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성*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
검색어 입력폼
  • 천국의열쇠 평가A좋아요
    천국의 열쇠는 한명의 인간으로써, 고결한 신부로써 프랜치스 치셤 신부의 이야기이다. 항상 인간으로써의 갈등을 겪지만 신앙의 믿음으로 갈등을 이겨나간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무척 화가났을때등 한명의 인간으로써 좌절하고 괴로워하지만 신앙의 믿음으로 자신의 가장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치셤 신부를 보고 있자니 잔잔한 감동과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느껴야했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이 처럼 살 수가 있을까. 이렇게나 힘든 상황에서 겸허하고 청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끝없는 관용과 끝없는 사랑을 내가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까.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국 아름답게 늙은 치셤신부는 편견에 가득 차고 야망이 큰 슬리스 신부마저 굴복시키며 끝을 낸다. 한명의 평범한 인간이자 그 누구보다 천국에 가까이 사는 신부인 치셤 신부에게 찬사를 보낸다.치셤신부는 “세상에 종교는 많지만 진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무슨 종교를 믿든, 설사 선교사를 잡아먹는 식인종일지라도 자신의 양심에 깨끗한 삶을 산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도 하느님은 행위로써 사람을 판단하시면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나와 있다. 그는 홀로 중국 땅에서 선교를 하면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했다. 이웃에 대한 사랑, 버림받고 소외 받는 자 들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이야 말로 사회복지의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치셤신부의 탈 종교적세계관은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종교가 가르치는 범위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교회 안에서만이 아닌 밖에서도 많은 일들을 했다. 치셤신부님은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자신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요즘 많은 종교들이 사회복지에 참여하고 사회복지의 출발이 종교였다고 해도 자신의 영역 안에서 만의 역할이 많으며 자신의 종교가 가르치는 믿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역할이 미흡하다. 사회복지가 발전하려면 이런 탈 종교적세계관이 필요하다. 탈록의사는 자유사상가였다. 그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치셤신부님은 마리아 베로니카 수녀님과의 대화중 탈록의사에 대해 “그는 남을 도우면서...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처럼 죽어갔습니다.”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는 베로니카 수녀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 모두가 흔히 잊고있는 것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셨고 오늘날 교회 역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확고한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도! 불교도건 이슬람교도건, 도교의 신봉자이건... 선교사를 삼켜 버린 무지한 식인종이건... 그들은 자신의 양삼에 비추어 가책이 없는 진실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의 빛나는 자비입니다.” 이대목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이다. 자신의 종교만이 최고가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인정하며 독단에 빠지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서비스가 돌아가고 자신의 종교만이 아닌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든 서비스가 돌아가야 그것이 진정한 사회복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한일이 곧 내게 한 일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그 종교적 가르침대로 자신의 종교적 이웃만이 아닌 모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치셤신부님처럼 전염병이 도는 그 한가운데서 자신의 종교적 신자들이 아닌 다른 주민들에게 봉사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경건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돕는 모습에서 사회복지를 배우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으며 배움만이 아닌 실천의 중요함도 느꼈다. 과연 나는 이 사회복지를 배우면서 치셤신부님처럼 행동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치셤신부님의 그런 행동의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종교적인 믿음의 힘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사회복지에서도 아주 중요한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복지사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그런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보다 더 좋은 질의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탈 종교적세계관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 서비스의 질은 한층 더 양질의 서비스가 될 것이다.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독일의 침략으로 인해 국가간의 전쟁이 있을 때 수녀님들 간에 다툼이 있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읽을 때 과연 종교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전쟁은 종교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과연 그 전쟁을 옹호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종교까지도 전쟁에 이기기 위해 자국을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나라가 이기기를 위해 기도를 강요하는 모습....... 이 모습이 지금 사회복지현장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회복지 기관 중 많은 곳이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다. 