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CirianiWorld War 1 Museum-목차-Ciriani life storyAnalysisPostulatePlanSectionInsideOutsideReferencesCiriani life story1936년 페루 리마출생1955~1961년 렝제니에라 국립공과건축단과대학1961~1964년 도시계획 국립연구소1962~1964년 리마의 건축 단과대학에서 교수1964년 프랑스로 건너옴1964~1965년 앙드레 고미의 공동 협력자1968~1982년 도시 계획과 건축 아뜰리에의 일원1969년 파리 7건축학교에서 교수1976~1977년 파리제 7구에서 에이전시 설립1983년 건축학 부분 국가대상1964년 페루에서 건축한 빌라들과 집합주거는 국제주의 양식의 형태로서 르 꼬르뷔지에와 미스의 영향을 전반적으로 나타낸다.1970 ~ 1980년 대다수 건축가들과 마찬가지로 건친 외부 표현 재료의 미약한 이중적 표현.유기적 표현이 혼합적으로 나타나냄1980년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20년대 기계 미학의 표현 경향1990년 재료 표현의 이중성을 활용하여 거친 면과 매끈한 대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공간의 유기적 변화와 결합한 표현을 나타낸다.Drawing & Design젊은 시절 훌륭한 건축가들의 드로잉을 수도 없이 베껴 그렸다”그는 쉼 없이 그려나가면서 스스로의 작업 방식을 형성해 나갔다. 많은 것을 그리며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Architectural Impact시리아니는 르 꼬르뷔제의 독자적 해석과 모더니즘을 추구해오고 있는 프랑스의 네오 꼬르뷰지안을 대변하는 건축가로 불리운다.실제로 그는 스스로 모든 건축을 꼬르뷔제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철저히 모방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니의 건축은 모더니즘과 분리하여 구별되고 평가되고 있다.Analysis세계대전 추모관으로도 불린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일찍이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대량살상이 자행된 세계대전의 참화를 기록하고 증언하여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실수가 또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지니고 있다.The first alternative세계대전 역사센터 신축을 위한 건축 설계 공모전이 공고되었다.이에 시리아니는 프로그램이 공고된 후 첫번째로 그린 스케치안이다.Postulate그의 건축적 사고의 출발점인 르 꼬르뷔제가 제시한 박물관 건축의 특성과 아울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박물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을 수용하면서 박물관 건축을 위한 세가지 가정으로 자연광 동선 입구홀을 상정하게 된다.Natural light박물관 건축에 있어 빛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그는 빛을 자연이 주는 선물로 여긴다. 따라서 신비롭게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빛을 눈에 쉽게 띄는 인간적 노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유입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Copper시리아니는 하나의 핵(초상화실) 주위에 네 개의 날개(전시실)이 붙은 나선형을 택하였다. 이것은 르꼬르뷔제가 제시한 원심적 회전성장과는 다른, 파동 회전성장 개념이다.박물관이 확장됨에 따라 점점 더 깊어지는 필로티 아래로 박물관의 중앙에 들어가야 하는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빛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박물관 건축에 있어서 만큼 해결해야 할 첫째 조건으로 동선을 든다.시리아니가 남긴 수많은 투시도는 그가 실제로 건축적 산책개념을 바탕으로 공간을 구축해 왔음을 증명한다.Entrance Hall박물관 입구 홀에 대한 시리아니의 중요성 강조는 유별나기까지 하다. 시리아니는 입구 홀을 기능적으로만 받아들여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는 대부분의 건축가들과는 달리 박물관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박물관에서 발생하는 기능적인 어려움은 현대 박물관의 복잡한 구조를 한곳에서 모두 이해시켜야 하는 입구 홀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입구 홀은 방문객들이 박물관에 들어서면서 처음 경험하는 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이미지를 느끼게 되는 곳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리아니는 박물관에서 입구 홀이 박물관의 '공간적 초점' 이라고 말한다.