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란 무엇인가국문학과 983442김기애처음에 나는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이 소설을 대했다. 이것이 북한 소설이기 때문에 굉장히 따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소설은 그 사회를 반영한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은 꽉 막힌 사회로 개인보다는 당이 우선 시 되는 그런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선입관일 뿐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북한사회의 풍속도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청춘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숨쉬고 있었다. 작가는 주인공 진호의 삶을 통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청춘의 고민이 일과 사랑이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풀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이 작품에서 진호와 명식은 명백히 대비되는 인물이다. 진호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새 연료안을 도입하기 위해 애쓰는 창조적인 인간이다. 이에 반해 명식은 감정과 창조성이 없는 기계적인 인간이다. 작가가 청춘에는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것을 이기려고 하는 도전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진호를 통해 보여 주려고 했다면, 명식 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거대한 조직에서 관료주의에 빠져 의존심으로 만성화 된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진호의 시험일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의 과제-그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20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과제이며,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남한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자아발전을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집단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호는 그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난 어떤 경우에도 최대한 우리 당이 의도하는 대로 사색할 줄 알 뿐 아니라 행동까지 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참된 량심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단 말이네. 남한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일이 국가적 이익으로 확대되는 것에 비해, 북한은 처음부터 국가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개인이 자신을 바쳐야 하며, 그것이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진호는 일생의 동반자로 삼을 대상에게서 자기의 요구와 지향을 바란다. 자신의 꿈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현옥이가 자신의 지향과 진심을 의심하자 그것을 배신으로 여기고 그와 헤어진다. 진호에게 있어 사랑이란 참다운 이해를 통해서만 꽃피고 열매맺는 것이다. 그러나 진호의 사랑은 이기적이라 할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만을 바랐을 뿐, 자신이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남자들은 흔히 자신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것처럼 여자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남자의 꿈을 위해 여자가 뒷바라지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여자들의 꿈은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아는 진호동문 과학은 창조할 줄 알아도 사랑은 창조할 줄 모르거던요. 아니, 하려고 하지 않지요. 사랑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창조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부터 않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진호의 이기적 사랑을 꼬집은 말이다. 그러면서 진실한 사랑이란 서로의 부족점을 서로가 도와주어 고쳐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진호는 정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란 서로가 존재로서의 자체를 인정해 주고, 정아의 말처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꾸어 가며 발전하는 과정이 아닐까한다.
