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신문학개론 자기 소개서)신문 방송 학과1977년 10월 10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 읍에 있는 한일 병원이라는 작은 병원에서는 연약해 보이는 한 작은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광부인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아버지의 뜻에 의해 순호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순호는 부모님의 첫 아들에 대한 커다란 사랑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리 건강하지 못해서 항상 병원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깟 바다인들 가르지 못하겠는가! 바로 순호의 건강이 날이 갈수록 좋아졌던 것이다. 이렇게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순호, 그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했던 적수가 나타나고 말았다. 바로 여동생이 태어난 것이었다. 순호는 이미 몸도 건강해져 있었고 세 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갖은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아기에게 지은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순호는 동생인 지은이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쏟아지자 사랑을 뺐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부모님의 관심 끌기에 나섰다.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다시 부모님의 관심을 끌려는 순호, 하지만 항상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몇 달이 흘러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순호의 동생에 대한 분노가 시작되었다. 바로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로 만든 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순호가 괴롭힌 방법들을 살펴보면 젖먹는 아이 뺨때리기, 누워 있는 아이 발로 차기 , 엄마 없을 때 얼굴 꼬집기 , 똥싼 기저귀 얼굴에 문대기 등등 수많은 방법으로 동생을 괴롭혔다. 이에 부모님은 순호에게 처음엔 회유책을 썼다. 어르고 달래고 장난감도 사주면서 동생을 잘 돌보라고 말을 했지만 순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악날 한 방법을 써가며 괴롭혔다. 이를 보다 못한 부모님은 드디어 강경책을 쓰기로 결정을 했다. 바로 순호를 외가집으로 귀향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며칠 뒤 순호는 한달 동안 외가집으로 귀향살이를 가게 됐고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됐다. 거기서도 심술통이 난 순호는 갖은 난리를 치며 한 달을 버텨갔다. 한 달이 지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순호, 하지만 역시 변한 것 없이 전과 같이 행동하였고 부모님은 결국 매를 들기 시작했다.이렇게 유아 시절을 고통속에서 자란 순호, 당연히 성격이 좋을 리가 없었다. 동내에서 알아주는 고집불통에다가 싸움꾼으로 당당히 유명세를 날렸다. 특히 여동생을 괴롭히던 버릇 때문에 동내 여자아이들만 보면 얼굴 꼬집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유치원에 가면서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됐다. 난생 처음으로 수많은 아이들과 한 방에서 같이 지내야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는 위압감을 느끼게 되고 점차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시절 갈래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호는 여자 같은 이쁜 얼굴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갈수록 내성적으로 변했고 성격을 반영한 듯이 학업 성적도 점차 떨어 졌다. 겨우 중간을 유지하며 5학년을 맞이한 순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학교에서 어린이 밴드부를 만들면서 특출난 외모 덕분에 단장을 맡게 된 것이다. 곧 그는 학교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고 곧 여자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남들 앞에 나서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오랬동안 순호의 기억에 남아있게 되었고 꿈도 남들앞에서 무엇인가 할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6학년이 된 순호는 5학년 때의 인기 여세를 몰아 학생회장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전학이라는 벽에 부딪혀 포기 하고야 말았다. 부모님이 장래를 위해 서울로 이사를 결정한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집안문제로 아버지는 그냥 그곳에 남아서 일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 순호, 동생 지은이 이렇게 세식구 만 서울로 상경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결국 사춘기를 맞이한 중학교 시절을 아버지 없이 지내야만 한 것이다. 물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 왔지만 잠깐씩 들리고 가는거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아버지를 어려워하던 순호는 점차 아버지와 멀어져갔다. 결국 사춘기를 두 명의 여자와 보내게된 순호는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여성스러운 성격까지 가지게 되었다.건국 중학교를 다니던 순호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앞에서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자신도 그들처럼 되고 싶고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의 내성적인 성격은 그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그냥 그런 대로 친구도 제대로 하나 없이 어느덧 대원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1학년때는 중학교의 성격으로 여전히 친구도 없고 공부도 중하위권에서 맴돌았다. 그냥 허무하게 또 다시 1년을 보낸 순호는 2학년이 되었고 드디어 인생을 같이 할 친구를 맞이 하게되었다. 신장이라는 이름의 그친구는 이름만큼이나 정말 특이한 친구 였다. 언제나 주위에는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고 성격도 활발했으며 여자 친구들에게도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순호는 그러한 그 친구가 너무도 부러워서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친구를 하나하나 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말투부터 시작해서 행동들이며 그 친구가 사는 옷까지도 비슷하게 사려고 노력했다. 특히 남들 앞에 나서서 쑥스러움 없이 말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그의 모습은 어릴적 자신이 꿈과 흡사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더 그를 열심히 따라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 친구와 어느새 정말 둘도 없는 짝꿍이 되었고 둘은 정말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성격도 어느 누구보다 활발히 변하게 되었다. 2학년 2학기 가 되어서 둘은 춤을 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고등학생들에게 유행하던 락카페를 전전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춤을 추러 다녔다. 그리고 어느새 순호는 춤에 정말 미처 있었고 꿈도 백댄서가 되는 것이 되 버렸다. 