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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죽은시인의 사회 감상문 평가A좋아요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감상문{과 목 명 : 교육사회학담당교수님 : 교수님제 출 일 : 2004년 11월 25일제 출 자 :{Dead Poets Society{감독: 피터 웨어주연: 로빈 윌리암스(키딩), 로버트 숀 레오나드(닐), 에단 호크(토드).{이 영화를 처음 본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재학시절 수업시간 중에 교실에서 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회상해 보려 하니 조금은 어려운 것 같아 인터넷으로 이 영화를 찾아 다운받아서 다시 보았다.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새로운 느낌, 그리고 전혀 기억에 없는 장면들과 그 때는 이해 못했던 부분들이 이해가 되고 느껴지는걸 보니 그만큼 나의 안목도, 이해력도 그만큼 성숙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제목만으로는 도저히 이 영화의 주제 혹은 내용을 짐작하기가 힘이 들 것이다. 나 역시 이 영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공포영화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고 어떤 사상과 관련된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었다.그리고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영화 속 학교의 분위기가 내가 졸업했던 대원 외국어고등학교 의 분위기와도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이 영화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을 하기 전에 이 영화를 내 나름대로 구성해 보았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 §1. 입 학 식-웰튼고등학교에의 입학식-각 학생들이 기숙사방을 배정 받고 서로 만남(닐, 찰리, 믹스, 토드, 녹스, 카메룬 등이 study group 결성함)-닐은 아버지로 인해 학생연감을 그만 두게 됨)2. 신학기 첫수업-화학, 라틴어, 수학 등 긴장되고 빡빡한 수업의 계속.-키팅의 기념전시관에서의 첫수업, 카르페 디엠을 말함.-녹스와 크리스의 만남 그리고 고민하는 녹스.-키팅의 두번째, 시에 대한 수업. 책을 찢어버림.3. 죽은 시인의 사회의 등장-동료 선생의 키팅에 대한 충고-아이들이 키팅에 연극에서 역할을 따냄, 추천서를 조작함-수업시간에 자작시를 낭독하는데 토드가 키팅의 도움으로 자작시를 만듦(토드의 약간의 변화)-동굴에서의 모임-녹스가 Party에 초대받고 Party에 감-토드의 생일. 받은 선물을 날려 버림-걷는 수업을 통해 자신의 개성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동굴에서의 모임. 여자가 새로 가입하고,찰리가 학교신문에 문제성 기사를 냄-노란교장에의한 채벌-키팅의 충고. 참다운 용기를 가질 것과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당부함6. 닐의 갈등-닐의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 승복하는 닐-닐과 키팅의 상담-녹스가 크리스에게 시를 읽어줌7. 한 여름밤의 꿈 연극 공연-닐은 키팅에게 거짓말을 하고 연극에 출연함-크리스가 녹스를 찾아오고 같이 연극공연에 감-연극공연, 닐의 명연기.-아버지에게 끌려가는 닐. 사관학교로 전학을 강요함8. 닐의 죽음-닐과 아버지의 대립, 하지만 닐은 곧 승복하고 만다.-닐의 자살.-슬퍼하는 동료들9.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해체-닐의 장례식, 노란교장의 경고 메세지.-카메룬의 배신. 학교는 키팅을 노리고 있다고 함-찰리의 퇴학 그리고 하나씩 불려가며 전향하는 아이들-토드의 사인10. 떠나는 키팅선생님-노란의 수업 도중 키팅이 들어옴-토드의 선봉으로 키팅에게 경의를 표하는 아이들이 영화는 50년대 말 미국의 한 기숙제 명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자유적 성향의 키팅선생님 이 새로 부임해오고 그의 자유적인 성향을 따르는 몇몇의 학생들이 죽은 시인의 사회란 비밀 클럽을 재건하여 키팅이 주길 원하는 그 자유주의적 가치를 습득해 나간다. 하지만 엄한 규율아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학교, 학부모와 갈등을 빚게 되고 급기야 한 회원의 자살로 그 책임을 키팅이 물게 되어 해직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그리고 떠나는 키팅에게 학생들은 그 보수적인 한 사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경의를 표하며 떠나는 키팅을 보낸다.먼저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번 살펴보면, 주인공 각 아이들의 가정은 거의 좋다고 볼 수 있다. 어른스럽고, 스마 그는 교칙이나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혹은 양친의 과잉기대에 지쳐있는 아이들에게, 더욱 더 자신을 해방시키도록 교육해 나간다. 책을 찢어버리기도하고 시를 공부하는 것이 아닌, 시를 느끼게끔 교육한다. 또, 아이들을 책상 위에 서게 해 위치를 조금 바꿈으로 세계가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를 보여줌으로 자기변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려하기도 하는 그런 인물로 등장한다.그리고 시대설정은 아직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대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 곧바로 불량하다 라는 딱지가 붙게 되어있다. 이 시대에는 교사와 아버지가 절대적 존재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때로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러한 특수한 환경, 특수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한 사람의 키팅이라는 이성적인 교사를 만남으로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는 기쁨에 눈 떠가는 성장의 이야기, 아이들이 아버지나 학교라는 어떤 억압적이고, 획일화를 원하는 인간의 자유로움이 무시되는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 그 어른들의 언어가 아닌 바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기쁨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자유에 대한 동경은 어느새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뛰어 넘어와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이 영화를 보면 긴 하나의 영화가 꼭 몇 회분의 일일 연속극처럼 키팅의 수업과 각 학생들의 공동생활, 개별적 생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져 있다.