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line 함수 ***inline이란 말은 그때그때 즉시 처리한다는 뜻인데 함수 호출 부분을 아예 함수 그 자체의 코드로 대체시켜 보라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함수는 함수가 호출되면 함수가 정의되어 있는 부분으로 가서 함수 부분을 실행하고 다시 돌아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함수 호출이 몇 번이건 간에 프로그램에서 함수가 정의되어 있는 부분은 단 한곳밖에 없으며 호출시마다 호출원에서 함수로 제어권을 넘겨주게 된다. 반면 inline 함수는 함수가 호출되는 부분에 아예 함수 코드 자체를 집어넣어버린다. 따라서 함수를 호출한 횟수만큼 정의 부분이 반복되어 나타나게 되며 제어권이 넘겨지는 일은 발생 하지 않는다.이런 inline 함수를 사용하는 이유는 제어권의 이동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귀찮게 인수를 주고 리턴값을 받고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 좋으 란 법은 없는 만큼 inline 함수는 실행 파일의 크기를 크게 만드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프로그래밍에서 size와 speed는 이런 식으로 거의 항상 대립적인 관계에 있으며 그래서 필요에 따라 골라서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속도에 더 가치를 둔다면 inline 함수를 사용해애 할 것이고 size가 되도록이면 작기를 원한다면 inline 함수의 사용을 삼가야 한다.inline 함수는 그 자체가 선언이므로 프로그램 선두에 위치하기만 한다면 별도의 원형 선언은 필요가 없다. inline 함수는 그 속성을 잘 알고 써야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속도는 좋은 반면 실행 파일 크기에 불리하므로 구조가 극히 간단한 함수만 inline 함수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inline 함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크로 함수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조금 형태가 복잡한 매크로 함수이다.*** 인라인 함수(Inline Function)의 특성 ***- 함수의 호출 시에 함수의 내용이 삽입되는 함수이다.- 매 함수의 호출마다 동일한 코드가 삽입된다.- 함수의 호출에 따른 주소연산 및 반환값에 대한 처리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일반함수보다 실행시간이 빨라진다.- 매크로에 비해 구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코드의 최적화에 유리하다.[예제 1]#include class MyClass{public:inline int Max(int p, int q);inline int Min(int p, int q);};inline int MyClass::Max(int p, int q){return ((p > q) ? p : q);}inline int MyClass::Min(int p, int q){return ((p < q) ? p : q);}void main(){int i, j;MyClass Test;i = 10;j = 20;cout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군에 가기 전에 만난 여자친구와 약 2년 반 정도의 시간을 함께 했었다. 처음 만났을 땐 서로의 취미생활, 취향, 성격 등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서 서로에 대해 많은 호감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린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갔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난 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린 서로의 사랑과 애정을 확인했다. 많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게 되고 늘 이런 연인이 있음에 행복해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의 기간뿐이었던 것 같다. 얼마 후에 우린 전화할 때마다 싸우기 시작했고 휴가기간이나 잠시 면회를 왔을 때도 자주 싸우곤 했다. 처음엔 내가 군에 있기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무언가 둘 사이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근원적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주 싸울 때마다 서로의 서운한 감정만을 이야기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준만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횟수가 반복되고 지속적이게 되면서 우린 대화를 통해 풀어가야 할 많은 부분들을 서로가 포기하게 되고 가슴에 담아둔 채 참아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더욱 커져갔고 애써 애정표현을 하지만 서로가 초기에 느겼던 그러한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없게 되기에 이르렀다. 결국엔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사랑이전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엔 군에 입대한지 1년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늘 옆에서 따뜻하게 이해해 주고 나와의 관계 속에서 아파할 때 옆에서 위로해주는 따뜻한 선후배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결국엔 그렇게 깨어진 애정과 신뢰는 더욱 심해졌고 전역하기 전 난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내가 군에 있는 동안에 옆에서 따뜻하게 받아주었던 그 선배와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 삶의 일부였던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그저 나를 힘들게 했고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결과가 내가 의도했던 방향과 다르게 진행되어만 갔던 것이다.