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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정치] 중국과 소수민족 평가B괜찮아요
    중국과 소수민족- 티베트를 중심으로{목차Ⅰ. 서론Ⅱ. 중국의 소수민족1. 소수민족의 현재 실태2. 소수민족정책의 기본원칙3. 개혁개방 시기의 민족정책4. 소수민족정책의 문제점Ⅲ. 중국과 티베트의 민족갈등1. 티베트는 어떤 민족인가?2.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3. 티베트의 분리주의 운동4. 중국의 대응1) 유화적 대응2) 강압적 대응5. 평가와 전망Ⅳ. 결론Ⅰ. 서론중국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소수민족의 수가 55개에 이르며 그들 스스로 다민족 통일국가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족(漢族)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점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에서 중심적 지위를 점하는 일민족 우위의 국가라 할 수 있다. 이중에는 1500만을 초과하는 장족(壯族)으로부터 2000명을 상회하는 낙파족(珞巴族)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구분포를 보이고 있다. 구 소련에 비교해 볼 때 중국의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중국의 소수민족이 다음의 몇가지 이유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는데 첫째, 소수 민족의 거주 지역이 전 국토의 60% 가량을 차지하면서 구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로 성장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은 물론 몽골, 인도, 베트남 등 주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전략적 이유 둘째, 소수민족지구에서 산출되는 우라늄, 원유 등의 주요 자원과 육류, 양모 등의 목축제품의 보고라는 자원상의 이유 셋째, 소수민족 거주지역은 대부분 인구가 희박한 지역으로서 한족지구의 과잉인구를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는 인구상의 이유 넷째, 소수민족의 통합과 안정 및 경제와 문화수준의 향상이 결국 사회주의 중국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제고시킬 수 있다는 대외적 위신의 이유 등이 그것이다.{) 박병광,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형성과 전개 : 민족동화와 융화의 변주곡에 관하여, 국제정치논 의 40 (2000)이처럼 중국의 소수 민족은 단순히 소수 로 치부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에서는 다민 용인되지 않았으며 이는 소수민족지구가 지니는 전략적 중요성 뿐 아니라 대만문제와의 관련성에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끝으로 중국의 민족정책에서 견지되는 기본원칙은 통일전선의 원칙이다. 소수민족이 집중 거주하는 변경지대는 역사적으로 중앙권력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다양한 형태의 간접통치가 이루어져 왔다. 소수민족의 종교지도자 또는 지방귀족 등을 통해 간접통치형식을 취해왔으며 이는 개혁 개방 이후 재개되기 시작한 달라이 라마에 대한 회유공작과 이슬람 지역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제도적 권력 구조로의 유인 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원칙은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중국정부가 소수민족문제를 풀어가고 민족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유지해 온 기본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원칙은 정치세력간 노선투쟁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외관상으로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하겠다. 이는 중국의 지도부가 민족문제에 관한 기본원칙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다만 민족정책의 구체적인 집행과정에 있어서 급진과 온건의 양면적 성격으로 대별되었다고 하겠다.{) 박병광,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형성과 전개 : 민족동화와 융화의 변주곡에 관하여, 국제정치논 의 40 (2000)3. 개혁개방 시기의 민족정책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민족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정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통합을 추진하는 민족융화정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추진되었던 강제동화정책의 실패는 중국의 민족문제가 단기간에 급진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또한 개혁 시기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민족지구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소수 민족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자율성과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민족융화정책으로 선회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민족지구에 대한 경제지원 정책을 강화하는 등 구역자치를 실시하고 자치기관을 설치하여 자치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민족구역 자치정책은 비록 소수민족의 자주적 민족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있으나, 중앙정부와 당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주적 자치권의 행사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세 번쩌는 소수민족 자치정책의 평등에 관한 문제이다. 중국에서는 어떠한 민족에 대한 멸시와 억압도 잘못이며, 중국은 민족단결과 민족 평등을 파괴하는 일체의 언행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 평등정책은 소수민족의 정치적·경제적 측면에서 평등이 아닌 차별화 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소수민족의 정치적 참여와 관련해서 소수민족의 이익과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어 소수민족의 정치적 권리의 불평등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경제적 불평등 측면을 살펴보면 첫째, 대부분의 소수민족 지역은 한족 지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연 자원을 생산·공유하는데 자기들은 한족이 만든 물건을 사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곧 착취라 느끼는 소수민족은 이를 내식민지라고 인식함으로써 나타나는 소수민족의 불만을 통해 알 수 있다. 둘째, 중앙 정부의 각 부문이 아직도 소수민족 지역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셋째, 소수민족이 문화전통을 이용한 관광사업도 소수민족은 관광객에게 토산 수공예품을 팔아 이익을 보지만 정부 지원의 관광사업은 단지 착취를 시도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나아가서 한족이 소수민족 지역의 수목을 벌채하고 금광을 채굴해 가며 식량을 가져가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한족에 대한 증오심이 생긴다는 것이다.이외에도 교육과 문화적 측면의 문제점도 있다. 소수민족의 교육 문제, 그리고 언어 문자, 풍속습관 및 종교신앙에 대해 중국의 정책은 자유의사 와 이의 보호를 선언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선언과 보호의 정책은 한정되어 있고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이상과 같은 중국소수민족정책의 문제점을 소수민족 자치정책의 모순과 한계점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정책이도한다는 조약에 조인하도록 했다. 1907년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티베트의 영토와 티베트인들의 통치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조약이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 조인되었다. 