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구비문학 현지조사(경상북도 청도군 일대를 중심으로)1. 답사 일정2. 조사지역 개관 및 지도3. 현지조사 방법a. 현지조사의 의의 b. 조사의 종류?선택 c. 예비조사d. 조사장비 e.접근?유도의 방법 f. 실제조사g. 조사결과의 정리4. 현지 조사카드5. 채록된 청도 지역의 자료1. 답사일정☞장소 : 청도군 청도읍 (조태호 학생 외할머니 집)상세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1리 1112번지① 출발시간☞ 09:30(장소 : 기차 경산역)② 도착시간☞ 11:00(장소 : 청도군 덕암1리)③ 중식시간☞ 11:30~ 12:30(장소 : 청도군 덕암1리 1112번지 조태호 학생 외할머니집)④ 조사시간☞ 13:00~ 15:00☞ ※숙지사항① 일정표에 대한 보다 상세한 인지 요망② 조사장비에 대한 철저한 지도 요망③ 답사경비에 대한 회비의 산정 요망2. 조사지역 개관 및 지도▶ 시정 현황 ◀■연 혁⊙선사시대☞ 초기 철기문화시의 연맹왕국 이서국신라에 통합되기 이전 선사시대에 있어서 청도군 일대의 정치적 집단은 이서고 국이다. 기원전 10세기경 중국대륙으로부터 금속문화가 전래된 한반도의 남부지역에는급속한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다. 이들은 이전의 신석기인들과는 달리 구 릉지대에서, 보다 안정된 농경생활과 목축. 수렵생활을 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 서 부와 권력을 소유한 정치적 지배 집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 이들은 일정 한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상호간의 대립.항쟁을 통해 여러개의 정치적집단 을 형성하는데, 기원 전후 철기문화의 보급에 따라 연맹왕국으로 성장하였다. 이 러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소국의 하나가 이서고국이다.청도군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선사유적은 처음 인간이 정착한 이후 신라에 통합되기 이전까지 이서고국이 남긴 고고유적이다. 주로 천변이나 구릉 지에 분포되어 있는 이러한 유적은 수렵.어로 그리고 농경생활의 흔적을 보여주 고 있다.⊙이서고국과 신라☞ 신라금성을 함락직전까지 몰고간 강대한 이서국문헌을 통해서 볼 때 청도지역에 처음 등 42년 [유리왕 19년, 후한 무제 건무18년)에 멸망하였 다. 그러나 이와같은 이서국 멸망에 관한 기록은 의 서기 297년 이서국의 금성 공격과 비교해 볼때, 이서국의 멸망시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의 저자인 일연이 서술과정에서 신라의 왕세계를 착종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왕세계를 보면 3대가 유리왕이고 14대가 유례왕인데,에서 일연은 모두 노례왕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의 기록대로 서기 42년 멸망한 이서국의 토착세력이 멸망후 250년 정도 지나서 신라에 반기를 들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서국의 멸망 시기는 3~4세기경 신라의 판도가 낙동강 이동의 지역까지 확장되기 이전으로 소급 해서 생각할 수 있다. 즉 신라가 정복전쟁을 시작하는 2세기 초엽 파사왕대에 경산의 압독국과 함께 신라에 병합된다고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신라에 의해 이서국은 멸망하였다. 그러나 국력이비등했던 이 두나라 사이에는 그 이전에 많은 싸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유례왕 14년(297년)에 이서국이 신라의 금성을 공격했을 때, 신라의 대병으로 방어했으나 능히 막지 못하고 큰 위기에 직면하였을만큼 이서국은 강국이었다. 결국 이서국은 신라의 끈질긴 정복전쟁에 의해 멸망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은 신라의 지방 군련으로 편성되었다.이리하여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신라가 낙동강 중류의 가야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전초기지 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 이서국의 고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서고국은 지금의 화양읍 백곡리를 중심으로 청도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부족국가로 주, 거, 강, 황의 여러씨족들이 공고한 혈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서국의 수도로 추정되는 화양읍 백곡리에는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나 부근의 여러 지명에서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서국의 수도로 추정되는 화양읍 백곡리에는 동쪽에 토성산이라는 낮은산이 있는데 이곳에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둔직 : 백곡리 뒷 후 태조 왕건은 지방호적 세력의 통합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청도를 주변 군현이 속현과 통폐합하여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승격시켰다. 이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고려 초기 청도군으로 성립되기까지에서는 그 변천 과정을 이서국의 땅을 신라시대에 이서군으로 삼았다가 후에 대성군으로 개편했으며, 고려 태조는 후삼국을 통합하고 여러 지역을 통폐합하여 청도군으로 삼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제도적으로 행정구역을 정비한다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정책적으로 지방호족세력을 통합한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대성군을 청도지역으로 기술한 것은 삼국사기를 지은이의 오류라는 지적이 있으며 원래 경주 동쪽에 있던 대성군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청도군과 대성군 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로 되고 있다. 청도군은 밀성군의 영현이 되어다가 1109년[예종 4년]에 비로소 감무를 두어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후 충혜왕때에는 지군사가 되었다가, 1366년[공민왕 15년]에 가서야 군으로 승격되었다. 고려초기 청도군으로 승 격은 고려 태조 왕건의 지방세력 통합을 위한 정책적인 측면이 강하다.⊙조선시대☞ 잦은 행정구역의 변경1366년(공민왕 15년)에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이래로 독립된 행정구역으로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조선조 초기인 1405년에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태종 7년에 좌우도로 분할됨에 따라 경상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게 되었고 20년 후에는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 되었다가 1458년에 대구진에 속하였다. 이후에도 지방행정개혁의 변동이 잦아 여러번 변경되었다. 1832년에 상읍내면, 차읍내면, 내서면, 외서면, 내종도면, 상북면, 차북면, 하남면, 상남년, 외종도면, 적암면, 중동면, 동일위면, 동이위면 등 14면으로 편성되었으며 1896년 도제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대구에 속했던 각북, 풍각, 각초면이 편입되어 17면이 되었다.