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유전자 차별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주제 : 유전자 차별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심해질 유전자 차별에 대비한노력이 필요하다.목차1. 유전자검사의 대중화 시대①유전자검사의 활용 예②유전자검사의 현실과 문제점2.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①유전자검사와 유전자조작에서의 차별ⅰ)유전자 산전검사를 통한 태아차별(성별 ? 장애유무)ⅱ)배아단계에서의 유전자 치료 및 조작으로 인한 배아차별ⅲ)여성에 대한 차별②유전자 정보이용에서의 차별ⅰ)보험에서의 차별ⅱ)고용에서의 차별ⅲ)결혼에서의 차별ⅳ)입양에서의 차별ⅴ)국가에 의한 차별(유전자 정보은행)3.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대립 양상①유전자에 근거한 차별의 정당성(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부당함 제시)②생명에 대한 윤리적 대립(생명윤리법에 대한 견해 차이)4. 유전자 차별에 대비한 우리의 노력①사회적 감시와 합의의 필요ⅰ)유전자 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합의 필요ⅱ)유전자 차별에 대비한 감시제도 필요②생명에 대한 새로운 윤리관의 필요성1. 유전자 검사의 대중화 시대얼마 전 친자확인 소송에 휘말렸던 키아누 리브스가 DNA검사 결과 소송을 건 여성의 아이들이 키아누 리브스의 친자가 아님이 밝혀지면서 그 동안의 억울했던 누명을 벗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출생과 관련된 내용인데, 이러한 출생과 관련한 스토리에는 언제나 친자확인이라는 해결책이 등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창에 친자 확인을 검색해보면 친자확인을 한다는 유전자검사기관의 광고를 볼 수 있으며, 친자확인에 대한 정보교환도 인터넷상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친자확인과 같은 유전자검사는 이제는 우리 실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유전자검사의 활용 예현재의 유전자검사는 일반인들이 유전자검사기관에 검사를 의뢰하여 친자확인 결과와 유전질병의 발생확률을 알 수 있다.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검사에서는 유전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전자검사를 통하여 차가지로 돌연변이 유전자 역시 유전자검사의 반응결과에 다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하여 큰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하여 유전질병이 발생할 확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유전자검사의 무분별한 상업화 우려, 유전자검사에 대한 윤리적 ? 법적 ? 사회적 사항들의 미정립, 유전자검사에 관련한 취약한 인프라 현실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하고 있지만, 이번 리포트에서는 유전자 차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이와 같은 내용들은 생략 한다.2. 유전자에 근거한 현재의 차별과 미래의 차별)생명공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유전자검사가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유전자 차별은 이미 세계도처에서 현실화가 되었다. 질병가능성의 이유로 취업, 보험 등에서 차별이 이루어져 미국은 이미 차별금지를 법제화하였다. 이미 유전자로 인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생명공학기술로 인해 더 많은 분야에서 차별이 이루어지며, 차별이 고착화 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부터는 현재에 우리가 겪고 있는 유전자로 인한 차별과 미래에 나타나게 될 차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유전자검사와 유전자조작에서의 차별첫 번째로 유전자 산전검사를 통한 태아차별이다. 태아가 태어나기 전의 유전자검사는 단순히 태아의 성별과 현재 건강 상태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태아의 미래 건강까지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이와 같은 유전자 산전검사로 인해 부모들이 특정성별의 태아를 원할 경우 태아의 성을 선택하여 출산을 하게 되어 태아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차별을 받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태아의 장애 유무를 알 수 있으므로, 장애를 가지고 엄마 뱃속에서 숨 쉬고 있는 태아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태아에 대한 차별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성차별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자신의 자식이 겪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정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부모도 그러, 지능, 성격과 같은 기질도 부모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맞춤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아기’는 상대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건강하고 유전자적으로 우수한 ‘맞춤아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앞으로의 현실은 모든 부모가 비싼 유전자 치료 및 조작 비용으로 인해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맞춤아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부부들과 사회계층만이 건강하고 유전자적으로 우수한 ‘맞춤아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인해 태어난 ‘맞춤아기’는 부유한 가정환경과 함께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므로, 현재의 빈부격차는 다음세대로 그대로 이어져 빈부격차로 인한 차별이 지속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또한 위의 두 가지 경우와 같은 유전자검사와 유전자조작에서의 차별은 ‘인종개발’이라는 국가차원에서의 우생학적 프로그램에 이용될 수 있다. 