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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이해]미국 컨트리 음악에 대한 소고
    ‘미국 컨트리 음악’에 관한 소고1. 미국 컨트리 음악의 배경과거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그리고 영국 등지에서 이주해온 궁핍한 백인들은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부의 대도시로 정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주로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Appalachian Mts.)) 지역 주변에 모여 살았다. 초기 이주민들의 삶은 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살아왔던 환경과 너무 달랐으므로 많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힘든 생활을 하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동경, 이산가족들과의 그리움의 정서를 자연스레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대상이 반영된 노래가 바로 애팔래치언 포크(Appalachian Folk) 또는 힐빌리(Hillbilly)라고 하여 오늘날 컨트리 음악의 기원이 된 것이다. 컨트리 음악이 형성되었던 초기에 직업적으로 이 음악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이웃사람들과 일을 하며 혹은 행사에서 같이 부르던 곡 정도로 여겨졌으며 음악 자체에 대한 존재감은 무의미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컨트리 음악은 훗날 사람들이 부르고 부르던 노래가 구전되어 그것이 다른 마을로, 다른 세대로 전래되었을 뿐이다.그렇게 구전되어 애팔래치언 포크로 불러왔던 것이 1920-1930년대에는 힐빌리로 미국 전역에 라디오와 음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음악으로 변모하였고 40-50년대에는 컨트리 웨스턴(Country Western)으로 불리다가 1960년대 말에 와서 Western이라는 단어는 빠지고 오늘날 Country로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Country는 곧 Country Music을 의미한다.2. 미국 컨트리 음악의 역사- 1920년대컨트리 음악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불리는 카터 패밀리(The Carter Family)와 지미 로저스(Jimmie Rogers)가 테네시주 브리스톨에 있던 Victor 레코드사와 녹음 계약을 하고 서명하였다. 이것은 음반제작자 랄프 피어(Ralph Peer)에 의해서였는데 그가 바로 미국형 컨트리를 연주한 카터 패밀리와 '블루 요들'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지미 로저스 등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들을 발굴한 사람이다. 이 사건은 곧 진정한 컨트리 음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컨트리 음악 역사의 시초라고 보면 된다.- 1930년대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컨트리라는 용어가 정착되기 시작하였으며 음악의 종류도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그 예로는 빌 몬로(Bill Monroe)를 선조로 하는 남부지역의 블루그래스(Bluegrass), 스윙재즈와 결합한 스타일로 캐나다 남부 아카디아지방 사람들의 웨스턴 스윙(Western Swing), 남부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를 구사한 사람들에 의해 정착된 케이준(Cajun) 등을 들 수 있다.- 1940년대1940년대에는 영화까지 석권한 카우보이 송(Cowboy Song)과 술집, 무도장에서 유행한 일렉트릭 기타 주도의 빠른 홍키통크(Honky-Tonk) 등 지역과 풍속에 따라 여러 갈래를 치며 컨트리 음악이 대중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들 컨트리 음악 중에서 서부개척을 상징하는 말달리는 카우보이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1940년대는 컨트리 음악의 성장기로 이해하면 된다.- 1950년대1950년대는 컨트리 음악의 암흑기이다. 비록 컨트리 음악이 로큰롤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폭발적인 로큰롤의 기세에 눌려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빨리 로큰롤과 팝의 요소들을 받아들이면서 추세를 따라잡아 대중음악 전선에서 퇴각 당하지는 않았다.- 1960년대드디어 196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의 라디오 방송에서 컨트리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는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 미군용 방송인 AFKN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물론 전해져왔던 컨트리 음악은 Pure Country가 아닌 Rock, Blues, Jazz 등이 가미된 대중적인 Pop Country였다. 그러나 일부계층만 향유하는 Classic음악보다 대중 또는 민중과 함께하는 Pop음악에 더 큰 가치를 둔 것이 바로 Country음악 대중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1970년대1970년대를 기점으로 컨트리 음악은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화되었다. 일렉트릭 사운드를 가미한 컨트리 음악의 팝과 록과의 퓨전(Fusion)은 폭넓은 대중을 확보할 수 있었다. 컨트리 음악이 시대와 타협해 발맞추어가면서 '컨트리 팝'과 '컨트리 록'으로 크로스오버화한 것이다. 이는 한 상품의 ‘고객맞춤화’(Customerization)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한결 편하다. 또한 로레타 린(Loretta Lynn), 태미 와이네트(Tammy Wynette), 멀 해거드(Merle Haggard) 등 불세출의 컨트리 스타들이 나와 대중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컨트리 록의 대표적인 밴드인 이글스(Eagles)는 당시 잭슨 브라운이 작곡해준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로 최초의 히트 넘버를 기록했다.- 1980년대 이후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가스 브룩스(Garth Brooks)는 순수 컨트리에 팝과 록을 섞은 컨템포러리 컨트리(Contemporary Country)라는 새로운 장르로 미국 음악계의 Top으로 군림한다. 그를 비롯하여 남성위주의 컨템포러리 컨트리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중심을 여성들에게 이양, 팝과 컨트리의 경계를 오가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셔나이아 트웨인(Shania Twain)과 페이스 힐(Faith Hill) 두 여전사에게 위임한다. 