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 성공신화를 이룬CEO송승환의마케팅 및 경영전략예술경영 성공사례 : 난타Background:예술경영의 성공사례란 주제를 생각하다 근래 보기 드물게 혁신적인 사고와 진취적 자세로 세계를 놀라게한 난타를 떠올려보았다.국내 및 세계적으로도 최초란 타이틀을 수없이 달성했던 자랑스런 국산 문화예술 난타!난타의 성공적 요인과 그 성공 뒷면에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대표주자인 CEO 송승환씨의 갖은 역경속에 꽃을 피운 성공적인 마케팅 및 경영전략들을 알아보고자 한다.지난 9월25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작 문화상품 「난타」가 「쿠킨(COOKI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아시아 최초의 브로드웨이 진출작에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현지의 유수 언론은 "GREAT!”라는 호평을 내놓았고, 공연은 전회매진이라는 기록을 낳고 있다. 도대체 어떤 공연이기에 '꿈의 무대'라는 브로드웨이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을까.1997년 호암아트홀에서 첫 선을 보인 「난타」는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드라마化 한 우리나라 최초의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로, 99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참가를 계기로 지금까지 세계 20여 개국을 다니며 총 3,500여회 이상 공연을 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장기 공연, 국내 최다 관객 동원, 세계 최초의 단일도시 2개 이상의 전용관 확보, 창작공연 최초의 '플레이빌'(브로드웨이의 공연안내 팜플렛) 게재 등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난타」의 화려한 기록 뒤에는 대형주방을 무대로 요리사가 등장하여 각종 주방기구 즉 냄비, 후라이팬, 접시 등을 가지고 사물놀이를 연주한다는 독특한 발상부터 국내 최초의 전용상설극장 운영이나 외국인을 위한 관광상품으로 공연을 포지셔닝한다는 전략을 만들어낸 '문화CEO 송승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송승환씨는 국내의 냉혹한 문화예술 지원 및 환경에 여지없이 칼바람을 맞아야만 했다. 한편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려야만 했고,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커도 그는 그가 생각하지 않았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그 무엇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다는 힘으로 버티었지만 시장은 냉혹했다. 작품의 완성도는 별개로 치더라도 작품 하나를 끝낼 때마다 빚을 갚기 위해 허덕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했다.그 당시로는 국내 뮤지컬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고래사냥」이후 송승환씨는 안정적인 제작시스템과 새로운 시장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우선 그는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극단을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였다. 안정적인 자본과 우수인력의 확보를 위해 문화산업을 시장의 논리에 맞춰나갔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예술가가 예술 본연의 업무를 하기 위해 회계, 홍보, 인력확보 등 주변 업무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으로 미국, 영국 등 문화산업 선진국의 경우 보편화된 방법이었다. 하지만 주식회사 전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대형 뮤지컬의 제작비를 회수할만한 시장이 없다'는 '시장의 한계'는 '자본의 한계'보다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흔히 인구 1억 명,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시장규모가 되어야 공연산업이 발전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내 시장이 좁다고 해서 인구가 늘어나고 국민소득이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돌파구는 '해외시장'이었다. 그러나 해외시장 개척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언어'의 문제가 가장 큰 장벽이었다. 송승환씨는 이 장벽을 '넌버벌 퍼포먼스', 즉 비언어극에서 찾았었다. 게다가 97년 초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스텀프」, 「탭 덕스」등 넌버벌 퍼포먼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는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타당한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처음 한국을 알게 된 외국인에게 청국장과 김치의 맛을 강요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global하게 통용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넌버벌 퍼포먼스「난타」 탄생의 시작이었다.송승환씨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소리가 가장 많이 나는 공간을 찾았었다. 부엌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드릴 것도 많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드라마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리듬은? 사물놀이라는 답이 떠올랐다. 하지만 공간과 리듬의 2가지 요소만으로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벤치마킹이 이어졌다. 뉴욕의 대표적인 비언어극들은 관람하고 분석했다. 이 과정은 난타만의 차별화를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제작과정에 들어가면서 난점(難點)은 곳곳에서 등장했다. 