1908년 중국의 황제로부터 달라이 라마가 수여되었으며 티베트의 자치저인 통 치를 허용하는 권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1909년 라마들이 일으킨 난동을 진압하기 위해 중국군이 진주했고 이러한 중국의 군사행동은 달라이 라마를 중국으로 도망하게 만들었다.1950년 중국은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고 1911년에 있었던 티베트의 독립선언을 종식시키기 위해 인민해방군을 티베트에 파병했다. 티베트인들은 초기에는 강력히 저항했으나 곧 항복하고 1951년 5월 23일 티베트는 형식적인 자주권을 보유하지만 중국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티베트 문제에 관한 중국과의 협약에도 불구하고 주재하고 있는 중국군에 대한 군사적 봉기가 있었으며 이 중에서 유명한 것은 캄바족에 의한 봉기였다. 1959년 봉기는 라싸의 전지역에 파급되었고 중국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단기간내에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중국의 억압에서 도피시킬 계획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었다. 1959년 3월 31일 달라이 라마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인도로 피신했다. 인도 북구의 구릉지인 담슬라에 피신중인 달라이 라마와 10만 명의 추종자들은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30여년째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티베트 문제는 1960년 유엔총회에서 의제로 채택되었다. 유엔은 티베트문제에 관한 결의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중국이 티베트에 관한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국제적인 입장을 인정한다는 의견을 표시하면서 인권문제만을 거론했다. 최근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지역 중에서 가장 문제점이 많은 티베트에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중국의 티베트 정책의 변화는 30여년간 인도에 머물고 있는 달라이 라마를 라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중국의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에 망회의 분리주의 운동이 가속화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티베트에 대한 통제 완화와 종교활동 허용은 전통 문화 및 생활 양식의 부활을 가져왔고, 이는 티베트 인의 민족 자각과 독립 정서를 고조시키는 효과를 초래했다. 둘째, 중앙의 경제개혁을 통한 생활 수준 개선이 소수민족의 불만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비록 일부 경제 발전의 효과가 있긴 하였으나 그보다 연해를 비롯한 발전 지역과의 빈부격차 심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불만을 증대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셋째, 티베트의 대외 개방은 현대화된 사고와 가치관의 유입으로 낡은 관념을 깨우치게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외국과의 접촉은 서구의 민주주의, 인권, 민족자결 및 종교자유 등에 대한 인식과 자각의 계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구소련의 해체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 등 중국 소수민족 관련 주변국가들의 변화도 중국내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가속화한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전성흥, 개혁기 중국의 티베트 정책 :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중앙의 개발주의 전략, (서 강대 동아연구 36, 1998)4. 중국의 대응1) 유화적 대응중국이 개혁개방정책으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지 20년이 되었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였다. 이로서 중국의 경제부분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완전히 편입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중국 제2의 개혁개방 이라 할 수 있는 서부지역 개발이 소수민족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서 진행 중에 있다.또한 중국은 구 소련이나 동유럽과 같이 다민족국가이면서도 그들이 경험했던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인한 민족주의 대두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중국에게는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서부 소수민족 지구인 티베트나 신강에서는 분리독립운동이 지금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어 제2의 코소보 로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들은 국제적 연계를 통해 분리 독립운동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사회과학| 2004.04.01| 14페이지| 1,000원| 조회(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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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정치] 신현실주의 평가D별로예요
    신현실주의 : 1980년대1. 신현실주의의 개관1) 신현실주의의 등장배경-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이란 미 대사관 점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동서간의 대립, 방위 예산의 증가, 핵무기의 현대화 등으로 현실주의 이론의 적실성 부각->신현실주의 부상1 국가는 여전히 자율적, 초국가적 행위자와의 관계에서 국가는 여전히 권력과 사회의 보편적 이익과 관련된 목적을 자율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자2 1970년대 1980년대초 사건들은 권력의 사용이라는 것이 국제정치에 있어 지속적인 현상임을 입증3 국제제도는 국가들의 이익을 재정의 할 수 없는 것 같다.4 초국가주의는 정부간 주의에 의해 대체5 소련과 불화, 선진국가간의 무력·통화 갈등2) 신현실주의의 특징과 종류(1) 신현실주의의 특징- 국제 관계에 좀더 철저한 그리고 엄격한 구조적인 설명을 가하는 것이었다.- 왈츠의 주장은 다른 체제이론가들은 구성단위에 능력에 초점을 두었는데 자신은 국가의 행위에 대한 설명은 지도자의 인간성이나 국가의 의도나 능력 등이 아닌 오로지 국제체제의 수준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 카플란은 국가 수준에 치중한 분석, 즉 특정 국가의 정책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보아왔는데 이러한 경향은 이론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체제수준의 요인을 고려하여 국제관계를 설명하려는 신현실주의가 1970년대 말에 등장함으로써 변화했다.- 요약하자면 신현실주의는첫째, 개개 단위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국제관계를 설명하려는 이론들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국제환경 즉 국제체제의 특징을 상수로 취급하기보다는 개별국가들의 행태를 설명하고 또한 안정 혹은 개방성과 같은 국제체제의 다른 특징을 설명하는 변수로 이용하려 했다.둘째, 신현실주의는 국가행위의 외적인 제약 요인을 좀 더 엄격히 개념화하려는 것에서 출발했다.