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5
검색어 입력폼
  • [역사] 북한의 역사인식 평가A좋아요
    서론1. 북한 역사학의 성격과 체계(1) 주체사관과 역사인식(2) 북한 역사학의 서술체계① 개항 이전 역사의 시대구분② 개항 이후 1945년까지의 역사 서술 체계③ 해방 이후 현대사의 서술 체계④ 개관2. 북한 역사학의 특성과 왜곡(1) 정통성 확보에 초점(2) 대외항쟁사와 농민전쟁의 강조(3) 근, 현대사에서 지도자의 중요성 부각(4) 북한의 역사 왜곡 - 우상화로 왜곡된 3.1운동맺음말서론최근 남북 교류가 크게 확대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남북통일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미래의 남북문제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낙관론의 배경에는 남북 양측이 모두 같은 역사를 공유한 한민족이라는 소박하면서도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그러나 우리가 북한 문화를 접할수록 남북한의 차이와 대립을 절감하게 되고, 그 점은 역사인식의 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남북한이 오랜 역사를 공유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남북한은 역사를 공유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과거만을 공유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역사란 과거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동일한 과거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다른 해석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남북한의 역사학이 이처럼 다른 것은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과거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게다가 역사 해석에는 역사가의 현재적 관점이 깊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남북은 이처럼 다른 역사 해석에 이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현실적 상황이 다르다는 뜻이 된다.그러므로 북한의 역사 인식이 우리의 인식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통일을 대비해 남북한의 인식과 관념의 통합이라는 과제에 대비하여 남북의 역사 인식의 통합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하여 개괄적으로나마 북한 역사학의 인식과 서술체계와 그 특성에 관하여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 선의 중심지를 요하 하류지역이며, 수도인 왕검성도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학설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주장은 93년 사회과학원 명의의 ‘단군릉 발굴보고’를 발표함으로서 일순간에 번복됐다.약 5천 11년 전 것으로 파악되는 유골이 평양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서 발굴됐으며 이 유골이 단군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이곳에 단군릉을 복원하고 94년 준공식을 가졌다. 평양이 고조선의 건국지, 도읍지이가 우리 민족의 발상지라고 강조함으로서 정권의 정통성을 마련하자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2) 북한 역사학의 서술체계① 개항 이전 역사의 시대구분북한의 역사서술은 1958년부터 최근까지 기본적인 시대 구분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대 노예 소유자 사회에서, 중세 봉건 사회를 거쳐 현대로 이어지는 3분법을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77년에 출판된 의 제 1편은 ‘원시 사회’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원시 사회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로 구분하여 서술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원시 무리에서 모계 씨족 사회로, 이어서 부계 씨족 사회의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후에 출간된 역사서에서도 원시 사회의 서술이 목차상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하지만, 기본 골격은 이러한 구분과 완전히 동일하다.고대 노예 소유자 사회 시대는 고대 국가가 성립한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맑스의 유물사관에 따라 “고대에는 노예제 사회가 있었다”는 점을 한국사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에서는 이 노예제 사회가 한국에서는 고대 국가들이 성립, 발전, 쇠퇴한 시기이며 여기에 대표적인 국가는 고조선과 부여라고 말한다(이들은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던 삼한의 사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사실 청동기 시대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초기의 국가들에 노예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당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산 활동이 노예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당시 노예의 일반적폭동의 양양’이라는 이름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북한의 역사인식에서 특징적인 ‘봉건적 시대인식’과 ‘인민’투쟁, 즉 민중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나 개혁 등을 중요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② 개항 이후 1945년까지의 역사 서술 체계1987년 판 에서는 3.1운동을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민족 운동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운동으로 단정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항일 운동은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시작과 더불어 발전했다고 보았다. 특히 항일 무장 투쟁의 역사에 있어서 김일성과 주체사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1980년대의 북한의 역사학에서 개항 이후~1945년에서의 역사 서술에서는 무엇보다도 김일성과 주체사상이 항일 무장 투쟁사의 중심 내용이었음을 강조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나아가 김일성의 영도에 의해 민족의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게 되었음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그러나 1958년 판 는 1980년대의 역사 서술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조선 공산주의 운동이 모든 민족 운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서술한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1958년도의 역사 서술에서는 김일성과 주체사상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은 1958년에서 1987년 사이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욱 폐쇄적인 방향으로 변해간 북한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③ 해방 이후 현대사의 서술 체계북한의 역사책은 해방 이후의 현대사를 특별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전체 서술에서 현대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높다. 