대본이 없기 때문에 반복되는 시행착오, 체력소모가 엄청나면서도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공연을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의 캐스팅, 소음 항의를 피하기 위한 한밤의 연습까지 각양각색의 문제들과 부딪쳤다. 도처에서 등장한 문제점들을 제작자 송승환씨는 본인의 경험(연기와 연출)과 신념,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과 보람으로 극복해갔다.「난타」는 배우들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새로운 아니 생소한 장르였다. 그 뿐 아니라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만 등장하고, 유명 대본을 바탕으로 하지도 않아 흥행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였다. 첫 공연한 극장측도 대본 없는 연극을 탐탁치 않아했다. 무언가 기존 연극과 다른 마케팅이 필요했다. 97년은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PC 통신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송승환씨는 각 통신사의 연극동호회를 중심으로 입소문, 즉 구전마케팅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난타」를 본 동호회원들이 '열렬 홍보요원'이 된 것이다. 독특한 마케팅은 곳곳에서 전개되었다. 보통 극장들이 출입구 앞에 '휴대폰을 끄십시오'라거나 '음식물 반입 금지' 같은 경고문을 붙이는 데 반해 「난타」는 '휴대폰은 끄지 마세요', '음식물 가지고 들어가셔도 됩니다’라는 문구를 내붙였다. 요리를 소재로 소리가 난무하는 공연의 특성을 살린 전략이었다.국내 공연의 성공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런던의 유명 프로듀서는 도대체 한국에서도 연극을 하냐고 물었고 ‘남한, 북한, 판문점’이 한국에 대해 아는 전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공연의 질을 따지기 이전에 '한국'의 국가이미지가 큰 장벽이 되었다. 게다가 이전까지 송승환씨는 공연물을 해외 시장에 팔아본 적이 없었다. 글로벌 에이전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브로드웨이의 작품을 아시아에 공급하는 '브로드웨이 아시아’社였다. '브로드웨이 아시아’社는 계약조건에 세계적인 연극제에 출품해 작품성을 인정받아야 하고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지정 연출자를 통해 작품을 수정해야한다는 조항을 내걸었다. 송승환씨는 연출자, 마술사, 코미디언 등을 초청했고,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연출료, 항공료, 숙박비 등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심은 씨앗은 커다란 열매가 되었다.Marketing:에딘버러 페스티벌은 1948년 시작된 세계 최고의 연극제이다. 그런데 이 연극제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연극 축제 일 뿐만 아니라 새로 탄생한 신작들을 사고파는 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아시아’社와 송승환씨는 이런 에딘버러 페스티벌을 「난타」를 세계에 선보일 무대로 선택했다. 그런나 3억 원이나 되는 경비마련이 쉽지 않았다. 결국 공동대표의 추가 대출금과 친구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까지 동원하였다. 에든버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제작자로서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과감한 배팅을 했다.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든버러에서 '브로드웨이 아시아’社 덕분에 좋은 극장과 좋은 공연시간은 확보했지만 빠듯한 예산으로는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이때 송승환씨는 배고픈 연극인 출신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십분 활용한다. 포스터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 가는 곳마다 나눠준 것이다. 가능한 길거리에도 많은 포스터를 붙였다. 게다가 빨간색 바탕에 요리사 복장을 한 동양인 네 명이 식칼을 두 자루씩 들고 있는 포스터 내용까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너무나 보편적이고 당연한 마케팅으로 「난타」는 9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최고의 작품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기회포착'.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송승환씨는 본 공연에 앞서 언론사 인터뷰를 홍보의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스태프들이 말없이 무대 위에 채소를 수북이 쌓아두고 뒤이어 배우들이 괴성을 지르며 등장해 굿거리장단에 맞춰 도마질을 한 것이다. 독특한 인터뷰는 언론을 「난타」의 사진을 도배하도록 만들었고 세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에서 온 작품이라는 단점은 희소성으로 극복했다. 이는 본 공연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브로드웨이 입성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디자인경영 핵심 포인트와기업 성공 사례 및우리의 나아갈 길LG주간경제에 기제되었던 강승훈씨의 디자인경영핵심포인트란 글을 보고 디자인경영 핵심포인트와 그에 맞는 기업 성공 사례를 보면서 글로벌적인 디자인경영 추세와 국내의 디자인경영마인드의 실정 또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고 젊은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제품 선택 기준이 품질이나 가격이 아닌 디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온지도 이미 오래됐으며. 또한 뿐만아니라 최근 '몸짱', '얼짱'신드롬으로 대표되는소비자의 미적 만족 추구 경향은 디자인이 더욱 중요한 경쟁요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한 마디로 21세기는 디자인이 주도하는 시대라고 말한다.