이 두 여성은 이미 '그래미 시상식'을 통해 최고의 여성 컨트리 가수상을 한 번씩 나눠 가진 바 있다. 게다가 리앤 라임스(LeAnn Rimes)와 딕시 칙스(the Dixie Chicks)의 가세로 말미암아 지금 미국 컨트리 음악계는 '여가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3. 미국 컨트리 음악의 이해“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도시 중에서 바로 음악을 연상시키는 도시가 어디 있을까?”사람들은 먼저 뉴욕이나 시카고 등의 거대도시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 누구에게도 내시빌(Nashville)하면 '아, 컨트리 음악!'하며 바로 컨트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내시빌과 컨트리는 이제 같은 말이 되었다. 이 내시빌을 중심으로 확산된 컨트리 음악은 1980년대 초반에도 케니 로저스, 돌리 파튼, 에디 래비트, 알라바마 등이 활약하여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 근래에도 '컨트리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가스 브룩스, '컨트리의 스파이스 걸'격인 딕시 칙스 그리고 백스트리트 보이스보다도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수립한 샤니아 트웨인 등 슈퍼스타가 잇따라 출현해 컨트리 음악은 또다시 역사적 중흥기를 맞고 있다. 백인의 전통음악이라는 우월주의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잊혀지기도 했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 위력을 뽐내고 있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과거 화려했던 컨트리 음악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의 컨트리 음악은 예전에 있었던 윤항기의 '노래하는 곳에', 서수남 하청일의 '서울 구경‘ 등으로 이 노래들의 특징은 모두 미국 컨트리 송을 번안해 부른 노래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흐름이 끊이지 않을 것 같던 컨트리가 국내에서 맥이 끊긴 것은 1980년대 이후 헤비메탈과 랩의 강세 때문이었다. 기성세대로부터 신세대로 음악을 이해하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면서 컨트리 음악은 너무 미국적이며 기성세대의 케케묵은 소리라는 이유로 외면당하였다.
    예체능| 2005.12.03| 4페이지| 1,000원| 조회(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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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러시아 전제주의 평가C아쉬워요
    ‘러시아의 전제주의’에 관한 소고1. 러시아 전제주의의 배경나는 우선 러시아의 전제주의에 관한 속성을 고찰해 보기 전에 러시아가 전제주의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러시아 전제주의는 단일의 권력자가 국가의사의 형성 및 결정 과정에 일반국민들이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권력을 독점하는 특성을 띠고 있다. 러시아가 이러한 정치적 특성을 갖게 되기까지의 견해로는 모두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첫째로 ‘방대한 영토의 유지 및 관리’ 때문이다.방대하고 험난한 자연적 환경과 이로 인한 내적 통합의 필요성, 그리고 긴 국경선과 이로 인한 다양한 외부의 적에 대한 대비 필요성이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체제 탄생 및 이러한 정치권력에 의한 국민동원을 일상화시켰다. 그와 같은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모든 사회적 힘을 생존을 위한 투쟁에 집중하는, 따라서 개인보다 국가와 행정 관료가 우위에 서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또한 자연적 방어선이 없는 광활한 평야와 키예프 러시아 시대에 키예프시가 위치했던 드네프르강 유역은 바둑판처럼 이어진 강줄기로 인하여 외부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강력한 지배체제가 불가피하였다. 그리하여 러시아 민족은 영토의 광대함과 자연의 원시적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둘째로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수입된 비잔틴적 유산’ 때문이다.비잔틴 문화는 동로마 제국과 교류가 이루어지던 키예프 러시아 시대에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러시아에 수용되었는데, 비잔틴 문화가 러시아의 정치문화에 미친 가장 중요한 영향으로는 고대 로마시대의 절대주의 및 이에 수반한 중앙집중화 경향을 들 수 있다. 또한 비잔틴 문화의 주요 부분인 정교회는 러시아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정교회의 교리는 현세적 속박, 불만족 및 고통에 대한 인내와 복종을 강조하는 등 다른 형태의 기독교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숙명주의적 측면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정교회는 정치적으로 억압받아 온 러시아 국민들에게 정치적 권위에 대한 강한 복종심을 심어줌으로써 권위주의 정치문화 형성에 순기능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서양과 동양의 매개자 역할 및 사해동포주의적 성향 역시 비잔틴 문화가 러시아의 정치문화에 끼친 영향으로 지적되고 있다.셋째로 ‘역사적 통치 경험’ 때문이다.13세기 타타르(몽골)에 의해 정복되어 지배받게 된 이래 러시아는 늘 강력한 권력자에 의한 통치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키예프 러시아가 13세기부터 약 2세기 반에 걸쳐 타타르에 정복 지배당했던 경험은 러시아의 발전 경로와 정치문화에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큰 영향을 남겼다. 우선 타타르 침공으로 인한 완전한 파괴와 더불어, 몽골 통치 기간 중 러시아는 서유럽과 완전히 격리되어야 했는데, 이것이 러시아가 전근대적 상태에 머물게 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통치 면에서 타타르는 국가에 대한 개인의 절대 복종 및 엄격한 사회 규율을 요구하였는데, 이와 같은 엄격한 전제적 통치의 경험은 타타르의 통치가 와해된 이후 중앙집권적 전제와 관료제의 강화, 통치자에 대한 귀족 및 농민들의 완전한 복속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통치 체제와 전통이 제정 러시아말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심지어 제정러시아 시대에는 정교회마저도 짜르의 정치권력에 완전히 예속되었다고 한다.2. 