또한 모든 역사책에서 현대사를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들은 에서 해방과정에서의 소련이 담당했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폄하하는 측면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을 ‘자유와 독립을 위한 조선 인민의 조국 해방 전쟁’으로 표현하며, 평화 통일을 위한 전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노동당원들의 역할을 영웅적 서술되고 있다. 이것은 이들이 역사 서술에서 유물사관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실은 북한 사회의 독특한 현실에 맞추어 많은 변형을 가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특징은 외세에 대한 투쟁과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경향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또한 북한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더욱 철저하게 김일성의 영도를 강조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사를 서술하였으며, 또 그 역사는 ‘민족적 긍지와 혁명적 자존심’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 서술의 기조는 모든 역사책에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역사 서술은 그 안에 사소한 변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그런 성향이 더욱 경직되고 강화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그러므로 북한에서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여러 종류의 역사책이 나올 수가 없으며, 오직 북한 정권의 견해를 반영할 뿐이다. 북한의 역사학은 이처럼 정권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 역사학의 체계가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북한 정권의 기본 속성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외세에 대한 극단적인 배타성과 민족 지상주의라는 두 가지의 기본 요소는 결국 북한의 김일성식 주체사상에 그대로 연결되었으며, 그와 같은 북한 당국의 기본 방침은 조금도 변하지도, 완화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정권의 방침이 이처럼 완강하다면, 그들의 역사학도 더욱 경직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2. 북한 역사학의 특성과 왜곡북한의 역사학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시각에서 남한의 역사 인식과는 다른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기본적인 주체사관으로 인해 나타나는 역사 서술상의 전체적 특성과, 역사를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중세 봉건 사회로, 중세 봉건 사회에서 근대 자본제 사회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이상이 실현되는 사회로 발전해 간다는 유물론적 역사 발전단계설이 그 특성 중 하나가 될 수 것이 발해에 대한 북한의 평가다.고려는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내 최초의 통일국가다. 고려사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고려의 반제투쟁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란, 여진, 금나라, 원나라, 왜구 등 고려를 침범한 세력들과 이들을 격퇴해간 고려의 국난극복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인민대중’의 애국심과 자주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2) 대외항쟁사와 농민전쟁의 강조은 대외 항쟁사와 농민 전쟁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이 두 분야의 서술이 모두 131쪽, 24.7%나 되어 전체 서술의 4분의 1가량이나 되는 것이다. 즉, 북한에서는 역사 서술에 있어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대외 항쟁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외 항쟁사는 항상 ‘인민’이 항쟁의 주체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수나라와의 전쟁을 서술한 부분의 제목을 ‘612년 수나라 300만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 인민의 빛나는 승리’라고 하고, 고려 시대 거란과의 투쟁을 서술한 부분의 제목을 ‘거란 침략군을 물리친 고려 인민들의 투쟁’이라 한데서도 이 점이 잘 나타나 있다.또한 농민 반란을 중요하게 취급했다는 것은 계급사관의 측면을 몹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계급사관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민족의 주체성을 더욱 강조하는 측면을 보이고 있다. 대외 항쟁사에 커다란 비중을 둔 것도 그 항쟁에서 피지배층의 계급적 특수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민족의 침략에 맞선 우리 민족의 투쟁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에서는 계급사관과 민족사관이 서로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유물론적 계급사관에 입각한다 하면서도 김일성의 주체사관을 유난히 강조하는 오늘날 북한의 정치적 이념적 현실이 역사 서술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3) 근, 현대사에서 지도자의 중요성 부각북한에서 조선에 대한 역사평가에서 무게가 두어지는 시기는 조선 말기이다. 갑신정변,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등 왕조말기와 일제 시기 항
    인문/어학| 2004.12.31| 7페이지| 1,000원| 조회(752)
    미리보기
  • [미술] 산 비탈레 성당에 대해 평가B괜찮아요