(2) 신현실주의의 종류- 여러 이론들이 있는데 이론 이론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나 전통적 현실주의가 아닌 새로운 현실주의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또한 구조로부터 국가행동을 설명하려고 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간에 있어서의 두려움과 불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국가간에 협력의 전망이 파괴되고 대결과 갈등으로 나아가도록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고 본다. 즉 국제체제에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보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상위권위가 부재하여 개개 국가는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돌보아야만 한다. 한국가는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상호협력을 하고 있다해도 불신과 불안전의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과 안보를 위해 자국의 힘을 증강을 꾀하게 되고 이는 타국의 힘의 증강을 불러와 심화된 불안정을 느끼는 상황 초래 이를 안보딜레마 라고 한다. 안보딜레마는 국제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국가간의 협력을 막고있는 것은 상대방의 미래의 의도와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 현실주의의 견해에 의하면 안보딜레마로부터의 탈출은 물론 불가능하며 상당한 정도로의 안보딜레마의 완화 역시 불가능.-루소에 이어 왈츠는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제약은 자신의 국가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무엇이 사려있고 적절한 것인가에 관한 자기 중심적인 계산으로 유래된다고 본다.(2) 신현실주의의 탄생- 국제 정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국제 정치 고유의 이론은 인간성이나 국가의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국제체제의 특성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즉 왈츠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가 국가의 타국에 대한 행동에 강력한 영행을 미친다고 보았기 때문에 국가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국제 체제의 수준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 왈츠의 기존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비판(1) 기존 국가수준의 이론에 대한 비판1 왈츠 이론의 출발점- 국제적인 결과의 변화가 행위자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면 행위자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결과의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이론의 출발점]-국가의 특성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결과의 동일한 반복에 영향을 주는 매개변수가 있- 키신저 역시 모겐소와 마찬가지로 국제평화와 안정유지는 국가의 태도와 내적 특성에 달려 있다고 본다.- 전쟁을 좋아하는 국가도 있는데, 혁명적인 정부도 외부적 상황이 이러한 국가의 내적인 목표를 압도할 경우 국제적인 규칙을 준수하고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 왈츠의 주장이다.4 환원주의의 문제점과 환원주의에 대한 왈츠의 대안- 정부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대외정책의 접근법과 결과에 유사성이 존재하는 그 괴리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결과가 행위자들이 면한 상황과 그들 자신의 특질에 달려 있다면 특질만 가지고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왈츠는 무정부적인 국제정치체제의 구조적 특성을 밝히고 이러한 불변의 구조가 상충하는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 간의 경쟁적인 군비강화 행위 및 제국을 건설하려는 국가에 대항하여 세력 균형을 이루기 위한 동맹의 결성과 같은 국가 행위의 규칙성을 가져온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왈츠는 국가의 내적 특징을 통하여 국제정치를 이해하려 한다면 국제정치의 지속적인 재현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무수한 현상의 나열이라는 서술적 차원에 머물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2) 기존 체제이론에 대한 비판1 환원주의적 체제이론- 왈츠는 많은 국제 연구가 국내 변수 즉 국가의 특징과 정책에 지나치게 집중, 국제 정치의 연구에 가장 효과적인 접근 방식은 국제 체제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고려하는 체제이론이라고 주장. 체제수준 분석 해야함- 이처럼 체제의 성격이 구성요소의 성격에 의해 규정될 경우 이러한 체제에 있어서의 변화는 구성요소의 변화에 달려 있어 체제가 독자성을 갖고 구성요소를 지배하기보다는 거꾸로 구성요소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왈츠에 따르면 이렇게 구성요소의 특징 혹은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작용 으로 특징지어진 국제체제를 가지고 국가의 행동이나 국제관계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은 체제수준의 변수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국가수준의 변수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라 하여 환원주의 라 부르고 이러한 방식의 설명을 일컬며 분권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정부적인 체제 속에서 구성 단위는 최소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는 자력 구제의 원칙이 지배한다고 본다. 안보딜레마에 의해 실패될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무장하지 않을 수 없음 무정부성 때문에 국가간의 협력이 어려원진다고 본다.(2) 구성단위들 간의 기능의 분화- 국제체제는 상이한 기능을 수행하는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즉 모든 국가들이 자신의 안보를 위해 준비한다는 것(3) 구성 단위들 간의 권력능력의 배분- 인구와 영토의 크기, 부존자원, 경제적 능력, 정치적 안정과 능력, 그리고 군사력에 있어서의 스코어에 달려 있다고 본다.- 권력능력의 배분이란 체제마다 다르며 같은 체제라도 시간에 따라 상이한 권력 능력의 배분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국제체제에 있어 권력능력의 배분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지표로 왈츠는 강대국의 숫자라는 변수를 가지고 정의, 왈츠는 국제체제 속에서 있는 국가는 능력에 최대한 부합하는 그들의 이익을 얻고자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근본적인 이해 관계란 생존이라는 것이다.- 체제의 구조란 체제내의 행위자 모두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의 주요한 행위자 즉 몇몇 강력한 행위자들에 의해 규정- 권력 능력 은 개개 단위들의 특징이지만 권력 능력의 배분 은 체제 수준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4) 국제체제의 변화와 국가 행동 및 국제 관계의 변화- 구조의 요소 중 체제마다 혹은 같은 체제 내에서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은 강대국의 숫자 즉 극성으로 결정되는 능력의 배분 요소이다. 이를 체제 내의 변화 로 부를 수 있다.- 구조의 특성으로서의 권력의 배분 상태가 왈츠의 모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4) 왈츠이론의 세 문제 영역에의 적용(1) 안보 질서- 국제적 무정부 상태에서 궁극적 목적은 안보이고 권력은 목적이 아닌 안보 유지를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국가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의 극대화가 아니고 국제체제에서 자국의 생존을 확보하는 것이다. 