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20대의 가정주부 델마역의 지나 데이비스와 그녀의 친구인 레스토랑 여종업원 루이스역의 수잔 새런든이 펼치는 이 영화는 죽음의 여행을 그린 로드 무비의 장르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한 획기적인 작품이다. 미국 남부에 있는 아칸소 주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델마와 루이스는 권태로운 생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주말을 이용하여 낚시 여행을 떠나게 된다.어느 마을에 도착한 델마와 루이스는 술집에 들러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과 함께 많은 술을 마시게 되는데, 술에 취해 낯선 남자와 춤을 추던 델마가 술집 주차장 안에서 그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려고 하자 그때 루이스가 나타나 그 낯선 남자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이때부터 델마와 루이스는 1966년도형 T-버드 컨버터블 자동차를 타고 오클라호마와 뉴멕시코를 거쳐 아리조나에 이르기까지 낚시 여행이 아닌 경찰들의 추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장정의 탈출을 한다.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끝없는 황토빛 광야, 그리고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는 암석, 대지들 사이로 한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가는 델마와 루이스의 운명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와 해방과 실존까지 느낀다.이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보여지는 델마와 루이스의 불안한 모험의 여정을 통해 드넓은 광야의 모습을 황량하면서도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은 촬영 감독 애드리안 비들(Adrian Biddle)의 감각이 뛰어나고, 여기에 절박한 두 여자의 심정을 그려내는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컨트리 음악도 오랜 여운을 주고 있다.이 영화에서 델마와 루이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탈출하는 여정속에 만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녀들을 이해하는 형사 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몰상식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권태로운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여자들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서이다.여행을 떠날 무렵만 해도 매우 소극적인 성격의 델마가 오히려 멀쩡한 사기꾼 제이디에게 전 재산을 털리고 나서 강도상의 관념들과 틀 속으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벼랑 끝으로 뛰어내리자. 나는 이런 자유를 버릴 수 없어. 나에게 이 죽음은 자유의 극치일 수도 있어. 그래..." 결국 델마와 루이스는 벼랑 끝을 선택하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정말 그들에게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물론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자기들을 옭아매던 세상의 사슬들과 싸워봐야 하지 않았을까? 그는 벼랑으로 뛰어내리기보다는 거기서 살아 나와 세상과 싸워야 했다.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형으로 만든 세상과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그가 벼랑 밑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훌륭한 것이다.4. 참삶 찾기의 술래가 되어볼까?길이 시작되면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살아가는 길이 고행의 반복과 변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굳이 생존을 고집하는 걸까?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그 무엇, 참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과 참삶의 주인공들과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끓어 넘치는 믿음과 사랑을 품고 몇 십년을 살아온 델마는, 여행 첫날 저녁 건달에게 강간을 당할 뻔한다. 강간 경험을 벗지 못한 루이스는 그 녀석을 향해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다. 이때부터 적대 세력인 세상과 두 여인의 힘겨운 술래잡기 여행은 팽배한 긴장을 선물하면서 숨가쁜 경기로 돌변한다.어떤 협상도 할 수 없고 돌아갈 곳도 없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만신창이 몸으로 찢기고 부서져서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마침내 그들이 발견하게 된 참 자유의 그곳. 바로 죽음으로써만이 진정한 사람다운 삶의 단맛을 얻을 수 있음을 그들은 깨닫게 된다. 모두가 자신들의 결백과 정당함을 믿어주었더라면, 아니 그보다 앞서 사랑과 믿음이 한낱 공허한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이 모든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가슴과 넉넉한 손길을 가진 삶의 무대로 꽉 채워져 있었더라도 그녀들은 죽음을 택했을까?이 영화 속에서 무지하고 순진한 천사 델마는 세 즘 운동은 70년대 들어서면서 여권신장을 위한 단순한 이권운동, 사회운동의 차원을 넘어 보다 다양한 시각과 경향으로 발전하였다.페미니즘의 일반적인 의미는 남녀 동등권을 목표로 하여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인 모든 권리의 확장을 추구하는 주의라고 한다. 진정한 여성해방,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 반반씩 동등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성적 불평등 구조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고 나아가 성적 불평등 체제의 또 다른 피해자라 할 남성도 편견에서 해방시켜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다. 