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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당간 교수학습지도안, 답사 계획서, 답사 보조자료
    교수·학습 지도안단원명고려 시대의 문화 (1)(1) 불교 문화 (2)(2) 서민 문화 (2)대상 학습자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의 남녀 학생 10~15명,한국어 능력 4급 이상의 답사 경험이 있는 학습자대단원 목표☆ 고려 시대의 문화를 이해한다.☆ 대한민국의 정신과 문화를 이해한다.☆ 한국어로 의사소통하여 보고서 작성을 할 수 있다.소단원 목표※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를 이해한다.※ 대한민국의 주체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이해한다.※ 모둠 구성원들과 한국어로 토의할 수 있다.※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수업 내용1.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지어진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2. 용두사지 철당간이 지니는 역사적, 문화적 의의와 가치를 설명한다.3. 보고서의 양식과 작성 방법을 설명한다.수업 전략1. 불교, 민간 신앙 등과 관련되는 학습자의 스키마를 활성화시켜 학습과 과제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답사 대상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킨다.2. 국가와 학습자의 성향을 고려하여 모둠을 구성하고, 과제에 대한 개인 부담을 줄이고, 모둠 토의 활동을 통해 쓰기 학습을 한국어 말하기, 듣기 학 습과 연계하도록 한다.수업 일시2011 년 7 월 22 일차시대단원 총 6차시, 소단원별 2차시, 2/6수업 시간60분단계(시간)교수·학습 활동유의점, 준비물도입(5분)1. 학생들의 국가에서 불교가 어떤 의미와 양상을 보이는 종교인지 질문을 한다. 학생들의 국가에는 어떤 민간 신앙이 있는지 질문을 한다.2. 질문을 통해 고려시대에 불교가 발달했었다는 사실과 불교와 민간 신앙의 어우러짐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답사의 학습목표를 제시한다.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선정한다.전개(40~45분)1. 지난 시간에 학생들에게 제시했던 과제를 학생들이 간단한 발표를 통해 확인한다.2. 학생들의 발표 내용 중 중복되는 내용과 중요한 내용을 칠판에 적은 후에 판서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3.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지어진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한다.역사적 배경 :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었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 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문화적 배경 : 고려 초 혜원 스님이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용두사로 가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지어라’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다음날 용두사에 찾아가니 용두사의 주지스님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나흘째 되는 날 마당에서 어떤 사람이‘목암산(우암산)에 올라가 사방을 살피면 알 수 있다’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두 스님이 목암산에 올라가 보니 청주가 천천히 북쪽으로 떠내려가는 행주형의 지형이었다. 그래서 배의 돛대를 상징하는 철당간을 세웠고, 그 후로 청주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출처 : 청주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 소개 자료.4.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지니는 역사적, 문화적 의의와 가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다.의의, 가치 : 당간의 3번째 단에 당기(幢記)가 양각되어 있어 그 조성년도(고려 광종 13년, 962)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당시 ‘준풍(峻豊)148’ 이라는 고려 독자의 연호를 널리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철당간에는 한림학생(翰林學生)은 물론 학원경(學院卿), 학원낭중(學院郎中) 등 배움과 관련된 직책 등이 뚜렷하게 돋을새김되어있는데 이를 통해 교육도시 청주의 오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출처 : 청주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 소개 자료.5. 모둠을 나누고 모둠별 토의 방법과 규칙을 설명한다.6. 보고서 작성 방법과 보고서 양식을 설명한다.보고서 작성 방법, 순서 :1. 계획 세우기 : 보고서의 목적, 대상, 필요성, 기간, 방법, 조사 참가자 등을 결정2. 자료 수집 : 대상에 대한 답사, 실험, 관찰, 조사 등의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 백과사전, 인터넷 검색, 잡지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주제와 관련되는 자료를 수집.3. 해석, 정리 : 관찰, 실험의 결과를 정확하게 기입하고, 수집한 자료를 목적에 맞게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정리.4. 보고서 작성 : 조사의 목적을 고려하여 보고서 작성.보고서 쓸 때의 유의할 점1. 조사, 관찰, 실험의 절차와 결과가 잘 드러나도록 쓴다.2.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쓴다.3. 도표나 그림 등을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4.