입구 홀은 전시물이 주인공인 까닭에 건축적 표현이 자제 되어야 하는 전시공간과 달리 박물관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건축적 감흥을 주는 공간적시도가 가능한 곳으로 나타냈다.Plan성은 박물관의 앞마당이다. 우리는 현실과 박물관 사이의 전이공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여기저기에 이미지를 차례로 펼쳐 보이면서 각각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역점을 두었다.
R E P O R T-오토바그너: 빈우편저금국오 토 바 그 너““그는 어떤 사람인가””그는 1841년 7월13일에 태어났고, 1918년 4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서 그 조국에서 유명한 건축가로서 근대건축을 열었다.그의 학력은 빈대학교 건축학(1857년~1860년) → 베를린 국립예술대학교 건축학(1860년) → 빌덴데예술대학교 건축학을 수학했다.그의 경력은 비엔나 학파 창설(1897년)했고,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 교수(1894년)로 지냈으며, 퐈스트 스튜디오에서 일했다.그의 대표작품은 바그너빌라1 (Villa wagner1), 카를 광장역사Karlsplatz stadtbahh pavilion), 마조리카하우스 (Majolika haus), 섬 레오폴드 교회 (Church of St.LeopoldKirche am Steinhof), 비엔나 우체국 저축은행 (Post office Savings Bank)이 있다.사상과 성향““예술의 유일한 지배자는 필요다”” ““Artis sola domina necessitas’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그는 대표작 ‘근대건축’(1896)에서 근대건축의 원칙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즉, ㉠함목적적 건축 ㉡재료의 솔직함 ㉢구조의 합리성 ㉣그리고 이상의 세 가지로부터 생겨난 필연적인 형태가 ‘필요양식’이라했다. 이원칙은, 분명히 양식주의 건축시대의 거장인 젬퍼의 건축이념을 바탕으로 삼고있다. 또 건축에 있어 기능충족이라는 중용성이 건축의 역사보다, 오랜 원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건축이 본질적으로 완전히 그릇된 방향을 따르고 있건 19세기말엽에 새삼스레 정상적인 루트로 건축을 되돌리고자 했던 바그너의 공적은 크다. 그러나 그의 ‘필요양식’이라는 개념은 그릇된 기능주의 이론이 탄생하는 단서가 되었다.그의 작품은 최후까지 장식, 고전적인 3층구성, 대칭성을 선호하여 20세기 초에도 예스러움을 가졌다. 그러나 극히 보수적이면서 근대 양식을 확실히 선취한 면이 동시에 독특하고 복잡한 성격에서 40대 중반부터 생애에 걸쳐 계속되 다음 2가지 특징이 집약된다.양식적 의장에서 근대 건축으로 초기부터초기부터 양식적 방법에 뛰어났지만, 1880중반부터 두드러져 평활한 면들 틀잡기한 표현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입면형태 속에 공중에서 완결하는 직사각형의 효과가 겹친 것이다. 처음에는 기부, 덧기둥, 처마허리 등 역사적 구체적 요소로 둘러싸이는데, 만년에는 타일이나 페인트 등으로 만들어지는 무늬가 직사각형을 그리기에 이르고 최후까지 잔존한 장식은 틀잡기효과가 구체적인 수단을 바꾸어 수십년동안 계속된 것이다. 그런데 공중에서 완결하는 직사각형은 근대 양식이 가장 첨예하가 나타난 입면형이었다. 아돌프루스가 주장한 무장식도 확실히 중요하지만, 와그너가 반대로 장식에 구애되어 표현하고자 시도했던 이 독자적인 형태적 상상력이 보다 예언적이었을 것이다.세기막적 장식에서 근대건축으로1890년대 말에는 파사드 전면이 꽃무늬로 덮인, 오스트리아의 아르누보적 건축을 대신하는 (마졸리카하우스)(1890)가 지어진대, 장식의 독자적인 특성을 철저한 2차원성에 이 벽면을 보더라도 표층에 새겨지지 않고 안전한 그래픽 무늬였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화려한 장식 모티브 자체보다도 무거운 벽 본체를 잊게 하고 눈을 기분 좋게 끌어 표층으로 미끄러지는 효과가 강하다. 말하자면 빈우편저금국-1904~12에서 부착물의 외벽으로 실현되었다.표층의 자유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넣어서 보다 실태적으로 전체와 관계되는 방법이 되어 건축형태에서 표면의 즉물적인 분적표현이라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여기에서도 그는 표층의 자람이라는 효과를 장식에서 실태자체로 구체적인 수단을 바꾸면서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르꼬르뷔제의 자유로은 입면으로 상징되듯이 구조체의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표현효과에 따라 외관이 결정되는 일도 역시 근대양식의 특징이었다. 