군에서 힘들어 할 때 누군가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추천해 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던 한 고참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땐 아무 말도 내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선물로 받았지만 읽지 않았다. 그 후 난 전역을 했고 여자친구를 잊으려 오랜 시간을 추억이 없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덧 여자 친구에 헤어진지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야 이 책을 다시 잡게 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 책은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성의 심리학 강의를 통해 읽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존 그레이 박사는 남자와 여자를 다른 행성인에 비유해서 표현하고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로... 서로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여행을 왔다가 서로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되고 거기서 깨어난 뒤 서로가 다른 행성인 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두에서부터 난 절대적으로 공감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나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여자라는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남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때 얼마 기간동안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해결하고 나와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명 깊었던 표현이었다. 반면에 여자는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표현하길 원하고 단지 남자는 그런 여자의 문제를 들어줌으로써 여자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친구가 수많은 문제들을 내게 이야기 했을 때 난 나름대로의 수많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면서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수용하길 원했지만 아무런 결과에 도달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난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을 문제들을 더욱더 악화시켜만 갔던 것이다. 하지만 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게 여자친구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서 느끼길 원하는 애정의 방식이 다르고 서로가 받기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시간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일찍 이 책을 읽고 남자와 여자는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면 서로의 차이에 대해서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단지 내가 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기에 헤어짐은 당연한 것이라고만 받아들였던 나였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 번 안 되는 전화 통화였지만 서로의 문제들을 서로의 대화를 통해 위로해 주고 상대방을 통해 애정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만 있었다면 그 시간들이 오히려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실제로 헤어지지 않고 오랜 기간 연애했던 고참들 중에 지금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커플도 있다. 나름대로 힘든 경험들이 있었을 텐데...이 책의 내용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어쩌면 그런 커플들은 서로의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의 대화의 방법들을 터득해 갔던 그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두 번째로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은 12가지 사랑의 종류와 기사 이야기가 함께 나와 있는 부분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주된 사랑의 욕구가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여자가 받고자 하는 것은 관심과 이해, 존중, 헌신, 공감, 확신인 반면에 남자는 신뢰, 인정, 감사, 찬미, 찬성, 격려를 받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여자의 감정에 관심을 보이고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려해 주면, 여자는 그가 자기를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 줌으로써 남자는 그녀의 첫 번째 주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성공하며 여자는 자연적으로 남자를 더욱 신뢰하기 시작하고 상대를 믿을 때 마음을 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여자가 자기감정을 표현할 때 남자가 이를 비판하지 않고 공감과 호응을 나타내며 들어 주면, 그녀는 그가 자기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남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고 그녀에게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됨으로 남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남자의 헌신을 통하여 여자에겐 찬미의 대상이 되고 그녀의 공감을 얻어냄으로 찬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언급하고 있다. 