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고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한다.5. 참고한 자료의 출처나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밝힌다.보고서 양식 : 처음 - 가운데 - 끝의 3단.1. 처음 : 동기나 목적, 보고서의 작성 계획과 방법2. 가운데 : 보고할 내용과 결과3. 끝 : 요약, 조사자의 의견이나 소감출처 : 작문 교과서, 김대행 외, 천재교육, 2002학생들의발표 내용중 틀린 내용을 자세하게지적하지않는다.답사할 때흥미가사라지지않도록학생들이조사해온내용을바탕으로간단하게설명한다.학생들의국가, 학습성향 등에따라 모둠을나눈다.마무리단계(7~10분)1. 오늘 학습한 수업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질문을 받는다.2. 답사 할 때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제시한다.3. 과제 수행 방법과 평가에 대해 설명한다.4. 다음 차시의 답사 일정과 장소, 시간 등을 알려준다.답사과제지답사 학습지(아래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세요.)반 : 이름 :1. 조사 대상 :2. 조사 일시 :3. 조사 인원 :4. 조사 방법 :1. 당간과 당간지주의 정의, 뜻 :2.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의 모양 :3. 철당간과 관련되는 한국 역사 :4. 철당간과 관련되는 한국 문화 :5. 3, 4와 비슷한 본인 나라의 문화와 현상 :1. 정리, 요약 :2. 답사 소감, 느낀 점 :더운 날씨에 답사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1. 일정 :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오후 4시~6시2. 장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에 있는 철당간3. 목적 :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와 민간 신앙을 이해할 수 있다.4. 주제 :고려시대의 불교 문화를 이해한다.대한민국의 민족 주체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에 대해 이해한다.5. 교육 내용 :당간지주 :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용두사와 당간 :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 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당간과 당간지주의 모양 :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 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교육학| 2012.07.29| 6페이지| 1,500원| 조회(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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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하이 문화원 분석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공식 web site 분석하기전통문화현장실습김승환 교수님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 전공2011333007 허나영2011.08.02.화요일1. Web site 소개제가 분석의 대상으로 정한 공식 web site는 ‘대한민국주상하이문화원’입니다. 인터넷 사이트의 주소는 http://www.shkc.org/index.Html이며, 중국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는 중국어로 '上海???文化院' 으로 검색해야 합니다. 한국에서의 이름과 중국에서의 이름의 순서를 바꾼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사이트 내로 들어가서 사이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사이트로 들어가자마자 팝업창으로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최를 축하하는 글이 나옵니다. 이 팝업창은 한국어도 아닌, 중국어도 아닌 영어로 적혀 있어서 좀 의아했습니다. 팝업창 옆에는 상하이문화원에서 주최, 주관하는 각종 문화 행사에 대한 소식을 바로 볼 수 있는 외부 창과 그러한 행사에 참여하는 신청을 바로 할 수 있는 외부 창이 있습니다. 외부 창을 통해서 문화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사들을 살펴보았는데, 서양 음악과 중국 음악 그리고 한국 음악을 아우르는 음악회, 현대 한국의 도예 수준과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도예 개인전, 한 ? 중 문화 교류 국립무용단의 한국 전통 무용 공연, 한국인과 중국인의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취업 박람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각종 행사들을 1달 평균 5건 이상 씩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척 간단해서 참여하고자 하는 행사이름, 자신의 이름, 신분증, 개인 연락처, 참여하는 인원만 적으면 한국인도 중국인도 문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구인구직과 관련되는 정보와 한국어 학당에 대한 정보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6월 달 이후 홈페이지도 새롭게 단장하면서 외부의 다양한 문화체험 행사와 활동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위 사이트는 문화원 소개, 정보/참여마당, 세종학당 의 큰 3개의 방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 문화원 소개 방을 들어가면, 설립배경, 조직구성 및 시설 안내, 문화원장 인사말, 오시는 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특히 시설안내와 관련되는 내용이 각 층마다의 시설을 이미지를 통해 알려주고 있어서 젊은 사람들과 문화원을 처음 방문하려고 하는 이용객에서 친절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오시는 길을 안내하는 부분에도 정확한 주소와 자세한 약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어서 손쉽게 문화원으로 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습니다. 