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사찰은 어떠한 곳일까. 사찰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곳이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아가 수행을 하고 부처님의 법음을 듣는 곳이다.한국의 절은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후 1700여 년 동안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운 한국문화의 터전이 되어왔다. 한국의 문화재의 65%이상이 불교문화재인데, 한국의 절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 각종 문화재가 간직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에 따른 목조건축, 불화, 단청 등의 불사와 승무, 범패 등의 전통 의식이 이어져 한국전통의 맥을 잇는 전수지로서 자리하고 있다.또한 한국의 절은 대부분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산사라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공, 자연과 어울리는 인공을 이루어 왔다. 그래서 한국의 절은 절 그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절이 자리하고 있는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전해준다.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전진(前秦)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로 하여금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오게 한 것으로, 2년 뒤에는 다시 진(晉)으로부터 아도(阿道)가 들어와 다음해 2월 나라에서는 성문사(省門寺, 또는 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있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가람이라고 한다. 또한 신라에서는 제19대 눌지왕 때에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의 모례의 집에 와 머물면서 몰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모례는 원래 국어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털례’의 집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털례의 집은 가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털례’가 사찰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이처럼 불교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는 많은 변화를 그 밖에도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제공 및 참여형 축제로 유도하기 위하여 대통령기 전국 게이트볼 대회 및 소백산 철쭉제를 연계행사로 개최하는 한편, 화엄축제를 계기로 의상의 위대한 화엄사상을 심도있게 고찰하고 현대에 접목시킴으로서 지역문화의 발전은 물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 소백산 풍기온천과의 연계관광 유도로 지역경제활성화 및 문화관광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높여 지역의 대표축제로 우뚝 섰다{☆ 봉화 청량사-산사음악회경북 봉화를 중심으로 안동, 영주, 풍기 등 대도시에 비해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주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산사음악회는 매년 열리는 청량문화제와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청량사 산사음악회는‘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종교적 색채를 강조하기보다는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진행된다. 법고연주와 시낭송, 국악 연주와 대중가요 등 여러장르의 노래와 산사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지리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 음악회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지역문화축제이다.{화수 운주사-운주축제화순운주문화축제가 ‘아직 못다 한 이야기, 끝내 이룰 꿈’이라는 주제로 천불천탑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화순군 도암면민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결합해 민간 중심의 축제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 그동안 소원했던 운주사와 주민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더불어 남과 북, 개발과 보존, 도시와 농촌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잃어버린 공동체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게 축제 추진위원회측의 방침이다. 축제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프로그램은 운주문화체험과 함께 하는 가을농촌일손돕기 ,운주이야기 마당, 와불 세우기 등이다.축제와 함께 하는 가을농촌일손돕기는 도시 젊은이와 농민들의 결합을 통해서 운주사에 내재된 공동체, 대동정신 회복의 단초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며, 대학에서 축제 체험단을 모집, 축제 품들이며, 단청이 없어 더욱 자연스러운 고찰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절 입구 울창한 전나무 숲길은 전나무향기 가득한 매력적인 산책로다. 더욱이 전나무 숲길을 벗어나면 일주문 앞까지 단풍나무터널을 이루고 있어, 가을이면 단풍나들이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6 달마야 놀자{[은하사]신어산의 고찰 은하사는 영화 '달마야 놀자'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곳은 1천900년전 가락국 수로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사찰이다. 은하사와 더불어 청명한 날 대마도가 보인다는 영구암, 가락국의 번영을 빌기 위해 세웠다는 동림사까지 김해지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오래된 사찰의 분위기를 위한 영화 촬영으로 인해 모습이 많이 바뀌었으며, 스님들의 수행 공간까지 공개되고 있는 실정이다.Ⅳ. 사찰음식요즘 들어 웰빙 열풍으로 인해 현대인들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채식이 정신을 맑게 하고, 각종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성인병으로부터의 예방 등 많은 효과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현대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여 진다. 