자력구제의 원칙에 따라 국가들은 최소한 본다.(2) 경제 질서- 국제수준에서 국가는 전형적으로 국내 사회의 개인들처럼 전문가가 되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일반론자가 되어 자급자족감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첫째로 자력구제의 원칙이 지배하는 무정부상태의 국제체제에서 구성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는 데에 노력의 일부분을 쏟아야 한다. 무정부 상태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국가들은 상호이익이 있는 협력에 앞서서 이러한 이익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를 물어야 만 한다. 즉 누가 좀 더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인가 국가는 절대적 이득이 아닌 상대적 이득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자신보다 상대방에 더 이로울지 모르는 이득의 분배를 우려하며 국가는 절대적인 이득보다 상대적인 권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국가는 안보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며 이에 따라 국제무력으로부터의 상대적 이득이 절대적 이득만큼 아마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둘째로 상대방 국가에 의존적이 되지 않을 까 우려하며 국가간의 협력이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국가들은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것을 통제하려 하거나 그들의 의존의 정도를 감소시키려 할 것이며 전자의 경우 제국주의 정책 으로 그리고 후자의 경우 자급자족적인 정책으로 현시화 될 수 있다고 본다. 강대국들의 상호의존이 상대적으로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 국제체제의 의존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왈츠의 결론은 현재의 상호의존 즉 현재의 강대국들의 의존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보다 느슨하다는 것이다. 강대국의 숫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애당초 낮았던 체제의 상호의존은 더욱 더 낮아질 것으로 왈츠는 전망한다. 또한 왈츠는상호의존이 증가할수록 국가간의 협력과 국제체제에 있어서의 평화가 촉진될 것으로 보는 상호의존론을 비판한다. 무정부상태에서 타국이 자국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궁극적으로 작ㄱ의 주권상실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3) 전지구적인 문제-공해, 빈곤, 인구, 그리고 확산을 대표적인 전지구을 강조
    사회과학| 2003.09.28| 9페이지| 1,000원| 조회(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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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우상의 눈물 평가D별로예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책보다는 영화로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어 본지가 벌써 10여 년이 지난 것 같고 영화를 본지도 오래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직도 나에게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책을 읽어보기로 했고, 예상대로 책을 첨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 석 대 그는 독재자였다. 그것도 너무나 똑똑한 독재자였다. 힘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또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엄석대가 구축해놓은 제국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글을 이끌어가는 서울에서 전학을 온 한병태였다. 그는 상당히 용감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간 관계로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심에서 나온 발로이긴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누구나 어느정도 두려움을 느끼고 새로운 사회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편하기 때문이다. 한병태는 요즘 말로 왕따를 당하고 폭력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투쟁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처한 현실에 타협을 하고 말았다.(그의 행동을 굴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웬지 타협이라고 하고 싶다) 그의 타협을 비굴해 보인다고 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무대가 초등학교지만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폭력 앞에 얼마나 비굴해지고 약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폭력이라는 물리적인 힘 앞에서 대항하려기 보다는 운명이려니 받아들이며 그 권력에 복종하려는 경향이 더 짙은 것 같다. 하지만 얼마나 간사한 것이 인간인가! 아니 나약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외부의 큰 힘(선생님)에 의해 절대적인 힘(엄석대)의 폭력이 무너졌을 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숨죽이며 지내던 절대 다수는 글 중 병태의 말처럼 이미 무너진 힘의 쓰러진 등을 무자비하게 밟아 버린다. 참으로 인간의 양면성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것은 인간의 양면성이 아니라 오히려 참 모습일지 모른다. 작가는 당시의 시대 상황(박정희 대통령의 군부통치)을 작품 속 초등학교에 축소하려고 한 것 같은데 굳이 소설과 시대를 연관시지는 않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고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독재자 엄석대 그를 누가 만든 것일까?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우상의 눈물전상국님의 소설은 첨 읽어보았다. 책의 두께가 두꺼워 장편일거라는 예상했으나 책을 읽고 있는데 당황스럽게도 상당히 짧은 글이었다. 하지만 우상의 눈물을 읽고 곧이어 다른 단편들도 모두 읽어보았다. 전상국님의 소설들을 다 읽은 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하나같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은 아니었다. 뭔지 모르는 아쉬움과 답답함, 그것이 무엇인지는 짧은 문학적 지식과 경험, 그리고 글재주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아쉬울 다름이었다.소설내의 절대자 최기표 그의 폭력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기표의 광기가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서 결정되어 질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결손가정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 폭력에 시달림을 겪은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이유도 폭력을 타당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장인 임형우는 반내의 문제아이자 골칫거리인 기표에게 그렇게 매달렸을까? 단지 자신이 반장이라는 책임감이었을까? 책속의 형우는 고등학생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기표 그는 과연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그나마 지탱해주었던 폭력 그것을 잃어서일까? 아니면 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둘려져서일까.? 기표에게 힘의 상실은 어떤 의미였을까.