표절문제에 대해서과목명: 소설창작연습2국문학과 983442 김기애제출일: 2001. 4. 12.다음 세 작품을 비교·검토함으로써 표절문제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1. 황석영 (1972)2. 전상국 3. 이문열 (1987)만약 전상국의 이 많이 알려졌다면 이문열의 이 표절시비에 걸리지 않았을까 라고 선생님이 문제제기를 하셨다. 이에 한 학생이 황석영의 도 비슷한 내용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선생님과 그 학생은 이문열이 위의 소설들을 표절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의견은 좀 다르다. 세 소설을 읽고 비교해본 바로는 물론 비슷한 면도 없지 않지만, 각각 그 의미를 달리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문열이 나 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고, 만약 읽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문열이 앞서 발표된 소설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함이 옳지, 이를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완전한 창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가 어떤 작품을 창작한다고 하는 것은 이전에 그가 읽었던 책, 살아온 환경, 사고방식 등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러면 실제로 세 작품이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살펴보자.먼저 세 소설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역할과 성격이 비슷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엄석대'와 '이영래', '최기표', 화자인 '한병태'와 '김수남', '이유대' 이들 절대권력의 체제를 바꾼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과 '교생 선생님', '담임선생님과 임형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나의 체제로 상징되는 한 학급에서 반장으로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엄석대'와 '이영래'는 같은 인물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 최기표는 다르다. 엄석대와 이영래가 담임선생에 의해 주어진 합법화된 권력과 주먹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했다면 최기표가 가진 것은 오직 주먹뿐이었다. 그리고 최기표에게는 힘을 가진 담임선생님과 반장이 대결양상을 띄고 있다.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방관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그 양상은 좀 다르다. 의 한병태는 처음에는 엄석대의 절대권력에 도전해보지만 좌절하고 결국 그 힘에 굴종한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에게 힘을 잃은 엄석대에 대한 급우들의 배신을 보면서 집단의 이기주의, 비정함과 냉혹함을 보고 허무함을 느낀다. 그리고 철저한 방관자로 남는 것이다. 의 김수남은 처음에는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영래 패 중 하나인 임종하가 수업시간에 교생 선생님을 모욕하는 쪽지를 돌리는 행위를 보고 이에 저항한다. 의 이유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방관자이면서 관찰자적 입장을 고수한다.와 에서 부당한 절대 권력을 해체한 인물은 새로운 선생님이다. 의 교생 선생님은 부드러운 방법으로 아이들을 교화시켜 나가고, 이영래에 대한 김수남의 반항과 아이들의 단결된 힘으로 불합리한 권력의 상징이라할 수 있는 영래를 굴복시킴으로써 순조로운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은 좀 더 복잡하다. 한병태의 권력에의 도전과 좌절, 이를 통해 절대적인 힘에 대한 집단의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석대의 질서를 무너뜨렸을 때, 반아이들은 석대를 배신함으로써 비겁한 다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30년 후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엄석대는 삶에 실패한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이다. 결국 는 선생님으로부터 진보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배운 아이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면 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넘어선 어른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에서는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인물설정은 비슷하나 그 주제의식을 표출하는 방법은 상이하다. 앞의 두 소설은 힘이 새로운 선생님에 의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주어졌다면, 에서의 힘의 이동은 더욱더 불합리한 쪽으로 행해졌다고 할 수 있다. 최기표는 뱀처럼 작고 징그러운 눈을 가지고 있으며 교활한 자들이 가끔 보이는 거짓 착함마저도 나타나 보일 줄 모르는, 즉 악을 악대로 행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은 경계가 가능하다. 그러나 담임선생님과 임형우는 이와는 다르다. 이들은 내면의 적대감이나 음흉함은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우의와 신뢰가 가득 찬 것처럼 행동한다. 예전에 어느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것 같다. 오히려 도둑놈이나 강도보다 무서운 것이 하이칼라 범죄라는 것이다. 하이칼라 범죄는 겉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우리가 경계는커녕 의심 없이 그대로 따르도록 하면서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다. 담임선생이나 임형우는 어쨌든 그들만의 방법으로 최기표의 힘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하고 기표를 그들의 체제에 편입시킨다. 그러나 최기표는 가출하면서 편지를 남기는데 거기에는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수가 없다."라고 씌어 있다. 