⊙일제 강점기 이후☞ 잦은 행정구역의 .5℃, 최저 -11.6℃, 평균 13.1℃ 강 수 량 : 1,293.9mm(2000.12.31)◎ 교육 시설총 28개교 5,303명 (초등17, 중6, 고교5)■ 지역 특징◎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 경부선 철도와 대구-부산간고속도로, 국도 20호, 25호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 신라삼국통일의 정신이념인 화랑정신과 조국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 군전역 오곡백과가 잘 되는 양질토로써 도내 과수재배 최적지◎ 수려한 자연경관과 향교, 서원 유적지 등 많은 문화재 산재■ 행정 조직◎ 행정기구*군 - 군본청 : 1실 12과, 직속기관 : 보건소, 농업기술센터, 군의회 : 1과*읍면 - 2읍 7면 2출장소※ 210개리, 398자연부락, 998반◎ 공무원수 : 583명 (군본청 271, 의회 10, 보건소 69, 농업기술센터 44, 읍면 189)■ 산업 현황◎ 60개 업체 1,420명*농공단지 : 2개소 119천평 (청도 43, 풍각 76), 38개업체 946명*주생산품 : 기계, 섬유, 전자, 농산물가공 등◎ 청도공영사업공사 설립운영 : 상설소싸움장 운영등■ 청도읍 지도⇒연혁 : 신라 경덕왕때 현산현과 일부는 조악현에 속하고 신라 경순왕때는 대성리로 불리우다가 조선중엽에는 하남면과 용산면으로 분리 되었다가 구한말에 대성면으로 되었으며 1940년 11월에 청도면으로 개편개칭되었다가 1946년 8월 13일에 지금의 청도읍으로 승격되었다.3. 현지조사 방법a. 현지조사의 의의현지조사는 구비 문학 연구의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구비” 문학의 자료는 현지조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자료가 있어야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현지조사의 의의를 간단히 들면 다음과 같다.1 구비문학은 구전되면서 창작되기에 언제나 새로운 조사에 의해서 새로운 자료가 보고되 어야 한다. 이미 여러 번 채록된 자료라도 거듭 채록할 때마다 새로운 가치를 가진 새 작 품을 얻을 수 있다.2 아무리 정밀하고 정확히 기술된 자료라 할지라도 기록화 하면서 구연형태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데 문제가면 난점이 상당히 해소된다. 조사자가 다수(多數)일 때에는 업무 분담?협조의 방법이 문제다.2) 무엇을 조사하느냐는 대상이 구비문학의 영역과 선택된 영역을 주로 다루는 측면의 두가 지 각도에서 고찰될 수 있다.① 가장 좁게는 한 유형(類型)의 것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② 한 장르의 것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③ 몇 가지 장르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④ 가장 넓게 구비문학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선택된 대상을 다루는 측면이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① 유형을 중심으로 하는 조사와 한 유형 내의 여러 각편들을 중요시하는 조사② 작품 자체에 치중하는 조사와 배경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는 조사③ 작품을 말로 된 부분만으로 설정하는 조사와 그 구연방식(억양?창곡?동작)까지도 설명 하는 조사3)어디서 조사할 것인가는 조사지역?장소의 두 가지 각도에서 고찰될 수 있다.가) 조사지역을 좁게 잡으려면 어떤 한 자연부락을 택해야 한다.나) 좀 더 넓게 잡은 조사지역은 여러 자연부락을 포함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경우, 지 역 내의 부락들이 자연배경?사회적 조건?문화적 측면에서 어떤 동질성이 있어야만 의 미 있는 조사가 될 수 있다.다) 가장 넓게 잡은 조사지역은 전국이다.4) 누구로부터 조사할 것인가는 제보자의 선택을 말한다.① 우연조사(偶然調査) : 누구든지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제보자로 삼는 경우② 선정조사(選定調査) : 특별히 필요한 사람을 선정해서 조사하는 경우③ 전수조사(全數調査) :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전부를 제보자로 삼는 경우이 가운데 바람직한 것은 ②다. ①은 수고는 덜하나 저질의 자료만 얻을 수 있고, ③은 많은 노력이 소요되기에 특별한 목적이 없을 경우 피해야 한다. 고령(高齡)?좋은 기억력? 세련된 구연 기술?그 지역에서 거주한 경력이 오랜 사람일수록 좋은 제보자라 할 수 있 으나, 동요를 조사하려면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 민요의 쇠퇴를 조사하려면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사람도 필요하다. 개별적인 만남도 가능하나, 다수를 한 장소 있다.
1.비평의 개념은 무엇인가?한 문학용어사전에서는, 비평이란 비평가의 개인적 취향에 의거하거나 혹은 일련의 선택된 미학적 개념에 의거하거나 예술작품에 관하여 의식적으로 평가하고 감상하는 일을 일컫는다고 정의한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이것이 분석아고 판단하는 일로부터 확장되어 나온 모종의 복합적 단어라고 이야기한다.그런가 하면, 문학에 관련된 일체의 논의, 즉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 편의 문학작품의 뜻은 무엇인가, 작가는 무슨 일을 하는가, 한 작가 또는 작품의 가치는 어떠한가 등등에 관한 논의를 넓은 의미의 문학비평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없이 다양해 보이는 설명들도, 사실은 몇 종류로 묶어 분류해 놓고 보면, 결국은 용어를 사용한 다음의 8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판단한다. 둘째, 가치를 평가한다. 셋째, 분석한다, 넷째, 감상한다. 다섯째, 결점을 찾는다. 여섯째, 칭찬한다. 일곱째, 종류를 나눈다. 여덟째, 비교한다.이렇게 구체화시켜 놓고 보면 비평작업이라는 것은 그리 특이하거나 어려운 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행하는 독서에 약간의 기술을 덧붙인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비평이란 글을 아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따라서 비평 행위를 해 온 사람은 많고 다양하다. 비평은 지적인 독서의 연장이며, 지적인 글을 쓸 때 필요한 부속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평이 일반적인 독서의 자연스러운 연장이긴 하지만 결국 그것은 의식적인 기술, 과학인 체하는 티까지도 내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비평이란 ‘세상에서 알려지고 생각된 최상의 것을 배우고 퍼트리려는 사심 없는 노력’이다.2.비평의 어원은 현재의 비평장르와 어떤 관련을 지니는가?비평의 criticism은 라틴어 criticus 심사원, 감정가, 심판, 재판관의 뜻과 희랍어 krinein 분해, 분석, 구분또는 결정하다, 식별하다, 권위있는 말을 하다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서양에서의 비평은 판단하다. 가치를 평가하다, 분석하다, 감상하다, 종류를 나눈다, 비교한다,이론인 것이다. 비평가는 모든 시대에 있어서 그 시대의 미적 판단을 탐색해야 한다. 문학적 미를 탐색하는 것이 비평가가 해야 할 일이며, 이는 공시적, 통시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해석의 역할은 비평의 준비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특징은 객관적 이해, 작가, 작품에 대한 통찰, 이성적, 재단비평, 원전비평이다. 원본을 해석해서 모호한 단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잘 정돈하며 언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감상에서는 평가에 이르는데 중요한 단계로서 그 작품을 자신이 재창조 해보고 작품을 유기적 통일체로 인식해야 한다. 