러시아 전제주의의 속성러시아 전제주의는 비잔틴의 정치문화, 타타르족의 지배문화, 러시아의 광활한 지리적 속성에 따른 효율적 국토관리를 위하여, 구지배층인 귀족들의 통제를 위하여, 외세침략에 대비하고 제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영토 확장을 위하여, 근대화 및 개발을 위하여, 전통적인 정치문화적 분열의 억제를 위하여, 사회적 불만요소 억제를 위하여 사용됨에 따라 문화적 일반유형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러한 러시아 전제주의의 속성으로는,첫째, 1649년 알렉세이 로마노프 통치기에 알렉세이가 울로제니예 법전을 도입한 것을 들 수 있다. 1645년 알렉세이 로마노프의 아버지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사망하고 16살의 외아들 알렉세이가 왕위를 이어 받게 되었다. 그 당시 국내의 정국 혼란, 외국의 위협과 침략, 국가 재정의 고갈 등 여러 어려움을 아버지 대로부터 이어받았다. 그리고 알렉세이가 어린 나이였으므로 황제의 권위가 낮아지게 되자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법전을 편찬한다. 이는 곧 황제의 전제권을 강화시킬 목적인 것으로 추측된다.둘째, 농민의 국유화와 토지 사유제 제한이다. 미르는 공동으로 경작하여 공동으로 분배하고, 마을의 공동관심사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준 자율적 결사체이다. 타타르족의 입장에서 미르는 러시아인들로부터 누락 없이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효과적이었다. 한편 러시아인들은 미르제도에 익숙해짐에 따라 토지의 공개념과 분배의 평등사고를 자신들의 뇌리에 정착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곧 농민에 대한 구속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사유지가 제한되는 계기가 되었다.셋째, 사회주의라는 부산물을 낳았다. 사회주의가 러시아적 전유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초부터이다. 당시 러시아 지성들이 러시아의 진로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과정에서 "슬라브주의자들"(Slavophils)과 "서구주의자들"(Westernzers) 공히 러시아에 대한 애정과 러시아농민의 이상화 및 농촌공동체(mir)를 옹호하였다. 특히 농촌공동체를 제도적 측면에서 러시아사회의 건전한 기반으로 보고, 이를 사회건설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지성들의 농촌 및 미르의 예찬은 바로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것으로써 농촌에서 미르가 보여준 토지의 공동소유, 공동관리, 공동배분, 공동납세방식이며, 더욱이 자율적으로 무리 없이 협동적으로 관리되어온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러시아의 전제주의는 사회주의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넷째, 지주의 농노소유권을 영구화하였다. 전제체제 확립 목적의 뽀몌스찌예제제하에서 형성된 사회적 구조는 18세기 초 다음과 같은 형태를 이루었다. 상부구조 순으로 첫번째에는 귀족층이 자리 잡게 되었다. 과거에 귀족층이 정치력을 행사해 온 귀족회의인 젬스끼 싸보르)가 폐지됐다. 그리고 모든 귀족은 무위도식을 금하고 봉사책무를 지게 됐다. 이는 전제군주의 독주를 의미하며, 단일 구조적 체제하에 예속의 완성을 의미한다. 통치자의 자비에 의해 특별한 기능으로 국가에 봉사토록 창조된 하위귀족에 지나지 않았던 당시의 귀족층은 과거의 세습귀족과 맞먹는 토대를 마련했다. 즉, 이들 봉사귀족이 국가내의 주도적 지도역량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토지가 보상책으로 하사됐으며, 아울러 토지 소유도 세습형태로 바꾸었다. 이는 봉사귀족에 대한 이익을 보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농민에 대한 구속을 강화시켰다.다섯째, 교권을 약화시켰다. 1721년 총대주교직이 폐지된 후 대체된 신성종무회의(Holy Synod)는 과거의 총 주교들이 누렸던 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다 상실한 상태로 추락했다. 교회재산 관리, 특히 수도원들의 토지가 국가감독 하에 들게 됐으며, 성직자들의 교육훈련 개선 및 수도원의 성장억제, 그리고 기강회복이 이루어졌다. 이외에 교회의 사법권을 거의 다 박탈했으며, 유태교와 구교도(라스꼬리니끼)를 제외한 여러 비정교도들에 대한 관용도 신장됐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교권의 비정치화 및 완전 국가예속결과로 사회를 일원화했다는 것이다.여섯째, 상권을 국가가 장악하였다. 상인계층은 정부의 배려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켜줌에 따라 성장하였다. 상인들은 다른 자유인 계층과 균등화할 목적으로 군인들처럼 계급이 부여됐다. 자치수단을 가진 동업조합(guild)이 상인신분 부여와 상인들의 활동을 통제할 목적으로, 또 상인들과 국가간의 연계형성을 위해 재건되었다. 외국인들도 생산증대와 자원개발을 목적으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의 상업적 특징은 이익추구를 목표로 한 자유로운 사적 활동에 기초한 서구모델과는 달리 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사적 부문에 있어서의 발전배제결과가 국가의 발전과 속성을 결정짓게 하였다. 이것은 곧 상인계층도 전제국가의 제도권 내에서 수족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일곱째, 중산층이 사라지게 되었다. 서구와의 경쟁측면에서 러시아의 근대화 노선은 상당한 선택적 면모를 보였다. 뾰뜨르와 예까쩨리나하에서 추진된 제한적 산업화는 주로 정부의 후원과 군사적 필요성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구에서 경제발전과 결부된 기업적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도시 중산계층을 태동시키지 못했다. 뾰뜨르 이래 본격화된 근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도시화는 1796년 예까쩨리나 2세 통치기까지 급속도로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1796년의 농촌거주 인구는 여전히 95.9%를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중산층 결핍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문/어학| 2005.10.18| 4페이지| 1,000원| 조회(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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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블루오션 전략 평가A좋아요
