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웰치의 < 끝없는 도전과 용기 >를 읽고...교수님의 권장도서로 잭 웰치의 ‘끝없는 도전과 용기’를 읽게 되었다. 어렵게 구한 책이니 만큼 꼼꼼히 읽어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장작 600page가 넘는 분량의 책이라 거부감도 느껴지고, 시험기간이 겹친터라 더욱 부담이 되었지만 한 장 한 장 읽어 나갈수록 점점 책에 빠져들고 있었다.이 책은 잭 웰치의 자서전이면서도 경영노트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여태껏 자라오면서 겪은 일들은 자세히 적어놓았고, 또한 그 일들을 자신의 경영에 미친 영향등을 비추어 적어놓았다. 자신이 20년전 GE에 발탁되어 GE를 물려받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자신의 후임CEO인 제프 이멜트를 발탁하기 까지의 자신의 일화를 경영과 연관시켜 적은 책이라 기존의 경영에 관한 책에 비해 이해하기 쉽고 소설처럼 읽어나가기 쉬워, 경영에 관심이 있거나 경영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이 책의 저자인 잭 웰치는 1935년 매사추세츠주 피바디에서 태어나 세일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960년 일리노이대학교에서 화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같은 해 제너럴일렉트릭(GE)에 입사해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경영방식으로 승진을 거듭해, 1981년 최연소로 GE 회장(최고경영자)이 되었다.이후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경영전략을 통해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함으로써 언론으로부터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6시그마·e비즈니스·세계화' 등의 전략으로 GE를 혁신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1년 말 현재 GE의 회사가치는 4500억 달러로, 이는 1981년 회장으로 부임할 당시의 120억 달러보다 40배나 늘어난 것으로, 세계 1위이다.이러한 경영능력으로 그는 2001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에 선정되었고, GE 역시 2000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다.2001년 9월 45세의 이멜트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할 때까지 총 1,700여 건에 달하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경영의 달인', '세기의 경영인' 등 많은 별칭으로 불리며, 퇴임 직후 자서전 《가슴으로부터의 고백 》을 출간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잭 월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로 번역 출간되었다.이런 잭웰치에게 어려서부터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그의 어머니이다. 그는 고등학교시절 하키선수로 생활하고 있었다. 매번 시합에서 쓴 패배를 맞고 절망하고 있을때 그의 어머니가 이런말을 했다.“이 바보같은 녀석아, 만일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너는 결코 멋지게 승리하는 방법 또한 알 수가 없을 거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넌 더 이상 경기를 할 자격이 없어.”이 한마디의 말로 인해 그는 승리의 기쁨과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자세의 중요함과 그리고 경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이것은 그가 성공하게 된 기본바탕이 되어주었다.그는 그렇게 어머니의 영향으로 학창시절을 마치고 사회인이 된 얼마후, 그의 인생의 절망의 순간이 찾아왔다. 전부터 심장질환으로 고통을 받으시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잭웰치는 심한 충격을 받았고, 힘겨운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일년후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심해 지병이 더욱 악화된 아버지의 죽음으로 또 한번의 충격을 받게되었다.그는 얼마후 본사로 들어가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게 되고 1981년 드디어 그는 CEO가 되었다. 그 당시 GE는 4십만 4천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토스터기의 판매 에서부터 핵 발전소에 이르기 까지 연간 150억 달러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잭은 GE가 쾌속정처럼 빠르고 활기가 넘치기를 바랬다. 또한 관료주의를 제거하고 현장과 CEO사무실 사이에 놓여있는 수많은 벽들을 허물기위해 노력했다.또 ‘1등 2등의 원칙’은 1983년 1월 그가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식사하던 도중 문득 스치고 지나간 아이디어를 냅킨에 그렸던 것이다. 그는 세개의 원을 그리고 각각에 핵심제조, 기술, 서비스라고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GE의 사업들을 그 원 안팎에 배치했는데 이것이 향후 GE의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실제로 이 책은 평이한 문체로 웰치 자신의 경험을 군더더기 없이, 그러면서도 생동감있게 서술하고 있다. 