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과정에 대해‘교육’에 어떤 방식으로 몸을 담는다면, ‘교육과정’이라는 말은 빠질 수 없는 단골메뉴 중 하나이다. ‘교육과정’이란 용어가 익숙하게 접하지만, 의외로 그 의미가 머리속에서 희미하게 잡히는 경우를 왕왕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이란 ‘안경’으로써, ‘교육과정’이란 것을 좀 더 체계적이고 분명히 볼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교육과정에 대한 개념은 다의성을 지닌다. 문서로서의 교육과정, 실천으로서의 교육과정, 성과? 산출로서의 교육과정, 의도되지 않은 산출로서의 교육과정, 배제로서의 교육과정으로의 다양한 개념을 가진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의 관점 또한 다양하다. 보수주의적 교육과정, 진보주의적 교육과정, 급진주의적 교육과정으로 다양하게 교육과정을 살펴본다. 이런 다양한 관점과 개념은 그만큼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교육’에 대한 몇 세대를 걸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의를 느끼게 한다. 그만큼 ‘교육’은 중요하게 우리의 삶에서 다루어진다.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교육’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기 마련이다. 사람만한 재산이 없는 우리에서는 ‘교육’만큼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왈가왈부하는 교육은 전문적이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느끼거나 체험한 교육을 감정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교육 견해와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쟁점들은 ‘교육’에 대한 전체적 그림을 어지럽게 수놓는다.이 책에서는 여러 쟁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각 개인 또는 교육기관 단위별 교육관에 따른 다양한 쟁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항구적인 쟁점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학생 대 교과’이란 쟁점은 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관한 것이다. 나는 ‘학생’과 ‘교과’에 동차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가르쳤으면 좋겠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실제 교육활동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구체적인 교육 현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서라고 서 ‘교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사람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위해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개선하려고 고민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을 위해 설계된 교육과정도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학생의 경험과 흥미 등을 존중하며 그에 적합한 교육 내용과 방법을 탐색하고 제시하려고 하지만, 이론과 실제의 거리는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실제 교육현장은 ‘교과’를 가르치는 것에 더 치중하고 있다.‘내재적 가치 대 외재적 가치’에 대한 쟁점에 실용성에 대한 의미 규정 방식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라고 나누지 말고, 실용성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실용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를 다시 정의하면 어떨까? 사실 실용성의 의미는 다양하게 규정된다. 물리적인 생존에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실용성이 있을 수 있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의 실용성도 있다. 이런 정의라면 앞서 애기한 ‘내재적 가치’도 충분히 포함 될 수 있다. 정의를 다시 해서 접근해보는 쟁점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교육은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습득하도록 해야 한다. 전통을 가르치고, 도덕을 알게 하며, 질서를 지키고, 규범을 알도록 하며, 실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이는 곧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인간이 사회에 받아 들여 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기능을 갖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변혁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 창출을 위해 교육으로 노력해볼 필요도 분명히 있다.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개정하고자 할 때 분명히 해야 하는 ‘현상 유지 대 사회 변혁’의 쟁점은 앞선 쟁점들처럼 쉽사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다. 교육은 사회 현상을 유지시키는 사회화 기능과 함께 사회 변혁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추구하면서 실히 요구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유지’와 ‘변혁’ 중에 어느 것이 더 절실한 사회적 필요인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설계할 때, 더욱 필요한 쪽에 비중을 더 두어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교육은 백년대계이다. 그만큼 교육에 있어서 신중한 개발이 요구된다. 교육을 지속적으로 잘 펼쳐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대한 이해를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재를 양성함에 있어서 잦은 교육 개발은 특히 한 나라와 같은 매우 큰 범위의 교육을 다룰 경우 국가 교육 이념에 맞지 않는, 시대가 요구하지 않는 인재양성은 당연한 일이다. 뛰어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며 많은 이해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2.‘경험 중심의 교육’이 20세기 초반부터 학교 교육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현재까지 학교 교육에서 지식 중심 교육과정을 완전히 대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지식중심교육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 중심의 교육 대 지식 중심의 교육’은 앞서 살펴보았던 ‘학생’대 ‘교과’에 대한 쟁점과 같은 맥락에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이 문제를 푸는데, 나는 듀이의 관점이 해결책을 마련해준다고 본다. ‘지식’과 ‘경험’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연속선상에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듀이가 말한 ‘논리’와 ‘심리’가 하나의 양끝선상에 존재하는 것과 같이, ‘지식’과 ‘경험’도 이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다른 접근법이 존재한다고 본다.