한 국가가 지닌 유전공학기술 및 자본의 수준에 따라 우생학적 프로그램의 실질적 효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곧 국가간의 차별을 발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세 번째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유전자검사로 인해 여성이 차별을 받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가져 유전자검사를 통해 태아의 건강상태를 체크했을 때, 아이에게 모계 유전질병이 있다면 남성의 의견에 따라 이혼을 할 경우가 많지만, 부계 유전질병일 경우에는 모계 유전질병의 경우보다 이혼을 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유전자정보에 대해서는 권력적인 경우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유전자 정보이용에서의 차별첫 번째로 보험에서의 차별이다. 보험회사가 개인의 유전자정보를 이용하여 개인의 평균수명과 유전질병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면, 유전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계약의 체결을 거부 받거나 위험에 대한 추가부담금을 요구하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차별하게 될 것이다. 이것 역시 유전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어 지게 될 것이다.세 번째로 결혼에서의 차별이다. 앞으로는 결혼 전에 서로의 유전자정보를 확인하고 결혼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좋은 직장을 다니며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유전자정보에서 유전질병이 나타나거나 주의력 결핍등과 같은 유전적 성향이 나타나게 되면 상대방은 결혼을 꺼려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성격이 변하거나 자신의 노력에 따라 주의력 결핍과 같은 유전적 성향이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전자정보로 인해 그 동안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네 번째는 입양에서의 차별이다. 입양에서의 차별은 아이의 입장과 부모가 되려는 어른의 입장에서 차별이 생길 수 있다. 아이가 유전자적으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아이를 입양하려는 부모가 적을 것이다. 어느 부모든지 유전자적으로 우수한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임으로 인해 아이를 입양하려는 부모들도 유전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폭력적 성향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등 유전자적으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면, 유전적으로 우수한 아이를 입양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적으로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부부는 유전자적으로 똑똑하고 우수한 아이를 입양할 수 없지만, 유전자적으로 위험성이 없는 부부는 유전자적으로 똑똑하고 우수한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유전자에 근거한 계급 제도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다.다섯 번째는 국가에 의한 차별이다. 국가기관인 검찰과 경찰에서는 이미 범죄수사 목적으로 범죄자들에 대한 유전자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유전자정보은행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범죄자에 대한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화는 범죄의 재발방지와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한 일이며, 경찰과 검찰에 의한 범죄수사에만 쓰인다고 한다. 한번 범죄를 저질러 자신의 유전자정보가 국가에 의해 데이터베들은 차별의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다. 또한 국가에 의한 유전자정보은행 구축 같은 경우에도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 일반인에게까지 유전자검사를 강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권력에 기초한 유전자검사 강요도 개인의 지켜져야 할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침해 할 위험성이 상당히 크며, 언제 국가로부터 차별을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3.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대립 양상생명공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개인의 유전자정보를 알 수 있고, ‘맞춤아기’가 태어나고, ‘불임부부’를 위한 치료법이 생겨나는 등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과는 달리 현재의 우리들은 생명공학기술의 발달을 지켜보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우려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막연한 기대와 우려 속에서는 현재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유전자 차별과 미래에 더욱 더 심해질 유전자 차별에 대비할 수 없다. 생명공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겨나고 있는 유전자 차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유전자검사에 근거한 차별이 정당성을 가지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생명에 대한 윤리적 대립이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유전자에 근거한 차별의 정당성(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부당함 제시)‘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삶을 100% 결정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유전자 결정론은 참인 셈이다.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삶을 결정하기 때문에, 유전자를 해석하기만 하면 인간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사회적 ? 정치적 ? 경제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요즘은 기질적인 내향성과 외향성, 지능, 적극성 등이 유전된다고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생겨나게 된 이유는 생명공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한 유전자 결정론이 생명공학 관련 학자들과 생명공학 관련 기업의 이익을 증진시키는데 다.