그럼 이런 디자인이 주도하는 시대에 디자인 수준을 질적, 양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전략 즉 핵심포인트는 무엇인가? 저자는 5가지 포인트를 제안한다.첫째 "디자인 부서가 개발을 주도하라"둘째 "디자인 경영을 Value Chain 전분야로 확장하라"세째 "자기 회사만의 '디자인언어'를 만들어라"네째 "트렌드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추구하라"다섯째 "디자인에 문화적 요소를 반영하라"먼저 최근에 해외 바이어들이 본 우리 기업들의 디자인 경쟁력을 선진국과 비교한 비교수치에 의하면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서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우리 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을 100으로 놓고 비교해 보았을 때, 일본 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은 136, 유럽과 미국 기업의 디자인 경쟁력은 각각 122, 121로 아직까지 우리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디자인 경쟁력 수준은 일본의 디자인 경쟁력의 74% 수준에 지나지 않을 뿐만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경쟁자들인 대만(109) 및 홍콩(104)에 비해서도 미흡한 것으로 연구 결과에서 나타났다.최근 디자인 경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위기 요인은 중국과의 디자인 경쟁력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원가 경쟁력에 기반을 두고 맹렬한 기세로 우리의 시장을 잠식해 오고 있는 중국 제품이 디자인에서 마저도 우리 제품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을 100으로 환산해 비교했을 때, 중국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은 ’97년 82, ’02년 95로 그 격차가 눈에 띠게 줄어들고 있다. 이미 중국 제품에 대하여 원가 경쟁력을 상실한상황에서 디자인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디자인 경쟁력 수준은 따라잡아야 할 상대는 아직도 멀리 있는데 쫓아오는 상대는 바로 등 뒤에까지 따라 붙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그럼 디자인경영 핵심포인트 첫 번째 “디자인부서가 개발을 주도하라”에 대해서 보면 경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디자인을 제품전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즉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인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산출해 내고 그에 따라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현재의 시장조사, 제품기획, R&D/디자인,생산의 순서로 이어지는 선형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 디자인은 언제나‘主’가 아닌‘從’이 될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이후에 기술 및 생산부문이 적극적으로 디자인을 뒷받침해 주는 프로세스를 확립하는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디자인 주도의 제품 개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전문가를 중심으로 시장조사, R&D, 생산 등 제품 개발의 주무부서들 간의 의사소통 및 협조가 긴밀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며 또한 디자이너들의 마케팅 및 기술적 역량 제고가 필수적이다. 성공적인 디자인주도 제품 개발의 예로서 유럽의 Home Theater 및 오디오 생산업체인 B&O(Bang & Olufsen)사의 경우를 보면 디자인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이 회사는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Idealand’라는 디자인 부서의 아이디어를 출발점으로 삼으며 기술 및 마케팅 부서는 디자인부서의 아이디어를 제품화 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모으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고 한다.이 회사의 제품 개발 전 프로세스는 디자인전문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하며. 특히 디자이너들 대부분이 디자인은 물론마케팅이나 기술적 측면의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여러 부서가 개입된 복잡한 개발 프로세스를 관리 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고 한다. 한마디로B&O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마케팅, 생산,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개발 프로세스를 보유한 것이다. 이 회사는 이렇듯 디자인 주도의 독특한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는데성공함으로써, 90년대 초반의 위기를 극복하고높은 성과를 창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Home Theater 와 오디오 부문에서 앞선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두 번째 "디자인 경영을 Value Chain 전분야로 확장하라"는 총체적인 의미에서 ‘디자인에 앞선 기업’이 되기위해서는 디자인 경영을 기업의 Value Chain 전반으로 확장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디자인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기업의 경영활동 전반에서 디자인을 읽고 있는데 제품 개발시에만 디자인 개념을 적용한다면 소비자들로부터 디자인에 앞선 기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한 예로 아름답게 디자인 된 제품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미적인 측면에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제품을 최초로 접하게 되는 광고부터, 매장 진열 양식, 판매직원의 복장과 태도, 심지어는 입주한 건물의 외양까지도 디자인이 강조되어야 한다. 