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애국자, 애국자 말은 많이 하지만 진정하게 애국자란 무엇일까? 요즘 우리 사회에서 나랏일 보다 자기 밥그릇 때문에 국회에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군대 안가겠다고 미국 영주권 또는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사유를 들어 병역을 회피하는 연예인들 등을 보면 다시 한 번 애국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범국민적으로 하나가 되었던 시기를 기억하는가? 그 당시 누구도 그랬듯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란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고 온 몸에 전율이 흐르듯 애국심이 느껴졌을 것이다. 월드컵에서의 마음처럼 나라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누구나 나라를 위해 앞장설 용기는 있겠지만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애국심은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진정한 애국심을 보여줬던 순국선열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안중근 의사는 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을 받는 날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냐는 물음에 책을 덜 읽었다며 자신에게 마지막 5분을 더 달라고 했었다고 한다. 평소에 저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재판장에서 한 이말 한마디뿐이었다. 하지만 저는 이말 한마디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게 되었고 지휘통솔 시간를 통해 안중근 의사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준비하게 되었다.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마리아 사이에서 3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4년 6세가 되던 해 박영효 등의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킨 후 개화파 정권이 삼 일 만에 무너짐으로써 박영호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고, 안태훈도 숨어 살다가 가족들과 함께 신천군 청계동 산중으로 이사하였다. 1894년 나이로는 16세 때 김아려와 혼인하여, 이후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또 사이비 동학당에 맞서 부친 안태훈이 의병을 일으킬 때, 부친을 따라 출전하여 선봉 겸 정탐독립대가 되어 승리하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안태훈, 어윤중과 민영준의 모함으로, 수개월간 프랑스인의 천주교당으로 피하고 이후 성서를 접하고 천주교에 입교한 후, 선교활동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21세(1899년)에 홍 신부와 함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하고, 수개월간 프랑스어를 배우며 서구문명에 눈을 떴다. 서울의 민 주교에게 대학 설립에 대한 의견을 말했으나, 묵살 당했다. 이 일로 인해 천주교는 믿되 외국인은 믿지 않기로 하고, 프랑스어 공부도 그만두게 된다. 부패한 정부에 환멸을 느껴 개혁과 문명, 그리고 민권자유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편 당시 황해도에 교인을 사칭한 폭도들이 들끓어 천주교가 박해로 귀향하게 된다. 1905년(27세), 러일전쟁이 가속화하면서 날마다 신문, 잡지, 각국의 역사를 상고하며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다 부친과 국내 상황에 대해 상의한 후, 산둥으로 건너가 두루 살펴보고, 상하이의 민영익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려 했으나 만나지 못한다. 상하이에서 만나 프랑스인 관 신부의 ‘이천만 동포와 함께 본국에서 활동하라’는 권고로 진남포로 돌아온다. 12월,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청계동으로 돌아가 수일간 상례를 치른다. 한국이 독립할 때까지 술을 끊기로 맹세하고. 진남포에서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문명개화와 국권회복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듬해 3월, 청계동에서 진남포로 이사한 후, 재산을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무를 맡아 보며 교육사업을 한다.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 전제덕의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 사령관의 자격으로 엄인섭과 함께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日軍)과 격전을 벌였으나 실패, 노에프스키에서 망명투사들이 발간하는 《대동공보》의 탐방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동료들에게 충군애국 사상을 고취하는 데 진력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 그 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고, 동지 우덕순과 상의하여 승낙을 얻고 동지 조도선과 통역 유동하와 함께 이강의 후원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만철이사 다나카 세이타로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곧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안중근 의사는 위대한 교육가이기도 하였다. 21세 되던 해 천주교의 뭬텔주교(프랑스인)을 찾아가 대학설립을 건의 하였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 또한 을사조약이 맺어 지고 난 후 안중근 의사는 아버지와 의논한 후 나라를 구할 결심으로 중국으로 갔서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산동성이나 상하이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 하고자 했지만 산동성을 둘러본 후 상하이에 민영환을 찾아가 뜻을 같이 하기를 하나 거절당한다. 그 후 우연히 황해도에서 오래전부터 선교활동을 같이 한 프랑스인 곽신부를 만나 곽신부가 한 조국에 백성을 가르쳐 똑똑하게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 들여 조국으로 귀국을 하고 진남포로 이사하여 사비를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고 스스로 교장과 교사가 되어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안중근 의사는 또한 의병활동을 통해 훌륭한 공도 많이 세웠다. 그는 의병장으로서 1907년 정미의병전쟁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예컨데 1908년 6월에 함경북도 경흥과 신아산 부근으로 일본군에 공격에 나서 두달전 경흥에 주둔중인 일본군 수비대를 급습하여 진지를 점령한 후 다수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10명에 가까운 일본군을 생포하였었다.안중근 의사는 진정한 평화주의자, 인권주의자였다. 위에서 언급한 1908년 6월에 의병활동에서 그는 일본군 포로를 석방시켜주고 게다가 무기까지 돌려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의병들은 크게 반발하였고 여기에 의병들 간에 갈등이 생겨 부대를 이탈하는 의병들도 나타났고 석방포로들에 의해 부대위치가 노출되어 기습공격도 받게 되었다. 참패한 안중근 의사의 의병들은 1년도 채 안되어 해체하게 되었다.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입각한 인도적 처리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모습이 담겨있다. 또한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에 100년 후 오늘의 평화개념을 예언하였기도 하다.