즉 여성해방운동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남성과 여성 서로가 어느 다른 성을 지배하거나 지배받는 것이 아닌 대등한 존재로서 공존하는 인간해방의 구현에 있는 셈이다.영화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의 실상에 비해 남성중심의 가치관에 의해 더욱 심하게 왜곡 변형되어 있다. 그것은 영화가 여성을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로 사고방식을 굳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장치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따라서 페미니즘 영화는 남성중심적 영화의 숨은 의도를 깨닫게 하고 여성의 자아를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만드는 노력을 담은 영화를 모두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프랑스의 진보적 영화잡지 《에끄랑》에 실린 기 엔벨과 모니끄 마르띠노의 「영화 속에 일상화된 성차별주의」는 미국 영화라는 범위를 벗어나서 일반적인 대중영화 속에 나타난 여성의 전형들을 12가지 유형으로 분석해 보이면서 왜곡된 여성상의 거짓 정체성을 고발한다. 1)영화 속 여성은 항상 남성이란 위치를 내세워 그녀를 위압하는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다. 2)영화 속 여성은 흔히 남성의 가치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로 보여진다. 3)영화 속 여성은 늘 보이지 않는 감정의 감옥에 갇힌 존재로 묘사된다. 4)영화 속 여성은 남성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되지만 그 자신 창조적 주체는 되지 못한다. 5)영화 속 여성은 본질적으로 그녀의의 사연, 즉 루스와 잇지라는 성격이 다른 두 여자의 우정과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항거와 자립, 흑인에 대한 차별 철폐 등의 사건도 여성의식의 주요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우정을 통해서 여성성을 되찾고 인간주의를 구현한 것으로 독일의 여감독 퍼시 아들론의「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여기에서는 간단한 마술을 통해 미 서부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흑인 카페에 생의 활기를 불어놓는 독일 아줌마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4. 여성의 항거, 강한 여성상마지막으로, 여성의 항거와 강한 여성상을 보인 페미니즘 영화를 들어보도록 한다. 여성이 남성을 공격하거나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내용이거나 남성보다 강한 여성상, 이를테면「밴디드 퀸」「안나 이야기」「에이리언」같이 여성 투사나 여성전사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가 있다. 이 중에서 스페인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의 「안나 이야기」를 보자. 서크스단 명사수 안나(프란체스카 네리)는 신문기자 마르코(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사랑을 나눈다. 행복한 나날을 꿈꾸던 그녀는 어느 날 밤 3명의 불량배로부터 집단강간을 당한다. 이에 그녀는 총을 들고 길을 나선 집념 끝에 3명의 강간범을 살해하고 경찰에 좇기다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성폭력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다룬 영화라 생각된다.5. 사이비 페미니즘, 여성영화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여성문제를 다룬 영화 중에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엔 곤란한 것이 몇 편 있다. 이들은 '여성영화'라 하여, 여성중심주의를 표방하는 페미니즘 영화와는 구별하기로 한다.이러한 예로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남자 직장상사를 골탕먹이는 세여직원들의 해프닝을 담은 「나인 투 화이브」, 실업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자로 위장한 남자 주인공이 텔레비전 스타가 되어 여성의 자각을 외치는 아이러니를 그린 코미디 「투씨」, 능력은 있으나 뚱뚱한 외모 때문에 직장과 사랑을 한꺼번에 잃은 디자이너가 새 직장과 사랑을 얻는다는 출세ㆍ연애 성공담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코르셋 」등이 있다.Ⅳ. 여성학의 이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데 있다. 여기서 긍정적이라고 함은 양육하고 먹이고(nourishing) 돌보고(caring) 여성적 가치관이라든가 여성만의 섬세한 미적 감각 혹은 여성이 억압받고 거절당한 역사를 가졌으므로 오히려 동정심을 가지고 사람을 볼 줄 알며 인생경험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더 복합적이고 풍부한 지식을 가졌다는 등의 여성의 특성이 이제까지는 남성문화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으나 여성학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것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의미다.무엇보다도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여성은 남성의 권력이나 사회의 구속에서의 해방에 앞서 자기 자신의 속박과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 변화를 위한 여성학의 교육적 전략은 다음과 같은 성과를 기대하게 한다.첫째, 여성의 의식 개선으로 여성이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 사회와 경제 발전에 더 많은 공헌을 하게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몸과 마음이 약하고 분별력과 사고력도 떨어지므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입에서 해방되어 여성도 자신을 가지고 열망과 포부를 펴야 한다는 기대에 찬 교육으로 바꾼다 여성의 인생목표가 남성의 목표 수준과 같아져야 비로소 진정한 남녀평등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둘째, 참된 남녀의 인간관계를 회복시킨다. 너무나 오랫동안 여성을 남성권력 중심의 사회구조와 환경 속에 제한시켜 살게 했기 때문에 현상태의 남녀관계와 의존적인 여자의 속성이 자연적이며 천부적인 것으로 의식화되어 버리는 문제가 생겼다. 여자는 그저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다른 성(性)을 가진 인간(남성)의 부속품쯤으로 사회화시키기를 멈춘다.셋째, 인간의 가치 실현에 있어 남성이 단지 신체적으로 남성의 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여성보다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된다. 성별에 의한 정신적ㆍ사회적 차이는 신체적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 후천적ㆍ문화적ㆍ교육적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한다.Ⅴ. 페미니즘의 이론적 흐름여기서는 여성문제를 설명하는 여성해방이다.