    ■ San Vitale 성당 (536-547, 라베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콘스탄틴대제가 라베나 수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창건한 성당이며, 로마의 ‘미네르바 메디카‘를 모방하여 지었으나, 비잔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산 비탈레 성당은 8각당 사원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으며 비잔틴 건축의 대표작중 하나로, 동 고트족 시대 때 시작되어서 비잔틴 시대 때 완성되었다. 교회는 이탈리아의 토양에서 종합화되고 절정에 다다른 비잔틴 건축을 나타내고 있다. 이 교회에서 하나의 건축적인 발전과정이 끝을 맺게 되며 동시에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 대제의 팔라틴 채플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고대건축과 중세 건축 사이의 연결점이 되고 있다.성당의 특징은 팔각형의 집중식, 직선 축과의 결합, 8개의 대지주 사이의 통로용 니치 공간의 원심적 확산성, 스퀸치 구조법에 의한 돔, 외부는 8각 경사지붕으로 이우어진 비잔틴 시대의 종교건축이다. 그리고 성 비탈레 성당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들이 성당 곳곳을 빛나게 하는데 특히 주랑 내에 돌출되어 있는 제식을 위한 양 측벽에 장식된 신하들을 거느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자이크 도상이 유명하다.Ⅰ. 배경(1) 역사적 배경비잔틴은 기원 330년경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점을 이루는 요지에 위치하며 동, 서 교역의 중심으로서 거대한 비잔틴 교역권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당연히 건축에서도 자본의 증가와 동, 서문화의 만남으로 독특한 절충적인 건축, 예술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주로 종교 건축에서 그 특징을 읽을 수 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는 대제국을 비잔틴을 수도로 하여 건설하였으며, 새로 건설하는 건축물은 종교를 상징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건설되어,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식 교회당은 비잔틴식의 돔 양식의 건물로 전환되었다. 이때 동 로마제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건축양식을 비잔틴 양식이라고 한다.동 로마제국으로 확산된 그리스도교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가톨릭과는 달리 현재의 그리스 정교와 과는 거리가 멀고 추상적이며 상징적이다. 비잔틴 건축은 사라센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양적 요소를 가미한 건축 형식을 장려하였고, 동서 건축의 기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건물의 외부는 단조로움과 재료의 본질성만을 강조하는 정도이나 건물의 내부는 조각, 회화장식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기독교 특유의 신앙세계를 그리기 위하여 모자이크화가 내벽이나 천장 전체를 장식하고 있고, 이들은 내부에 유입되는 광선에 의해 빛을 발하는 벽면으로 싸인 공간을 형성한다. 콘크리트나 벽돌로 구체 구성을 하고 그 표면을 대리석으로 포장하였다. 벽돌쌓기는 색을 달리하여 횡선을 만드는 비잔틴식 쌓기 법을 창안하였다. 구조적으로는 진실된 표현과 펜던티브 돔을 창안하였다. 즉, 비잔틴 건축의 주요 특질은 원개집중식이라는 것과, 내부가 대리석, 모자이크화로 장려하게 장식된다는 것에 있다.Ⅱ. 산 비탈레 성당의 건축산 비탈레 성당(1) 개략적 특성성당 외부성당 정면그림수없이 많은 라베나의 종교 건축물 중에 비잔틴 양식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건물은 팔각형의 돔형 지붕을 가진 산 비탈레 성당일 것이다. 바실리카 구조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본 틀로 자리 잡은 것처럼 산비탈레 교회당도 동방 정교 교회의 원형으로 인식되었다. 대주교 막시미아누스가 547년 헌당한 팔각형의 교회당은 외부만 보아서는 평범하고 단조롭다. 온화한 느낌을 주는 벽돌을 사용해서 벽과 버트레스를 쌓아올리고 있으며 테라코타로 된 코니스에 의해 윤곽이 잡혀져 있다.그러나 내부는 팔각형 원형이 두 번 겹쳐진 복잡한 구조다(그림 4). 안쪽의 작은 팔각형 위에는 돔으로 지붕을 덮었다. 그리고 여덟 개의 각기둥과 안쪽의 둥근 기둥들은 서로 엇갈리게 설치되어 중앙에 팔각형 공간을 형성한다. 마치 여덟 개의 꽃봉오리처럼 원형회랑 쪽으로 약간 둥글게 나와 있다. 앱스 앞에는 십자가 형태로 덮은 천장 공간 때문에 쳇바퀴 같은 원형회랑이 이곳에서 끊어진다. 또 교회 앞의 현관은 인도와 평행으로 놓여 있지만, 교회의 건물과는 엇갈린 각도로 높이다.) 그리고 세르기오스는 하기아 소피아 이외에 성 비탈레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성 로렌초는 세르기오스로 이어졌고, 여기에서 하기아 소피아와 성 비탈레의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러나 성 비탈레가 건축된 시기와 장소는 비잔틴과 초기 기독교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도기적인 전환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산 비탈레의 건축 양식에서는 초기 기독교와 비잔틴 건축을 가로지르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3) 건축 상의 특징① 초기 기독교 양식< 그림 >ⅰ) 방향성을 갖지 않는 구성성 비탈레도 성 로렌초와 마찬가지로 출입구와 앱스형 성소를 가졌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마주보며 축을 이루지 않고 각도를 달리하며 어긋나게 위치한다. 성소는 통로공간 한 마디와 합쳐지면서 손가락 모양의 긴 공간을 이루었다. 이것은 형태상으로는 방향성을 갖기에 적합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성소는 출입구에 대해 22.5도 방향을 틀어 위치했다(그림6). 이 때문에 팔각형이 전실을 접하는 부분은 변이 아닌 모서리였다.방향성을 갖지 않으려는 의도는 성소보다는 출입구 처리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출입은 ‘아트리움-전실-출입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구성을 했다. 그런데 전실을 거치면서 출입동선은 둘로 갈라지며 팔각형의 두 변에 출입구가 났다. 팔각형이 전실과 접하는 부분이 모서리였기 때문에 출입구는 모서리 좌우의 두 변에 낼 수밖에 없었다. 두 출입구 가운데 오른쪽을 통과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성소가 아닌 팔각형의 측면공간을 마주보게 되었다(그림 7). 왼쪽을 통과해야만 성소를 마주볼 수 있었다(그림 8). 성소의 시선은 안쪽 팔각형의 중심에 모아졌다. 성소를 향한 방향성보다는 초점을 향한 중심성이 강조된 것이다. 이 특징은 방향성과 위계성을 피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것은 곧 공간의 성격을 초기 기독교 건축의 중앙집중성과 평등성에 머무르게 하려는 의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산그림비탈레는 비잔틴그림건축의 전형적인 특성 또한 함께 가지고 있다.ⅱ) 재료사용그림성 비탈레의 구조방식은 기하주의를 돕는 작용을 했다. 성 비탈레는 아일과 갤러리의 천장에 볼트가 쓰이지 않았다(그림 10). 이 때문에 천장의 하중을 외벽으로 전달하는 분산기능을 하지 못하고 모든 하중은 벽기둥이 받아냈다. 이를 위해 벽기둥은 매우 두껍고 튼튼하게 지어졌다. 팔각형의 여덟 꼭지점에 세워진 두꺼운 벽기둥은 팔각형의 윤곽을 강하게 정의했다. 장식도 벽기둥 주위에 집중되었다. 이런 처리들은 중심공간에 형성된 팔각형 기하주의를 보강하는 결과로 나타났다.지붕에 쓰인 경량화 공법은 벽기둥만으로 천장의 하중을 받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지붕에는 속이 빈 항아리가 쓰였다. 돔의 드럼부와 꼭대기 부분 두 곳에 두 종류의 속 빈 항아리가 쓰였다. 항아리가 쓰인 돔 지붕의 위쪽 바깥 면은 목조 지붕이 한 겹 더 감싸면서 보호했다.)