지하철 사랑의 편지를 읽고...지하철 사랑의 편지 라는 책을 사기 위하여 서점은 찾았다. 책이 두께가 두껍지 않고 그림도 많이 들어있어 친근감이 느껴졌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지하철 사고와 관련된 유가족들이 희생자에게 편지를 쓴 것을 모아놓은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펴는 순간 이 책이 지하철 사고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도록 플랫폼 벽에 걸려 있는 '지하철 사랑의 편지'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여기에 실려 있는 짤막짤막한 이야기들 하나 하나씩 읽으면서 나의 처음의 생각은 바뀌어 갔다. 이야기들 중에서는 우리가 많이 들어 본 이야기들도 있고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을 주제로 하고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감동과 교훈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때로는 고개가 끄덕여 졌고 때로는 나의 삶을 반성하게 만들었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 책은 1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 2부 '행복을 주는 말', 3부 '성공하는 사람들의 조건'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책의 이야기 중 사랑을 주는 말은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이야기 해주시는 사랑의 언어와 비슷한 것이었다.'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 '기도해 줄게!' '넌 항상 믿음직해.' '넌 잘될 거야!' '네가 내 곁에 있어서 참 좋아.'이런 말들은 가장 쉽고 가장 듣기 좋지만 가장 하기 힘든 말이 되기도 한다. 채플 시간에 교목님과 함께 이런 말들을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해줄 때를 생각해 보아도 이런 말들은 해주는 것이 쑥스럽게 생각 될 때가 많다. 평소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을 잘 말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좋은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더 이상 열거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안다. 우리의 옛 속담에만 보아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것이 있다. 정말 그럴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 한마디 잘못해서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고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과 다시 잘지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말이다. 이렇듯 말 한마디 한마디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우리는 때론 그러한 것은 잊어버리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상처를 받은 경우도 많다.위에 있는 사랑을 주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우리들은 너무 다른 사람들을 흠 잡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장점을 생각해보고 진정으로 칭찬해 준다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말에 관한 이야기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로 마무리 짓겠다. '성공의 비결은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또 다른 이야기로는 가위바위보 라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때 많이 했던 놀이이고 아무 생각 없이 했었던 놀이지만 여기에도 교훈이 들어있었다. 가장 약한 보가 아이러니 하게 가장 강한 바위를 이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굉장히 강해도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사람은 이기지 못한 다는 것이다. 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회사에 두 사원이 있었다. 한사람은 매사에 철저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 이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손해만 보는 사람 이였다. 이 두 사람이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이후 사람들이 모두 그리워하는 사람은 두 번째 사람 이였다는 것이다.지금 현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누르고 이기려고만 하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조금도 양보하고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친한 척 하지만 친구 사이에도 서로 이익을 챙기기 바쁜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과만 보아도 점수 조금 더 잘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없다. 간호학과는 나중에 사람을 대상으로 일하는 직업이고 자신을 희생하며 환자에게 봉사하며 일해야 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텅 비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점수 하나 잘 받는 다고 해서 병원에 나가서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좋은 리더가 되는 일곱 가지 키워드에서도 보면 희생하라 라는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고 봉사한다면 이것이 자신을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제목만 들어보고서도 장애인이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발로 글을 섰다면 아마도 팔은 없는 장애인이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서점을 찾았다.