즉 극히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와그너가 세기말 장식을 긍정하면서 근대로 튀어나가 구체적 계기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SECESSION1897년 4월3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화가 알트를 중심으로 일체의 과거양식에서 분리한다는 세제션운동이 19인의 젊은 예술가들에 의하여 일어났다.1899년 Wagner는 Secession에 가입하였으며 Secession건축가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의 건축도 더욱 근대적으로 발전했다. Wagner 의 2차원적이고 직선적인 형태는 Secession의 지도자였던 Klimt에 의한 것으로 Wagner는 그를 이 세상에 존재했었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존경하였으며 또한 편평하고 정연한 입면을 창조하는 Wagner의 열망과 일치하는 장식적 어휘를 제공하였다.
FRANK OWEN GEHRY-BILBAO GUGGENHEIM MUSEUM-- CONTENTS -Ⅰ. FRANK OWEN GEHRY1. LIFE & WORK2. CONCEPTION3. WORK PROCESS4. WORK TREND5. GUGGENHEIM MUSEUMⅡ. BILBAO GUGGENHEIM MUSEUM1. SUMMARY2. STRUCTURE3. CONTEXT & FUNCTION4. PLANⅠ. FRANK OWEN GEHRY1. LIFE & WORK▶ 연혁 및 수상경력- 캐나다 토론토 출생 (1929)- 남 가주 대학 건축학사 취득 (1954)-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도시 계획을 공부 (1956 ~ 1957)- Frank O. Gehry and Associates, Inc. 오픈 (1962 ~ )- USC의 건축학과 조교수 역임 (1972 ~ 1973)- 하버드 대학 및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강의- 프리츠커(Pritzker)상 수상 (1989)- 건축분야의 월프예술상과 임페리얼 건축상 수상 (1992)- 릴리안 기쉬상 수상 (1994)- 네덜란드 빌딩이 TIME이 선정한 최고의 디자인 작품으로 선정 (1996)▶ 주요 작품활동- 게리 하우스 (산타모니카, 캘리포니아, 1977-1978)- 로욜라 법과대학 (로스엔젤레스, 1981-84)- 캘리포니아 우주항공박물관 (로스엔젤레스, 1983-84)- 아이오와대학 실험동 (아이오와, 1987-92)- 페스티발 디즈니 (마르네-라-발레, 프랑스, 1989-92)- 톨레도대학 예술관 (톨레도, 1990-92)- 아메리칸 센터 (파리, 1988-94)- 디즈니 콘서트 홀 (로스엔젤레스, 1987-2003)- 와이즈만 미술관 (미네소타대학, 1990-93)-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스페인, 1991-97)- 네쇼날 네덜란덴 빌딩 (프라하, 체코, 1996)2. CONCEPTION▶ 해체주의 건축해체주의가 건축에서 대두된 것은 1988년 봄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세계 최초의 예술 건축의 해체주의 심인 과정은 모델작업에 근거를 두고 D작업, 구조적 문제 해결, 디테일 등 모든 작업들이모델작업에 의해서 판단되고 최종적인 결과물도 모델에 의해서 완성된다. 게리는 모델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과정에서 건축디자인의 창조적 개념을 그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논리와 이론으로 발전시킨다. 이를 위하여 그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방법론에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을 응용하고 있다.프랭크 게리의 유명한 작품으로 자연적인 물고기의 형태를 한 Bilbao 구겐하임 미술관의 디자인 작업은 CATIA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건축디자인 해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CATIA는 프랑스 소프트웨어회사인 Dassault에 의해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주로 우주선이나 자동차 디자인에 유용된 프로그램이다. 복잡한 곡선들에 대한 작업은 복합적형태를 해석하기 위하여 초기에 만들어진 카드보드의 스터디 모델을 CATIA에 부속된 Faro arm이라는 디지타이저를 통하여 스터디 모델의 곡선들이 추적된다. 