이로 인해 사찰음식 강좌가 생겨나가도 하였고 많은 사찰관련 동호회들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대학생 등 젊은 층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음식 전문점들도 소비자들의 꾸준한 인기로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사찰음식점은 서울시내 만해도 50군데에 이르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찰음식점들은 대부분 인사동에 밀집되어 있다.1. 사찰음식(1) 사찰음식의 정신절에서 밥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맛의 담백함과 깔끔함을 잊지 못한다. 맛에 둔한 사람도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그 은은함을 잊을 수 없게 된다.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는 행자 시절에는 땔감을 구해오는 불목하니, 상을 보는 간상, 반찬을 만드는 채공, 국을 끓이는 갱두, 밥을 짓는 공양주의 역할을 두루 거치게 된다. 이런 행자시절의 마지막 단좋게 하고 힘이 넘치고 수명을 연장한다. 안락이 있고 말솜씨가 시원하게 되고 음식물의 소화를 좋게 하고 감기에 잘 안 걸리는 이로움이 있다. 또한 공복감을 충족시키고 목의 갈증을 풀어주고 대소변을 잘 조절하게 한다. (바죽, 현미죽, 연시죽, 팥보죽, 비지죽, 개암죽, 우분죽, 늙은 호박죽, 잣죽, 콩나물죽, 흑임자죽, 옥수수죽, 땅콩죽, 야채죽, 팥죽, 들깨죽, 호두죽, 미역죽, 아욱죽, 녹두죽, 버섯죽, 대추죽, 오미자죽 등 모두 43종류나 있다.)2 밥- 찰밥, 산나물비빔밥, 콩나물밥, 야채밥, 유부밥, 보리밥, 김밥, 김치밥, 무밥, 김초밥, 버섯덮밥, 보리밥, 오곡밥, 연근밥, 고구마밥, 취나물쌈밥, 유채밥 톳나물밥, 연잎밥 등이 있다.{{{{{{{-연근밥- -고구마밥- -취나물쌈밥- -유채밥-3 국- 무국, 미역국, 우거지국, 시금치국, 감자국, 쑥국, 냉이국, 김국, 거프국, 근대죽, 배추국, 토란국, 두부냉국, 냉콩국, 째가무냉국, 짠오이냉국, 청포묵국, 시래기국, 양해란국 등 그 종류가 44가자나 된다.{{{{{-냉이국-{-두부탕-{-근대국- -산초 된장국-4 김치-젓갈류, 파 ,마늘을 쓰지 않는 사찰김치는 담백하고 독특한 맛이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지역적 특성이 강하다.#지역별 김치#-경기 충청지역: 주로 잣을 이용하는 백김치, 보쌈김치, 고수김치, 깍두기-전라도 지역: 들깨죽을 이용한 고들빼기김치, 갓김치, 죽순김치-경상도 지역: 늙은 호박죽과 보리밥을 이용한 콩잎김치, 우엉김치, 깻잎김치 등-북한 지역: 소금, 고추, 생강, 청각 등을 이용한 동치미나 백김치가 있다.{{{{{-돌미나리 김치- -우엉김치-{-연근물김치-{-죽순김치-{5 나물 및 무침-시금치, 냉이, 비름나물, 더덕무침, 죽순채무침, 꽈리고추무침, 미사무침, 가지나물, 고사리나물 등 31가지가 있다.{{{{{-냉이나물- -도라지나물-{-산머위나물-{-고사리나물-{6 조림-감자조림, 우엉조림, 무조림, 고구마, 물엿조림, 꼇질콩조림, 송이버섯조림, 곤약조림 등 27가지가 있적으로도 우리 고유의 식문화를 전파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Ⅴ. 한국의 사찰 (해인사 편){「해인사」편합천 해인사는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가야산 기슭에 있다. 그 이름은 《화염경》에 나오는 ‘해인삼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인삼매’란 세상을 끝없이 넓은 바다에 비유해 마음의 번뇌가 사라질 때 우주의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 비치는 경지라는 뜻으로 일체를 깨달아서 아는 부처의 지혜, 곧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모습이다.해인사는, 승려 순응과 그의 제자인 이정이 애장왕과 그의 할머니인 성목왕태후의 도움으로 통일신라 애장왕 때인 802년에 세워졌다.중국 양나라 때, 지공 화상이 죽음에 이르자 제자들에게 《동국답산기》를 주면서 고려의 두 승려가 법을 구하러 오면 이 책을 전해 주라고 유언하였다. 그 뒤 신라의 순응과 이정이 법을 구하러 중국에 갔는데, 지공의 제자들에게서 책을 건네 받고는 지공의 묘소를 찾아가 기도하며 법문을 청하였다. 어느 날, 묘가 열리면서 지공이 나와 지금의 가야산인 우두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돌아가 대가람 해인사를 세우라는 말을 남기고 탑 안으로 사라졌다. 두 승려는 우두산의 맑은 물이 고인 이곳에 이르러 선정에 들어가자 이마에서 신령한 빛이 나 그 기운이 하늘로 뻗쳤다. 그때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병이 났는데 약의 효력이 없어 왕은 신하들에게 고승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우두산에서 선정삼매에 들어가 빛을 내는 승려들을 보고 사연을 말하자, 승려는 오색실을 주면서 실의 한 끝은 궁전 뜰의 배나무에 매고 다른 쪽은 아픈 곳에 대면 병이 나을 거라고 하였다. 승려의 말대로 하였더니 배나무가 말라죽고 왕후의 병이 낫게 되어 애장왕은 전답을 내리고 해인사를 짓게 하였다고 전한다.가장 한국다운 것 이라면 뭐가 있을까? 외국인에게 한국의 사찰은 생소하고 흥미로운 볼거리일 것이다. 우리 조원들은 그 중 사찰 내부에서 행하고있는 행사와 음식을 소개하고,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과 사찰 주위의 매력물을 연계해서 패키지로.
1. 서론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창업 시장에 복합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서울경제 2005-03-15 김민형 기자언제부터인가 한 매장에서 두 가지 이상 아이템을 취급 하는 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복합점포란 이같이 한 매장에서 두 가지 이상 아이템을 취급 하는 것을 말하는데 복합점포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 할 수 있다. 동일한 아이템 혹은 서로 다른 아이템이 결합된 형태로 나뉜다. 서로 다른 아이템은 두개의 간판이 걸려 있고 동일한 아이템은 두개 이상의 아이템을 취급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은행이나 삼성전자 대리점 안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사 먹을 수 있거나, 같은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순대와 뼈감자탕을 함께 판매하는 방식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 개의 가맹점에서 두개 이상 브랜드를 취급하는 '숍인숍'이나 낮과 밤에 다른 메뉴를 취급하는 '원스톱' 형태 의 매장운영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 같은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2. 