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바느질의 쓰임과 용도1) 감침질 : 홈질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감치기라고도 한다. 바느질감이 홑 감인 경우에는 맨 가장자리를 실올이 풀리지 않도록 안으로 두 번 접은 다음, 첫 번 접은 끝과 바닥의 올을 얕게 뜨면서 용수철 모양으로 감아 꿰맨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진행해 나간다. 두 직물의 경우도 끝단을 마주대고 같은 방법으로 감아 꿰매며, 표면에 나타나는 바늘땀은 될 수 있는 한 가늘고 작게 한다. 이때 감침질을 한 겉땀이 판판하게 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감침질에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한 가지 방법은 안쪽에서 감칠 때 바늘을 곧게 세워 뜨고, 실밥이 어슷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겉에서 감칠 때 실밥이 작게 나오도록 바늘을 어슷하게 꽂아 뜬다. 버선 감칠 때 이 방법으로 한다.-> 용도:직물의 양끝이나 의복의 단에서 꺾어진 곳을 튼튼하게 꿰매는 바느질의 한 방법2) 시침질 : 본 바느질을 하기 전 바느질 된 형태를 확인하고자 할 때 주로 이용한다. 곡선이나 소매를 달 때 정확한 위치를 찾아 시침한 다음 박음질하고 바느질이 끝나면 시침실은 제거한다.2겹 이상의 감을 고정시킬 때 사용한다. 종류에는 긴시침과 보통시침이 있다. 긴 시침은 끝에서 0.5cm쯤 안쪽을 약 1~3cm 길이로 0.5cm씩 떠서 시친다. 따라서 겉에는 0.5cm 간격으로 3cm씩, 안에는 3cm 간격으로 0.5cm씩의 실땀이 나오게 된다. 보통시침은 07~1cm길이로 같은 간격(0.7~1cm)으로 떠서 시친다. 이와 같은 경우 긴 홈질처럼 보인다. 즉 앞, 뒤가 같게 보인다.-> 본바느질 전에 임시로 꿰매는 바느질.3) 박음질 : 바늘땀으로 장식을 하거나 옷이 터지지 않도록 꿰매는 방법이다.- 온박음질 : 바늘땀을 되돌아와서 다시 뜨는 방법으로 표면에는 재봉틀의 박음질과 같은 모양으로 공간이 없이 실땀으로 이어진다. 뒷면은 실이 계속 겹쳐져 나타난다. 손바느질로는 가장 튼튼한 바느질법이며 섬세한 부분의 봉제에 이용된다.- 반박음질 : 바늘땀을 공간의 반만 되돌아와서 뜨는 방법이다. 표면은 홈질과 같이 나타나며 뒷면은 실이 반씩 겹쳐져 나타난다. 온 박음질보다는 바느질 속도가 빠르다.-> 용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튼튼하고 꼼꼼한 바느질 법, 한식 바느질에서 특히 옷감과 옷감을 겹쳐 잇는 데 사용하는 기본 바느질법4) 홈질 : 실땀과 공간을 같은 길이로 손바느질하여 앞면과 뒷면에 같은 모양의 실땀이 나타난다. 0.2~0.4cm 간격이 좋으며 촘촘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주름을 잡거나 솔기를 붙일 때 주로 이용되며 주름을 만들 때는 홈질을 2~3줄 촘촘히 하여 주름을 골고루 잡아준다. 박이옷을 제외한 겹옷 ?솜옷의 모든 솔기와 치마폭 잇기 등에 널리 쓰인다.-> 용도: 바늘땀을 위아래로 드문드문 성기게 꿰매는 바느질의 한 방법.5) 버튼홀 스티치 : 윤곽선에 매듭이 생기도록 수놓는 방법이다. 손바느질로 단춧구멍을 만들 때 이용하는 수법으로 가장 자리 장식이나 아플리케에도 많이 쓰인다. ㄴ자 모양이 나온다.6) 단추 달기* 지도시 유의사항 *① 바느질하기 전에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 먼저 지도한다.② 바늘과 실의 굵기는 천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③ 연습용 헝겊은 바늘이 잘 들어가는 소창 헝겊이 좋고, 무늬 없는 흰색이 좋다.④ 실꿰기와 바늘잡기를 먼저 연습하도록 한다.⑤ 매듭짓기를 여러 번 연습한 후 색실을 꿰어 바느질 연습을 한다.⑥ 홈질 연습은 실을 당겨 보거나 느슨하게 하여 실 잡아당기기와 바늘땀에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⑦ 한복용 골무와 양복용 골무를 함께 지도한다.* 느낀점 *바느질은 평소 구멍을 메운다거나 단추를 달거나 하는 것에 나름대로 익숙해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 멋대로 하는 바느질에서 평가를 위한 바느질을 하자니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특히 처음 해보는 바느질도 있어서 몇 번이고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멋대로 해온 바느질이 틀렸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명칭도 정확히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평소 알던 바느질도 모양이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어떤 때보다 꼼꼼하게 바느질 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 좋았다. 바느질을 하면서 실제 수업에 적용할 때 무엇보다 아이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비록 바느질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시절 밖에 없지만 그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간단한 바느질은 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기회를 통해서도 확실히 몸에 익힐 수 있었다. 만약 직접 해보지 않고 그냥 교과서로 보고 넘어갔다면 절대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또 직접 결과물을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나아가 흥미를 느껴 적성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의 적용에서 간단한 주머니를 만들어보고 직접 사용하는 함으로써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평가방법】(1) 평가시 유의사항① 과정 평가와 결과물 평가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② 이 제재에서 평가의 주안점은 학생 개인의 바느질 기능이므로 시침질과 홈질, 박음질을 얼마나 꼼꼼하게 잘했는지 평가하도록 한다.③ ‘어떻게 하면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탐구적 생각을 갖고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태도도 중요함을 지적한다.(2) 평가도구의 활용방안실습시 창의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용품을 만들어 활용하여 ‘만들어 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바느질 용구의 사용법과 바느질 방법은 인터넷을 찾아 활용한다.?바느질 용구의 사용법(http://www.hungdok.es.kr/education)?바느질 방법 구분하기(http://pfaffkorea.co.kr)바느질을 생활에 이용하도록 한다.Ⅱ. 재봉틀 사용하기http://blog.naver.com/scienceart99?Redirect=Log&logNo=120024083801바느질 용구의 안전한 사용 지도를 강조한다