라캉의 《거울단계》1936년 8월 3일 오후 3시 40분. 라캉은 마리엔바트에서 개최된 제 14차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거울단계』(Stade du miroir)라는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의 중요성은 결코 소홀히 평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논문을 통해 라캉은 정신분석 운동에 공식적으로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여러 해 동안 정신분석계에서 논의될 인간의 자아라는 개념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새로운 형태로 또는 변화된 형태로 평생 그를 따라 다니는 사상적 모티프가 되었다.거울단계는 단순히 개인 성장사(成長史)의 한 점을 차지하는 시기가 아니라 하나의 경기장(stade), 인간 주체의 싸움이 영원히 치러지는 그런 경기장인 것이다. 경기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라캉의 말장난과 비유적 재담은 처음 보기에는 장난스럽고, 자의식적인 문장 형식이라는 순간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장난은 그 뒤에 더 거대한 야망을 감추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인생 주기에서 개인의 인성(人性)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는 최초의 순간을 찾아보자는 것이며, 나아가 정신분석이라는 도덕적 드라마의 새로운 시작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거울의' 순간에 대한 라캉의 설명은 자아의 탄생 신화와 자아의 타락 신화를 동시에 마련해 준다.이러한 새로운 자아 설(設)의 밑받침이 된 경험적 관측 사실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된 유아의 행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시기의 유아는 거울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보거나 어른 혹은 다른 아이의 모방적 동작에서 자신과 유사한 동작을 볼 때, 하나의 특징적 반응을 보인다. 유아가 이처럼 바라보는 순간은 극적인 발견을 하게 되는 순간이고, 막연하게나마 '나는 저거(거울에 비친 이미지)야' 혹은 '저게(다른아이의 동작) 나야.'라는 명제를 구성하게 된다. 라캉은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과 그 이미지에 매혹되는 태도 그리고 그러한 반응의 장난스러움을 주목한다. 이런 모든 점에서 유아는 같은 나이의 침팬지와는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이의존해야 하며, 또 자기 자신의 몸뚱이도 부분적으로밖에는 놀리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 거울 앞에, 비록 조잡한 형태이긴 하지만 하나의 자율성 또는 개인의 통제력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울 이미지는 이제 막 태어나기 시작하는 자아의 아주 자그마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은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아이는 자아의 나중 모습이나 저 멀리 아득한 지평선 너머에 있는 '성숙된' 자기, 자수성가한 어른, 그리고 사회적 성공의 희망 등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즐거운 유희는 장난을 잘 치고 방황하기 좋아하는 어른의 지능을 미리 말해 주는 예고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아이와 거울만 있는 그 현장은, 비록 책임 있는 행위자(어머니, 유모, 아버지 등)로 생각될 만한 존재가 없더라도, 형성중인 아이의 자아에 거짓과 기만을 주입시킨다." 이런 주장이 라캉의 초기 논문에는 하나의 후렴구처럼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말하는 어조는 자신에 넘치는 권고의 어조이다. 라캉 이전의 정신분석학자들은 '겉으로만 정직해 보이는 것에 불과한 자아를 정직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생각을 폭로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거울에 비친 이미지(또는 이미지에 매혹되는 것)가 실제로는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간이 진리를 향해 진보하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표면만을 제공하는 빛이 없는 거울'을 넘어서야 한다.무의식과 억압을 가장 핵심적인 프로이트의 용어라고 생각해 왔던 독자는, 이런 용어들이 라캉의 저작에서는 말석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 대신 라캉 이전에는 정신분석학에서 별 의미가 없던 소외(alienation)라는 용어가 핵심어로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캉은 거울에 사로잡힌 아이는 망상적인 자아 형성의 길에 오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신병원의 광기에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라캉은 아이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이 뒤따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 적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라캉은 이와는 달리, 미묘한 변용(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마르크스는 1884년 「경제학-철학 수고」나 「그룬트리세」에서 소외의 뜻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개인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또 그 노동의 결과물(제품)에서도 소외되는데, 이것이 모든 소외 관계(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 개인과 그의 신체)의 원형이 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소외 개념을 제시한 다음, 그 소외를 극복하는 재통합의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소외라는 용어가 각 단계를 거쳐 나가면서 인간사회의 폭넓은 지형도(地形圖)와 논리적인 정치 메시지를 제시해 주었다.