관점을 달리 해서 보거나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같은 대상이라도 달리 보이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은 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거나 또는 기존의 관점으로 구성된 세계를 새롭고 풍부하게 한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구성한다는 것은 그 관점을 구현하는 체제도 새롭게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가르치는 자를 중심에 두는 체제와 배우는 자를 중심에 두는 체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듀이는 교육을 논한다는 것의 차이점을 염두에 둔다면 전에 교육사상과 그 뒤에 좀 더 연구되어진 교육사상이 결코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닌, 그리고 두 대조적인 관점은 서로 조화를 구현하는 교육체제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정련될 것이다.3.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해나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따라한 적이 있다. 일부러 장난으로 그런 적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따라한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 저렇게 선생님을 알게 모르게 보고 생각하고 따라한 것이 지금의 나의 인격 형성과 생활 습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학교에서의 정규 교과목의 공부 외에 친구들을 통해서 아는 것도 많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성과 성행위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성에 대하여 많이 개방되어 있지만 아직도 성교육은 그리 확산되어 있지 않고 있고, 대부분의 학생은 학창 시절 또래집단인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흡연, 놀음 같은 것도 학교에서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알게 된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현상들도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잠재적 교육과정이 의도되지 않은 학교 교육의 결과라면, 학교에서는 지식 전달만이 아닌 전인을 양성하기 위한 기구이고 따라서 학생들의 집단사회를 통한 그들만의 정보교환을 통한 지식 전달도 잠재적 교육과정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잭슨은 잠재적 교육과정을 논의하면서 군집, 상찬, 권력의 요소를 제시한다. 이 군집은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감안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비에 대한 방법, 즉 그 사회 안에서의 생존방법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위 문단의 내용은 일리 있는 말이 된다. 군집을 통하여 배우는 생존방법에는 정직, 솔선수범, 규범준수와 같은 올바른 사회생활을 습득할 수도 있지만 가식, 위선, 거짓과 같은 생존방법을 습득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은 곧 잠재적 교육과정의 문제점이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학문 경험하게 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심층적인 분석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에 동의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나의 의견은 아이들을 교육 목적에 따라 기르기 위해서, 올바르게 기르기 위해서, 교사가 학생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잠재적 교육과정을 이해하여야 하고 앞 문장의 내용이 절실히 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학교의 임무 중 하나로 사회화 기능이 있다. 즉 사회규범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옛날과는 달리 무턱대고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책아래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 인간이 사회에 존재하기 위한 기능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것이 학교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다 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에 학교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리치의 경우 학교를 폐기하라는 극단의 논의를 보이고 있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사악한 내용을 주입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제기한 나의 생각과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교육의 단편성을 부각시키며 아이들이 현존 제도를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그렇다면 교육은 특히 현대사회의 교육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상황에서 더더욱 세계적으로(특히 우리나라) 인적자원의 개발이라는 목적아래 과연 교육을 부정적으로 세울까 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 사회를 막론하고 교육이 추구하는 것이 학생을 올바르게 기르고자 하는 것이지 누가 학생들을 못되라고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을 하겠는가! 다만 잠재적 교육과정을 생각하다 보니 그러한 문제점이 발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잠재적 교육과정을 다루어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리치처럼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학교를 부정한다는 것은 비약적이라 본다.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은 잠재적 교육과정에서 매우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앞서 말한 나의 경우와 같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일, 자신의 사상, 학생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이야기.
-목 차-Ⅰ. 사설시조1. 사설시조의 출현배경2. 사설시조의 개념과 형식3. 사설시조의 문학적 특성⑴ 현실저항적 세계관⑵ 극적 서사지향 시4. 사설시조의 내용의 특성5. 사설시조의 미의식6. 문학사적 의의Ⅱ. 한시의 민요수용1. 다양한 모습의 민요풍 한시2. 민요풍 한시의 형상화 방식⑴ 말하기?부르기의 구성 원리⑵ 단일시공(單一時空)과 장면화(場面化)⑶ 시어의 다양성과 정감의 확대⑷ 다중시점(多重視點)Ⅲ. 국문시가 한역 양상과 문학사적 의의1. 시조의 한역⑴ 한역의 동기와 목적⑶ 문학사적 의의2. 가사의 한역의 개괄적 내용 (목적과 의의)Ⅰ. 사설시조)1. 사설시조의 출현배경양란을 계기로 유교나 주자학에 심취되었던 양반 귀족계급은 평민 앞에서 무력함을 폭로하고 말았다. 이에 주자학의 허점을 깨달은 학자들은 실학풍을 일으켜 실사구시를 앞세웠다. 양반귀족의 몰락과 실학풍의 팽배는 평민계급의 자각을 촉구하였으며, 실질적으로 평민계급이 사회적 문화적 주역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고 발달한 시가가 곧 사설시조이다.사설시조가 전성기였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사회는 임병양란의 계기로 후기에 오면서 사회현상에 변화가 생겨났다. 첫째, 신분제의 동요이다. 조선사회를 일컬어 양반사회라 칭할 때 이는 왕을 정점으로 문무양반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제도가 그대로 지속될 수 없었으니, 조선 초기에 지배 계층의 신분이었다 하더라도 계속 집권 대열에 참여할 수만은 없었다. 