하지만 입시라는 족쇄는 순호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그 꿈을 밟아버렸다. 순호는 대학에 가야한다는 집안의 압력으로 고3이 되어서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 기본이 안돼 있어서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순호는 대학에 가지 못 할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수능시험을 보게된 순호, 예상 밖으로 중간 정도의 점수를 얻었고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않고 갈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며칠을 고민한 순호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여타 대학과 대진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대진대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것도 신방과에......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눈길을 끄는 두 개의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첫째가 어떠한 정치적 지도자나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국가든 간에 그들은 거의 다가 스스로를 민주주의자 혹은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권들의 실제 행동방식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권위주의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국가들도 민주주의라는 약방의 감초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적 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민주적으로 정권을 창출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법률을 입안할 때, 그 정권은 민주적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세계사를 돌이켜보며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국가들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기실 민주주의는 이론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극히 최근에 와서야 서구 몇몇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그 꽃을 피우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유럽과 북미 등지에 보관되어 있는 고대 그리스에서 18세기까지의 기록들에는 민주주의의 용어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서구 정치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정치형태로 등장한 것은 불과 100년의 역사를 약간 넘을 정도이다. 현재 서구과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정치형태를 갖고 있지만, 그들 정치형태의 역사는 민주적 정치의 많은 취약점을 드러내 놓았다.민주주의를 창조하며 유지, 발전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20세기 서구 역사에 의해 분명히 입증될 수 있다.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은 민주주의를 말살해 버리려고 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를 위해 다른 사상과 치열한 사회적 투쟁을 통해 얻어지고 발전되어 왔으나, 가끔 그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 자체가 희생되곤 했다. 결국 인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가지의 큰 줄기의 이념을 창조하여 서로 화합하고 사러운 일이다. 대표적으로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와 변질되어 적용된 개도국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위험한 민주주의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하여 몰락의 길을 걸었던 동구권과 소련의 사회주의, 그중 어느 곳에서도 모두 지금 현재로서는 희망을 발견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지구는 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양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벗어나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축을 기반으로 화합을 추구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러한 때 이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가부나 우월을 따지기보다는 그로서 깨달아 민주주의의 참 방향을 모색하고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제도로서 우리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고 참다운 자유와 자치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로서 만들어 나가는 실천적인 노력이 매우 시급하고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이며, 그것이 우리의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상이 현실화된다면 민주주의 야 말로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할 최고의 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괴리의 극복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이룩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나는 이 극복을 위해 민주주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매우 애매하고 부정확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에 대한 제한이 불가피하다.그러나 이와 같은 개념 규정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라는 개념 속에는 공통 분모 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브라이스(James Bryce)는 민주주의란 국가의 지배 권력이 특정 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의 구성원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되고 있는 정치 형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듀이(John Dewey)도 민주주의란 단순한 정치 형태 이상도 아니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상에서 보면 민주주의란 시민이 통치 작용에 대해서 동의하고, 또 그 통치 작용의 주요한 참가자가 되는 정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민주적 정치체제에서 시민은 궁극적으로 정치 권력의 근원이 되고 있으며, 또 비교적 광범한 개인의 자유 영역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공권력이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자치적 또는 자율적 결정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가 존재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민주주의라고 불리 우는 정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최소한의 특징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첫째로, 민주 정치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민중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충족시킬 태세를 갖추고, 또 민중이 반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억제할 