본론1) 프랜차이즈 복합매장, 원스톱 매장사례'조춘식 토속순대&뼈감자탕'은 지난해 말 순대전문점에서 뼈감자탕을 합한 복합 매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기존 점포는 원하는 점주에 한해 복합매장으로 리모델링했고 신규 점포는 아예 복합매장으로 컨셉을 바꿨다. 뼈감자탕은 순대와 같은 돼지 부산물을 이용할 수 있고 또 안주기능을 겸해 저녁시간대 술과 밥을 겸하는 고객을 잡는데 효과적이었다. 처음으로 복합매장을 오픈한 서울 방배점의 경우 현재 50평 매장에서 월매출 4500만원을 올리고 있다.사례'자수정삼겹살'은 한 매장에서 자수정에 숙성시킨 삼겹살과 자수정 용품을 함께 팔아 시너지 효과를 올리고 있다. 이곳은 자수정을 컨셉으로 삼겹살은 물론 1년여 간의 노력 끝에 개발한 자수정 구이판과 더불어 자수정 워터, 자수정 소주로 메뉴를 차별화한 것은 물론 카운터 옆에 자수정 용품 판매대를 설치해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매장에서 자수정 원석과 휴대폰 걸이, 카드, 찜질팩, 비누, 함으로써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 주고 동시에 장보기 편의를 제공 한다 는 전략이다. 건강보조식품으로는 청매실 제품을 비롯해 콜라겐 석류 상어연골 물개유 등이 있으며 유기농식품으로는 무농약 곡물을 이용한 과자, 쨈, 주스, 식용유, 라면 차, 커피 등을 판매하고 있다. 가맹점들의 평균 월매출은 3000만원에 광고비와 재료구입비, 관리금 등을 제하 고 월 500만원정도의 순수익을 내고 있다.사례{장비 왕냉면, 왕온면 복합매장 을 운영중인 송원섭씨(34)는 한 끼 식사 손님과 간식 손님이 반반 이라며 고객층도 중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게 장점 이라고 말한다. 그가 밝힌 비결은 성 비수기 매출 차이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3월부터 10월까지가 성수기인 냉면 에 11월부터 2월까지의 동절기 상품인 온면, 칼국수, 순대국밥이 추가돼 기존 냉면집의 틈새를 뚫었다는 게 포인트. 5월 개업 초기 땐 7대 3 비중이던 냉면과 온면이 가을로 접어든 11월엔 5대 5 구조로 바뀌어 비수기를 없앤 것이 대박 비결인 셈이다. 여기에 물냉면 3500원, 어린이 냉면 2000원 등 매장 문턱을 낮춘 저렴한 가격도 작용했다. 송씨는 이번에 나름대로 사업철칙도 세웠다. 첫째 주방관리가 편하고 적은 돈, 적은 인력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종을 고른다는 것이고 둘째 틈새시장을 찾는 것. 그는 소스 등 식재료 90% 이상이 본사서 가공 상태로 운송해줘 주방에 전문조리사가 필요 없다는 점이 매력 이라며 냉면집에 온면과 칼국수, 순대국으로 부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고 말한다.{) 매경이코노미 2004년 11월 3일 보도자료 참조2) Shop in shop스타벅스가 출점전략을 바꿨다.1999년 한국 진출 후 고집해온 대형 점포 전략에서 탈피, 중소형 점포를 잇달아 열고 있다. 한국에서는 도심지 점포 임대료가 워낙 비싸 독립점포를 열 경우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워 투자비가 적게 드는 shop in shop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현재 3백 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스50평짜리 독립점포를 열 경우엔 시설 인테리어 등에 드는 비용(점포임대료 제외)만도 5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스타벅스는 그동안 shop in shop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결과 기존 점포에 들어갈 경우 별도의 마케팅 없이도 주부나 중장년 등으로 고객층을 넓힐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련업계는 스타벅스가 shop in shop 위주로 출점하기 시작하면 커피숍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타벅스 진출 후 4년 사이 1백 개 이상의 take-out 커피 브랜드가 생겨났고 3천여 개의 take-out커피숍이 문을 열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시도되는 브랜드 마케팅은 1천여 개 이상의 삼성전자 기존 매장을 활용할 수 있어 스타벅스 커피의 경우 짧은 시간 내에 점포수를 확대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사례{삼성전자-스타벅스 커피, 이색 문화마케팅 펼친다. 는 타이틀 아래 다음의 슬로건들을 내세운다.. 삼성전자 디지털 프라자 내 스타벅스 복합매장 입점.. 차별화된 마케팅 통한 젊은 세대 등 집객효과 기대.. '01ㆍ'02年 세계 최고 성장 브랜드간의 만남.. IT와 Coffee가 결합된 새로운 휴식ㆍ문화공간의 場.{.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판매한다."삼성전자와 스타벅스 커피가 디지털 제품과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복합 매장을 선보였다. 양사는 삼성전자의 전국 대형 매장 중 상호 win-win할 수 있는 곳에 복합매장을 설치키로 합의하고 우선적으로 2004년 6월 17일 100평 규모의 삼성전자 리빙프라자 선릉점 내 15평 규모의 스타벅스 커피 전문점이 위치하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오픈 했다. 양사가 최초로 선보이는 복합매장은 제품만을 판매하던 기존 매장과 달리 문화와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상품을 넘어 디지털 문화와 커피문화를 접목시키는 장으로 새로운 문화 마케팅을 선보이고자 했다. 특히 양사의 이색 문화 마케팅은 최고 성장 브랜드간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3년 발표한 매장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IT와 커피가 결합된 새로운 문화 체험의 명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전략. "1+1= "삼성전자는 2003년 말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디지털 프라자 고급화 및 대형화의 일환으로 스타벅스 커피와의 제휴를 추진하게 된 것이며, 복합 매장 등의 차별화된 마케팅 활동과 ITㆍCoffee에 익숙한 젊은 세대 집객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와 스타벅스 커피는 젊은 직장인 층이 밀집해 있는 '선릉역점'에 1호점 오픈을 시작으로 향후 양사간 전략적 협의를 통해 '분당 리빙프라자 가 2004년 8월 14일 오픈 하였다. 이외에도 복합매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입소문 내기엔 그만일단 젊은 세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 이들은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그 어느 계층보다 강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먼저 선을 보여 입소문이 나야만 업체들은 일정 매출을 보장받을 수 있다. 