이에 비해 라캉의 소외는 마르크스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우선 거울 단계에서 발생한 원형적 소외가 사회에 침투되는 방식은 산만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라캉의 가설에는, 소외가 조직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임상적 자료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런 지형도나 메시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만다.라캉의 주장은 인간은 적정 시기보다 일찍 태어난다. 그래서 인간이 운동신경을 완전히 장악하고 또 자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울 이미지는 '나'의 신기루이며, 아이가 나중에 획득하게 될 통합 조정의 잠재적 능력이 언젠가는 실현될 것임을 예고한다. 실제로 거울 이미지는 이런 능력의 발달을 촉진시킨다. 여기까지는 라캉의 설명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소외적 방향'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개인(아이)이 영구히 자기 자신과 불화(不和)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동결(고정)시킬 수 없는 주체의 과정을 끊임없이 동결시키려-즉, 늘 움직이는 장(場)인 인간의 욕망을 고정시키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종(種)에게는 이런 소외시킬 수 없는 소외가 있다. 그러나 이 소외는 잡종의 철학적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괴기 '파편화된 신체'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의 공식 용어로부터 과감하게 일탈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환상은 자아의 '소외하는 동일성'과 구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환상을 통해 개인은 아주 어릴 적의 신체적 불안정성에 대한 기억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릴 적에 신체가 전반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느낀다. 이런 기억과 관련된 불안이 안전한 몸을 가진 '나'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촉진시킨다. 그런데 자아를 향한 이러한 투사는 파편화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인력(引力)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당한다. 그리고 자아의 단단한 무장(武裝)이 오히려 개인에게 하나의 폭력을 가하여 또다시 그의 파편(disjecta membra)을 흩뿌리게 한다.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라캉에게도 동일시는 정신적인 장치의 주요 동기이다. 동일시는 활력의 원천이며, 개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극적인 상호관계의 촉진제이다. 그러나 라캉은, 동일시라는 기제가 막강한 설명력을 가지려면 아주 초창기의 원형 상태에서부터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프로이트와 의견을 달리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시작될 즈음에는 아이가 이미 너무 커 버렸고, 또 아이의 동일시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 동일시의 원칙에만 바탕을 둔 설명은 어색하거나 불분명한 것이 된다는 주장이다. 라캉은 오이디푸스 단계가 촉발하는 경쟁의식과 별명짓기 놀이를 넘어서서 그보다 앞 단계를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즉 어린아이가 단 하나의 욕망 대상, 단 하나의 별명인 자기 자신만을 갖고 있는 그 전의 세계를 주목하라는 것이다.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적 동일시를 최초의 근원적 순간-남자아이나 여자아이나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가장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순간-으로 파악했으나, 라캉은 오이디푸스가 2차적 순간이며, 자아를 진정시키고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오히려 라캉은 파괴적이고 문제적인 최초의 동일시가 거울 단계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라캉은, 거울 단계에서 주체의조금이라도 정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올바른 의미의 세계인 '상징적 다음성'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자아와 지식의 평행 관계는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즉 자아의 구조와 지식의 구조가 소외의 의지 혹은 추구된 광기의 의지에 의해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외견상 대답할 수 없고 처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에 라캉이 드러낸 거대한 규모에 비해 볼 때, 프로이트의 이론을 재해석한 그의 논지는 너무 빈약했고, 라캉이 나중에 정신분석의 '근본'이라고 지명했던 두 가지 개념(무의식과 전이)이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특히 눈에 띈다. 그리고 프로이트에게는 물론이고 후기의 라캉에게도 아주 중요한 구조적 개념이면서 영원히 이론적 추론을 촉발시키는 개념인 무의식은, 이 단계에서 아직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은데다가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에 불과하다. 