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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으로가는길 감상문!
    집으로 가는 길 을 보고...이 영화의 내용을 말하자면,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를 만나고 이야기 하면서, 부모님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작은 시골 마을 학교에 부임한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어머니의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이 영화는 다른 일반 영화들과 달리 배경영상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시골 마을의 산과 길을 멀리서 잡아서 전체 화면으로 보여줌으로써 실로 멋진 영상을 보여준다.관광문화론에 비추어 본다면 관광 상품의 하나로 개발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 영화 속에서 두 남녀를 이어주는 것은 길이다.도시에서 시골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뛰어다닌 길이며, 어머니가 도시로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던 곳이며,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달려온... 사랑이 싹트고 진행되어 온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고, 자연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시신운반을 자동차가 아닌 도보로 그 길을 지나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다른 이들에겐 그냥 밟고 지나가는 한낱 시골 길에 불과하지만..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는 결코 쉽게 대할 수 없는 깊이 있는 따스한 공간이다.이 영화를 통해서 평범한 산과길이 아닌 관광 상품으로써의 개발 가치성이 보여지게 된 것이다.첫 번째로는 자연을 전체화면으로 익스트림 롱샷 자주 보여주므로 관광 상품으로써의 개발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두 번째로는 영상을 흑백과 컬러로 표현하므로 자연적 배경을 다른 각도에서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컴퓨터 그래픽이나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 배경을 카메라 기법인 익스트림 롱샷으로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매우 뛰어난 영상미를 담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6.11.17| 1페이지| 1,000원| 조회(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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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정책보고서...
    1.2005年 ~ 2006年 주요 관광정책 성과2003년 SARS와 이라크 전쟁, 조류독감 등으로 이어진 국제환경의 악영향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던 관광산업은 2004년에 점차 회복세로 접어들었으나, 2004년 12월 26일 남아시아 일대의 지진해일 ‘쓰나미’라는 관광산업의 악재로 2005년이 시작되었다. 연이어 일본과의 독도 갈등 및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인한 일본시장의 피해, 발리 및 영국의 폭탄테러, 지중해 지역에서 시작된 조류독감 등으로 인하여 지속적인 위기를 맞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비교적 큰 여파 없이 외래관광객 600만 명 돌파와 괄목할 만한 관광정책성과들을 일구어 관광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1) 외래관광객 600만 시대 개막 : 2005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수는 총 602만 명으로 외래관광객 600만 명 시대. 전년대비 3.5%가 증가로 국내ㆍ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류 등 새로운 관광 콘텐츠 발굴과 관광 서비스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의 결과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 관광객이 크게 증가, 전체 외래관광시장 확대에 도움을 줌.내국인 해외여행은 2005년 한해 동안 전년대비 14.2%가 증가하여 1천만 명으로 증가, 이에 따른 해외여행 지출도 크게 증가하여 관광수지적자는 63억불에 이름.앞으로도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는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향후 관광환경과 관광욕구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여 국제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2) C-Korea 2010계획 수립 : 2005년 7월에는 문화, 관광, 그리고 스포츠 산업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산업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인 C-Korea 2010 이 수립, 발표.관광분야 계획만을 살펴보면, "동북아시아관광허브 도약”을 정책목표로 삼고, 외래관광객 1천만 명, 관광수입 100억 달러, 그리고 국민관광총량 7억 명을 2010년까지 달성할 목표로 정하고 목표달성을 위해 중저가 관광숙박 브랜드 구축 한국-21세기의 새로운 문화의 비전?에서 국민 관광 향유권 증대를 위한 정책방안의 하나.