이렇게 추적된 데이터들은 3차원으로 해석이 가능한 CATIA의 wire frame으로 전환되고 이것은 다시 구조해석 및 시공에 대한 디테일을 만들기 위한 건축적인 해석이 이루어져서 완성된다.(1) 자연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려는 시도: 건축디자인에 인간이 가지고 있지 못하는 자연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려는 시도(2) 자유로운 형태 선호: 규칙과 질서에 얽매여 있는 기존의 사고 형식을 깨뜨리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형태를 선호(3) 우연적 형태의 창출: 순간적 영감에 의해서 형성되는 자유로운 곡선과 매스를 자연과 주변환경,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창출3. WORK PROCESS프랭크 게리의 디지털 디자인 작업과정은 그가 가지고 있는 추상적 사고를 스케치와 모형을 통해 구체화시키고 디지털 도구(3차원 스케너)를 활용하여 3차원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3차원 데이터로 전환된 정보를 컴퓨터의 계산을 통해 2차원적인 평면, 단면, 입면으로 전환한다.(1) 대지주변 분석 건축적 단편화 개념에 따른 유형적인 특성과 조소적 특성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됨을 알 수 있다.ㆍ90년대 이후 Gehry 작품의 특성- 자유로운 곡선에 의해 3차원적 공간구성을 더욱 조소적으로 표현함;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 도입의 원인- 주체에 대한 보조체들의 자유로운 결합 형성 (위계성)ex) 빌바오 구겐하임 : 주체 - 아트리움, 보조체 - 3개의 장방형 갤러리; 각 독립 기능공간은 개별적 매스를 통해 형태를 유지하며 중앙 로비나 아트리움의 매개공간을 중심으로 연결됨- 이전에 비해 곡선의 사용이 증가되면서 내부공간과 외부형태의 결합에 있어 다양한 시도 행함; 기능과 형태 일체 혹은 분리(-외부 형태만 강조) - 건축의 구축에 있어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조소적 건축관을 실현하려함ㆍexcited about Japan- 다다미 매트, 기둥, 보, 목공예품남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공부를 하면서 일본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이유를 당시의 교수들이 모두 일본에 다녀왔기 때문이며, 일본의 건축과 남부 캘리포니아와 잘 맞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양문화 속에서 동양의 그것을 바라보게 될 때의 낯설음과 신비함처럼 게리에게 새로운 시도를 표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벌써부터 내재되어 왔기에 일본에 열광하게 되고 라파엘 소리아노(Raphael Soriano)가 그의 모델이 되어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ㆍSchindler, Neutra그의 5-60년대 작품의 경향을 ‘장식이 배제된 단순한 입면처리와 조화된 통합성 등의 모더니즘적인 형태언어들을 사용’과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한 주변 콘텍스트와의 조화 및 공간 구성에 있어서의 절제된 위계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의 작품이 쉰들러와 노이트라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젊은 시절에 두 사람을 알게 되고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을 닮아가는 시도가 없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자 하는 건축을 완성시켜나갔다. 물론 그 결과가 과연 자신의원래 의도대로 되었는지는 게리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Sculpture as ArchitectureㆍFish"...fish are three hundred thousand years before man, so why don't you go back to fish?"물고기의 시작은 포스트모던 게임을 위해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초기의 직선적인 작품을 걸음마 단계로 표현하면서 ‘건축으로서의 조각 작품’을 위해 직관적인 작업을 시작하였다.물고기를 그리는 이유에 대한 답변과 함께 물고기를 연구하고 관찰하게 되었고, 물고기의 운동감에 매료되었다. 