    블루오션(Blue Ocean)전략저자 : 르네 마보안, 김위찬발행사항 : 교보문고, 2005형태사항 : Hardcover, 312p가격 : 17,000이 책의 저자인 김위찬과 르네 마보안 교수는 우리에게 블루오션이라는 화두를 던지기에 앞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제안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늘날의 산업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산업이 그 당시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가? 자동차, 음반, 항공, 석유화학과 같은 기본 산업조차 그때는 거론되지 않았거나 막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시계를 3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뮤추얼펀드, 휴대폰, 바이오테크, 소매 할인점, 특급 택배 서비스 등 오늘날 시장규모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신산업이 대거 등장했다. 그렇지만 당시에 이 산업들 가운데 큰 의미를 가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30년 후의 미래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현재 우리의 지식과 능력으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지나간 역사는 우리에게 앞으로도 다양한 신산업이 출현할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저자들은 기업이 이렇게 미래에 부상할 신시장을 포착하고 창조하기 위해서는 블루오션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 시장을 레드오션(Red Ocean)과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구성된 바다로 가정했다. 레드오션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산업을 뜻하며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시장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명확하게 그어진 산업간 경계 내에서 기업들이 경쟁자들로부터 서로 시장을 빼앗기 위해 유혈 경쟁을 벌이게 된다. 반면 블루오션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모든 산업을 나타내며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시장 공간이다. 따라서 게임의 규칙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블루오션에서는 새로운 수요 창출과 고수익 성장의 기회를 누가 먼저 발견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다.물론 이러한 블루오션이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기업혁신 전략, 산업구조 분석 등 이름만 달랐을 뿐 유사한 개념을 지향한 이론들은 존재했었다. 그러나 기존의 5 Forces 모델과 같은 방법론들은 레드오션 분석에 주로 유효한 것으로 기업들이 어떻게 블루오션을 창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제안하지는 못했다. 또한 대부분의 경쟁 전략들은 기업이 차별화나 저비용 가운데 하나만을 추구하도록 하여 현존하는 시장에서 창의적 경쟁 전략을 만들어 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저자들은 1980년부터 2000년까지 30개 이상 산업 분야에서 신제품과 서비스로 비약적인 신수요 창출에 성공한 150여 사례를 분석하여 기존 이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블루오션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분석적 툴과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전략 캔버스와 네 가지 액션 프레임워크가 바로 그것이다. 전략 캔버스는 블루오션 전략을 구축하기 위한 진단 도구로 가로축에는 업계가 경쟁하고 투자하는 요소 범위를, 세로축에는 구매자들이 느끼는 경쟁 요소들의 수준 정도를 표시하여 기업이 고객에게 제시하는 가치의 구조를 명확하게 나타낸다. 따라서 전략 캔버스는 경쟁자들이 지금 어디에 투자를 하고 있으며, 업계가 제품과 서비스, 유통에서 경쟁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기존 시장의 경쟁 상품으로부터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또한 저자들은 전략 캔버스를 그리는데 도움을 주는 네 가지 액션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네 가지 액션 프레임워크는 차별화와 저비용이라는 상쇄관계를 깨고 새로운 가치곡선을 창출하기 위해서 기업의 전략적 논리와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하는 네 가지 중요한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제거(Eliminate) : 업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요소들 가운데 제거할 요소는 무엇인가?-감소(Reduce) : 업계의 표준 이하로 내려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증가(Raise) : 업계의 표준 이상으로 올려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창조(Create) : 업계가 아직 한 번도 제공하지 못한 것 중 창조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제거와 감소에 관한 처음의 두 질문은 경쟁자에 비해 비용 구조를 낮추는 방법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마지막의 두 질문은 어떻게 구매자의 가치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심어준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이 총괄적으로 작용하면 기업은 비용 구조를 낮게 유지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구매자의 가치 요소를 재구축하는 방법을 찾을 수가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자사의 전략 캔버스에 이 네 가지 액션 프레임워크를 적용한다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가 있다.아울러 저자들은 이상에서 언급한 전략 캔버스와 네 가지 액션 프레임워크를 토대로 성공적인 블루오션 전략의 체계화를 위한 네 가지 원칙과 전략 실행을 위한 방법도 아울러 설명하고 있다.블루오션 전략의 첫 번째 원칙은 경쟁의 틀을 깨고 시장 경계선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시장의 경계를 재구축하기 위한 다음의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1) 대안 산업을 관찰하라 : 대안 산업은 기능과 형태는 다르나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산업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영화관과 레스토랑은 유사한 물리적 특성이 없고 기능도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이 영화관과 레스토랑에 가는 목적은 동일하다. 