정보/참여마당 안에는 도서관 이용, 소장도서 소개 및 검색, 대관 안내, 단체 견학 안내, 한국 소개, 문화 소식, 자유게시판, 설문조사, Q&A 가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많은 한국책들이 있어서 해외에서 한국책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한국에서의 독서생활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소개하는 방 안에는 역사, 지리, 경제, 문화, 언어, 세계문화유산, 상해와의 관련성, 한국 관광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한국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인이 읽었을 때 거부감이 생기는 표현이 거의 없었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소식 방 안에는 상하이에서 열리는 각종 공연과 서커스, 전시회 등의 소식이 있었고, 중국 또는 상하이와 관련되는 신문 기사들도 올라와 있습니다.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자유게시판과 여러 가지 질문을 묻고 답하는 Q&A 방에는 올라와 있는 글이 몇 개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난 후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문조사 방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세종학당 방 안에는 세종학당 소개, 공지사항, 온라인 수강신청, 게시판, 포토갤러리, 동영상 갤러리의 방이 있습니다. 세종학당 소개 방에는 세종학당의 비전과 목표, 교육과정과 행사, 강사 소개 등의 정보가 게시되어 있습니다. 현재 상하이 세종학당에는 12개의 강좌가 개설되어 있고, 최소 5명에서 최대 20명의 학생들로 구성하여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종 학당의 선생님은 모두 한국인으로 중국어와 기타 외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어 교육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공지사항에는 한국어 강사 채용, 한국어 수강 신청, 한국어 수업의 일정 등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게시판은 학생이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 방과 친구를 찾거나 학생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방, 선생님들만의 공간, 자료실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게시판의 다양성과 섬세하고 예쁜 디자인의 홈페이지 구성에 비해서 게시판과 포토갤러리, 동영상 갤러리 등의 방에 올려져 있는 글과 자료가 별로 없어서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세종학당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사이트 아래에 링크되어 있는 기타 사이트로는 문화체육관광부, KOREA 넷, 주 상하이 총영사관, 한국관광공사, 한스타일(한국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사이트), EXPO 2012(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공식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사이트는 '한스타일' 이라는 사이트였습니다. '한스타일'이라는 사이트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글, 한식, 한복, 한옥, 한지, 한국 음악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한류, 한국 관광과 연계함으로써 한국 전통 문화 컨텐츠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 사업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위 사이트에서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한국의 전통 문화를 깔끔하고 예쁜 이미지를 통해 신선하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2. web site의 문제점, 보완점'대한민국주상하이문화원' 사이트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선한 색상과 재미있는 이미지와 플래시로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어서 보통의 공식 사이트에서 보이는 딱딱하거나 지루한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시되어 있는 내용도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내용적인 면에서 다소 문제의 소지를 가진다고 느껴졌던 부분은 정보/참여마당의 '한국소개'의 '지리' 부분에서 한국의 지도를 북한과의 경계를 표시하지 않고 게시하고 있어서 한국과 북한을 하나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수도가 서울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저와 같은 관점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북조선(북한)의 관점이나 대한민국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혹은 대한민국과 북조선의 분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아주 잘 알고 있는)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학| 2012.07.29| 4페이지| 1,000원| 조회(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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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삼 시 연구