즉 감상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나름의 재창조를 해서 향수하는 것을 말한다. 평가에서는 비평의 궁극적 기능으로 문학적 가치판단의 역할을 가진다. 비평의 최종단계로 문학사를 통한 가치규정을 해야한다.비평이 할 일은, 우선 세상에서 알려지고 생각된 최상의 것을 알고, 다음에는 이를 알리고, 진실하고 신선한 사상의 조류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비평이 할 일은 또한 굽힘 없는 정직성과 합당한 능력을 가지고 이를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은 손대지 않으며, 우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평은 그 자체의 본성에 어긋날 뿐더러,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 따라왔던 판에 박힌 구습을 답습할 뿐이고 지금 비평에 주어진 기회를 분명 놓치고 말 것이다제2주강의1.해설과 비평은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해설이란 문제나 사건의 내용 따위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즉 비평은 자신의 주관에 빗대어 작품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행위지만 해설은 비평가 유사하게 작품을 분석하고 풀이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그것을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는 아닌 그냥 사건이나 내용을 그것을 보는 사람이 알기 쉽도록 풀어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즉 비평의 기능인 해석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2.살롱비평이란 말의 뜻과 역사성,살롱이란 프랑스어로서 서양풍의 객실이나 응접실, 상류 가정의 객실에서 열리는 사교적인 집회, 제시할 수 있게 하여준다.비평은 작품에 대해 오랜 시간을 걸친 다양하고 방대한 인식과 연구의 집합체로써 역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게 한다.첫 번째로써 역사와 비평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대안을 도출하는데 도움을 줄수 있다.작품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중요성은 그 작품을 쓰는 이의 창조성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며 수양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작품에 대해 비평은 그 창조성에 대해 생명력을 부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에 대한 과거와 현재를 통찰하게 된다. 이러한 사유의 순차적 방식은 역사의 미래성을 확인하는 과정과 유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모습과 인지, 발달된 형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귀결과정 또한 유사한 형태를 지니게 되며 자연히 역사와 비평의 결론 도출 방식이 유사하게 된다.두 번째로는 역사와 비평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관점을 맞추어 새로운 형태의 시각에 도움을 주게 되는데 먼저 역사의 입장에서 관찰해 보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지만 그 평가는 현세 즉 역사의 기술시점이 아닌 시대에 따라 읽는 시점과 그 당대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해석이 가능하며 이러한 점은 역사의 창조성이란 관점과 비평의 창조성의 관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비평의 관점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중 비평가에 따라 또는 비평가의 역량에 따라 작품은 여러 가지 가치와 정신적 향유를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며 작품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역사적 창조성과 현시대의 축적된 에너지의 생명력을 시대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2.올바른 비평을 위하여 역사의식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까닭은?계몽주의 문학을 예들 들다면 계몽주의 사상은 민중의 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입니다.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운동이 대표적인 것이며, 이성과 사실에 따른 비판정신으로 민중을 무지상태에서 해방시키고자 한 문학입니다. 그 정신적 바탕은 인간 사회의 모든 불합리는 이은 해방전후에서 주인공 ‘현’의 입을 빌려 친일 냄새가 나는 행동을 한 것은 ‘강요’에 의해 의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했을 경우 “마음 속 어느 귀퉁이에 강렬히 숨어있는 생명욕이 승리한 일본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가”를 문제 삼을 경우 조선인 작가 가운데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사자가 고해 성사하듯 양심고백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모든 친일 행위를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친일문학을 가늠하는 잣대로 자발성 여부를 들여오는 것은 그 기준의 논리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적용할 경우 친일문학을 가늠하는 절대적 준거는 되기 어렵습니다. 그럴 경우 남는 것은 내적논리입니다. 즉 작품 속에 드러난 주제의식을 통해 친일성 여부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주제의식이란 내선일체론에서 촉발하여 대동아공영권으로 완성되어간 일련의 국가주의적 프로젝트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친일과 非(비)친일을 김재용은 나누었습니다.친일문학이 나타난 배경을 보면 1920년대 3.1 운동에 위협을 느낀 일제가 표면상으로는 문화 정치를 표방하여 관제를 고치고 한국말 신문의 발행을 허가하는 등 타협적 형태의 정치는 펴는 듯 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민족 상층부를 회유하고 민족분열 통치를 강화하였으며, 한국을 만주침략의 전초기지로 다지는 등의 기만적 정치기술을 연출하였습니다. 이 기시 일제는 사상담당경찰관을 늘려 신문,도서에 대한 검침에 어긋나는 사상을 가진 문학인들은 투옥,추방 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식민지 전 기간에 걸쳐 소위 를 강조하며 민족문화와 민족혼의 말살을 꾸준히 추진해 온 일제는 40년대 이르러서는 더욱 강력하게 문화탄압과 민죽탄압을 전개합니다. 일제는 한국일을 친일파, 배일파로 구분하여 회유와 매수로써 친일분자를 육성하고 우대하고 보호하면서 철저하게 이용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므로 시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못 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방해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시인은 덕과 기타의 형상을 흉내낼 뿐이라 하여 시의 교육적 가치를 부정했다. 