항상 딱딱한 연구보고서에서만 보아왔던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원칙들, 예를 들어 ‘중소기업처럼 움직이는 대기업’, ‘1등 아니면 2등의 원칙’, ‘벽 없는 조직’, ‘식스 시그마’ 등이 어떠한 맥락에서 어떤 사연을 겪으며 추진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어떤 사람이 실수를 했을 때 처벌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실수 때문에 매우 약해져 있는 순간에 더 큰 충격을 가하는 것은 누구에게도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수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격려와 자신감이다.그러나 이는 웰치가 항상 모든 것을 용서하는 자비로운 경영자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안아줄 때와 힘껏 걷어찰 때를 분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취임 초기부터 그는 ‘중성자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해고 전문가로 알려졌다. 그는 될성부른 인재에게는 끝없는 격려를 보내지만 한번 아니라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업이든 인력이든 용서없이 제거했다. 78년 소비재부문을 담당하고 있던 웰치는 크레딧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담당자들과 장시간 토론을 벌이던 중 한 보험관련 책임자에게 '임의보험과 약정보험의 차이를 설명해 보라'고 요구했다. 책임자는 몇분 동안 자신없는 목소리로 설명을 늘어놓다가 '내가 25년간 배운 것을 어떻게 5분 안에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가 이 사업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웰치는 자신의 역할이 커질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신했다. 그는 화공학박사학위를 받고 GE의 플라스틱 사업부에서 근무한 정통 엔지니어였다. 엔지니어로 일할 당시 웰치는 본사의 관료주의적 문화를 혐오했으며 가능한 한 본사로 옮기는 것을 미루었다.그러나 일단 본사로 옮겨가게 되자 그는 화공학 전문가에서 인간경영 전문가로 순식간에 탈바꿈했다. 초기에는 현장을 쫓아다니며 일선 노동자들과 격의없는 토론을 벌이는 현장형 경영자였으나, 시간이 흘러 본사에서 수십개의 사업을 한꺼번에 콘트롤하게 되자 더이상 이런 방식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유능한 인재를 발견하고 이들을 활용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그는 사업부의 존폐를 결정할 때 제품과 시장의 전망도 중시했으나 무엇보다 그 사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의 태도, 특히 열정을 중시했다. 열정이 없는 노동자들만큼 웰치를 실망시키는 것은 없었다. 전망이 좋아도 안일한 분위기에 빠진 사업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반면 쇠퇴 일로에 있는 사업이라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 사업부는 살아날 기회를 얻었다. 웰치는 원자로 사업을 퇴출시킬 생각을 가지고 사업부를 방문했으나 임직원들의 열정에 강한 인상을 받고, 대폭적인 인원정리와 설비감축, 신규 서비스 개발을 통해 이를 가장 성공적인 사업부의 하나로 만들어내기도 했다.그리고 RCA읜 인수로 인해 또 한번의 회사 발전의 도약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단계 한단계 회사는 발전되어 성공적으로 되어 가지만 웰치 자신의 사생활은 실패가 되어갔다. 그러던중 아내인 캐롤린과 이혼을 하게 되고 17살 연하인 제인과 만남을 갖게되고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그리고 많은 계획과 도전 그리고 성공을 하던중 2001년 3년을 주시해온 허니웰과의 합병을 실패하게된다.잭 웰치와 후계자 선정작업을 위해 소집된 이사회는 일반적 회사 승계 프로그램의 관행을 깨 버렸다. 앞으로 10년간의 전략적 비전 같은 것도 세우지 않았고, 후보자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들도 참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 살을 맞대고 '인간'을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오랜시간에 걸쳐 각 후보들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보냈다.잭 웰치는 이사들과 후보자들이 함께 어울 릴 수 있는 기회를 종종 마련했다. 그들과 함께 골프를 칠 때면 그들과 한 팀이 되거나 만찬 테이블 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지며 해마다 그들에 대한 기록을 작성해나갔다. 또한 웰치는 모든 후보자 들의 약점을 보완하고 잠재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노력했다.
1. 대표적인 수질오염 사례.1) 제임스강 오염- 1975년 미국 버지니아주 호프웰시에 있는 라이프 사이언스라는 살충제 공장에서는 매우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종업원의 절반 이상이 직업병에 걸리게 되었다. 두통, 시각장애, 간질환, 신경통, 그리고 임신이 불가능하게 되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을 대부분위 종업원들이 호소하였다. 보건 당국의 검사결과 이 공장에서 제조하는 키폰이라는 유독성 살충제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공장 측은 종업원과 그 가족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연방 환경처로부터 공장을 폐쇄하고 남아있던 모든 키폰의 판매를 금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폐쇄와 판매금지 명령으로 인하여 이 공장은 미국 최대의 한천 오염사건을 유발하게 되었다.