본격적인 주 40시간으로 근무제 실시 및 주5일 수업제의 확대 등 관광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인하여 여행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저소득 중소기업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국내 여행경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정부는 여행바우처 지원을 통하여 저소득층의 관광기회 확대 및 사회양극화 해소를 통한 관광복지에 기여하고, 국민 국내관광 수요 확대 및 관광소비 촉진을 통한 국민관광 활성화를 도모, 지방관광을 활성화함으로써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4) 남북관광시대의 서막 : 2005년에는 남북관광시대의 본격적인 서막이 열렸다.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 관광, 평양 관광, 백두산 관광이 논의 중에 있으며 이에 대한 시범관광이 실시.2005년 7월 14일 금강산에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한국관광공사는 백두산 관광사업에 참여, 1998년 11월에 시작되어 2005년 6월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남북관광 교류와 활성화는 사회ㆍ문화적인 인적 교류를 확대시켜 상호간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고 보다 친밀한 정서적 교감을 가져올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5) 국제관광 부문의 협력과 위상 제고 : 2005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부산에서 제4차 APEC관광포럼이 개최, 총 4개의 세션으로 구성된 이 포럼에서는 관광시장으로서의 APEC지역 관광상품 개발과 지속가능한 관광에 대한 논의, 지역 경제 및 사회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 관광이 가지는 의미 등이 논의. APEC포럼 개최 및 APEC-TWG 의장직의 성공적 수행을 통하여 APEC역내 관광분야의 협력을 주도함으로써 한국관광의 위상에 기여.동남아국가연합(ASEAN)10개국과 한ㆍ중ㆍ일이 참여하는 제7차 ASEAN+3NTO(정부관광기구)회의 개최, 3국간 협력관계에 보다 기여하는 성과를 얻음.OECD국제관광회의를 개최하여, ‘관광의 성장 중소기업의 기회’라는 주제로 우리나라와 OECD와의 관광분야 로 기존의 단일한 관광지 개발을 넘어서 복합관광레저 기능의 미래형 관광레저도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2005년 문화관광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역점 추진사업의 하나로 보고되기도 한 관광레저도시는 개별 도시의 지역적 특성과 고유의 문화를 살리면서 다양한 레저 휴양시설과 주거ㆍ교육ㆍ의료ㆍ문화 등 정주시설이 함께 포함되는 복합 다기능 공간으로 개발될 예정.7) 유-트레블(U-Travel)시대 개막 : 최근 관광산업 분야에서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그 성과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도 관광과 첨단 IT기술의 만남, 유-트레블시대가 막을 올림.2005년 4월과 6월 속초와 안동에서 각각 ‘종합관광안내정보 서비스 개통식’을 열고 유-트레블 시대의 개막을 선포.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쉽고 빠르게 관광안내정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유-트레블은 ‘관광정보화 시범지역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개통식을 한 속초와 함께 안동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서비스 된다. ‘종합관광안내정보 서비스’는 관광전용 웹서버와 데이터베이스서버, 1330 무인관광안내도우미 등을 도입해 관광객들에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역관광안내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관광안내시스템 개선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2005년간 총 1,410개의 관광안내표지판을 추가 설치하고, 관광숙박시설을 확충.8)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 2005년 6월 중국인 관광객 무사증 경유(TWOV)입국대상에 유렵연합 등 30개국으로 확대 시행하기로 하는 등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 졌다. 또한 관광산업을 수출업에 포함하여 무역금융, 수출보험, 해외전시 지원 등 수출산업으로서의 각종 혜택을 부여할 수 있도록 대회무역법시행령을 2006년 2월 28일에 개정하였고, 관광호텔, 유원시설업의 회원모집 허용 등 관광ㆍ레저 산업 규제에 있어서 획기적 개선과 함께 관계법령이 개정 중에 있다.2.관광환경의 변화1) 국제적환경 : 관광산업은 21세기 체험경제시대의 신성장동력 전망을 통해 전 세계 국제관광객수는 1995년 5.6억명에서 2010년 10억 명, 2020년 15.6억 명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세계 총 고용의 9%가 관광관련 산업에 종사할 것으로 전망.특히 동북아시아지역이 국제관광목적지로 급성장하고, 중국이 세계 최대 잠재 관광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ㆍ중ㆍ일ㆍ러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지역이 세계 주요 경제 블록으로 등장하면서 관광시장 또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고속성장 초기단계에 진입 중.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 지자체는 지역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 관광산업을 21세기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싱가폴의 ?Tourism 21 : Vision of a Tourism Capital?, 호주의 ?Tourism : A Ticket to the 21st Century?, 일본의 ?New Welcome Plan 21?, 중국의 ?관광비전계획?등 관광진흥정책을 수립하여 추진.아울러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지속가능한 관광개발 및 New Tourism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증대, 21세기에는 자연환경 파괴와 자원고갈 가속화에 대응하여 지구 차원의 환경협력이 강화되고 환경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더욱 증대될 전망. 