이는 작가가 악을 악대로 행하는 이보다 그 내면에 음흉함을 감추고 겉으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더 악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발견하는 과정국어국문학과 3학년김기애"오래된 미래"는 자급 자족적인 농촌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 사회인 라다크에 서구식 산업 문화가 밀려오면서 나타나는 사회, 경제, 문화적 충격과 그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라다크 라는 사회에 대해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서 한국이라는 사회와 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세계는커녕 우리 나라 조차도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향을 미치더라도 그것은 아주 경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세계 속에 있었고 그에 커다란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내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서구 문명이 들어서기 전 라다크의 모습은 우리 나라 60년대의 농촌 사회와 비슷하다. 삶의 중심이 지역 공동체와 가정에 있음으로 해서 가족적 유대가 깊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갖고 있음을 뜻하고 여성과 남성의 지위는 동등했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사람들에겐 여유가 있고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70년대 경제 개발이 시작되고 서구 문명이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라다크 에서와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에 열등감을 갖기 시작했고 서구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다. 지역경제와 공동체적 유대가 깨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익명적인 존재가 되었다. 현대세계의 기계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오히려 시간의 노예로 만들었다.난 1979년에 태어났고, 한국 사회에 보편화 된 산업사회의 이러한 특징들을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생각 없이 서구적인 것을 좇고 있는 라다크 젊은이를 부끄럽게도 나 자신이라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나 일뿐이라는 오만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했던가를 깨달았다. 세계적인 질서 속에 내가 있고 그 영향으로 인해 나의 삶과 사고의 방식까지도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서구의 '개발'이 나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져 보고자 한다.산업화로 인해 남자들은 집밖의 기술중심 생활의 부분이 되고, 여자들은 집에 남겨짐으로써 남자와 여자의 일이 분화되었고 그들의 역할은 갈수록 양극화되었다. 여자는 자본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무시하게 되었고, 여자들은 안정과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전통사회에서 중시되던 여성의 관대함과 사회성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생긴 것이다. 여성을 주체로서 인식하기보다는 남성의 타자로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남자를 잘 만나는 것이 여자들의 성공으로 간주되었고, 여자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외모를 가꾸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 된 것이다. 난 내 외모에 많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키에 커다란 코,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는 외모에 신경 쓰는 시간이 더 많았다. 누구를 위해 외모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걸까? 나 자신은 분명 아닐 것이다. 남자의 성공에 업히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겠다던 나도 이러한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달았다. 화장하고 옷을 잘 입고 다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내 자신과 내면부터 돌보아야겠다. 이것은 내 정체성을 찾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산업사회의 기술은 영화와 텔레비전, 라디오 등을 보급하였다. 나는 이러한 대중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개의 광고를 듣고 본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의 불만과 탐욕을 자극한다. 또한 세계는 국경을 넘어서는 하나의 거대한 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사람들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물건을 소비하고 먹는 것이 아니라 같은 청바지를 입고 같은 가방을 메고 다닌다. 점점 다양성과 개성은 침식되어 가고 몇몇 회사의 같은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미국 제품인 '이스트팩' 가방이 유행하였다. 중고교생은 물론 대학생들도 7할 이상이 이 가방을 메고 다녔다. 결코 싸지 않은 가방이었으니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부모님은 등허리가 휘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메이커에 연연해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를 따라 백화점에 갔다가 맘에 드는 가방이 있었다. 내가 갖고 싶어 하니까 엄마는 선뜻 사주셨다. 가격은 10% 세일해서 14만원이었다. 