1. 어린 시절 주먹이 센 골목대장, 능력 있고 무뚝뚝한 남편,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이러한 모습들은 전통적 사회에서의 남성상과 남성다움을 잘 나타내주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이러한 남성상도 분명 변하고 있으며 남성들은 남성상의 변화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으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시대가 전통적 사회에서 현대 사회로 변화해오면서 남성들의 지위를 보장해온 직장에서의 입지가 불안정해졌다.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로 인해 남성들의 직장에서의 입지는 적어지고 있으며 더 많은 지식과 능력을 위해 남성들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위기는 또한 가정에서의 위기로도 이어진다. 회사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기에 부인과 자녀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며 이혼과 별거로 인한 남성의 위기는 더욱 커지고 있다. 위와 같은 남성의 위기는 전통적 사회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남성적 지배문화에 안에서의 '남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어려움이다. 나는 현대사회의 남성들의 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남성적 지배문화로 인해 생긴 남성권력의 신화와 남성들끼리의 가르고 나눔으로 인한 기득권 집단의 권력독점,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변화라 생각한다. 남성적 지배문화로 인한 남성 자신들의 위기와 사회의 변화로 인해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남성상이 요구되어 지고 있다. 남성의 위기의 원인이 되는 남성적 지배문화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남성상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전통적인 남성상을 벗어나 새로운 남성상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2. (1)현재 우리나라에서 남녀차별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남녀차별은 남성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남성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것을 말한다. 즉 남성이 거의 모든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남성 지배문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남성 지배문화는 남성의 성장 과정과 사회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남성의 성격과 기질은 유아기의 성장과정과 성인기의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다. 하지만 남아들은 유아기 시절 부성부재라는 문제를 겪게 된다. 쵸도로우에 의하면 부성부재는 가부장적 남성성과 무표현적인 인성을 갖게 한다. 또한 불연속적 성장과정으로 인해 스스로 행동의 기준을 찾지 못하게되고 사회 규범을 내면화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게 되어 좌절 및 불안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서 발달의 장애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남아가 어릴 때 성인 남성과의 접촉이 제한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다른 사회에서보다도 범죄 발생률이 높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공격성을 갖게 하는데 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남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되고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아버지를 '방어적동일시'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이것은 여아의 어머니에 대한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애정적 동일시'와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남성은 타인과의 감정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쉽게 맺지 못하고 방어적이거나 경쟁적, 공격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지고 놀던 장남감인 칼, 권총 등과 노는 방식인 전쟁놀이 또한 그들의 내재된 공격성, 경쟁성, 정복욕에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남성 지배문화'를 형성하게 하는 요인들로 둘러싸여 있던 남아는 남성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도 다시 한번 남성 지배문화적 성격을 만들게 하는 요인에 둘러싸이게 된다. 남성은 생계 부양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경쟁적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를 수행하지 못한 남성들이 많은데 이들은 '실패한 남성'이라는 부정적 낙인이 되어 설 곳을 상실하게 되고 자신의 역할 또한 담당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자신의 무능력 외에는 어느 것도 탓할 수 없어 더욱 성공에 과도한 집착을 하게 된다.(2) ①남성 지배문화로 인해 생긴 남성권력의 신화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세상은 남자(man)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소수의 남성(a man)들이 지배할 뿐이지 대다수의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또한 남자들은 여성보다 더 많은 보상과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도 현실과는 다른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에서의 남자들은 특정한 역할 구조에 맞게 살아갈 것을 요구받으면서 동시에 그와는 정반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체제의 희생자로 남성 지배문화의 밖에 존재하고 있다. 즉 기존의 남성다움이 남성의 삶을 왜곡시킨 것이다.②가족과 사회를 위해 땀흘려온 남성들을 위기에 내몰리게 한 것은 남성들의 자기끼리 가르고 나누는 남성성으로 인한 남성적 지배문화 안에서의 기득권 집단의 자원 및 권력독점이다. 