교과와 학교의 재인식현대 사회에 삶의 형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자유의 가치가 중요시 여겨지면서 학교의 획일적 교육에 불신이 생기고 있다. 즉 사회는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가치와 능력을 요구하고 개인은 자유를 추구하며 자기 방식대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유하기를 원하지만 학교는 획일적 교과내용과 제도로 사회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정에서는 홈스쿨링을 그 대안으로 학생이 문제아라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원하는 교육을 받으려고 학교에서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고 또 학교는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먼저 교과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를 따지려면 그 범위를 정확히 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교과가 학교에서 배우는 일반적 교과로 생각하고 그 교과의 성격을 전통적으로 배울만하다고 여겨지는 기초적인 인간의 지적 문화유산으로 정의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탐구하는 지식이 학교교과를 벗어나는 것이 없으며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도 결국은 선회해서라도 교과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교과의 연계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미술을 하면서도 그 안에 수학과 과학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즉 교과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알아둬야 하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초적 지식들이다. 보통 학생시절 많은 이들이 자신은 이것에 관심이 없는데 왜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곤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과 연결되고 관심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서나 교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초로 현상을 이해하고 지적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물론 지엽적인 내용도 일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부만 보고 교과가 모두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즉 우리는 궁극적으로 교과를 통해 기초적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적성을 찾고 진로를 정하며 다시 진로를 변경하더라도 그동안 배워온 내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교과를 통해 쌓아온 지적체계와 사고력을 바탕으로 뒤늦게라도 원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또한 교과가 배울만하다고 잠재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홈스쿨링에서 배우는 내용도 교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홈스쿨링에 다른점이 있다면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제도화된 교과를 뛰어넘어 더욱 깊게 공부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교과인데 자꾸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학교에서 강압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흥미를 잃어서이다. 또한 교과 자체도 우리나라 입시제도에 따라 문제풀기의 도구가 되고 나아가 학습목표보다는 교과를 배웠다는 자체에 급급해하는 교육현실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교과에 자율성과 다양성을 부여하여 이를 통해 기초적 지식은 물론 창의성까지 길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모여 더 좋은 교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는 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이와 같이 교과의 문제는 그 내용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가르치는 학교에 있었다. 그렇다면 학교는 교과만 공부하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물론 다니지 않고도 학습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면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교과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문화층을 갖게 함으로써 계층과 지역간의 이질감을 없애고 사회를 통합시키는 기능을 할뿐더러 교육에 있어 보편적인 기준을 세워주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홈스쿨링이 제도화 되지 않아 학력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홈스쿨링을 통해 교과를 배우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도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학교의 문제점인 지나친 획일성과 홈스쿨링의 문제인 비제도화와 비전문성을 해결해가야 한다. 