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어머니 ‘몽실언니’광복 이후 6? 25 전쟁에 대해선 여러 자료 들을 보아 왔지만 그때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막연히 전쟁에 대한 이미지만 안 좋을 뿐 슬프진 않았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서 많이 가슴이 아팠다.광복 후 고향으로 돌아온 몽실이 네는 밭도 하나 없어서 살기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 배고픔과 가난 때문에 어머니 밀양댁은 남편을 버렸다. 그리고는 몽실이를 데리고 김씨라는 사람한테 시집을 간다. 몽실인 처음에는 사랑을 받지만 동생이 생긴 이후 새 아버지는 몽실이를 학대한다. 김씨의 폭행으로 인해 몽실인 절름발이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정씨 아버지가 새어머니 북촌댁을 얻어 함께 살지만 몸이 약한 새어머니는 6.25 전쟁의 난리통 속에서 동생 난남이를 낳고 죽는다. 정씨 아버지는 전쟁 의용군으로 끌려간 상태여서 몽실인 어린 나이에 동생을 돌본다. 먹을 것이 없어서 젖동냥도 하러 다니고 밥을 구걸하고 다닌다. 살길이 막막하여 구두 가게하는 집에 난남이를 데리고 식모살이 하러 들어간다. 이때가 몽실이 성장과정에서 가장 평탄했던 것 같다. 1~2년이 지난 후 정씨아버지가 돌아온다. 기쁜 맘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아버지는 몸이 심하게 망가지셔서 일을 할 수 없기에 또 집들을 전전하며 구걸한다. 얼마 후 밀양댁은 심장병으로 죽고, 정씨 아버지는 자선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다가 그만 숨을 거둔다. 몽실이는 고아가 되어 난남이와 양공주 금녀의 집에서 지낸다. 난남이는 돈 많은 집에 양녀로 가고 김씨는 재혼하여 서울로 이사가가 몽실이는 배 다른 동생 씨 다른 동생들과 흩어진다. 이후 30년이 흐른 후 몽실이는 곱추와 결혼하여 두 남매를 낳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고 동생들과 교류하며 잘 지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이 동화를 읽으면서 전쟁 통 가난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둘이 되고 어머니가 둘이 되는 상황이 된 몽실이가 너무 불쌍했다. 초등학생의 나이 밖에 되지 않은 몽실인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몽실이가 다리가 부러지고 배가 고픈 신체적 고통 속에서도 견뎌내면서 여러 동생들을 챙기는 꿋꿋한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어머니가 아버지를 버리고 새 시집을 간 것을 주위에서는 욕했지만 몽실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인민군과 국군이 왜 대치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반문하는 그녀를 보고 어린나이에도 이해력과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었다. 부모들은 자신에게 짐만 주고 가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몽실이 보다 암담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몽실 언니는 감동적이고 교훈이 있는 동화였다. 그리고 한국 전쟁 전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빈민층의 가난, 배고픔, 서러움을 잘 표현하여서 현실적인 동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끊임없이 찾아드는 몽실 언니의 불행과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몽실 언니의 행동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10살 밖에 안 된 소녀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밝게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건 내가 그 시대의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전체적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고 시대상을 알 수 있기에 독자들에게 좋은 동화라고 생각한다.
문제아를 만드는 편견책의 표지를 보고 이 동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짐작해볼 수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얼굴을 찌푸리고 창피해 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사람들 그리고 걱정하며 안쓰러워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사회는 문제아를 비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뭔가 잘못된 것을 표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문제아가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문제아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오히려 문제아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동화였다. 이 글의 주인공인 창수는 문제아라고 낙인이 찍힌 아이이다. 남들 보다 힘이 세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는데 선생님들은 그를 문제아라 생각한다. 엄마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편찮으신 할머니와 도배장이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창수는 어느 날 할머니의 약을 사러가다가 깡패를 만나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깡패를 필사적으로 물어뜯었다. 그 다음날, 학교에서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규석이가 시비를 걸어온다. 필사적으로 맞섰지만, 계속 맞고 있었고, 또 그가 때리는 것을 그만 둘 것 같지 않아서 창수는 그만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진다. 그 일이 있은 후 창수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친했던 친구들조차 창수를 슬슬 피하고, 자초지종을 알려 하지도 않는 선생님들도 그 사건만을 보고 창수를 문제아로 낙인찍는다. 특히 이렇게 문제아로 찍히고 난 후 창수 자신도 점차 '진짜 문제아'로 변해갔다. 