그리고 지속가능한 관광에 대한 국제적, 정책적 중요도가 확대되면서 기존 대량관광에 대한 반작용과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 증대에 기초하여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체험하는 자연친화적 관광 형태의 New Tourism이 부상하고 있고, 최근에는 생태관광, 녹색관광 등 새로운 형태의 관광유형이 각광받고 있다.그러나 전쟁, 테러, 질병 등 예측 불가능한 위기 요인이 상존하고 있어 국제관광환경의 불안정요소가 잠재. 2003년 SARS와 이라크 전쟁, 2004년 동남아시아 지진 해일 쓰나미, 그리고 2005년 발리와 영국의 폭탄테러, 지중해 지역에서 시작된 조류독감, 유가 급등, 불확실한 세계정세의 변동 등은 국제 관광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키며 불황을 야기하는 요인이므로 국제 관광환경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관광산업간 및 관광산업과 개인간의 거래장벽 해소에 따라 IT를 기반으로 하는 신 관광산업이 지속적으로 등장. 이와 함께 관광사업체의 경영효율화 작업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미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관광 총 경비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항공 및 숙박료에 대한 저비용 경영체제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국제적인 관광형태는 지속적으로 다변화되고 다양화되고 있다.세계화와 지역주의의 가속화, 정보통신기술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있고, 오지여행이 증가하고 있으며 3Es(Entertainment, Excitement, Education)를 결합한 테마형 관광상품 등이 부상하고 있다. 또한 쾌적한 자연환경, 고유한 문화유산, 삶의 질 추구 등 세계관광시장의 조류 변화로 단체관광, 대중관광에서 모험관광, 생태관광, 녹색관광, 문화관광, 테마관광 등 체험을 중요시하고 보다 세분화된 대안관광(alternative tourism)으로 전환될 전망이다.최근 세계관광기구(UNWTO)를 비롯하여 APEC, ASEAN, ESCAP, PATA, UNDP, OECD 등의 국제기구는 관광을 통한 국제협력에 공동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개별 국가간 협정도 지속적으로 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관광을 통한 국제협력 노력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국제 관광계의 새로운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결론적으로 동북아 시장을 둘러싼 관광시장의 팽창과 이에 따른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고 국제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진정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우리다운 것, 우리스러운 것, 즉 한국스러운 것의 고급화를 추구해야 하며, 관광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출입국 절차, 국제관광 교통체계 및 관광기반시설 개선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2) 국내적환경주 40시간 근무제 확대와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국민관광수요가 급증하고 다변화하는 추세이다. 여가 시간의 증대로 삶의 질 향상과 건강 증진을 위한 레저, 스포화.
    사회과학| 2006.11.17| 5페이지| 1,000원| 조회(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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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수궁을 다녀와서
    친구와 함께 시청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쯤이었다. 시청역에서 내려 1번출구로 나오자마자 덕수궁 담벼락이 보였다. 나는 ‘저게 바로 돌담길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연인들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설이 있는 돌담길은 그냥 평범한 담길인데, 근처에 가정 법원이 있어서 부부가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길을 지나가서 그런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내가 본 덕수궁은 가을의 혜택과 특권을 품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돌담 밖은 시청과 호텔 등 여지없는 현대의 모습들이었지만 돌담길을 따라 정문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면 금천교를 지나면서 ‘음~’하는 편안한 감탄사를 자아내는 곳이었다.덕수궁 정문 이름은 대한문이인데 원래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 아닌 동문이었다고 한다. 실은 이름도 대안문(大安門)이였는데 1904년 대화재 이후 1906년 재건하면서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게 되었다고 한다.덕수궁에서는 가을을 맞아서 “덕수궁 가을풍경 속으로”라는 주제로 중화문~광명문, 세종대왕 동상, 후원 오솔길에 시(詩)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덕수궁의 가을을 한층 더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덕수궁은 본시 정릉동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저택으로 건립되었다. 