그 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과연 같은 종교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까? 우리들은 그 기관에 속해 있다고 종교를 강요하고 있진 않을까?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의 자기결정권에 의해서 클라이언트는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믿고 따라야 한다.나이안 장군과 와이츄 병사들이 파이탄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 적군의 대포를 괴몰시키는 장면...... 여기에서 과연 그의 행동이 옳았는가? 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다. 종교적 가르침대로라면 살인은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소수의 나쁜 무리들을 죽이는 것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치셤신부님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된다.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그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평화를 되찾았다. 폴리아주머니도 치셤신부님에게 이렇게 애기한다. “누군가 저 성가신 걸 없애 버리다니 우리를 위해 매우 좋은 일을 해주었구나.” 사회복지활동을 할 때에도 이런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재일 중요한건 클라이언트의 생명과 안전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며 으뜸 되는 것 이라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시인 것 같다.치셤신부님이 산적이된 와이츄 병사들에게 끌려 감금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안나라는 소녀가 나온다. 치셤신부님이 처음 중국 땅에 와서 선교를 할 때 눈 속에 파묻혀 죽은 여인의 품안에 안겨져 있던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를 보고 치셤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 아기가 치셤신부님이 중국 땅에 도착한 이래 계속 꿈꿔왔던 고아원의 시초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안나라는 아이는 성당 안에서 자라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성당을 뛰쳐나가게 되고 와이츄 병사들이랑 같이 떠나게 된다. 그리고 치셤신부님이 감금되었을 때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치셤신부님을 도와서 그들을 탈출할 수 있겠금 해 준다. 치셤신부님은 어쩌면 안나라는 아이의 생명의 은인이며 또 길러주신 아버지이다. 그러나 안나는 그를 따르지 않고 와이츄 병사들이랑 떠난다. 사회복지활동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에게 개입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하는 만큼 모두 성과를 이룰
    사회과학| 2006.08.30| 4페이지| 2,000원| 조회(845)
    미리보기
  • [서양역사] 홀로코스트 평가C아쉬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600만의 유태인들을 학살한다. 홀로코스트... 600만의 유태인이 학살된 역사상 유례없는 범죄이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냐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한다.그동안의 홀로코스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히틀러 개인이나 SS같은 과격한 나치 핵심 단체와 히틀러를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이 행한 사실이라 믿었고 학계에서도 근본적으로 이러한 전재를 밑바탕화 시키고 연구를 하였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기 시작하고 ‘학살 집행자들 자체’에 대해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자세로 학살에 임했으며 그들은 그러한 범죄행위로 이끈 본질적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문제이다.이에 골드하겐은 ‘학살의 집행자’에게로 시선을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골드하겐은 기존 학설에 도전하고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들은 전부 틀렸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정책이 광신적 반유태주의에 물든 수많은 ‘평범함 독일인들’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집행되었다고 논한다. 즉 학살이 독일인의 일부가 아닌 전 독일인이 홀로코스트에 직ㆍ간접적으로 후원을 받으며 동참 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영화 뮤직박스에서의 라즐로처럼 평범한 독일인과 그의 친구들... 법정에서 나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며 헌신적으로 살아왔다고 외치는 모습...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로 살아가지만 과거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골드하겐의 주장과 맞물린다. 골드하겐의 주장은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다. 우선 미국에서 그의 논문이 출간되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다. 골드하겐의 태제는 절제 없는 일반화와 반유태주의 역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 유태인만을 대상으로한 그의 이론은 많은 허점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토론 현장에서 골드하겐은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미국뿐만이 아닌 독일 에서도 그는 청중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비록 허점이 많은 논문이긴 하지만 “도덕적으로 진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한다. 골드하겐 태제가 독일에 국가주의를 심어주는 발단이 되기도 하였지만 독일의 국가주의자, 보수주의자의 열망과는 달리 평범한 독일인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재조명, 하나의 도덕 교과서처럼 그들의 마음속에 파고들것이라 생각한다.골드하겐 논쟁과 영화 뮤직박스를 보면서 느낀점은 과거사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골드하겐 태제가 전독일인이 범죄에 참여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독일의 청중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 뮤직박스에서도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라즐로의 승리로 끝난 재판을 그의 변호를 맡았으며 그의 딸인 앤이 아버지를 전범으로 다시 신고하는 모습에서 과거의 일이지만 저것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며 양심이며 도덕적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앤이 자신의 아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설명하려는 모습에서 후세에도 올바른 역사의식과 진실을 전해주려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사회과학| 2005.03.10| 2페이지| 1,000원| 조회(451)