ⅱ) 기하주의를 바탕으로 삼은 부유공간그림부유공간은 팔각형의 정형적 기하형태에 건축처리를 추가함으로써 얻어졌다. 부유공간은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처리와 빛조작을 통해서 얻어졌다. 겹공간 사이의 경계에 작은 완충공간을 한 켜 더 집어넣음으로써 경계부의 깊이가 깊어졌다. 완충공간은 반원 평면을 바탕으로 이것을 돌아가며 싸는 열주 스크린과 이것을 덮는 2분의 1 반구 천장으로 구성되었다(그림 11).이런 처리는 풍부한 공간감을 만들어내며 이쪽 공간과 저쪽 공간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흐트러뜨리는 작용을 했다. 팔각형의 명확한 기하성은 모호해졌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물리적 골격은 허물어졌다. 전실에서 진입하는 출입시선을 22.5도 기울어지게 한 처리는 실내 전체에 대한 조망 각도를 사선으로 만듦으로써 역동적 긴장감을 높였다. 역동적 긴장감은 부유공간의 특징을 배가시켰다.여기에 빛이 더해지면서 모호함은 배가되었다. 공간의 골격과 모습은 한 가지로 확정되지 않고 물이 흐르듯 수시로 변했다. 시선의 각도와 거리에 따라, 그리고 빛의 강약과 방향에 따라 공간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변신했다. 형태를 이루는 건축적 실체는 명확하게 모습을 감춘 비물질적 처리는 이런 느낌을 배가시켰다. 돔 천장을 받치면서 중심 팔각형의 골격을 형성하는 두꺼운 벽기둥은 실제 크기보다 작고 가벼운 모습으로 보이도록 처리되었다. 이 처리는 구조부의 외곡면을 크게 하고 내곡면을 작게 하여 눈에 보이는 면적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구조부의 표면에 더해진 성화는 비물질화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이렇게 비물질화된 골격을 바탕으로 실내는 여러 겹의 복합공간으로 이루어졌다(그림 14). 공간과 공간 사이는 상호 관입했다. 명암이 세밀해지면서 중간상태의 구역이 여러 단계로 나타났다. 공간은 여러 겹의 신비한 막이 겹쳐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공간을 구획하는 물리적 경계와 윤곽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게 흐려졌다. 경계부의 아케이드와 반구 천장을 구성하는 곡선의 표현력은 실내에 불확실성을 증가시켰다. 건물은 본래의 가시적 모습을 잃고 시작과 끝이 모호한 가상적 혹은 허구적 모습으로 변신했다. 즉, 눈에는 보이지만 손에는 잡히지 않는 비육신적 상태로 존재했다.ⅴ) 외관처리성 비탈레의 외관은 크고 작은 입방체가 어우러지면서 기하적 특성을 강하게 나타냈다. 비잔틴의 기하주의가 건물 외관에 삼차원 상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관 입방체 수성의 기준은 실내공간의 반영이었다. 중앙의 팔각기둥은 중심을 이루며 가장 높이 돌출했다. 이 주의를 아일의 팔각형 반지공간이 에워쌌다. 반지공간은 팔각기둥의 약 3분의 2 높이까지 올라갔다. 동쪽 끝에는 앱스와 그 양옆의 부속공간이 작은 입방체를 이루며 더해졌다. 서쪽 출입구 쪽에는 전실과 부속공간이 같은 양상으로 더해졌다.외관의 기하형태는 팔각형 한 종류로 단순화 되었으며, 크고 작은 입방체들은 팔각형을 기본 모티브로 삼아 크기만 달리하면서 변형 사용되었다. 재료는 벽돌 한 가지였다. 지붕형태와 외벽처리도 한 가지를 표준 모티브로 삼아 반복하거나 변형 사용했다. 그 결과 건물 외관은 깔끔하게 정리된 기하적 짜임새와 변형적 활동성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4) 성 비탈레 성당의 건
    예체능| 2004.12.31| 10페이지| 1,000원| 조회(1,354)
    미리보기
  • [중국사] 철의 실크로드와 우리나라와 실크로드의 관계와 복원노력
    주제 : 우리나라에서의 실크로드의 경제, 문화적 복원노력◎ 서론◎ 본론1. 경제적 측면에서의 복원 노력- 해상 실크로드- 철의 실크로드- 아시아 고속도로2. 우리 문화속의 실크로드- 우리 문화 속에 나타난 실크로드의 모습- 한국이 갖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유산◎ 결론- 실크로드의 미래- 현재의 상황과 실크로드를 통해 본받아야 할 의미-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소감◎ 서론100여 년 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은 자신의 저서 ‘China’에서 실크로드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현재까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실크로드는 단순히 경제 교역을 위한 이동 루트로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실크로드가 지니는 실제적 의의가 경제 교역을 위한 상인들의 이동로의 개념에 한정된다면 실크로드가 가지고 있는 다른 많은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크로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실크로드를 인류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진 통로를 범칭 하는 개념으로써 상징적, 관용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현대에는 이러한 실크로드가 가진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그 의미는 점점 왜곡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실크로드하면 낭만적이고 신비한 사막의 대상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실크로드는 위험한 생존이 걸린, 실재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게다가 현재 실크로드의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은 여러 나라에서 단순한 관광 상품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마 실크로드가 세밀하고 정확한 지리적 개념을 갖지 않으면서 워낙 여러 나라를 아우르며 광범위한 길이로 존재하고, 또한 다른 문화유산처럼 가시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국가에 걸쳐 있기 때문에 각 국가의 대외적 관계를 고려할 때, 다 국가적 연맹이나 협회를 설립하여 실크로드와 그 유산을 보호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실크로드 문화유산을 세계적인 유산이 아닌 자국의 소유로만 간주하기 때문에 문화재 파괴 현상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현재의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던 중요한 루트가 바로 해상 실크로드이다.해상 실크로드는 중국의 남동해안에서 출발, 인도양·페르시아 만·홍해를 거쳐 중동 지역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 이르렀던 바닷길이다. 기원전 111년 한나라 무제가 베트남 북부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바닷길 개척이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육로 실크로드는 주요 운송 수단인 낙타가 속도가 늦고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무게가 적어 급증하는 교류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크로드는 7세기의 전성기 이후 역할이 축소됐고 해상 실크로드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이 해상 실크로드는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 두 지역에도 서남쪽에서 시작된 해상 실크로드의 영향이 미친 것은 틀림없다. 