    독후감/창작| 2003.09.28| 2페이지| 1,000원| 조회(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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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일본공산당
    일본 공산당1. 일본공산당의 역사일본 공산당은 1922년 7월 15일 가타야마 센·사카이 도시히코·와타나베 마사노스케·이치카와 쇼이치·도쿠다 규이치 등이 결성한 일본 최초의 공산주의 정당이다. 일본 공산당은 결성 이듬해 6월에 이른바 제1차 공산당 검거로 간부 다수를 빼앗기고, 1924년 야마카와 히토시의 해당제안(解黨提案)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1926년 후쿠모토 가즈오의 이론 아래 불법으로 재건 대회를 개최하였고, 27년 코민테른의 에서 야마카와와 후쿠모토가 비판을 당한 뒤로는 와타나베 등의 신집행부 체제에서 재건의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28년의 3·15사건, 29년의 4·16사건에 의한 검거 등 잇따른 탄압으로 당 중앙은 괴멸되었다. 이후 노로 에이타로 등에 의한 지하활동의 시기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 10월 10일, 도쿠다 규이치·시가 요시오 등의 간부가 출옥하고, 노사카 산조도 중국에서 귀국하여 당을 재건함으로써 처음으로 합법정당이 되었다.1946년 4월 전후 첫 번째 총선거에서 5명, 49년 1월의 총선거에서는 35명의 의석을 획득하였으나, 1950년 1월 코민포름으로부터 점령군을 해방군으로 규정한 오류와 평화혁명론의 환상을 비판받고 결국엔 소감파(所感派)와 국제파로 분열되어 몇 년 동안 갈등을 겪었다. 또 같은해 6월 연합군 총사령부는 공산당 중앙위원의 추방령을 내리고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발행을 금지시켰다. 이 때문에 당은 비합법상태가 되었고, 지도자 도쿠다 규이치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51년에서 52년에 걸친 화염병 투쟁 등의 극좌 모험주의 전술은 당원의 격감과 대중의 지지를 잃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55년에야 비로소 를 채택하여 50년 이래의 분열상태를 극복하고 평화혁명노선으로의 재전환을 도모하였다. 그 뒤, 61년에는 가스가 쇼지로 등의 구조개혁파가 대량으로 이탈, 64년에는 소련파 시가 요시오 등의 제명(또는 탈당), 66년에는 중공파가 제명되는 등 대규모의 조직변동을 거쳐 미야모토 체코민테른의 이른바 27년 테제에 의해 그리고 연이은 32년 테제에 의해 '정리'되었다. 공산당의 기본방침은 '국제적'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전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이런 방식은 지속되었다. 미군의 점령초기 공산당 지도부는 미국의 민주화 정책을 지지하고 이에 조응할 수 있는 평화노선을 강조한다. 노사까 산조의 '매력적인 공산당'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나타내준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국의 강력한 역코스 정책에도 불구 49년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50년 1월 코민테른의 후신인 코민포름이 기관지를 통해 일본 공산당 지도부의 현실인식을 맹공격하게 된다. 공산당 지도부의 권위는 코민포름의 권위에 비할 바 아니었고 곧이어 51년 일본공산당은 무장투쟁노선으로 전환하게 된다. 기실 일본공산당은 소련의 대외전략의 일부를 담당하는 기관에 불과했던 것이다. 5년간 지속되었던 무장투쟁기간 동안 일본공산당은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다.1956년 소련공산당의 스탈린 격하 연설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 공산진영의 변화에 따라 일본 공산당은 조금씩 독자행보를 넓혀가게 되었다. 56년 코민포름의 해체와 후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비판은 일본공산당의 소련과의 관계단절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소련과의 단절은 친중노선을 가속화시켰다. 당내부는 친소파와 친중파로 대립하였고 국제파와 국내파가 또다른 한축을 형성하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도 1965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홍위병들이 일본공산당을 수정주의로 몰아부치자 점차 '반중노선'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공산당은 반소, 반중의 이른바 자주독립노선을 표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노선은 주창자는 한때 코민포름의 일본 공산당 비판을 수용했던 국제파 소속이었고 56년 이후에는 반소 친중의 입장에 섰던 미야모토 겐지) 미야모토는 1958년 제7차 대회이래 최근 1997년 공식은퇴하기 이전까지 일본공산당의 최고지도자였다.라는 사실이다. 국산력의 풍부한 발전을 하게 하는 계획 경제이다."라고 주장한다. 그 외에 당면한 목표로서 미일 안보조약의 파기, 일본의 평화, 중립화, 헌법개정저지, 자위대의 해산, 노동자·농민·근로시민 등의 생활과 권리의 보장, 독점자본의 금융기관과 중요한 산업의 국유화로의 이행 등을 들고 있다.이 강령을 통해 일본은 비로소 소련과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한 '일본'의 공산당으로 재탄생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있어서도 평화적인 의회주의노선을 확립하고 일당독재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노선은 60년대 동안 당의 조직적 발전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원의 증가는 물론 선거에서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게 되었고 70년대에도 이러한 독자노선과 적용노력은 꾸준히 이어진다.3) 사회적 배경 - '노조와의 거리'미점령하 공산당은 의회에서는 당의 전략과 대중성의 한계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사회운동적 측면에서는 가장 강력한 정당이었다. 따라서 냉전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일본 공산당의 존재는 미국에 있어 가장 부담이 되었다.