남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일단 그가 상대의 주된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 그녀가 마음 놓고 행복감에 젖을 것이며 그 순간부터는 마땅히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여자에게는 사랑의 주기가 있는 듯 하다. 남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남자에게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자주 묻곤 했던 여자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처음엔 사랑한다고 자연스럽게 대답했지만 반복되는 질문에 나중엔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섯 번째 여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남자에게 대화하길 원하는 만큼 남자로부터 표현받길 원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그리고 보면 여자를 한번에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막상 여자에 대해서 알고 보면 서로가 맞춰 가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여자가 남자에게 이야기할 때 보통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꼭 한번쯤은 꼬아서 이야기할 때 보통의 남자들은 짜증을 내거나 잘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만 더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줄때 고마워하고 다음번에 이야기할 땐 마음을 열고 쉽게 남자에게 이야기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자 또한 남자에게 배려의 의도에서 지나치게 조언을 해주고 충고를 할 때 남자는 여자에게서 무시당하고 있고 또한 신뢰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번은 여자친구에게서 고마운 경험이 있었다. 100일 휴가 나와서 두 번째로 여동생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길눈이 밝았던 여자친구가 나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난 내기에 응했다. 나는 자신 있게 전철역을 3번 출구로 나와 골목길에 들어섰다. 거리가 거의 비슷해서 잘 못 들어선 지도 모르고 한참을 걸었는데 나는 남의 집 앞에 가서야 잘 못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잘 못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따라와 주었고 집 앞에 도착해서야 내가 이겼지? 라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밤늦게 많이 피곤했을 텐데 끝까지 불평 없이 따라와 주었던 여자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난 그 벌로 동생 집 앞까지 여자친구를 등에 업고 한참을 걸었었다.
경복궁(景福宮)답사기조선왕조실록을 듣게 되면서 중 고등학교 시절에 단순히 암기했던 왕의 계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태정태세문단세... 워낙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중학교 시절부터 관심이 없어했던 터라 두려운 마음이 들기고 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진짜 역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정종, 태종, 세종, 문종등조선왕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살아있는 역사와 적나라한 왕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조선의 왕들이 살았던 장소를 방문하여 그들의 이야기에 좀더 가까이 귀를 기울여 가까이에서 여러 측면들을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경복궁을 처음으로 찾게 되었다.흥례문을 들어서면서 교수님의 자세한 설명과 우리의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되었다. 옛적의 서울을 말할 때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을 경계로 하여 그 안에 위치하고 있는 분지를 서울이라 했다고 한다. 크게는 북한산, 관악산, 덕양산, 용마산을 경계로 하여 그 산들을 외사산이 연결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경복궁은 도성공사 삼년 만에 이루어진 최초의 부실공사라는 말씀을 하셨다. 바닥에는 울퉁불퉁한 화강암들이 박혀져있었는데 맨바닥과 중간 그리고 가장 높은 길로 나뉘어져 보였다. 그중에 가장 위에 있는 길은 임금이 다녔던 가장 높은 길로써 어도라고 불린다고 한다. 어도를 따라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의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의 이름은 영재교였다. 영재교는 통치를 받는 자와 통치자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라고 한다. 영재교를 건너 근정문을 통과하였다.근정문을 통과하면 바닥전체가 네모난 화강암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현대건물처럼 반듯하게 깎아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운치 있어 보였다. 