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둘째로, 공동체의 각 구성원은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다른 동료들과 동일한 기회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셋째로,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유권자들이 당위의 사항에 대해서 합의하지 않는 경우에 유권자들의 다수파가 승리하게 된다는 인식 하에 운영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만 모든 의사 결정은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합의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위의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 정치적 평등, 국민협의, 다수결의 원칙 등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주의, 우리가 능동적으로 앞서서 만들어 나가는 민주주의,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가 대안으로 제시 될 것이며 이의 적절한 제도화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 혹은 참여적 민주주의는 시간과 규모의 문제, 인간 능력의 한계문제, 다수 횡포의 문제들의 이유로 실현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범위 내에서 이의 이념을 수용하고 제도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증대되고 있다. 현대의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로 인해 급속히 친밀해지고 가까워지고 있는 우리들, 컴퓨터와 정보통신책 은 국민들에게서 그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분별력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을 기억하자. 이제 우리가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켜 나갈 수 있는가, 얼마만큼 철저한 계몽과 교육으로 의식을 일깨우는가 하는 문제만 남을 뿐이다. 시민들에게 기회를 주고 참여민주주의로 유도를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민주주의는 정치 현실을 무시하는 유토피아이며 시간과 비용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하는 비효율적인 정치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는 이미 선진 민주주의국가들에서 현실화되고 있으며 또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 우리가 그 실현가능성이 있는데도 포기하고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우리나라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였다. 자유 민주주의가 바로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성패에 관련된다. 자 이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먼저 그의 정치적 전략을 개발함에 있어서 프로그램식의 접근법을 채택해야 한다. 이미 타성에 젖어있는 시민들을 체계적인 참여적 개혁의 프로그램으로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심사숙고, 의제설정, 귀기울이기, 감정이입하는 관심을 이끌어 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의식의 개혁은 얼마만큼 제도가 효율적으로 만들어지고 활용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들을 기회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 발안과 국민투표를 광범위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그들을 정치적 의제 결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또 현대의 과학 문명을 활용하여 전자 우편등을 통한 투표와 문제해결들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보편적인 시민봉사와 훈련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제도도 필요하다. 물론 이웃 시민정신과 공동활동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지방의 문제는 지방적 수준에서 선택할 기회가 많이 제공되어야 한다. 머지않아 공간적으로 가까운 지역에는 이웃회합 그리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는 원거리 영상 미팅 그외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서비스가 제공 될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온전한 정신으로 프문이다. 이제 민주주의는 가까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와 같이 호흡하고 같이 살아 나가는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 문자그대로 그것은 시민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정부보다는 시민에 의한 자치이다. 능동적인 시민들은 반드시 모든 수준과 모든 경우에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기본적 정책들이 결정되는 그리고 의미 있는 권력이 행사되는 특정한 경우에 종종 참여한다. 자치는 의안 작성 , 심사숙고 , 입법, 정책집행 에 계속적인 시민적 참여를 촉진시키도록 계획된 제도들을 통해서 성취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자유 , 평등, 사회정의와 같은 특징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기함이 없이 미신적인 독립적 근거들에 대한 의존성과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할수 있다. 이제 대략 정리하면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들은 바로 민주주의 란 이상 자체에 잇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스스로가 자각하고 참여할 때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수동적으로 청취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토론에 참여한다면 제안들은 재공식화 되기도하고 새로운 제안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조율되면서 합의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정과정에 참여하게되고 지방적 수준에서의 결정내림이 현저하게 증대될 것이다. 여기서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서지 않는다면 정책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참여를 의무화하거나 그들의 견해를 반영하고 충분히 검토한 후에 판단하게 하면 될 것이다. 이제 냉소주의, 정치불신, 혐오감, 무관심, 개인주의, 소외들로 위기를 맞고 있는 민주주의는 그 권력을 국민 모두가 공유할 때 극복 될 수 있다. 그들에게 정책 결정의 권한과 참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권력을 국민에게 골고루 배분하고 그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민주주의로 이끌 수 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새로운 제도들과 절차적 혁신들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위 제안들이 너무 많은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지을 지도