처음 입학식이 치러지고 두번째 이야기는 키팅의 첫 수업, 여기서 이 영화 전체에의 내용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말이 등장한다. 카르페 디엠 . 라틴어로 오늘을 즐기라, 즉 현실에 충실해라 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키팅은 이미 죽어 없어졌을 사람들의 사진 앞에서 이렇게 역설한다. 매일 매일을 포착하라, 어의 인생을 비상한 것으로 만들라. 여기서 명문대 진학과 출세만을 위해, 즉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해야 한다는 아이들의 생각, 가치관과 카르페 디엠 죽 현실에 충실하라는 키팅의 가치책을 찢으라 할 때 자를 대고 찢는 장면 등에서 자기의 의지대로 하지 않고 남의 눈치를 봐서 행동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키팅의 가치관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겉을 맴돌다가 갈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케끔 해준다. 그리고 토드는 대사가운데서 아주 나약하고 연약함으로, 닐은 아버지와의 대화 중에서 그의 성격, 상황, 갈등 등을 드러내게 된다.처음 키팅에의해 던져진 그 생소하기 짝이 없는 그 자유함으로 인해 그들은 급기야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이미 죽은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동경과 두려움에 다들 떨었을 모임. 키팅이 이 모임의 창시자였다.-를 재건하고 밤마다 학교를 빠져나가 산 속 어딘가의 한 동굴에서 회합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이 동굴 안에서만은 학교에서 갖지 못한 자유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웰튼 고등학교와 이 동굴은 뚜렷이 대조시켜져서 획일과 자유함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고자하는 이 자유함은 너무나 불안정한 것으로 곧 없어질 자유이었다. 꼭 잠을 자며 꿈을 꾸듯이...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학교를 빠져 나갈 때의 장면은 안개 낀 뿌연 배경이다. 혹 중간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꿈에 대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안개 속으로 그들의 모습이 거의 다 사라지고 없어질 때까지 카메라로 잡는다. 결국 그들의 자유는 이 처럼 불안정하여 곧 없어질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결국 영화 종반부에서 키팅이 퇴직을 당하여 그들의 꿈, 자유로움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키팅선생님은 어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자유로움을 주려 했을까. 영화 속의 키팅의 수업방식을 통해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현 우리의 교육의 모순과도 너무나 흡사하여 영화에 빠져들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우선 그는 획일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교육에 반기를 들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라는 프리차드 박사의 그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사고를 요구하는 교과서의 그 부분을 과감히 찢도록 아이들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찢어 버린다. 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각각 자기의 자유를 소중히 하라는 메세지가 담긴 듯하였다.이러한 수업들을 통해 아이들은 이제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 간다, 어른스러운 상류사회의 도련님 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라는 것을 느끼며 거기에 접근해 간다. 태어나서 부모와 교사의 말만을 그대로 받아들여온 어른스러운 소년들이 처음으로 압도적인 자유를 눈 앞에 두고 당황하며, 동요하고, 불안해 하면서 그 힘 쪽으로 접근해 간다. 반항 같은 건 생각도해본 적이 없었던 심약한 우등생들이 처음으로 자기주장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 이다. 영화전체의 분위기를 하나의 고풍스럽고 우아하게 돌아가게 윤활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시라는 것은 자신만의 언어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들에게 사색의 자유함을 주기엔 충분한 도구였다. 토드는 이 시를 통해 지금까지 폐쇄되어 있던 마음 석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아 시 를 쓰게 되며 그 자기 발견의 모습에 온 학급 학생이 공감하고 큰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닐은 시가 아닌 연극으로 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한 여름밤의 꿈 의 팩 역할을 맡으며 그 자유함을 느낀다.닐은 무대에서 지유롭게 팩을 연기한다. 객석에서 감동의 박수가 일어난다. 아버지도 보러와 있었다. 여기서 부자지간의 포옹으로 모든 이제까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하면 오산이다. 영화 Sister Act 2에서 처럼 그렇게 기성세대가 그 아이의 행동에 동의 하지 않았다. 곧 이어지는 아버지의 분노, 이는 닐의 절망적인 자살로 이어지고 또 이것은 키팅의 학교 추방으로, 결국 자유를 향한 싸움은 좌절되고 보수주의는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보수주의에의 충성을 다짐하는 과정에서 굴욕적인 전향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그 억압적인 전향은 그 아이들을 무겁게 한다. 이 영화가 감동적이라면 이 전향의 아픔, 자유를 거의 얻는 듯하다가 급반전되어오는 그 아픔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한다.
    독후감/창작| 2004.11.08| 7페이지| 1,000원| 조회(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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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학개론] 법과 도덕의 구별