    박재삼 시 연구1. 들어가며김소월, 서정주로 이어지는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불리는 박재삼 시인은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잘 표현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에 시달렸으며,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끊임없이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는 우리 시문학사상에서 가장 저조한 시대라 규정할 수 있는 1950년대라는 폐허 위에서 '한(恨)'이라는 재래적인 민족 정서와 어조를 끈질기게 환기시킨 시인이기도 하다.본고는 박재삼 시에 나타나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와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박재삼 시에서 나타나는 민족 정서와 작가 의식를 이해하고자 한다.2. 작가의 생애박재삼은 1933년 아버지 박찬홍과 어머니 김어지의 차남으로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모래 채취 인부로 생계를 꾸려 갔으며 그래서 그의 가정환경은 넉넉하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2세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팔자한탄의 노래를 구슬프게 들었던 것이 아득하게 생각난다.’고 하며 자신의 시에 슬픔이 있다면 원천적으로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하였다.박재삼은 1936년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이사를 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해서 주로 바닷가에서 미역을 얻어먹고,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던 것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삼천포 바닷가에 대한 기억은 애틋한 향수로 훗날까지 그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가 일을 하였는데, 이곳에서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박재삼은 1948년 교내신문에 「강아지」라는 동요와 「海印寺」라는 시조를 발표하였고, 제 1회 영남 예술제의 ‘한글시 백일장’에서 시조「촉석루」로 차상에 입상하였다. 그 후 1953년 처음으로 『문예』 11월호에 모윤숙의 추천으로 시조 「江물에서」를 발표하였으며, 1955년 『현대문학』6월호에 유치환의 추천으로 시조「섭리」를, 11월호에 서정주의 추천으로 「정적」을 발표하였다. 1955년 25세의 나이로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며, 그 해 「춘향이 마음」으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다.박재삼은 1955∼1964년 월간 현대문학사 기자를 거쳐 1965∼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9∼1972년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 1980년 위궤양으로 입원한 상태에서도 그의 문학활동을 끊이지 않았으며, ‘병마와 싸우는 시인’이었던 박재삼은 1995년 가을, 백일장 심사 도중 신부전증으로 별세하였다.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 등이 있다.3. 모성 이미지박재삼 시에 나오는 ‘어머니’는 초인적인물이 아닌 끈끈한 땀냄새와 체온이 베어있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로만 끝나지 않고 작가의 유년 시절, 더 나아가서는 근원적인 모성애를 표현하고 있다.새벽 서릿길을 밟으며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먼지만 뿌옇게 쌓여있는데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 것들이방안에서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이마위에 이고 온별빛을 풀어놓는다.소매에 묻히고 온달빛을 털어놓는다.「어떤 路」이 시에는 자식들을 위하여 고생스러운 하루를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소박하게 나타나있다. 시대상황도, 이념의 대립도 찾아볼 수 없지만 가난함 속에서도 생명력이 넘쳤던 한국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서린 새벽에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장터로 나가는 어머니, 떼어 온 물건을 다 팔 때까지 밤이 늦어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하다.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 것’에게로 돌아오는 모습은 원형적인 모성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화자가 바라본 현실 대응 방법의 순수함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있다. 그는 빈궁에 대해 저항하지 않고, 모성에서 우러나오는 세계에 대한 친화력으로 빈궁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줄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오는 것이 아니라 ‘별빛’과 ‘달빛’을 데리고 온다. 모는 이와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소박한 것들의 아름다움은 한층 더 빛난다. ‘먼지만 뿌옇게 쌓인 꿀단지’에 꿀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어린 마음도 존재하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이마와 소매가 풀어놓은 별빛과 달빛을 맞으며 배고픔과 무서움을 씻어 내리고 있다.