노비가 양민으로 승격되고, 양미들은 양반으로 그 지위가 향상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격심한 당쟁과 영조 이후 세도정치기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세력권에서 멀어지는 양반들은 낙향하여 양반의 지위에서 하락해 실제의 사회적 지위는 일반 농민과 다를 바 없이 살기도 했다.둘째,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이다. 전란 후 급박해진 재정상의 곤란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래 물건 징수의 공납제를 개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각종 토산물 대신에 미곡으로 통일하는 대동법이 비롯된 것이다.3. 사설시조의 문학적 특성)⑴ 현실저항적 세계관사설시조 작품에서 보이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현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이때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주로 저항적인 측면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반발정신의 투영화가 작품으로 된 것이 바로 사설시조라고 할 수 있다.① 일상적 생활상 제시를 통한 현실인식적자아관 형성사설시조 텍스트에는 대체적으로 사소한 현실적 사건, 일상사 등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이나 현실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당대의 잘못된 점이 일상적인 시어나 어투 등을 통하여 실감나게 표출되고 있고, 낮은 신분의 인물이 주요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설시조의 세계관은 ‘현실 지향적인 인식’과 깊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일상적 요소에는 생활 주변에 대한 잡다한 일들이 주로 채택되는데, 이를테면 상품의 거래, 처첩제도의 불합리성 제시, 현실적인 생활의 사실적이고도 실감 있는 표현 등이 그것이다.② 승려의 비행 고발을 토한 현실 저항적 인식승려를 비하하고 경시하는 태도와 불신하는 사상등도 당대의 사회적 실상을 반영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평시조에서는 승려가 시의 소재로 나타나는 경우 자체도 드물지만, 혹시 나타난다고 해도 긍정적인 성향을 지닌다. 더욱이 시적 분위기는 현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 평시조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사설시조에 등장하는 승려의 경우에는 승려의 비행이나 불합리성에 대한 지적, 승려의 부패상 폭로, 경시사상등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는 현실 부정과 비판적 태도가 배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면 당시의 문화권, 생활권에서의 승려층은 신분의 몰락과 소외에도 불구하고 상층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계층으로서, 이들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 풍자는 결국 당대 상층에 대한 그것으로 환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려들관련되는 것으로 서정적 자아의 표현인 순수 서정시의 독백적, 개인적 진술방법과는 달리 사물(대상)을 3인칭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언술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점은 다른 시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구성방법이다.사설시조의 내용상의 특성은 첫째, 서사성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사설시조는 이야기가 있는 시가, 즉 이야기적인 노래이다. 하나의 이야기란 시간의 진행방향에 따라 일어나는 행위들이 어떤 변화를 야기하고 그것이 인과 관계의 필연성을 갖추었을 때 성립된다. 이 경우 그것의 전달이 문제가 되는데 사설시조의 이야기는 작품 속의 인물 시점과 진술자의 시점 및 양자의 교체로 진술되는 이중의 시점 등으로 진술되기도 하고, 또 유형 ? 무형의 대상과의 대화적 진술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그러나 사설시조의 이야기는 시간적인 순서나 인과관계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줄거리나 골격만 갖춘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서사적인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사설시조의 두 번째 내용적 특징은 이야기의 형식을 띠고 있는 점이다. 문학의 형태는 그 구성법에 따라 성립되고 구성은 서술방식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사설시조는 서사적인 면과 극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대화의 담화형식을 취하고 있다든가 재미있고 놀랍고 속 시원한 인간의 체험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희곡과 같다. 그러나 인물과 행위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극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설시조가 극적인 것은 대화의 담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있으며 사설시조를 대화시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사설시조의 세 번째 특성은 엮음이다. 즉 다성구조로서 시적 진술태도가 작자나 시중의 화자가 1인칭 또는 3인칭의 시점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적 기법이나 판소리와 같이 화자의 다양한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화자의 진술태도- 작자, 시중인물, 작자와 시중인물의 교체, 타설소의 삽입, 대화 등- 뿐만 아니라 그 의미 내용 역시, 작자의 순수한 감정과 사상이 아니라 타장르인라는 의미와 동요의 ‘너도 먹고 나도 먹고’라는 구절은 일단 서로의 생존 문제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이는 시인이 주관적 시점으로 형상하지 않은 결과이다. 「새쫓기」는 아이들이 새를 쫓으며 부르는 동요이자 노동요이다. 한시도 이를 십분 이해하고 있다. ‘아이야’라는 의성어를 ‘兒兮’라 표현하여 현장감을 환기시키는 것도 그러하고, 새와의 대화 방식으로 교직(交織)하여 노동요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점도 그러하다.사실 아이와 새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시는 ‘雀兮’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새를 향해 의인화한 언어를 구사하여 생동하게 포착하려는 배려이다. 이는 곧 독백의 형태인데, 노동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더욱이 한시에서 즐겨 쓰지 않는 산문적 표현인 ‘然’을 배치하고, 그런 다음 ‘함부로 죽이진 말고 쫓아 보내기만 하거라’라 표현하여, 시상의 전환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참새의 생존을 긍정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민요의 정감이 그대로 우러난다. 비록 한시가 그 양식적 특성상 민요와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한 범위에서 민요의 의미와 정감을 충분히 살려내고 재현하는 것은 흥미롭다.민요취를 받아들이면서도 보다 민중적 정감을 표출한 경우도 있다.①梧桐秋月夜來明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此地無端暗恨生 무단히 남모르게 한스러운 심사輕滴?鳴窓外雨 비 내리는 창밖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浪浪颯颯葉 乾聲 떨어져 흩날리는 마른 나뭇잎 소리②오동추 추야에 달이 둥실 밝은데가신 님 그리워 잠 못 자겠구나아뜰사뜰히 그리던 사랑은 얼마나 보며는 싫도록 볼거나.