    [법과도덕의 구별문제]Ⅰ. 법과도덕의 구별문제 - 법과 도덕의 구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론적으로 많은 학설 이 제기되어 왔다. 예링은 이 문제를 법철학에 있어서의 케이프 혼(Cape Horn) 이라 하여 그 어려움을 지적하였다.1. 구별의 연혁가. 18세기 - 자연법이 지배하던 18세기 말 까지는 대체로 법과 도덕 사이의 깊은 관 련을 인정하고 법은 도덕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였다.나. 토마지우스 - 토마지우스는 도덕과 선과 법적 정의를 대립시켜 윤리는 선에 관한 것이고, 법은 정의에 관한 것이므로 정의는 선에 속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법과 도덕을 구별하였다.다. 칸트 - 토마지우스의 사상을 칸트가 이어받아 더욱 체계화시켰다. 칸트는 법의 외 면적인 합법성과 도덕의 내면적인 도덕성과의 대림에 의하여 법과 도덕을 구별하여 법 도덕의 이원론이 성립되었다.라. 법실증주의 - 법실증주의에서는 법의 개념을 실정법에 국한하여 자연법의 존재를 부정하고 법과 도덕과의 분리를 선언하였다.마. 신이상주의 - 19세기말 이르러 실정법만능주의 또는 개념법학에 회의를 느낀 신 이상주의 자들은 근세 이후 법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법실증주의적 관 념에서 벗어나 법과 도덕의 재결합을 시도하였다.2. 구별 부인론과 구별 시인론가. 구별 부인론 - 일반적으로 자연법론자는 자연법은 실정법을 초월한 영구불변의 인 류의 대도 라고 보기 때문에 법과 도덕의 구별을 부인한다. 현실계 의 실정법은 현상계의 자연법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자연법론자의 입 장에서 법은 자연법을 뜻하고, 자연법은 도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본 다. 그러므로 자연법론자는 법과 도덕의 구별을 부인한다.나. 구별 시인론 - 현실의 인간계에 존재하는 실정법만을 법으로 보고 현상계에 존재하 는 자연법의존재를 부정하는 법실증주의론자는 법과 도덕을 엄격히 구별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 일반적인 견해 - 법은 사회에 있어서 정의의 구현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강행규범으로 서 사회성을 강조하나, 도덕은 사회의 공동선의 구현을 위하여 개인의 인격성을 중시하는 사회규범으로서 양자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 적이다.Ⅱ. 법과 도덕의 구별 기준 - 법과 도덕의 구별을 인정하는 시인론의 입장에서 법과 도덕은 무엇을 표준으로 구별할 것인가에 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대립 되어 왔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1. 규범의 성립근거가. 주장 - 법은 경험적 사실 에 근거하여 성립하는 것이며. 그 때문에 법은 현실성을 갖는 것인데 반하여, 도덕은 현실의 경험을 초월한 선험적 이성 에 그 성 립의 근거를 둔 것이며, 그 때문에 도덕은 타당성을 갖는다고 하여 규범의 성립 근거를 기준으로 법과 도덕을 구별하려는 견해가 있다.나. 한계 - 도덕도 사회현실의 반영이란 점에서 경험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구별표 준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2. 규범의 규율대상가. 주장 - 법은 현실계의 평균인 을 그 규율대상으로 하고 있는 규범인데 반하여, 도 덕은 현실의 평균인을 넘어 현상계의 이상인 을 상정하고 그를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는 규범이라고 하여 법과 도덕을 규범의 규율대상을 표준으로 구별하 려는 견해가 있다.나. 한계 - 우리나라 교육법이 홍익인간 을 이상으로 하듯 법도 이상인을 규율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있고, 또 도덕도 교통도덕과 같이 평균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가 있으므로 이 구별표준도 절대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3. 규범의 형식가. 주장 - 법은 헌법, 법률, 명령, 등의 형식으로 문자에 의해 표시 되는 규범인데 반 하여, 도덕은 헌법, 법률, 명령 등의 실정적 규범유형의 형식으로 문자에 의해 표시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여 규범의 형식을 표준으로 법과 도덕을 구별하려는 주장이 있다.나. 한계 - 법도 판례법 관습법처럼 일정한 형식으로 문자에 의해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또 도덕도 삼강오윤, 국민교육헌장처럼 문자에 의해 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 구별표준도 어떤 경우에도 타당한 것은 아니다.4. 규범의 규율사항가. 주장 - 법은 절도행위, 살인행위, 강간행위 등 인간의 외면적 행위 를 규율하는데 반하여, 도덕은 절도하려는 의사, 살인하려는 의사, 강간하려는 의사 등 인간 의 외면적 행위에 앞서 내면적 의사 를 규율한다고 하여 법과 도덕을 구별 하려는 견해가 있다.나. 한계 - 법도 선의, 악의, 고의, 과실과 같은 내면적 의사를 규율하는 경우가 적지 않 으며, 또 도덕도 효도처럼 외면적 행위로 표시됨을 요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표준도 법과 도덕의 절대적 구별표준은 되지 못한다.5. 규범의 성질가. 주장 - 법은 외부의 강요에 의하여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타율성에 그 실효성의 연원을 두고 있는 규범인데 반하여, 도덕은 외부의 강제와 관계없이 스스로 자각하여 실천하는 자율성에 그 실효성의 연원을 두는 것을 특질로 하는 규 범이라고 하여 규범의 성질을 표준으로 구별하려는 주장이 있다.나. 한계 - 실제에 있어서 도덕도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므로 도덕도 타율성을 갖는 것 이며. 법도 스스로 지키려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 견해도 언제나 타당한 것은 되지 못한다.6. 규범의 규율측면가. 주장 - 법은 채권, 채무 등과 같이 권리, 의무의 양 측면을 규율하는 양면성 을 갖 는 규범인데 반하여, 도덕은 효도하라 등의 의무의 측면만을 규율하는 일면 성 을 갖는다고 하여 법과 도덕을 규범의 규율측면에서 구별하려는 견해가 있 다.나. 한계 - 법에 있어서도 형성권처럼 권리만 있고 이에 대응하는 의무가 없는 경우도 있고, 도덕도 의무만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에 대한 권리를 갖는 면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이 견해도 보편타당한 것은 되지 못한다.