너나없이 신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하면 먼저 이곳으로 갖고 오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즐겨 찾는 유명 커피 체인이나 패스트푸드점을 통해 마케팅 하는 것이 광고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업계에서는 설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IT업계와 커피 및 패스트푸드 업계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유야 어찌됐든 소비자들로서는 새로운 기술을 쉽게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 체인을 즐겨 찾고 있다. 스타벅스 커피 코리아 장성규 대표이사는 삼성전자와의 제휴는 전 세계 31개국 6,600여 스타벅스 커피 매장 중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으로서 국내 시장에서 빠른 시간 내에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스타벅스 커피의 새로운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나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사례은행-스타벅스 공동 마케팅 인기커피점과 은행의 만남, 스타벅스는 외환은행과 제휴해 지난 7~8월 두 달 동안 20~30대를 대상으로 공동마케팅. 은행 점포가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은 한때 에어컨이 귀했던 시절 여름철 국민들의 피서지 로도 각광받았지만, 에어 콘이 일반화되면서 휴식공간 으로서 매력을 잃어 갔다. 그러나 최근 시중은행들이 영업점에 커피숍을 입점 시키는 등 잇따라 변신에 나서며 고객유치에 힘쓰고 있다. 외환은행은 스타벅스와 매장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9월 27일 서울 을지로 본점 1층에 스타벅스 커피 매장을 오픈 했다. 시중은행 가운데는 조흥은행이 2004년 7월 서울 명동지점에 커피전문점 그라찌 를 입점 시킨 데 이어 두 번째다. 은행 측은 경직돼 보이는 은행 분위기를 향긋한 커피냄새와 함께 고객을 위한 색다른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 매장을 오픈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외환은행은 스타벅스 매장 입점으로 20, 30대 고객층을 끌어들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마케팅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환전성수기인 7, 8월에도 스타벅스와 공동마케팅을 실시, 양사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고객기반 확대에 큰 효과를 거둔 바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본점건물 1층 일부를 커피점으로 활용해, 보수적이고 경직돼 보이는 은행 분위기를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바꾸고 고객을 위한 색다른 휴식 공간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은행이 단순한 여수신 기관을 뛰어넘어 토털 금융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면서 영업점은 상담창구로서 좀더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내야 한다"고 했다.3) 복합매장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1) 전문성과 성실함이 우선이다.각 아이템별로 성실하게, 전문성을 갖고 운영하고 그것을 강점으로 삼는 것이 최대의 전략. 여러개하면 하나만 하는 집보다 덜하겠지 라는 편견을 버리게 하라. 전문성에 대한 위협은 전문성으로 극복해야 한다. 성실함으로 노력과 시간,관리에 열심을 다하라. 제품 수가 적다고 불평하는 고객들은 과감히 포기하라. 전문성을 갖춘 핵심 아이템만이 성공의 길이다.2) 상호 관련성은 필수적이다.제품간이 되었든, 타겟 대상이 되었든, 아이템 사이의 상호 관련성은 복합매있다.
1. 세계 문화유산1) 창덕궁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 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1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쓰게된 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창덕궁은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으며, 창덕궁내 중요 문화재로 돈화문, 인정문, 인정전, 대조전 등이 지정되었으며,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2) 화성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축성되었다. 화성은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축성 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였으며,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이다. 또한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3) 불국사불국사는 서기 751년 신라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정받는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불국사내 주요 문화재로는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 등이 있으며,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4) 석굴암석굴암은 불국사와 같이 창건?완공되어,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경주 토함산 정상에 못 미친 깊숙한 곳에 동해를 향해 앉아 있는 석굴암은 완벽하고 빼어난 조각과 독창적 건축으로 전세계에 이름이 높다. 석굴암의 석굴은 백색의 화강암재를 사용하여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축조하고 그 내부 공간에는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총 39체의 불상들은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에서 완벽함을 가지고 있다.