진주(晋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어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오명 가명신새벽이나 달빛에 보는 것을,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추억(追憶)에서」「추억(追憶)에서」의 화자는 어머니의 모습을 중심으로 하여 추억의 세계를 그려보고 있다. 1연에서는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나가던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의 모습이 제시된다. 해가 진 좌판에 남아있는 고기의 눈깔들은 은전(銀錢)으로 비유했으며, 고기를 남김없이 다 팔아야만 이윤을 얼마라도 남길 수 있는 어머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수지타산의 슬픔을 또한 은전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2연의 ‘울 엄매’는 우리엄마라는 표면적인 뜻을 지니면서도 ‘엄매’라고 부르면서 울고 싶은 화자의 어린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 한(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심정에서 작가의 가난했던 유년의 그림자를 포착할 수 있다. 3연에서도 ‘눈깔’, ‘은전’등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별밭’이 나온다. 그리 멀리 있는 ‘별밭’은 작은 골방으로 연결된다. 손 시리게 떨어야하는 작은 골방은 아이들에게는 하늘의 별빛이며 생선 냄새가 배어있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서는 4연에 등장하는 진주 남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라고 울음 섞인 영탄으로 받음으로서 ‘옹기전의 옹기들’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밤이슬을 맞아 ‘글썽이고’ 달빛을 따라 ‘반짝이는’ 옹기의 모습이 때로는 눈물 훔치며 언덕을 올라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과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4. 자연과 인간의 조화자연과의 화합과 일치를 꾀하는 것은 동양적 사고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지향하는 시정신은 곧바로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인생관으로 자리 잡게 되어 이승과 저승을 동일시하는 보다 큰 화합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박재삼의 시에 빈번히 나타나는 한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도 실상 따지고 보면 모두 삶의 기쁨과 투쟁과 상관된다고 볼 수 있다.술렁거리는무수한 신록(新綠)이 없었더라면땅이 심심해 어쨌을라나.소슬하고 찬란한별들이 박히지 않았더라면바다가 외로와 어쨌을까나.땅과 바다의몸부림이 있고 나서 비로소땅은 아름다워지고바다 또한 아름다워졌느니사랑이여너 숨이 찬 신록(新綠)이 있고너 출렁거리는 별이 있고요컨대 괴로움이 있고 나서이승에 아름다움을 보태게 되는가「화합(和合)」「화합(和合)」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원리가 조화되는 아름다운 지평을 열어보이고 있는 시다. 박재삼 시에 자주 등장하는 땅, 바다, 별은 시인이 사랑하여 빠져들고자 했던 자연의 일부이다. 그 자연 속에는 사랑과 한이라는 이승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 땅과 바다에 대한 형상을 통하여 시인의 정서는 형상화된다. 1연에서는 땅과 신록의 관계가 시작된다. 땅은 신록의 존재로 말미암아 그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대지에 푸른 나무들이 없었다면 ‘땅은 심심해서 어쨌을까나’라는 이 천진무구한 발상은 단순 소박한 듯 보이면서도 시적 형상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연의 바다와 별의 관계 역시 땅과 신록의 관계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3연에 이르러 ‘무수한 신록’과 ‘출렁거리는 별’은 ‘몸부림’치는 ‘땅과 하늘’과 섞여 하나가 된다. 이러한 몸부림을 통하여 땅과 바다는 아름다운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숨겨진 의미는 4연에서 나타난다. 자연의 원리를 인간의 삶의 이치로 아름답게 치환시켜 놓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일치를 지향하는 시정신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1희안한 꽃밭같네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잇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2.
    인문/어학| 2004.06.06| 6페이지| 1,000원| 조회(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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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직의 혈의 누를 읽고
    이인직의 ?혈의 누?는 친일파 이인직이 친일적인 사상을 농후하게 풍기는 반민족적인 작품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교과서에서도, 어는 권장도서목록에서도 ?혈의 누?라는 작품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나는 이번에 이 작품을 처음 읽게 되었다. 나는 이인직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국사책에서 이 이름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안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인직의 소설은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혈의 누?를 읽게 되었다. 이인직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혈의 누?라는 단어는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고등학교 국사책 마지막 단원의 근대문화의 태동이라는 부분에서 ?혈의 누?