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ome끝없이 빗나가는 욕망“집착한 것을 얻지 못하는 불행과, 집착한 것을 얻는 것에서 기인하는 불행.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이 두 가지 불행만이 존재한다.”2006년 7월의 어느 날, 군대에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좋은 글귀다. 그때 당시의 나는 욕망에 의해 무너지고 난 뒤라 이 말이 너무 와 닿았고, 전투수첩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지금부터 나는, 과거의 내 모습과 Herod의 모습을 통해 ‘욕망’이라는 것의 본질을 말하고자 한다.나는 잘생긴 얼굴이 아니다.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도 않고,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엄친아’와는 거리가 먼, 아주 평범한 26세의 대한민국 청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이 주신 입담’ 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으면 평균 이하의 관심을 받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나를 ‘매력가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맘에 드는 이성과 사귈 수 있었고, 내가 여자 친구를 사귀면 사람들은 우리를 흔히 ‘미녀와 야수’라고 불렀다. 자신감이 하늘까지 치솟던 나에게 처음으로 장애물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21살에 만난 한 여자였다. ‘엄친딸’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던 그녀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와 사귀기 위해 ‘신이 주신 입담’을 거의 3년 정도 사용하였지만, 그녀는 친구와 연인의 경계를 애매하게 넘나들었고, 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자 나는 그녀를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라 생각했다. 더 이상은 사랑이 아닌 ‘오기’또는 ‘집착’이 되어버렸고, 1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녀와 사귀는 일이 거의 소원이 되어버린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우리 계약커플 해볼래?” 다소 황당한 제안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영광이었던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그녀가 너무나 싫어지는 것이었다. 계약조건에 있는 룰을 지켜가며 그녀를 만나고 있는 내가 비참해 보일뿐더러 그녀에 대한 흥미는 점점 더 사라져만 갔다. 역시 크리스마스 보다는 크리스마스이브인가? 그녀와 사귀기 전까지는 ‘소풍가기 전날’밤의 기분이었지만, 막상 사귀게 되자 소풍을 가서 차갑게 식어버린 김밥을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4일 만에 이별을 통보하였고, 그녀는 굉장히 쿨하게 OK라고 대답했다. 구미호는 아주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멀어져 갔고, 가만히 바라보니 꼬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Herod고, 그녀는 Salome다.
Waiting for Godot자살에 관한 짧은 고찰(Let's wait till we know exactly how we stand.)요즘 참 많은 자살 사건들이 일어난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연예인에서부터 투자에 실패한 자산관리사, 변심한 애인에게 복수하기 위한 자살에 이르기 까지. 이유야 갖다 붙이면 수없이 많을 테지만, 결론은 하나다. 그들은 더 이상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예정된 삶이 있는데, 그들은 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일까?『Waiting for Godot』에서 Didi와 Gogo는 자살을 쾌락의 도구로 취급해 버린다. 블라디미르가 나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에스트라공에게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고, 에스트라공은 “We wait" 이라고 대답한다. 블라디미르는 기다리는 동안 뭘 할 것이냐고 다시 물었고, 에스트라공은 ”What about hanging ourselves?"라고 대답한다. 내가 군복무를 하던 시절, 자살 예방 정신교육의 일종으로 실제 자살한 병사들의 역겨운 시체를 사진들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자살한 방법에 따라 시체는 전혀 다른 모습의 모양이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교육조교는 각 자살 방법별로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해 주었고, 그때 들었던 목매달아 자살하는 사람들의 죽는 과정이 특별히 머릿속에 남았다. 일단 목에 줄을 걸어서 자살을 하게 되면, 줄이 뇌로 가는 혈관을 차단해 뇌의 혈액과 산소 공급을 차단시킨다고 했다. 그럼 뇌는 활동이 줄어들며, 이 순간 절정의 쾌감을 맛본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 초등학교에서 기절놀이(목을 졸라서 기절하게 했다가 다시 깨어나게 하는 것)가 유행했었는데, 그때에 목을 졸리는 사람은 숨이 막힘과 동시에 어떠한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남자의 경우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할 때 이러한 쾌감이 느껴지면 발기를 하게 되고 더불어 사정까지도 하게 되는데, 괄약근의 힘이 빠져서 소변과 대변도 배설하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고, 함께 보았던 죽은 시체가 너무나 추해서 ‘절대 자살하고 싶지 않다.’