그러나 1950년 7월 노조의 재개편 결과 '총평(日本勞動組合總評議會)'이라는 거대노조가 탄생하게 된다. 미점령당국이 기대했던 것은 당연히 재개편을 통하여 일본의 노조를 우경화·온건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평'은 사회당의 조직적 기반이 되었다. 이후 일본의 노동운동은 80년대 말까지 총평에 의해 주도되었고 일본의 혁신 정치 역시 총평에 기반을 둔 사회당에 의해 주도되었다. 따라서 공산당에게 '새로운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공산당으로 하여금 노조 이외에 새로운 사회적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부과하였다. 의회주의적 노선을 견지하는 한, 시민사회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정당의 기본적 역할을 수행하려 하는 한, 사회적 기반은 곧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그렇게 발견해낸 것이 60-70년대를 거치면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모든 사회운동들이었다. 60년대 안보투쟁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정치'를 활발히 전개하게 하였다. 이러한 방향은 지방정치의 활성화와 맞물려 '혁신자치체의 시대'를 열게 하였고 지방의회의 약진을 가능케 하였다. 노조라는 사회적 기반의 상실이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가능케 한 것이다. 사회당을 보았을 때, 이러한 역설적 상황은 보다 뚜렷해진다. 사회당은 총평으로부터 재정의 대부분을 제공받았을 뿐 아니라 인적 자원의 상당부분도 노조에서 충원되었다. 사회당이 줄곧 '노조 체질'을 못벗어났다거나 '총평의 정치부'라고 비난받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사회당이 총평이라는 강력한 노조를 통해 사회적 기반을 확충하였고 이러한 사회적 기반은 공산당보다 훨씬 강력한 정당이 될 수 있었던 근원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산당 역시 잃어버린 노조조직을 만회하고 새로운 사회적 기반을 창출하였던 바 허약한 정당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의 사회·경제적 변화는 노조에 기반을 두었던 사회당에 불리하게 그리고 다양한 시민운동과 당 기초조직에 기반을 두었던 공산당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최근 사회당의 정체성의 상실과 이에 따른 몰락은 바로 노조기반의 와해에서 찾는 것은 타당한 지적이다. 총평은 일본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1989년 해체되고 보다 더 온건화하고 비정치적인 연합(連合:全一本民間勞動祖合蓮合會)에 흡수되고 만다. 신중간계층과 무당파를 겨냥한 리버럴 정당화, 중도 정당화로의 탈바꿈은 총평해체이후 사회적 기반을 잃어버린 사회당의 최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결과적으로 사회당의 경우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은 총평에 의해 지연되었고 총평의 해체로 인해 실패하였다면 공산당의 경우에는 오히려 노조기반을 상실함으로써 일찍부터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는 훈련을 쌓으며 자신을 단련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이야말로 일본 사회당은 물론 이탈리아 공산당이나 프랑스 공산당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일본공산당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공산당이 노조단체에 의해 제약받지 않고 노선과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독립적인 정책, 즉 지지를 보내주는 유권공산당의 국민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구체적으로 왕성한 지부활동과 함께 지방의회 의원의 꾸준한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공산당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일본 공산당의 전략적·조직적 방향은 별다른 당 내분이나 분열 없이 일사 분란하게 수행되어 왔다.) 사회당이 좌파와 우파로 끝임 없는 당내분쟁을 겪었고 사회주의 협회파 등 공식적인 파벌이 구조화되어 있음으로 인해 전략과 조직적 방향성이 파벌 역학에 의해 크게 영향받아 왔다는 사실을 비교·평가할 수 있다.이는 당최고지도자였던 미야모토가 50년대 중반 당내 파벌대립을 일소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확정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장기간 지도력을 독점해왔던 미야모토는 실질적으로 2선으로 후퇴하고 후와 데쓰조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세대의 리더십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되었다. 이후 간헐적으로 제기되었던 당내 항쟁이나 그것에 의한 제명이나 배제가 적어도 표면에 나오지 않게 됐다. 당원의 급격한 하락도 실질적으로는 신지도부가 유휴당원을 정리하면서 충실한 층을 통합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후와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선언'을 집필하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고 일찍부터 당내 이론가로 잘 알려져 왔던 인물이다.그리고 중앙당의 많은 기구가 있는데 이에 당기구가 의원수에 비해 비대화되었다는 지적) 배한동. 1995. "공산당의 위기구조". 한국정치학회 회보 Vol 29 No 1. 서울. 546이 가능하겠지만 당원수나 연계조직의 정도는 오히려 잘 발달된 중앙관료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의 발휘는 이러한 중앙관료기구에 의해 지부·당원으로 효과적이고도 강력한 정책집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2) 시민사회의 다양한 연계조직새로운 환경, 즉 공산당의 위기 구조에 대한 조직적 적응은 신사회 운동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중간계급을 조직화하기 위한 노력의 경주로 드러났다. 일본공산당이 주력하는 영역은 여성, 청년, 반핵, 환경 등의 문제는 물론 소비자단체, 하였다.