그 뜰은 현재의 국회의사당 광장과 같은 곳인데 국가의 공식적인 의례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국왕의 즉위식이나 승전축하기념 사신이 왔을 때 그들을 환영하는 공식적인 행사가 진행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근정전을 들어가는 입구를 중심으로 양쪽엔 글씨가 세겨진 작은 돌비석들이 있었는데 정 1품에서 종 9품에 이르는 신하들이 관직에 따라 줄을 맞추기 위해 세워진 돌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가장 거대하고 멋진 건물 근정전이 눈에 들어왔다. 2층의 월대 위에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그리고 월대 위에는 돌로 만들어진 울타리 같은 난관이 있었고 난관의 끝에는 서수라고 불리는 동물 모양의 돌덩이가 있었다. 건물의 오른편에는 향로 비슷하게 생긴 모양의 정이 있었는데 정을 받치고 있는 세 개의 다리는 임금, 신하, 백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근정전의 건물 중 가장 두드러졌던 특징은 지붕의 모양이었다. 조선의 건물은 보통 맞배지붕과 우진각 지붕, 팔짝 지붕으로 나뉘는데 특별히 근정전은 팔짝 지붕으로 지어져 있었다. 팔짝 지붕 모양을 가진 이 화려함은 근정전이 조선을 대표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조선을 방문한 사신들이 이 건물을 보고서 이것이 조선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붕의 중간 중간에는 고양이가 앉아있는 듯한 모양의 잡상이라는 인형이 있었는데 그 인형이 건물을 지켜준다고 한다. 특별히 조선의 건물들은 기둥위에 있는 포의 개수에 주심포 건물에서 다포 건물로 나뉘고 기둥의 개수에 따라 칸의 개수가 결정되는데 칸수가 많은 건물일수록 중요한 건물이라고 했다. 근정전의 내부는 바깥에서 보기에만 2층이었고 내부는 위층까지 탁 트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석구석마다 화려한 무늬로 장식되어져 있었으며 어좌 뒤에는 일월오봉병이라 하는 병풍이 있었다. 근정전에는 회랑이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회랑이란 사원이나 궁정의 주요부분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를 말한다. 보랑 또는 무랑이라고도 하는데, 행사가 있을 때에 좌석이나 통로로 이용되었으며 왕에게 아침 인사를 할 때 이 회랑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임금이 보는 앞에서 신하들은 항상 뒤꿈치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고 한다. 근정전은 태조 3년에 창건하였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타버려서 200년 이상 빈 공터로만 있었다가 흥선 대원군 때에 이르러 경복궁 재건과 함께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경복궁을 다시 훼손하였는데 민족혼을 말살하는 의미에서 근정전을 뜯어다가 희조전과 대조전을 지었다고 한다.근정전을 지나 사정문을 통과하자 천추전, 사정전, 만춘전 세 개의 건물이 나란히 보였다. 근정전이 공식적 국가의례와 같은 외조를 담당했다면 사정전은 치조를 담당하는 건물이었다.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공법시행, 야인정벌, 수차설치 등의 국정을 의논하였다고 한다. 사정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의 뒤쪽에는 두개의 굴뚝이 양쪽에 있었는데 그것은 난방시설이었다. 건물의 측면을 보면 장작을 넣어 불을 지필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사정전의 주위에는 천자문의 순서로 창고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는데 왕이 국정을 의논하는 가운데 필요한 물건들을 저장해 놓았던 곳이라고 한다.향오문을 지나자 강녕전 이라는 건물이 보였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다. 왕이 자기도 하고 저녁엔 신하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정치를 주석정치라고 하는데 아마도 주석정치의 시작이 바로 이곳에서부터였다고 한다. 칸수를 세어보니 전면이 11칸 측면이 5칸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중요도가 부여되는 건물이었다. 오히려 근정전보다도 중요시 되는 그런 건물이었다. 왕의 친전이면서도 국정이 사적으로 논의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강녕전은 앞에 넓은 월대가 눈에 띄었는데 그 월대는 왕이 관직을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신하들이 그 월대 위에 엎드려 시위하며 용서를 구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또한 지붕을 보면 용마루가 없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었는데 왕을 용에 비유하여 용 위에 또 다른 용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용마루를 뺐다고 한다. 부속 건물로는 연생전과 경성전이 있었다. 원래의 강녕전은 왕과 왕비가 함께 머무는 곳이었는데 성종 때에 교태전이 새로 지어지면서 왕과 왕비의 거처가 나뉘었다고 한다. 특별히 이곳에서 세조는 신숙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는데 술자리에서 세조가 신숙주에게 팔을 비틀어보라고 하자 팔을 비틀었는데 세조의 성격상 막상 비틀림을 당하자 술에 취한 정신으로는 이렇게 비틀 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자 어색하게 헤어졌다고 한다. 신숙주는 보통 잠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버릇이 있는데 이 상황을 알아챈 한명회가 사람을 보내어 오늘은 새벽에 공부를 하지 말고 그냥 계속해서 잠에 들 것을 청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보낸 사람이 지켜본 결과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잠이 든 것을 보니 만취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되어서 이 날의 사건이 조용히 해결되었다고 하는 예화가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다.