즉 저녁 외출을 즐기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안산업들 간의 영역에서 가치혁신의 계기가 종종 발견된다.2) 산업 내 전략적 그룹들을 관찰하라 : 유사한 전략을 추구하는 산업 내 기업들의 집단을 살펴봄으로써 블루오션이 열릴 수도 있다. 미국의 챔피언 엔터프라이즈는 주택 산업의 두 전략 그룹인 조립식 주택업체와 시공업체를 관찰함으로써 시공기간이 짧고 건설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새로운 조립식 주택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3) 구매자 체인을 관찰하라 : 어떤 구매자 집단을 목표로 할 것인가에 대한 도전이 새로운 블루오션의 발견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업들은 기존에 간과했던 구매자 그룹에 포커스를 맞추는 방향으로 가치곡선을 재설계함으로써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 노르디스크는 구매자 그룹을 그들의 전통적 고객인 의사에서 당뇨병 환자로 바꿈으로써 환자 스스로 인슐린을 투여할 수 있는 '노보펜'이라는 휴대용 인슐린 투약 카트리지시장을 창조했다.4) 보완적 제품과 서비스 상품을 관찰하라 : 아직 개척되지 않은 가치는 흔히 보완적 제품과 서비스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다. 영국인들이 차를 끓일 때 겪는 가장 큰 불편은 바로 수돗물에 들어 있는 석회를 떠 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필립스는 주전자보다는 물이라는 보완품에 주목했다. 주전자에서 물을 따를 때 석회질을 효과적으로 거르는 필터를 주전자 주둥이에 부착한다면 영국 고객들이 크게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필립스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5) 구매자에 대한 상품의 기능적 또는 감성적 매력 요소를 관찰하라 : 감성에 호소하는 기업들은 별다른 기능적 향상 없이 많은 부수적인 요소들을 제공하여 가격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부수적인 요소들을 없애거나 줄이면 고객들이 선호하는 간단하면서도 훨씬 가격이 싸고, 비용이 더 적게 드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반대로 기능에 호소하는 기업들은 일상 제품에 감성을 조금 추가함으로써 신선한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수요를 촉진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사례로 감성에 호소하는 화장품 업계에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화장품을 개발한 바디 샵, 반대로 기능성 저가 시계 산업에서 시계를 감성적 패션 도구로 전환한 스와치 등이 있다.6) 시간 흐름을 고찰하라 : 모든 산업 분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트렌드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트렌드를 제대로 된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블루오션 기회를 창출할 수가 있다. CNN은 세계화라는 큰 트렌드를 읽고 세계 최초로 24시간 뉴스 네트워크를 창조했다.블루오션 전략의 두 번째 원칙은 숫자가 아닌 큰 그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즉 기업의 전략을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하라는 얘기다. 물론 기업의 전략을 시각화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전략 캔버스라는 시각화 도구를 중심으로 전략 기획 프로세스를 수립하게 되면 회사와 경영진은 자신들의 주요 관심사를 큰 그림 위에서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아울러 전략의 시각화는 개별 사업부들과 본사와의 대화를 매우 원활하게 해 주고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으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더욱이 큰 그림은 최상의 전략적 실행이 다른 사업부 전체에 걸쳐 잘 전달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블루오션 전략의 세 번째 원칙은 비고객을 찾으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고객들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목표 고객을 정하고 그 고객들의 취향에 더욱 부합하는 상품의 세분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경쟁이 심화될수록 기업은 지나친 고객 세분화로 너무 적은 규모의 목표 시장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블루오션의 규모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과정을 취해야 한다. 현재의 고객보다는 비고객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고객들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구매자들이 가치를 두는 강력한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캘러웨이사는 초보자들도 골프공을 쉽게 맞출 수 있도록 헤드를 크게 디자인한 빅버사라는 골프채를 만들어 그 동안 비고객이었던 아마추어 골퍼들을 자사의 고객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독후감/창작| 2005.07.15| 5페이지| 1,500원| 조회(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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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요약] 나에겐 지금 결단이 필요하다