    법학| 2003.12.01| 3페이지| 1,000원| 조회(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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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역사편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말은 우리는 흔히 들어왔다. 정말 이 말처럼 일본을 우리나라에 맞게 잘 표현한 문장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그들에게 부모와 같은 나라로서 문화를 전파해주고 지식을 전해주었던 시대를 지나 그들의 군화 밑에서 무릎 꿇어야 했던 시대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는 때로는 부모와 자식처럼 때로는 동반자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함께 역사를 걸어왔다.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라인 북한과 일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7~9시간은 가야 방문 할 수 있는 나라에 대해 더욱 많이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가 말해준다. 일본만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이 심하게 훼손되었던 근대기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분에 넘치고 억울하기만 하다. 보이지 않는 굴욕감에 우리는 일본의 역사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일본에 관련된 서적은 늘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 사회의 장점을 서술한 책들은 으레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일본인들의 충고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2년 전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일본인이 쓴 책이었다. 그 제목만으로도 이점을 충분한 어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굴욕 외교’의 파문과 JP 의 망언,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잘 말해 준다.그렇다면 서점 아동코너에나 전시되어있는 새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한 아이들처럼 객관적인 시점에서 일본의 역사를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생각한다.그 나라의 역사는 그 나라의 언어와 함께 발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 일본의 언어부터 일본역사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자.? 일본 역사의 특징일본은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 계통이며 우리민족과 같은 몽골리언 계통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뿌리를 가진 우리와 아주 가까운 민족이경부터 쌀농사가 시작됨으로써 신석기 시대가 끝나고, 야요이라는 조개 무덤에서 쌀 항아리가 발견됨으로써 기원전 3세기경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일본은 제대로 된 국가가 없는 미개한 시대였다.기원전 3세기~기원후3세기를 야요이 시대라 한다. 일본에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1세기였다. 이때 아주 작은 나라들이 흩어져 있던 일본에서는 3세기말 작은 나라 여럿이 연합하여 야마타오(야마토)란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게 된다.일본은 상장하는 최초의 국가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은 야마타이 이었으나 강력한 권력을 지닌 첫 고대국가는 야마토 정권이었다. 야마토 정권은 4C~7C까지 군사력을 바탕으로 놀라운 발전을 했다. 야마토 정권에 이르러서야 일본의 존재가 동북아시아 지방에 뚜렷하게 되었고, 고대국가의 틀이 확실히 잡혀지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오키미와 고조쿠로 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5C~6C에는 외국의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다. 특히 백제가 많은 문화를 야마토에 전해주었는데, 538년 백제를 통해 불교가 전래되었고,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주었다. 일본은 받아들인 문화에 자신의 것을 덧붙여 일본의 고유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데, 야마토의 건설부터 나라들이 제대로 잡히기까지의 초기시대를 ‘아스카 시대’라고 한다.일본에서는 건국신화가 아주 상당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는데 신화는 일본민족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며 역사 전개에 항상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고 덴노를 이해 못하면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고지키에 건국신화가 나오는데 덴노가 하늘의 자손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인간인 덴노를 신과 같은 존재로 신성화하다 보니 “인간이면서 신”이라는 모순이 생기게 되고 이것을 합리화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잡다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만들어졌다. 이것은 곧 덴노를 신격화하게 되고 일본의 신화와 인간신 덴노를 결합한 일본 고유의 종교가 생겼고, 이것이 바기고 있다.고대국가 야마토의 틀이 완성되는 아스카시대는 일본에서 신으로까지 숭상되는 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쇼토쿠 다이시다”이다.당시 야마토는 지방에 (고조쿠)호족의 두 세도 가문이 중앙정부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불교 문제로 시로 국사를 일으켜 격돌했으며, 결국에 불교 수용을 찬성했던 소가 가문이 승리했다. 이때 벌였던 전쟁이 일본역사에 처음이자 마지막 종교 전쟁이었다.그러나 또 다시 덴노파와 소가파로 나눈어지고 소가노가 보낸 자객에 의해 덴노를 암살시켰으며, 소가노 우마코는 자신의 딸인 스이코를 일본 최초의 덴노 자리에 앉힌다.스이코는 곧 쇼토쿠 태자에게 정권을 맡기게 되었고, 이로써 쇼토쿠 태자는 일본 역사상 첫 셋쇼¹로 나서게 된다. 그는 화려한 아스카 문화의 꽃을 피운 인물이다.그리고 17개조의 헌법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나오는 ‘와’의 강조가 일본의 국시이자 국가의 이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의 1천 4백년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되었고, 일본 국민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쇼토쿠 태자는 외국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견수사를 보내 모든 것을 배워오게 했다.7 세기 초부터 일본을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고, 남의 것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이토코토리’정신을 이미 쇼토쿠 태자가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유불 신을 배워 좋은걸 합치는 ‘습합’을 주장함으로써 일본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종교문제로 분쟁을 겪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농경시대에는 부와 권력이 모두 땅에서 나왔기에 막대한 땅과 농민을 소유한 고조쿠들이 있어서 일본역사는 대부분 중앙정부와 고조쿠들의 세력 겨루기의 연속이었다. 