어쨌든 우리는 양의문을 지나 가장 끝에 있는 건물인 교태전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원래는 교태전에서 문을 열어라 하고 문을 열면 양의문, 향오문, 사정문,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까지가 일직선상에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태전에서 문을 활짝 열면 광화문 앞에 형성되었던 시장까지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아 건물의 위치가 약간씩 바뀌게 되면서 많이 어긋나게 되었다고 했다. 어쨌든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엉뚱한 상상을 자극하게 하기도 했는데 왕과 왕비가 어우러져 크게 될만한 세자를 낳아야 한다는 뜻에서 교태전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태전에 이르렀을 때에야 깨달은 사실인데 지금까지 지나갔던 모든 건물의 이름에는 전이라는 글자로 끝났다. 그것은 바로 왕과 왕비와 관련된 건물이라는 뜻을 지니는 것이었다. 왕의 무덤에는 능이라고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신분제에서 왕과 왕비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이름하나까지 적용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분명한 증거들이었다. 아미산은 인공으로 만든 교태전의 뒷동산이다. 경회루를 만들면서 나온 흙을 쌓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이 있는 건물로 경복궁의 한가운데 위치한 중궁전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화원을 꾸미지 않아 후원이 발달하였다. 아미산은 중궁전의 깊은 후원으로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경사면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4단으로 쌓아 화계를 만들고 단 위에는 매화, 모란, 앵두, 철쭉 등의 꽃나무와 소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을 심어 원림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미산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육각형 모양으로 화려한 무늬가 있는 주황빛의 굴뚝이었다. 그런데 이 굴뚝은 교태전의 남방을 끌어들여서 만든 굴뚝이었다. 역사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은 특별히 중요시 여기진 않지만 건축에 관련된 전공자들은 이 굴뚝에 새겨진 무늬와 건축양식으로 인해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보물 중에 하나라고 한다.
나의 人生觀광활한 우주(宇宙) 속에 은하계(銀河系)가 있고 그 속에 태양계(太陽系), 또 그 속에 자그마한 지구(地球)가 있다. 지구(地球)라는 축복(祝福) 받은 행성(行星) 위에는 여러 생명체(生命體)가 살고 있으나,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인간(人間)이 버티고 있다. 인간(人間)은 이성(理性)이라는 강한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강한 무기(武器)를 이용해서 문명(文明)을 일구어 냈다. 권력(勸力)이 발생(發生)하고 자연히 나라를 만들어 자기들만의 영토(領土)를 지닌다. 각자 인간(人間)들은 자신이 속한 나라, 지역, 집단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哲學) 즉, 인생관(人生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인간(人間)은 우주의 광활함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존재(存在)이지만 허공(虛空)을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공기분자(空氣分子)들과는 확실히 차원(次元)이 다른 존재(存在)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란 인간(人間)은 내가 속한 환경(環境) 속에서 어떤 인생관(人生觀)을 가지고 떠다니고 있는 것일까.인생관(人生觀)이라 함은 태어나자마자 결정(決定)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生角)한다. 따라서 현재(現在)의 입장(立場)이 미래(未來)에 어떻게 바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내가 살아온 과거(過去)를 살펴볼 때 예전의 나는 현재(現在)의 나와는 다른 생각(生角)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4살부터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집 주변이 내가 아는 세계(世界)의 전부(全部)였다. 물론 부모님을 따라서 멀리 나가본 적도 많고 TV를 통해 외부세계(外婦世界)에 대한 여러 가지 간접경험(間接經驗)을 했지만 집 주변이야말로 가장 중요(重要)한 세계(世界)의 중심(中心)이었다. 그 속에서 동네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만이 당시 나의 삶의 질(質)을 높이는 최선(最善)의 방법(方法)이었으며 인생(人生)의 목표(目標)였던 것 같다. 유치원(幼稚園) 시절에 나는 죽음을 진지(眞摯)하게 생각(生角)하기 시작했고 인생(人生)은 죽음을 향해 달음질치는 것이라는 생각(生角)을 했었다. 초등학교(初等學校)에 입학을 하게 되어 진정한 동료(同僚)들과의 경쟁(競爭)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가정(家庭)이라면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우리 가정(家庭)은 무엇보다도 교육(敎育)을 중시한다. 이러한 생각(生角)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인생관(人生觀)의 변화(變化)에 큰 영향(影響)을 미쳐왔으며 지금도 그 여파(餘波)가 남아있는 듯하다. 