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본 순간 환하게 웃고있는 한 여자의 얼굴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 왔다. 그 웃음은 너무나 선해 보였으며 어떠한 고통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해맑은 미소였다. 그 웃음이 너무 환해서였을까? 처음에는 그녀가 턱을 괴고 있는 것이 발이라고 느끼지 못했고 당연히 손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손이 아니고 발이 였으며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저런 미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책을 이러 저리 뒤적여 보았다. 많은 사진들이 있었는데 그 중 그녀의 두 팔이 없고 기형의 다리를 정날 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처음에 딱 보고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책을 다음 페이지로 넘겨 다른 그림을 보려고 하였다. 마치 먼가 못 볼 것을 보고만 것처럼... 그러다가 나는 내가 미래에 간호사가 될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거보다 더 심한 것도 앞으로 보아야 할텐데 내가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피한다면 난 진정 간호사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내가 이런 환자들을 간호할 때 나의 이러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환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나마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처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처음 서론부분을 읽어보면서 사실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반지를 사주거나 자신의 장갑을 찾아주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내가 만약 이러한 장애를 자지고 있다면 난 아마도 나의 이러한 장애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배려 할 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신체에 대해 다시 한번 원망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주인공인 레나 마리아는 자신을 정상으로 생각해주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표현하였고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도 장애는 오늘의 자기자신을 있게 한 본질적인 요소였지 '장애'가 아니었다 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의 생각의 변화가 자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생활이 즐겁고 기쁠 것이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라고만 생각을 한다면 그 삶은 불행해 질 것이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레나 마리아의 긍정적인 생각이 이렇게 훌륭한 삶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이 책을 읽으며 레나 마리아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그녀의 부모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기도 힘들 것인데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 냈으니 말이다. 이러한 장애가 있는 아동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심인 것 같다. 레나 마리아의 부모들은 그녀에게 자립심을 길러 주기 위하여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넘어졌을 때도 혼자 일어 날수 있게 해줌으로서 그녀가 앞으로 혼자서도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딸이 혼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나 그녀의 부모들은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면서 그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작년에 인생 극장에서 본 세진이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세진이도 두 다리가 없고 한 손이 장애가 있는 아직 어린 소년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이러한 아이를 입양하였고 훌륭하게 커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었다. 사실 첨에 이이야기를 본 게 된 동기는 텔레비젼을 돌리다가 우연히 장애 아동이 나와서 호기심 삼아 한번 보았던 것이 끝까지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아동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내가 그들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를 보면서 나의 건강한 신체에 대해 감사하고 이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켰다.
동기부여와 학습간의 관계 설명 , 자녀 교육에 적용우리는 많은 행동들은 하면서 살아간다. 그 행동에 어떠한 목적과 동기가 따를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그 행동의 내적 요인이거나 외적 요인은 반드시 존재한다. 따라서 동기가 올발라야지 올바른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면 동기와 목표가 뚜렷하게 주어졌을 때 행동은 적극적이고 자신의 소망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과 거기에 따르는 재미와 흥미도 커지게 된다.동기의 기능에 대해 먼저 알아보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하도록 작용한다. 동기는 모든 행동의 기본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동기나 목표 의식을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을 때 행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나의 경우를 보면 작년에 내가 원하던 간호학과에 떨어지고 원하지 않던 다른 학과에 들어가게 되었었다. 그때는 나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나의 불안한 장래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지 못해 공부도 잘되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던 학과에 와서는 그때와는 기분이 많이 다르다. 