    미리보기
  • [문학] 지나간 슬픔이 강물이라면
    ≪감상문≫사회복지학과 3학년 19982634 홍 성 민이 시집에서 시인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다. “엉겅퀴꽃을 보러 숲에 갔다” “처음 느끼는 자유였다.”()여기에서 시인은 자연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 즉 자연 속에서 처음 느끼는 자유, 즉 자연 속에서 참된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닌자거북과 바이오맨을 모르는/마른 버짐의 아이들은”()여기에서 현대문명의 해택은 받지 못하지만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즉 현대문명에 찌든 도시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노래했다, 살아 있는 풍경을” “나는 숲 속에서 부끄러웠다”()여기에서 시인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우리가 파괴한 이 자연 속에서 그는 부끄러워하고 있다. ()에서 시인은 일상생활의 무료함과 반복되는 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문명이준 편안함에 얽매여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으며 도시의 갑갑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더 많은 그들은 쓰레기 더미 가에” “나는 그 집게입의 왕성한 노동을” “허겁지겁 걸어온 삶의 길 밖”()여기에서 이 세상을 쓰레기 더미라고 표현했다.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리지어 일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말하고 있으며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하는 이 세상에 대한 아픔과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몸부림이 느껴진다.()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의 먹이사슬과 같은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수갑 채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 “경종을 울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여기에서 시인은 시간에 쫓기어 사는 현대인들을 이야기한다. 시계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필수품이다. 시간에 맞추어 사는 현대인들의 감옥과 같은 생활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진정 어떤세상에 살고 있는가? 란 물음을 던진다. 그가 진정 바라는 세상은 “저 별 누가 끄리”() 꺼지지 않는 현대의 가로등불빛보다 반딧불의 불빛이 환해지는 세상, “조카녀석의 눈이 열려 있지 않아/아름다운 세상”()어린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순한 눈과 마음으로, “영혼의 잘못에 대해 난 자유롭고 싶어”()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고백하고 스스로 자유로워 질수 있는 세상, 즉 환경과 문명이 공유할 수 있는 세계를 그는 이야기 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5.03.10| 1페이지| 1,000원| 조회(278)
    미리보기
  • [종교와사회복지] 종교와사회복지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종교적 신념 중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사랑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사람을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중에서도 어린이, 천대 받는 자, 억압 당한 자, 고통을 받는 자들에게 보다 큰 사랑을 베푸셨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자기 앞으로 가까이 하셨고, 병자를 낫게 하셨으며, 굶주린 자들에게 음식을 주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특별한 사랑으로 죄인을 대하셨다. 예수님은 마치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듯이 죄인을 찾아 다니셨고 그들의 회개를 권유하셨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신 나머지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셨다. 성체성사로 가톨릭교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믿음, 희망, 사랑을 받고, 견진성사로는 신자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사람 앞에 증거하도록 이 세 가지 은혜를 받는다. 그러므로 가톨릭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할 의무를 지닌다. 믿음, 희망. 사랑, 이 셋 중에서도 사랑이 제일 크고 으뜸이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우리는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세상 마치는 날에 부활시킬 육체를 존중해야 한다. 각 사람의 몸과 생명은 다 하느님 앞에 귀중하므로, 우리는 나의 몸과 생명도 준중 해야 한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즉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 하느님께 사랑을 베푼 것 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회복지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그리스도 정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사회복지영역다. 사회복지제도 틀 내에서만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그러나 사회복지활동이라 규정할 수 있는 영역에서 가톨릭이 다양한 노력들을 전개해 온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어떤 가톨릭인은 사회복지사업에 일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적 정신에 정확히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지식과 기술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수준이 단순구호 및 수용에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발생된 사회적, 개인적 문제에 개개인의 사회복지서비스 욕구를 충족하는 단계가 됨으로써 사회복지계의 전문적 지식과 그 기술은 더욱 발전되고 있다. 가톨릭 사회복지종사자는, 그가 성직자이든 신자이든지 간에, 사회복지계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활용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비중을 덜 두는, 심지어 전문성이 없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도 사회사업은 할 수 있다는 경향이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사회과학| 2005.03.10| 2페이지| 1,500원| 조회(337)