1897년 고종이 왕궁으로 사용하였으며 1907년에 고종은 일제의 압력으로 제위를 황태자에게 물려주었고, 새로 즉위한 순종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일제시대에 덕수궁 대부분이 철거되고 궐역도 축소되어 지금 현재 덕수궁의 면적은 18,635평이다. 1960년대 들어서 덕수궁은 태평로 일대의 개발로 인해 담장이 허물어져 나가고 철책으로 다시 담장을 치는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덕수궁은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있는 '고종'이 거했던 곳이다. 지난날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건물은 대한문, 덕흥전, 광명문, 함녕전, 중화문, 중화전, 석조전,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정관헌 등이 남아있다.첫 번째로 대한문을 지나 오른쪽에 보이는 세종대왕동상과 함녕전부터 보기로 했다.함녕전은 보물 제820호로 1897년 건축하여 고종이 거처하고 돌아가신 건물로, 1904년 화재로 인해 손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함녕전 내부는 큰 마루를 사이에 두고 동쪽방을 고종황제의 침실로 꾸미고, 서쪽방을 황후의 방으로 꾸몄다. 그 둘레의 공간은 왕의 신변 보호, 의식주 등을 담당했던 상궁들의 거처로 이용되었고 아궁이가 있었던 흔적이 보였다.두 번째로 정관헌에 갔다.대한제국 광무 4년에 지어진 건축물로, 고종 황제가 다과회를 열고 음악을 듣던 곳이자 고종ㆍ순종황제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기도 하다. 건물 정면과 좌우 측면의 화려한 발코니, 다양한 양식의 기둥, 회색. 적색 벽돌을 사용한 벽면 등이 인상적이었다. 철제난간에 십장생 등 우리 전통 문양이 투각으로 표현돼 있고 기둥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지는 등 한국전통과 서양풍 건축양식이 절충돼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최근 내부개방이 되면서 “전통다례체험행사”를 하여 잎차 ,국화차 등의 차를 마시며 다과를 즐기며 정관헌이라는 당호(堂號) 그대로 전통 음악을 들으면서 솔밭과 어우러진 함녕전과 같은 옛 건물들을 고요하게(靜) 내다 볼(觀)수 있는 행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시화와 낙엽, 소나무의 푸르름이 어우러진 후원 오솔길을 따라 거닐며 준명당으로 갔다.준명당은 처음에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나, 거처를 함녕전으로 옮기면서 외국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 쓰이고, 1916년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해서 유치원으로 잠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준명당의 ‘명’자가 밝을 명이 아니라 눈(目)과 달(月)이 합해진 글씨로 “눈을 크게뜨고 세상을 밝게 본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다음으로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게 서양식 건물로 지어져 “저건 도대체 무슨 건물일까?” 하는 의혹을 자아내던 건물로 향했다.그 건물의 명칭은 석조전.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로 영국인 기사 하아딩의 설계에 의해 반지하 3층 건물로 착공ㆍ완성되었다. 19세기 고전주의적 양식을 답습하여 일제강점기 전 기간중 가장 규모가 큰 순석조 건물로 세워졌다. 이후 석조전은 고종이 주로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장소로 쓰이다가 1933년부터 창경궁 이왕가박물관의 분관으로서 일본 근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전용되었다. 뒤이어 1938년 개관된 석조전 신관에 이왕가박물관의 전통미술품이 전시되고 2동의 건물 모두가 전시장으로 쓰였다. 대한제국 황실의 생활공간이 전시공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마지막으로 중화전을 보며 덕수궁 관광을 마쳤다.중화전의 웅장함과 화려하면서 단아함에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중화전은 고종이 덕수궁으로 거처하는 곳을 옮긴 1902년에 창건되고. 재위기간 동안 정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에서 왕이 관리들의 하례를 받고 조회를 하던 곳으로 중화문과 함께 보물 819호 지정되었다.다른 궁궐의 정전이 가운데 자가 ‘정’자 돌림인 것과 달리 덕수궁의 중화전은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고종이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로 새로 출발하면서 사용한 궁궐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한다. 중화전은 19~20세기의 왕실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중화전 안에는 국왕이 앉았던 어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병이 있었는데, 이것은 병풍으로, 왕이 계시는 곳 뒤에 항상 있고, 봉우리와 해ㆍ달ㆍ붉은 소나무ㆍ두 줄기 폭포가 그려지며, 왕권의 무궁한 발전과 융성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중화전은 의례공간의 특성에 맞는 건축적 배치와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품계석이 왕조사회의 위계와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중화전의 약간 밑에 조그만한 비석이 좌우로 놓여져 있는데 좌우로 각각 12개였다. 정일품부터 정구품까지 있는데 일품(一品)부터 삼품(三品)까지는 정(正)과 종(從)의 품계석을 두었는데, 국왕의 자리는 남쪽에 있는데 품계석은 좌우 양방향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 동서의 기준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왕의 오른팔 왼팔 노릇을 하여 나라를 번창시키라는 뜻이 담겨있는 듯했다.
    인문/어학| 2006.11.17| 3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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