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in Air한 발은 중국을 다른 한 발은 네팔을 딛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나는 산소 마스크에 낀 성에를 닦아내고, 바람에 어깨를 움츠린 채 티벳의 광대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약간의 희미해짐을 감지하고, 내 발 밑에 굽어진 세상이 아찔한 장관을 자아내는 수준의 높이를 (머리 속에서) 분리시켰다(떼어내려고 했다). 나는 이순간과 몇 달 동안 그것(이 순간)과 함께 일어날 감정의 폭발(도출)을 공상해왔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마침내 이곳에 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서 있는 것이다. 난 (나 자신을) 돌볼 힘도 (끄집어) 낼 수 없었다. 1996년 5월 10일 이른 오후의 일이었다. 나는 57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3일 전부터 억지로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음식은 한 사발의 라면 국물과 한줌의 땅콩 엠엔엠스였다. 일주일 동안의 격렬한 기침 감기는 내 부러진 두 갈비뼈로 숨쉬는 것 조차도 쓰라린 고통으로 만들었다. (의역한 거야) 대류권에서 29,028 피트 높이에서 소량의 공기만이 뇌에 공급되었고, 나의 정신 상태는 우둔한 아이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추움과 피곤함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나는 미국 사설(상업적 목적의) 탐험대 소속인 러시아 등정 가이드인 Anatoli Boukreev보다 몇 분 늦게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Andy Harris 보다 조금 앞섰다. 그는 내가 속했던 뉴질랜드 소속팀에 가이드였다. 사실 Boukreev란 자를 잘 알진 못 했지만, 나는 정상에 도달하는 포즈를 하고서 Harris 와 Boukreev와 함께 재빨리 4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방향을 돌려 다시 아래로 향했다. 내 시계는 오후 1시17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모두가 말했다. 나는 그 세상의 지붕 위에서 단 5분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이다.잠시 후에, 나는 (다른) 사진 찍는 것을 멈추고, 이번엔 우리가 올라온 루트인 the Southeast Ridge(남동쪽 산마루;대문자로 쓰인 것을 보니 고유명사로 쓰인 것 같음)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렌즈를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몇 명의 등정 대원들에게 맞추었고. 나는 그 순간이 내 관심에서 벗어나서야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한 시간 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을 보이던 남쪽으로 구름들이 Pumori와 AmaDablam, 그리고 에베레스트산을 둘러싼 다른 작은 산봉우리들을 이제 서서히 가리고 있었다.여섯 구의 시체가 옮겨진 후에,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수색을 포기한 후에, 외과의사들이 내 동료 Beck Weathers의 썩어 들어간(괴저가 생긴) 오른 손을 절단한 후에- 그런 후에 사람들은 왜 라고 물을 것이다.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했다면, 왜 산 위쪽에 있던 등반자들은 그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왜 베테랑 히말라야 가이드들은 계속 위로 올라갔으며, 또 에베레스트 정상에 안전하게 올라가기 위해 각자 $65,000이나 냈어야 했던, 상대적으로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그룹들을 명백한 죽음의 덫으로 왜 계속 안내했는가?누구도 그 두 가이드 그룹의 리더들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둘 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5월 10일 이른 오후에 어떤 특이사항도 내가 보지 못 했다는 것이(내가 볼만큼 어떤 특이한 현상이 없이 조용했다는 것이) 살인적인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산소가 고갈되어지고 있는 내 머리 속 생각으로는, 전혀 해 될 것이 없고, 그리고 안개 같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The Western Cwm(서부 협곡) 으로 알려져 있는 웅장한 얼음 계곡 위까지 떠있는 구름들은, 밝은 정오의 태양에서 희미한 햇살이 나오고 있을 때, 거의 매일 오후마다 그 계곡에서 일어나는 무해한 대류 농축물(수증기 물방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그 3개의 원정대(탐험대)소속 등반 대원들로 (산행길은) 교통체증을 이루었다. 하나는 뉴질랜드 가이드 Rob Hall을 기리며 숭배의식을 대원들에게 고취시키는 그룹이자 내가 속했던 팀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인 Scott Fischer에 인솔 되어 온 가이드 일행들이었다. 그리고 비상업 단체인 대만 팀 이렇게 세 탐험대였다. 달팽이처럼 움직이는 것, 그것은 26,000피트의 위치에선 법칙이다. 그 군중들(모든 등정대원들)은 내가 불안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Hillary Step(*1953년에 에베레스트 산에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한 네덜란드인 Hillary의 스텝을 말하는 것 같음)으로 한단계 한단계씩 위로 오르려 애쓰고 있었다.내 바로 직후에 정상에 도착한 Harris는 바로 내 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난 내 탱크에 얼마의 산소가 남아있던지 간에 교체를 하고 싶어서, 그에게 내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조정기의 밸브를 꺼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그런 다음 10분 동안 나는 놀랍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내 머리는 맑아졌다. 