(하략)①은 다산(茶山)의 외손인 방산 윤정기(1814~1879)의 시며, ②는 민요다. ②의 민요는 다소 길지만 한시에 호응되는 부분만을 옮겨놓았다. ①에서 “한가위 날 李來山을 생각하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방산은 예전에 들었던 육자배기풍을 회상하면서 한시로 적은 듯 하다. 아마 이 흥겨운 노래를 이래산이라는 벗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원래 육자배기풍은 흥겨운데 반해, 한시의 여성화자는 저 수중에나는 듯 이만 다녀오소가시다 동남풍 불면내 한숨인가 여겨주소①은 홍양호의 「해람(解纜)」이라는 작품이다. 당대에 가창되던 민요를 한시로 포착한 것인데, 그 형상 방식은 ‘부르기-듣기’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②는 북관민(北關民)이 당시에 불렀던 민요의 일부분을 옮겨 놓은 것이다. 홍양호가 경흥부사로 있으면서 북관민이 불렀던 민요를 채록한 것이 『북새잡요(北塞雜謠)』인데,「해람」은 그 중의 한 수다. 두 작품은 모두 의경과 시적 구성이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상동성은 ‘부르기-듣기’의 원리를 수용한 결과 그렇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시적 화자 역시 작가가 아니라 민요를 부르는 여성화자다. 노래를 한시로 옮길 경우, ‘부르기’의 구성을 십분 활용하여야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해람」역시 민요 못지않게 가창적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이미 가창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민요의 정형구와 비슷한 5 ? 7 ? 5 ? 7 ? 7 ? 7이라는 개방적 양식인 장단(長短)의 6구로 재현하여, 민요의 구절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 각각의 구(句)에 이미 내적 운율성과 음악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질문하는 주체가 여성화자임을 분명히 하고, 그 이별의 대상을 ‘君’이라 정확히 지적하여 그 실감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5구와 6구는 시조나 민요처럼 님이 떠난 뒤의 상황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님과 이별하는 그 순간의 장면을 포착하여 현실감을 재고시키는 쪽으로 형상하였다. 더욱이 님과 이별하는 객체를 시첩(是妾)이라고 분명히 밝힘으로써 이별의 정과 아픔을 더욱 곡진하게 잡아 놓았다. 이는 가창의 현장감과 부르기의 실감을 십분 의식한 작가의식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은 이른바 ‘부르기-듣기’의 가창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표이다.이 원리는 기존의 한시가 가지고 있던 엄정한 규정성, 예컨대 평측(平仄) ? 구수(句數) ? 시어의 사용과 의경, 그리고 시어의 직조 방법 등과 그다지 조화를 다. )
-목 차-Ⅰ. 비ㆍ지ㆍ장ㆍ전의 특징 비교1. 비문1>비문의 일반적 성격2>비문의 내용과 특징2. 묘지1>묘지명의 일반적 성격2>묘지명의 유래3>묘지명의 내용과 특징3. 행장1>행장의 일반적 성격2>행장의 유래3>행장의 역사와 변화양상4. 전1>전의 일반적 성격2>전의 종류와 특징Ⅱ. 무신란 이후 나타난 문학 변화1. 무신들의 난, 무신란[武臣─亂]2. 무신란의 문학적 영향1> 문학 담당층의 변화2> 신흥사대부(새로운 문학 담당층)들의 문학3> 고려후기 문학의 특성참고문헌Ⅰ. 비ㆍ지ㆍ장ㆍ전의 특징을 찾아 비교해보자)정의문학적 특징비문(碑文)돌을 세워 사람의 생애를 적어놓은 글?문학적 면모가 가장 적음?사실전달에 충실, 격식화된 표현 사용묘지(墓誌)죽은 사람의 내력을 돌에 새겨 무덤에 묻어주는 글?산문으로 된 서(序)와 율문으로 된 명(銘)이 나옴?일정한 격식 갖추지 않고 글 쓰는 사람과의 죽은이와의 관계, 회고 등 늘어 놓아 서사문의 성격 가짐행장(行狀)인물의 행적을 종이에 정해진 순서와 격식에 따라 인물을 소개하는 틀을 지켜 쓴 글?죽은이의 일생에 대한 공식적인 서술이며 평가?개인적 회고나 주관 개입 안됨전(傳)인물의 평생사적 행적을 작가의 뜻이 개입되어 기록하는 글?행장ㆍ비문ㆍ묘지는 남의 부탁을 받아야 쓸 수 있는데 전은 작가 나름의 생각한 것이 있어 어떤 인물의 행적을 그려냄?사서의 열전을 보완한다는 의식을 지니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물을 다루는 실험정신 발휘되어 종류 많아짐1. 비문)1>비문의 일반적 성격조선시대에는 거의 한문 비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에 산재하여 있는 한글비문은 조선 시대의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현대의 비문은 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의 한글비문은 일반적인 유적지, 전승지, 명승지, 건설공사지 등의 기념비나 안내비가 있고, 문인들의 시비, 문학비, 문학기념비 등이 있다.조선 시대에 건립한 비문으로는 서울 중계동의 양주 영비, 경기도 포천의 인흥군 묘계비, 경상북도 문경의 산불조심비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양주 학의 정착에 크게 기여했지만, 개인의 생애를 다루게 되면서 사실전달에 충실하고 격식화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으로 평가할 의의가 대폭 감퇴되었다.2. 묘지)1>묘지명의 일반적 성격일반적으로 묘지(명)라고 불리는 묘지명은 일종의 석문자이다. 이는 선덕과 烈功이 있는 사람을 후세에 영원토록 전하고, 도굴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자의 성명과 연령, 실적, 생평 등을 돌에 새기거나 나무에 써 후세에도 알아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묘석, 당지 등 그 명칭도 다양하다.2>묘지명의 유래묘지명은 비문과 금문 등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비에 관한 중국 고대 문헌의 기록은 매우 많은데, 이를 종합해보면 크게 ①시간측정 용도 ②제사용 제물 을 묶어 두기 위한 용도 ③근신의 공적을 기술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한 용도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중 묘지명과 관련 깊은 것은 당연히 ③의 경우다.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의 과시 욕구는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되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 로 비와 器銘에 새기던 방법에 변화를 가져와 묘지명을 출현케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묘지명의 출현은 일반적으로 한 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본다.3>묘지명의 내용과 형태묘지명은 대개 장사지낼 때 묘의 亡失을 방지하고 죽은이를 추모하고 애도하며 선양하기 위해서 그의 성명, 家系, 실적, 행위, 누린 나이, 죽어서 장사지낸 날짜 및 그 자식 등에 관한 대강의 내용을 나무에 쓰거나 돌에 새겨 묘 안에 또는 묘 근처에 묻는 것이다.따라서 묘지명의 일반적인 체재는 題名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크게 앞에서 언급한 내용의 誌와 찬미 혹은 애도하는 내용의 명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는 가장 전형적인 체재이고, 실제로는 그 내용의 기술 순서가 항상 일정하지 않으며, 또 내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명은 전편을 총괄한 내용으로 죽은이에 대한 찬양, 애도의 말인데, 삼언, 사언, 칠언 그리고 심지어 산문으로 된 것도 있고 그 用韻도 다양하다.한편 序는 묘지명의 도입을 자연스럽게변화 양상우리 나라에서의 행장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속동문선 續東文選≫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 초기 홍귀달(洪貴達)의 〈광릉부원군 이극배 행장 廣陵府院君李克培行狀〉, 신종호(申從濩)의 〈충정공 허종 행장 忠貞公許琮行狀〉, 박은(朴誾)의 〈망실고령신씨 행장 亡室高靈申氏行狀〉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도 물론 체형이 간결하고 번다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행장의 본래 체재를 어느 정도 유지하였다고 볼 수 있다.