연방환경처로부터 폐쇄명령을 받게 되자 공장측은 남아있던 유독성 살충제를 모두 하수구에 버렸던 것이다. 하수구에 버려진 살충제는 그 도시의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어 하수분해 미생물을 죽게 함으로써 더 이상 하수처리가 불가능 하게 만들어버렸다. 더욱이 하수와 함께 처리수의 수용 하천인 인근 제임스강으로 살충제가 흘러들었고, 이로 인해 하루 100킬로미터 구간은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으로 변하였다.이 사건으로 인해 제임스강의 물고기는 떼죽음을 당하였고 체사피크만의 굴은 위험한 해산물이 되었다. 현재 체사피크만은 워싱턴D.C와 볼티모어등 유역에 위치한 대도시에서 배출되는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로 인해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그 후 버지니아 주정부는 제임스강 160킬로미터에 걸쳐 낙시를 금지하고 여기서 잡힌 물고기를 취식하거나 판매하지 말 것을 명령하였다. 제임스강의 정화를 위해 연방환경처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분해되지 않는 화학물질인 키폰의 하천 바닥에 퇴적되어 지금도 퇴적물에서 검출되고 있다. 제임스강 으로부터 키폰이 유입된 하류지역은 하구로서 오랜 기간동안 정화되지 못하여 생물상의 피해가 극심했다.2) 과테말라 적조- 1987년 바닷물고기와 조개류를 먹은 주민 2외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보고 된 식수오염 피해이다. 또한 블루베이비는 도시보다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농촌에서 자주 발생한다.우리나라에서는 이 증상을 청색증이라 부르는데 최근 그 사례가 보고 되었다. 질산으로 오염된 식수용 지하수에 분유를 타서 유아에게 먹임으로써 나타난 경우이다.4) 베이몬트 댐사건- 1960년 가을 이탈리아의 베이온트에 높이 265미터의 인공 댐이 건설되었다. 이 댐은 계획 당시부터 건설지점 부근 사면의 거대한 바위에 대한 안전문제가 거론되었으나 무시된 채 그대로 완공되어 물을 가두기 시작하였다. 퇴적암과 석회암 지질로 이루어진 댐 부근 지대가 물에 잠기자 석회암층이 서서히 용해되면서 그 위에 놓였던 바위덩어리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결국 1960년 11월 산사태가 발생하여 다량의 토사가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1963년 8월과 9월 사이에 계속된 폭우로 댐수위가 상한선까지 올라가게 되자, 10월 9일 드디어 댐을 둘러싼 산비탈로부터 240만 입방미터에 상당하는 흙과 바위가 댐 내부로 무너져 내려 댐에 담겨진 물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댐하류에 자리한 모든 마을은 넘쳐흐르는 물에 잠기게 되었다. 이 사고는 댐 자체의 붕괴가 아니라 주변 지형의 산사태 발생으로 야기된 것이었다. 산사태로 인하여 넘쳐난 물에 잠겨 2,600여명이 사망하였다.5) 테임즈강의 100년- 영국은 근대 산업혁명이 처음 시작된 곳이니 만큼 환경오염 문제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이다. 영국의 테임즈강 유역에는 1800년대 초부터 철강, 석탄, 방직공업 등이 번창하였다. 이러한 산업의 영향으로 테임즈강은 심각하게 오염 되었으며 영국인이 즐겨 먹던 테임즈강의 연어는 1838년 무렵 사라졌다.그후 100년동안 영국에서는 테임즈 강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으나 세계진출과 산업팽창, 전쟁 등으로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동안 영국의 산업주의는 테임즈강을 더욱 시궁창으로 만들어갔다.2차대전 후 10년내에 런던 시민이 500만에서 800만으로 늘어에게 매우 유독하며 물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인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레만호의 물은 1950년대 초부터 점점 오염되어 갔으며 1950년대 말경에는 악취는 말할 것도 없고 생물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로 변하였다.한편 1950년 영국의 모그덴 하수처리장에서는 처리되지 않고 방류된 합성세제가 거품을 일으켜 인근 하천이 크게 오염되기도 하였으며, 1959년 독일에서는 갈수기에 정수장에서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수돗물에 흘러 들어간 합성세제로 인하여 수돗물이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1962년 스위스와 프랑스는 레만호의 오염방지를 위한 양국간 협정을 체결하여 오염배출원을 조사하기 시작하였으며, 행정적 규제를 양국 공동으로 실시하였다. 주요 오염원부터 우선적으로 폐수처리장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는데, 20년 동안 약 120개의 폐수처리장이 레만호 유역에 건설되어 대부분의 인이 제거되었다.20년에 걸친 이와 같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공동 노력에 힘입어 1970년대 말부터 레만호의 물은 맑아지기 시작해서 물고기가 다시 뛰노는 호수가 되었다.한편 경성제제에 의한 수질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정력은 더 우수하고 물 속에서 분해속도도 빠른 연성세제가 개발되었다. 각국에서는 합성세제의 연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독일은 1964년, 미국은 1965년, 영국은 1966년, 일본은 1975년부터, 그리고 우리 나라는 1980년 11월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다.