    사회과학| 2003.08.15| 8페이지| 1,000원| 조회(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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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 헌법과 정당 평가A좋아요
    헌법과 정당- 정당의 제도화와 민주화를 중심으로Ⅰ. 서론오늘날 정당은 정치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개인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당은 공직 선거에 후보자를 내세워 정권을 획득하기도하고, 국회에서 자기 당 소속 국회의원을 통하여 정부를 통제하기도 한다. 즉, 정당은 선거에 참여하여 국정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국민에게 정책을 제시하는 등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국민 각자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국민은 정당의 당원이 되어 직접 정치 활동을 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정당을 지지 또는 정치 자금을 제공하거나 정책조언 등을 통하여 정당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정당은 오늘날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 헌법 제8조 2항에는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정당법 제2조는 이를 구체화하여「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 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라고 하여 정당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권영성, 『헌법학 원론』,(법문사, 2002), p 190-191이렇게 정치에서 필수불가결과 같은 정당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당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무당파층의 증가·정치에 대한 불신·정치에 참여하는 경로의 다양화 등 외적 요인과 정당조직의 경직화·관료화·압력 단체화 현상 그리고 정착되지 못한 당내 제도화와 민주화 등과 같은 내적 요인들) 김중권, 『헌법과 정당』, (법문사, 1999)로 인해 정당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우리는 현대 정치에서 정당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대 정당이 어떤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고 그에 대한 해결 방정당의 운영자금국고보조금조항을 신설하고, 정당추천을 받은 대통령 후보자의 우대를 규정하는 등 정당 국가적 경향을 다소 강화하였다.동조 제1항은 정당의 설립·활동의 자유와 더불어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제2항은 정당의 목적·조직과 활동의 민주성, 정당의 헌법상 기능, 조직의 계속성과 공고성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제3항은 정당에 대한 국가적 보호와 정당의 운영자금국고지원을 규정하고, 제4항은 정당의 의무와 정당활동의 자유의 한계를 명시하고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정당의 강제해산제를 규정하고 있다.) 권영성, 『헌법학원론』, (법문사, 2002)이러한 정당조항의 규범적 의미는 첫째, 정당을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특수한 결사체라고 보고 있고 둘째로 제도의 하나로서 복수정당제를 보장하는 조항이므로 정당제의 전면적 부정이나 일당제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셋째로 직접적으로 정당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이지만, 간접적으로는 모든 국민에게 정당을 설립할 자유와 정당에의 가입과 그로부터의 탈퇴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이다. 넷째, 제8조에 의한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 정당제의 보장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므로, 제8조는 헌법개정에 의해서도 폐지할 수 없는 개정금지조항이다. 그리고 다섯째로 위헌정당의 금지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것이 그 목적인 것이다.) 이명수,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관계」, 학위논문(석사) ; 공법, (충남대 대학원, 2002)3. 정당의 기능헌법 제8조 제2항에서는 정당은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하여, 정당의 주된 기능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임을 나타내고 있다. 즉, 정당은 정책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하여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하는데 최종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의 기능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정당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이 제 기능을 다하느냐에 따라 정당 정치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정당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거에 승리하려는 것은 이와 같은 연유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명수,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관계」, 학위논문(석사) : 공법, (충남대 대학원, 2002)Ⅲ. 한국정당의 특성과 문제점1. 한국 정당의 특성한국 정당은 구성 요건면에서 어느 정도 개인이 자유로이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직접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조직 기반면에서는 의원중심의 원내정당, 소재면에서는 중앙 집권당의 특성을 갖는다.한국의 정당은 기본적으로 정당 조직의 발전 과정에 있어 초기의 명사정당과 현대의 대중정당으로 구분한 베버의 견해에 따르면 형식적으로는 대중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인물본위의 정당적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정당의 개별주의적 충성심에 의한 비정책적 파벌화 현상은 정치 신인 참여를 제한 하고 있으며 정당의 권위주의적 폐쇄성을 노출하고 있다. 그리고 민의 상달을 위한 정치 단체가 아니고 상명하달의 성격을 지녀왔다.한국의 정당이 국민의 의사 형성과 조직화에 기여한 정도로 살펴볼 때 그 결과는 비관적이다. 