바꾸어 말하면, 이 시기의 라캉은 정신분석이 곧 자아와 상상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어린아이가 처음 거울을 보고 그 속의 나를 자아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내 속에 그려진 모습으로 보고자 하는 것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내가 바라본 나의 거울 이미지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미지와 같다. 내가 나 자신을 직접 보지 못하고 거울을 통해 바라보듯이 우리는 타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항상 우리 마음속에 그려진 즉 거울에 비친 타인을 바라볼 뿐이다. 자아가 타인에 의해 형성되듯이 타인은 우리(나)에 의해 형성된다.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 그대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내 마음에 그려진 그 사람의 이미지를 사랑하게 된다. 그 이미지는 조금은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을 그렸을 수도 있고, 그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이미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내 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사랑한.
20세기 안티패션현대사회의 특징 중 중요한 요소라면 복수의 문화가 공존하는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점이다.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주류문화에 속하지 못하는 구성원이 증가하게 되고 이러한 집단은 심리적으로 소외감과 좌절을 느끼게 되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하위문화이며, 지배적인 문화나 사회로부터 구별되기에 충분한 행동상의 특징적인 패턴을 보이는 인종, 지역, 경제, 사회집단의 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하위문화 집단 구성원들은 특이한 가치관, 행동, 생활양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외모와 의복을 사용하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주류유행에 대한 반유행을 형성함으로써 하위문화 특유의 집단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반유행이란 다양한 하위집단에서 자신들의 특수한 정체성과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현재의 유행과는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외모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안티패션(반항패션)은 기존 사회에 대한 도전이나 반항의 의미로서 마리앙뜨와네트나 댄디, 로트렉의 파리 보헤미안, 그리니치 빌리지에서의 말콤 크로우리스를 연상시킨다. 이들의 꿈은 안티패션을 통하여 사교계와는 다른 사회의 전반적인 규칙에 대항하고 반대하는 방법의 일편으로 채택되고 있다.또한 자신만의 모습을 보다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안티패션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들은 안티패션 복장을 통해 비조화와 독창성을 자연스럽게 나타낸다. 반면에, 오트 쿠튀르에서의 안티패션 연출은 기존 안티패션과는 다른, 즉 오리지널 안티패션이 지닌 반항적인 상징을 왜곡시켜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최근 히피룩이 재등장하였으나 그것은 더 이상 안티패션의 의미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패션의 주류로서 표현되어졌다. 따라서, 수십년 전의 난폭한 히피 스타일이 현재 디자이너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히피패션을 입은 현재의 여성에게서는 반항적인 이미지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디자이너들은 안티패션의 색상, 스커트 길이 또는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지만, 그들 나름대션 디자이너들이 받아들여 상품화하여 다시 일반 대중에게로 돌아가는 일련의 패션의 흐름을 갖고 있다. 그들의 힘은 매우 커서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s)와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와 같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의 기획전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스트리트 패션은 여려 분야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스트리트 패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Ⅰ. 주티(Jootie)와 카리비언 스타일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흑인 하위문화가 현대의 스트리트 스타일의 근원을 형성하였는데, 이는 서인도 제도로부터 흑인 이주자들이 영국과 미국에 도착한 1940년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흑인계 미국인들은 20세기 초 세계와 역행하는 그들만의 패션 중심가, 할렘의 팽창으로 패셔너블한 옷의 과장된 변형을 통하여 자신들만의 저항 스타일을 창조하였다.주티스(jooties)는 사회, 경제적으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빈곤과 자기 소외에 대한 반란을 의미하는 값비싼 소재와 사치스런 액세서리의 과장된 주트 슈트(zoot suit)를 입었는데, 그 스타일은 재킷길이가 허벅지 중간까지 길게 내려오고, 더블 브레스트에 라펠이 넓었으며, 서스펜더로 지탱한 페그탑 바지와 바지 허리는 거의 가슴에까지 이르렀다. 또 바지의 윗부분은 풍성하였으나 바짓단은 다리를 넣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고 과장된 모습이었다.한편 쿠바혁명 이전의 하바나는 토착음악뿐만 아니라 재즈음악으로 새로운 스타일적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으며, 이 카리비언 스타일(caribbean style)은 영국의 스트리트 패션에 영감을 주었다. 