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조너선D. 스펜스의천안문을 읽고중국이 몰려오고 있다.세계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중국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21세기 아시아의 경제질서를 바꿀 것이며 나아가 세계의 경제질서를 바꾸게 될 것이다. 중국은 우리에게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국과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 왔고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중국에 대해서 적어도 일부는 안다고 생각한다. 삼국지를 알고 수호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어떻게 소수의 만주족은 중원을 정복하고 통치할 수 있었는지, 청나라는 어떻게 하여 그토록 무기력하게 서구 열강에게 무릎을 꿇었는지,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장계석의 국민당 군은 모택동의 공산당군에게 왜 패하여 대만으로 도주했는지, 문화혁명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특히 2차대전 이후 우리가 40여년 동안이나 중국과 거리를 둠으로써 현재의 중국을 형성하고 구성한 그 밑바탕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도‘중국전문가를 기르자’,‘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자’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한 국가와 민족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접근방법은 그 나라의 역사 및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중국과 같은 거대한 나라, 모두가 아는 것 같지만 정확히 모르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조너선 스펜스의 『천안문』(근대 중국을 만든 사람들)은 중국 현대사의 100년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중국을 바라본 책이다.중국인은 1912년 마지막 왕조가 몰락할 때까지 황제의 권능이 바로 이 문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이 책 서문에 나와있는 말이다.천안문 이라는 이름은 풍부한 역사적 반향과 함께 정치를 뛰어넘은 초시간적 상징으로 중국 역사의 변화 및 역경을 모두 봐왔고, 이것은 중국역사의 거울 로 생각하는 중국전문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조나선 스펜서가 이름을 부여한 것 같다.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나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연상하게 했다. 세계사시간 교과서 근대중국에 관해 접할 때, 출현했던 인물들 캉유웨이, 뤼쉰 등...물론 그들은 지금 잊혀져 갔다. 모두가 그렇듯 현재 중국의 근대를 생각한다면 대부분 모택동, 장계석, 쑨원 등과 같은 인물들만을 떠올릴 것이다.하지만 작가 조너선 스펜스의 『천안문』(근대 중국을 만든 사람들)은 중국 한시대-사회의 주연급이 아닌 조연급에 불과한 캉유웨이, 뤼신, 딩링 등의 시각으로 마치 그들의 일대기를 자서전 혹은 인생역정의 묘사들을 통해 중국혁명을 조명하였다.『천안문』은 189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캉유웨이, 량링차오, 쑨원, 딩링, 쉬즈모, 샹징위, 라오서 등 당대를 살아갔던 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그려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 시기는 중국에 있어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왕조의 몰락과 근대적 국가의 수립을 둘러싼 혼란과 오랜 내전, 혁명을 통한 공산당 정부의 수립으로 채워진 대 격변의 시기였다. 『천안문』은 그 속에서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실천하고 또 때로는 목숨까지 바쳤던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선택이 역사교과서에 건조하게 쓰여져 있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거나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이를테면 책을 읽으며, 중국과 비슷한 내외적 상황에서 결국은 중국보다는 훨씬 불행하게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또 분단으로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예전 같으면 누구는 위정척사파, 누구는 개화파, 누구는 민족주의자 또 누구는 사회주의자 등으로 쉽게 분류·평가되었을 사람들의 고민과 선택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천안문』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민중들이 아닌 지식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치가나 혁명가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깝다 (물론 모택동, 장계석, 저우언라이와 같은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은 보조적으로만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천안문』에서 그리고 있는 중국의 역사, 중국 혁명은 다소 우울하다. 그들의 삶이 더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은 격변의 역사와 혁명이 지닌 창조와 생성의 힘보다는 그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다. 