라고 느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이 원했던 교육 효과였을 것이다. 더불어 블라디미르가 말한 “mandrakes"(개인적으로 쾌락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는 지중해와 레반트 지방이 원산지인 허브의 한 종류로써 뿌리가 둘로 나뉘며, 마치 사람의 하반신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런 뿌리의 모양 때문에 좋지 않은 미신과 전설이 많다고 한다. 고대 아랍인과 게르만인은 '맨드라고라(Mandragora)'라는 작은 남자의 악령이 이 식물에 산다고 믿었으며, 교수형이 많았던 중세시대에 교수대 밑에서 남자의 정액에 의해 자라는 풀이라고 알려져 그 뿌리에 죄수의 죽은 영혼이 숨어 있다고도 믿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역시 극의 마지막에서 "We'll hang ourselves tomorrow. [Pause.] Unless Godot comes.." 라고 말을 하면서, 자살을 지겨운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법, 또는 괘락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I don't seem to be able...to depart.", "Such is life."자살은 쾌락의 도구인가? 아니라면 혹시 현실의 도피처인가? 어린 아이들은 자살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고, 아무 이유 없이 자기가 최고니깐 자살 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자신을 보잘것없는 그저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조그만 티끌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한없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 하나 따위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씁쓸한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쾌락의 끝은 죽음이고, 죽음은 일종의 쾌락이 될 수도 있다. 무자비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현실의 도피처이자, 천국을 느끼게 해 주는 마약이 될 수도 있다.
대중매체와 현대사회-TV는 오락 매체인가 교양 매체인가-목차- 서론 -* TV란 무엇인가* 오락매체와 교양 매체에 대한 설명* 본론을 들어가며- 본론 -1. 오늘날 TV가 가지는 주된 매체성2. 각 방송사별 프로그램 편성 비율3. 파행적인 방송 프로그램 편성 비율의 문제점4. 교양과 오락 프로그램의 예- 결론 -* 해결 방안- 참고 문헌 -- 서론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케이블 방송이나 모바일 방송, 혹은 인터넷 방송을 제외한 순수 지상파 방송만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하겠다.*TV란 눈에 보이는 모습들을 먼 곳 까지 전달하는 장치, 즉 각 방송사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기계 매체이다. TV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쉬는 시간에 간단하게 기분을 즐겁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 오락성과, 지식과 정보 전달에 목적을 둔 교양성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상 방송 존재의 이유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교양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프로그램이든지 교양성이 내재하여 있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교양프로그램이란 개념은 편성상의 균형성과 관련, 그 목적을 교양에 보다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란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유사 프로그램인 교육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교육 프로그램은 그 목적하는 바가 특정 대상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는 성격이 강하고, 강제성을 띄며 상벌의 원칙을 지니는 반면에 교양은 자신이 찾아서 흡수토록 한다는 자발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구조적인 면을 살펴보면 교육은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포함하는 전문성과 조직성이 강하지만 일정한 시간이나 장소가 한정되어 있는 반면, 교양은 자유스럽고 자의적이지만 체계적인 전문성이 희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개념은 서로 내포, 외연의 관계로서 그 경계가 애매모호 하다. 실제적으로 교육방송은 학교방송이나 어학강좌, 실험 강좌와 같은 뚜렷한 교육 목적 하에서 행해지는데 비해 교양방송은 보다 간접적인 것으로 그 방송을 듣는 가운데 지식황금어장 등의 여러 쇼프로그램들은 단지 가볍게 웃어넘기는 오락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꽃 피울 수 있게 하는?하나의 교양프로를 의미하기도 한다.TV는 한가지 매체 안에도 오락성과 교양성이 함께 담겨 있기에 구분이 애매해지기도 한다. 굳이 “TV는 오락매체인가 교양 매체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하자면 대부분의 사람이 휴식이나 오락과 재미를 위해 찾는 오락 매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발표 내용의 요점은 단순히 TV가 가지는 매체의 정의가 아니라 공중파 채널에서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다. 