학교는 교육재정을 확보하여 교실 당 학생수를 줄여 교사가 학생을 보다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개인의 수준과 성취도가 고려되고 나아가 개인의 다양한 관심사를 인정하여 이를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자발적 학습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또한 사회의 학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학교가 보다 발전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할 것이다. 이에 보답하여 교사는 자기개발을 충실히 하여 보다 전문적인 자질을 기르고 본분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여야한다. 이와 같이 교육의 환경개선과 학생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부, 교사, 사회가 노력해간다면 이상적인 교육실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홈스쿨링은 좀더 체계화 시키고 학교교육과 연계하여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사회통합을 위해 학교와 너무 동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하는 특별 프로그램에 홈스쿨링 학생을 적절히 참여시킨다던가 해서 또래집단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홈스쿨링은 특별한 경우의 가장 차선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학교는 교과교육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과 시민성을 충분히 길러낸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를 통합시키고 안정시킬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학교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교의 다양성을 인정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정리하자면 학교를 다양한 방면으로 개선하고 홈스쿨링은 전문가와 충분한 상담후에 가장 최후의 방침으로 택하며 이를 제도화하여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해줘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화된 교육의 형식 속에서 교육의 본질과 목표만은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선비의 존재의의와 현대적 의미- 목 차 -1. 들어가는 말2. 선비란 누구인가3. 선비의 본분과 의의4. 선비가 현대에 주는 시사점1. 들어가는 말우리의 현대사는 외세침략에 많은 가치혼란과 역경을 겪어왔다. 이러한 사태에서 전통적 사고는 하루아침에 그 가치를 상실하고 모든 현실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즉 전통은 현대적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비현실적이며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져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 할 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특히 우리의 사회적 윤리의 근간이 되며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통사상인 유교는 비민주적이며 공리공론만을 중시하여 실제를 멀리하는 전근대적 사고의 대표가 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전통을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일 것이다. 한때는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교적 전통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회풍조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적 뿌리인 유교는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수치스럽고 버려져야 하는 것일까.이것은 모두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초월하는 현대문명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실제적 관심에서만 본다면 유교는 분명 버려야할 사상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우리 민족 전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때 유교는 부끄러운 과거로 받아들여지고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우리, 나아가 전 인류가 추구해야 할 것이 과연 물질적 가치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현실(물질)과 이상(정신)의 차이를 살펴보고 무엇을 따라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해로운 것이면 피하고 이로운 것이면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전체보다는 개인을 우선하고 자기중심과 이해 타산적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부귀영화라는 결과물로 개인의 쾌락을 만족시켜준다. 이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구체적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개체의 연결로서 이루어져 지속하고 확충하는 전반적 인생을 되는 영원의 관점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임을 인식해야한다.) 즉 인간은 좀더 많은 사람들 속에 영원히 지속해 내려가는 인생에 가치를 둘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일시적인 부와 명예를 추구하며 이를 물려주는 것(현실적 목표)이 전 인류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일시적 쾌락에 눈이 멀어 이상을 추구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것은 누구나 물질보다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힘들어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가장 잘 추구하고 실천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조선시대의 선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교적 전통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선비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고 그 존재의의를 따짐으로써 이것이 주는 현대적 시사점을 생각해보겠다.2. 