역대 한국의 여당들은 안보이데올로기와 군사문화 및 대미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이데올로기적인 극우성을 띠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반체제세력을 억압하는 일종의 메커니즘 전략을 구사해 왔던 것이다.현대 정당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능은 국내외적인 상황에 입각하여 정강·정책을 작성하고 동시에 자당의 후보자를 공천함으로써 국민의 판단을 받는 것이다. 이는 유권자들이 정당의 정책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우리의 경우는 서구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말하자면 정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 권위적인 성향이 가미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정당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정당의 기능은 궁극적으로는 일반 유권자들로 하여금 정치발전 및 정당의 활동에 대한 무관심과 무력감을 증폭시키게 하는 역기능 요인이 되기도 한다.어떠한 구조의 정부 형태를 취하든 간에 20세기에 들어서서 더욱 강화된 정당 국가적 경향 때문에 화를 위한 정당의 역할 : 정당의 공직선거후보자 충원 과정을 중심으로, 학위논문(석사) ; 정책개발학, (인천대 행정대학원, 2001)2. 한국정당의 문제점한국정당의 특징에서 많이 언급하였지만 구체적으로 한국정당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리 정당은 붕당(朋黨)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동안의 비판이었다. 우리의 경우, 겉으로는 모두 국민정당을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자기들끼리의 붕당에 불과하다. 또 모든 정당이 다 강령이나 정책을 그럴듯하게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은 실제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정당은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그 이상의 수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또 스스로 더 나아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정당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졌다. 이름을 다 열거할 수도 없고, 어느 게 어느 것이었는지 구별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정당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정치적 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정당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이념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쉽게 바뀌어질 수 없으며 또 이념이 잘못된 것이 아닌 한, 쉽게 없어질 수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정당은 애초부터 이념적 목적이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그동안 우리의 정당들이 추구하는 것은 권력이지, 정책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우리의 경우 무엇보다 집권을 우선시하여 , 또한 당장의 집권만을 목표로 하여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것도 정당의 집권을 위해서보다는, 정치적 보스의 집권을 위해서였다. 따라서 보스가 바뀌면 정당도 바뀌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정당은 오로지 집권용, 선거용으로 만들어지며, 때로는 일회용이기도 하였다. 단기적·일시적 목적이나 정치인들 자신의 개인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다.그리고 우리의 정당 행태상의 문제는 정당간의 다툼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고 외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당이 권력을 위해 서로 다투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이것이 너무 심다원주의의 공고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도자가 정당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지도자에 의존하여 정당 운영에 있어 지도자의 독주와 전횡이 심하고 당내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당의 관료화 현상으로 비 선거 기간에도 정당이 방만한 조직을 운영하게 되고 이에 막대한 정치 자금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이는 정경 유착과 고비용의 정치 구조를 초래해 왔던 것이다.한편 그동안 기존 정당들은 새로운 사회 세력의 정치권 진입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여 온 결과 진보 정당의 원내 진출은 어려워졌고 정당은 보수 일색이 되었다. 따라서 정치노선이나 정책 대결은 결핍되고 우리 정치는 인물 중심의 정치적 경쟁을 해왔던 것이다.) 김용호, 『한국정당정치의 이해』, (나남, 2001)그리고 한국정당법 제31조에는 「정당의 공직 선거 후보자의 추천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당의 공직 선거 후보자 추천에는 후보자를 추천할 공직 선거의 선거구를 관할하는 해당 당부 대의 기관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여야 하며, 그 구체적 절차는 당헌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밑으로부터 참여에 의한 동의를 추천방법으로 못박고 있으나 후보자 추천 과정의 비민주성과 폐쇄적 충원구조와 그리고 형식적인 공천심사기구의 밀실공천으로 이러한 법률 규정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으며 각 정당은 공천기준을 번듯하게 나열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계보, 인맥, 재력, 연공서열, 압력단체 또는 후원단체, 고급관료, 대중매체에 얼굴이 팔린 탤런트, 사전운동 전개로 얼굴이 잘 알려진 사람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결국 그 기준은 당선 제일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조민수, 참여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위한 정당의 역할 : 정당의 공직선거후보자 충원 과정을 중심으로, 학위논문(석사) ; 정책개발학, (인천대 행정대학원, 2001)1990년대 들어 사회는 급변하면서 이와 함께 정치 환경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많은 정치적 정보와 이에 대한 인식 능력도 갖추고 있으면서 관심의 다양화로 다.
    법학| 2003.08.15| 8페이지| 1,0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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