라는 작품의 이름을 분명히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공부하게 되기 전까지 내 기억 속의 ?혈의 누?는 신소설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최초의 근대적 소설 중 하나일 뿐이었다.이 작품의 배경은 청일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평양성이다. 청일전쟁이 막 지나간 평양은 온통 울음 천지, 송장 천지, 피란군 천지였다.) 피비린내가 만연한 평양 성 밖에서 30세 정도 된 여자가 옷을 풀어헤친 채 허둥거리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이 여자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어느 외간 남자를 만나 봉변을 당할 뻔도 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하려고 대동강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 여자가 미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농군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고, 자살기도까지 하게 되는 이유는 사랑하는 딸과 남편을 한순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여자의 모습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나마 그 때 조선의 참혹한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나라 싸움에 이렇게 참혹한 일을 당하는가.’라는 분노와 아픔이 내 안에서 솟아나왔다. 새우가 누구이고, 고래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남의 나라 싸움에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내 나라의 옛 모습이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으로 인해 이런 참혹함이 벌어졌는데, 그리고 작가가 이토록 생생하게 조선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왜 일본에 대해서는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작가는 개화사상이나 신교육사상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고 일본을 그 본보기로 여기고 있다.’라고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작가는 여주인공 옥련을 일본인의 총에 맞게 함으로써 옥련을 일본으로 보냈고 작가가 옥련을 일본으로 보낸 이유는 조선에서는 받기 힘든 근대적 교육을 일본에서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옥련을 또다시 시련에 처하게 만들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만든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교육을 통해서 옥련을 조선 여자들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눌리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며, 또한 여자들도 사회에 유익하고 명예 있는 백성이 되도록 교육할 것이라고 마음먹는) 신지식인으로 성장시킨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개화사상이나 신교육사상 등을 본받을 수 있고 이를 배울 수 있는 모델 중 하나로 일본을 선정했구나’라고 생각하였다.이렇게 생각은 하였으나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작품 속에 나타난 조선에게서는 일말의 희망이나 단 하나의 배울 점도 없다는 작가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외세에 의해서 가족이 해체되었고 그로 인해 온갖 고난을 겪은 옥련이 신교육을 받은 후에 조선으로 돌아가서 계몽의 선구자가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책임임에도 옥련이 조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나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조선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전혀 정비되어있지 않았고, 백성들은 이상이나 교육보다는 한 끼 밥걱정이 먼저이고, 그것의 해결이 절대적으로 우선인 상태였다. 이러한 조선에 무슨 희망이 있겠으며, 무엇을 하는 것이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고, 어떻게 하여야 이들을 옳게 계몽시킬 수 있는지 쉽게 판단하기 힘들었다. 옥련이 돌아 가야할 조선에는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고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며 마구 욕을 해대는 백성들과 ‘게딱지’같은 집에 사는 불쌍하고 무식한 백성들이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개화와 신교육이 이해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작가는 개화와 신교육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옥련이가 그 일을 해낸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 것 같았다. 작가가 여러 가지 편리성 때문에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하고, 고아로 만들었는지는 대충 이해가 갔지만 그로 인해 주인공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하기 보다는 운명에 이끌려서 살아온 옥련이가 조선에 가서 독자적이고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주인공 옥련을 통해서 남성으로 대표되는 당대 사회를 계몽시키고자하는 작가의 직접적인 의도가 보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확신과 의지를 가지지 못하는 옥련 속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작가의 남성적 시각)이 보이기도 했다.