내가 보기에 엄마가 선뜻 사주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어땠을까? 가방을 사기 며칠 전 칼국수를 먹는데 파가 없었다. 그 이유를 엄마께 여쭈니 파가 비싸서 안 샀다고 하셨다. 그래서 가격을 물었더니 3000원이라는 대답에 난 그만 어이가 없었다. 엄마가 좋으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씁쓸했다.산업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인간관계의 변화가 아닐까 한다. 생활이 빨라지고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전통사회와 같은 인간간의 깊은 유대감을 갖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외면적인 것이 되고, 심지어 가족관계도 피상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돈이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자식을 키우는데 사랑보다는 돈이 우선이다. 부모님들은 자식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다. 그들은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경쟁사회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학원에도 가야하고 학교도 열심히 다녀야 한다. 서로 바쁘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대화가 없다. 나도 부모님의 얼굴을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을 뿐 마주할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동생은 같은 집에 살면서도 며칠에 한 번 보기도 힘들다. 서로의 생활이 바쁘기 때문이다. 나는 옆집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과 마주할 일도 없었으며 대화할 기회는 더더구나 없었다.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오히려 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라다크에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 그들의 공동체적 유대 관계가 부러웠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행복한 삶을 누렸다. 우리는 어떠한가?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항상 혼자라고 생각하며 외로워한다. 가족의 해체와 정서적 불안정으로 인해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을 한다던가, 부모를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나도 항상 뭔가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무엇이 불안한지 그 실체는 정확하지 않으나, 마음 속 깊이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정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라다크 사람들의 만족과 마음의 평화는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1. 서 론많은 사람들이 띄어쓰기를 어려워한다. 국어국문학과 졸업을 앞두고서도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기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아예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으나, 그런 표기는 능률적인 독서를 방해하므로 한글 맞춤법에서는 띄어쓰기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교육부(1995 : 190) 참조.띄어쓰기의 원칙은 1988년 당시의 문교부가 고시한 '한글 맞춤법' 제 5장에 규정되어 있는데, 하나의 원칙에 대해 예외 규정을 둔 항목이 많아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비판이 많다. 영어에서는 합성어를 제외하고는 띄어쓰기에 있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데 비해 국어에서는 의존 명사, 보조 용언 등과 같은 의존 형식이나 합성 용언, 합성 명사 등과 같은 합성어에서의 띄어쓰기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도 합성어의 띄어쓰기 양상으로는 1 붙여 쓴 합성어, 2 띄어 쓴 합성어, 3'-'(하이픈)을 한 합성어 등의 세 가지로 나타난다. 예컨대 'handball, handbook' 등은 붙여 쓴 합성어의 경우이고, 'hand ax(손도끼, 자귀), hand money(착수금)'과 'hand-pick(손으로 따다), hand-to-hand(육박한)' 등은 각기 띄어 쓴 합성어와 '-'(하이픈)을 한 합성어의 경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국어에서는 이들 합성어 말고도 의존 명사나 보조 용언 등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많다.띄어쓰기 규정은 크게 네 개의 절로 나누어 기술되고 있다. 제1절 조사를 앞말에 붙여쓰는 문제를 비롯하여 제2절에서는 의존 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및 열거하는 말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고, 제3절에서는 보조용언 문제를 다루었으며, 제4절에서는 고유명사 및 전문 용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먼저『한글 맞춤법』총칙에 대해 살펴본 다음 그 하나 하나에 대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다.2. 띄어쓰기의 대원칙) 이창원(2000 : 16-17) 참조.문교부(당시) 고시에 따라 1989년 3월 1일부터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고시된 제. 