지은이가 서문에 쓴 것처럼 "이들(지식인들-인용자)은 노동자나 농민을 직접 대변하지 못했을지언정 결코 단순한 관객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민중과는 달리 무대 위에서 자신이 행하는 연기와 말하는 대사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그러므로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극적 상황에 대해 몰입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회의하는 그런 배우는 아니었을까?그런데 『천안문』에서 받는 우울함은, 다른 사회주의의 관련 책에서 주었던 느낌과도 좀 다른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요 등장인물이 지식인이라는 사실 이외에 중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에 혐의를 두게 되기도 한다. 우선 저자 조너선 스펜스가 중국사에 저명한 학자이지만, 그가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 그것도 아시아인이 아닌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인종적 혐의보다는 오히려 저자가 중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필요하고, 서술되어진 글의 당시 배경 또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책의 표지를 보고있노라면,표지의 사진들은 『천안문』을 제대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주요한 열쇠라 생각된다. 책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사진 역시 대부분 인물 사진인데 거기서 우리는 글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그 인물의 삶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직관적이고 총체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진은 젊다! 그래,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그렇게 젊은 사진이 등장했던 적이 있었지. 독립군, 항일 빨치산, 또는 혁명조직의 중심 인물들이 갓 스물을 넘기거나 서른이 채 안된 사람들이었던 그런 때가... 아니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 전태일의 나이, 박종철의 나이도 갓 스물을 넘긴 것에 불과했지. 사진 속에 등장하는, 격변의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젊은 얼굴을 한 참 들여다보고 있으면그들의 나이와 젊은 시절을 내 삶과 내 얼굴에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책 속의 인물들캉 유웨이청 말, 중화민국 초의 학자, 정치가. 광동성 난하이 현 사람. 다른 이름은 조이, 자는 광하, 호는 장소였는데, 뒤에 자를 갱생, 갱신으로 고쳤다. 그는 고문을 배척하고 금문을 존중하여 신학 위경, 공자 개제를 주장하였다. 또 경서에 불전, 서학의 교양을 가미하여 대동설을 주장하고, 인류 평등의 대동 사회가 도래할 것을 믿었다. 일찍부터 변법 자강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 뻬이징, 상하이에 강학회를 열었으나 금지되었다. 독일의 쟈오조우 만의 점령을 계기로 개혁에 대한 의견을 상서하고, 또 뻬이징에 보국회를 설치하여 혁신 운동의 기반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금지되었다. 그러나 꽝시제에게 인정받아 1898년 혁신 정치를 단행하였지만, 무술 정변이 일어나 국외로 망명하였다. 그 후 다시 보황회를 설립하여 꽝시제를 복위시키려 했고, 신해 혁명 이후에도 청조 회복 운동과 존공 운동을 일으켰다. '신학위경고' '공자개제고' '대동서' 등의 저서가 있다루쉰루쉰은 20세기 중국문학의 중심이었다. 모택동은 그를 "위대한 문학인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고 논평하였는데, 실로 루쉰의 영향력은 그 이상이다. 현대 중국을 사로잡은 인물일 뿐만 아니라 대표작 은 물 건너 프랑스의 작가 로망 롤랑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가 루쉰의 성과는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중편 1편과 단편 32편으로 오히려 부족하다면 부족한 양이다. 그럼에도 중국현대문학사의 상석에는 루쉰을 위한 자리가 항상 마련되어 있다.루쉰을 근대적 인물로 만든 사건은 유명한 '환등기' 일화이다. 일본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에서 유학을 하던 루쉰은 중국인이 러시아군의 스파이라는 이유로 일본 군대에 체포되어 총살되는 필름을 구경한다. 거기에서 중국인들은 마미된 표정으로 동포를 바라본다. 루쉰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정신을 개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펜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완성된 첫 작품이 이다.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관계1. 들어가는 말최근 제9차 ASEAN+3 회의가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다. 이번 ASEAN+3 회의에서 한·중·일 3국의 협력 의지가 '공동선언'으로 표명되었다. '98년 후진타오 부주석이 ASEAN+3 재정·금융회의를 제창했으며, '02년에는 주룽지 총리가 2010년까지 자유무역지구 건립 목표를 제시하여 한·중·일 3국 자유무역의 가능성을 열었다. 조성된 기초위에 교류·협력을 심화하는 방안 모색 및 동아시아 협력의 발전방향이 본 회의 참가국들의 공통 관심과제가 화제였다. ASEAN+3 공조를 통한 시야 확장 및 내실화가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중국은 2010년까지 동남아 일대를 단일 경제공동체로 통합하려는 아세안 계획 에 화답해 FTA 체결 시기를 앞당기는 데 합의했다.