셋째로 시가 독자의 감정을 흥분시켜 이지력을 해쳐 진리의 길을 막는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시를 도덕적·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부정한 것이다.5.고전과 전통은 비평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고전이란 개념에는 생각보다 다층적(多層的)인 의미가 겹쳐 있다. 우선 고전은 시기 구분의 잣대로 볼 때, 근대 이후의 시기보다 선행하는 과거의 어떤 것들을 지칭하기 위해 쓰여진다. 예를 들어 현대 문학의 대를 이루는 19세기 이전의 문학을 흔히 고전 문학이라 통칭하곤 한다. 팝 음악에 대응하는 고전 음악, 현대 회화와 구별되는 고전 회화 등이 그러한 예다. 하지만 ‘고전’ 혹은 ‘고전적’이라는 개념을 단지 시기를 구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가담되어 있다. 즉, 우리가 ‘classic’이라고 규정하는 모종의 작품들에는 ‘오래된’이라는 뜻과 함께 ‘가치 있는’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사용된 고전 개념은 ‘오래 전에 발생하여 그 가치가 공인된’, 또는 ‘후대 문화에 전범이 될 정도로 훌륭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럴 경우 ‘고전’이란 단어는 고전 음악이라고 할 때와는 달리 시기 구분을 초월한 어떤 정전성(正典性)의 뜻을 내포하게 된다.정전(canon)은 다른 어떤 것으로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것, 오히려 그 반대로 다른 것들이 가진 가치를 측정하는 표준으로만 작용하는 것을 지칭한다. 따라서 불변성과 항구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를테면 유가(儒家)의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 등이 그러하다. 이런 것들에 대해 후대인이 가할 수 있는 변조는 고작해야 해석적인 진술, 대표적으로는 주석적 첨언이 있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전이라는 견지에서 사용되는 고전 개념은 불변의 가치를 지니기에 주석(commentary)이외의 어떤 개조나 변경도 용납하지 않는다.변화를 거할만큼
굶는 광대프란츠 카프카지난 몇 십 년 사이 굶는 광대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그런 유의 큰 흥행을 직영하면 수입이 상당하였으나 오늘날은 불가능하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당시에는 온 도시가 굵는 광대에 관심이 쏠려 하루하루 굶는 날짜가 더해감에 따라 관심도 고조되었으니 누구나 적어도 하루에 한번쯤은 굶는 광대를 보고자 하였다. 하여 나중에는 여러날을 창살 쳐진 작은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예약자들이 있었고 야간에까지도 관람이 계속되었는데 효과를 올리기 위하여 횃불을 밝혔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우리를 바깥에 들어다 내 놓는데 그럴 때 굶는 광대를 구경하게 되는 것은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어른들에게야 종종 굶는 광대가 유행이기에 참여하는 흥미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반면 어린이들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만약을 위하여 서로 손들을 잡은 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달라붙는 검정 내복을 입고 광대뼈는 툭 불거져 나온 굶는 광대가 편안한 의자마저도 외면하면 흩어진 지푸라기 위에 앉아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아주 힘들여 미소를 지으며 묻는 말에 대답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얼마나 말랐는지 만져보라고 창살 틈으로 팔을 내밀기도 하다가는 다시금 아주 깊은 생각에 빠져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그에게는 퍽이나 중요한 우리안의 유일한 집기인 시계 치는 소리조차도 아랑곳 없이 오로지 눈을 감다시피 하고 생각에 잠겨 앞만 보고 있다가 이따금씩 입술을 축이려고 자그마한 유리잔에 입을 대곤 하는 모습을.바뀌기 마련인 관람객들 말고도 관중들이 뽑아놓은 상근 감시인들이 따로 있었으니 그들은 이상하게도 늘 백정들이었는데 굶는 광대가 혹시 어떻게 해서든 몰래 무얼 먹는 일이 없도록 늘 셋이서 밤낮으로 살펴보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한갓 형식에 불과하였다. 굶는 광대가 단식기간 중에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 심지어 강요를 받는다 하더라도 음식을 입에 대는 일이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이라면 다 알고 있친다고 보는 사람들도 비록 있기는 했지만 그건 너무 심한 생각이다. 그런 이들에게 공정히 일하게끔 아침 식사는 빼고 야간 감시만 맡겠느냐고 물을라치면 슬며시 물러나고 만다. 그러면서도 혐의는 떨치지를 못한다.아뭏든 이런 것은 굶는 일과 떼어 놓을 도리가 없는 여러가지 혐의의 하나이다. 아무도 굶는 광대 곁에서 쉬지 않고 감시하며 허구한 날 밤낮을 보낼 수야 없었다. 다시 말하면 아무도 광대가 정말로 중단없이, 흠없이 굶는지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아서 알 수는 없는 것이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굶는 광대 그 자신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만이 자신의 굶는 일로 완벽하게 충족감을 느끼는 단 하나의 구경꾼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자신은 다른 이유로 결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야위어가는 그를 차마 눈뜨고 견디어 볼 수가 없어서 보고 싶은데도 가보지 못할 지경으로 그가 여윈 것은 어쩌면 전혀 굶주림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여윈 것은 오로지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만이 알고 있었다. 다른 그 어느 전문가도 몰랐다. 굶는 게 얼마나 쉬운지를. 그가 일부러 숨겼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았고, 한껏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야 광대가 겸손해서거니 했고 대개는 병적으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구나하던지, 아니면 심지어는 굶는 게 쉽다니 그건 굶는 일을 쉽게 만드는 술수가 있어서 그럴 거다, 그러면서도 그런걸 절반쯤 고백하는 걸 보니 낯가죽이 여간 두텁질 않는 사기꾼이거니 하였다. 그 모든 것을 그는 감수하여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일에 얼마만큼 익숙해지기도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이런 불만이 항시 그의 마음을 괴롭힌 탓에 단식 기간이 지난 뒤에도 ㅡ증명서가 발부되어야 했다 ㅡ그가 자발적으로 우리를 떠난 적은 여태 한번도 없었다. 최장 단식 기간으로 흥행주는 사십 일을 정해놓고 그 이상을 굶지는 못하게 하였다. 세계적인 대도시에서도 그랬는데, 그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경험상 사십 일쯤이 점차 열 늘 일어나는 일이 일어났다. 흥행주가 와서 아무 말없이 ㅡ음악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ㅡ굶는 광대 머리 위로 두 팔을 쳐든다. 마치 하늘에다 대고 여기 지푸라기 위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이 가련한 순교자 ㅡ사실 굶는 광대는 전혀 다른 뜻에서 가련한 순교자이기도 했다 ㅡ를 한번 보아 달라고 청하기라도 하는 듯한 시늉이다. 