문제아로 낙인찍힌 후, 점차 문제아적인 행동을 일삼지만, 새로 6학년이 되어서 부터는 새로운 다짐으로 바른 학교 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한 창수를 좌절시키는 장면이 있었는데 마음이 아팠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말 '야, 네가 그렇게 유명한 하창수냐? '... 학교가 문제아를 감싸안지 못하고 문제아를 방관만하고 만들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창수는 처음엔 문제아란 소릴 듣기 싫어서 화도 내곤 했지만 나중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다. 문제아가 되니까 웬만한 일엔 선생님들이 야단도 안 치고, 애들도 그냥 슬슬 피해다니기만 할뿐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소년은 점점 더 문제아가 되어간다. 이 책에서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아 만들기가 어떤 모습인지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를 걱정하고,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을 문제아로 보았다. 소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편견을 갖고 방관한 사회와 사람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서 문제아라는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차갑고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다른 아이들과 똑같게만 보아주었더라면 아이는 문제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되었고 사람을 볼 때 편견 없이 바라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관심과 오해가 학생들을 문제아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밝은 이야기만을 다루고 아이들에게 밝은 것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벗어나 현실의 이야기를 어린이가 수필로 쓴 것처럼 쓰여 져서 새롭게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는 동화여서 어른들이 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안 좋았던 것은 글에 어울리는 삽화가 적어서 아쉬웠다. 글에 대한 삽화가 많았더라면 더 내용을 잘 알 수 있었을 텐데..그리고 이렇게 문제아로 낙인찍힌 창수의 뒷이야기, 해결되는 내용이 없어서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자를 웃긴 것인가?2000년 도올 김용옥 선생의 방송강의가 된 후 동양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커졌다. 도올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나온 것이 노자와 21세기이다. 또한 pc통신 작가가 도올이 도덕경을 해석한 것을 비판한 ‘노자를 웃긴 남자’를 펴내 도덕경 해석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이경숙은 ‘저 사람이 이해한 것은 옳지 못하다. 내가 해석한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떤 이들은 도올의 해석이 정확하지 않다고 비난하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딱딱한 내용을 쉽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설명했다면서 도올을 옹호했다. 먼저 노자와 21세기를 보았다. 첫 부분은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산업화된 현대문명에서 살고 있다. 과학의 발전과 성과는 놀라운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고 또한 그 진보가 과학적 영역을 넓히며 우리 사회가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불과 40,50년동안의 과학과 기술의 랑데부로 인한 산업사회의 진보가 우리 문명에 여러 문제를 초래하였다. 이러하기에 도올 김용옥은 우리 사회의 급작스런 서구화를 통한 많은 부작용의 해결방안으로 노자 사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문제 극복을 위한 3대 과제인 3대 화해를 들었다.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지식과 삶의 화해’이다. 도올은 책의 첫 부분을 통해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였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을때는 도올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 크고 도덕경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글을 읽었다.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쩔쩔매면서 봤지만 모르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경숙씨 책을 읽고 도덕경해석을 도올이 잘못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김용옥과 이경숙이 ?도덕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1장에서부터 확연한 차이점을 가지고 드러난다. 일단 김용옥은 ?도덕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생활과 유추시켜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덧붙이고 있다는 인상이었고, 이경숙은 이러한 김용옥의 태도에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고 하였다. 이경숙은 철저히 한역과 주석의 원론적인 검증을 요구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그 본질적인 차이점같다.김용옥은 ?도덕경? 1장 전문의 일부분, 즉 道可道 非常道’와 ‘名可名 非常名’ 이 두 명제에만 주석을 달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주석 다는 방법으로 자신이 감명 깊게 보았다는 영화 에서의 한 장면을 통해 ‘도가도 비상도’에 대한 주석을, 자신의 이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본질을 대립시켜 ‘명가명 비상명’에 대한 주석을 달고 있다. 