또한, 이번 회담을 통해 2020년까지 역내 상품, 서비스, 투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단일시장 구축을 목표로 하는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설립 의사를 표명했다. 10년 전 아세안자유무역 지대 설립 이후 관세 장벽이 12.7%에서 2.3%로 떨어졌으며, 이 같은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는 동남아시아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AEC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첫째, 다자 무역 시스템을 통한 지역 협력을 통해 동남아 국가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국제 테러나 SARS와 같은 초국가적 이슈 등에 함께 대처해 나아갈 수 있다. 둘째, 아세안은 열린 개방주의를 표명, 앞으로 중국, 일본, 한국, 인도, 더 나아가 미국과 유럽 연합과의 관계도 심화시킬 예정이다. 셋째, AEC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동남아국가들간의 협력을 통해 지역 정체성 확립에 앞장서게 됨으로서 아시아 지역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지어 중국과 아세안간 외교적 측면 및 경제적 측면(FTA결성)에서의 관계를 간략히 살펴보자.2. 외교적 측면중국과 동남아국가간의 외교는 1990년 8월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1993년 필리핀과의 관계개선의 합의로 동남아 10개국과 실질적 관계 개선 및 정상화를 실현하였다. 관계정상화를 가능케 한 요인은 냉전이후, 서방에 치우친 외교관계를 조정하면서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중국의 적극적 외교공세에 연유한다. 특히, 캄보디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여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지니고 있던 불안감 완화에 기여한바가 크다.그러나 중국과 동남아국가간 관계에서의 어두운 단면도 있다. 그 단면을 살펴보면 먼저 남중국해 연안의 남사군도 영유권분쟁을 들 수 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관련 당사국인 중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간의 영유권을 놓고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사군도를 둘러싼 이러한 마찰로 인한 주변국의 군사력증강은 지역 내 다른 국가로 확산되어 안보문제로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동남아지역의 화교문제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국가 내에서의 상권 즉, 경제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동남아 각국 내 경제적 부의 편제가 사회·정치적 불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가능한 한 화교의 현지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경제협력은 지속하는 이중전략을 통해 갈등은 최소화하면서 실리는 극대화하려는 대응방식을 취하고 있다.다음으로 다자간 관계를 살펴보면, 중국은 1993년부터 안보문제에 관한 다자주의적 접근에 대해 부정적태도를 불식시키고 1994년부터 ARF(ASEAN Regional Forum)의 창립회원으로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1995년 7월 베트남, 1999년 4월 캄보디아의 ASEAN가입을 통해 동남아 안보불식 및 국가전체를 포괄하는 거대조직으로 확대되어 다자주의보다는 양자간 관계에 익숙한 중국의 입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주요 외교대상으로 부상한데 기인한다.그러나 다자주의에 대한 기본 태도는 여전히 선별적, 제한적 수용에 그치고 있다. 경제분야의 다자주의 접근에는 적극적이나 정치, 안보분야의 다자주의는 여전히 제한적이거나 유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ARF에 참여하면서도 동남아지역에서 안보관련 다자간 협상을 제도화하는데는 반대하고 있다. 주권 및 영토관련 문제는 다자간 협상보다는 개별 국가들과의 다양성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는 당사국과의 양자간 협상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양자간 안보협력을 공고히 한 후, 다자간 안보협상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태도로 과거와 달리 다자간 기제에 참여는 하지만 여전히 양자간 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3. 경제적 측면1980년대 이후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을 경협의 파트너로 재인식하게 되었다. 동남아국가들은 화교들이 상권을 확보하고 있어 이전부터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기 때문에 자유무역지대가 설정되면 역내국가간의 교역 촉진은 물론 아시아의 교역질서가 바뀌게 될 것으로 여긴다. 이전 경제협력을 살펴보면 동남아국가들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적극참여로 교역량이 증가하였고, 특히 태국과 메콩강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협력은 중국 서남지역의 대외진출로 확보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양자간 경제관계 강화는 쟁점사항의 돌출을 억제할 수 있는 상호간의 공동이익의 원천으로서 관계발전의 기반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관광{목 차- 들어가는 말- 최근 관련기사- 말레이시아 개관- 지역별 관광지- 행사 및 축제- 말레이시아 관광추이- 말레이시아 관광정책 및관련 이슈- 자료분석들어가는 말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여행하기 가장 쉬운 나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페낭이나 말라카 같은 역사적인 도시들이 여행객에게 인기가 있다. 