아직 일 학년이 여서 많은 것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므로 공부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 나의 미래에 대한 목표 의식이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대한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로 작용한 것이다.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그 사람이 학생이라면 학습을 해야하는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학습에 의욕을 잃고 실패하였을 때 쉽게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동기와 목표가 확실하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 한다. 그만큼 동기의 중요성은 크며 모든 우리의 행동이 기본이 되는 동기 중 학습에 관련된 동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먼저 학습동기 유발 방법으로는 내적 동기 유발과 외적 동기 유발의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외적인 동기는 수업 시간에 배운 보상의 의미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엄마가 시험을 어느 정도 이상 보면 용돈은 올려 주신 다거나 원하는걸 들어주신다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전에 본 영화 신라의 달밤 에서도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0등 내이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고 거기서 주인공은 자신이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 즉 내적인 동기가 아니라 조직에 들어가기 위하여 조직이 원하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한다. 결국 외적인 동기가 그의 행동을 이끌어 내었다.또 다른 외적인 동기에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강요를 들 수 있다. 수업시간에 자거나 공부를 안 하는 경우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혼을 내거나 매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러한 처벌을 잠시라도 모면하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척 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요인이 학습을 이끌어 낼 수는 있을지라도 주어지는 보상이 사라진다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 졌을 때도 지속적으로 학습을 유발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항심을 유발하거나 계속되는 처벌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기 쉽다. 모랫말 아이들 이란 책에서 보면 주인공이 선생님한테 매를 맞는 것에 무감각해 가고 있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두렵고 무서웠던 것이 계속해서 맞게 되면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거기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고 더 이상 매에 대한 효력은 상실된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맞으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외적인 요인은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는 그렇게 큰 효과를 기대 하기 어렵다.두 번째의 내적인 동기는 외부에서 학습을 강요하거나 환경을 만들어주는 외적인 요인과 반대로 자아 내면에서 학습의 동기 이끌어 내는 것이다. 즉 스스로 학습을 함으로서 만족을 얻는 것 또는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학습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자신의 흥미와 재미가 중요하며 학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분야를 아무리 잘해도 좋아하는 사람은 따라 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기자신의 내적인 요인이 학습의 성취에 주는 효과는 매우 크다는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한 재미가 이들은 더욱 잘하도록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아니겠는가.자녀에게 학습의 동기를 심어주는 것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 어렸을 때는 아직까지 자신의 목표와 학습의 동기를 스스로 느끼기는 어려우므로 부모가 많은 것을 시키고 그에 따라 주기를 원하지만 아이들은 금방 실증을 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를 학습에 재미와 흥미를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얼마 전 읽었던 창가의 토토 라는 책이 생각이 난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토토라는 아이가 다른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가게 되었던 도모에 학교. 그 학교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이들이 누구의 강요나 처벌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흥미를 가지고 학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학교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은 곳이 된다.얼마 전 뉴스에서 본 우리 나라의 한 학교에서도 방과후에도 학생들이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들을 강제로 붙잡아놓고 운동을 시키거나 책을 읽도록 시킨다면 지금만큼의 재미를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역효과를 내어 아이들에게서 책은 진절머리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 학교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학교 수업을 보면 대부분의 수업들이 학생들의 흥미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두가 똑같은 입시라는 하나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으면 개개인의 흥미, 개성과 소질은 무시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북한 식의 교육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보여 진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소질을 살려 하나를 집중적으로 키워주는 것이다. 