특히 신라시대에 그 영향이 두드러져 지금도 경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예를 들어 돌무지 덧널무덤이라는 신라 특유의 고분 축조 양식은 신라의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 교류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사실 중 하나이다. 유리 중에서도 삼국시대의 신라 유리는 서방계 유리를 쓰고 있고, 그 후 통일신라기의 유리는 비서방적인 유리로 판명된다. 이 사실은 수입품으로서의 유리가 그 제작 기술이 토착화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생산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발전적 문명교류의 면을 보여준다. 예술적 측면에 있어서 문명교류는 지역적 범위가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오래되고 또한 폭넓게 나타나는 것으로는 연화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적 교류의 측면에서도 신라와 실크로드와의 교류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이것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신라 고승인 혜초가 될 것이다.이러한 동서 교류의 흔적은 신라 이후의 한반도 각 왕조들에서도 또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하회탈’로 대표되는 한국의 가면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기본 유형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이다. 하회탈의 일부에서 보이는 서역계통의 이국인적 골상의 풍취는 누구나가 목격했을 것이고, 그 이질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실크로드를 통한 문 그것은 경제, 정치,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현재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의 내륙국과 무역을 하기위해서는 배나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배나 비행기로 교역을 하면 그 비용과 시간, 정확도 등에서 손실이 크다. 그러나 철도가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싸고 빠르게 물건을 나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유럽이나, 중동, 러시아로 수송되는 물건들이 상당수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물류비의 상당부분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철의 실크로드의 종착역이 허브로써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산항이 된다면 부산항에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또한 러시아의 시베리아는 아직도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한 처녀지인데다가, 엄청난 자원의 보고이다. 그것의 개발을 위해 러시아는 해외 자본 유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철의 실크로드가 건설되면, 철도를 따라 인적교류가 촉진되고 국가 간에 인프라가 형성되게 되면, 한국이나 일본의 자본유치도 쉬워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한국, 일본의 자본참여가 필요하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나 일본의 입장에선 자원도입선의 다변화와 자원공급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쌍방의 이익이 된다.즉,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관통한 철도는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주요 지역을 모두 연결하는 공동번영의 열쇠가 될 것이다.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철의 실크로드가 완성됨에 따라 러시아나 중국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그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 우리가 북한에게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간의 활발한 교류와 서로간의 도움은, 북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두 나라가 북한에 대해, 우리에게 유리한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더구나 철의 실크로드가 북한을 통과해서 러시아, 유럽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문물의 교류가 북한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북한도구축 통해 아시아 각국을 유기적으로 결합, 국가 간 경제, 문화교류와 친선을 꾀하기 위해 입안했다. 도로망은 아시아 각국의 수도 및 상공업도시, 항만은 물론 주요 사적지, 관광지를 연결하는 방향으로 구상되었다.그 후 현재까지 많은 국가에서 참여의사와 국경통과의 문제로 협상 끝에, 현재는 한?중?일3국이 적극적 참여의사를 밝히며 사업추진에 속도가 붙은 상태다. 4월 말, 60차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연례회의를 통해 이 계획의 구상이 최근 확정되었다.그 중 한국을 통과하는 노선은 제 1노선과 제 6노선이며, 이들을 통해 터키, 러시아 등 그동안 육지교류가 힘들었던 국가들과의 교류가 용이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국경통과 문 제등의 핵심적이 쟁점 등에 대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국 사정에 따라 진척 여부 및 시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완공 일자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이 아시아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많은 면에서 철의 실크로드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즉, 이러한 계획이 실현될 경우, 우리나라는 북아시아는 물론 태평양 지역의 물류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리적인 이점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허브국가가 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 많다. 과거 실크로드의 번성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실크로드의 많은 국가들의 군주들은 안정된 정세 속에서 융성한 교류를 가능케 했다. 또 대외적으로도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국가 간의 무역 활동이 용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도, 우선적으로 남북한 간에 해묵은 이념논쟁은 그만둬 지정학적인 난제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북아의 중심지라는 이름에만 신경 쓰다 국가내의 도로나 항만 시설 등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내의 안정을 갖추기 위해 정쟁싸움으로 헛되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각각에서 얘기했듯이 이 복원들은 과거 실크로드의 모습과 비슷하다.