비록 전통문화에서는 두드러지는 것이 없지만 말레이시아에는 다양한 민족의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아주 흥미로운 복합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말레이반도에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들이 살며, 東말레이시아의 사바와 사라왁에는 다양한 종류의 소수 부족들이 살고 있다.멋있는 해변과 산 그리고 국립공원과는 별개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하고 있는 나라이다. 新아시아 의 중심지이며, 빠르게 늘어나는 부와 산업개발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현대화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말레이시아 여행은 크게 말레이 반도와 사바와 사라왁이 있는 보르네오로 크게 나뉜다. 두 지역을 모두 구경하려면 적어도 2개월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말레이 반도만 여행하며, 보르네오는 마치 다른 나라인 것처럼 여겨 여행객이 드물다.말레이반도 서부해안을 통과하는 전형적 여행은 말라카, 쿠알라룸푸르, 페낭 등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역사적인 도시들을 들리며 문화적인 관심을 충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혹 중간에 서늘한 고산지역인 카메론하이랜드에 들리기도 한다. 동부해안의 주요여행지는 해변이며 띠오만섬, 체러팅, 뻐르한티안군도가 인기있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동부해안의 꼬따바루를 거치며, 반도의 중앙에 있는 다만느가라 국립공원도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사라왁은 정글과 다약 부족으로만 유명하지만, 꾸칭도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쾌적한 도시 중 하나이다. 바꼬, 니아동굴, 물루 같은 국립공원이 주요 볼거리이며, 르장 강을 EK라 올라가면 보르네오의 중앙부에 가 볼 수가 있다. 사바의 가장 큰 볼거리는 끼나발루 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등반하기 쉬운 산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스삘록 오랑우탄 재활.- 국제선 : 40여 개의 항공사를 통해 쿠알라 룸푸르의 국제 공항인 세팡 공항으로 방문.- 국내선 : 말레이시아 국영항공사외에 부르나이 항공, 싱가폴 항공, 펠랑기 에어,트렌스밀 에어 및 에어 아시아 등- 그 외 항로 : 말레이시아는 북쪽의 태국과 말레이 반도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Keretapi Tanah Melayu Bhd(KTMB)를 경유하여 남쪽의 싱가폴까지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곳.- 쿠알라 룸푸르에서 45Km떨어진 클랑(Klang)항구는 주변국가로부터 바닷길로 연결됨.- 국제적 행사 및 대규모 회의 전시회 등을 개최하기 쉬운 동남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음.* 관광지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Sultan Abdul Samad Building)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머르데까 광장(Dataran Merdeka)이스타나 느가라(Istana Negara)쿠알라 룸푸르 타워(Kuala Lumpur Tower)호수 공원(Lake Garden)국립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History)♧ PENANG-말레이 반도에서 가장 큰 주- 35,964평방 킬로미터- 말레이반도 북서쪽, 폭 4.4km의 말라카 해협을 사이 에 두고 인도양에 위치- 본토와는 우리나라의 현대 건설이 세운 아시아에서 제일 긴 페낭교(13.5km)로 연결- 18세기말 영국무역상들의 방문을 받으면서 개방- 섬의 북동쪽에 자리한 수도 조지타운과 그 주변에는 중세기서양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많은 건물이 늘어서 있으며, 지금은 공공건물 및 개인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음.- 공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 공항에서 동쪽해안을 따라 차로 10분 정도 가면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라 불리는 공장지대가 있음. 이 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은 수출되며,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이 섬의 관광수입을 능가함.- 중국계가 지배적임* 관광지Jeorge TownTanjung Bunga♧ MELAKA- 멀라까는 "멀라까 해협"을 마주보며 말레이 반도 서부 해안고 고지대는 산의 정상으로 침엽수와 그 외 고산식물들을 볼 수 있음.* Danum Valley- 아시아 원시 열대 우림의 저지대에 남아있는 보존지역의 하나. 438평방 킬로미터 내의 다양한 동물과 식물은 우림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경관과 역동적인 생태계의 조화를 보여줌.- 다눔 계곡은 정부에 의해 창설된 사바재단으로 지정된 972,000헥타르의 삼림 면허지역으로 1995년 5월, 이 지역은 사바 주 삼림부와 사바 주 입법부에 의해 삼림보호 1등급 지역으로 선포되었고 또한 재목벌채 면허발행이 금지되었음. 