실제로Microsoft 사나 GE 같은 글로벌 일류 기업들은IR활동을 위한 Annual Report의 디자인까지도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렇듯Value Chain 전반에 걸친 디자인 경영을 통해서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미적으로 까다로워진 소비자들은 이때야 비로소 그 기업의 디자인 수준을 인정하려 할 것이다.‘아름답지 않은 제품에는 소니 마크를 붙일수 없다’라고 단언할 만큼 디자인을 중시하고 있는 소니사의 경우, 제품디자인은 물론, 직영매장과 온라인쇼핑몰의 디자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소니 스타일’이란 이름의 직영매장의 제품 진열은첨단 기술과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 직영매장은 세련된 색상 배치와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통해 일반 적인 전자 제품의 매장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어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세 번째로 "자기 회사만의 '디자인언어'를 만들어라"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쟁자와 차별화 될 수 있는디자인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제품 디자인 전반에 일관된 메시지, 즉 자기만의 ‘디자인언어’를 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자인 언어가 브랜드의 의미 및 철학과 연계될 때, 상호간 시너지 효과로 제품 디자인 및 브랜드 가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자기만의 일관된 디자인 언어는 제품 및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높여주며, 브랜드 정체성의 확립에 기여하는 것이다.디자인 언어는 기업과 제품이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가치를 표현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기업은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 제품에 디자인 언어를 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하여 바람직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표현하고 전달해야 한다. 과거, 상자 모양의 각진 스타일의 승용차 디자인을 고수하던 볼보(Volvo) 자동차는 90년대초반 판매량이 감소하자 제품 디자인이 시대의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이른바 ‘reVOLVOlution’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에 있어 과감히 과거의 스타일을 탈피하여 곡선을 가미한 신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변신의 과정에서도 볼보사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인 ‘안전’, 즉 ‘Safety for Life’라는 볼보 고유의 디자인 언어를 일관되게 디자인에 적용하였다. 그 결과 ’98년 개발된 새 모델인 S80은 과 거보다 훨씬 세련된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안전과 관련된 디자인 요소만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예컨대 회사의 브랜드를 표현하면서 차체를 강하게 하는 V자 형의 보닛이나, 충격에 강하게 설계된옆선의 모양 등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 모델은 제품 디자인의 혁신과 안전으로 대표되는 브랜드 이미지의 강화라는 두 가지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여 시장과 소비자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음은 물론 회사 재도약의 발판이되었다.네 번째 "트렌드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추구하라"는 제품수명주기가 짧아진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를거두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디자인(Trend-Driven Design)을 뛰어 넘어 트렌드를주도하는 디자인(Trend-Driving Design)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해당 제품에 대한 트렌드의 원동력이 되는 더 큰 변화를 읽어야 한다. 즉 기술의 변화,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 자체의 변화,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전체의 변화를 앞서 감지해야 하는 것이다. 트렌드를 앞서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Toyota사나 GM과 같은 자동차 회사들은 유행의 근원지인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에 디자인센터를 두고 있다. 이들의 임무는 자동차의 디자인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유행을 주도하는 젊은이들의 삶, 그들이 주목하는 제품, 예를들면 패션의 흐름, 때로는 선호하는 보석류의 색상이나 모양 등을 연구한다. 또한 젊은이들이 주말을 보내는데 있어서의 승용차의 역할을 연구하는 등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기 위해보다 근본적인 트렌드의 변화를 읽고 그것을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트렌드를 창조하는 새로운 디자인개발에는 공식이 없다. 기존의 컴퓨터 디자인의 틀을 깬 애플 iMac의 속이 들여다 보이는 누드 디자인의 예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오직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는 열망과 모든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창조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