아직도 연대는 우리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정 지역이나 고교·대학 출신이라는 학연·지연과 같은 남성들의 자기끼리 가르고 나누는 남성성은 많은 집단을 낳게 되며 그 집단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기득권 집단이 생겨나고 이러한 기득권 집단의 자원 및 권력독점이 대다수의 남성을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③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을 연약한 존재로 취급하고, 남성은 바로 여성을 보호하는 본능을 가진 것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현대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가 아닌 남성과 같은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합당한 권리를 요구하며 성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남성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남성상의 남자가 아닌 새로운 남성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대다수의 중·장년층 남성들은 아직도 남성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의 기준의 변화로 인해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생각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한 성희롱의 기준의 격차가 커짐에 따라 남성들은 전통의 남성상을 빨리 잊고 새로운 남성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매맞는 아내'는 있어도 '매맞는 남편'은 없었지만 지금은 남성의 무능함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매맞는 남편'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여성들의 급진적인 생각의 변화와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남성들의 심리적 불안감과 위기감을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3.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회가 바라는 남성상도 바뀌어 가고 있다. 새로운 남성상이 전통적 남성상과 어떻게 다르고 남성들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알아보자.(1)남성은 이제 더 이상 근육질이며 폭력적인 남성다움과 사회적 성공만을 위하는 남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이자 역사의 주체로서의 삶을 조금씩 부담스러워 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남자들은 남성의 위기를 맞아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자기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려고 한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모호해짐에 따라 여성의 남성화와 남성의 여성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에 남성들에게도 섬세함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여성들도 더 이상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남성보다는 가정적이며 자상함을 가진 남편과 아버지를 원하고 있다. 이제 남성들은 자신에게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남성상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남성상은 새로운 유행에 맞는 남성상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생활에서 요구되어지는 각자만의 남성상을 찾아야 할 것이다.(2) ①오늘날의 아버지의 역할은 위기에 봉착했다. 전통 사회에서 보다 현대 사회에서의 아버지들은 집에서 자식들을 돌보지 못하고 집을 떠나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결과 자녀들은 아버지와의 정서적인 유대를 갖지 못하고 자라는 현실을 맞게 되었다. 아버지는 주로 수단적인 부모 역할만 하는 반면에, 어머니는 수단적인 역할과 동시에 정서적인 부모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또한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사랑, 다정함, 애정, 따뜻함, 슬픔, 고통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지만 아버지들은 회사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집에서의 감정표현은 짜증, 분노, 억울함 같은 것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감정 표현의 차이점은 성역할과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표현은 사내아이에게 어머니에게서 배운 감정표현은 억제하고 아버지의 감정 표현을 보고 '사내다운' 감정을 배우게 된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싶어하지만 아버지가 무관심하고 바빠서 그들을 돌볼 수 없다고 생각을 한다.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고 그 요구는 더욱더 커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자녀를 양육함으로서 올바른 자녀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서 아버지 자신도 정서적인 면에서나 대인 관계 면에서 발전하게 된다.