행장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양상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행장은 장황하고 번다하게 많이 쓰는 것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어 주소(奏疏)의 시말(始末), 사건의 배경, 그 의론(議論)과 행동거지의 철학적 근거, 이단(異端)을 배격해야 하는 이유, 심지어는 공초(供招)에 대한 내용과 그 의리의 타당성까지 세미하게 적어 그 양이 1권의 책자가 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이단하(李端夏)가 그 아버지 이식(李植)의 행장을 쓰는 데에 장장 100장이 넘었다. 김창협(金昌協)이 그 아버지 김수항(金壽恒)의 행장을 쓰는 데에 상하 2책이 되는 등의 전고미문(前古未聞 : 전에 들어 보지 못함)의 방대한 행장의 체가 나오게 되었다. 그밖에도 조익(趙翼)의 〈이정구행장 李廷龜行狀〉, 김장생(金長生)의 〈이이행장 李珥行狀〉, 송시열(宋時烈)의 〈조헌행장 趙憲行狀〉 등 그 수가 자못 방대하다.행장의 방대한 형태가 배태된 것은 송대(宋代) 황간(黃幹)이 스승 주자(朱子)의 행장을 쓰면서 장장 40여 장을 쓴 데서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길게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편말에 붙이고 있다. 그 이유를 요약하면 주자의 거취는 바로 세도(世道)의 흥망과 직결되며 후학의 준거틀이므로 일반적인 행장의 체와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 나라에서 행장을 길게 쓰게 된 것은 바로 황간의 체를 배운 것으로 황간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되게 썼으니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 문인이나 자제들은 유사(遺事) 또는 일사(逸事 : 행장의 별 만한 행실을 골계(滑稽)를 섞어가며 기교적으로 서술하여 후대에 드리우려 하였다. 그 수용되는 인물의 성격과 문장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였다.2>전의 종류와 특징≪문체명변 文體明辨≫에서는 전을 ① 사전(史傳), ② 가전(家傳), ③ 탁전(托傳), ④ 가전(假傳)으로 나누었다. 설봉창(薛鳳昌)의 ≪문체편 文體編≫에서는 전을 ① 사전, ② 가전, ③ 소전(小傳), ④ 별전(別傳), ⑤ 외전(外傳)으로 각각 분류하였다.사전은 정사의 열전을 뜻한다. 가전은 정사와 구별되는 사가에 간직할 목적으로 된 전을 말한다. 가전과 탁전은 가탁한 필법을 사용한 것이다. 소전은 체재가 간략한 것이다. 별전과 외전은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모두 정사인 정전(正傳)에 누락된 것을 기록한 것이다.전은 서술하는 방법과 태도에 따라 정체(正體)와 변체(變體)로 구분된다. 정체는 서사를 주로 하고 변체는 의론을 주로 한다. 정체는 사적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실 자체를 생각하여 법론을 금하게 된다. 대상도 달라서 정체는 달관귀인(達官貴人)을 많이 다룬다.변체는 문인·기사(奇士)·창부(娼婦)·협녀(俠女)의 유가 많다. 후대에 낙척(어렵거나 불행한 환경에 빠짐.)한 선비들이 변체를 유희문(遊戱文)으로 여겨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들의 전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자전적(自傳的)이다. 둘째는 우언적(寓言的)이다.자전적 전은 실제로는 글쓴이 자신의 흉금과 회포를 서술하고 있면서 객관적으로 인물화한 것이다. 사실(史實) 자체는 징실(徵實)하지 못하다. 설사 사실을 증거하였다 하더라도 종래의 정체처럼 사실위주가 아니다. 문학적인 윤색을 더하여 자기의 사상과 생활상태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었다우언적 전이란 주인공이 실제인물이 아니고 허구적 인물이다. 설사 실존인물이라 하더라도 많은 과장과 윤색을 더하였기 때문에, 기록을 사실적인 진면목으로 간주할 수 없다. 그러나 주인공의 용심과 처사는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그로써 저자의 인생관과 이상을 영출한다.고려그 직에 문신이 등용될 뿐만 아니라 , 인종 때는 무신 교육기관인 무학재(武學齋)를 폐지하였다. 묘청의 난 이후에는 무신 멸시풍조가 더욱 조장되어, 무신의 대우는 역부와 같았다. 특히 의종은 향락생활에 도취하였고, 문신의 교만은 극심하였다.같은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무신들이 받는 멸시와 천대는 더욱 심해졌다. 마침내 김돈중이 아버지 부식의 권세를 믿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우고, 의종의 보현원 행차 때 대장군 이소응이 젊은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는 모욕적인 일이 발생하자, 이에 분노한 정중부는 이의방 · 이고 등과 함께 문신들을 살해하고 의종을 폐하는데, 이것이 ‘무신란’이다.2. 무신란의 문학적 영향무신들의 깊은 원한에서 발발한 무신란은 몽고란과 더불어 구려 후기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학사에 커다란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났는데, 문학사상의 변천과 새로운 문학의식의 출현, 그리고 문학 담당층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문학 담당층의 변화다.고려 후기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의 중심계층이었던 문벌귀족에서 새롭게 도래한 신흥사대부로 지배층의 성격이 변화하면서 문학을 담당하는 계층의 성격 역시 변화를 겪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문학 담당층의 변화 속에서 등장한 경기체가 · 시조 · 가사 등은 문학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고려 후기 문학 변화 양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이다.1> 문학 담당층의 변화250여 년간 지속되었던 고려의 지배체계를 뒤엎은 큰 사건인 무신란 이후 고려는 한 세기 가까이 무신집권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무신집권기 속에서 문신이 몰락한 나머지 그들이 담당하는 문학은 쇠퇴되거나 혹은 큰 타격을 입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무신집권기에도 문학은 계속하여 번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활기를 띠었다. 주목해야할 점은 무신란 이전의 문인과 무신란 이후의 문인은 동질적인 문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시대의 문학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문학의 .
1. 우리나라 건국신화를 모아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시오)-구성요소와 원리건국신화들은 모두 동일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데, 건국 주인공의 탄강(誕降), 개국과 즉위, 결혼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개별 이야기에 따라서 가감되는 신화소가 있다. 혹은 이야기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나 행위도 존재한다. 요컨대 건국신화는 신성한 존재의 탄생이나 출현 그리고 즉위라는 기본 골격을 가지는 서사이다. 각국의 건국신화는 시조의 탄생, 결혼, 후계자의 탄생과 계승 등 순차적으로 구성되며, 행위 주체별로 독립된 하위 서사가 병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각각 우리나라 건국신화를 중심 제의적 신화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환웅의성인식결혼식웅녀의탄강제의장례식단군의탄강제의즉위식탄강제의출산제의결혼식즉위식해모수의해부루의 즉위식즉위식탄강제의수로의성인식결혼제의출산제의허황옥의왕과 비의 장례식즉위식출산제의결혼식즉위식알영의 탄생제의혁거세의 탄생 제의결혼식출산제의유화의탄생제의즉위식성인식(쟁투)주몽의탄생제의결혼식취임식장례식탈해의성인식(쟁투)와 에서는 신이 직접 강림해서 건국(즉위)하게 되는 내용이고,와 는 하늘의 명에 따라 강림한 신적 존재가 성장한 후에 황으로 추대되는 내용이며, 와 는 난생한 존재가 신격획득을 위한 과정을 거친 후 즉위하게 되는 내용이다. 