한 문화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뿌리를 가지런히 하는 길만이 앞으로 전개될 21세기 다원화 실크로드 시대에 우리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고 다른 문화를 온몸으로 호흡해 자기화할 수 있는 튼튼한 기틀이다.신라, 고려시대엔 문화가 다양하고 사람들도 쉽게 받아들였다. 현대인 들은 문화의 다양성에 열려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미국적인 사고에 사로잡혀있다. 어느덧 우리는 우리의 사고라는 거의 무의미해졌고, 이것에 의한 반항으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키우는 목적에의 교육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세대는 부정확한 정보 속에서 자주 민족국가라는 떨떠름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과학이나 예술, 의학은 오직 독창적인 것이지, 다른 나라의 영향, 특히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는 사실상 거의 은폐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문화의 교류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원화되는 실크로드 시대에 바람직한 자세가 될 것이다.2. 한국이 갖고 있는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우리는 실크로드라는 말이 우리나라에까지 연관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더더욱이나 서역의 낯선 유물이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사실 나도 ‘오타니 고즈이’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 접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 만연한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속에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버린 것이 사실이다.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 ‘오타니 컬렉션’은 모두 1500여점이다. 이는 질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19세기 말 영국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오타니는, 부하 승려들과 함께 불교 동점의 요지인 중앙아시아 탐험을 계획했다. 이 조사는 거의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탐험대는 1902년부터 191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 각지를 탐사해 많은 유물을 수집했으나, 그 탐험은 오타니 개인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기 때문에 후에 재정운영상 문제가 발생했다. 오타니의 은퇴 후엔, 탐험대도 기반을 잃어 수집된 유물은 뿔뿔이
    인문/어학| 2004.06.17| 12페이지| 1,000원| 조회(604)
    미리보기
  • [사회학 이론] 사회학 이론을 통해 본 감성과 이성의 문제 평가D별로예요
    < 서론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인간이 둘 중의 하나의 요소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성이나 감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사회학의 연구 대상이라기 보다는 오리혀 심리학이나 철학쪽에 가깝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사람에 대한 연구 역시 사회학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거시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은 미시적인 존재인 사람이고, 그의 이성과 감성이 반응하는 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심리학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이란, 우리가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반대로 사회적 환경이 우리의 사고, 감정,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즉 집단 속의 개인의 행동 - 사회적 행동을 다룬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심리학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을 알 수 있다.종래의 사회심리학은 심리학과 사회학에 걸쳐 있는 한 분과학문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해 왔으나, 이와는 다르게 사회심리학을 심리학과 사회학을 동시에 아우르는 보다 넓은 연구 영역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사회심리학의 연구 대상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라고 할 때, 이 속에는 인간 이해에 해당하는 심리학의 모든 분야, 그리고 사회에 관한 모든 분야가 포함되고, 또 이에 덧붙여서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모든 분야가 포함되기 때문에 그 범위가 매우 넓은 것이다.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상징적 상호교환론과 포스트 모던 사회 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성과 감성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고자 한다. 거시적이나 또는 거시와 미시적 시각을 통합한 시각보다 미시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 이론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이론들에서 이성과 감성을 통해 인간을, 또 사회를 어떻게 조망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인간은 매우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유기체이다. 인간의 심리과정은 성격, 능력, 정서, 동기와 같은 복잡한 구조를 가졌으며, 그 기능도 지각, 인지, 기억, 사고와 같이 다양하다. 따라서 인간을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살펴볼 이론들에서 이러한 관점들이 적용되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에서 초점이 서로 다를 뿐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1) 상징적 상호작용론Mead에 의해서 체계화된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인간사회를 상징적 상호작용으로 파악해 보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며, 그러므로 사회는 개인들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 위에 기초하고 있고 개인의 성격은 이러한 의미로 이루어지는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유발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즉, Mead의 관점은 유기체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자극에 단순히 