오락성과 교양성의 조화에 대한 논의와 각 매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혹은 그 역할에 충실히 하며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며 TV 매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본론 -1. 오늘날 TV가 가지는 주된 매체성오늘 날의 방송은 오락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그것이 시청자의 요구이기도 하다.EBS 방송과 각 지상파의 뉴스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면 시청률에 미치는 오락성의 영향을 알 수 있다. EBS의 경우 ‘교육전문편성채널’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오락성이 다른 방송에 비해 적다. 때문에 EBS의 교육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크게 5퍼센트도 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지만 EBS에서 방영 되는 ‘방귀 대장 뿡뿡이’와 같은 미취학 아동 대상 놀이 교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방송 보다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프로그램에 가미된 오락성 정도의 차이라고 보인다. ‘방귀 대장 뿡뿡이’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교육 보다는 오락성에 더 치중하였다. EBS의 부진한 시청률이 특정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서가 아닌 방귀 대장 뿡뿡이를 통해 올랐다는 사례를 통해 오락성과 시청률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방송사의 가장 전문적인 보도 프로그램인 뉴스 또한 최근 국내외 모두 시청률이 하락하고 성을 앞세운 인터넷과 심층성을 내세운 신문이 주도하는 뉴스 시장에서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방송뉴스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신문의 인터넷 사업 확장이 오히려 방송뉴스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10일 “방송뉴스의 시청률 회복을 위해서는 인터넷 사업보다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뉴스라는 딱딱함이나 진부함이란 이미지로 다가오는 매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다른 매체성과의 접목이 시청자의 구미를 만족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예가 되는 기사가 아래에 있다.SBS 8시 뉴스에서는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꼽혀 뉴욕행을 앞둔 가수 비를 스튜디오로 초청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수 ‘비’의 특별 인터뷰가 담긴 SBS 8시 뉴스는 이날 시청률 상승세를 보였는데 시청률 조사 회사 TNS미디어코리의 집계에 따르면 1일 SBS 8시 뉴스는 시청률 8.2%를 기록했고 이는 한주 전 동 시간대인 지난 24일 7.6%보다 0.6% 포인트 상승한 수치라고 한다.2. 각 방송사별 프로그램 편성 비율앞서 표들과 예들을 보면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찾는 TV의 매체성은 오락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음 표들을 보시면 각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50퍼센트 가까이 오락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지만 각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이 오락성에 바탕을 둔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방송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인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한 것도 사실이다. 오락ㆍ예능 프로그램은 저질ㆍ 선정성ㆍ 폭력성이 난무한 장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교양프로라고 해서 오락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며 교양 프로그램 중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도 존재한다. 또한 오락성을 배재 했다고 해서 그 전달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면 좋은 교양 프로그램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오락성과 교양성을 어떻게 올바르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즐거움을 목적으 편성비율이 평균 70%로 가장 높았고 KBS1도 낮 시간 대에 드라마를 편성하면서 오락 편성비율이 40%를 넘어섰다. SBS 역시 오락 프로그램이 50%의 편성비율이 넘어섰다. 급증한 오락프로그램의 제작방식들은 이제 주중 심야나 주말 프로그램에 한정되지 않고 교양프로그램, 심지어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제작에까지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별 오락프로그램의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수위를 넘고 있다.