쇼투쿠 태자가 죽은 뒤에 소가 가문의 세도가 심해졌다. 그러자 덴노는 대신 ‘나가토이노 가마타리’와 공모해 소가 가문을 제거하고 나카토이에게 ‘후지와하’라는 성을 하사하지만 후자와하가문은 또 다른 세도 가문으로 떠오르게 된다.소가 세력을 제거한 나카노오는 개혁의 핵심은 토지의 국가소유임을쿠라 바쿠후가 설치되어 실질적인 정부가 되기까지 4백년을 헤이안 시대라 한다. 헤이안쿄로 도읍을 옮긴 간무 덴노는 스스로 율령을 파괴하여 국가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뒷날 군사정권인 바쿠후가 등장하는 구실을 주게 된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의 세력이 날로 커짐에 따라 덴노를 대신해서 정사를 보는 셋쇼나 간바쿠, 셋칸이 되었는데, 대표적 인물이 ‘후지와라 요사후’이다.황족, 귀족, 고조쿠들이 소유한 영지와 절을 ‘장원’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수확되는 농산물을 거두어들이는 봉건제도를 시행하였다. 한편으로는 썩어 들어가는 귀족정권을 밀어내려는 사무라이(부시) 계급이 신흥 계급으로 싹트고 있었다.헤이안 시대 4백년간의 귀족시대는 반란을 평정한 무사 단의 세력은 바쿠후 부시정권으로 들어서게 됨으로서 더욱 강성해진다. 부시계급은 에도 시대에 신분을 제도적으로 계급화 하게되어 바야흐로 부시 계급에 의한 군사정부 시대의 막을 열게된다. 이 시대에는 덴노와 조우고의 세력다툼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결국엔 ‘호켄의 난’과 ‘헤이지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부시 출신으로 처음으로 ‘기요모리’는 수상자리에 앉게 된다. 기요모리의 지나친 권력독점은 반헤이지 세력이 일어나는데 그 중심인물이 ‘미나모토 요리토모’이다.결국 헤이지 가문은 멸망하였고,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쇼군의 됨으로서 정식으로 ‘바쿠후 시대’가 막을 열게 되었다. 그는 바쿠후를 설치함으로서 한 나라에 두 정부가 생기게 되었다. 즉, 덴노는 정치에서 완전히 격리되고 종교적 의미만을 갖도록 제한하였고, 사실상 쇼군이 덴노의 권한을 누리게 되었다.실질적인 일본의 최고통치자로 군림하는 2원 정치 체제로 돌입한 것이다. 쇼군인 덴노를 그대로 둔 것은 덴노가 일본의 정통성 그 자체 이었기 때문이다. 덴노의 부정은 바로 일본에 대한 부정이고, 일본민족,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곧 덴노를 상징으로 일본민족이 하나의 민족으로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본은 675년 간 기나긴 된다. 다카우지는 지방의 일들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 충성스러운 심복들을 지방에 파견했는데, 이들을 ‘다이묘’라 부른다.쇼군들의 지나친 무거운 세금, 고리대금으로 시달리던 농민들은 최초의 농민봉기(도이키)가 일어나게 되어 쇼군들의 권력이 땅에 떨어진다. 이때 다이묘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력이 커지게 되어 강성한 힘을 바탕으로 쇼군을 밀어내게 되고 권위보다 실력이 지배하는 1백년 가까운 ‘센고쿠’시대가 열리게 된다.이때의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시대는 ‘오닌의 난’을 막으로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각 지방에서는 중앙권력의 지배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지배하는 지방권력이 나타나게되는데 이들을 ‘센고쿠 다이묘’라고 한다. 그들의 최대 관심은 평화와 현상유지였다.그러나 이런 센고쿠 다이묘 가운데 일본을 통일하려는 ‘오다 노부나가’가 있었다.일본역사에서는 센코쿠시대라고 부르는 세 사람의 호걸이 등장한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이들 세 사람이다.노부나가가 통일 일본이라는 집을 지을 토를 마련한 군인, 전략가라면 히데요시는 집을 지을 터를 닦은 인물로 전시 수상재목이었던데 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위에 일본 통일이라는 집을 완성한 인물로 평화시의 수상 감으로 비유된다.불같은 성격의 오다, 지략에 능한 도요토미, 대기만성형의 도쿠가와였다. 오다는 통일을 앞두고 혼노지에서 부하장수에게 배신을 당하고 만다. 그 다음 간바쿠에 오른 히데요시는 전국의 토지를 측량 고쿠다가를 실시하고, 가타나가리, 히토바라이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1592년 조선을 침략하였다.히데요시가 병으로 죽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에 바쿠후를 세워 그 지역은 상업이 발달하게 된다. 오늘의 일본의 기본 틀인 ‘에도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는 3가 원칙을 진행했다. 그리고 바쿠후 타도, 덴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권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등장한다.바쿠후들은 평등을 주장하는 크리스트교를 금지하고 세계의 변화에 등을 돌리고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쇄국을 하였는데, 훗날 다.
    인문/어학| 2003.06.15| 7페이지| 1,000원| 조회(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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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역사
    중국의 근 현대사 2301594강 승 희.Ⅰ. 아편전쟁아편전쟁은 중국의 역사를 나눌때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사건이다. 1840년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중국은 근대시대로 접어든다.중국은 토지가 광대하고 자원이 풍부하며 인구가 많았으니 당연히 서구 열강들이 탐내는 대상이 되었다.19세기 초에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밀매하여 중국의 많은 은을 국외로 유출시킴으로써 중국에 막대한 재난을 안겨 주었다. 1839년 청 정부에서는 아편을 금지시키기 위하여 임칙서(林則徐, 1785 1850)를 광동(廣東)으로 파견하여 강력한 금연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1840년 영국정부에서는 아편무역을 비호하기 위하여 서슴없이 무력을 동원하여 중국을 공격하였으며, 이에 제1차 아편전쟁이 발발하였다. 중국의 민중과 군대는 영국군에게 강경하게 대항했지만, 청 정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하여 결국은 침략자들에게 굴복하고, 1842년에 영국정부와 "남경조약(南京條約)"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내용에는 영국에 대한 대량 보상, 홍콩의 영토 할양, 광주(廣州) 등 무역항 개방 등이 포함되었다.comment 남경조약은 중국이 맺은 첫 번째 불평등 조약이였다. 이 일로 중국은 미국과 프랑스와도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됨으로써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국력을 키우는 것이 곧 주권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Ⅱ. 태평천국운동1840년에 있었던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은 수많은 배상금을 지불하여야 하였고 인민들의 재산을 착취했다. 이에 수많은 인민들은 압박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반항을 시작하여 각지에서 농민봉기가 끊이지 않았으며, 결국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1차 농민혁명운동인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革命, 1851~1864)이 발발하였다.