여하튼 초등학교(初等學校)에 들어간 이후로 고등학교(高等學校)를 졸업(卒業)할 때까지 나의 삶의 가치(價値)는 어떤 大學을 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生角)해 왔다. 비참하게도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인생(人生)을 대학진학(大學進學)에 걸어온 것이라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란 생각(生角)이 든다. 물론 고등학교(高等學校) 시절 공부에 대한 회의(懷疑)를 심하게 느껴서 삶의 허무(虛無)함을 절실히 느끼고 누구 말처럼 자연(自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慾望)이 하늘을 찌를 때가 있었지만 그건 단지 순간(瞬間)의 도피의식(逃避意識)에 불과 했던 것 같다. 정말로 大學에 들어오고야 만 후에 난 삶은 즐기는 것이 최고(最古)라고 生角했다. 더 이상 후회(後悔)가 없을 정도로 난 즐겼고 군대(軍隊)에 들어갔다. 화천에 있는 칠성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시간을 고독(孤獨)과 사색(思索) 가운데 보낼 수 있었고 다시 한번 인생人生에 대해서 진지(眞摯)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후 학교에 다시 돌아와 앞으로의 인생(人生)을 설계(設計)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복학생으로서의 나의 모습을 본다.이제부터 나의 과거(過去)도 미래(未來)도 아닌 현재(現在)의 인생관(人生觀)을 서술(敍述)하고자 한다.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삶은 덧없는 것인가? 아니다. 수많은 선조(先祖)들이 죽어 왔지만 인류(人類)는 건재하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내가 존재(存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태학(生態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삶은 번식(繁殖)이다. 종족(種族)의 번성(繁盛)과 유지(維持)를 위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生角)한다. 하지만 모든 생물(生物)이 모두 그와 같을진데 그렇다면 인간(人間)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 인간(人間)은 살아가는 것 자체보다 가치(價値)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人間)의 삶 즉, 인생(人生)인 것이다. 행복(幸福)하고 가치(價値) 있는 인생(人生)을 영위(英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목(和睦)한 가정(家庭)과 넉넉한 재화(財貨)가 필요(必要)하다고 생각(生角)한다. 물론 타인(他人)과의 원만(圓滿)한 관계(關係) 또한 사회(社會) 속에서 행복(幸福)한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必要條件)이라 할 수 있다.넉넉한 재화(財貨)를 얻으려면 성공(成功)을 하여야한다. 성공(成功)하는 방법(方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기초(基礎)에는 교육(敎育)이 있어야 한다. 교육(敎育)은 삶의 질(質)을 높이는 방법(方法)을 가르쳐 준다. 또한 가장 짧은 시간(時間) 내에 효율적으로 여러 가지 지식(知識)의 습득(習得)과 간접경험(間接經驗)을 얻을 수 있어서 짧다면 짧은 인생(人生)을 더욱 가치(價値) 있게 만들 수 있는 기회(機會)를 제공해준다고 생각(生角)한다. 또한 성공(成功)을 하려면 남들 보다 뛰어나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단순(單純)하고 쉬운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래서 나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날 수 있도록 가치(價値)를 두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自信感)이다. 자신간(自信感)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감(自信感)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같은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능력(能力)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전자가 자신감(自信感)이 있는 경우(境遇)이다. 또한 자신감(自信感)은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모든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한다. 마음은 육체(肉體)를 지배(支配)한다. 마음이 어두우면 몸도 힘이 빠지게 마련인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은 흥겨움을 주고 그 흥겨움은 삶을 추진(推進)하는 힘이 되어준다. 초연(超然)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자신감(自信感)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삶에 있어 여러 번의 실패(失敗)는 겪을 수밖에 없다. 실패(失敗)를 초연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해만 하면 시간(時間)을 낭비(浪費)하는 결과(結果)를 초래(招來)한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상이 내가 人生에 있어 성공(成功)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자세(姿勢)이다.
