는 그 은행과 거래하는 기업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금의 차입자나 채권자 모두에게 손실을 끼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출선을 다변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셋째로, 은행의 실패에 따른 기업의 실패는 총수요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은행이 신용대출을 줄이면, 통화공급이 역시 줄어든다. 물가가 신축적이지 못한 경제구조에서는 이것이 실질금리를 인상시킨다. 이것은 지출의 억제를 가져오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 및 금융기관의 수지에 압박을 가한다.Ⅲ. 금융위기에 관한 가설우리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는 경상수지 적자 누적, 한보, 기아 부도 등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 국에서 외환위기 발생 등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면서 외환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또,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와 개방정책의 시행으로 허점이 노출, 기업과 금융기관 모두 무분별하게 외채를 끌어들여 해외진출 및 외세확장에 나섬에 따라 빠른 속도로 한다. 수익성보다는 외형확장에 주력하여 기업의 부채비율이 급증했고, 은행도 담보위주 또는 외형규모만 믿고 거액을 대출해 온 것이 그렇다. 특히 권위주의적 통제와 가부장적 보호에 의한 관치금융과 불투명한 제도로 인해 시장 경제원리가 발현되지 못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는 부실금융기관을 그때그때 퇴출시키지 못하고 지원과 규제를 통해 연명시켜 나가는 선단경영방식 의 은행정책을 추진하였고, 대기업은 이른바 대마불사를 믿고 방만한 투자가 지속되었고, 기업의 투명성을 은폐한 채 정확한 재무정보가 알려지지 않아 기업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시장경제원리가 정착되지 못했다.산업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국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지만 그 비용-편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은 아직 개발된 바 없다. 단 한가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개발국가는 경제성장으로 그 목적이 달성됨에 따라 비용이 편익을 압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규모가 커지면 정부의 중앙통제 기능에 의거한 경제운영보다 가격기구를 이용한 분권적 의사결정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1. Fisher의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Fisher(1933)는 1930년대 대공황을 해석하면서 과다한 부채가 누적된 경제에서 물가하락에 따른 부채의 실질부담이 가중대면 부담완화를 위한 부채청산 목적의 자산처분 행동이 더욱 물가를 하락시키고 경기를 침체시켜 역설적으로 부채의 부담이 더욱 늘어나게 만들어 대공황을 약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그는 자신의 가설을 9단계로 설명하였다.1 부채의 청산이 자산의 강요된 매각 야기2 대출금 상환에 따른 예금통화 감소와 화폐유통속도의 저하3 앞의 두 요인에 따른 물가수준의 하락4 물가하락이 저지되지 않는 한 기업의 순 자산(net-wealth)의 추가적 감소, 기 업의 부도5 이윤감소 가능성6 산출량, 거래량, 고용수준의 감소7 비관적 전망 및 확신의 상실8 통화량의 퇴장 및 추가적인 유통속도의 감소9 명목금리의 하락과 실질금리의, Wolfson(1996)은 대공황에 관한 Fisher의 설명에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하였다.첫째, 물가하락의 가능성 문제이다. 실제로 최근 기술혁신에 의해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국가도 많이 존재한다.둘째, 은행제도의 역할에 부차적인 언급은 있으나, 분석에 있어서 중요성을 부여하지는 않고 있다.셋째, 부채-디플레이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케인즈는 물가하락이 채권의 담보가치의 하락에서 찾고 있고, Minsky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의 역할로 대체하고 있다.2. Minsky의 금융불안정화 가설Minsky(1982)는 자본주의 경제구조는 내생적으로 금융의 취약성이 증대하고, 금융안정성의 영역이 줄어들어 정상적인 금융활동과 정상적인 경제과정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는 금융불안정화 가설을 전개하고 있다. 이 가설의 기본적인 두 가지 전제는 첫째, 금융중층화 증대와 투기의 금융의 증대, 둘째, 금융중층의 증대와 부채의존도 심화에 따른 금융구조조정의 취약성이 증대함에 따라 부채-디플레이션의 증대와 심각한 침체의 야기라고 요약된다.금융위기의 발생원인을 그는 경기변동의 정점에서부터 단서를 구한다. 경기확장 국면에서 기업들은 부채수단을 통한 자금조달로 투자를 확대한다.이제 이윤이 증가하고, 현금흐름이 증가하고,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므로 유동성 위험이 낮아지고 주식시장은 활황을 이룬다. 대출의 만기도 길어지고, 투자도 회임 기간이 긴 장기투자가 진행된다. 그러나, 자본조달 측면에서는 주식에 의한 조달은 상대적으로 불리하고 또한 장기부채는 일정한 한도가 존재하므로 부채계약에 따른 부채의 비중은 만성적으로 높아지고 현금비중은 줄어들어 기업은 자금조달의 방식에 있어서 보다 투기적인 행태로 이행된다.부채의 현재가치와 부채상환 부담은 가중되어 재무구조 및 금융구조의 취약성이 증가한다. 투자수익의 현재가치는 줄어들고 투자수요는 감퇴한다. 투자의 하락과 경기후퇴는 이윤이 줄어들어 현금흐름이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부채구조의 악화로 점차 차입이 어려워지고 경로를 통해 내생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여기에 근거가 미약한 불안심리가 작용하면 급격하게 자산시장과 자금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가격수준이 하락하면 부채-디플레이션 과정이 진행된다.3. 비대칭적 정보이론: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모형Friedman & Schwartz(1963)는 대공황은 통화정책의 잘못이고, 은행공황은 금융위기의 원인이며, 금융위기는 주로 정책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Bernanke(1983)는 대공황에 대한 해석으로 통화적 요인을 중시하면서 비대칭적 정보에 입각하여 설명을 시도하였다. 금융중개기관의 효율적인 자금배분기능이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말미암은 기능저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 하에서 외부차입의 비중 증대는 차입의 한계비용을 상승시켜 외부차입의 비중이 느는데 부채-디플레이션이 진행될 때 차입자의 순자산 가치가 줄어들어 은행의 순자산이 잠식된다. 은행의 대출 기피는 내부자금의 비용도 상승시킨다. 채권발행과 같은 외부차입 수단은 차단되고 효율적인 자금배분기능이 저하 또는 마비되는 은행공황에 이어 대공황이 나타난다. 금융서비스기능은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생산 활동이므로 비통화적 요인으로 간주함으로써 종래의 실물, 금융의 거시적 구분은 거부하고 있다. 결국 공황을 야기하는 경로로서 은행의 신용을 중시한다.또한 Minskin(1997)은 피셔와 민스키등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여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등 대리인 비용에 의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초점을 맞추어 금융위기를 설명하였다. 특히 개도국의 최근의 금융위기는 외환 시장의 외환위기를 추가시켜 은행의 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투자의 재평가 기회를 제공하는 충격이 발생하면 누가 이것에 영향을 받는지를 개별 주체들은 의식하지 못한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경기변동과정에서도 주로 침체가 비대칭적으로 나타나므로 위축이 시작되는 경기 정점이나 정점의 후기에 신용경색과 은행공황이 나타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부채비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