    인문/어학| 2004.06.06| 2페이지| 1,000원| 조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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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 채만식의 태평천하
    채만식의 「태평천하」Ⅰ. 들어가며채만식은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가 중 한 사람이며, 「태평천하」는 그 개성이 뚜렷이 발휘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태평천하」는 1938년 「天下太平春」이라는 제목으로 『朝光』지에 연재되었으며, 이광수의 「무정」과 홍명희의 「임꺽정」등과 함께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얻은, 흔치 않은 명작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평천하」에 대해서 한국 현대 사실주의 소설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소설 기법에 대한 지각이 결여되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적 평가는 채만식 소설 작품에 대한 부분부정에 해당할 것이며 1930년대의 닫힌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부하고 있으며 현실을 비판적으로 소설 공간에 수용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태평천하」는 소설사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본고는 「태평천하」를 통해 채만식이 조명하고자 했던 당대 현실과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식을 작품에 주로 사용된 언어기법과 작품 속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1) 작가 채만식백릉(白菱) 혹은 채옹(蔡翁)이라는 호를 가진 채만식(1902~1950)은 전북 임피에서 중농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향리의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 유학, 중앙고보를 거쳐 와세다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중퇴, 귀국했다). 사립학교 교원에서 시작, 신문기자?잡지사 기자로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개벽』등을 거치다가 1936년 이래 다시는 취직을 하지 않고 “망식 망침 정신을 차려 문학”에 전념하여 「탁류」(1937)?「태평천하」(1938)등의 걸작을 비롯, 많은 작품을 써내었다. 1939년 개성 우거시 독서회 사건으로 잠시 구속되었는데 이후 친일문학에 기울어서 「여인전기(女人戰記)」(1944)를 쓰기에까지 이르렀다.이같은 채만식의 생애는 수필이나 신변사를 그린 소설 등에서 뚜렷하듯 몰락과 가난체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족들(아버지와 형들)의 미두?금광사업에서의 실패로 인해적떼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하기까지 하였다. 그 때 요행히 목숨을 건진 윤두섭(윤직원 영감의 본명)은 화적들이 물러간 뒤 참경을 목도하고 “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라고 비장하게 외쳤다. 그는 자신이 돈을 번 이유를 자신의 치재 수단과 시운에서 찾으며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골 향교에 돈을 주고 직원을 지내다가 서울에 올라온 윤직원은 지금 세상을 '태평천하'로 여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이 없고 고리대금업 또한 날로 번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직원은 두 손자(종수, 종학)를 각각 군수와 경찰서장을 만들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사서 매일 마신다. 윤직원의 외아들 창식은 첩살림을 하면서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으며, 노름과 계집질 등에 수천금을 뿌리며 산다. 맏손자인 종수 또한 군수가 되겠다는 것을 핑계 삼아 시골 군청의 고원으로 취직해 있으면서 첩살림과 주색잡기로 수만금을 탕진하고 있다. 윤직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둘째 손자 종학은 부인과 이혼하겠다고 성화를 피우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착실히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다. 윤직원은 열네 살 정도 먹은 계집애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나, 매번 실패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사귀고 있는 열다섯 짜리 동기(童妓) 춘심에게 갖은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춘심 또한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연애를 즐기고 있다. 진실이 어떻든 신선놀음을 즐기고 있는 윤직원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창식이 전해준 전보에는 '종학, 사상관계로 피검' 이란 활자가 찍혀있다. 자신의 가장 큰 보람이었던 손자 종학이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분노하여 비틀거리며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고 소리를 지른다.Ⅱ. 채만식이 선택한 ‘풍자’ 와 언어적 기법‘대체 그러면 무얼 어떻게 해야 소설을 잘 쓰는 것이냐?’ 이 말에 대햐여 나는 기교론의 폄 들기를 무릅쓰고 우선 ‘기교, 반어, 자기 폭로, 비유, 과장, 희화화, 조롱, 기지, 비꼼, 냉소, 아이러니 등의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 모든 것은 대상을 격하시키고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웃음은 단순히 해학적인 웃음이 아니라 그 속에는 부정적인 인물과 함께 그 인물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에 냉소적인 웃음이 된다.그리고 이것은 전통적인 이야기 구연방식에 의해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즉 서술자와 독자가 이야기 마당이라는 공간 속에 화자와 청자가 되는 것이다.나이?......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증으로 천식(喘息)기가 좀 있어 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인력거 쌕이 멫푼이당가?”