카우보이 의상으로 대표되는 웨스튼 스타일(western style)은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케 하며 미국의 신화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부츠, 스테트슨(stetson) 모자, 자수된 재킷, 부트레이스(bootlace) 타이 등는 '모더니스트(modernist)'의 준말로 테디 보이 스타일에 대한 반발로서 1958년에 영국 내를 휩쓴 이탈리안 룩이다. 대중, 대량문화, 플라스틱, 모조문화의 전성기인 이 시기에 기성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 사이에 나타난 문화가 바로 모즈로, 미국에서는 흑인 게토(ghetto) 사이에 유행했고 이들은 모더니스트로 자처하였다.모즈 후기의 의복행동은 초기의 재킷, 부츠, 리바이스 스타일의 기본 구성과 마약 사용이 지속된 가운데 댄디한 모습은 희미해지고 보다 심플하고 꾸밈없는 옷차림이 많아졌다. 새롭게 모즈가 된 소년들은 최저 한 벌의 슈트를 가지고 있었고, 보는 방향에 따라서 미묘하게 색깔이 변하는 모헤어를 사용하였다. 또 숫자나 문자의 프린트가 있는 미국제 티셔츠나 파카를 착용하였다. 1960년대 초의 모즈들은 좀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는 뜻으로 밝은 색상을 선호했다.Ⅲ. 히피(Hippies)와 스킨 헤드(Skin Head), 루드 보이(Rude Boy)1960년대의 세계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동서양 진영에서의 숨가쁜 경쟁의 결과로 제2의 르네상스라 할 만한 경이적인 성장기간이었다. 이런 상황을 사람들은 활기찬 1960년대(swinging sixties), 청소년 혁명시대(youth revolution), 패션의 혁명시대(fashion revolution)라고 하였으며, 서구에서의 청소년 혁명은 그때까지의 의복, 음악, 가치관, 성 관념, 정치, 종교등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동성연애의 등장으로 인한 성 역할의 혼란은 의복과 헤어 스타일에 유니섹스 모드가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주현상과 반대로 농촌으로의 이탈이 생겨났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1960년대는 영국의 하류층 노동자 계급 10대들이 만들어 낸 모즈(mods), 거칠고 반항적인 아웃사이더를 표현한 로커즈9rockers), 무정부주의와 성에 대한 언급을 자유롭게 한 히피(hippies), 1965년 캘리포니아 홀리스터 폭동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오토바이족 문양 등이 단색 직물을 제치고 사용되었으며, 밝고 선명한 색상이 차분한 색상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플레어형과 바짓단 부분에서 종모양으로 퍼지는 바지가 유행하였고, 스카프나 머리띠, 홀치기 염색된 손수건을 머리나 목에 감고 다녔다.히피복식에는 저항과 약물문화, 사랑과 자연주의, 에스닉, 개인주의가 배어 있다.히피의 기본적인 의상은 청바지로, 엉덩이를 중심으로 신체에 밀착되게 입음으로써 굴곡미를 드러내어 에로틱함을 표현하였다. 긴머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형태였다. 남성복의 장식화와 여권운동의 영향으로 남성은 긴머리에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를 걸친 반면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들지 않아 청바지, 티셔츠, 파카 등의 의류를 즐겼다. 사이키델릭 아트의 영향으로 나타난 히피패션은 사이키델릭 프린트의 직물과 사이키델릭 바디페인팅을 사용하였다. 사이키델릭 패턴의 꽃무뉘 셔츠나 재킷, 스커트, 꽃무뉘 테의 선글라스, 청바지에 직접 그려넣은 무늬로 애용하였다. 자수, 손뜨게 등 수작업의 부활과 함께 천연섬유를 선호하였다.서로 다른 민족집단의 미적 특성과 제휴하거나 또 다른 문화에 손을 뻗치는 것은 안티패션의 또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외국문화 쪽으로 향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 주류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민족의상은 최신 유행의 디자이너 패션보다는 다른 문화의 복장에서 미와 활력, 그리고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패션이다. 원시문화를 상징하는 복장을 통해 기술문화의 겉치레를 부인하고, 다른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고 올바로 인식하여야 함을 나타내고자 한다. 색상은 낡은 듯한 분위기를 선호하여 회색, 자주색, 연한 보라색 등 바랜 느낌의 색을 사용하였고, 인디언 비즈나 헤어밴드, 문신 등을 액세서리로 사용하였다.히피문화는 공동체적 조화와 동시에 개인주의적인 풍토를 추구하였다. 히피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바는 내적 자유나 새로운 자아발견과 같은 개인적인 것이었으며, 히피패션의 가장 큰 특징도 자의식적인 개성에 있었다.영국한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엄청난 양의 메이크업을 하여 양성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1976년 런던의 킹스로드를 중심으로 히피가 남겨 놓은 베이비 붐 세대에 반대하는 충격적이고 요란스러운 몸치장을 한 젊은이들의 혁명인 펑크(punks)이다. 이들은 검정색 가죽 재킷을 선호하였고, 구멍낸 티셔츠 위에 메시지를 프린트하였으며, 핀이나 플라스틱 옷걸이, 면도날들의 아이템을 사용하여 펑크패션을 특징지었다. 또 안전핀을 귀, 입술 등에 장식하기도 하고, 헤어스타일도 핑크와 오렌지, 녹색의 선명한 색조로 머리칼을 물들이고 피임용 젤을 붙여 대못처럼 뾰족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 밖에 1970년대 하위문화로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백인의 펑크 스타일과는 다른 흑인들의 라스타파리(rastafari)가 있었다.펑크(Punk)는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이 기성사회에 대한 반항을 복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반모드 현상으로, 영국의 특수한 경제 불황하에서 일부는 팝스타를 모방하는 젊은이들에 의해서, 일부는 히피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펑크패션은 1976년 런던 록 밴드의 무대의상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고의로 추하게 입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는 복식은 단정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존의 미의식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며, 이상한 것을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기존의 패션 주류에 반대하는 거리 패현의 일면을 보여준다.