나는 실제로 가스를 틀어놓았을 때 보다 피곤함을 덜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숨이 막혀옴을 느끼기 시작했다(=호흡곤란을 느꼈다). 내 시야는 흐릿해졌고 머리는 핑핑 돌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을 잃고 상태가 악화되어 갔다.Harris가 저산소혈증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내 산소통을 끄지않고, 실수로 최대로 산소가 흐르도록 밸브를 돌려 열어놓아 탱크는 점점 소모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은 가스를 여기저기로 그냥 다 낭비하게 된 것이다. 250피트 아래 남쪽 정상에 나를 기다리는(내가 구할 수 있는) 산소탱크는 있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려면 나는 충분한 산소공급도 없이 전체 루트를 통틀어 가장 비바람이 심한(험난한) 지역으로 내려가야만 했었다.그리고 난 우선 군중들이 다 빠져나가기 만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내 쓸모없는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산에 얼어붙은 자취(흔적)에 내 얼음 도끼를 설치했다. 그리고 눈두덩이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지난 과거를 (함께)가진 등정 대원들과 진부한 축하 인사를 교환하며, 작은 목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서둘러요 서둘러요”라고 조용히 간청했다.내가 남쪽 정상까지 내려가는데 성공한 때는 3시 이후였다. 그때까지 덩굴모양의 짙은 안개는 로체(네팔-중국쪽에 있는 산 이름)의 27,923 피트 정상을 흐르고 있었고 에베레스트 정상 뿔(부분, 각뿔, 피라미드) 부분을 찰싹찰싹 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날씨가 (어떤) 시작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새 산소 실린더를 잡고 내 조정기에 채워 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구름이 모여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남부 정상으로 내려온 이후의 순간, 눈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고, 가시거리는 지옥처럼 변해갔다.(거의 앞이 안보일 정도가 되었다.)수직으로 400피트의 높이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밝은 햇살에 그 정상이 여전히 얼굴을 들어내고(씻겨지고) 있는 곳에서, 내 동료들은 그 행성의 정상에 도착을 기념이라도 하는 듯이 깃발을 펄럭이고, 사진을 모으기도 하고, 귀한 시계 침을 닭게 하면서 빈둥댔다. 그들 중 누구도 끔찍하고 괴로운 사건이 밤새 일어 났었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매 분을 세어가던 그 긴 하루의 끝에서도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 Getting Meaning from Context. Try to guess the meanings of unfamiliar words as you read. One way of understanding a new word is to break it into smaller words, prefixes, and suffixes. Another way is to look for a synonym or explanation near the word. Practice these skills by writing your own definitions for the italicized words in the following sentences taken from the first reading selection. Use the hints to help you.1.We are born into a cultural preconception that we call reality and that we never question. (Do you know the meaning of the prefix pre- and the word concept?)preconception: A belief or opinion you have already formed before you know the actual facts. 2.We essentially know the world in terms if that cultural package or preconception, and we are so unaware of it that the most liberal of us go through life with a kind of ethnocentricity.
A MEMORY FOR ALL SEASONING-SUMMARY2년 전 Peter Polson은 한 레스토랑에서 Conrad라는 웨이터를 만난다. 그는 모든 손님의 주문을 기억하는 waiter였고, Polson은 그를 연구하기 위해 대학교의 심리학 연구실로 초청했다.Conrad외에 러시아의 Shereshevskii라는 기자는 50개의 단어를 듣고 15년 후에 완벽하게 암기해 낼 수 있는 특별한 기억력을 가졌고, Toscanini라는 작곡가는 250개의 교향곡과 100개의 오페라의 모든 악기들의 악보를 암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기억력은 타고난 것으로 10여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알아왔지만, 기억력은 천재성이 아니라 연습되어지고 훈련되어져 발전해나가는 것이다.Shereshevskii는 단어를 그가 아는 모스코바의 Gorky Street에 부합시켜 기억하는 기억법을 가지고 있다. Chase와 Ericsson의 연구를 보면, 보통사람이 5~9개의 숫자를 외울 수 있는 단기기억력을 가지고 있는데, 심리학자 Steve Faloon(보통사람)은 20달의 훈련 끝에 80개의 숫자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초심자도 전문가로 훈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Faloon의 지적 능력의 변화는 없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장거리 달리기에서 나오는 숫자들, 즉 시간들을 그가 외우려는 숫자로 바꾸어 암기하였고, 그 외 숫자들은 특별한 사건들에 대입시켰다.Chase와 Ericsson의 연구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동시대의 기억술사들을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Ericsson과 Polson은 지난 2년 동안 Conrad를 연구해 왔다. 