그리고 나선 굶는 광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는데 자기가 지금 얼마나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고 있는가를 사람들이 믿게끔 조심스러움을 과장한다. 그리고는 굶는 광대를, 그가 몸을 가누지 못하여 두 다리와 상반신을 이리저리 건들거리게 되게끔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흔들어대면서 ㅡ그 사이 백지장이 되어 있는 숙녀들에게 건네주었다. 그 모든 것을 이제 굶는 광대는 견딘다. 머리는 가슴위에 축 늘어뜨려져 있다. 마치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거기서 신기하게도 버텨내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몸은 움푹꺼지고 두다리는 자기 보존의 본능에서 무릎 부분에서 서로 꽉 눌려 붙이고 있다, 하되 발이 바닥에 간신히 닿아 땅바닥을 긁는데 마치 그것이 진짜 땅바닥은 아니라는 듯하다. 진짜 땅바닥은 두 다리가 찾고나 있을 뿐. 그런데 몸의 전체, 그래봤자 얼마 안되는 무게가 두 숙녀들 중 한 사람에게 실려 있는데, 그녀는 도움을 찾으며, 숨을 가쁘게 쉬며 ㅡ이 명예로운 직무가 그러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던 터라 ㅡ우선 목을 한껏 뽑아 얼굴이나마 굶는 광대와 닿지 않도록 지켜보려 하나 그게 잘되질 않고, 자기보다는 운이 좋은 여인이 도와 주러 오지는 않고 그저 떨면서 손을 내밀어 굶는 광대의 손, 그 조그만 뼈 무더기를 받아드는 것으로 만족하자, 홀에서는 황홀한 웃음이 일고 있는데,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러자 부득이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하인과 교대된다. 그 다음은 식사이다. 음식을 흥행주가 실신에 가까운 가수假垂에 잠겨 있는 굶는 광대에게 조금씩 흘려 넣어 주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흥겨운 잡담을 늘어 놓아 관중의 이목이 굶은 광대의 정황으로부터 떠나을 여기에서는 그 원인으로 그려 놓고 있지 않은가! 이 몰이해에 맞서, 이 몰이해의 세계에 맞서 싸우기란 불가능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거듭거듭 행여나 하고 창살을 붙잡고 간절히 흥행주의 말에 귀기울이지만, 사진이 등장할 때면 그는 번번이 창살을 놓고 한숨을 쉬며 맥없이 풀썩 짚더미에 주저앉아버린다. 그러면 안심한 관중들이 다시 가까이 다가와 그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그런 광경들을 목격했던 관중들은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그 생각을 하게 되면 종종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게되곤 하였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앞서 얘기한 바 있는 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갑자기랄이만치 그 일은 일어났다. 보다 깊은 이유들이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누가 그런 걸 찾아 내려 마음 쓰랴, 아뭏든 인기를 한몸에 모으던 굶는 광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은 오락을 추구하는 무리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알게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다른 흥행을 찾아 몰려 떠나 갔던 것이다. 흥행주는 그와 더불어 혹 어디에 아직도 옛날의 관심이 남아 있나 보려고 다시 한번 유럽을 절반쯤 두루 돌아다녀 보았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은밀히 합의를 보기라도 한 듯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흥행을 위한 단식에 대한 혐오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갑자기 그렇게 되었을 리야 없었고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성공의 안개에 휩싸여 충분히 유의하지 못하였고, 충분히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던 많은 조짐들이 생각났지만 이제 그것에 맞서 무언가 방도를 취해 보기에는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 필경 언제고 굶기가 인기를 끄는 시대가 다시 오기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이제 굶는 광대는 무얼 해야 한단 말인가? 수천 명이 둘러 싸고 환호를 보냈던 사람, 그가 조그만 대목 장터의 가설 무대에 등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다른 직업을 갖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 자신이 굶는 일에 너무도 광신적으로 전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비할 바 없는 떠는 이유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공연 중의 휴식 시간을 기다리기도 벅찰 지경이었다. 들떠서 그는 자기에게로 물밀듯 밀려오는 무리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마침내 너무도 빨리 그는 확인하여야 했을 뿐이다 ㅡ지극히 고집스럽고 거의 의식적인 자기 기만도 이런 경험들에는 버텨내지 못한다 ㅡ그 대부분이 본 뜻은 거듭거듭 예외없이 온통 외양간을 찾는 사람들뿐이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멀리서 보는 이 광경이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에게 다가오면 끊임없이 두 무리가 새롭게 형성되어 그를 편안하게 보려하되 제대로 알고서가 아니라 변덕과 반항심에서인 무리 ㅡ이 무리가 굶는 광대에게는 곧 더 괴로운 무리가 되었다 ㅡ와 다 젖혀놓고 외양간에만 가겠다는 둘째 무리의 고함과 욕설이 금방 그의 주위를 난무했기 때문이었다.큰 인파가 지나가고 나면 그 다음에는 뒤쳐진 사람들이 오는데 이들은 기분내키는 대로 실컷 서 있겠다하여도 이젠 말릴 사람이 없건만 큰 걸음으로, 곁눈질 한번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지나쳐갔다. 제때에 동물들한테로 가기 위하여. 그리고 아이들을 거느린 아버지가 오는 일이 있는데 그건 정말이지 너무도 흔치 않은 행운이었다.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굶는 광대를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자기가 그와 비슷한, 그러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그런 종류의 흥행들을 관람했던 옛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학교나 생활에서 별로 들어 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비록 언제까지고 매양 이해는 못하면서도 ㅡ그들에게 굶는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ㅡ그들의 배우고 싶어하는 눈이 반짝였으니 그 빛에서는 새로운, 다가오고 있는 것보다 자비로운 시대가 조금 내비쳤다. 그럴 때면 굶는 광대는 이따금씩 말하였다. 어쩌면 모든 것이 그래도 약간 나아지리라고, 만일 그가있는 곳이 외양간에서 그렇게까지 가깝지만 않았더라도. 외양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 밤의 동물들의 소란, 맹수들한테 주려고 날고깃덩어리들을 들고 지나가는 것. 먹이를 줄 때 지르는 소이다.