1. 하버마스는 누구인가?하버마스는 지난 20여년 동안 가장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회철학자이다. 그는 영미의 철학과 경험주의적 성과를 독일철학의 전통 안에 포괄하면서, 사회학, 심리학, 언어학, 정치학, 역사학 등의 연구를 통해 유럽사회에 대한 현실적 분석과 참여, 이론과 실천의 통합 시도, 정통 맑시즘 비판, 민주주의와 학생운동에 대한 논쟁, 실증주의 논쟁, 해석학 논쟁, 체계이론 논쟁,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 신사회운동 논쟁, 시민사회 논쟁, 역사가 논쟁, 형이상학 논쟁 등 여러 논쟁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이성'에 대한 신뢰를 확고하게 갖는 '계몽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2. 새로운 합리성의 모색서양 근대 계몽주의가 확보하고자 한 것은 인간 이성의 자율성이다. 이는 곧 인간 이성의 신적 권위로부터,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타인의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연과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성... 그러나 이 이성이 과학과 기술을 통해 실제로 발휘한 합리성이란 고작 자연과 타인을 자신의 목적대로 이용하고 기획하고 지배하는 도구적 계산 능력에 지나지 않았다. 이성의 절대화가 결국 이성자체의 파멸을 나은 것이다.과학과 기술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이성이란 단지 계산적이고 수단적인 의미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즉 합리성이란 자연을 객관화하여 설명하는 능력, 인간의 자기보존을 위한 체계적 기회에 따라 자연을 변형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합리성은 자연지배와 높은 생산성이라는 이미 설정된 목표에 종속되는 합리성이라는 의미에서 도구적 합리성이라고 불리며, 따라서 합리적 행위하는 것도 단지 그런 목표 성취에 기여하는 효율적인 행위를 의미할 뿐이다. 이런 도구적 합리성에 있어서 합리적 행위주체는 자연을 사물화하고 대상화하여 표상하는 인식주체이며, 그렇게 객체로 정립된 자연을 노동을 통해 변경, 이용, 지배하는 도구적 행위주체인 노동주체이다. 이런 인식주체 내지 노동주체는 자아 밖의 자연과 타자에 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합리성으로 생각된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있어 행위주체는 더 이상 근세론적인 유아론적 인식주체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상호작용에 들어있는 사회적 활동주체, 상호주체이며, 그 주체가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는 사물화하고 표상화하는 대상관계이기에 앞서 상호 주관적 관계인 것이다.3. 의사소통적 합리성하버마스 역시 1세대 비판이론가들처럼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개념을 통해서는 후기자본주의사회의 현상을 설명해 낼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계몽주의에서 모더니티를 도구적 이성으로 몰아 붙여 단순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의사소통적 행위이론」이라는 저서에서 마르크스를 비판하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시킨다. 하버마스는 사회적 삶의 역사적 과정을 목적론적 행위와 의사소통적 행위로 범주화시키면서 마르크스가 「경제 철학 초고」에서 이미 '노동'과 '상호작용'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상정함으로써 앞의 두 과정의 변증법적 관계를 탁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일 이데올로기」이후 마르크스는 노동과 상호작용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밝히기보다는, 사회적 실천이라는 애매한 개념을 도입하면서 인간들 간의 상호작용 영역을 노동으로, 의사소통적 행위를 도구적 행위로 환원하였고, 그래서 하버마스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변증법적 사상이 기계론적 이론으로 오해될 소지를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개념을 노동과 상호작용 혹은 목적론적 행위와 의사소통적 행위로 대체함으로써,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을 극복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재구성을 통하여 마르크스가 원래 의도했던 비판적 계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하버마스가 보기에 인간의 사회적 삶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상호작용, 기술적 지식과 도덕적 의식, 목적추구와 합의가 조화롭게 이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가 분류한 행위 유형들에 대해 살펴보면...첫째, 목적론적 행위는 원칙적으로 고독한 단독 행위자의 규범적 행위모델이다. 규범적 행위는 자신의 공동적 가치에 맞춰 조절하는 사회집단의 구성원과 관련된 것이다. 이 규범적 행위가 관계하는 세계는 두 개의 세계이다. 존재하는 사태의 객체적 세계 옆에 역할하는 주체로서 행위자가 다른 주체와 마찬가지로 귀속하는 사회적 세계가 드러난다. 사회적 세계는 어떤 상호행위가 권리에 기초한 간주체적 관계에 속하는가를 확정하는 규범적 맥락에서 구성된다. 이 세계에서 규범적 행위의 합리성은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고 그 합리성의 기준은 올바름이다.셋째, 연출적 행위모델이다. 이 행위모델은 고독한 행위자나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 서로서로 관객을 이루는 상호작용 참여자들과 관련된 것이다. 행위자는 자신의 주체성을 많건 적건 목적의식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관객에게 자기자신의 일정한 상 또는 인상을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이 연출적 세계는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나만이 '특권적'으로 관여, 표현할 수 있는 주관적 세계이다.네 번째가 의사소통적 행위모델이다. 이 행위에서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객관적 세계, 주관적 세계, 사회적 세계가 동시에 등장한다. 의사소통적 행위의 개념은 인격체적 관계에 들어가는, 적어도 두 명의 언어능력 있고 행위능력 있는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관계된다.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계획과 행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행위상황에 관한 양해적 합의를 구한다. 해석의 중심개념은 무엇보다도 합의 가능한 상황정의의 협상과 관계한다. 이 모델에서 언어는 탁월한 위치를 점한다. 바로 이러한 개념의 수위에서야 비로소 언어를 화자와 청자가 그들의 사전 해석된 생활세계의 지평에서 객체적인 세계, 사회적인 세계, 주관적인 세계 안에서 동시에 어떤 것과 관계하여 공동의 상황정의를 타협해낸다. 이제 이야기할 보편적 화용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러한 해석적 언어관이다.하버마스의 보편적 화용론이란 언어행위를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암암리에 네 가지 보편적인 효력주장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편적 화용론의 핵심은 첫째, 이, 보편적 화용론과 의사소통 행위이론의 요지는 착취와 지배가 없는 해방된 삶의 정형이 우리들의 의사소통 행위 안에 구조적으로 내재한다는 것이다. 