그는 지적을 두드러진 특별함은 없다. 그 자신이 말하기를 그는 초기(초반)기억에서 자신이 남과 달리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는 그의 인생에서 한번도 목록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강제로 그의 기억력을 증진 시켰다. 그리고 그는 좋은 기억력은 잘 정리되고 조직화된 정신과 기억들과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또한, 그가 Bananas 웨이터를 시작했을 때, 그는 그의 여자 상사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녀의 head waiter자리를 넘보고 더 주문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기억력을 발달시킬 수 있던 좋은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손님들의 인상으로 메뉴를 기억하고 그래프로 고기의 구운 정도를 기억했으며 샐러드는 이니셜로 단어조합을 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암기하였다. 그리고 Polson과 Ericsson은 그의 그런 능력을 음식이 아닌 다른 사물에 대입시켜 보았는데, 처음엔 느리고, 정확히 기억하지 않았지만, 몇 번의 연습 끝에 그는 다른 사물들을 그가 음식(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기억할 수 있었다.
“CEO를 위한 중국보고서” (임허규 지음, 자인출판)* 요약(작가가 표현한 대한민국 주식회사, 일본 주식회사, 미국 주식회사의 표현을 그대로 쓰겠음.)3절한국경제의 위치를 알기 위해 한국경제의 발자국들을 뒤따라 가보자.1막 일제해방 후: 1875년 이래로 일본에 의해 강제로 시장에 끌려들어 온 한국은 1960년대 초까지 약 60년간이나 일본, 미국 주식회사의 단순 하청 회사로서 고유 브랜드로 시장을 만들지도 못 했고, 주력 제품도 없는 기나긴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의 주력 상품은 당연히 1차 상품이었고, 필수품은 일본으로부터 비싸게 사들여야 하는 구조였다.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경제적으로보다는 정치 외교적으로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반면, 한국 주식회사는 거지나 다름없는 경제적 형편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다 일제 해방 이후 1945년에서 60년에 걸쳐 토지 개혁과 일본 귀속 재산 불하를 통한 생산 기술과 기업의 민간 불하를 실시한다. 이것은 60년대 초까지 이승만 정권을 먹여 살린 미국 주도에 의한 원조 경제와 함께 신생 한국의 경제 구조와 틀을 만드는 3박자를 이루게 된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주식회사는 미국이 제공하는 농수산물로 저 곡가를 형성하게 되고, 이 저 곡가 구조는 20년간 한국 주식회사에 악 영양을 미쳐 현재 한국의 강력한 노동조합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이 당시 극빈 국가였던 한국은 미국의 경제적 처지를 회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경제 군사적 무상 원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원조는 1962년 끊기게 되고 한국 주식회사는 본격적으로 외화를 직접 벌기 위해 수출 주도 정책으로의 구조 변화를 하게 된다.2막 박정희 CEO 시대: 60년대 초부터 수출 드라이브 구조로의 전환 후 5.16 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CEO는 돈 되는 것은 다한다, 수출하는 기업은 애국자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키워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중소기업은 무시됨), 노동운동은 공산주의적 행동이다, 한번 들어온 외화는 정부의 것이다, 잘 사는 것이 문제다, 새마을 운동과 같은 준 동원 학습체제를 운영한다, 등의 기조 아래 군인출신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한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까지 박정희 CEO는 역사상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들에는 외화획득이 용이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다시는 없는 기회를 잘 타고 큰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금리, 금융상의 정책의 비리와 구조상의 문제로 정경유착과 같은 많은 문제점을 한국경제에 뿌리내리게 하는 결정적인 근간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박정희씨는 1973년부터 그 당시 한국의 상황과 경제적 관점에선 이해할 수 없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실시하며, 정권의 종말을 맞이한다.3막 1980년부터 IMF법정 관리까지: 박정희정권 이후 등장한 전두환 CEO는 어느 정도 ‘경제 안정화 계획’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미국이 처한 환경으로 한국은 경제성장(수출증대)이라는 득을 보게 되고, 박정희정권 때 잡아놓은 중화학공업의 기반으로 점차 고도화된 산업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천연자원과 원재료 등을 수입해야 하는 현실과 기술의 부족, 선진국들의 수입쿼터제 등으로 대한민국 주식회사는 발전만 했지 큰 이익은 내지 못하는 구조로 빠지게 된다. 그러다 미국 적자의 주범인 일본과 서독이 환율을 절상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되고, 당시 낮은 원화 평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시간차 이득으로 86년부터 89년까지 반짝 흑자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다시 IMF와 GATT로부터 개도국의 이점을 빼앗기면서 1990년부터 1997년 까지 적자가 고착되는 구조로 돌아가게 된다.1990년대 들어 새로운 도전 중의 하나는 수출 일변도의 성장에서 내수 주도의 경제 성장이 본격화 된다는 데 있다. 