모든 신화들은 탄생(출현)에서 즉위라는 기본 골격위에서 진행된다. 건국의 주인공들은 모두 비인간적인 존재, 즉 신적 존재이다. 환웅과 해모수는 천제의 아들로 나타나며, 혁거세와 수로는 천명에 의해 인간 세상에 출현하고 인세를 다스리는 신적 존재로 난생한다. 주몽과 탈해는 혁거세와 수로와 마찬가지로 난생하지만, 하늘에서 직접 강림하지 못하고 지상에서 인간의 몸에서 알로 태어난다. 그러기에 신성의 강도는 다른 존재들에 비해 약하다.주인공의 신성성의 강도는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부계 혈통은 천신으로 상정되어 있거나, 그 후예로 볼 수 있다. 신성을 갖춘 존재가 출현해 행한 가장 중심 업적은 인간 세상에 을 표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화는 건국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 창조를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는데, 이 문화 창조를 위해 필요한 신성의 힘을 제의를 통해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사에서 중심사건, 즉 제의적 신화소들은 기본적으로 탄생에서 시작해 과업완수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신성한 존재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결혼하고, 과업을 이루는 순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건국신화는 직선적인 구조를 명확히 보여주며, 단일한 목적을 향해 사건이 수렴되어 진행됨을 살필 수 있다.에서 환웅의 출현과 업적, 이어서 웅녀의 등장과 변신, 단군의 탄생과 즉위의 세 개의 하위 서사들이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루고 있다. 이 이야기는 환웅과 단군의 이야기가 하나로 통합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는 의 결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위 서사들의 관계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순차적인 관련성을 맺으면서 진행된다. 건국신화들은 중심 행위의 인물 중심과 시간 전개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성 원리는 전대(前代)의 이야기에 이러 후대(後代)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의 순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이런 직선적, 단선적 구조는 인간의 시간에 대한 기본적 인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건국신화는 인간사의 시간적 전개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건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진다.-중심이념 : 건국신화의 중심이념을 추상화 시켜 보면 보편적인 논리를 찾을 수 있다. 신적 존재들이 어떻게 인간세계를 성화(聖化)하는지가 건국신화의 주된 관심사이다. 다시 말해 인간세계의 성화는 신적 존재에 의해 건설되고 지배받게 되는 인간세계가 문화적으로 신생 내지 발전함을 의미한다. 왕권의 최초의 유표성을 획득하기 위해 강한 힘을 과시하여 신성을 선포한다.건국신화에서 재현된 세계상을 통해서 찾은 중심 이념은 국가별 제반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는 최초의 문화 창조와 최초의 문명화된 인간 존재에 관한 신화이며, 는 문화의 발전단계에서 나타난 신신화이다.한국 건국신화의 성화 논리를 통해서 재현된 문화 창조의 유형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와 는 천신이 스스로 강림해서 인간 세상에 출현하고, 출현과 더불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인간세계에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유형이다. 왕이 되는 존재의 자질이 중요시되는 건국신화에서 환웅과 해모수는 환인의 아들, 천제로서 강력한 신군(神君)의 권능을 보여준다. 서사에서도 그들의 이러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와 는 하늘의 명에 따라 인간세계에 새로운 군왕이 탄생하고, 인간들은 이들을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보다 발전된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수로가 국가를 세우는 가락국에는 구간이라는 기존의 지배세력이 존재하며, 혁거세의 신라에는 육촌장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로와 혁거세가 천명에 의해 지상에서 탄생하자 그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국가를 정비하고 보다 발전된 문화를 이룩하게 된다.와 는 이미 국가적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지역에 탄생한 영웅들로 왕위에 오르거나 건국하기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신화의 영웅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출생을 인정받지 못하고, 원출신지에서 배척 받고 쫓겨나게 된다. 주몽이 태어난 부여는 이미 신성한 존재들이 왕위를 계승하고 있으며, 탈해의 용성국이나 그의 왕위를 도전했던 가락국이나 신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몽과 탈해와 같이 신성한 존재들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왕위에 오르는 개척적인 영웅상이다.2. 짧은 노래 세 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찾아서 정리해 오시오-'구지가'의 다양한 해석)-신화를 영신제의(迎神祭儀)로 보고 신탁의식(神託儀式)·희생의식·영신의식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논의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등극제의로 보고 신탁의식·귀복의식(龜卜儀式)·등극의식의 세 단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등극의식은 다시 하강-격리-재수용-등극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구지가〉는 이 세 단계 가운데 제2 단계에서 신탁에 의해 불린 주가(呪歌)로 보는 것이 통설이가 가락국 건국시기에 불리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와 그렇지 않고 원시시대부터 구비전승 되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① 다산에 대한 원시인들의 기원을 표현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거북의 머리는 외형적으로 남근과 유사하므로 이 노래는 남근 숭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다산을 기원하는 신화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한편 거북은 여신이며, '거북'의 머리는 남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거북'은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가진 양성구유의 존재로서, 그 자체가 남성과 여성의 합체를 통한 생산력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 해석은 '거북'이 구지봉의 산신이라는 해석과도 상통하는데, 대체로 한국 고대의 산신은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병욱-②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은 특별한 제의에서 제단에 바쳐지던 희생 동물의 이름을 따서 제의 공간의 이름을 지은 사례가 있는데, 구지봉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 김열규-③ 산신 제의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 노래의 공간적 배경은 구지봉이라는 신성한 지역이며 구지봉이라는 이름이 곧 거북을 나타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거북은 구지봉의 산신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즉, 구지봉의 산신을 거북이라는 구체적이고 신령스러운 동물로 나타낸 것이다. 