반응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 활동과정에서 필요한 자극을 선택한다는 것과 유기체의 활동은 자극의 단순한 소산이기 이전에 이미 유기체의 한 주요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자극은 이러한 활동의 추진을 위해서 동원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를 사건이 아닌 과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인간 경험이란 해석에 의해 매개된다고 할 수 있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에서는 대상, 사람, 상황들은 그 의미를 부여받는 것에 불과하다고 파악했으며, 인간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미리 결정된 대상에 결정된 반응의 토대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정의하며 행동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행위는 일치할 수 없으며, 또 변화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인간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히 언어를 통하여 형성된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상징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기의 행동을 구성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상징적 상호작용론이 아니었다면 ‘개인’에 대한 발견은 아마도 한참동안 늦춰졌을 것이다.위에서 알아보았듯이 상징적 상호작용론에서 인간의 모든 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점과 인간의 의식세계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이론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인간은 상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하여 인간과 동물을 동일시 한 행태주의와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이렇게 인간의 의식세계에 초점을 맞춘 상징적 상호작용론은 개개인의 주체성과 주관성을 주목했다. 또한 인간의 주체성 속에서도 특히 감정의 중요성에 주목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근대사회가 이성적이고, 자율적이며 안정된 개인을 길러냈다면, 오늘날의 현대사회는 근대적 주체와는 전혀 다른, 심지어 그것에 대립되는 정체성들을 길러내고 있다. 이 이론에서도 역시 이성에 완전히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감정의 중요성을 확대해 더 이상 감정을 배제하거나 중립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탈피하고자 했다. ‘인간은 감정으로 착색된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라고 하면서 오늘날 감성에 대한 수요가 모든 활동 영역에서 커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은 지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과 초고속의 정보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감성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대한 정보 사회 속에서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이론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2) 포스트 모던 사회 이론포스트 모더니즘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해체 혹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이 이론에서는 진리, 지식의 근원마저 부정해야 하며 근대적, 도구적 합리성의 주요 이론이 지배하는 사회가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성이 전부가 아니고 감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자아의 발견이라고 할 때, 인식의 주체, 사유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탐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아 중심의 철학은 자의식의 풍부한 활동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창조적 능력과 상상력을 강조하여 창조적 주체, 자유로운 개인을 핵심으로 삼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한 토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표방하는 것은 주체에 의해 파악된 객관적 실재가 진리의 기준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회가 이성의 힘에 의해 총체적으로 합리화될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이념의 거부이다.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성 중심의 세계상이 해체되고 거시적 일반 이론도 거부되며 인식론 상의 기초 이들은 서구에서 상식처럼 통용되어 온 견해, 즉 이성적 '주체'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마련하여 '진리'로 비이성적인 현실의 장막을 제거하고 '이성적인' 사회,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적 이성 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모든 관계들과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의 근간을 이루었던 이성 중심주의 , 과학지상주의 , 체계화와 총채성의 이념은 해체와 다원화 탈중심과 불연속으로 대체된다. 이성과 비이성 주체와 객체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고 의미의 능동적 창출자로서의 주체는 갈가리 흩어져 종말을 맞이한다. 개인의 주관성과 내적 경험, 심지어 무의식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의 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에선 이성보다 본능, 질서보다 충동, 의식보다 무의식의 세계가 한결 자연스럽다.특히 이 모든 해체 현상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선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체의 해체'현상이다. 사실 '주체'라는 개념 자체는 모호한 것으로 인식의 주체 일수도 있고 정치권력의 주체 일수도 있으며 인간의 자의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개인의 인식의 우선성과 보편적 타당성을 제공하는 절대절명의 원리인 이성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세계를 포착하고 규정할 수 있는 특권화된 인식의 주체이며 자신의 삶과 역사의 원동력을 우리는 주체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주체의 죽음'은 의미의 능동적 구성자이며 창조적 인물인 이성적 주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성적 주체라는 것은 인간관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인간관에 의해 구성된 존재와 인식자연과 타자 등의 모든 세계관적 문제를 주제 삼고 있는 것이다.