이 당시 경제의 안전판이 되었던 것은 크고 안정된 바로 내수 시장의 존재 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당시 한국 경제가 가진 고유한 특징과 역설은 기형적 발전을 보인 중화학 공업, 자본 집약적 제조업들이 위기의 원인이 됨과 동시에 위기를 극복하는 안전판이 되었다는 것이다.다음으로 1997년대 김영삼 정권은 세계경제를 잘 못 읽고, 또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위치를 잘 못 이해한-물론 당시 세계경제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시대였지만- 탓에 IMF의 법정관리 까지 그 경제 상황이 악화된다. 또한 90년대는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확산(미국의 슈퍼301조 등)과 일본의 동남아 경영으로 대한민국 주식회사는 심한 경쟁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이러한 심한 경쟁상황은 지금까지 계속 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 상황에서 현 우리의 위치와 그 시사점을 알아보자.4절우리는 1997년 IMF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그리고 재벌 구조의 대기업을 무너뜨리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실시한다. 또 IMF를 설득, 고금리와 재정 긴축을 포기하게 하여 재정 정책의 독자성을 확보한다. 우리의 노력은 가히 대단했다.
세계브랜드를 만든 한국기업의 힘PART 1 전체적으로 느낀 점...연휴가 되기 전에 책을 한 권 샀다. “세계 브랜드를 만든 한국 기업들의 힘이라” 무엇보다도 일본사람이 작가(츠카모토 키요시)라는 점이 특이했다. 한국의 대기업을 일본인의 눈으로 봐라 봤을 때 더욱 객관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책은 처음부터 한국기업의 업적을 칭찬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들을 차례로 나열 해 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전체적인 내 느낌은 한국 기업들의 업적과 현 위치에 대한 뿌듯한 마음과 반면에 ‘무언가 한국 기업들이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기업들의 현 상황과 그들(우리)에게서 배울 점등을 소개하는 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패러다임이 한국:일본의 대조 구조로 되어있어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부분부분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일반화 시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내가 한국 사람이기에 섬세한 국민성 같은 면에서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를 알 수 있었다.또한 우리 나라의 대기업들이 디지털 TV, 휴대전화, 등등의 분야에서 어떻게 세계시장에서 싸워왔는지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다.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과 분야 마다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 그것은 그들을 배우고, 또한 앞서기 위한 전략적인 의미가 많아 보인다. 그리고 그 열정도 대단하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전 세계의 기업들을 경쟁상대로 하면서도 특히 일본에 우리기업의 경쟁 포인트가 집중되어 있음도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 책에서 열거한 분야들이 물론 일본 기업들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도 그렇지만, 그 이상의 경쟁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 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은 우리의 국민성이나 한국 기업들이 갖을 수 있는 유리한 인프라 등을 부러워 하는 점도 엿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칭찬으로 덮은 그들의 변명내지는 질투심정도로 느껴지기도 했다.우리 기업들은 일본을 많이 본떴지만, 청출어람식으로 다시 그들을 맹추격하고 있는 듯 하다. 삼성을 두고 경영방식은 미국을, 제조 방식은 일본을 따르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은 세계 경제 상황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맹추격하는 한국 기업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음과 동시에 자신들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몇몇 생소한 전문 용어들 때문에 가끔 복잡하게 느끼기도 하였다.PART 2, 3 감명 깊은 부분...- 3. 세계 최초의 인터넷 가전한국 가전 제품은 서구 시장에서 싸구려의 이미지를 벗고 싸면서도 품질, 디자인도 괜찮은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디지털 이미지를 내세워 성공한 우리 기업들의 업적이다. 나는 이 것을 직접 느낀 적이 있다. 작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VCR을 구매하러 가전 제품 샵들을 둘러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삼성 제품을 구매 했는데, 삼성 VCR이 가장 잘 팔린다는 매장 직원의 말이 있었다. 그때 작은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가격면서 경쟁적이고, VCR 정도의 시장에서는 이제 성능, 기술 등의 차이는 이제 거의 없기 때문에 삼성 제품이 잘 팔릴 수 있겠다’라는 짧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이 3장에서는 LG전자를 주로 다루고 있다. LG는 한국에서도 디지털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많은 공을 들였고, 성공하였다. 