    미리보기
  • [사회복지] 마음을 앓는 사람들 평가A좋아요
    “마음을 앓는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 이시가와 노부요시가 정신과 의사가 되면서 정신병원의 비참한 형태를 보고 느낌 점과 개선방향과 실천한 것들을 쓴 책이다. 그가 어릴 적에 보아온 뎃장, 나미상 즉 마음을 앓는 사람들, 미친 사람, 정신분열병 환자, 정신장애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역 내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며 주민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정신과 의사가 되어서 정신병원에서 본 현실은 그의 기억과는 너무나도 비참하게 달랐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뎃장과 나미상을 만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 본 정신병원을 ‘인간 창고’ 라고 표현했다. 그가 본 정신병원이란 병상수를 체우기에 급급했고 치료보다는 돈을 벌기위해 그들을 수용해 가둬 두는 병원이었다. 그들의 인권은 완전히 무시되었으며 ‘물건’ 정도로의 존재밖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들 편에서도 할 수 없이 물건이 되었다. 인간 창고라는 표현이 정말 적절하다 생각된다. 그는 처음 본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원이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잠기게 된다.1940년 일본은 빈곤대책으로 생활보호법이 제정됐고, 이것은 비용 면에서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용이하게 했다. 그 후 강제 입원사의 수가 증가했고 그 수요에 따라 정신병원이 각지에 생겨났다. 1965년 3월 24일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신분열병환자 청년에 의한 라이샤워 미국 대사 상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 대책을 놓고 소동이 벌어졌다. 정신질환자란 질병을 짊어진 사람이므로 어떻게 치료하며 어떻게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이 사건을 계기로 논의되었어야 마땅하나 치료보다는 치안에 편중했고 오로지 그 단속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1966년 정신위생법이 개정되었으며 그것은 어떻게 정신질환자를 예방적, 합법적으로 정신병원에 가두어 넣을 것인가 하는 개정이었다. 병원은 신설되면 병상을 메우기 위한 ‘환자 줍기’를 위해 일찍이 마을에 살면서 평온하게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들 까지 모조리 정신병원 의한 병원을 세우도록 했다. 그로인해 치료를 위한 병원인지 격리를 위한 수용소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정신병원들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급증하는 정신병원 수에 의료관계자의 수가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 일본정부는 ‘정신과 특례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었다. 이는 ‘일반병원보다 정신병원은 의사나 간호사 수가 적어도 괜찮다.’라는 법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치료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정신병원의 의료비를 낮게 억제한 것이 정신병원은 병원 아닌 수용소가 되게끔 만들어졌다. 환자가 200명이나 되는 병원에 상근하는 의사가 한 명 있을까 말까했으며, 환자가 의사를 면접할 수 있는 기회도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병원도 드물지 않다. 피해를 보는 것은 주체라 할 수 있는 환자들이다.1964년 이사가와 노부요시는 마츠자와 도립병원에 부임한다. 마츠자와병원은 100년의 역사와 일본정신의료를 선도해 왔던 병원이다. 양심적인 병원이었으며 공립병원이므로 이윤추구의 폐단도 없었지만 ‘환자에게는 좋은 병원은 아니었다’ 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병동의 자물쇠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자물쇠라는 강력한 무기로 환자의 자유를 몰수하고 시키는 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자유를 돌려주지 않는다. 환자는 단념하고 스스로의 망상의 세계로 잠겨 든다. 환자는 누구나 한구석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그것을 키워주지 못하고 병적인 것만 보고 그것을 환자에게 지적해주면서 자물쇠 안에 머물도록 납득시킨다. 이때 그는 왜 그들이 억압받지 않는 날들을 보낼 수 있게 하고, 마침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하는가? 나는 그들을 어둡게 하며, 그들의 마음을 병적인 저편으로 밀어 보내고 있다. 왜 이렇게 되는가? 그것은 자물쇠 탓이었다. 그는 자물쇠와 쇠창살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장기입원환자는 ‘생활요법’이라는 이름의 집단치료 체제에 의하여 길들여져 버린다. 매일 똑같은 작업의 되풀이……. 작업이건 놀이건, 같은 짓을 매일 계속한살과 자물쇠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쇠창살과 자물쇠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생활, 같은 얼굴 속에서 처음에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군대역시 인권이란 것이 무시되는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정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거기다가 구타와 욕설에 처음에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하지만 시간에 지남에 따라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위치가 변함에 따라 조금 자유로워져서 견딜 수 있다. 군 생활 2년의 기간 동안 이등병만 하라고 한다면 60만 대군이라는 대한민국 군인중 10%정도는 미쳐버리지 않을까?? 나만의 생각을 해본다. 군대라는 곳에서도 재대 할쯤이면 사회적응 프로그램으로 1달 정도 교육을 받는다. 2년 2개월이라는 군 생활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진 정상인도 그러한데 정신장애인들은 더욱더 사회적응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군대라는 곳은 적응하기 나름이지만 환자들은 적응이 아니라 치료를 해야 한다. 