태평천국은 토지균등을 원칙으로 삼아 "천조전묘제도(天朝田畝制度)"를 공포하고, 남녀평등 등의 많은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동시에 전통 유가사상에 대해서는 맹렬한 비판을 가했다.태평천국운동의 영향으로 청왕조가 통치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자, 이때를 틈다다.제2차 아편전쟁 이후 청 정부는 주권을 상실하여 국가적 치욕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일시적인 안일을 위해서 외세와 결탁하여 국민의 반항을 진압하였다. 1864년 국내외 연합세력의 협공 속에서 14년간에 걸친 태평천국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은 중국의 봉건 통치계급과 서양 열강 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던 민족운동이었다.comment 우리나라도 그러했듯이 한 국가가 패망할때는 항상 농민들의 봉기가 있어왔다. 아편전쟁이후 중국 정부와 관료들이 정신을 차리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지 못했던 것이 원이이었다고 생각한다.Ⅲ. 양무운동1861년 신유정변에 의해 서태후, 공친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권이 성립된 이후, 1894년 청일 전쟁까지를 일반적으로 양무운동(洋務運動)시기라 부른다. 이 운동은 태평천국을 비롯한 5,60년대의 여러 민중운동과 제 2차 아편전쟁으로 내외의 위기에 직면한 청조가 자강과 부강을 표방하여 강력한 군사력과 각종 근대 산업의 육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대내적으로 민중반란을 진압하고 동요된 청조의 지배체제를 어느 정도 안정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중화제국질서를 재건하려는 시도는 1884년의 청불전쟁과 1894년의 청일전쟁의 패배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며 이후 중국은 서구제국주의 열강의 반식민지와 다름없는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중국근대사의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양무운동에 대한 평가는 그러기 때문에 그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에 초점이 맞추어진다.comment 1850~ 60 년대의 태평천국과 제 2차 아편전쟁으로 초래된 내외의 위기를 청조가 극복하는데 양무운동이 기여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양무운동의 실패의 원인은 이 운동의 주체가 봉건관료인 지방관료 세력 이였다는 한계 때문인 것 같다.Ⅳ. 청일전쟁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 메이지유신)"을 거친 후에 발전을 이룩하게 된 자본주의 국가로써 중국에 대하여 매우 큰 야심을 품고 있었다. 1894년 마침내 중국에 대하여 중일 갑오전쟁(中日甲午戰爭)을 일으(自由通船)을 설립하는 특권을 획득하였다.청일 전쟁은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이 일본이 중국에서 엄청난 이익을 차지한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러한 이익을 확보하고자 침략을 시도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중국의 운명은 더욱 악화되어 망국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comment 정부의 무능함과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편전쟁이후 계속되는 전쟁과 수탈과 주권상실, 19세기는 그야말로 중국에게 있어서는 수난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Ⅴ. 백일유신1894년 청일전쟁 이후 중국은 무력하게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분할되어야만 했다. 심각한 민족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강유위 담사동 양계초를 대표로 하는 유신파 들은 일본의 "명치유신"과 같은 변법유신운동을 일으켜 국가를 부흥시키고 중국의 운명을 구하고자 하였다.유신파들은 전통적인 군주전제 대신에 입헌군주제를 실시할 것과, 유가경전의 반복을 내용으로 하는 팔고문 시험 제도를 폐지하고 서방의 정치사회학설과 자연과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또 학교 공장 철도 광산 상업을 부흥시켜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것 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여러 차례의 상소를 올려 자신들의 주장을 조정에 진술하였다.광서황제의 지지를 받았던 변볍이 실패로 끝나기까지의 기간이 100일 이였기 때문에 이를 백일 유신이라 일컫는다.comment 안타까운 사건이 아닌가 싶다. 서양 세력에 밀려 반식민지적 국가가된 중국이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 마치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이 된다.Ⅵ. 의화단운동제국주의가 중국을 분할하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1900년에 중국의 농민들은 다시 장렬한 반제애국 운동인 의화단운동을 일으켰다.의화단운동은 먼저 산동에서 흥기하여 하북 북경 천진 산서 하남 내몽고 동북 등의 지역으로 신속히 확대되었다. 그들은 "부청멸양: 청나라를 도와 서양세력을 물리친다)"의 구호를 제창하였다. "부청멸양"이란 사실상 국가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반격하였다.그 결과 1901년 9월 청 정부는 외국 침략자들에게 투항하여 그들과 "신축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청 정부는 또 한번의 굴욕적이고 추악한 매국행위를 한 것이다. 의화단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은 중국 국민의 영웅적인 기개를 드러낸 것으로, 제국주의의 중국 분할 야욕에 대하여 심각한 타격을 가한 민족운동이었다.comment 국민들만도 못한 정부와 관리들, 가장 지접적인 피해는 국민들이 받아야만 하는 이때의 현실들이 너무나도 암울하다. 하나의 거대한 문명이 너무나도 작아 보인다.Ⅶ. 변법운동과 입헌운동변법과 입헌 운동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고 있었던 혁명운동과 대비되는 청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서구식 정치제도의 도입을 목표로 한 개혁운동이었다. 종적으로 보면 양무운동을 잇는 후반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대체로 청일전쟁이 끝난 1890년대 중반부터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10여년에 해당된다. 종래 이들 개혁운동에 대해서는 혁명운동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학계의 관심이 소흘한 편이었다. 중국 외의 학계에서는 그런대로 개혁운동의 의의에 대하여 나름대로 긍정적인 시각에서 그에 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변법이나 입헌 운동은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적인 중국 영토 분할 점령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촉발되어 부강을 목표로 한 위로부터의 개혁운동이었다. 부강을 실현할 정치적 목표로는 입헌군주제라는 서구식 정체의 도입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그런데 이들 개혁운동의 주체는 대체로 신사층 이었으므로 개혁론의 근거는 전통의 재해석에서 구하였고 또한 개혁추진의 동기로는 동요되고있는 중화제국적 질서 속에서 개혁을 통해 전통적으로 누리고 있던 기득권, 곧 신권을 보위 내지 강화하려는 의도가 상당히 작용하였다.comment 이 시기에 중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개혁, 변화였다. 