또한 그들의 인터넷 냉장고로 대표되는 인터넷 가전분야에서의 리더적 행동과 모험은 정말 괄목할 만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이 이미 1,000만 가구가 초고속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의 인프라가 주어져서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그들의 홈 네트워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인터넷 냉장고 등-은 한국 기업의 가전 제품 이미지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IMF때 원화 가치 하락을 이용해 낮은 가격정책을 썼던 한국 기업들에 대해 싸구려의 느낌을 갖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을 점점 사라지게 한 중요한 전략이었다.앞서 말한 그 인프라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쓰는 나라로 만들자’ 라는 경제정책에 힘입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재 우리는 IT강국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이 점이 일본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나는 이 인터넷 냉장고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의 좁은 의견에서는 ‘정말 주부들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내장된 냉장고를 원할 것인가?’ 라는 의심부터 갔다. 나를 포함한 한국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세대의 문제에 있어서 조금은 앞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LG전자는 이미 그것을 생산하고 발매하였다. 그 결과는 썩 좋지않았다. 내가 이 부분에서 배운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해외에서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한 LG전자의 고 상무라는 분의 말씀이다. 그들은 기업의 문구인 ‘Digitally Yours’ 라는 메시지만 전 세계에 전해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성공을 거두었다. 마케팅을 배웠던 학생으로서 좀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대목이었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그리고 더 멀리 내다 보아서 기술 개발에 힘쓰고 또 모두가 다 앞서기 싫어하는 분야에서 처음으로 발매하는 총대를 맨 LG의 전략은 무모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고객 주도형으로 제품을 고안 했다면, 더 심사숙고 하고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주부들의 의견을 조사해서, 그들이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엌에서 그들이 편하게 앉아서 작업을 할 수는 있는지 등의 구체적인 면을 고려해서 발매를 했다면, 더 낳은 결과를 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이 장에서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일본의 전자 기업들은 제안형이며, 한국은 고객 주도형이라는 말은 내가 알고 있던 일본 기업들에 대한 이미지에 어긋났다. 기술이 너무나도 앞서 진보하고 있는 일본 전기 브랜드들은 그 템포의 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기술을 선보이려는 욕심에 고객의 상식(?)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물론 뛰어난 국민적 인프라가 주어 진 상황이지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선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 기업들의 달라진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본의 그 우수한 기술력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할 과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또 한 가지 이장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일본 기업들의 목적의식이 한국과는 남달랐다는 것이다. 홈 네트워크 분야에 있어서 일본은 주부들의 입장에서 시작한 LG와는 달리 지고온난화 방지를 위한 에너지 절약, 고령화문제에서 출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는 아직 여러 법적 문제로 홈 네트워크의 실현이 보류 되어있는 상태이다. 한국의 빠른 사이버화의 추진에 발맞추지 못 하는 한국의 법제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점이라 생각된다. 일본은 우리 나라보다 항시 몇 단계 앞서있는 듯 하다. 일본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사회학자들이 있다. 일본의 심각한 고령화 문제만 보더라도, 그 것은 몇 년 안에 우리에게 닥칠 큰 과제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이 시야가 앞설 수 밖에 없다. 그러면, ‘항상 앞서가는 일본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 유리한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굴곡이 심한 산행 도로에서 앞서 가는 한 차를 두고 주행하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또 한 번 우리는 우리의 과제를 느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4. 앞으로 우리 기업의 나아갈 길...정말 힘든 과제는 바로 이 PART 4 이다. 앞으로 우리 기업이 나아갈 길을 학생인 내가 조명 해본 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