먼저 패러독스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패러독스란 사전적 의미로는 역설, 기론, 자가당착의 말을 가르킵니다.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말,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잘 음미해보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독스(dox)란 정설을 의미 하고 패러(para)는 형행을 의미하니 완전히 샛길로 빠져 정설과 나란히 평행으로 가고 있으니 정설과 맞닥뜨릴 일도 없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표현 구조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모순 되는 말이지만, 실직적 내용은 진리를 나타내고 있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역설과 모순은 또 다른 차이를 보입니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아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는 뜻의 모순은 말이 안되는 말이지만 잘 음미해보면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역설과는 다른 차이를 보입니다.그럼 타임 패러독스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에 답을 하자면 시간 모순, 시간 역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현재의 살고 있는 내가,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자신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면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영향을 끼쳐 부모님이 결혼을 못하게 한다면 과연 내가 태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영향력을 끼쳐 결혼을 못하게 했다면 현재의 자신은 태어날 수도 없는 것이고 당연히 과거로 돌아갈 타임머신도 만들 수 없고 또 그걸 타고 과거로 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깐 자신은 절대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부모님의 결혼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향을 끼치지 않아 부모님이 결혼을 하고 자신이 태어난다면 또 자신은 과거로 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앞뒤가 서로 안 맞아서 이야기 자체가 되질 않게 되는 시간 패러독스, 시간 역설인 것입니다.그리고 시간여행이 지닌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여러 패러독스를 분류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태어나기 전에 부모를 만나는 것이고, 두번째는 과거가 없는 사람입니다. 첫째 유형의 시간여행은 이전에 기록된 사건들을 변형시키기 때문에 시공간 조식에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우리의 젊은 주인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기 직전 어린 소녀였던 그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그는 무심결에 그의 부모의 운명적인 만남을 방해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젊은 어머니는 이제 그에게 애정을 갖게 됩니다. 만약 그가 부주의하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여 그의 어머니가 잘못된 사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으면 그는 결코 탄생하지 못할 것이고,따라서 그는 사랑질 운명입니다.둘째 페러독스는 전혀 시작이 없는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하지만 힘써 노력하는 발명가가 그의 어수선한 지하실에서 세계 최초로 타임머신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가정하고 어디선가 나이 든 부유한 신사가 나타나 그에게 타임머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충분한 자금과 복잡한 방정식, 그리고 회로도를 제공합니다. 그 후 그 발명가는 미리 증권시장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시간여행에서 알게 된 지식을 이용해 부유하게 됩니다. 그는 증권시장과 경마 등에 투자해서 재산을 축적합니다. 몇십 년 후, 부유하지만 늙은 한 사람으로서 그의 운명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올라갑니다. 그는 그의 지하실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자기 자신과 만나 시간여행의 비밀과 그것을 개발할 돈을 젊은 자기 자신에게 건네 줍니다. 그렇다면 의문은, 어디서 시간여행의 아이디어가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유형의 시간 패러독스를 다시금 예를 들자면, 로버트 하인라인의 단편소설의 내용일 것입니다. 이 내용은 한 어린 제인이라는 여자아이가 불가사의하게 1945년 클리블랜드의 한 고야원에 맡겨집니다. 제인은 부모도 모르는 채 외로움과 낙담 속에서 자라납니다. 1963년 어느날, 그녀는 한 방랑자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상황이 호전되어 가고 있을때 재난들이 닥칩니다. 첫째로, 그녀가 그 방랑자에 의해 임신하게 되자 그는 사라져 버립니다. 둘째로, 힘든 분만 중에 의사는 그녀가 두개의 성기를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외과 수술로 ‘그녀‘를 ’그‘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런데 한 알수 없는 사람이 그녀의 아기를 분만실에서 납치해 갑니다. 사회로부터 거절당하고 운명에 의해 저주받은 그는 떠돌이 술주정꾼이 됩니다. 제인은 부모를 잃고 애인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아이도 잃었습니다. 몇 년 후인 1970년에 그는 ’팝스 플레이스‘라는 한 주점에 들어가서 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나이 든 바텐더에게 털어놓습니다. 동정심 많은 바텐더는 그 방랑객에게 ’시간여행 단체‘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그녀를 버린 이반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들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가, 바텐더는 방랑자를 1963년에 떨어뜨립니다. 그 자는 이상하게도 한 젊은 고아 출신 여인에게 끌리고, 그녀는 그 후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 다음 그 바텐더는 9개월 앞으로 되돌아가서 병원에서 여자아이를 납치하고 1945년으로 가서 한 고아원에 아기를 데려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 바텐더는 완전히 어리둥절한 방랑자를 시간여행 단체에 등록시키기 위해 1985년에 데려다 놓습니다. 결국 그 방랑자는 자신의 삶을 찾게 되고, 시간여행 단체에서 존경받는 원로회원이 되어, 그 다음 그 자신 바텐더로 위장하여 1970년 ’팝스 플레이스‘에서 어떤 방랑자를 만나는 운명의 그날로 그의 가장 어려운 시간여행을 합니다. 여기서 의문은 누가 제인의 어머니이며, 아버지이가 할아버지이며, 할머니, 그리고 아들, 딸, 손녀, 그리고 손자인가하는 것입니다. 그 소녀, 방랑자, 그리고 바텐더는 물론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제인의 가계도를 그린다면 모두 가지가 그들 자신 안으로 구부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그녀 자신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아버지라는 결론을 낳게 됩니다. 