현재 사바재단은 다눔 계곡을 야생생물 연구, 교육,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 저 우림 서식 보호지역으로서, 보르네오 삼림, 강, 습지대에서만 발견되는 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있음.- 90%가 삼림.- 야생 동물의 보고 : 오랑우탄과 긴 코 원숭이 같은 10여종의 영장류와 수마트란 코뿔소를 포함한 110여종이 넘는 동물의 보호지역.♧ PAHANG*TASEK BERA(베라 호수)- 말레이시아 반도의 주 산악능선 및 동부능선 사이에 자리잡고 있음. 길이 35km, 너비20km에 이르며 북부지역의 주요수로인 베라 강을 경유하여 파항 강으로 흐름.-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가장 큰 늪지로 야생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음.- 홍수조절, 수량조절 및 정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 많은 천연자원을 제공.- 국제조약인 람사협정(Ramsar Convention)에 따라 보호되고 있음.- 현재 200여종 이상의 조류, 50여종의 포유류 및 90종 이상이 어류가 서식.♧ JOHOR- 말레이시아 반도의 남쪽 관문.- 말레이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주- 8개 행정구역- 인구 : 약 230만- 19,984 평방 킬로미터- 종족 :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및 자바인* JOHOR BAHRU- 조호르 주의 수도- 싱가포르와 전체길이 약 1,050m의 육교 코즈웨이(the Cause Way)로 연결되어 있음.- 쇼핑과 오락의 천국.* 관광지DesaruEn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려는 이유임.PULAU PAYAR- 랑까위 남쪽에 위치- 해양 공원으로 지정.- 많은 종류의 산호 보유- 다양한 어족 보유♧ PERAK- 면적 : 21,000평방 킬로미터- 인구 : 2백만명- 주석 생산지로 유명.Pangkor- 가는 길 : 쿠알라 룸푸르에서 서해안 도로를 따라 3시간정도 가면 페락에 도착하는데, 페락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된다.- 예전에는 말라카 해협 을 항해하던 선원들의 휴식처로, 때로는 해적들의 피난처로 사용되었음. 지금은 휴양지로각광 받고있음.- 말레이시아의 빠른 변화와는 대조적으로 팡코르에는 식당과 쇼핑 센터, 놀이시설 같은 위락시설이 없음.Lumut말레이 반도에서 팡코르로 가는 관문. 쿠알라 룸푸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해안 도시. 말레이시아 본토의 빠른 성장과는 무관하게 루무트는 자연과 옛것을 지키면서 루무트만의 개발 계획을 수행하고 있음.- 역사 : 한때 유럽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나, 전쟁과 정복자들의 파괴에도 현재 여행지로 발전하고 있음.축제일/공휴일* 1월 21일 타이푸삼힌두교의 참회와 감사의 날로, 번영의 신인 수브라 마니암상을 실은 웅장한 은마차 행렬이 있다.* 구정음력 1월1일부터 15일간 열리는 축제로 전통 사자춤 등의 행사가 있다.* 3월 말레이시아 쎄븐 국제 럭비 대회해마다 스랑고르주의 페탈링 자야 스테디움에서 럭비대회가 열린다.* 3월 16일 하리 라야 아이딜 아드하이슬람교의 가장 큰 축제로 메카순례를 마감하는 절기 행사이다.라마단(한 달 동안의 단식 기간)이 끝나는 날 열린다.* 4월 6일 아왈 무하람불교도들은 해뜨기 전 절을 찾아 분향하고 공양과 예불을 드린다.* 4월 15일 말라카 축제유구한 역사 유물이 밀집되어 있는 말라카시에서 여는 축제이다.다양한 문화 행사와 오래된 건축물, 생활 풍습 등을 살펴 볼 수 있고,바바 니오나, 체티아르 등의 말레이시아 토착민들이 펼치는 춤과 향연을 구경할 수높고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등정 코스 중의 하나인 키나발루를 등반하는 대회이다.고도 1,800~4,000M를 오르는 이번 대회의 완주거리는 21Km이다.* 10월 26일 디파발리힌두교도의 빛의 축제라는 의미로 크리쉬나 신이 악마 리바나를 이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이 날에는 전통적으로 오일 목욕을 하며 힌두교도의 집에서는 밝은 불빛이나 램프를 밝힌다.* 10월(Shopping Carnival) 쇼핑 축제하이패션, 보석류, 향수로부터 전기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대규모 바겐 세일을 벌인다공휴일 및 국경일(2003년)공식적인 날들은 음력을 이용하므로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1월-1일 신정 ( 사라왁과 라부안은 제외)-하리 라야 아이딜 피트리 (Hari Raya Aidil Fitri, 1월) - 국경일* 2월-1일 연방특별시 제정 기념일(Federal Territory Day ) - 쿠알라룸푸르와 라부안 지역만-10~11일 춘절☞구정 (1월/2월) - 국경일*3월-술탄 탄생일 (켈란탄주)-14일 이슬람 금식일* 4월-1일 성금요일* 5월-1일 노동절-국경일-14일 베사크 데이 (Vesak Day, 석가탄신일) 국경일* 6월-1일 이슬람교 정월-3일 국왕 탄생일-11일 마르 히자라프 (이슬람교의 설)* 8월-9일 마호메트 탄생일-31일 독립기념일 국경일* 10월-디파바리 데이 (힌두교의 설) 사라왁과 라부안은 제외* 12월-25일 크리스마스-국경일주의사항* 공휴일말레이시아에서는 금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주가 있다. 호르, 트렝가누, 켈란탄, 케다, 페를리스 등지에서는 목, 금요일을 주말로 정하므로 기억하여야 한다.말레이시아 관광현황(기사해석 및 분석)PATA(아·태지역 관광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이 지역의 관광 NTO들은 중동 이라크 전쟁이 관광산업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실시한 이 조사에는 13개국가의 NTO들이 참가하였다. 현재의 위기가 군사행동으로까지 악화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개국 NTO만 "그렇다"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