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오락프로그램 위주의 파행적 편성을 불러왔으며 그 후유증으로 졸속제작으로 인한 프로그램의 질 저하, 연예인들의 중복, 홍보성 출연, 유사프로그램의 남발, 가학적ㆍ선정적 행위급증 등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방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오락프로그램의 50퍼센트 이하 비율을 평일에는 그런대로 지키다가 주말에는 교묘한 방법으로 비켜나가며 파행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예로 아래 표를 보면 방송사가 분류한 프로그램의 매체성에서 일반적으로 오락이라 여겨지는 방송 프로그램까지도 교양으로 분류해 제출하고 있다.현행 방송법(제69조, 동법시행령 제50조)은 오락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50% 이하로 제한하고 있지만 각 방송사의 오락 편성 비율은 50%에 육박했다. 물론 프로그램의 복잡화, 장르 융합에 따른 분류 기준의 모호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뻔히 눈에 보이는 오락 프로그램을 교양으로 속이며 편법을 쓰는 방송사들의 현행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4. 교양과 오락 프로그램의 예* 무늬만 교양인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예-MBC 경제야놀자-‘경제야 놀자’ 코너는 돈 모으기에 관심 있지만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국민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재테크 방법 등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방송은 그날 소개할 금융상품 또는 재테크 방법의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스타들의 집을 방문해 잠든 돈을 깨워 투자를 권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예능오락 프로그램에 경제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방송내용은 일반 서민아니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조직적인 소비자 보호운동이 존재하거나, 기업들이 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하면서 자체적으로 소비자들의 불만을 접수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시정 보완하는 미국의 예는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하여 공영방송 KBS '소비자고발'을 통해 소비자불만을 해소하고 이를 기업, 혹은 공공기관과 연계하여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KBS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이례적으로 1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도 확인된다. ‘PD수첩’, ‘추적60분’ 등 정통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대개 5%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할 때 이 소비자 고발 프로의 인기는 실감된다. 거시적인 사회문제를 고민하기보다 시청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경제활동과 관련한 피해를 다루는 이들 프로는 그간 하소연할 데 없던 소비자 불만의 새로운 출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좋은 오락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는 예-MBC 무한 도전-무한도전은 타 오락 프로와 달리 지키고 있는 특이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무형식이라는 형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에는 프로그램의 컨셉보다는 캐릭터(출연자)의 컨셉이 있다. 여섯 명의 출연자는 물론 연예인이지만 마치 주변에 있는 우리의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먹을 것을 놓고 싸우고, 서로 말다툼하기도하고, 같이 연예인에 열광하기도 한다. 하하와 정형돈의 서먹함을 그대로 보여준 것처럼 어색한 모습까지도 그대로 보여주고 그 변화과정을 담기도 했다. 이렇게 스스로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여섯명’ 이라는 결핍된 캐릭터를 자청하며, 매회 바뀌는 형식 없는 방송 안에서 캐릭터만은 그대로 이어진다. 즉, 처음부터 짜여진 방송의 틀에 캐릭터를 넣었던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고정된 캐릭터가 방송을 매회 새롭게 엮어가고 있고, 이런 무형식라는 형식이, 틀에 맞추려다가 생기는 가식을 없앨 수 있었다. 시청자가 요구하는 선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시도해서 변화하는 프로그램이므로 더 공감대가 커질 수 있었다.예로 든 모든 프로그램들이 개개인했다.
Terrorist Hamlet연극 Hamlet 에 관하여국립극단 “테러리스트 햄릿”의 무대는 참으로 특이했다. 마치 모델이 워킹하는 무대처럼 만들어진 세트장은 장식도 거의 없었고 ‘이 무대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라는 의구심까지 들게 하였다. 클로디우스가 거투르드를 왕비로 맞이하는 한 장면에만 어울릴 듯한 무대 세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어갔으며, 출입구를 동선으로 활용하고, 무대 2층을 또 다른 연극 무대로 이용했으며, 샹들리에와 무대 바닥을 사용하는 구성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대는 셰익스피어 시대에 그들이 했던 것처럼 마당극 형식으로 관객을 연극의 일부로 사용 했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필리아가 내 몸을 더듬었던 것은 영광이었다.