    나에겐 지금 결단이 필요하다「베텔스만 출판사」 2004. 10.○ 지은이 소개나이토 요시히토심리 컨설턴트이자 심리학 박사이다. 게이오대학 사회학연구대학원에서 설득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다. 심리학을 비롯하여 조직론, 경영관리론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이으며, 경영행동학학회, 일본사회심리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 , 외 다수가 있다.○ 옮긴이홍성민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교토 국제외국어센터에서 일본어과를 수료했다. 주요 번역서로는 , , , 외 다수가 있다.○ 목차1. 결단력이 생기는 생활습관01 우유부단함은 행운을 쫓는다02 '나는 우유부단하다'는 꼬리표를 붙이지 마라03 자신만의 '기본형'을 정해둔다04 두세 개로 범위를 한정해서 비교한다05 하기 싫은 것부터 끝내버린다06 분 단위의 행동 계획을 세우자07 고민 없이 몸치장을 하는 요령08 '새로운 문제'는 없다09 공통점을 '유추'하는 훈련을 하자2.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기술01 풀어야 할 문제를 적절하게 표현하라02 문제는 가능한 작게 분할해 본다03 시간이 절약되는 '스위스 치즈법'04 '문제 분석'을 해보자05 시각적으로 문제 파악을 하자06 자문자답으로 우유부단함을 없앤다07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08 망설여지면 '가정법'으로 생각해 본다3. 결정 속도를 높이는 기술01 직관적으로 선택한다02 선택의 폭을 좁힌다03 쇼핑은 카달로그나 인터넷으로04 결정이 망설여지면 10분동안 목욕을 하자05 단것을 섭취해서 결단력을 높이자06 '빨간색'을 보면서 속도를 높인다07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하도록 한다08 '선 자세'로 판단하자09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면서 결정하자4. 결단력 있는 사람은 이것이 다르다01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정답은 없다02 목표를 크게 세우고 나서 할 수 없다고 '변명'하지 말라03 몸을 움직여서 '싫어 병'을 고친다04 날마다 조금씩 정리한다05 아침형 인간이 되는 습관을 들이자06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요령07 어려운 일은 월요일에 끝내자08 불안을 없애면 결단력도 높아진다09 분석가 타입일수록 문제를 복잡하게 받아들인다10 '나는 만물 박사'라는 생각을 버린다11 자기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12 '과잉 학습'을 익히자13 이미지 훈련을 하자14 명확한 목표로 행동 계획을 세우자15 목표는 '단기'와 '장기' 두 가지를 세워둔다5. 절대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위한 기술01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결론을 선택한다02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03 결정의 이유를 목록으로 만든다04 정보는 전부 '동등하게' 중시한다05 결정을 분담하는 요령06 친구를 많이 만들자07 자신의 결정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자08 결정에 '책임'을 진다09 충분한 수면을 취한 후 결정하자6. 최고의 결정을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01 미련 없이 버린 아이디어에 최고의 결정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02 과거의 실패가 아닌 미래의 계획을 세우자03 일단 결정하면 후회하지 마라04 다르게 생각하면 길이 열린다05 실험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찾는다06 시행착오법으로 실험하자07 되도록 많은 해결법을 생각한다에필로그 - 최종 결정을 총점검하는 체크 리스트○ 나를 바꿀 수 있는 결단력 40선1. 라벨효과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으로써 항상 Repeat할 것. 꼬리표.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나는 항상 건강한 몸으로 유쾌한 생각을 하며 창의적인 사고로 행동할 것이다.2. 나만의 기본형을 갖추되 어떤 것이 기본형인지에 대한 고찰은 해야될 것 같다.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최선의 선택이 나에게는 반대로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의 입맛에 맞는 것을 빨리 찾는 것이 필요.3. 항상 하기 싫은 것부터 먼저 끝내며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려는 욕구를 참아라~!!‘이것만 끝내면 재밌는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로 바꿀 것~!!하기 싫은 일을 먼저 처리해두면 나중에 일이 편해지며 하기 싫은 것을 해결했다는 자신감이 들어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명심.4. 활동단위의 계획을 분 단위로 세워놓을 것. 할 것이 명확해진다.분단위로 행동하려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루고 시간에 민감해져야한다. 시간을 자주 보는 습관을 기르자.5.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과거의 해결법이 떠오를 것이다.6. 서로 관계없는 두 사물을 연결하는 훈련을 하면 머리가 유연해지고 유추능력이 높아진다.7. 문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게 되면 고민하고 있던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종이에 문제를 쓰면 문제의 심각성을 줄일 수 있다.8. 큰 문제를 작은 문제로 나누고 이것을 다시 쉬운 문제부터 푸는 연습을 하자.9. 문제를 되도록 작은 요소로 분해하고 그것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훈련을 해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훈련을 하면 문제의 핵을 발견하기 쉽다.10. 자문자답을 함으로써 생각보다 수월하게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해라. 가능한한 빨리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해가는 것이 중요하다.11. 어쩌면 결정은 꼭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주어도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되거나, ‘결정을 생략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더 좋은 방법’의 수단을 찾다 보면 누구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유부단함으로 고민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12. 망설여지면 자신의 가정법을 활용하여 행동지침을 정해라.13. 우리의 직관력은 모순된 정보나 데이터를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종합해서 결정을 내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결정이 가능하다.14. 심리학에서는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것을 ‘필터링’이라고 한다. 이 필터링을 함으로써 필터에 걸러 미리 선택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라.15. 단 것을 먹어 행복한 기분으로 결단력을 높이자. 조금이라도 판단이 망설여진다면 초코릿이라도 한 조각 먹어 행복한 기분을 갖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게된다. 머리의 회전이 둔해지면 커피나 우유에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것도 좋다.16. 