혹은 이와 달리, 이 노래의 가창 집단이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족속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경우, '구지가'는 자신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서 먹음으로써 신령스러운 토템인 거북과 자기 집단 사이의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집단의 제의에서 가창되던 노래로 볼 수 있다.④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을 불에 구워 먹겠다고 위협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점복 의식과습속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거북등껍질을 이용한 점복 의식에서 새로운 우두머리의 출현을 예언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임명덕 등이 있다.⑤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 박지홍--‘황조가’의 다양한 해석)-학계에서는 의 부대설화와 그 시대상을 참고하여 가 서정시냐 서사시냐 하는 문제와 작자가 유리왕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논의해 왔다. 일찍이 양주동 교수가 를 최조의 서정적 가요라 논급한 이래 학계의 통설이 되어 사람들이 서정시설을 따랐으나 서사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명선교수와 이능우교수는 황조가를 서사시로 해석하면서 화희와 치희의 쟁투를 종족간의 싸움으로 보고, ‘황조가’의 배경에 설화적인 모습이 있는 것과 화희·치희의 이름이 토템적임을 들어 를 서사시로 해석하였던 것이다.한편 정병욱은 祭禮儀式과 결부시켜 새로운 견해를 도출했다. 황조가는 형식이나 내용으로 보아 중국의 시경과 같은 것으로서 연희석상에서 남녀 간의 연정을 읊던 노래의 형태이고 그 기원은 이미 오래 된 것이며, 따라서 황조가의 작자는 유리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또한,‘화(禾)’가 벼,‘치(雉)’가 꿩인데 착안하여 화희와 치희의 쟁투에서 치희가 부끄럽게 여기고 유리왕 곁을 떠났음을 당시의 시대상과 결부시켜, 유리왕 대가 수렵 경제생활 체제에서 농경 경제생활 체제로 발전되던 역사적 사살을 신화적으로 투영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견해가 있지만, 확실한 논증이 없는 지금이 황조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 시가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이병기 : 원시적 서사 문학 가운데서 축수 또는 기원의 요소적인 부분이 분화 독립하여 서정시로 형성되었는데, 도 그 한 예이다.임동권 ; 고구려의 민요로서 유리왕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가창했을 따름이다.정병욱 : 이 노래는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제례 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불려진 사랑가의 한 토막이다.이명해된다.
국어교육과 200633184 김정화1. 서정시 발생론을 정리하고 그 타당성을 비판하시오우리 조상들은 자연현상을 신화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자연 현상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의식했다. 이와 같은 공포와 두려움은 제천의식으로 승화되어 나타났다. 이 제의는 고대인에게 있어 신앙과 종교, 지배층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이러한 원시적 생활형태의 무격신앙과 거기에 따르는 노래와 춤 등을 원시 종합예술이라고 한다.이 원시 종합예술에서 발생한 문학과 예술은 미분화 상태에 있었다가, 몸짓은 무용과 연극으로, 소리는 음악으로, 말은 시(문학)(으)로 분화되고 독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문학은 말이 우세한 서사시의 양식, 음악적 소리가 우세한 서정시, 동작이 우세한 극시의 양식으로 발전해가며 서사시는 서술의 형태를, 서정시는 음악의 형태를, 극시는 동작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화 과정에서, 구비문학의 단계를 거치면서 기록문학으로 정착하게 된다고 본다. 발라드 댄스에서 분화된 문학은 집단적 향유물의 형태를 지니다가 점점 분화 되어 개인적인 창작물 즉 서정시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서정시의 발생을 설명하고 있다.이 가설은 분명하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음에도 서정시의 발생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다. 집단 향유물에서 개인적 창작물로 변한다고 설명한 문학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집단 향유물이 창작되고 향유되어졌다고 가정하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ㆍ 상대 을지문덕의 작품이나 한시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단지 고대 시가 공무도하가, 구지가, 황조가 세편을 들어서 이 가설을 설명하고 있다. 기록상 여러 노래들이 존재 했다고 짐작되지만 그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아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이런 발생론의 전제 아래에선 먼저 ‘구지가’라는 집단서사시가 창작되어지고 그 다음에 과도기적인 ‘공무도하가’가 향유되다가 마침내 개인 서정시인 ‘황조가’가 등장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순서에 문제점이 있다. 구지가가가요라는 점이 공통된다. 구지가가 수로왕의 명령에 의해 군중에 의해 가창되었다면, 해가는 통찰력이 있는 노인의 주창에 의해 경내의 백성들에 의해 불려졌다는 점에서 집단가요라는 사실이다. 또 두 노래 모두 집단적인 동작을 수반하며 구지가), 막대로 언덕을 치며(해가) 불려졌다는 점에서 공통되는데 그 노래를 부르자 바라던 상황이 이루어졌고, 두 배경설화 모두 노래가 가진 주술성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셋째, 호령의 대상이 모두 거북이라는 점이다. 수로부인 설화에서 수로부인을 납치해 간 것은 해룡임에도 위압적인 자세로 호령한 대상은 거북이다. 인간에 비해 나약한 거북이라는 생물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신이 거북이를 가상히 여겨 사람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의도아래, 거북이를 주술의 매개로 사용했다.넷째, 같은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을 부르고 명령하고, 가정하고, 위협하는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 도입부로서 잠복된 존재의 출현을 위한 거북이에의 명령한 것과 전개부의 명령에 대한 불이행의 가정으로 추상화한 것, 결론부로서 거북이의 살생으로 요약되는 노래를 부른 주체의 결의가 두 노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차이점을 살펴보면, 해가는 구지가와 같이 신성성이 담겨 있지 않다. 노래 안의 군왕임재 신성성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내를 빼앗긴 상황을 들어서 그 지경의 사람들이면 누구나 직면할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져다가 군중들을 동원하고 있다. 즉 보편 윤리를 사람들에게 호소하며 노래 부를 사람을 동원한 것이다. 