직접적인 형태에 대한 묘사는 건축에 그대로 나타났으며 스스로를 모더니스트라고 하듯이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면서도 그의 직관적인 서술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COMMENTARIESSculpture as Architectureㆍgetting close in a material way-『Samsung Museum of Modern Art』: water / waterfall-stopped project → another sense of movement : Liquid시공되지 않은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Samsung Museum of Modern Art』을 예로 들면서 또 다른 운동감을 표현한다. 주요한 디자인 컨셉은 한국의 자연을 결부시키는 ‘물’, ‘폭포’였다. 물은 물로써 표현해야 했으나 그리하지 못했으며 그 프로젝트가 하나의 물질로서 구축되지 못했던 것을 액상(liquid)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프로젝트 자체가 운동감을 지녔음을 일축시키는 것이며 완성되지 않은 아쉬움에 대한 최선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the New OfficeㆍRandy Jeffersons & Jim Glymphs-CATIA program → playing with shapes-Master Builder Principle new computer & management system→ u있다. 게리 역시 어류와 파충류를 작품에 도입하는데 1984년 계획된 레베카 레스토랑에서는 천장에 커다란 악어를 매달아 조명기구로 활용하고 물고기 형태를 램프로 사용하고 낙지형태의 샹델리아를 사용하기도 하였다.게리의 작품에서 물고기가 나타난 것은 1981년 뉴욕에서 열린 전시회로 게리는 이 때 리차드 세라와 다리를 디자인하면서 거대한 물고기를 등장시키게 되었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뱀 역시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데 게리는 세라와의 작업 이후 뱀 형상이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뱀이 등장한 배경에 있어서는 리차드 세라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뉴욕 카스텔리 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회에서는 물고기와 뱀을 모두 출품하기도 하였다.이러한 물고기나 뱀 형태의 조명디자인, Fish Dance Restaurant, 바르셀로나의 올림픽 경기장의 물고기 조각 등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게리의 작품들에서 다이나믹한 조형을 표출하는 게리의 후기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ㆍAlvar Aalto『Paimio Chair,1931』ㆍSail『Disney Concert Hall,1987』게리는 초기부터 건축의 ‘운동감(Movement)’에 대해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운동감에 흥미를 느낀 배경에는 알바 알토의 토론토 대학 강의에서 만나게 된 파이미오 요양소를 위해 제작된 뛰어난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 암체어(arm chair)가 있었다. 1929년과 1933년 사이에 시리즈로 제작된 이 가구는 자작나무를 두께 3mm로 켜서 여러 장 겹쳐 접착과 동시에 휘어서 성형하는 적층곡목기법을 다리에 적용했고, 두께 1mm의 얇고 넓은 판을 겹쳐 고압으로 휘어 형태를 굳힌 성형합판방식을 등받이 부분과 의자 상판에 도입한 파격적인 곡면 가구였다. 이 가구를 만든 사람이 바로 알바 알토였다는 사실을 강연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되었고, 강의가 끝난 후 ‘나는 의자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와 이 강연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으로 볼 때 게리에게 있어 그 감흥은93년
Kunsthuas Graz그라츠는 부산의 1/6 크기의 작은 도시로,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주변 경관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미술관이 강 양편에 사는 사람들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어가 양편에는 계층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중세 유적이 잘 보존된 동쪽 구시가지에는 중립층이 살고 있었고, 이와 반대로 뒤늦게 개발된 서편은 동구권 이민자들과 저소득층이 자리를 잡고 있엇다. 이로 인해 강서쪽은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동쪽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강을 건너오지 않았다. 