지난 10월 둘째 주에 함께 수업을 듣는 후배들과 함께 세종대 앞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 에 있는 식물원과 서울대공원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했습니다. 몇 번 가보긴 했지만 주로 동물을 보며 신기해만 했었지 정작 식물원에는 들어가 본적이 없었던 터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막상 식물원에 들어가 보니 크고 작은 수많은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자라고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커서 고개를 들어야만 끝을 볼 수 있는 나무들 사이에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수업시간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꽃을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여서 많은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식물원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을 보며 향기도 맡아보고 관찰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따뜻해지는 것들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여유를 즐기며 식물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은 취미 생활이 될 수 있고 정서에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은 느낌까지 가져다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교외에 있는 크고 작은 식물원을 다녀볼 생각입니다. 사진도 찍고 식물도 관찰하는 또 하나의 취미가 생긴 것 같아서 이번 수업이 유쾌하면서도 생각지 못한 삶의 질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식물원에서 관찰했던 몇가지 식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꿩의비름 (Sedum erythrostichum)꽃이 피는 시기가 지났는데도 식물원의 앞 정원에 피어 있는 꿩의 비름을 만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한창 피어있는 시기의 화려함은 아니었지만 참 예쁜 꽃이었다. 모양의 화려함 때문에 꿩의 비름이란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을까? 더듬이 같은 모양의 얇은 털이 많이 달려있고 수많은 꽃잎모양의 잎들이 조화를 이룬 꽃이었다. 산지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줄기는 둥글고 분처럼 흰빛을 띠며 곧게 서고 높이가 30cm 정도이다. 잎은 마주나거나 어긋나고 타원 모양이나 긴 타원 모양의 달걀 모양이며 길이가 6∼10cm, 폭이 3∼4cm이고 육질이다. 잎의 가장자리에(Fatsia japonica)팔손이를 처음 봤을 때 한일은 잎의 개수부터 세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 딱 8개였다. 혼자서 나뭇잎을 보면서 “잎 개수 때문에 팔손인가?”하는 생각도 했다. 잎이 정말 크고 손바닥같이 쭉 뻗어 있었다.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하얀색의 뽀송뽀송한 것들이 달려 있기도 했다. 이 팔손이는 팔각금반이라고도 한다. 바닷가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자란다. 높이는 2~3m이다.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흰색이며, 줄기는 몇 개씩 같이 자라고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는데, 지름이 20~40cm이고 가지 끝에 모여 달린다. 잎몸은 7~9개씩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고 짙은 녹색이며, 기부는 지름 20~40cm로서 열편은 란형 또는 란상피침형이며 첨두인데, 양면에 털이 없으며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윤채가 있으며 뒷면은 황록색이고 가장자리에 거치가 있다. 엽병은 둥글고 길이 30cm이상으로서 털이 없다. 갈래조각은 달걀 모양 바소꼴로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어릴 때는 갈색 선모가 나지만 나중에 없어지며 잎자루는 길이 15~45cm이다. 꽃은 잡성화로서 10~11월에 흰색으로 피고, 커다란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어릴 때는 일찍 떨어지는 흰색 포로 싸인다. 꽃잎, 수술, 암술대는 5개씩이고 화반이 있다.카틀레야 (Cattleya)꽃의 화려함 때문에 몇 번이고 눈길을 끌게했던 꽃이다.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었다. 해삼물 비슷한 모양이 층으로 어우러져 있고 가운데 모양은 속이 빨간 내부를 가진 불꽃모양이 가지런히 아래쪽으로 뻗어있는 모양이다. 분홍색과 흰색의 두 종류를 보았는데 모두 꽃잎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약 65종이 있으며 기생 또는 착생식물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 지방이 원산지이며 자생지에서는 나뭇가지에 붙어서 자란다. 속의 명칭은 영국의 식물애호가인 카틀레이(W. Cattley)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였다. 원예에서는 카틀레아속 뿐만 아니라 난초과의 라일리아속(Laelia)·브라사볼라속(Bras각 계절에 따라 피는 것과 두 계절에 걸쳐서 피는 것 등이 있으므로 품종을 잘 택하면 일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옥살리스 (Oxalis)괭이밥속의 식물 전체를 가리킨다. 원예에서는 괭이밥속의 식물 중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10여 종의 식물을 가리킨다. 괭이밥속은 전세계에 약 800 종이 있고, 한국에는 4종이 자란다. 초본 또는 관목이고, 잎은 어긋나며 대개 세 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고 턱잎이 있으며, 많은 종에서 작은잎이 밤이나 추운 날씨에 밑으로 말린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1개 또는 여러 개가 달리고,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기와 모양으로 배열한다. 꽃잎은 5개이고, 수술은 10개이며, 암술대는 5개이다. 