선비란 누구인가선비는 지난날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사전적 정의가 내려지고 있다. 즉 학문적 탐구를 꾀하나 부귀영화를 꿈꾸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유학을 공부한 사람, 즉 유생을 지칭한다. 보통 선비라 하면 서원에서 공부만 하는 양반을 떠올릴 것이다. 이와 같이 선비는 양반으로 대표되며 공부만 하는 사람으로 여겨 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비 정신 운운하는 것에서 선비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선비가 단순히 공부만 하는 양반으로 생각될 때 선비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생업을 거부하고 가족들에게 짐만 지우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선비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선비는 아마 연암 박지원의 소설 속에 나오는 부패된 선비이기에 그들은 더욱 배척되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박지원은 양반전과 호질에서 선비답지 못한 선비들의 비행과 비리를 신랄하게 폭로하고 비판하였다. 이것은 겉으로만 책을 읽고 도리 운운하며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모두 챙기고 욕망대로 사는 무기력한 양반의 모습을 질타하기 위함이었다. 반면 허 사람들에 대하여 깊은 배려를 지녔다. 넷째, 금력 또는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으며 신의를 지키고 지조가 강했다. 우리는 여기서 선비의 진정한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선비가 할일 없이 공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선비는 기본적으로 인격과 학문과 경륜을 모두 갖춘 사람으로 정치를 이끌었다. 앞서 사전적 정의가 선비는 학식은 높으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니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귀영화를 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지 그들이 벼슬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이 과거제의 부패와 벼슬길에 오른 후 청백리의 길을 벗어나는 선비들을 보고 벼슬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벼슬을 하건 하지 않건 사회가 도의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것은 곧 정치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왕이 폭정하지 못하게 감시했으며 도의에 벗어난 일이 일어날 때면 다같이 일어나 항의했다. 또한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이상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관직에 머무르며 임금을 보좌하기도 했다. 버트란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인간의 유형을 셋으로 나눴다. 그것은 게임을 하는 사람으로 정치자, 관람하는 사람으로 백성, 물건을 파는 사람으로 상인이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더 첨가시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 바로 룰을 감시하는 심판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선비였다. 그들은 특히 공정한 심판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유혹과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지조와 용기를 갖추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도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아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선비의 지절은 한 국가의 민족의 대의를 지키는 힘의 원천이었다.요약컨대 선비는 단순히 글만 읽는 사람도 아니고 권력을 추구하는 양반도 아닌 절대적 도의를 지킴으로써 바른 정치로 이끄는 심판자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벼슬을 했는지 안했는지서 선비가 어떤 사람인지 사회적 통념과 함께 실지로 행하는 일을 함께 살펴보았다. 하지만 선비의 본분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으며 나아가 존재의의가 분명히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또 대의가 어떠한 점에서 중요하며 선비는 이를 어떻게 실천하는지도 자세히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의 본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사회에서 어떤 의의를 갖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대의는 유교에서 천하의 도이며 세계중층구조의 위층에 해당하는 세상의 근본이 되는 이치를 뜻한다. 이러한 대의는 인간이 따르고 생에 걸쳐 근접해야 할 목표이며 이것에 벗어난 것은 단지 물질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대의는 유교정신을 따르는 선비로서는 가장 근접해야할 이상적 상태이며 목숨을 걸고 까지 이를 지킬 것을 사명으로 삼게 된다. 그러면 선비는 이러한 대의를 지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먼저 우리는 선비는 일반 관리와 다르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단순히 임금의 일을 돕는 관리가 아니라 임금을 초월하여 그를 비판하고 대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현실 비판권과 역사 심판권을 가진 인물로 봐야 하는 것이다. 