석굴암은 신라시대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 조영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5) 해인사 대장경판전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 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 판전에는 81,258장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글자 수는 무려 5천2백만자로 추정되는데 이들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 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팔만대장경은 불교의 삼장을 집대성하였기에 세계불교연구의 귀중한 문헌으로, 중국에도 역수입되고, 서구 선진국에도 전해져 세계불교 연구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로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태조 4년(1395)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향을 지냈고, 영녕전에는 매년 춘추와 섣달에 제향일을 따로 정하여 제례를 지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에 나타난 의례 절차, 음악, 무용 등은 중국의 고대문명을 바탕으로 형성된 하,은,주 시대의 의례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고대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지정,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7) 경주역사유적지구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유적, 왕경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여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된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8)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지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 훈민정음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조선 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이 그때까지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중국어의 표기를 위한 문자체계여서 대다수 백성들이 배워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여 세종 25년(1443)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다.한글은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이 책에서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 나타나는 이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는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2)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로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며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어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양의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은 그 역사기술에 있어 매우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기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151호로 지정,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3)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 함)은 백운화상이 75세였던 고려 공민왕 21(1372)년에 노안을 무릅쓰고, 선도(禪徒)들에게 선도(禪道)와 선관(禪觀)의 안목을 자각(自覺)케 하고자 함은 물론, 선풍(禪風)을 전등(傳燈)하여 법맥(法脈)을 계승케 하고자 저술한 것으로서, 그 제자들이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지금은 하권만 남아 프랑스에 소장되어있다.이 책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실용적인 활판 인쇄술은 동양 인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럽 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 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4) 승정원일기「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사료적 가치에 있어서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비변사등록과 같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료이며, 또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 자료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실록보다 오히려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음은 물론, 원본 1부밖에 없는 귀중한 자료로 국보 제 303호(1999.4.9)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세계 최대 및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3. 세계 무형유산1)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종묘제례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 제사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적이 있는 공신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으로, 사직과 더불어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다. 종묘 정전의 19개 신실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49위)가 모셔져 있으며, 영녕전 16실에는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34위)를 봉안 하고 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1호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2) 판소리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아니리(말), 너름새(몸짓)을 섞어가며 구연하는 솔로 오페라다. 판소리는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판소리는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로서 판소리를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서로의 생각을 조절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판소리는 우리 역사와.