즉 원론에 입각한 상세한 해설은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를 않다. 이에 비해 이경숙은 특유의 냉소적인 필치로 김용옥의 이러한 불성실함에 이야기한다. 특히 김용옥이 한역한 것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상당히 깊어 보이는데, 그는 김용옥의 TV 강의를 일종의 ‘3류 코메디’ 정도로 비판한다. 이경숙이 김용옥에 대해 이렇듯 가혹한 비판을 들이대고 있는 것은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에서 달아 놓은 잘못된 주석이 노자의 ‘철학’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역만 놓고 본다면, 내가 예전부터 들어왔던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명제에 회의를 심어놓을 정도로 이경숙의 한역은 독창적이고 완벽해 보였다. 물론 그것은 김용옥의 한역과 비교했을 때만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실 김용옥의 한역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일단 문맥의 흐름이 자주 막히고, ‘가믈타’, ‘하다’라고 한역하는 데에는 논리적이지 않다. 이에 비한다면 이경숙의 한역은 문맥이 흐름을 잘 타고 있고, 억지로 짜맞춘 듯한 조어 방식은 거의 없어 보였다. 또한 김용옥은 한역에 대한 전반적인 주석이 없는 반면에 이경숙의 주석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직설적이면서 냉소적인 어조의 이면에 숨어있는 원전에 대한 성실하게 한역하려하였다.제2장은 성인의 덕목에 관한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노장사상의 핵심이랄 수 있는 위(爲)에 관련된 서술이 들어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김용옥과 이경숙의 위(爲)를 둘러싼 해석의 논쟁이 붙는다. 김용옥은 위(爲)를 무엇인가 ?함?이라는 행위로 규정 내리고, 2장 전문을 이를 중심으로 해독해 내고 있는 반면에 이경숙은 위(爲)를 ?꾸밈?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흔히 무위(無爲)사상을 이야기 할 때, 위(爲)라는 단어가 ?꾸밈?으로 해석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김용옥이 나름대로 독특한 해석을 내렸구나 생각했다. 일단 김용옥의 해석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강하다. 이경숙의 논리에 기대이지 않더라도 김용옥의 해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뭔 소린지. 문맥에도 맞지 않는 표현 따위를 노자가 아까운 5,000자를 할애해서 굳이 써대고, 또 그것을 명문이라고 우리가 고전으로 추앙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이경숙의 해석을 읽다 보면 일 김용옥의 해석에 비하여 물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 앞이야기와 뒷 이야기가 연결이된다. 누구의 해석이 옳은지는 아직 파악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님에도, 철학적 사유를 문장으로 펼쳐놓는다고 했을 때, 문맥적 결합의 타당성은 전제되어야 한다.특히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부분에서 도올의 견해를 그냥 따라가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다. 도올은 ?있음과 없음은 서로 生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김과 짧음은 서로 겨루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라고 해석해 놓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6개의 문장 중에서 납득할 수 있는 것은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정도 뿐이다. 나머지 구절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경숙의 말처럼 해석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석될 따위의 철학이 무슨 철학이냐는 생각이다. 또한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과 흐름이 상통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경숙의 해석은 이렇다. ?유가 있어야 무가 성립이 되고 어려움이 있어야 쉬움을 알 수 있고, 높은 것이 있어야 낮음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만약에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 놓고 사람을 속이면 진짜 없음이 나타날 수가 없고, 실제로는 짧은 것을 긴 것처럼 꾸며놓고 속이면 진짜로 긴 것이 긴 줄을 모르게 된다. 이것을 美와 善에 적용하여 말하면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꾸며 놓고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믿게 만들면 진짜 아름다운 것이 드러날 수가 없고,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한 것처럼 꾸며서 속이면 진짜 선한 것이 선한 줄을 모르게 된다. 그러하므로 아름다움을 지어내거나 선을 가장하는 것은 나쁜 짓이니라.? 약간은 긴 해석이지만 이것은 앞의 문맥과의 연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앞 구절과의 의미상 흐름이 부드럽다. 또한 물론 의역을 가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한자를 한 글자씩 놓고 따져 봐도 올바른 해석이라는 생각이다. 이경숙이 ?도덕경? 해석에서 도올의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노자의 도덕경을 전달할 때 이러한 중간자들이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 신중함과 논리적 정연함을 필요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도덕경? 제3장의 주내용은 백성들을 편하게 만드는 정치경제적 실천방법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성현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임이라 여기고 그 방법론적 틀을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즉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이 치인(治人)의 제1 과제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보도를 수시로 접하면서 ?