우리가 수업시간에 보았던 영화 햄릿과 이번 연극 햄릿에서의 인물 묘사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영화에서 뭔가 당당하지 못하고 교활하게 묘사된 폭군 클로디우스는 연극에서 당당한 민주주의 대통령처럼 묘사되었고,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햄릿과 클로디우스 사이에서 눈치만 보던 거투르드는 팜므파탈의 매력을 지닌 현대적인 여성으로, 아버지와 오빠의 가부장적인 억압에 눌려져 있던 여성스러운 오필리아는 교복을 입고 등장하여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하였다. 말 많고 가벼워 보이던 폴로니어스도 배우의 카리스마 덕분인지 조금 더 무게가 있어 보였다. 호레이쇼도 영화에서는 믿음직한 친구였으나, 연극에서는 햄릿의 비서 정도로 묘사되었고, 햄릿의 동창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는 무게감을 잃어버린 희극적 광대처럼 보였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것은 햄릿이었는데,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영화 속의 햄릿은 이번 연극에서 죽은 선왕의 한마디로 철저히 복수를 하려는 행동이 묘사되는, 이 연극의 제목과 같은 테러리스트의 모습을 보였다. 햄릿의 오필리아를 향한 사랑 역시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육체적인 욕망이 드러난 듯 했으며, 햄릿은 대사나 행동을 통해서 성적인 부분을 많이 나타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충분히 묘사된 햄릿의 모습이라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으며 다양한 해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이번 연극에서는 대사는 그대로지만 배우들의 의상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특이한 점은 선왕의 혼령이 나타나 총이 담긴 E-SPIRIT 종이가방을 햄릿에게 건네줬다는 것과,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는 참이슬을 좋아한다는 것, 폴로니우스가 아들 레어티스를 감시하는 장면을 핸드폰을 통해 나타냈으며, 오필리아가 세일러문 복장을 하고선 비행기를 날리면서 희극적인 장면을 가미시켰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현대적인 재해석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우선 억압받던 두 여성 거투르드와 오필리아를 매혹적인 현대여성과 당찬 소녀로 나타냄으로써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나타냈음을 알 수 있었고 당당한 두 여성의 매력을 나타냄으로써 원문에서 억압받은 그들을 해방시켜주는 듯해서 너무나 보기 좋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인생무상에 대해 강조한 듯 보였다. 이 연극의 시작은 죽은 선왕이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고 클로디우스가 그것을 씀으로 시작되는데, 연극이 끝나는 장면에서 선왕의 혼령은 그 왕관을 다시 집어 들지만 곧 떨어트리며, 햄릿은 “이제는 침묵만이 남았구나.” 라는 대사를 하게 된다. 모든 욕심과 사리사욕, 복수와 증오도 인생이 끝나는 시점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햄릿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었고 선왕의 혼령이 왕관을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되찾으려던 왕관을 다시 갖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남은 것은 결국 왕관 하나라는 것을 통해 허무주의를 나타낸 듯하다.
센스와 센스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제인 오스틴 지음▣ 저 자 제인 오스틴 (1775~1817)시대를 대표하는 리얼리스트.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묘사해내다.우물 속에서 세계를 보다《오만과 편견》, 《지성과 감성》, 《에마》 등의 고전적인 소설들을 남긴 작가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 햄프셔 지방의 작은 마을 스티벤튼에서 한 시골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제인은 몇 군데 학교를 다녔지만 불과 11살 때까지만 정식교육을 받았다. 바스나 초튼 등 다른 영국 남부지방의 마을에서 살기도 했지만 1817년 마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장기 동안 거의 자기 고장을 벗어나지 않고 조용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런 제인이 영국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작가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20세기 초 영국의 평단을 지배하던 비평가 F.R. 리비스는 영국소설의 전통을 추적한 《위대한 전통》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위대한 영국소설가는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그리고 조셉 콘래드”라고 단정하며 글을 시작하였다. 리비스의 이같은 평가에도 드러난 것처럼, 제인 오스틴에서부터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은 1811년에서 1817년까지 모두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은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현실적으로 묘사해내고 도덕적 성찰과 이해의 깊이를 보여주었다.이렇다 할 정식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인생 경험의 폭도 좁은 여성이 어떻게 그 같은 위업을 이룰 수 있었을까? 물론 오빠들 가운데는 옥스퍼드에 다닌 후 목사가 된 사람도 있지만, 제인은 집에서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길렀다. 