머리말파이돈을 끝까지 읽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철학적 이론을 다룬 책을 읽어 본 것이 처음이어서 말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읽어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윤리시간에 배운 말들이 간간이 나오는 것이 반가울 정도였다. 책을 읽어 가면서, 그 이론들이 단순한 이론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논리적 증명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외워서 머리에 집어넣었던 그 이론들의 증명과정을 알았다면 더 이해가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너무 읽어나가기가 어려워서 읽으면서 메모를 하면서 읽었다. 그렇게 해서 이 대화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이해했다.본문1. 참된 인식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죽기를 원하지만 자살은 옳지 않다고 했다. 자살이 옳지 않은 이유는 첫째, 신들은 우리의 보호자요, 우리 인간은 그들의 소유물이며 신이 자신을 부를 때까지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에 케베스와 심미아스는 우리는 신의 소유물이라고 말한 것과 철학자는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이 엇갈린다고 반론한다.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는 육체를 신통치 않게 여기며, 그 영혼은 육체에서 피하여 홀로 있으려 한다고 말한다. `자체`에 대한 인식에서는 감각적 경험으로는 참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자체의 밝은 빛만으로 각개의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만이 `자체`를 가장 순수하게 인식할 수 있다 라고 증명을 내린다. 이 두 가지의 증명을 통해 철학자가 죽음을 원하는 이유를 증명해내는데 `영혼이 육체와 더불어 있는 동안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떠나서 영혼이 그 자체에로 돌아가야 사물들을 그 자체에서 볼 수 있다.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하는 자유를 죽음이라고 하고, 따라서 철학자란 늘 죽는 일의 실천에 몰두하며,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덜 무서워하는 자`라고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지혜에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이것(지혜)를 지님으로떤 다른 것 때문에 교환된 것이라면, 그러한 덕은 다만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한다. 즉 진실한 덕은 지혜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소크라테스가 말한 참된 인식에서 우선 인간이 주인인 신의 뜻에 거역해서 멋대로 죽어버리면 안 된다는 논리가 맞는 말 같긴 했는데 인간이 무슨 가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조가 죽을 때 우는 것이 주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뻐서 운다는 말이 재미있었다.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동물은 그 의미를 알고 오히려 기뻐한다니 거꾸로 된 것 같았다.또한 죽음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죽음이 진정한 절대지(知)의 세계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얻은 그 진리가 진실로 매력적인 것인지 의문이었다. 철학자의 입장에서 평생을 바쳐 알고자 했던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고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순간에는 좋겠지만 그 깨달음 뒤에는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남는 것이 없는데 영혼이 영원히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었고 오히려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불완전하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2. 영혼의 불멸케베스: (…)만일 영혼이 자기 자신을 고이 간직하여 당신이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 불행에서 벗어나 사후에도 존재할 수만 있다면, 소크라테스, 당신의 말씀이 옳다고 볼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요.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은 그대로 존속해 가며 어떤 힘과 지력을 계속하여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는, 허다한 논증과 증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a사후 영혼의 존재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그 반대의 것으로부터 생긴다.(아름다움과 추함, 옳음과 옳지 않음 등) 살아있는 것의 반대는 죽음이다. 산 것에서 나오는 것은 죽음이고, 죽은 것에서 나오는 것은 산 것이다. 따라서 산 사람이 죽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영혼은 저승과 같이 어디에선가 있다가 되살아 오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것이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나온다면,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것에서부터 생성되므로 삶은 반대되는 죽음으로부터 생성되며, 삶이 죽음으로부터 오려면 영혼은 사후에 존재한다는 증명이 무척 멋지게 생각되었고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사물에 반대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론이 대부분의 경우 맞는 것 같았는데 시간의 흐름은 한 방향밖에 없다. 시간의 흐름에 반대되는 것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다.b영혼 불멸의 또 다른 증거: 상기설(想起說)상기는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을 지각했을 때, 그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상기는 닮은 것에서 생길 수도 있고, 닮지 않은 것에서 생길 수도 있다. 닮은 것에서 상기하는 경우, 닮음에 대해 고찰한다. 닮음에 대해 고찰할 때, '같음 자체' 혹은 '절대적 같음'을 인식하고 있다. 같음 자체는 같은 것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같은 것들로부터 같음 자체를 인식하고 파악, 즉 상기할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감관으로 지각을 시작한다. 즉, 같은 것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같음 자체의 인식을 태어나기 전에 갖고 있다. 