관리들이 행정권과 병재권을 가지고 현실을 다스린다면, 선비는 청의와 탄핵권을 가지고 위정자를 지도 감시했다. 이것이 현실 심판권이다. 역사 심판권은 행위의 정당성을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 모든 것이 힘에 의해 제압되고 시비가 조작되더라고 그것은 반드시 되 밝혀져 궁극적으로 역사 앞에 굴복하고 마는 역사의 정직성을 뜻한다. 이 두 가지가 선비가 대의를 지키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와 같이 선비는 나라를 운영하는데 힘쓴 것이 아니라 그릇된 길로 가지 않게 하는데 그 본분이 있었다. 때문에 현실적이기 보다 초월적이었고 정치에 참여하면서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바라봄으로써 정치의 국외자가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똘똘 뭉쳐 대의를 지키기에 힘썼다. 선비정신이 남아있는 한 민족 무너지는 것도 이와 같은 선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이렇게 대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지조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목숨을 내걸고 욕망을 극복하여 어떠한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는 도덕적 용기이다. 자신의 뜻을 전하고 초연히 죽는 선비의 모습은 권력자를 겁나게 했으며 이것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선비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천하의 도이며 이것을 어기면 천벌을 받게 된다는 유교적 의식이 뿌리 깊게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있기에 조선사회는 많은 역경 속 에서도 망하지 않고 500년을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으며 전통을 지킬 수 있었다. 묵자는 “그 나라에 들어가 봐서 선비가 없으면 망한 나라인 줄 알아라”라고 말하였다. 선비가 한 나라의 존속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명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조는 선비의 본질 중 가장 높게 사야 할 항목일 것이며 지조가 없으면 선비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이와 같이 선비는 지조 있게 대의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업에 정진하는데 썼으며 그것이 생업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학문 탐구가 생업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대의를 지키는 데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선비가 학업을 생업으로 했다는 것은 그가 지성인이었음을 뜻한다. 사실 그들은 대의를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학문적 업적을 이루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리고 이것이 대의를 지키는 것과 연결됐다. 무슨 말인가 하니 선비는 인견과 학문과 경륜을 갖추고 정치를 한 사람이라는 정의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선비가 인격만 갖추고 학문과 경륜이 없으면 낡은 사상이나 풍습에 젖어 고집이 세고 변통성이 없을 것이며, 학문은 있으나 인격과 경륜이 없으면 약하며, 경륜은 있으나 인격과 학문이 없으면 황태하다고 하여 그 조화를 중히 여겼다. 그런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인 학문이라고 본 것이다. 인격은 근본이고 경륜은 결과이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본 교사의 역할수학교육과 20041524 이승현우리가 서양에 문호개방을 한지 100년이 조금 넘은 지금 우리의 동양적 전통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우리의 전통이 보수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으로 여겨져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영향은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 좋은 것의 기준은 외적인 것에서부터 내적인 것까지 서구의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서양의 태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나 과학의 발전과 같은 물질적 측면에서는 더없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그것을 거부할 이유는 찾기 힘들어진다. 경제와 과학의 성과는 이러한 사상을 근본으로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이 외적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측면에도 깊이 파고드는 데 문제가 있다. 과연 서양의 합리주의적 사고가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전통을 과감히 버려도 될 정도로 우리의 내적측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는가. 그것은 서양의 사고방식이 급속히 전파된 이후 우리의 도덕성과 그것이 사회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그것이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그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기 이전 우리의 전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그 전통이 도덕을 어떻게 지켜오고 가르쳐왔는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서양의 사고방식이 우리의 도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대안으로 전통적 관점에서 특히 유교적 관점에서 학교교육의 역할로서 교사는 어떤 사고를 가지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다.