당시 아버지의 서가에는 약 5백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인은 이 당시 나온 장편소설들, 특히 사무엘 리처드슨이나 헨리 필딩 같은 18세기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읽었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그런 것처럼, 제인은 이처럼 독서를 즐기고 주변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형 대신 유산을 상속받고 루시와 결혼한다.브랜든 대령따뜻한 마음에 이해심 많은 서른다섯의 노총각. 마리앤을 시종일관 흠모한다.윌러비마리앤이 첫눈에 반한 스물다섯의 미남청년.사랑은 시작되고대쉬우드가에는 엘리너와 마리앤, 그리고 막내 마가렛 세 딸이 있다. 맏딸 엘리너는 어머니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비록 열아홉 살밖에 안되었지만 때때로 어머니의 상담자 역할을 해낼 만큼 판단력과 이해심이 많았다. 그녀는 다정다감한 성격이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런 감정들을 다스리는 법 또한 알고 있었다.둘째 마리앤은 언니와 여러모로 비슷해서 감정이 풍부하고 영리했다. 하지만, 일단 어떤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감정을 잘 절제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언니의 장점인 분별력을 제외하면 마음씨 곱고 붙임성 있기로 어머니를 꼭 빼 닮았다.엘리너는 동생의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을 걱정했지만 어머니는 그것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두 자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들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두 자매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가 힘을 내도록 도우면서 인내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엘리너의 몫이었다.부인과 세 딸은 영국 서섹스의 대저택 놀랜드에 살고 있었다. 그들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헨리 대쉬우드씨에게는 세 딸을 두기 전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존이 있다. 놀랜드 저택의 법적 소유자는 본래 헨리가 아닌 그의 삼촌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뜨면서 존에게 유산이 돌아가게 되자, 헨리는 임종시에 아들을 불러 새어머니와 세 누이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했고 아들은 약속을 했다.그러나 존은 냉정하고 이기적이었던 데다 그의 아내인 파니도 분별없는 행동거지를 일삼는 여자였다. 놀랜드 저택의 상속인이 된 존은 처음에는 부친과의 약속에 따라 누이동생들에게 3천 파운드를 주려고 했으나 그만 아내의 교활한 설득에 넘어가, 마음으로 잘 대해주면 됐지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할 게 있겠냐는 벗어나 단둘이 윌러비가 머물고 있는 알랜햄 저택으로 향했다. 엘리너는 마리앤에게 일행을 무시한 무례함을 나무라지만 마리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윌러비가 마리앤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결혼문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는데, 엘리너는 그것이 의문이었다.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온 대쉬우드 부인과 엘리너는 집을 보던 마리앤이 울면서 방을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집에는 윌러비도 함께 있었다. 그는 대쉬우드 부인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길 꺼리면서 곧 런던으로 떠나게 되었다며 황급히 집을 떠났다. 마리앤의 실망과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대쉬우드 부인은 어쩌면 알랜햄 저택에 사는 스미스 부인이 윌러비와 마리앤과의 관계를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런던의 사업을 구실로 윌러비를 급히 불렀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윌러비와 마리앤이 그동안 왜 결혼약속을 하지 않았는지, 이제 분명해졌다. 윌러비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자 마리앤은 밀려드는 비탄과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에드위드가 대쉬우드 가족을 방문했다. 대쉬우드 가족이 놀랜드를 떠나 새 집으로 이사한 후 엘리너와 에드워드는 한 번도 연락이 없던 터였다. 사실 놀랜드에서도 그들의 관계는 냉담함의 연속이었고 특히 에드워드 쪽에서 심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풀이 죽어 있는 모습에 늘 마음이 편치 못했고, 침울한 그의 표정과 뭔가 피하려는 태도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언뜻 마리앤의 시선이 에드워드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반지를 향하자, 에드워드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것이 누나의 머리카락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엘리너는 그것이 분명 자기 머리카락일 거라고 확신하면서 내심 가슴속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에드워드가 대쉬우드 집에 머문 지 일주일이 흐르자, 그는 대쉬우드 가족들의 친절에 감사를 느끼며 그들과 있는 동안 최상의 행복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떠나려 하자 엘리너는 크게 서운했지만, 마리앤이 윌러비를 떠나 보낼 때처와 함께 있는 윌러비의 모습을 발견했다. 