그녀는 그 자신이 하나의 전체 가계인 셈이 됩니다. 이것이 시간여행에서 생기는 패러독스, 타임 패러독스입니다.이 같은 패러독스가 생기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가 인과율로 연결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바꾸지 않고는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과율의 고리입니다. 많은 경우에 물리계는 작은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과거를 약간만 건드려도 현재에 대구모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브래드버리의 소설에서 시간 여행자는 공룡 시대를 방문하는데, 실수로 나비 한 마리를 죽여서 역사 전체를 바꾸어놓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먼저 유비쿼터스의 정의를 알아보면 유비쿼터스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라틴어로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줄임말이다. 그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것을 이용해서라도 온라인 네트워크 상에 있으면서 서비스를 받는 환경/공간을 의미한다.다시 이야기 하자면 유비쿼터스의 의미는 정보 통신 관점에서 모든 사회분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유비쿼터스 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 분야는 특정 분야가 아니며 기존의 사회에 구성되어 있는 모든 분야를 포함한다. 컴퓨터가 있을 때와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적용될 때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유비쿼터스의 우리나라 소개는 2002년 4월경 전자신문을 통해 소개 되었다. 그러나 그 최초는 89년 마크와이저의 논문에 의해 발표되었다. 84년에는 일본의 사카무라 겐 박사가 이미 그 개념을 만들어 일본사람들은 자신들이 최초라고 이야기한다. IBM에서는 비슷한 개념이 퍼베이시브 컴퓨팅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막 학문적 체계를 갖추어 나아가고 있으며 모든 IT,BT,NT산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보고 다들 난리가 나있다.우리나라에서는 올해 4월 16일 최초의 세미나가 있었으며 유비쿼터스 포럼이 창립되었다. 그러나 관심에 비해 자료와 여건은 형편없는 수준이다.진행과정은 1-2개월 후 상용화되는 스마트 카드, 완벽한 무선 모바일로 자리잡은 인터넷 폰과 센트리노 등이 초기 유비쿼터스를 구현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초기상태의 유비쿼터스를 의미하며 2007년까지 유비쿼터스 환경이 구현된 디지털 홈이 1000만 가국 만들어지고 2010년 이전에 뚜렷한 자리가 잡힐 것이다.우리는 대대적인 관심과 공감대가 필요하며 학교 차원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유비쿼터스를 가진자의 전유물에서 끌어내려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한다. 가진자들만이 전유하는 유비쿼터스는 경쟁력이 없다. 빨리 이 상태를 타개하고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유비쿼터스에서 앞서는 나라가 세계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선점하게 일본, 유럽의 정부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들의 기업과 주요 연구소들이 유비쿼터스 관련 기술을 앞 다투어 개발하고 있다.미국은 자국의 정보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 1991년부터 유비쿼터스 컴퓨팅 실현을 위한 연구개발을 추진해 왔으며,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과 국가표준기술원(NIST)의 정보기술응용국(ITAO)이 연구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부기관과 대기업의 자금 지원으로 MIT, CMU 등의 주요대학과 HP, MS, IBM 등의 민간기업 연구소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은 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과 조기 응용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일상생활 공간과 컴퓨터간의 자연스러운 통합이 가능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기술과 표준 개발을 핵심요소로 인식하고 있다.일본은 자국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광, 모바일, 센서, 초소형 기계장치, 가전, 부품, 재료, 정밀가공 기술 등을 연계시켜 조기에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구현하여 세계 최첨단 IT 국가를 실현하고, 최근에 약해지고 있는 자국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전략은 미국의 강점 분야인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핵심기술도 중요하지만, 마이크로 센서기술을 이용한 사람과 사물간의 통신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변기술도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조사연구회에서 전망하듯이 일본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사회의 실현이 새로운 산업 및 비즈니스 시장의 창출과, 편리하고 풍요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실현, 그리고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 문제, 교통 혼잡, 지진, 환경 관리 등을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과 일본은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개발 방향과 전략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기술적 비전 제시와 필요한 부문에서의 조기 응용을 강조하는 반면에, 일본은 국가차원의 정책적 추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는 미·일 양국간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추진에 대한 시각차 실용주의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은 자국이 보유한 기술력과 자원을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조기에 확산시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한편, 유럽은 유럽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2001년에 시작된 정보화사회기술계획의 일환으로 미래기술계획에서 자금을 지원하는'사라지는 컴퓨팅 계획'을 중심으로 주변의 일상 사물에 센서·구동기·프로세서 등을 내장시켜 사물 고유의 기능 외에 정보처리 및 정보교환 기능이 증진된 정보 인공물을 개발하여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일상 활동을 지원 및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럽은 이러한 프로젝트의 