의사소통행위에서는 참가자 누구나 스스로의 행위로써 보편적인 효력주장을 제기하고 그것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검증될 수 있다는 것을 암묵리에 전제한다.하버마스에 의하면 네 가지 행위모델 중 의사소통적 행위가 가장 이성적인 행위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각각의 행위는 각각 하나의 세계만을 전유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전체성이라는 맥락에서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의사소통적 행위자는 세 개의 세계를 모두 전유하며 그 공통의 전유하에서 상호이해에 도달하려고 한다. 진리성, 정당성, 성실성의 효력주장은 각기 객관적, 사회적, 주관적 세계와 조응하는 것이다. 오직 의사소통행위 안에서만 이 효력주장들이 모두 검증될 수 있음을 원칙으로 하며, 상호이해에의 도달이라는 목표가 다른 행위유형들에 의해 추구되는 목표들을 압도한다. 의사소통적 행위가 여타 행위모델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4. 하버마스 합리성이론의 이론적 난점과 한계(1) 축소되지 않은 의사소통합리성의 정체하버마스의 합리성이론은 한편으론 이론적, 도덕적, 표현적 합리성의 본래적 의미를 명확히 밝혀야 하며, 다른 한편으론 이해도달을 지향하는 행위안에서 이러한 합리성들의 상호연관을 명료하게 드러내야만 한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합리성의 세 측면을 각기 '분리된 것'으로 취급하여 상론하고 있으나, 세 측면으로 이루어진 '축소되지 않은' 의사소통합리성의 개념에 관해서는 충분히 해명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분리성은 의사소통합리성의 형식적 구조가 드러나는 '논쟁양식'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즉 타당성 영역들의 분리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논쟁의 형식들을 각기 분화된 합리성개념에 관련 지움으로써, 인식적 합리성은 이론적 담론에, 도덕적 합리성은 실천적 담론에 그리고 미학적 합리성은 치료적 비판이나 심미적 비판에 연결된다. 동시에 분리된 세 합리성은 자 않은 합리성의 개념으로 제안하려는 의도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적 논쟁방식을 실천적 담론을 비롯한 여타 담론에 무리하게 적용함으로서 과도한 동일화의 오류를 결과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같은 동일화는 의사소통합리성을 비판의 규범적 척도가 아닌, 단순히 모든 근거지움의 '구조적 장치'로 환원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분리된 합리성들간의 '균형' 내지 '조화'를 통해 축소되지 의사소통합리성을 설명하려는 시도의 경우도 분리된 차원들을 인위적으로 결합하려는, 분리된 합리성 측면들에 대한 '비판적 간섭'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의 주장과는 달리 분리된 합리성들의 통일은 논쟁의 형식적 통일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논쟁 형식들간의 환원될 수 없는 '맞물림'에서 확인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사소통합리성을 구성하고 있는 합리성의 제 측면들은 본래 '복수적, 비통합적이며 그럼에도 비분리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버마스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가치영역의 근대적 분화에 따라 세차원의 합리성을 각기 분리된 것으로 받아들여 각 측면을 상세히 해명한 수, 철학적 관점에서 분리된 측면들을 다시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그 결과 합리성 측면들의 내적연관을 해명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2) 언어사용의 본래적 양식에 대한 규정하버마스는 이해도달을 지향하는 언어행위를 언어사용의 '본래적 양식'으로 규정하고, 전략적 행위를 포함한 간접적 이해도달의 행위를 기생적 양식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입장은 썰과 오스틴의 언어 행위론에 크게 의존한 것으로, 특히 오스틴의 '발화수반적 행위'와 '발화결과적 행위'를 차용하여 전자를 의사소통행위와, 후자를 전략적 행위와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도달을 지향하는 의사소통행위도 목적론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이해도달이 어떠한 행위의 결과나 목적의 달성을 위한 부수 조건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아울러 무신론자와 벌이는 신의 존재에 관한 논쟁의 경우, 비록 양자간에 완벽한 이해도달이.
1. (1)민주주의가 강화된다는 입장과 약화시킨다는 입장을 정리하자. 왜 세계화가 민주주의 를 강화시키는가? 왜 세계화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가?⇒민주주의의 강화(세계화에 대한 긍정적 측면)) 임혁백, 1995, 2장 "세계화와 민주화", 세계화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 나남①국가주의의 쇠퇴세계화가 경제적 비효율성과 정치적 억압의 근원이었던 국가주의를 지구촌으로부터 추방 하고 시민사회를 해방할 것이다. 세계화는 보호지대와 기득권의 온상이 되어 온 국경의 장벽을 해체함으로써 주어진 영토 내에서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합법적으로 독점해 온 국 가의 권력을 잠식시키고고 국경의 보호 하에 독점적 기득권을 누려온 이익집단의 영향력 을 감소시키는 반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증대시킬 것이다.②시장에 의한 정부세계화는 국가주권을 약화시키고 시장의 힘을 강화시킨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 의한 정부 하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시장은 이해당사 자가 그때그때마다 항상 투표하는 영원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사회질서를 조직하는데 시장의 원리를 강화할 때 경제적 재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최적 의 자원배분을 가능하게 한다.③경제의 풍요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줌으로써 민주주의를 번성케 한다고 말한다. 경제적 풍요가 관용, 화해, 타협을 선호하는 민주적 정치문화의 형성에 비옥한 토 양을 제공한다. 하지만 궁핍의 경제는 극심한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을 낳는다.④전송민주주의정보통신 혁명으로 인해 정부와 대기업에 의해서 독점되던 정보를 일반 시민들도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정보의 독점에서 나오는 권력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국가의 시 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은 줄어들게 되었다. 