마리앤은 너무 기뻐 다정하게 그를 불렀으나 왠지 그는 시선을 피했다. 마리앤이 감정에 북받쳐 인사를 청했는데도 그는 손을 뿌리치며 냉정한 태도를 일관했다. 형식적인 인사만을 하는 윌러비의 모습에 엘리너도 상당히 당황했고 마리앤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됐다.다음날 아침 비참함과 실의에 찬 마리앤에게 편지 한 통이 왔다. 윌러비로부터 온 정중한 절교의 편지였다. 마리앤과의 관계는 존경심 이상의 것도 아니었으며 곧 그레이 양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동안 그녀로부터 받은 편지들과 머리카락을 되돌려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윌러비의 교활함과 뻔뻔함에 분노를 느낀 엘리너는 오히려 그런 파렴치한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마리앤에게는 악으로부터의 탈출이며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윌러비의 사랑고백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마리앤은 그를 원망했다가, 어쩌면 그가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리앤은 그와의 사랑은 진실이었다고 하다 곧 다시 그를 원망하는 등 혼란을 반복하였다.제닝스 부인의 말인즉, 윌러비와 결혼을 앞둔 그레이 양은 5만 파운드를 소유한 대단한 부자였다. 그러니 가난한 윌러비가 아무리 예쁜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도 눈앞에 나타난 부잣집 딸을 마다할 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엘리너는 동생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염려했고 마리앤과 윌러비는 애당초 약혼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시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실의에 찬 마리앤은 윌러비와의 약혼을 확신하고 있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북받치는 설움에 집이 그리워졌다. 엘리너가 어머니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알리는 답장을 쓰는 동안 브랜든 대령이 방문했다. 브랜든 대령은 모든 상황을 바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베일에 싸였던 윌러비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엘리너에게 털어놓았다.그가 말한 내용은 이러했다. 브랜든은 어릴 적 소꿉친구인 엘리자와 가깝게 지냈다. 당시 브랜든 가족은 빚더미 위에 있었고 엘리자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므로 그녀가 열일을 알고는 그만 충격을 받아 쓰러졌고, 페라스 부인은 스틸 자매를 당장 거리로 내쫓았다는 것이다. 존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들 에드워드가 부유한 색시감과 결혼하기를 원해 부잣집 처녀를 눈여겨 보아두었던 페라스 부인이 아들을 불러 루시와의 파혼을 명했지만 에드워드가 이를 거절했다는 것, 이로 인해 페라스 부인은 모자간의 인연을 끊고 땅을 모두 동생 로버트에게 상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 그리고 쫓겨난 에드워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부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뱅이가 된 에드워드를 존은 매우 동정하였다.제닝스 부인은 에드워드가 루시와의 결혼 약속을 지키느라 재산도 포기했다며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그의 행동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것에는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잘했다고 박수를 쳐줄 수는 없었다. 앤은 엘리너에게 에드워드가 빈털터리의 몸으로 루시와 결혼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으나 그와 함께라면 초가집에서라도 살 수 있다는 루시의 말에 에드워드가 부목사가 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기로 했다는 말을 해주었다.며칠 후 엘리너는 루시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자기와 에드워드는 끔찍한 박해를 받았지만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으니, 에드워드가 부목사직에 임명받을 수 있도록 추천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에드워드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브랜든 대령은 엘리너를 통해 그에게 델러포드의 목사직을 추천했고, 하지만 그곳의 수입이 적어서 결혼해 살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었고 에드워드는 진심으로 브랜든 대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행복이 기다리는 곳존은 엘리너에게 에드워드가 차라리 그녀와 결혼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말하면서, 페라스 부인이 에드워드의 색시감으로 점찍어둔 모튼 양은 에드워드의 동생 로버트와 혼사가 진행중이라고 하였다. 로버트는 그를 한없이 편애하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어머니 덕택에 방탕하게 살면서, 형의 어리석음을 조소하며 경멸했다.엘리너와 마리앤이 런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