이에 신지식인들은 개혁운동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수적인 세력들에 의해 실패로 끝나고 마는 당대 현실이 안타깝다.Ⅷ. 신해혁명20세기에 들어선손중산은 중국의 위대한 자산계급 혁명가이다. 1911년 10월 10일, 호북 무창에서 일어난 군사봉기가 성공하자 혁명의 열기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전국을 휩쓸었다. 1912년 설날,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남경에 성립되고 손중산은 임시 대통령을 맡음으로써 마침내 신해혁명은 성공을 거두었다.신해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이민족에 의해 건립된 청왕조의 160여년 통치를 무너뜨려 2천여년에 걸친 중국의 봉건군주제를 종결시키고 중화민국을 건립하였다는 것이다.comment 계속된 개혁의 시도가 결국 그 성과를 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로서 중국은 봉건군주제를 종결시켰다니 이 사건이 여느 사건보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을까...Ⅸ. 5.4 운동1919년 5월 4일 북경에서 일어난 애국적 학생운동으로서의 5.4 운동은 결코 큰 규모로 시작된 운동은 아니었으나 중국 근.현대사상 획기적인 사건 내지 운동으로 발전하여 일반적으로 중국 현대사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의 주도세력이나 전개양상 그리고 그 계승 형태의 다양성 때문에 5.4 운동의 범위 및 시기 그 역사적 성격이나 의의에 관한 여러 연구자의 견해가 합치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애국적 민중 운동으로서의 5.4 운동은 사상적 사회적 개혁을 통해 신 중국을 건설하려는 근대화 운동으로서의 신문화 운동을 복합적 현상으로 보고 5.4 운동의 기본적 성격을 지적 혁명으로 규정하는 입장도 있다. 후에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공산주의 지식인의 5.4 운동에서의 역할을 입증하려는 신민주주의론에 입각한 중국학계의 5.4 신문화운동의 강조이다.comment 이미 신혜혁명을 통해 봉건주의가 막을 내린 상황에서 5.4 운동은 어쩌면 과거의 운동보다는 수월하였을 것 같다. 이 운동을 현대사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운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것 같다.Ⅹ. 중국공산당 창당5.4운동에 생긴 노동자의 자각과 대중조직의 경험은 중국 공산당 설립의 이론적 전제가 되었다. 그리고 민중의 자발적 투쟁과 전국적 민
    사회과학| 2003.06.15| 8페이지| 1,000원| 조회(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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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한강과 영화 박하사탕 비교
    당신의 삶은 아름다운가.목 차서론: 작품 선택 배경본론:본론 ① 1979년 가을 소풍, 유일민 유일표 형제의 상경본론 ② 1980년 5월 면회, 연좌제라는 이름의 족쇄본론 ③ 1984년 가을 기도, 정권 부패본론 ④ 1987년 4월 고백, 임채옥과 유일민본론 ⑤ 1994년 여름 삶은 아름답다, 꿈★은 이루어진다.본론 ⑥ 1999년 봄 사진기 사흘전, 남한강과 북한강은 만난다.본론 ⑦ 1999년 봄 야유회, 그들...결론 : 박하사탕과 한강서론작년 12월부터 읽기 시작한 ‘한강’의 마지막 10권을 다 읽어갈 무렵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여 레포트를 작성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영화와 소설, 생각해 보면 이 둘의 매력은 각각 다르면서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예술분야라는 생각을 하며 적당한 영화와 소설을 생각해 보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나온 영화가 많았지만 나는 같은 맥락의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기 보다는 비슷한 이미지의 영화와 소설을 비교 분석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제 막 다 읽어가는 조정래의 ‘한강’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었다.해방직후 한국의 현대사를 그린 소설 ‘한강’은 애써 덮으려고만 하는 우리나라의 최근의 역사를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이 순전히 박정희의 리더쉽에 의한 것이라는 착각을 깨뜨려 준다. 그리고 우리 민중은 8.15때 못한 해방을 4.19에 완성하려고 다시금 일어섰었다는 것을 그려준다. 그리고 RMx에서 광주항쟁으로 아직 RMx나지 않은 해방 운동을 그리며 끝마치고 있다.제 4회 부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 작품으로 선정되어 그 해 10월 14일 국내 처음으로 공개된 ‘박하사탕’은 한마디로 웹진영화 20호‘경이로운 영화’다. 칭찬에 인색한 우리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낸 이 영화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를 거쳐 IMF 시대에 이르기 까지 시간을 거스르는 독특한 영상 언어로 표출해 내고 있다.두 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손꼽부터 그려지기 시작한다. 두 작품의 시작부분 이미지가 순수성에 기반을 둔 주인공의 삶이라는 점에서 공통되는 것을 알 수 있다.본론 ② 1980년 5월 면회, 연좌제라는 이름의 족쇄‘박하사탕’의 여섯 번째 단락인 ‘1980년 5월 면회’는 영호의 원죄가 된 80년 광주를 묘사함으로써 관객의 궁금증에 답하고 있다. 아무런 상황 설명 없이 비상을 맞은 부대의 졸병인 김영호는 총격전 속에서 발에 부상을 입는다. 자신이 총상을 당한지도 모르고 단지 군화에 물이 차서 걷지 못하겠다고 울먹이는 그는 홀로 철로변에 남겨진다. 어둠 속에서 바로 그날 자신을 면회 왔다가 비상 탓에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던 순임의 환영을 볼만큼 영호는 절박함을 느낀다. 그리고 실수로 민간인을 사살하게 된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김영호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그의 순수성은 조금씩 검게 물들어간다.기획기사: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웹진 구멍 2000년 1월 4호)이창동 감독은 한국 현대사의 정점에 위치한 ‘광주’의 아픔과 경험을 여섯 번째 장면인 ‘면회’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김영호라는 한 순수한 개인의 삶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영향 받고,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그리고 있다.소설 ‘한강’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미지의 사건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유일표가 대학 진학을 할 때 과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고뇌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형 유일민과 유일표는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제도‘연좌제’라는 족쇄를 차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회활동에 제약이 가해지고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이 족쇄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 유일표는 자신의 적성과 관계없이 철학과라는 막연하면서도 중립적인 과를 택하고 진학하게 된다. ‘박하사탕’속의 주인공 김영호와 ‘한강’속에 나오는 이 두 인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면한 사회상황과 사회현실에 의해 좌절을 맛보는 대목이다. 