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이었습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태평천하」에서 화자는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의 이름으로 작품 속에 선명하게 노출되어있으며 ‘―입니다’ 또는 ‘―이지요’ 와 같은 존칭 종결형 어미를 사용하여 직접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관중이 없어서 웃어주지 않으니 좀 섭섭한 장면입니다.’라는 말은 작가의 말이라기보다 한편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꾼의 말에 가깝다. 또한 현재진행형의 시제, 상투적인 격언 및, 형용구, 관형어의 사용을 통해 친교적 언어로 소통 하고 있으며 욕설과 비어를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해학적이고 걸직한 분위기로 만든다. 독자는 작가와 한편이 되어 작중 인물에 대해 우위를 지키면서 작중인물을 저만치에 두고 그들의 행위를 구경하는 관중이 될 수도 있고, 평자가 될 수도 있다. 화자와 청자의 거리는 좁혀지고 대신 작중 인물과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지면서, 청자는 화자의 작중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 평가를 쉽게 공유할 수 있다. 그리 그 과정은 막연하기는 했지만, “시대가 차차로 금권(金權)이 유세해감을” 인식하고 ‘돈’의 획득을 최고 목표로 한 일로매진의 신작로 행진이었다.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누구보다도 앞서 그것을 따라온 윤직원을 자본주의 정신에 근거한 당시 법과 제도가 빈틈없이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직원의 재산 축적 속도는 윤직원의 부(父) 윤용규의 죽음 직후 상속 재산 삼천석이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 가권을 거느리고 서울로 이사를 해 오던 그 때의 집계로’ ‘벼를 칠만석을 받았고’ 지금은 ‘십만원 가까운 현금을 예치’해 놓을 정도로 빠르다. 이는 식민지 지배 체제의 보호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는 화적떼의 위협 속에 놓여있던 구한말에 비해 경찰과 군대가 조선 땅을 확고하게 지켜주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태평천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작가는 이런 부정적 인물을 비판함으로써 그 인물이 긍정하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윤직원의 비대한 체구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더불어 제시되는 ‘윤두꺼비’라는 별명은 윤직원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기괴할 느낌을 줄 정도의 체구를 가진 노인에 대한 묘사는 그의 재산 축적이 철저하게 타인에 대한 착취에 기반 해 있음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채만식은 성숙한 일본 자본주의의 이식이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 놓인 조선의 민족자본을 어떻게 침탈하는가를, 그리고 자본주의화의 진전에 따라 이득을 보는 계층과 오히려 손해를 보는 계층이 명확하게 구분됨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일본 자본주의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놓인 당대 현실에서 대다수의 조선인은 갈수록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2) 윤창식, 윤종수윤창식은 부친 윤직원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인물로, 부친으로부터 준금치산선고를 받을 만큼 생활에 무능력하며, 개화기에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지만 일정한 삶의 목표를 잃은 채 방탕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자신의 건강과 돈에 집기대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작품 속 인물들 중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조카 경손에게도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채만식이 이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종학 또한 자기 아내를 돌보지 않는다면 점에서 형과 부친의 지닌 한계를 답습하는 듯 보이지만 종학의 그것은 전통적 결혼 제도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신분상승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결혼을 주관했던 조부의 소망을 깨뜨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학은 조부와 대칭적 위치에서 미래가 도래하기를 소망하는 인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종학은 이혼을 주장함으로써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내세워 양반집안과의 결혼을 추구했던 조부의 소망을 깨뜨리고 있으며, 일본이 독립운동과 함께 탄압하고 있는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반사회적이고 반민족적인 조부에게 저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학은 조부와 부친의 삶이 지니는 한계를 깨뜨리고 당대 민족과 사회의 상황을 바라보고, 현실을 의식하는 지식인인 것이다.그러나 채만식은 오히려 윤직원을 확대하고 종학의 모습은 축소하고 감추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서도 소설 내에서의 설명이나 태도를 극히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작품에는 정확히 종학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사상관계로 경시청에 붙잡혔다는 내용을 알림으로써 윤직원의 꿈을 완전히 깨뜨리고 있을 뿐이다.4) 고씨부인 등의 여인들「태평천하」에는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실질적으로 남편이 없다. 형식적으로 부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하더라도 이들은 모두 서울아씨처럼 진짜 과부와 다를 바가 없다. 윤직원은 틈만 나면 고씨부인에게 ‘짝 찍을 년’이란 말을 하며 싸움을 건다. 이는 고씨 또한 마찬가지다. 고씨는 남편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다. 다른 여인들도 고씨와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이러한 박복한 삶에서 오는 고독과 슬픔은 상호간의 반목과 불신과 시기를 조성하여 「태평천하」.
    인문/어학| 2004.05.16| 4페이지| 1,000원| 조회(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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