즉, 모든 '자체들'에 대한 지식을 태어나기 전에 획득했다. 상기는 본래 가지고 있던 지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영혼은 사람의 형상을 취하기 전에 지식을 얻었다. 영혼은 육체가 인간의 형상을 취하기 전에도 육체를 떠나서 있었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혼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다.영혼 불사에 대한 증거로서 소크라테스 드는 상기설에 대한 부분도 인상에 남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감관으로 지각을 시작하지만 그 지각을 인식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이 지식은 태어나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획득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상기는 본래 가지고 잇는 감관에서 얻어진 지각을 경험을 통해 인식으로 바 심미아스는, 영혼이 육체보다 더 아름답고 더 신적인 것이기는 하나 일종의 화음과 같은 것으로서 육체보다도 먼저 사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지? 한편 케베스는, 영혼이 육체보다 더 오래 간다는 것은 인정하나, 영혼이 여러 육체를 입고 쓰고 한 후에는 자신도 사멸하여, 마지막 육체를 자기 뒤에 남길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지. 그리고 이것이 다름 아닌 죽음으로서, 육체 속에서는 소멸하는 일이 쉴 새 없이 행해지고 있으므로, 죽음이란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영혼의 소멸이라고 말했지? 심미아스와 케베스여,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문제점들이 아닌가?a진리의 추구이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가 이론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 확실하게 옳다고 믿던 이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런 일이 거듭되면 어떠한 이론도 확실하지 않다고 믿게 된다.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판) 이러한 사람들은 허물을 자기 자신과 자기의 지능의 부족에 돌리지 않고 도리어 이론들에 돌리며, 진리를 떠나서 살게 된다. 확실한 이론은 없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영혼으로 하여금 어떤 이론에도 진정성이나 확실성이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진리'이다.이 대목에서는 정말 공감이 갔다. 흔히들 토론하는 것들을 보면 궤변론자들이 많다. 소피스트들처럼 말은 번지르르하고 맞는 것 같은데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순된 말뿐이다.b조화로서의 영혼에 대한 비판심미아스의 반론 : 영혼은 육체의 조화에 의한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케베스의 반론 : 영혼도 언젠가 사멸하지 않는가?영혼은 육체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에선가 있었다. 영혼은 인간이 육신을 취하기 이전에 존재했고, 동시에 그것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여러 성분들의 합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조화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나 요소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들을 따라가는 것이다. 조화의 본성은 그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되어 있는가에 달다거나, 덜 완전하게 영혼답다고 말할 수 없다. 영혼이 조화라고 주장한다면, 유덕한 영혼은 조화가 있고, 악한 영혼은 조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영혼에 정도의 차이가 없음을 인정하였으므로, 영혼이 조화라면, 조화의 정도의 차이도 없다. 영혼은 완전한 조화이므로, 어떠한 악덕도 절대 갖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이 조화라는 것은 옳지 않다.심미아스와 케베스의 반론과 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론 부분이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두 사람의 반론의 내용은 나도 역시 의문을 갖고 있는 부분이어서 그것에 대답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읽고 이해하려고 했지만 더 조화된 것도 아니고 덜 조화된 것도 아닌 것은 조화를 더 가지거나 덜 가질 수 없고 똑같은 정도의 조화를 가진다 는 문장에 이르러서는 정말 머리가 아팠다. 복잡한 논리적인 증명과정을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영혼이 육체에 반하고 통제할 수 있으므로 영혼은 육체의 조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c이데아論(←영혼 불멸의 근거)아름다움·선·큼 등등이 그 자체 독립적으로 실재한다.(← 영혼의 불멸을 증명하기 위한 대전제로 설정) 이데아 즉 관념적 내지 이상적 성질이 정말 존재하며, 다른 것들은 이것에 참여함으로써 그 명칭을 얻는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것은 어떤 면으로든 아름다움 자체에가 거기 있거나 혹은 아름다움 자체에 참여함으로써만 아름다운 것이 된다.) 무릇 어떤 반대 것들이 반대든 어디까지나 자기의 본성을 지키는 것이요, 결코 그 자신의 반대 것일 수도 없고 반대 것으로 될 수도 없다. 어떤 것이든 그 자신의 반대 것이 될 수는 없다. 반대는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또한 어떤 것이나 그 반대 것이 들어 있는 것에 접근할 때에는 이 반대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이데아 이론은 내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반대는 왜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영혼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것에 반대되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불사이고.