지금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조금씩 다 잘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잘하는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아니겠는가.아이들이 모든 것은 다 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분야는 잘하고 어떤 분야는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인정하는 것이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못하는 것은 꾸짖기보다는 잘하는 것은 칭찬함으로서 아이에게 자신감과 자신이 잘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함으로서 모든 일에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칭찬을 해주면서 적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아이의 학습을 촉진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프뢰벨의 교육사상1.생애1782 프뢰벨 탄생4월 21일 독일 튀링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프뢰벨은 가족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유년기를 지냈다. 튀링겐의 아름답고 울창한 숲 속의 자연은 프뢰벨의 관찰과 사색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프뢰벨을 사색과 명상에 잠기는 소년으로 자라나게 만들었다.1805 페스탈로치와의 만남1799년 예나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 프뢰벨은 응용수학, 대수학, 기하학 등을 배우면서 '자연과학회' 라는 학술 단체 에 가입하고 끊임없는 자연의 법칙이나 신비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학비를 낼 수 없어 공부를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 무렵 외숙부가 죽자 프뢰벨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가 페스탈로치의 제자인 안톤 그루너를 만나게 된다. 프뢰벨은 그루너의 권유로 건축가가 되고자 했던 생각을 버리고 모범학교 교사가 되어 페스탈로치와도 만난다. 그는 2년 간 페스탈로치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의 교육자로서의 인격에 크게 감명을 받아 교육을 통 해 국가, 사회, 인류를 개혁하고자 하는 이념을 갖게 되었다.1826 '인간교육' 집필1813년 전쟁터에서 큰형이 죽자, 조카들의 교육을 맡게 된 프뢰벨은 1817년 '일반 독일학원'의 문을 열어 자신의 교육 사상을 실험하게 된다. 이듬해 카일하우로 학원을 옮긴 프뢰벨은 교양 있고 이해심 많은 호프마이스터 와 결혼하여 학원을 가정적인 분위기로 만든다. 프뢰벨은 이 곳에서 교육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고, 그의 대표적 저서인 '인간교육'을 집필, 출간하였다. 그러나 민중을 선동한다는 오인을 받고 정치적 탄압을 받아 카일하우 학원은 폐쇄된다.1835 '부르크도르프 고아원' 의 원장이 된 프뢰벨프뢰벨은 베른 주의 초청으로 '부르크도르프 고아원'의 원장이 된다. 프뢰벨은 고아원 원장직에 있으면서 불행한 어린이들을 유아기부터 교육시킴으로써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아원 안에 4∼5세 유아를 위한 예비 학습 과정을 설치하면서 유아교37 가베 창안프뢰벨은 고향인 바트 브랑켄부르크로 돌아와 '자기 교수와 자기 학습으로 이끄는 직관 교육 시설'을 설립한다.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 놀이는 교육이 아니라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프뢰벨은 놀이 활동을 통한 유아의 본성에 따르는 교육을 주장했다. 또한 이때, 은물을 창안하게 된다.1840 세계 최초의 유치원 ' Kindergarten '" 킨더가르텐은 '녹색이 짙은 어린이의 정원'이라는 말이다. 즉, 모든 식물이 건강하게 성장하듯 인생의 초기에 있으며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유아는 자연과 신과 조화하면서 경험이 풍부한 정원사인 유아 교사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해야 한 다는 뜻이다.1852 프뢰벨의 병사1851년 8월 프로이센 정부는 유치원 금지령을 내렸다. 이 유치원이 어린이들에게 무신론과 사회주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교육을 한다고 오인했기 때문이다. 프뢰벨은 이 오인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던 중, 1852년 70세의 나이로 어린이를 사랑하던 교육자로서의 열정적 인생을 마감한다.2. 프뢰벨의 교육이론1) 프뢰벨의 교육의 목적프뢰벨의 교육관은 깊은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을 만물의 최고로 보고 인성적으로 만물을 인식하고 독특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내적인 본성을 확대하며 잠재력을 최대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내적 성장 위해 신성을 신장시키고 신적 원리에 자발적으로 순응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육은 이런 신적인 것을 인식하게 하도록 인간을 자극하고 지도하는 것이며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스스로 인식하도록 인간을 이끌어 주고, 신적인 통일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은 신성한 삶을 충실히 표현하는데 있다. 즉, 자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개발하고 원만하게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고 의무와 특권을 인식하며 인류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의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이런 목적에 도달하려면 인간은 자연이나 신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원시적으로 유치 통일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이렇게 볼 때 프뢰벨이 생각한 교육은 형이상학적인 이상의 표현이며 인간의 궁극적인 희망을 서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2) 교육 방법교육이 인산에게 내재한 신성을 자연스럽게 발전하는데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루소로부터 시작된 소극적 교육사상은 프뢰벨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프뢰벨은 루소의 이러한 개념을 발달 순응적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전개 시켰다. 