전송혁명은 전송민주주의의 도래를 가능케 하 였다.⑤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global localization)중앙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의 민주주의 발전 저해 요인-주민자치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지방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 봉쇄-지방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지방도시가 중앙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상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고 생산, 금융, 노동시장의 세계화로 지방도시가 독자적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경제와 문화교류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점에서 세계 화의 시대는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글로컬리제이션의 시대이다.⇒민주주의의 약화(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측면)) 임혁백, 1995, 2장 "세계화와 민주화", 세계화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 나남.①글로벌 기업의 자율성과 국가주권의 약화세계화시대의 경쟁은 국가단위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부문, 산업, 기업 단위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따라서 세계화의 물결은 지역 간, 부문 간, 사회집 단 간의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세계화의 제약에 의해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없다. 글로벌 기업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나 구 조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글로벌 시장과 초국적 기업에 대한 국가의 자율성이 더욱 상대 적이 되어가고 있고 적극적 시민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달성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②세계화의 불균등성, 비형평성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범세계적 확산은 국가 간, 지역 간, 국민 간의 불평등을 낳아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민주주의도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위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간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동구나 시장경제의 요 소를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까지 세계화의 이득이 확산 되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세계화시대에 세계무역이 증대하고 있는 것 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인 북미, 일본, 유럽연합 간의 교역이 증대된 데 기인하고 있으 며,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탈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대부분의 고부가가치 생산은 여전히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세계화란 이 세 지 역 경제의 생산, 금융, 기술구조가 수렴하고 있다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교역, 투자, 기술이전이 이 세 지역에 집중됨으로써 동구와 제3세계의 신생민주주의는 자본과 기술의 고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③문명의 충돌세계화의 이득이 국가, 종족, 지역, 부문 간에 불평등하게 배분될 때 그 결과는 민주주의 의 물질적 기초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을 약화시킨다. 세계화는 민주적인 지구촌 문화를 형성하기보다는 세계화의 대열에서 이탈한 자들이 인종, 종교, 언 어에 기반한 특수문화를 번성시킨다. 세계의 경제의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 을 보호해 줄 피난처를 찾고자 한다. 그들은 종족, 고향, 세대, 종교에의 향수를 못 버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시장의 폭력에 대항하여 그들은 반시장주의 적이고, 과거 지향적, 그리고 지방적인데서 그들의 피난처를 발견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 한 근본주의적인 종교, 향당적인 정치문화, 퇴행적인 유대의 발견 등이 민주주의의 확산과 심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근대화시대에는 국가가 이러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분파적 행위를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이 약화되면서 이러한 민 주주의를 위협하는 분파적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 주권이 형성되고 있지 않 다.(2)한국에서는 어떠한 입장이 더 적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강화와 약화가 혼재 되어 나타나는가?⇒"한국은 민주주의의 약화가 더 크다."민주주의가 참여와 정의 그리고 평등의 원리라면 지금의 신자유주의하의 세계화는 무한경 쟁과 못 가진자의 배제, 불균등한 분배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강대국(중심 부)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대해 강대국은 손해볼 이유도, 반대할 이유도 없다. 모든 국가가 하나의 시장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상품, 노동, 자본을 거래할 때 일반적으로 이익을 보는 국가는 강대국이요, 또한 손해를 보는 국가는 약소국이다. 이러 한 신자유주의하의 세계화속에서 우리 나라는 지난 1997년 말의 경제위기 때문에 신자유주 의의 장단점이나 타당성 등을 검토할 틈도 없이 이것을 갑자기 도입·시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아래 중심국이 아닌 주변국으로서의 우리 나라는 무차별 외국자 본침투와 경제적 신종속의 강요로 민주주의의 발전보다는 생존과 경쟁의 전쟁터로 변해가 고 있는 것이다.