수행과정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혁명에 대한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미국·일본·유럽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추진 전략의 공통적 메시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추진 주체는 실질적으로 미국을 비롯하여 각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음- 차세대 정보통신기술의 개발 대상은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장치 혹은 환경임- 주요 추진 목표는 미래 기술 체제로의 진입 시도즉, 각 국 정부는 미래 기술의 실용화에 대한 공격적인 연구개발 및 실험을 통하여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의 조기 일상 생활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컴퓨팅의 생활화를 통하여 새로운 거대 IT 시장의 출현을 준비하고 있다새로운 시대의 국가발전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u코리아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u코리아 구상은 제3공간 시대를 선도하는 포스트 IT혁명 패러다임을 국가경영전략과 접목시키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u란 ubiquitous의 머릿글자로 ‘동시에 가는 곳마다 존재함과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연결돼 활용될 수 있다’는 편재성과 무결절성을 중시한다.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유선망과 무선망, 고정망과 이동망, 방송망과 통신망, 칩과 센서 네트워크 등 수많은 종류의 망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생활 주변의 단말과 디바이스 및 가전기기들이 자유롭게 연결돼 활용되는 네트워크 환경이 관건이 된다. u코리아 구상은 유비적인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기반을 구축하는 데서 출발한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모든 종류의 미디어로 접속할 수 있으며 수십∼수백 Mbps의 광대역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UNI 위에 수십·수백억개의 통신단말과 정보가전, 시설과 장비 그리고 사물들이 Ipv6를 기반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무수한 센서와 칩으로 연결된 상황인식망과 위치추척망으로서의 역할을 복합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기능을 위해 UNI는 1인당 상시 접속 6Mbps(유선 4Mbps+모바일 2Mbps) 이상, 가정 단위 50Mbps이상의 초고속, 대용량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같은 차원에서 국가의 차세대 네트워크 공급 계획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유비쿼터스 혁명은 얼마나 많은 칩과 센서를 효율적으로 물리공간에 심는가에 의해 그 성공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u코리아를 구현하는데 가장 많은 정책적 투자가 필요한 부문이 바로 칩과 센서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문제는 칩과 센서를 물리공간에 한번 심고 나면, 이를 철거하거나 다시 심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 칩과 센서가 표준화되지 못한 경우, 장소를 이동함에 따라 공간 서비스가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없다. 결국 칩과 센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국토 전체의 효율화라는 관점에서 표준화돼야 한다. 과거 TDMA와 CDMA의 표준 결정과 마찬가지로, 칩과 센서의 표준화는 국가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서비스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결국 칩과 센서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표준화를 선도하여야 한다. 서로 다른 기술과 목적을 추구하는 사업자들로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협조를 이끌어내고 표준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공감할 수 있는 u코리아 기본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닌 사회 각 주체들의 노력을 결집하는 작업이야말로 u코리아 구상의 전략적 목표다.하지만 과거 정보화와는 달리 유비쿼터스 혁명을 정부 주도적으로만 추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리공간의 지능화는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부문의 경쟁을 통해 동시다발적인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정부도 공공부문의 유비쿼터스화를 추진함으로써 국가 사회 전반의 유비쿼터스화를 앞당길 수 있다. 국가 사회적인 유비쿼터스화를 촉진할 수 있는 사업으로 u도시사업, u교육사업, u보건사업, u공원사업, u정부사업 등과 같은 10대 u그랜드 프로젝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공공 유비쿼터스 공간(PUS:Public Ubiquitous Space)’을 조기에 건설하는 동시에 민간부문의 유비쿼터스화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한다.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의 융합을 지향하는 u코리아 구상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을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한 전략적 실천방안을 도출함으로써 21세기 국가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작용할 것이다.e코리아에서 u코리아로의 변화를 알아보면 지난 10여년 동안 사이버공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발전 기회이자 신대륙으로 다가왔다. 지난 97년의 어둡고 험난한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벤처기업, 신지식인, 사이버 코리아 등을 국가적인 좌표로 설정하고 사이버입국 또는 전자입국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최근까지 추진해온 e코리아는 이러한 사이버 입국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사이버코리아 21이 전자공간을 확충하는 것이라면, e코리아는 확충된 전자공간에 기능(function)을 채우는 정책이다. 특히 물리공간에서 이루어지던 기능들을 전자공간으로 이식하는 것이 e코리아의 핵심이다. 전자정부는 물리공간의 정부가 수행하던 기능들을 전자공간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그러나 전자공간을 확충하고 그 기능을 충실화하면 할수록 전자공간은 물리공간으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보화를 추진하면서 한가지 신화가 우리의 뇌리를 지배했다. 전자공간은 효율적이며, 물리공간은 비효율적이라는 잘못된 믿음이다.이제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의 유기적인 연계가 새로운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