빨간색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고 초록색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경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상에 빨간색의 종이나 시트를 붙이고 앉아서 일을 하면 같은 시간이라도 시간의 흐름이 빨라질 것이다.17. 결정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시간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정을 하지 못했다면 미련없이 다음으로 넘어간다. 여섯 시간 걸리는 일도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두 시간에 끝낼 수 있다.18. ‘선 자세’로 결정해라. 서 있으면 훨씬 빠르고 경쾌한 결정을 할 수 있다.19.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선택한 길이 최선이다’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신기하게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 ‘잘 되면 기쁠꺼야’, ‘이상의 일부라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 ‘실패하면 실망하겠지만 자신감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20. 목표를 크게 세우고 나서 할 수 없다고 변명하지 마라.사람들이 놀랄 만한 목표를 내세우는 것으로 자기 현시욕을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닌가~!!21. 귀차니즘이 기성을 부릴 때- 목덜미를 가볍게 두드린다- 스트레칭을 한다.- 팔을 살짝 꼬집어 본다.- 혀를 이로 씹듯이 천천히 눌러본다.22. 중요한 일이나 어려운 일은 한 주의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끝내버린다.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므로 긴장도가 높다. 따라서 일을 하는 데는 최적의 요일이다. 그런 중요한 날에다른 때에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나 청소를 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은 월요일날 끝내야 한다. 월요일에는 빡빡하게 일정을 잡고 주말로 갈수록 일정에 여유를 두는 계획이 심리적으로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월요일에 끝내야 되는 일을 주말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23. ‘과잉학습’을 익히자. 애써 외웠어도 그 방법이 어중간하면 8주후에는 완전히 잊어버린다. 해야한다면 철저하게 해라.24. 명확한 목표로 행동계획을 세우자.ex> 매일 퇴근 후 15분 안에 전문 서적을 50페이지씩 읽기 전에는 절대 식사를 하지 않는다.도저히 그 경우에는 그에 대한 벌칙을 마련해 두면 좋다. 벌칙이 없는 규칙은 쉽게 깨지지만 벌칙을 정해두면 쉽게 규칙을 지킬 수 있다.25. ‘단기’와 ‘장기’ 목표를 세워라. 또한 목표를 세웠다면 그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성취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자신의 성취도를 높이면 의욕도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다.26.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결론을 선택한다. 의식적으로 반대의 의견을 들어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왜곡된 결정을 내리게 되므로 주의하자.27. 일단 결정한 것을 의심함으로써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28. 결정을 내리는 것이 빠르긴 해도 늘 잘못된 결정이어서 후회를 하는 사람은 결정을 할 때에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목록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하면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도 줄어들 것이다.29. 정보와 자료를 꼼꼼히 모아놓았을 경우, 그것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들어온 최초의 자료를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전부 동등하게’ 중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처음 자료만으로 결정을 내리면 뜻하지 않은 함정에 빠지게 되므로 주의하자. 자료의 순서를 바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확인하면 다른 결론을 이끌 수도 있다.30. 업무를 할 때도 두 단계의 결정은 효과적이다. 초기 결정자와 최종 결정자를 다른 사람으로 해 두면 한쪽이 판단을 잘못해도 실수가 크게 경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 함정이 숨어 있다. 그때에는 최선의 결정을 했다 해도 나중에 커다란 과오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결정권을 두 사람이 갖는 것이다. 물론 그 책임은 정확히 분담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5.07.06| 6페이지| 1,000원| 조회(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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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관련] 디지털 영화의 정의와 나의 의견 평가D별로예요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광 수준은 아니지만 언론이나 이슈에 오른 영화들은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이다. 이런 영화들도 이제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였다. 아날로그 대 디지털로 전폭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영화장르의 한 켠을 차지해 가는 것이 기특하기만 하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디지털 영화에 대하여 조금 더 알고자 한다.디지털 영화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컴퓨터 그래픽의 3차원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영상 합성 기법을 이용해 영화의 모든 작업을 컴퓨터 시스템 내에서 처리하는 영화 기법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SFX(special effects)에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서 영화의 모든 시각적/청각적 요소가 컴퓨터를 통하여 디지털 부호로 전환하는 방식을 따르는 것으로, 영화의 모든 부분에 컴퓨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시스템이다. 촬영은 영상 획득이라는 개념으로 하며 컴퓨터 그래픽 기법을 사용한다. 