사전적 의미로 펑크란 '가치가 없거나 하급의 것, 풋내기, 젊은 악당, 젊은 방랑자,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으로,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젊은 세대의 사상과 정신의 변혁은 급변해 가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지닌 형태를 원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러한 현상이 1970년대 후반에 갑자기 나타나게 되었다.펑크의 특징은 새로운 질서를 위한 파괴적인 행위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패션이나 예술에의 충격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의 모더니즘을 창출하였으며, 원시문화인 아프리카를 동경한 보헤미안이었다. 스스로 반성.
칸트의 공간이론"공간의 실재성은 다소 막연하고 항상 어두운 것, 수수께끼 같은 것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에서 공간은 철학과 형이상학의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이미 공간적 존재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은 공간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은 공간을 더 이상 인간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물로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철학자에게 있어서 공간은 관찰이나 측정의 대상인 객관적 실재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삶과 관련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주관적 형성물이며, 동시에 우리의 구체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생활세계적 지반이다. 그러므로 공간은 항상 우리에 대해 존재하는 의식의 상관자이지 결코 우리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즉자적인 실재물이 아니다. 만약 공간이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순한 실재물이 아닌 이상, 공간의 문제는 바로 어떠한 방식으로든지간에 우리에 대해 존재하는 상관자로서 해명되어야 하고 따라서 항상 철학적-형이상학적인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공간을 단순히 객관적인 실재물로 규정하려는 입장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특히 칸트의 공간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칸트는 공간을 주관적인 아프리오리로 규정함으로써 기하학적인 공간이해 속에 내포되어 있는 객관주의적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했다. 고대 자연철학에서부터 공간의 문제는 하나의 아포리아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 특히 자연의 운동을 설명하는 관점에서 공간의 문제는 형이상학의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플라톤은 공간을 물체 이전에 막연하게 주어져 있는 실재로 생각한다. 데미우르고스(Demiourgos)가 어머니같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질료인 공간을 가지고 이데아를 모사하여 현실세계를 창조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공간을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동시에 공간의 실재성에 대해 매우 관념적으로 규정한다. 그는 "모든 존재자들이 다 공간의 형식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렇게 꿈꾸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공간의 절대적 실재성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간이 참된 실재는 아닐지라도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는 빈 공간 개념을 거부한다. 플라톤이 공간을 관념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비하여 공간개념을 보다 실재론적인 관점에서-물체와의 관계 속에서-생각한다 그러나 이 양자는 공간의 실재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공간을 이미 주어져 있고 혹은 물체와 함께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물로서 생각하는 이들의 견해는 그 이후 근대의 뉴튼에 이르기까지의 공통된 견해가 되어 왔다. 뉴튼은 공간을 양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인 점들로 이루어진 무한하고 절대적인 용기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절대공간은 그 고유의 본질상 자기 이외의 어떠한 것과도 관계없이 항상 동일하게 부동의 상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공간적 사물 사이의 공간적인 관계 만 있을 뿐 그 근저에 공간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뉴튼과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의 견해로부터 출발했음에도 이들은 데카르트가 공간을 물질적 대상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홉스 역시 데카르트가 물체와 공간을 동일한 것으로 규정한 데 반대하여 공간을 주관적 성질을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칸트 역시 공간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뉴튼의 절대주의에 따른다. 그러나 칸트는 근본적으로 공간이 특이한 종류의 실재물이라는 주장에는 동조하면서 절대공간을 뉴튼식으로 정초하지는 않는다. 칸트는 공간의 선험적 관념성을 정초함으로써, 공간을 일종의 그릇과 같은 절대적 실재물로 생각하는 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공간은 절대적이고 무한한 것으로 즉자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플라톤에서부터 비롯된 객관주의적 허구이며, 맹목적 객관주의의 선입견이다. 