해체 이론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 동안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모든 형태의 지배 문화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합법성과 억압에 대해 새삼 회의와 의문을 던지게 해주었다는 점은 분명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인들에게 자신들도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한 심오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해체 이론은 또한 단순한 서구의 사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에 절실하게 느껴지는 중요한 지적 움직임처럼 보인다. 그것은 결코 진리나 전통을 단순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진리와 전통으로써 그 동안 우리에게 부과되어 온 것들을 심문하고 외부로부터의 단순한 파괴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해체를 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사회과학| 2004.06.17| 4페이지| 1,000원| 조회(394)
    미리보기
  • [연극] 갈매기 감상문 평가A좋아요
    나에게 있어서 체홉은 항상 흥미로우면서도 잘 알 수 없는 작가였다. 예전에 체홉의 단편집을 읽어본 후로 그 독특함에 매력을 느꼈지만, 제대로 그의 문학을 접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채, 마음 한쪽에서 ‘체홉’이란 이름을 기억하고만 있었다. 이번에 그의 연극 갈매기를 통해서 내가 평소에 항상 생각해왔던 것을 말로써, 행동으로써 표현화된 모습으로 보게 된 것 같다. 꼭 나의 모습을 옮겨놓은 것만 같은, 너무 솔직한 모습의 연극에서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또한 서글픈 느낌이 든다.체홉의 소설과 연극에서 느꼈던 가장 큰 특징은 사람과 인생의 진지한 이야기들을 가벼운 일상속에서 사실적이고 희극적으로 표현해고자 하는 것이었다. 연극은 3시간여의 긴 이야기였지만, 초반부터 후반까지 웃음과 함께 끌고나가는 이야기 전개 덕분에 그다지 지루함은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작가가 하고 싶은 진지한 이야기를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흐름이 아닌, 사실적이고 다소 희극적인 흐름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주요한 사건이나 행동이 이루어질때, 그 주요 장면들은 주변 인물들의 소란스러움에 섞이고 묻힌다. 갈등과 사건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것들은 인물들의 소란스러운 대화속에, 무대밑에 조용히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시끌시끌한 생활속의 한 장면 속에서 작가는 삶에 있어서의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갈등과 고민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다른 이러한 방식은,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살고있는 총체적인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때문이 아닐까. 어떤 중요한 사건이라도 그것은 독단적인 것이 아닌, 전체적 배경이나 상황속에서 일어난다. 상황이나 인물들이 엮어내는 여러 가지 상호적인 상황속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일상적인 모습을 띠고 전달된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이러한 맥락 속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겉으로 보기에 시끄럽고 산만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냉정해 보이지만, 이들의 마음과 행동속에서는 슬픈 소리가 난다. 이들은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들의 성격은 하나로 단정지을수 없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사랑인 것 같다. 인물들은 모두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애증에 엮여 있으며, 그들이 겪는 고민들의 주된 원인의 근원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을 잃고 의미를 잃은 채 살아가는 등장 인물들과, 그 반대로 사랑과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상실했음을 받아들이고 자살하는 콘스탄틴의 모습. 즉, 현실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사랑없이 사는 모습과 끊임없이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콘스탄틴의 상반된 모습에서 나는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동정도 비난도, 사랑도 증오도 함께 느낄수 있는 이런 인물들 모두에게서 또한 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지 못한채 신념과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재능에 대한 고뇌를 하는 콘스탄틴이나 뜨리고린, 사랑을 얻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뽈리나오 마샤, 또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현실에 매여사는, 너무나 우유부단한 메드베젠꼬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볼수가 있었다. 인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고, 모두 마음속에 고통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개인들이 갖고 있는 갈등과 문제들은 이러한 인생에서의 인간적인 갈등의 모습이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여러 고전이라는 소설에서 보여지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어쩌면 지루하고 비현실적인 모습들이 중요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생활속에서 발견하고 보여지는 것이 진짜이고,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의미를 극 후반부터 무대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거울이 보여주는 것 같다. 거울은 인물들을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춘다. 즉, 우리가 자신을 생각하고 성찰해 볼때 그 모습은 일그러져 있지만, 그것은 옳은 것이며, 바로 그런것이 바로 자기반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독후감/창작| 2004.06.17| 2페이지| 1,000원| 조회(58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2
1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7
  • B괜찮아요
    4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8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54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