씨방은 5실이고, 열매는 삭과이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것들은 잎겨드랑에서 나온 꽃자루에 1∼4개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열대 또는 아열대성으로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주로 비닐하우스와 온실에서 재배하는데, 여름에 꽃피는 종류는 화단에서 가꾸기도 한다. 흐린 날과 밤에 꽃과 잎이 오그라들고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야 한다. 한국에서 주로 재배하는 품종은 다음과 같다. 희망봉괭이밥(O. bowieana)은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이며 주로 온실에서 알뿌리를 분재하고 따뜻한 지방에서는 화단에 심으며 온실에서 7∼10월에 분홍색 꽃이 핀다.아프리카봉선화 (Impatiens sultanii)아프리카 봉선화를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네잎크로버에 색깔을 칠해놓은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 볼록하게 네 개의 잎이 볼록볼록 튀어나온 모양에 여러종류의 색깔을 띤 꽃이 작은키의 줄기에 옹기종이 모여있었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이며, 주로 온실에서 가꾼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봉선화처럼 수분이 많으며 높이는 60c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지만 줄기 윗부분에서는 돌려난 것처럼 보이며, 달걀 모양이고 잎자루가 길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밝은 붉은빛·흰색·연분홍색 등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1∼3개씩 달리며 꿀주머니가 길다. 종자와 꺾꽂이로 번식하나씩 달려 끄덕대는 꽃은 크기 5∼6cm 정도로 강한 냄새를 풍긴다. 꽃잎은 5장이고 암술의 끝은 넓게 퍼진 모양이다. 식충식물로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흙에서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외에 곤충들을 유인하여 잡아먹는다. 통 모양의 잎에 유인된 벌레는 빗물과 여러 소화효소가 뒤섞인 끈적끈적한 액체로 채워진 잎 속의 웅덩이에 빠져 죽은 후 천천히 소화된다. 잎의 안쪽에는 아래를 향해 뻗은 털들이 나 있어 빠진 벌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며 미국 동남부의 습지에서 자란다. 관상용으로도 많이 찾는데 씨앗을 심거나 이른봄에 포기나누기를 하여 번식한다.개미취 (Aster tataricus)산길을 거닐다보면 어린시절부터 볼 수 있었던 꽃이었는데 이번에 식물원을 방문하고 나서야 개미취라는 꽃임을 알게 되었다. 들국화처럼 생긴 모양인데 연보라색을 띤 꽃잎이 얇고 긴 모양을 가진 꽃이다. 자원·소판·협판채·산백채·자완·자와 라고도 한다. 깊은 산속 습지에서 자생하나 재배하기도 한다. 높이는 야생이 1.5m 정도이고 재배하는 것은 약 2m이다. 줄기는 곧게 서며 뿌리줄기가 짧고,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지며 짧은 털이 난다.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필 무렵 없어지는데 길이 65cm, 나비 13cm로 뭉쳐난다. 긴 타원형이며 밑부분이 점점 좁아져서 잎자루의 날개가 되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줄기에 달린 잎은 좁고 어긋나며 길이 20∼30cm, 나비 6∼10cm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9∼20cm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꽃은 7∼10월에 연한 자주색 또는 하늘색으로 피는데, 지름 2∼3cm의 두상화가 가지와 원줄기 끝에 달린다. 산방꽃차례로 꽃자루는 길이 1.5∼5cm이며 짧은 털이 빽빽하게 난다. 총포는 반구형으로 길이 7mm, 나비 13∼15mm 이고, 포는 끝이 뾰족한 바소꼴로 짧은 털이 난다. 설상화는 하늘색이고 관모는 흰색이다.피소스테기아 (Physostegia virginiana)대부분이 침은 종처럼 생기고 화관은 길이 2∼3cm이며 입술 모양이다. 윗입술은 둥글며 아랫입술은 3개로 갈라진다. 꽃은 홍색·보라색·흰색 등이다. 화단과 절화용으로 심는다. 번식은 봄·가을에 포기나누기로 하며 종자로도 번식한다. 꽃범의 꼬리라고도 불림.홍학꽃 (Anthurium andraeanum)빨간색의 반짝반짝 빛나는 불염포라고 불리는 하트모양의 꽃잎에 길다란 노란색 모양이 돋보이는 꽃이 인상적이었던 안스리움. 몇 번이나 사진을 찍고 신기하게 보았던 꽃이었는데 알고 보니 사철 내내 피는 꽃이라는 말을 듣고 여러 꽃집을 다니며 보니 어딜 가나 있는 꽃이었다. 그로인해 내가 얼마나 꽃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지에 대해서 새삼 깨닫게 해준 꽃이기도 하다.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숲에서 자라는 종으로 원산지는 콜롬비아이다. 줄기는 짧고 관목 모양이며 잎은 길이 30~40cm, 너비 10~20cm로 가늘고 긴 잎자루에 붙는다. 꽃은 길이 6㎝ 정도로 원뿔 모양의 노란색 육수꽃차례를 이루며 꽃차례는 불염포(佛焰苞)에 둘러싸여 있다. 불염포는 윤기 나는 붉은색이고 심장 모양이며 길이가 5~8㎝ 정도이다. 꽃은 일년내내 핀다. 주로 실내의 화분이나 온실에서 키우며 재배 적정온도는 25~35℃로 겨울철에도 15℃ 이상을 유지해주어야 한다. 직사광선이 없는 밝은 곳에 두어야 하며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지만 용토의 과습은 좋아하지 않으므로 잎에만 자주 물을 뿌려주는 것이 좋다. 번식방법에는 종자번식·삽목·조직배양법 등이 있다.금사매 [金絲梅] (Hypericum galioides)이 꽃은 식물원을 돌고 나오면서 발견한 꽃이었다. 앞뜰 정원에 서너 송이만 피어 었었던 이 꽃은 알고 보니 7~8월에 피는 꽃인데 늦게까지 남아있던 꽃이었다. 짙은 개나리색이 유난히 눈에 띠었던 이 꽃은 다섯 개의 꽃잎과 수술이 동그랗게 어우러져 있었고 가운데 암술부분은 양파모양으로 둥근 모양에 나머지는 얇게 뻗어 나와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었다. 꽃은 갈퀴망종화라고도 한다. 미국 원산이다. 높이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