공간의 상대성과 관계성을 강조한 라이프니츠의 견해는 칸트에게 영향을 미친다. 절대공간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논증은 공간을 물체(모나드)간의 내재적 관계로 본다. 즉 모든 공간적 관계는 위치, 거리등에 따라 변한다. 라이프니츠의 관계적 공간개념은 결국 상대주의의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모든 공간적 관계는 관찰자가 지각하는 하나의 외양적 현상일 뿐 이것이 공간의 절대성을 박탈하지는 않는다. 칸트는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처럼, 공간이 물체나 대상의 상대적 속성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공간이 외부대상의 단순한 상대적 속성이라면 대상이 없으면 아무 공간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빈 공간이나 진공에 대한 사유도 아무 의미가 없어야 한다. 칸트는 "공간은 물자체의 어떤 속성을 표현하지도 않고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있는 물체를 표현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시간은 모든 종류의 현상의 선천적인 조건이다."라는 칸트의 진술은 시간이 공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쉽게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칸트의 공간론이 그의 체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시간은 단지 내감의 형식이고 공간은 외감의 형식이라는 독자적인 기능에 따른 구분일 뿐 공간이 시간에 비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칸트에게 있어서 공간은 모든 공간적 현상들을 가능하게 하는 틀 혹은 조건이라고 간결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간을 우리의 마음과 독립해 있는 객관적 실재물로 생각하는 절대주의적 공간이론의 독단성과 공간을 물체 상호간의 관계규정으로 생각하는 관계주의적 공간이론의 상대성에 양면적으로 맞서기 위한 전략이다. 말하자면 칸트의 공간이론의 전략은 뉴튼-데카르트의 연장적-실재적 공간개념과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에 힘입고 있는 비연장적-관념적 공간이론의 대립을 해소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즉 공간의 실재성과 관념성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와 같은 칸트의 전략은 "공간은 직관형식에만 귀속되며, 따라서 우리의 마음의 주관적 구성에만 귀속하고, 그 어떤 것에도 귀속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데로 나아간다. 칸트는「선험적 감성론」에서 공간에 관한 4가지의 논증을 수행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논증은 공간표상의 선험성에 관한 논증이고,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논증은 공간표상의 직관성에 관한 논증이다. 첫째 논증에서 칸트는 "공간개념이 외적 감각으로부터 추상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칸트는 공간개념이 바로 그 지각적 경험을 파악하는 데 이미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 주려고 한다. 공간을 실체적인 외적 실재물로 생각하는 데카르트나 뉴튼 그리고 공간을 공간적 관계규정으로 생각하는 라이프니츠의 견해는 칸트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칸트의 공간개념은 모든 외적 대상이나 그 대상들간의 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논증에서도 칸트는 역시 공간개념의 선험성에 대해 논증한다. 공간에 관한 인식이 대상의 배치에 관한 인식에 의존한다는 흄의 주장에 대해 칸트는 공간에 관한 인식이 논리적으로-시간적으로가 아닌-외적 대상의 배치에 관한 인식에 앞선다고 반박한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가 주장하듯이, 만약 공간이 외적 대상의 속성이라고 한다면, 그 대상이 없을 때는 공간이 아무 것도 아닌 경우가 되기 때문에 공간과 공간적 대상의 논리적 선후관계를 혼동하는 경우가 된다. 우리는 외적 대상의 부재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공간 자체의 부재를 인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공간적 관계나 대상을 생각하고 지각하기 위한 선험적 틀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공간개념을 선천적으로 규정하려는 칸트의 의도는 공간을 단순히 논리적 선행자로 규정하려는 객관주의적 입장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에 구비되어 있는 선험적 조건으로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데로 나아간다. 세 번째 논증은 공간이 추리된 개념이 아니라 순수직관이며 공간에 대한 인식은 논증이나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앎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는 논증이다. 공간 자체는 순수직관의 대상이지 공간적 대상들의 관계들로부터 추론되어 얻어진 일반개념이 아니다. 칸트는 단일의 공간에 대한 인식은 논증적인 인식, 즉 다수의 공간에서 추출된 일반개념에 대한 인식과는 구분된 직관적 인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공간은 주어진 무한한 양이라는 네 번째의 논증 역시 공간을 양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전체로서 논증하며, 이것은 직관에 의해 파악할 수 있을 뿐임을 논증한다. 공간은 '붉음'과 같은 보편자가 아니라 직관 가능한 단일의 실재임을 논증한다. 공간은 부분들의 총합인 totum syntheticum이 아니라, 부분들이 전체속에서 비로소 결합될 수 있게 하는 totum analyitcum이다. 즉 Kompositum(Summe)이 아니라 Totum(Ganze)이다. 칸트가 공간개념이 일반적 개념과 같이 무한한 양의 부분들을 자신 속에 포함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일반적 개념이 무한한 부분들을 그 아래 포함하고 있다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