매일 구슬 꿰는 것이 생활요법이라면 그것은 치료가 아니라 하나의 로봇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정상인도 견디기 힘든 구타와 욕설 감금을 환자들에게 한다면 그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병을 더 키우는 것이다.1985년 3월 14일, 도치기 현의 우쯔노미야병원에서 한 환자가 준 간호사, 간호조수 등 네 명에 의해 타살되었다. 식사 때 “식사가 맛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다”라고 대꾸한 것이 그를 죽음으로 가게 만들었다. 병원에서는 가짜 진단서를 꾸며서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매스컴에 의하여 밝혀졌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이가 없었으며 화가 났다. 어떻게 한 인간이 인간을 그것도 다른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구타를 하면서 죽음으로 몰고 갈수 있었는지 안타깝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찌노미야사건은 일본 정신의료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정신의료 상황에 대해 국내외로부터 일제히 비판의 불길이 솟았기 때문이다.1969년 5월, 이시가와 노부요시는 그와 를 채우지 않기로 했다. 그의 병원의 토대는 ‘전면 개방’이었다. 그것이 언제나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쇠창살이 철거 되었다. 그렇기 되기까지는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종래의 정신병원에서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제한과 규칙과 금지조항은 거의 다 폐지했다. 음주, 도박, 매춘 이외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병동구조도 바뀌었다. 환자들이 즐길 수 있고 마음편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밝게 바뀌었다. 자물쇠를 열어젖뜨리고 규칙을 없애고 보니 환자가 변했다. 배회환자, 충동행위등이 감소했으며 지금까지 질병 탓으로 여기던 이상행동 중 많은 것이 ‘구금에 의한 인공적 산물’이었음이 판명 됐다. 자물쇠와 쇠창살에 얽매였던 사람은 환자만이 아니라 치료자들 역시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지배가 아니라 지원의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치료활동으로는 생활요법을 부정하며 ‘환자 개개인에게 알맞은 치료를, 실제 활동의 장으로서, 공통의 과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소집단 활동을’방향으로 정했다. 그는 ‘외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사회생활’이 그들을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치료의 강력한 무기인 것을 알았다. 이러한 생각의 구체적 방법으로 공동주거를 만들었다. 처음에 시도해서 실패하였지만 다시 시도하였다. 병원 내부에 일당동이라는 공동작업장을 만들어서 낮에는 공동작업장에서 일을하고 공동주거로 돌아가는방법이다. 경제적으로 타산이 전혀 맞지 않았으며 70년대 후반부터 의료비 억제 정책이 강화되고 1983년 입원환자의 외박에는 그 입원비를 대폭 삭감한다. 퇴원 후에 일상가료를 계속했던 재입원자는 신규입원자로 인정치 않는다. 법률개정이후 환자를 외박시키는 것이 조기태원을 위한 유력한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외박시키지 않은 병원의 환자 외박은 더욱더 금지되게 되었을 것 이다. 1984년 병원 내에 있는 일당동을 지역으로 이전하려고 했다. 공동작업장이란 원래 지역에 사는 환자들이 다니는 곳이므로 그것은 병원 안이 아니라 거리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쉽게 빌릴 수 있었다. 주민들이 그들의 생활상을 직접 목격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주민 측의 불안감도 적어졌기 때문이다. 공동작업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곳은 우선 환자들을 한 사람 몫의 인간으로 만들어 다시 사회로 내보내는 교량과 같은 장소가 된다. 설사 완벽하게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재발병, 재입원을 방지하는 방파제가 된다. 병원 근처의 마을 사람들에게 정신분열증 환자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고 그들 역시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병원 자체에서 개방된 축제를 열었고 나중에는 그 축제를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로 만들었다. 이렇게 그는 환자를 지역사회로 돌려보냈다. 마치 자신 어릴 적의 나미상과 뎃장이 그러했듯 자신이 돌본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지낼 수 있도록 거주지도 마련해 주고 공동 작업장을 마련하여 취업을 돕는 동시에 스스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면서 경제난도 해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회의 제도나 행정 당국이 그를 돕지 않고, 일본의 정신병원이 보다 인간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돕지 않았다. 그는 어려워도 지역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후원자를 모아 환자들을 계속 지역사회로 내보내 마을에서 살도록 했다.프랑스는 17,8세기에 근대국가의 형성,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많은 농민이 빈곤노동자가 되어 많은 실직자와 낙오자들이 발생했다. 1860년에 파리는 대대적이 개혁으로 정신병원 정비계획으로 11개 수용소가 설립되었다. 이것이 근대적 정신병원의 탄생이다. 근대국가의 강력하고 조직적인 권력으로 국가질서유지의 일환으로 정신병원이 생겨난 것이다. 정신병원 성립역사를 보면 국가의 편법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영국, 미국 다 마찬가지이다. 가장 먼저 정신병원의 개혁에 나선 나라는 영국이다. 병원의 병상수를 축소하고 환자를 사회에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를 기점으로 1960년대 이후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북구 여러 나라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병원 폐쇄를 지양하며 지역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있다.
    사회과학| 2005.03.10| 4페이지| 2,000원| 조회(1,23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4
14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5
  • A좋아요
    5
  • B괜찮아요
    3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3월 25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24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