* 신분사회에 맞선 비운의 두 여인고려 왕조가 망하고 새로운 조선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면서 왕권강화와 민심을 모으기 위해 국가 이념으로 유교윤리를 내세우게 되면서 여인들은 오로지 순종과 절개만을 강요 받게된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유교 이념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개개인의 능력은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폐쇄적인 조선이란 사회에서 그 시대의 신분질서에 강력히 도전한 두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정난정과 장희빈이다. 이 두 여인를 말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악녀이다. 역사는 그들을 천인공노한 악녀로 규정짓는다. 그러나 두 여인 모두 자살이나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당쟁의 소용돌이에 희생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먼저 두 사람은 모두 서출이라는 출신신분으로 자신의 의지와 집념에 의해 각기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들은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으며 심지어 물건처럼 매매되는 신세를 저주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자신을 따라 천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들을 더욱 절망케 했다. 중국은 서얼을 그다지 차별하지 않는다는데 왜 조선만 유독 적서를 구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조선은 오직 양반 적자만을 위한 나라였다.우선 난정의 경우, 난정은 양반 적자 출신인 윤원형이 이런 의식이 강하지 않았기에 좋아했다. 게다가 그는 조선 사대부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불교를 신봉했다. 그의 이런 불교 신봉은 독실한 불교인 누이 문정왕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하게 되자 조선의 국시를 불교로 바꾸기로 결심하게 되고 그녀의 불교 중흥책을 앞장서 수행한 남성이 승려 보우라면 여성은 난정이었다. 문정왕후와 보우가 폐지되었던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키는 등 제도적인 측면에서 불교를 국시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면 난정은 불사중창이나 불교행사 등 생활적인 측면에서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난정의 깊은 불심은 문정왕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윤원형이 부인 김씨가 죽고, 윤원형의 공이 크다는 이유로 난정은 합법적인 정실 부인이 된다. 당시 윤원형은 종 1품의 의정부 좌찬성이었으므로 그녀도 단숨에 외명부 종 1품 정경부인이 된 것이다. 그녀의 자식들도 자연히 서출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엿한 적출이 되었다. 그러나 난정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명종 8년 10월에 좌찬성 윤원형이 영의정, 좌의정과 함께 서얼허통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게 되고, 여러 선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얼허통법을 통과된다. 난정은 세상을 저주하던 서출의 설움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명종의 묵인 아래 여러 대신들이 윤원형을 탄핵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 사유로 관비의 소생을 올려서 부인을 삼은 것 이었던 점으로 보아 난정에 대한 사대부들의 반감의 크기를 잘 보여준다.두 번째로 장희빈의 경우를 보면 옥정 역시 중인의 첩의 딸로 양반가의 여종출신에 중인의 첩이 된 어머니 윤씨의 신산스런 삶이 자신의 미래였다. 그녀는 이런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궁녀가 된다. 그녀가 궁녀가 된 것은 다른 여성들처럼 호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숙부가 남인의 당인이었던 이유로 남인의 후원으로 나인이 된 옥정은 그리 어렵지 않게 숙종을 만나게 된다. 숙종은 옥정에게 빠져들게 될지만 후궁에 봉해지기 전에 강제로 쫓겨난다. 2년의 기다림 끝에 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그 사이 중전 인현왕후 민씨가 들어오게 된다. 정식으로 후궁이 된 그녀는 남인의 계획대로 민씨와 대결하게된다. 이때 숙종이 명문가 출신인 민씨가 아니라 여종의 딸인 장씨를 더 총애하게 되고 남인과 서인간의 당쟁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장씨는 아들을 낳게되고 곧 원자로 책봉되자 서인의 반대는 극에 달하고 숙종은 기사환국 (서인을 내쫓고 남인을 등용)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나아가 민씨를 폐비시키고 장씨는 중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인 명문거족들과 맞서 거둔 승리였고, 서인의 영수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적으로 돌린 상대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쫓아낸 적이 있는 서인이었다. 남인이 역모로 고변하자 서인들도 남인들을 맞고변하였다. 이번에 숙종은 서인들의 손을 들어주며 이른바 갑술환국 (남인을 내쫓고 서인을 등용)로 기사환국과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중전 장씨는 별당으로 보내지고 폐비 민씨를 다시 불러들인다. 남인들이 쫓겨난 조정에서 후궁으로 격하된 장씨가 기댈곳은 아무데도 없었고, 민씨가 세상을 떠나자 서인들은 기사환국과 같은 일이 재발할까 두려워 민씨의 죽음은 장희빈의 저주 때문이라고 밀고한다. 숙종은 장씨를 희생양으로 삼기로하고 그녀가 중전을 한번도 문병하지 않고 신당을 설치해 저주했다고 비난하면서 자결을 명령했다. 여종의 딸로 신분제에 맞섰던 장씨는 당쟁을 이용해 중전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역시 당쟁 때문에 비참하게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비록 둘 여인 모두 정부인을 살인 교사했다는 혐의로 죽임을 당하긴 했지만 강력한 성리학적 질서에 얽매인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신분상승을 꾀하고 쟁취한 여인들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그들이 실제로 그런 사실들을 행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당시 사대부들은 그녀들을 성리학과 강상을 어지럽게한 만고의 죄인과 악녀로 그렸고 그 이미지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대부분의 조선여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시대의식을 보았고 그네들의 자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 중에 그들을 뽑은 이유이다. 모순의 진정한 극복이란 그 것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니라 그것과 맞서 이기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