그의 교육 방법이 모두 발달 순응적 교육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교육, 교수 그리고 교훈은 본래적 실질적으로 그 근본 특징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발달 순응적이어야 하며 결코 명령적 규정적 간섭이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는 유기적 발달사상에 근거해 비록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성장하는 인간은 내부로부터 고유한 내적 필연성을 따라 발달한다고 보았다.프뢰벨은 무리하게 어린이의 본성을 꺾으면서 교육함으로써 부자연스러운 성품을 지닌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고 어린이가 아름답게 개화하여 전인적인 조화를 잦고 발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신성의 법칙에 따르고 또 인간의 개화라는 입장에서 조명하여 보면 모든 예언적 규정적 명령적 간접적인 교육, 교수, 교훈을 필연적으로 어린이를 죽이게 하는 일이고 어린이의 발달을 방해한다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발달 순응적 교육방법이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교육의 기본 원리이지만 프뢰벨은 이것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발달 순응적이어야 하지만 단지 주의와 보호를 첨가할 필요가 있다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명령적 교육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즉 발달 순응적 교육이란 단순히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린이에 대한 주의와 보호를 하면서 필요한 때는 곧바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만 교육적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프뢰벨은 앞에서 언급한 발달 순응적 교육과 명령적 교육방법이 공존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3) 교육의 내용(1) 교육내용의 구용으로 종교 자연 수학 언어 예술 등을 들고 있다. 이 다섯 가지의 교수내용들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다음 세 가지 즉, 자기 내면적인 생명을 지향하는 욕구, 외계 및 외계의 본질을 자기 속에 놓으려고 하는 욕구, 내면적인 것을 직접 나타내는 욕구를 통해 도야해야 한다는 거이다. 물론 이 세 영역은 교수의 삼위일체론에 의해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라서 제 교과를 이해하려 할 때 세 영역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 제 교과 가운데 종교는 심정에, 자연은 심정과 인식에 해당하는, 수학, 언어, 예술은 표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 종교종교는 모든 제한된 관계를 넘어서는 삶의 전체적인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미 설립되어 비린 것이 아니라 영원히 추구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종교란 인간 본질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교육을 통해 단지 명확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프뢰벨의 종교 교육론은 학교 교육에서 어린이에게 함양하는 모든 인식이나 기능이 참된 생명적인 것이 되기 위한 진리 인신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프뢰벨은 종교적 관계로써 가족 생활을 들고 있다.(3) 자연신의 정신은 자연 속에 머무르고 자연 속에서 작용하고 자연을 통하여 전달된다. 자연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며, 우리들에 의해 대경화 되어 가는 소년기적인 특징이 있으므로 자연의 기능이 요구에 따라 설명되어진다. 이 경우 어린이의 요구에 따르는 자연관은 자연형상을 단지 개개의 사물로 받아들이지 있고 전체상으로 나타내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은 전체를 통해 자기를 살아 잇는 유기체적인 법칙에 의해 이해되며 예감된다. 또 어떤 개개의 사물도 고립된 것이 아니라 독자성 과 관련되어 파악되는 것이다.(4) 수학수학 자연계의 모든 다양한 현상의 내면적인 통일 관계를 인식하기 위하여 인간은 하나의 출발점으로써 확고 부동한 안내자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수학이다. 수학은 자연 사물의 본질이나 현상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이기 때문에 수학은 인간과 자연, 내계와 외계, 사유와 지각을 결합하는 매개자와 같이 나타내는 것이다. 프뢰벨은 수 천년 동안 계속되어 오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수학의 중요성에 대해서 수학은 생명자체의 표현이며, 수학이 없는 인간교육, 그리고 최소한의 기본적인 수의 지식이 없는 인간교육을 졸속 작품일고 잡동사니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5) 언어종교나 수학이나 언어는 통일성, 개별성, 다양성이라는 삼위일체의 인간 요구에 의해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종교, 자연, 언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다른 것과 분리하여 일방적으로 형성시킨다면 인간의 형성은 이면적이 되며 인간의 본질은 말살된다. 종교는 존재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자연은 힘의 본질과 작용의 근거를 알리려 하는 반면 언어는 생명을 그 자체로서 또 하나의 전체로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언어는 수학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내계와 외계 모두에 속하고 있다. 언어는 인간 정시의 표현이고 자연은 신의 정신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모방으로서의 언어에는 신의 정신도 역시 들어 있다. 언어는 이와 같은 이중적인 성질 때문에 자연과 신을 중재하고 있다.3. 프뢰벨의 유아교육론(1) 유아관어린이는 종자 속에 내재한 핵과 자기자신 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생명을 내부로부터 자기 활동적으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이 어린이의 자기활동은 지각이나 감정이 하나로 융합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프뢰벨은 어린이의 행동을 몰두한다 라고 표현하면서 이 상태가 자연과 인간과 신의 삼위 일체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는 오랫동안 어른들에 의하여 돌보아져야하기 때문에 무기력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프뢰벨은 이 불완전성이 바로 인간의 품위이며, 그곳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자력으로 향상하도록 운명지어지고 끊임없이 높은 자각에 도달해야 할 사명을 가진 인간의 본질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생아의 무력함, 의존심은 자기의 힘, 행동력의 고양 속에 생겨 나오는 자조능력과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