이에 문화시설들은 대부분 동쪽에 몰려 있었다.하지만 2003년 유럽연합(EU)에서 유럽 문화 수도로 GLAZ를 지정하고, 문화 시설이 빈약한 서쪽 강변을 문화지역으로 개발 하기로 했다. 이에 무어강으로 양분된 GLAZ를 융화시킬 미술관을 짖기로 했고 이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갈라진 강동과 강서 지역 주민들의 통합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저명한 영국 건축가인 피터쿡과 콜린 푸르니에에게 설계를 맡겼다. 그 결과 물이 Kunsthaus 이다.사람들은 이 건물에 별칭을 주고 있는데 이는 ‘Friendly Alien’ 즉 친근한 외계인 이라는 별칭이다. 독특한 외관과 주위 환경과는 전혀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특히 멀리서 보았을 때 거대한 촉수를 가진 푸른 연체동물 같은 형상으로 미래의 외계인이 중세시대의 도시 한가운데 불시착한 느낌을 주고 있다.Peter cook&Colin founierKunsthaus는 실험적인 건축물을 많이 선보이는 아키그램(Archigram)의 Peter Cook과 함께 UCL의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중인 Colin Fournier는 스페이스랩( Spacelab)이라는 명으로 오스트리아 그라즈의 아트 전시장(Kunsthaus)을 디자인 하였다.Peter Cook1936년 영국 사우스엔드 출생. 1953년부터 1958년까지 본머스 미술 대학을 다녔고, 1958년부터는 런던 건축협회(Architectural Association)에서 건축을 공부했다.피터 쿡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한 세대에 영향을 미쳤던 지의 공동 편집자이다. 피터 쿡이 제임스 커빗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 은 학생들을 위한 대안적인 정보지로 처음 출판되었다. 1961년 스텐실 인쇄로 찍어낸 첫 호는 300부가 팔렸다. 1963년 런던 현대 미술 협회(ICA)에서 첫 번째 전시회 ‘리빙시티(Living City)’를 개최한 이후로, 아키그램 그룹 - 피터 쿡을 비롯, 그의 동료 워렌 초크(Warren Chalk), 데니스 크롬튼(Dennis Crompton),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e), 론 헤론(Ron Herron), 마이클 웹(Michael Webb) -의 목표는 건축의 혁명이 아닌, 건축을 사고하는 방식의 혁명에 초점을 맞추었다.Archigram영국의 1950년대는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인간적인면을 강조하는 유기적인 경향이 있었다. AA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후 1964년에 피터쿡, 롱 해론 등의 공상적인 건축가들로 구성된 아키그램의 출현으로 전위적인 건축활동의 중심이 된다.이들은 '걸어다니는 도시' '플러그인 시티'등의 일련의 공상적인 프로젝트를 발표함으로써 훗날 하이테크 건축의 태동에 일조하게 된다. 그들은 테크놀러지의 구사를 통해 건축에 접근하게 되며, 특히 팝아트적인 이미지의 유토피아적인 계획을 문화발전을 위한 파생물로서 표현하였다. 아키그램은 기존의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기계라고하는 것은 독립된 소비자에 의해서 독립된 생활이 영위되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들의 영향에 의하여 1970년대에는 하이테크 그룹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건축가로 Rechard Rogers, Renzo Piano, Norman Foster등을 들수 있다. 이들은 입면이나 기능에 집착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의 변화에도 즉시 대응이 가능한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시스템에 의한 건축을 제안하였다. 1972년의 퐁피두 센터의 현상설계에 당선됨으로서 본격적인 하이테크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것은 결국 아키그램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 세워진것은 모더니즘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쿡은 현재 영국에서 활동 중이며, 주로 건축 이론에 관한 책을 저술해왔는데 보다 최근의 작업들은 이론적 관심보다는 실용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콜린 파우니어(Colin Fournier)와 함께 스페이스랩(Spacelab)을 만들어, 오스트리아 그라즈의 신규 현대 미술관을 디자인하여 국제 대회에서 수상한 바 있다. 