조사 문제제1절 조사(1)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꽃이 꽃마저 꽃밖에 꽃에서부터꽃으로만 꽃이나마 꽃이다 꽃입니다꽃처럼 어디까지나 거기도 멀리는웃고만(1)의 내용은 조사를 하나의 단어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조사를 별개의 품사로 설정한다는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조사가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단순한 어미라면 붙여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당연한 것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조사가 하나의 단어라고 하는 전제가 성립될 경우, 본항의 내용을 총칙 제2항의 내용과 비교하여 보면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문장 속의 각 단어는 띄어 써야 한다는 것과 (하나의 단어인)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는 것이 그것이다.학자에 따라 조사를 별개의 단어로 인정하지 않고 체언의 어미로 다루기도 하지만, 조사를 하나의 품사로 볼 때 명사와 조사 또는 부사와 조사가 별개의 단어인 이상 각각 띄어 써야 옳을 것이나, 여러 가지 이유) (1) 조사는 본래 실질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 말로서, 다만 다른 단어들의 문법적 관계를 맺어 주는 것을 그 임무로 삼기 때문에 항상 그 앞말에 붙어서 쓰이고 독립성이 없다.(2) 글을 띄어 쓰려는 근본 동기는, 각 단어를 한 덩어리로 만듦으로써 그 의미를 한눈에 알게 하여 독서의 능률을 올리려 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만일 체언과 조사를 일일이 띄어 쓰게 되면, 띄는 곳이 너무 많아서 띄어 쓰는 효과가 감소되어 독서 능률에 오히려 지장을 주는 일이 생기게 된다.를 고려할 때 (1)의 규정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4. 의존 명사 등의 문제제2절 의존 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 및 열거하는 말 등(2) 제42항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아는 것이 힘이다. 나도 할 수 있다.먹을 만큼 먹어라. 아는 이를 만났다.네가 뜻한 바를 알겠다. 그가 떠난 지가 오래다.(3) 제43항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소 한 마리옷 한 벌 열 살 조기 한 손 연필 한 , 포도 들이 많다.② 접미사 '복수' : 남자들, 사람들(나) 만① 의존 명사 '동안' : 십 년 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② 조사 '비교' : 당신만을 사랑합니다.(2) 용언 뒤에서 의미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의존 명사에는, '지'가 있다.(다) 지① 의존 명사 '시간의 경과' : 그가 서울에 온 지 십 년이 지났다.② 의문 어미 '회의' : 오늘 올지 내일 올지 잘 모르겠다.(3) 용언 뒤에서는 의존 명사로서 띄어 쓰고, 체언 뒤에서는 접미사 또는 조사로서 붙여 쓰는것들은 '대로, 데, 만큼, 뿐, 차' 등이 있다.(라) 대로① 의존 명사 '역동' : 그 사람이 가는 대로 따라 갔다.② 조사 '역동' : 네 마음대로 해라(마) 데① 의존 명사 '경우, 일'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② 어미의 일부 '설명' : 얼굴은 예쁜데 마음씨가 좋지 않다.(바) 만큼① 의존 명사 '정도·실컷' : 그도 이제 눈에 뜨일 만큼 많이 늙었다.② 조사 '정도·한도' : 나만큼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사) 뿐① 의존 명사 '따름' : 닭 우는소리만이 마을 공기를 흔들 뿐이다.② 접미사 '한정' : 빚은 은행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아) 차(次)① 의존 명사 '기회·처지' :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 왔다.② 접미사 '목적' : 연수차 도미(渡美)하다.그러나 언어 대중이 이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북한의 조선말 규범은 자립 단위로 띄어쓰기를 하기 때문에 자립적이지 않은 의존 명사(북한에서는 '불완전 명사'라는 용어를 쓴다)는 모두 앞말에 붙여 쓴다.) 양명희(2000 : 184) 참조.심병호(1996)에서는 의존 명사를 붙여 쓰는 것에 대하여 '의존 명사는 그 비자립성과 뜻의 추상화의 정도에서뿐만 아니라 단어의 길이에서도 딴 품사의 단어에 비하여 짧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앞 단어에 붙여 쓰려고 하며 또 발음할 때에도 앞 단어와 이어서 발음한다'고 설명하고 이런 이유로 의존 명사를 앞 단어에 붙이는 것은 어휘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도 . 비가 올성싶다.잘 아는 척한다. 잘 아는척한다.다만, 앞말에 조사가 붙거나 앞말이 합성 동사인 경우, 그리고 중간에 조사가 들어갈 적에는 그 뒤에 오는 보조 용언은 띄어 쓴다.잘도 놀아만 나는구나! 책을 읽어도 보고…….네가 덤벼들어 보아라. 강물에 떠내려가 버렸다.그가 올 듯도 하다. 잘난 체를 한다.(7)은 보조 용언에 대한 띄어쓰기를 규정한 것이다. 보조 용언은 보조 동사와 보조 형용사를 말하는데, 이는 각각 본 용언의 뒤에 쓰여 본 용언의 의미에 보조적인 의미를 더하여 주는 용언을 가리킨다. 이러한 보조 용언은 본 용언의 특정한 활용형하고만 결합되며, 한 문장에 하나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연달아 쓰일 수도 있다. 이들 보조 용언 중에는 본 용언으로 쓰이는 것도 있으나, 보조 용언은 단독으로 쓰이지는 못하고 반드시 본 용언의 뒤에 쓰인다는 점에서 본 용언으로 쓰이는 것과 구별된다.보조 용언도 용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어이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보조 용언을 반드시 띄어 쓴다고 하면, 본 용언과 보조 용언이 어울려 하나의 용언이 된 '들어가다, 늘어나다, 엎어지다'들과 본용언에 보조용언이 연결된 '꺼져 가다, 겪어 나다, 깨뜨려 버리다' 들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가 있어 붙여 쓸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문교부 1995 : 94-96).