최초의 디지털 영화는 1976년 존 길러민 감독의 킹콩이고,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한 것으로는 1982년 스티븐 리스버거 감독의 트론, 브레인 스톰, 최후의 우주 전사 등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디지털 영화를 설명하기엔 모호한 감이 있다. 디지털 영화라고 정의 내려진 분명한 개념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다만 몇 가지 점에서 디지털 영화의 정의를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제작, 배급, 상영 등 영화의 세 단계를 모두 디지털화한 영화가 있다. 시네포엠에서 상영한 세 편의 영화(‘커밍아웃’ ‘다찌마와 리’ ‘극단적 하루’)는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제작이나 배급, 상영 중에서 어떤 단계에서든지 한 단계라도 디지털 과정을 거친 영화가 있다. 디지털로 촬영하고 디지털 편집을 거치는 등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이루어지고, 다만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일반 아날로그 필름으로 바꾸는 과정만이 아날로그 영역에 속하는 영화가 여기에 속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다가 극장에서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눈물’이 있다. 또 디즈니사의 ‘토이 스토리’와 같은 영화는 실사의 촬영이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들이 ‘데이터 그 자체’인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완성된 영화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첫 번째는 좁은 의미에서, 두 번째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디지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영화에 대한 정의는 어떤 단계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피사체가 아날로그로 존재한다는 것 말고는 영화의 모든 과정이 디지털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로 보는 견해도 있고, “실사 촬영 없이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영화를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영화”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어떤 단계에서든 디지털 과정을 거친 영화라면 디지털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대표적인 디지털 영화제라고 할 수 있는 ‘레스페스트 디지털 영화제’의 경우 촬영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편집을 거친 영화, 즉 어떻게 찍었는가는 상관없이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어떻게 잘 살렸는가를 중심으로 디지털 영화를 선정한다.디지털 영화를 만드는 데 쓰이는 카메라를 보자. 일반 카메라는 빛을 이용해 필름에 아날로그 영상을 담는다. 디지털 카메라란 이와 달리 영상을 1과 0이라는 디지털 데이터로 메모리에 저장하는 카메라다. 디지털 카메라는 대물렌즈와 파인더(finder)에 들어오는 피사체의 아날로그 영상을 OCD(고체촬상소자)라는 첨 단 전자부품을 이용해 디지털 형태의 정보로 변환시키고 이를 하드디스크나 메모리카드, 메모리반도체 칩과 같은 저장매체에 기록 저장한다. 영상정보가 디지털신호로 기록되기 때문에 PC에서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간편하게 편집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얻어진 사진들을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간편하게 전송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는 정보화시대에 각광받는 첨단 기록전송매체로 떠오르고 있다."촬영 기간 동안 필름을 얼마나 쓸 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아날로그 영화보다 훨씬 더 빠르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조그마한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어색해 하던 배우들도 이젠 잘 적응했습니다." 누구나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왔다. 차세대 감독들은 값싸고 기동성 있는 디지털 영화에 부쩍 관심을 쏟는다. 그렇다면 왜 디지털 영화인가? 디지털 영화의 장점을 알아보자.첫째로 디지털 영화는 거대한 영화 제작비를 절감시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대안이다. 어른 손바닥만한 디지털 캠코더로 영화계의 모차르트가 탄생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카메라 장비, 필름값 등에서 절감되는 실제비용은 물론,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할 수 있는 용이한 편집, 간소화된 스텝진 등으로 전 체 제작비가 기존 35mm 영화에 비해 1/4정도의 수준( 예> 20억 : 5억)으로 절감된다. 이제 디지털 영화의 감독들은 필름을 얼마나 쓸지를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껏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두 번째, 디지털카메라는 가볍고 다루기가 쉬워 남녀노소를 망라하고 누구나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다. 작고 가벼운 카메라의 특성 때문에 기존의 거대한 35mm필름카메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다양한 화면과 움직임을 얻어낼 수 있다. 또한 영상이 디지털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에서 보다 용이하게 편집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디지털 영화는 인터넷 등의 기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손쉽게 디지털 영상을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극장을 통하지 않고도 인터넷 온라인상에서의 직접 상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관객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경로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독후감/창작| 2004.11.21| 3페이지| 1,000원| 조회(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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