피터 쿡은 현재 런던의 바틀렛 건축학교의 학장을 맡고 있다.Kunsthaus graz profile일반관람객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기존건물과 전시공간이 주 용도로 되어 있는 신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의 공용공간(홀, 레스토랑, 안내, 미술관 샵, 오디토리움)과 2,3층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각층은 오름 에스컬레이터와 2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최상층 상부의 중층은 전망대 및 전시실로 사용된다.총 4개의 층(지상)으로 구성된 Kunsthaus는 3개 층의 전시공간과 1개층의 부대 시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이상학적인 전시 공간과 부대 공간의 연결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외형적으로 보면 초현대식의 건물이며, 주변 경관과 다른 건물이라 하겠지만 내부에서 보면 주위의 경관을 모두 담고 있는 건축이라 설명할 수 있겠다.피터쿡의 아이디어를 실재의 건축물로 실현시키기 위한 수많은 난제들이 있었다. 우선 버블형상의 둥그스름한 건물의 외피를 어떻게 작은 조각으로 만들 것인가, 각각의 면이 직교하지 않고 이웃 건물과의 연결이 고려되어야 했다.Context무어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중상류층 거주지역이며, 서쪽은 인접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저소득 층 노동자 거주지역이었다. 쿤스트하우스는 기능형 문화 공공공간으로 지역통합을 추구하였다. 무어강 서쪽지역이 아트존으로 설정된 이후 새로운 문화활력소로서 설계되었다.문화적 가치 측면에서 서쪽 도시민들에게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건물 자체가 도시공간을 문화화시켰다.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서 기여하고 서쪽지역을 문화공간으로 전화시키며 동서 지역 사람들의 교류를 확대했다.공간적 가치 측면에서는 지역이 추구하고자하는 바를 공간화 시키고 주변상권의 활성화에 도움으주어 주변으로 작은 공연장과 카페가 들어서 경제활성화의 시발점 역할을 하였다.Plan analisys쿤스트하우스는 자유평면형식을 갖음으로 기존의 전시공간이 건축의 공학전인 이유 등으로 전시실의 명확한 구획과 질서를 유지했다면 기둥형식의 구조방식을 채택하여 벽체가 구조체로부터 분리되어 불분명해지고 이전과 비교하여 자유로운 형식의 평면이 가능해졌다.불명확한 공간적 구획을 갖음에 따라 전시프로그램의 전환에 대한 공간의 암시가 불명확해 다양한 컨벡스 맵을 갖는다. 프리플랜과 오픈플랜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전시실 전부가 기획전시로 사용된다.A specialKunsthaus는 주위의 유럽적 건축물들 사이에서 새로운 비정형적이고 디지털 건축이 들어섰는데 이를 통해서 지역의 발전을 이루고 Kunsthausd의 외피(skin)은 외부의 이동하는 사람들과 사용자 관광객들을 상대로 communicative display Skin이라고 불리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축물로서 현대의 건축물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고 디지털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어 있다. BIX 프로젝트를 사용하여 미디어로서의 건축물이라는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기존의 건축물에서는 디지털 건축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디지털, 미디어라는 단어는 모든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건물 자체에서 건물의 외피를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지와 동영상 그리고 빛을 이용한 공연을 표현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고 건물 자체가 살아 숨쉬는 듯한 이미지를 뿜어 낼 수 있다. Kunsthaus의 형태로써도 새롭고 시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건축물이고 디지털건축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 현대건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현재 우리 사회에는 디지털 건축을 통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가 건축과 일반 시민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