또한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우리 나라도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의 주권이 약화되고 경 제적 불평등이 심화 되어가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발전은 약화되어지고 있다.우리 나라는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는 잘 운영이 되고 있는 편이다. 또한 정보통신혁명 을 통해 시민들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 민주적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하의 세계화속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소득과 분배의 비형평성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절차적 민주주의를 운영하 는데 뿐만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발전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 각된다.(3)한국 사회의 어떤 조건들의 변화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가?⇒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조건①전통문화에 기반하고 있는 가족주의와 권위주의) 김호기, 1999, 8장 "한국 민주주의의 문화적 조건", 11장 "민주주의, 시민사회, 시민운동",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나남
'1945년 9월 22일 소년 세이타는 죽었다' 라는 문구로 처음 시작을 알리는 '반딧불이의 무덤'은 전쟁이라는 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부모를 잃고 전쟁고아로서 힘든 길을 걷는 세이타라는 중학생 남자아이와 그의 여동생 세츠코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이 소설은 1967년 노사카 아키유키가 발표를 한 작품으로 다음 해, 저자는 이 소설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반딧불이의 무덤'은 애니메이션으로 널리 알려 져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국내에는 아직 개봉이 되지 않았고 소설로만 출판되어있다.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1945년, 전쟁이 끝날 무렵 폭격으로 어머니와 집을 잃어 전쟁고아가 된 오누이 세이타와 세츠코는 먼 친척집에 얹혀 살게 된다. 그러나 친척 아주머니의 냉대로 인해 그 집을 나와 방공호 굴속에서 근근히 살아간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중학생 오빠인 세이타는 영양실조에 걸린 여동생 세츠코를 보살피기 위해 때로는 도둑질까지 하지만, 이미 운명은 이 아이들을 굶주림과 죽음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벼랑에 몰린다. 결국 세이타가 음식을 구하러 간 사이에 세츠코는 영양실조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세이타는 죽은 동생을 화장을 하고, 남은 뼛조각만을 몸에 지닌 채 방공호를 떠난다. 세이타 역시 전쟁으로 인한 냉혹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구내 기둥에서 죽음을 맞게된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지내던 오누이에게 닥친 현실은 부모 없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 오누이는 어떠한 잘못이 있기에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해맑은 웃음을 지어야하는 어린이들이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만 할까?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가져다 준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의(어른들의) 이기심, 욕심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쟁에 의해서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전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참혹함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인간성을 잃고 무관심이라는 무기로 어린아이뿐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전쟁 속에서 미처 피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의 애절한 체험을 그린 이 소설은 지금의 21세기에서도 소설에서처럼 전쟁폐해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지금의 21세기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전횡하에 전쟁으로 그 막이 열렸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은 약소국에게 뭔가를 더 빼앗기 위해 전쟁을 강행했다고 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전쟁으로 인하여 이라크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 많은 수가 어린이와 노약자 등 민간인들이다. 죽이고 죽이기 위한 뺏고 뺏기 위한 전쟁이란 우리에게 결코 득이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저 마음속에 상처와 증오, 미움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이목이 미국의 전쟁으로 인한 폐해에 집중되어있는 지금 우리에게 이 소설은 전쟁 후에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글이다. 또한 내 나라 일이 아니니까, 우리의 일이 아니니까 하는 것처럼 너무도 무관심한 이들은 소설에서처럼 지금의 현실에서도 상처받은 이라크 어린이들과 노인들 등의 민간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북의 존재로서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이유로서도 전쟁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 그때 역시 인간의 무관심은 우리에게 전쟁보다 더 큰 아픔으로 상처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라크의 어린이들과 노인들 등 민간인들에게 전쟁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무관심을 보여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러한 전쟁반대에 동참하는 마음을 모두 함께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