그러면 먼저 서양의 사고방식이 우리의 도덕성에 어떤 식으로 어떤 영향을 끼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해보겠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양윤리는 르네상스 이후 이성을 강조함으로써 도덕을 사회 성원과의 조화를 위해 주어진 욕망을 조절하는 일종의 지적계산으로 보는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도덕규범이 신이나 사회, 전통과 같은 초개인적인 존재의 권위에 호소하여 받아들여짐으로써 도덕적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합리적 판단과 선택에 맡김으로써 합리적이지 못하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즉 이성이 도덕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이 따져지는 것이 아니라 도덕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음으로써 그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사회적 측면보다 개인적 측면을 중시한다는 점을 볼 때 우리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도덕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사고를 낳을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 어떠한 도덕적 규범을 따르라고 강요한다면 이러한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내가 왜?”라는 반응과 함께 강요한 사람을 단순히 고지식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늘어나고 있다이와 같이 도덕의 위상이 크게 무너지고 사회윤리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어린세대로 갈수록 전통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줄어들어 그 정도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도덕의 모습이 과연 어떠할지 부정적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것은 예를 경시하는 사회분위기 뿐 아니라 이 사회풍조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 도덕교육의 실패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회풍조가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주는 전통적 교육방법이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이것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마지막 방안은 당연 심성함양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학교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교육 역시 교사의 권위가 약화됨으로써 교육의 목표가 변질됨으로써 그러한 사회분위기를 방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 전통의 회복이다. 우리의 전통이라 함은 흔히 받아들여지고 있듯이 유가적 사상을 뜻한다. 그렇다면 유교에서는 도덕을 어떻게 여기고 가르쳐왔을까. 그것은 유가가 사회의 위계질서를 강하게 정해놓고 예를 최고의 도리로 여겨왔다는 점에서 그 기원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 영향력이 매우 강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유가는 예를 하늘의 도리로 보고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라야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하늘의 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을 천명으로 보고 전 생에 걸쳐 노력했으며 이것에 가까이 가기 위한 심성훈련의 과정을 교육이라고 보았다. 완성된 인격체로 표현되는 인간의 덕을 유교는 인의예지로 보았다. 그중에서도 순자는 예의 실천을 통해 사(士)에서 군자로, 그리고 성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예를 배우고 익힘으로 사(士)의 단계에서 완전한 인격 완성체인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예를 지키지 않으면, 경전에서 얻은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는 결국 고루한 학자요, 성인이 될 수 없다. 때문에 유가는 예를 가장 중요한 교육 목적이자, 교육내용으로 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예는 어떻게 습득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책의 내용을 탐구하는데서가 아니라 학생이 교사와 적극적 관계를 형성할 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관을 통해 볼 때, 교사의 역할은 교육에 있어 그 어느 것보다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순자는 배움에 있어서 학문적 지식보다는 스승의 작용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교사는 지식과 구절을 외우고 이해를 돕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학생의 도덕적인 감화에 의한 올바른 인격형성을 돕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순자가 말하는 스승이란 예를 바르게 전달하는 사람으로 학생이 닮고자 하는 표상이 된다. 이것은 순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유교 사상가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공자는 인을 실천하는 출발점을 부모에 대한 효와 윗사람을 공경하는 제에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부모와 윗사람이 따르던 도가 아랫사람에게 전해져 자식 혹은 제자의 존재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장 인간다운 형식인 예를 온몸으로 익히고 실천하여 그것을 가르치는 스승은 높이 받들어져야 하고, 배우는 이는 그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