도덕경? 3장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 사회에서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학창 시절 미술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미술에 대한 흥미는 어렸을 적엔 있었을지 모르나 자라나면서 미술은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과목이었고 압박감만 주는 과목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없고, 전문적으로 스케치, 회화, 조소를 배운 것도 아니어서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알려주는 것은 없으면서 뛰어난 그림이나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난 미술이 싫었다. 미술의 영역 중 그리기, 만들기 분야에 취약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 미술 작품이 점수화되어 나의 미술 실력을 평가했기 때문에 내 평균을 떨어뜨리는 과목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술시간에 하는 여러 가지 일 중 미술을 감상하는 일은 미술시간에 찾은 작은 즐거움이었다. 여러 가지 작품들을 보고 나 나름대로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내가 미술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생각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배워온 교육의 방향대로 하기는 싫다. 그렇게 되면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생산할 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지금 내 미술 실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회화, 스케치 실력으로는 가르칠 것이 아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능력은 예비교사로서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내 능력 내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 쪽으로 생각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이야기해보겠다.① 그림책의 그림을 상상하여 그려보기.그림책에는 내용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글의 전개에 따라 그림을 색과 스케치방법, 크기 등을 고려해서 그려야 한다. 그림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면서 동화를 읽어주고, 그 이야기에 맞는 장면을 상상해서 그려보라고 한다.구체적으로, 이야기의 한 쪽을 읽어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그 다음 쪽도 해보고 적절한 시간을 맞춰서 해본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때에는 조절하여 나머지 이야기들을 읽어준다.-그림책의 그림을 보여주게 될 텐데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림 평을 잘해줘야 할 것이다.② 작품 연결시켜 이야기 만들기, 말풍선 넣기.그림들을 가지고 이야기 만드는 활동을 해볼 것이다. 이것은 뮤지컬 ‘맘마미아’를 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낸 것이다. 맘마미아는 ‘아바’ 의 곡 들을 조합하여 한편의 이야기를 이룬 뮤지컬이다. 여러 작가의 그림이어도 되겠지만 한 작가의 그림이면 더 연결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림들을 순서 없이 나열해놓고 원하는 순서대로 배열해서 간단한 스토리를 구성하게 한다.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감상한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 어떻게 느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또 다른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림 하나를 주어주고 만화처럼 말풍선을 넣어서 말이나 대화가 있는 그림을 구성하게 하는 활동이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물에게도 말풍선을 넣게한다. 그림이라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나 말을 넣게 함으로써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면 창의적 감상을 할 수 없기에 ③번 같은 활동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③ 이야기와 함께 작품 설명하기.많이 들어본 미술가 반 고흐, 마네, 모네 등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서 그림들을 모은다.인터넷을 연결하여 세계지도를 통해 미술가의 나라를 집어본다. 예를 들어 반 고흐라면 네덜란드를 마네와 모네는 프랑스를 집어준다.그 다음엔 반 고흐의 일생을 알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여러 자료를 통해 얻게 된 작가와 그림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여 쉽게 이야기한다.빈센트 반고흐의 첫걸음마뒤뚱거리며 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향해 아빠가 두팔을 힘껏 내뻗습니다. 엄마의 품을 떠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앙증스런 아이에요. 아이가 넘어질까 조급해진 아빠는 얼른 달려가 품에 안고 싶지만 애써 참아냅니다. 아빠는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임을 할고 있기 때문 이예요. 아이가 다칠까 안쓰러워 품에 안고만 지내면 아이는 영영 혼자서 걸을 수가 없을 거예요. 아이가 다치더라도 부모는 계속 걷는 연습을 시켜야 합니다. 이 그림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첫 걸음마를 떼는 자식을 바라보며 느끼는 대견함과 흐뭇함, 안타까움과 행복이 느껴지지요? 