이 부분은 이들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김으로써 비슷한 그려진다. 하지만 이 남재구라는 인물은 결국 박정희의 신당에 들어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아부해 가면서 고위관직을 얻게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한인곤을 고문하기에까지 이른다. 소설속에서의 남재구와 영화속에 김영호, 누가 이들을 이렇게 변화 시켰을까? 그들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 사회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쿠테타 속에서 남재구는 살기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곧으로 들어갔고 위로부터의 압박과 권유로 점점 타락하고 비리와 폭정을 일삼는다. 곧은 절개를 중시하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한인곤을 고문하도록 지시하고 그의 앞에서 변절을 권유하는 그 옹졸한 모습과 영화속에서 김영호가 선배들의 권유로 처음 누군가를 고문하고 죄를 짓는 장면이 너무나도 잘 매치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한 가지 영화와 소설 속에서의 이 부분의 배경이 너무나도 흡사하다. 정권은 인권을 유린하고 탄압하고 있으며 정권은 부패하고 뇌물과 로비가 반복되면서 정권에 검은 구름이 끼어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흡사하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인물들이 자아를 상실하고 괴리감에 빠져있는 것 까지도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본론 ④ 1987년 4월 고백, 임채옥과 유일민네 번째 에피소드 ‘1987년 4월 고백’에서 김영호는 고문 전문 형사로 나온다. 고문은 라디오를 켜놓은 방에서 이루어지며 형사들은 그날 저녁에 있을 회식 이야기를 나눈다. 폭력과 일상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여 있는 상황, 엉뚱하게 영화보기 - 문은정 (NeGA 2000년 2월호)익히 알고 있는 바이기는 하지만 ‘박하사탕’에서의 묘사는 좀더 끔찍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고문 장면과 단란주점 장면을 바로 이어 붙여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감성적으로 ‘내일’이라는 노래를 열창하는 김영호와 즐겁게 술을 마셔대는 형사 일행의 모습은 그저 싫다고 외면할 수 없는 어쩌면 위선을 걷어낸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에 더욱 소름이 끼친다.김영호는 군산으로 잠복근무를 나간다. 그는 군산항에서의 순임과의 밀회를 점은 외면당한 두 여인 모두 각각 김영호와 유일민의 심정을 이해하고 함께 슬퍼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임과 임채옥은 각각 김영호와 유일민에게 버림받은 인물이 아닌 사회현실로부터 부당하게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게 된 것이다.본론 ⑤ 1994년 여름 삶은 아름답다, 꿈★은 이루어진다.‘삶은 아름답다. 94년 여름’이라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가구점 사장으로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던 시절의 김영호를 만나게 된다. 자본주의 계급 구조 안에서 중간쯤의 위치를 차지한 그는 이 단락에서 적나라한 속물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자동차 안에서의 휴대폰 통화 장면은 서로 다른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세 가지 상황을 세 개의 쇼트로 몽타주 함으로써 씁쓸한 웃음과 함께 김영호의 다중적 성격을 엿보게 한다. 그는 아내의 불륜 현장에 들이닥쳐 아내와 그 정부를 두들겨 팬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가구점의 여직원과 카섹스를 즐기는 그런 인물이 된 것이다. ‘삶은 아름답다?’ 식당에서 유연히 예전에 자신이 고문했던 운동권 학생을 만난 그가 떠올린 이 말, 선뜻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이 말은 세 번째 단락과 네 번째 단락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이 부분은, 처음에 나오는 승용차 안에서의 3번의 통화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여비서와의 통화, 사업 동료와의 통화, 아내의 외도를 조사하고 있는 훙신소 직원과의 통화 각각의 장면에서 보여 지는 김영호의 태도와 표정 변화는 별로 신뢰를 주지 못한다. 특히, 한국 영화 속에 나타난 남성상 (씨네21 245호 2000.3.28)아내의 외도 현장을 습격하고 사태를 수습(?)한 후, 아내와의 대화에서 보여 지는 그의 태연함, 곧이어 여비서와 섹스를 하는 그의 뻔뻔함은 그에게 이어서 아내라는 존재는 단지 ‘소유물’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단지 누군가가 자신의 재산을 건드린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표현된 부분이다.그는, 식당에서 만난 경스럽게도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비를 맞으면서 임시 거처인 비닐 하우스로 돌아온 그를 십오년 정도 헤어진 첫사랑 윤순임의 남편이 맞는다. 아주 심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순임의 남편은 아내가 병중이며 그를 몹시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속 깊은 남자임이 분명한 순임의 남편은 허술한 차림새의 영호에게 새로 산 양복과 속옷을 건낸다. 병든 아내의 눈에 영호가 좀더 그럴싸하게 보이기를 바라는 그의 심성 앞에 영호는 또 다시 초라해진다. 그러나 그토록 영호를 만나고 싶어했다던 순임은 의식불명에 빠져 있고 첫사랑과의 재회를 위해 박하사탕을 사들고 온 영호는 그녀의 침상 옆에서 물어버리고 만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영호와 남편이 프레임에서 사라졌을 때, 우리는 의식을 잃어버렸다던 순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첫사랑과의 해후로 인해 인간의 얼굴을 되찾는가 싶은 김영호에게 순임의 남편은 아내가 전해 주랬다며 카메라 한 대를 건네준다. 분명 추억이 서려있을 법한 물건이건만 영호는 단돈 몇 만원에 카메라를 팔아 버린다.하지만 이 장면에서 나는 김영호와 순임이 재회하는 그 순간에 중점을 두고 싶다. 속물근성을 드러내던 김영호가 순임을 앞에 두고 박하사탕을 건네며 자신의 지난 얘기를 한다. 눈물을 흘리며 김영호는 그녀에게 속마음을 얘기한다. 자신의 순수했던 그 시절 그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 하면서 이렇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자신조차 괴로워한다. 하지만 분명 이 순간만큼 김영호 자신은 순수한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이제 소설 ‘한강’속에서 이와 비슷한 이미지와 사건을 찾아보면 유일민과 임채옥이 서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시 찾아보려는 사건이 있다. 술상무로 일하던 임채옥의 남편은 급기야 간암으로 쓰러져 운명을 달리한다. 곁에서 오래도록 바라만 보고 있던 유일민은 이윽고 용기를 내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연자죄라는 족쇄를 차고 자신의 앞길이 모두 막힌 유일민, 서울에 상경할 때만해도 그는 꿈이 있었다. 명문대에는다.
    인문/어학| 2003.06.15| 10페이지| 1,000원| 조회(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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