그러나 합성세제의 연성화만으로 수질오염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며, 그 외에도 폴리인산염의 함량 등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수질오염을 더 적게 일으키는 세제의 개발뿐만 아니라 세제 사용량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것이다.8) 아모코카디즈 사건- 1978년 3월 16일 미국 아모코 석유회사 소유의 32톤급 유조선 아모코카디즈호가 160만 배럴의 중동산 원유를 만재하고 항해하던 중 프랑스 브리태니포트샬 연안에서 암초와 충돌하였다.선장의 실수로 일어난 이 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위스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음은 물론 인접 국가로부터의 지탄을 면치 못했다.10) 가네미유 사건- 가네미유 사건가네미 지방에서는 1968년 3월부터 여드름 형태의 피부병 환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어 이 지역 보건소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이 병은 가네미회사에서 제조 판매하고 있는 식용유를 사용한 음식을 먹은 사람들에게 발생하였음을 밝혀내게 되었다. 가네미회사는 식용유 제조시 가열 매체로 PCB를 사용했는데, 가열 파이프가 부식되어 PCB가 식용유 속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이 식용유가 튀김요리에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 것이었다.사건 발생 당시 환자들은 체중 1kg 당 매일 67㎍의 PCB를 섭취하였으며, 5개월 후에는 만성중독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간장애, 안지분비과다, 성장지연, 성욕감퇴, 내분비 장애, 말초신경 장애 등의 증상을 겪게 되었다. 그 수는 1만 4,000여명에 이르며, 그 중 1,068명은 증세가 심하여 특별한 치료가 요구되는 상태였다. 또한 이 지방의 닭 100만 마리가 가네미유가 함유된 먹이를 먹고 중독 되었으며 그 중 70만 마리가 죽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1972년에 PCB와 같이 자연환경에서 분해 되지 않고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특정 화학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법률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즉 특정화 학물질을 제조 또는 수입할 경우 법에 의해 특별히 관리하게 되었다.우리나라는 그동안 PCB의 우수한 절연성 때문에 변압기 및 전기제품에 많이 사용해왔다 -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고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 그러나 환경오염의 위험성 때문에 1983년부터 수입금지 조치를 취한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다.2. 대표적인 대기오염 사례.1) 로스앤젤레스 스모그.-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사막기후지대에 형성된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일반적으로 사막기후 지역에는 식수를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도시가 형성되지 않는다.그러나 1900년대 초부터 시작 인체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주요 실내공기 오염원으로는 냉, 난방기와 담배연기 등을 들 수 있다.냉방기에 서식하는 세균과 난방장치의 연소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아황산가스 등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담배연기의 유해성은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다.특히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입는 실내오염의 피해는 매우 크다. 1979년 미국 연방환경처는 워싱턴DC 에 거주하는 시민이 일상생활중 언제 공기오염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는가를 조사 발표하였다. 아침 저녂 대도시의 출퇴근 시간, 회사에서 근무할 때, 가정에서 쉬고 잠잘 때 등 하루종일 정밀한 공기오염 측정기를 휴대하며 자신이 숨쉬는 공기의 질을 조사하도록 해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가정의 주방에서 요리할 때 호흡기관이 가장 높은 공기오염에 노출된다는 것이 밝혀졌다.주방의 공기오염은 일반적인 대기오염 규제치를 넘어서, 만약 실회라면 법적규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것임이 드러났다. 물론 미국의 식생활이 우리의 식생활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3) Meuse Valley(벨기에, 1930년 12월)- 벨기에의 동쪽에 수도 리즈(Liege)시가 있고 그 옆을 뮤즈강이 흐른다. 이 강 유역의 100m 깊이의 계곡에는 24km에 걸쳐 코크스로, 용광로, 화력발전소, 유리공장, 석회로, 아연제련소, 황산공장, 비료공장 등이 건설되어 있었다.1930년 12월 1일부터 5일까지 벨기에 전국이 고기압 세력하에 있었고, 뮤즈강 유역은 짙은 안개가 끼고 지상 약 80m 전후의 역전층이 생성되었다. 공장의 굴뚝 높이는 대체로 50∼60m 이었으며 여기에서 배출된 연기가 뮤즈강 상류의 좁은 계곡에 흘러들어 오염공기는 높이 약 100m, 폭 약 1km, 길이 약 30km의 사이에 정체하였다. 이러한 이상 기상과 오염물질의 정체가 시작된지 3일째부터 지역주민 중에 호흡기 환자가 수없이 발생하고, 이 중 63명이 사망하였다. 환자수는 수천명에 달한 것으로 달려졌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