이주집단이 이주민의 언어로 된 이제까지 듣지 못한 노래를 지역인들에게 들려주니깐 전해준 사람이 신비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다른 차이점으로는 단순한 표기상과 구분상의 차이점을 들 수 있다. ‘何’와 ‘乎’로 표기되어 있는 호격 조사나 ‘首其現也’와 ‘出水路’의 대응 등을 들수 있다.4. 향가의 개념, 장르적 특성에 대한 주장을 일별하고 그 타당성을 논하시오. )향가라는 명칭에 대해서 ‘鄕’이 내포한 자기폄하적 의미를 속악가사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 속악가사로 사욕된 순한시체의 가사와 경기체가의 가사이다. 이들도 속악가사에 실려 있으니 속가라 할 수 있지만, 이들 두 갈래의 노래는 전자의 노래들과 대비시켜 볼 때, 각기 변별되는 공통된 특징이 있을 뿐 아니라, 조선조 유학자들에게 남녀상열지사니 하고 크게 지적 받지 않았고, 또 현재 학계에서는 이들 노래를 전자의 노래들과는 다른 갈래로 인정하고 문학사에서 취급하고 있으니 속악에 사용된 가사이되, 속가의 갈래에는 넣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속악가사에 실려 있는 노래 가운데 우리말 창사에 국한하여 ‘속가’라 명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속가는 사전적 의미로서의 속요 또는 속가와는 구별된다.6.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용된 향찰 표기의 원리에 보완해야 할 사항을 두 가지 이상 지적하여 설명하시오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용된 향찰 표기의 원리로는 ‘향찰 표기가 음차 표기와 훈차 표기를 혼용한다.’‘문법 요소는 음차 표기하고 의미 요소는 훈차한다.’가 있다. 향찰 표기법의 원리를 이해하는 학습활동을 할 요량이면 한자를 빌려 표기 할 때 두 가지 기본적인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향찰의 특성은 물론 한문과 대비되는 우리말의 특성도 한층 더 깊이 알 수 있다.는 향찰 표기의 두 가지 기본적인 원리를 설명하는 데만이 아니라 또 따른 원리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습제재다. 또 다른 원리란 판독과 해독에서 논란이 해소 되지 않고 있는 불명료한 한 글자 부분 ‘□’과 관련되어 있다. 이 ‘□’는 卵, 卯 등 여러 글자로 판독하고 있으며, 판독 여하에 따라 해독 결과도 달라졌다.해독의 과정은 표기 원리를 역방향으로 적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표기 원리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해독이 달라질 수 있다. ‘□’ 부분의 글자 판독은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확정적인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남아 있는 부분의 글자 모양을 고려해서 판독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하기 어렵다. 이른바 ‘泥土 運搬’에 관하여 김동욱은 이런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 개 장륙장상에 소용될 泥土의 분량에 한계가 있을터이므로, 그 운반에 傾城土女가 동원되었다고 한다면 매 사람이 나르는 흙의 분량이란 고작 한 줌 정도일 것이라 하고, 이를 노동요로 간주하는 것은 과장 해독한 것이다. 그리하여 풍요를 泥土施主가 되기를 바라는 민요일 것으로 보았다. 황패강은 “풍요는 이 佛事가 끝난 뒤에도 경주지방에서 계속 구전되었던 듯 고려 때 맞절구질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 노래가 행하여졌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풍요를 불교 주제의 민요로, 경주성 안의 선남선녀들이 양지의 장륙상 조성-불사에 한 줌 흙으로나마 참여하여 불공을 쌓는다는 취의 아래 흙을 나르며 불렀으니, 이런 경우의 ‘泥土 運搬’은 노동이라 할 것이며, 또 풍요를 노동요로 볼수 있는가 강한 회의를 제기하였다. 문제의 泥土에 대하여 황패강은 “양지가 영감을 받아 조성하는 장륙상에 소용되는 흙은 종교적 의미에서 단순한 진흙일 수 없다. 성상을 이루게 될 흙은 성화된 흙이어야한다. 실제로 현실에 있는 흙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성상의 일부가 될 흙일진댄 정화되고 성스러운 흙으로 재생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흙이 성스러운 것으로 재생된다는 것은 성화의 제의적 과정을 거쳐야 됨을 의미한다. 선남선녀들이 불공덕가를 부르며 흙을 나르고 있는 그것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차라리 祝聖의 제의라고 하는 것이 옳다.‘풍’이라는 말은 지역의 특성, 거기 사는 사람의 마음, 습관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자체에서 ‘풍자’의 의미를 담아 풀이하기도 한다.풍요의 설화에 비춰 보면 양지가 명상에 잠겨 있으면 사람들이 다투어 흙을 가져다가 불상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노래 속에 나오는 ‘공덕을 닦자’는 말에서 흙을 쌓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을 바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사회에 고통 받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불상을 만드는 행위에서 자신을 생각을 담은 것이다. 공덕을 닦는 것과 불상을 의 구조를 살펴보면, 왕명하고 무관한조는 성덕왕대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 중심이 된 조목이라 할 수 있다.그래서 조와 조는 신라시대에서 도성이 가장 번성한 것과 눈이 가장 일찍 내린 것을 기록한 조목이고 조는 성덕왕대라는 특정시기를 대표할 정도의 인물과 관련된 조목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약간의 예외적 사실”로 파악했던 조는 조와 조가 수록된 이유와 조목명이 지닌 의미를 통해 이해해야한다. 그래서 조에서 노옹이 사람이 오르기 힘든 석벽에 핀 꽃을 꺾은 일과 신물들이 수로부인을 납치한 궁극적인 이유인 姿容絶代에 주목해야 한다. 자용절대란 당대 견줄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수로부인의 용모가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 용모가 뛰어났다는 기록은 다른 조에서도 흔히 발견 할 수 있는데 자용절대로 표현한 경우는 수로부인뿐이다.와 관련된 논의를 에 적용시킬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를 이해하는데 주변에 머무는 정도이지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와 는 다른 성격의 노래이다.11. 혜성가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정리하시오.)삼국유사 권5 감통편에 융천사 혜성가 진편왕대라는 조목으로 실려 있는 혜성가는 현전하는 향가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뇌가이다. 그 자료의 한계로 인해 창작 당시의 구체적 상황이나 창작 연대, 그리고 작자의 신분을 알아내는 일차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시가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는 주술적 기능을 명시한 배경설화의 기술이 있는 한편 시가 자체에서는 주가의 전형적인 어법이 드러나지 않아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다.혜성가의 배경설화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혜성 출현이라는 천체의 변괴와 노래에 의한 그 변괴의 제거, 그리고 이에 따른 천체의 정상적인 운행으로 진행되는 서사 전개를 가지고 있다. 이 기본 구조에 화랑의 산행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 있으며, 또한 앞부분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일본병이 설화 뒷부분에서는 환국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서로 엇갈리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설화의 문면을 그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