이에 붙여 쓰기를 허용한 것은 '-아/어/여' 뒤에 연결되는 보조 용언과 '듯하다, 만하다, 법하다, 성싶다' 처럼 '의존 명사+하다/싶다'의 보조 용언 구성에만 제한 적용된다.이런 보조 용언 문제는 보조 용언, 합성 용언, 접속 용언의 변별이 문제가 되는데 이러한 구별이 객관화하기 어려운 관용적 빈도에 의지한 것이므로 띄어쓰기에 혼란이 나타난다.) 민현식(1997 : 34-36)은 접속 용언, 합성 용언, 보조 용언 구성을 모두 붙여 써 혼란을 막을 것을 주장하였다.이창원(2000 : 35)에서 제47항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붙여 씀도 허용한다."의 규정가리키는 말이므로, 한 덩어리의 단어로 생각된다. 그러나 따져 보면 성과 이름은 별개의 단어로 볼 수도 있다. 성은 부계의 혈통을 표시하고, 이름은 특정한 개인에게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법인 에서는 성과 이름을 띄어 쓰도록 규정하였었다. 종래에 하던 방법으로 성과 이름을 띄어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현복(1997 ; 26-27)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① 세계적으로 성과 이름을 띄어 쓰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Albert Einstein, George Washington② 성과 이름은 각각 별개의 단어로 보아야 하므로 띄어씀이 타당하다.③ 성과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자 식 이름 적기의 잔재이다. 일본인과 중국인도 로마자로 적을 때는 띄어 쓴다. 따라서 한글로 성명을 적을 때에는 띄어 씀이 자연스럽다.④ 대체로 우리의 성은 외자 성이므로 이를 이름과 붙여쓰면 성의 독자성과 중요성이 약화된다.⑤ 성명을 붙여쓰면 혼동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남궁억 → 남궁 억(?) : 남 궁억(?)(9)는 여러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단위별로 붙여쓰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고유 명사라 하더라도 그 안에 여러 개의 단어가 나타나면, 그 단어는 맞춤법의 강령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여러 개의 단어가 나타나면, 그 단어는 맞춤법의 강령이라고 할 총칙 제2항에 따라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럴 경우에 각 단어의 뜻이 분명해진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각 단어가 결합하여 가리키는 하나의 대상이 잘 파악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9)에서 단위별로 띄어 쓰는 것을 허용한 것은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처다.(10)은 전문 용어의 띄어쓰기를 규정한 것이다. 전문 용어란 특정한 학문이나 기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말하는데, 대개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져 있다."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규정의 적용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살다'의 관형형.
오정희의 『동경』을 읽고과목명: 소설창작연습2국문학과 983442 김기애제출일: 2001. 3. 29【줄거리】평생을 시청 하급관리로 산 그는 정년 퇴직하여 아내와 살고 있다. 이들 노부부는 20년 전 아들을 잃어, 지금은 둘 뿐이다. 이들의 생활은 지나칠 정도로 단조롭다. 이들에게 어떤 사건이나 이슈가 있다면 그것은 이웃집 아이와 그가 정년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강 평】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나 반전 없이 스토리가 너무 단순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하게 한다. 평범한 일상을 무리 없이 그려나가고 있지만, 너무 평범해서 소설로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단순한 스토리를 커버해줄 만한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이들 노부부는 늙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가 상이한 것 같다. 아내는 순순히 받아들이는 반면, 남편은 그렇지 않다. 아내는 흰머리를 그냥 두지만 남편은 염색하는 등 젊어 보이려고 애쓴다. 남편의 이러한 욕망은 아이를 통해 드러난다. 아이는 남편이 갈구하는 그의 젊은 날의 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대문 앞을 지나갈 때 그는 그럴 수만 있다면 살같이 달려간 아이를 손짓해 불러 뒤돌아보게 하고 싶어한다. 이는 한순간 지나가 버린 그의 젊음을 되돌리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또한 그는 아이의 만화경을 훔친다. 아니는 만화경을 뭐든지 다 보이는 요술상자라고 하였고, 그는 아이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을 보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 역시 소생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표출시킨 것이다.아내는 남편이 아이를 통해서 젊음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수도 검침을 다니는 청년을 보면서 죽은 아들을 본다. 아내는 밀가루 반죽으로 나쁜 꿈을 먹는다는 짐승인 맥을 만든다. 이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무덤에 넣어 달라고 유언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내의 행위는 늙음을 받아들이고 결국은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