그림을 살펴보면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내민 아빠의 두 팔이 유난히 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자식에 대한 아빠의 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팔과 손을 유난히 길고 크게 강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한달음 달려가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곁에눕혀 놓은 기다란 삽의 방향이 말해주고 있어요. 화가들은 이렇게 표현하기 힘든 인간의 감정을 그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계산을 하고 갖가지 연출을 한답니다. 아빠와 아이 사이에 펼쳐진 저 텅 빈 공간을 보세요. 가깝고도 먼 거리가 바로 부모와 자식 사이랍니다. 단숨에 달려갈 수 있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참아야 하는,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유별나게 괴팍한 성격을 가진 고흐가 이런 미소가 흐르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믿겨지지가 않죠? 고흐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여성들에게 하나같이 냉정하게 거절당했었답니다. 고흐는 여자와는 인연이 없다고 체념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어요. 그러나 고흐에게도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이 있었던 거예요. 이 그림 속에 고흐의 안타까운 심정이 담겨 있어요. 그림으로나마 아내와 아이를 표현하여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했던게 아닐까요??빈센트 반고흐의 ‘별들이 반짝이는 밤’고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어요. 반 고흐는 언제나 든든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띄웠지요. “지도를 보면 검은 점이 박혀 있어. 도시와 마을을 나타내고 있지. 이점들이 나를 꿈꾸게 해. 타라스에 가려면 기차를 타면 되겠지. 그런데 별들의 세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지? 죽음이란 관문을 통과해야하나?” 반 고흐는 많은 편지를 남겼어요. 반 고흐가 평생동안 싸워 온 고독과 열정을 느낄 수 있어요.반 고흐는 어느 날 밤 생레미 마을의 언덕으로 갔어요. 높이 솟은 삼나무와 교회 뾰족탑이 대조를 이뤄 넓게 펼쳐져 있어요. 그리고 검은 하늘 위로 달과 함께 수많은 별들이 빛나네요 눈이 아프도록 쏘아대는 별빛에 반 고흐는 화폭에 옮겼답니다. 반 고흐는 실제와 같이 그리지 않았어요. 모든 대상들은 거친 붓을 통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고 달과 별들은 격렬히 소용돌이 치고 있어요. 반 고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칠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솔직히 전달하기 위해 마음대로 선택한 것 이예요. 반 고흐의 풍경화는 그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낳은 마음속 풍경화이기 때문에 비현실성을 지니고 있어요.
학교 교육을 통한 정보화 역기능 활성화 대응 방안 연구-선행연구 고찰- 컴퓨터교육과1. 사이버 중독의 개념인터넷 중독과 유사한 개념 정신 의학적 측면, 행동성향적 측면등 다양한 해석 가능 일반적으로 강박적인 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내성과 금단과 같은 현상2. 인터넷 중독 실태가. 국내 국내 인터넷 중독자 100명 중 6명 ~ 7명 Young의 척도 : 인터넷 중독- 8.8%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비율 차지3%8%6%백분율성인중고대학생초등학생구분나. 외국 미국 Young : 주당 40시간 이상 사용-76% 인터넷 중독 - 79.8% 대만 Choen, Ming-Chun : 인터넷 중독 – 6% 인터넷 과도 사용- 4~6%인터넷 중독과 심리적 성향인터넷 중독 원인 우울 낮은 자존감 민감한 정서 높은 감각 추구 경향 스트레스에 대한 적극적인 지적 대처 방식 저조인터넷 중독시 증상 자기 통제력의 상실 감정조절 능력감소 대인기피증 강박감 편집증 우울증, 낮은 자존감 공격성3. 청소년의 인터넷 행동에 관한 긍정적인 견해가. N세대의 특징 통신 수단의 혁신에 의해 생성된 세대. 디지털 세대의 주연으로, 인터넷과 통신을 이용해 시장, 상업, 교육, 레저, 문화를 형성함 나. 세대의 문제 아동이 처음으로 권위를 갖게 됨. 기술은 사용되지만 의식되지 않음. 아동들이 배우기가 더 쉬움 넷세대들은 컴퓨터 개별화를 즐기지만 어른들은 싦어함.다. 세대차의 4가지 주제구세대의 새매체에 대한 부정적 견해 구매체 저항 유발 디지털 혁명의 통제 주체의 변화라. 넷 세대 문화의 10가지 주제독립성 정의적, 인지적 개방성 포용성 자유로운 표현과 강한 견해 개혁성숙감 탐구 즉시성 상업성에 대한 민감함 확인과 신뢰에 대한 인식마. 넷 세대의 마음세가지 인상 다양성을 잘 수용함 호기심이 많음 줏대와 독립심이 강함. 비판적인 세대 질문, 도전, 반대가 활발함 비판적 사고가 활발함 의사소통 수단이 일방적이고 수동적이지 않다.마. 넷 세대의 마음자존감 신체장애 아동의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 자아의식의 발달 온라인 상호작용으로 긍정적 자아개념 형성 채팅에서의 그룹 선택으로 자아개념 보호 다양한 신분 “실세계는 단지 또 하나의 창이다” 이미지 관리 부정적측면 1, 2마. 넷 세대의 마음지능 넷 환경은 가계 수입 변인을 능가함 많은 영상과 텍스트 정보를 접함 진짜 정보 여부를 가리기 위해 분석하고 평가하는 사고 활동마. 넷 세대의 마음아동의 스크린생활과 사회성과의 관계 수동적이고 고립된 TV에 비해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으로 풍부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음 넷 세대들은 이러한 활동으로 사회성을 어린 시절부터 발달 시킬 수 있다.마. 넷 세대의 마음주의집중 시간이 짧아지는가? 넷 세대의 주의집중 시간이 더 짧다는 증거는 없다 핵심 정보에 집중하는 능력이 생긴다 넷 폭력에 관하여 폭력은 실세계가 보다 더 심각 디지털 미디어는 현실 반영의 매체 비방자는 다른 접속자에 의해 제지마. 넷 세대의 마음넷 중독에 관하여 넷 중독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 넷 중독이란 말에 편견이 있다 넷 세대는 스스로 고쳐가는 능력이 뛰어남4. 인터넷 중독 실태Partricia Wallace – 보상의 가능성의 크다는점이 행동의 발생빈도를 높인다고 설명 Suler – 요구의 단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 Young – 인터넷 중독은 초기에 이루어 진다.{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