발표문 10월30일 (3분반)발표자 : 권순호, 김영석, 김은영동 성 애1. 동성애란 무엇인가?우리가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란 말을 사용할 때 구미의 학자들에 따르자면 이에는 크 게 세가지 입장이 있다. 그것은 각각 행동적 관점, 자기정체성적 관점, 경향성적 관점이다.1>행동적 관점에 따르자면 동성애는 성행동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동성애 란 성행위 중 동성간에 이루어지는 성행위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 란 "동성애"라 불리는 행위를 한 적이 있거나 행하고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2>자기정체성적관점에 따르자면 "동성애자"란 말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정의하는 사 람을 가리킨다. 즉, 한 개인이 이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이성애자로서의 삶 을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한 그는 동성애자인 것이다.3>경향성적 관점에 따르자면 "동성애"란 동성에 대해 성적-애정적-정서적 끌림을 느끼는 경향을 가리킨다. 당연히 "동성애자"란 "동성애"란 경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것이다. 자기정체성적 관점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는 그 사람이 동성애자 냐 아니냐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즉, 지속적으로 이성과 성관계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성적-애정적 관심이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향해있다면 그 사람은 동성애자라는 것이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그러면 이 세 입장 중 어느 것이 "동성애(자)"를 보는 옳은 입장일지 생각해 보겠다. 이를 위해 김씨와 이씨의 두 사람을 예로 들어본다.김씨 -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성에 대한 애정적-성적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옆 집 사는 선배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 있었을 뿐 감히 그를 안거나 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김씨는 빨리 손자를 보고 싶어하는 부모님의 요구 때문에 젊은 나이에 떠밀리듯 이성과 결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는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기는 커녕, 게이바 따위에 나가 동성과의 성적접촉을 가질 용기떤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갖건 간에 이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한 다. 하지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멋진 동성만 보면 가슴 떨려하거 나 화장실에서 적어온 전화번호를 밤마다 돌리는 박씨를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 을까요?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세 번째 관점인 경향성적 관점이 동성애와 양성애, 나아가 이성애 를 파악하는 가장 올바른 틀이라고 보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자면 김씨는 이성과 성관계 를 가지기는 하지만 명백한 동성애자고, 이씨는 동성과의 성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명백한 이성애자다. 그리고 스스로가 동성애자임을 극구 부인하는 박씨 또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기기만에 빠졌을 뿐, 의 심의 여지없는 동성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과거에도 동성애는 존재하였는가1>고대 그리스최소한 기원전 800년 전부터 그리스와 헬레니즘 세계에서 나이 든 남성과 젊은 남성 사이에서, 나이든 여성과 젊은 여성 사이의 동성애 관계는 널리알려져 있다. 크레타의 고 대 도리아인들의 소년애의 관습은 나이 든 젊은이가 맘에 드는 소년을 일종에 상징적으 로 "포획"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함께 도망가자" 라고 하는 낭만적인 연인관계를 맺었고 , 그들의 가족과 지역 사회는 그들의 성적인 관계를 인정하 는 표시로 선물을 주거나 향연을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결국에 연장자인 남성들은 결혼 하고 남은 소년들은 다시 자기보다 어린 애인을 구한다.고대 그리스에서의 나이 든 남성과 젊은이 사이의 구조적인 관계는 영예와 사랑의 법칙 에 의해 형성된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아레테(arete: 남성의 힘)의 개념이 중심이 되 는데, 그리스의 이상적인 아레테-즉, 남성의 정력, 영예, 용기, 아름다움 그리고 고결함- 는 세속의 세계에서는 운동선수와 군사들로, 신들의 천상의 세계에서는 권력과 신들의 자손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아레테의 물질적인 형태를 상상할 때, 그리스 인들은 옆에서 함께 싸우는 사랑하는 이(lovers)와 그들의 사랑 받는 이 (beloved ones)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그 수가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전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소크라테스의 시대까지는 남성/소년 관계의 교육적인 성격이 강조되었다가, 플라톤의 시대에 와서는 이런 관계의 성애적인 측면에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즉, 교육적인 기능이 군사적인 기능으로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로맨틱한 교육은 나이 든 남성이 소년을 사교계에 소개하고, 정치적 활동에서는 한 폴리스의 시민으로서의 그의 명예를 보호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관습이 결혼이나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상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만 한다. 실제로, 그리스의 시민은 적절한 집 안과 혼인을 하고 가문의 이름과 재산을 이어갈 아이의 아버지가 되지 않으면 완전한 개 인이 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그리스와 후기 로마제국의 대부분의 지역에 있어 다리사이(구강?) 성교 혹은 항문성교 는 대략 "호모에로틱(homoerotic)"을 뜻하는 단어로 기술되었으나,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 람들이 "동성애자들"이라고 불린 경우는 없었다. 여기서 강조점은 "존재 자체(being)"보 다는"행위 자체(doing)"에 있었고, 한 사람의 내적인 성적인 본성보다는 그의 사회성 (sociosexual)적인 관계에 있었다. 소년들과의 성적인 관계나 그 관계에서의 특정한 행동 들은 그 시대의 성역할과 일치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이런 남성들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다른 남성들과 구분된 틀 속에 넣으려 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동성애자 (homosexual)와 게이(gay)라는 성적 정체정에 대한 구분은 그 당시 존재한 것이 아닌 현 대사회가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성적 정체성은 현재의 동성애자라는 개념으로 부터 그리스와 동서양의 모든 고대 사회를 나누며, 성적인 범주에 의해 사람을 분류하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일반적으로, 성인 자유시민간의 동성애 관계는 선호되지 않았다.성간의 동성애에 대하여 지대 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진주 강(Pearl River) 계곡 지방의 실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여자들의 특수한 경제적인 역할과 계급에서 비롯된 여성간의 동성애가 여성-동성애 의 역사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여성간의 동성애와 레즈비언니즘에 대한 자료 를 찾아보기에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다.중국의 시나 설담들은 일반적으로 동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본질적인 것으로 나타내기보 다는 인간이 느끼고 욕망 하는 그러한 관심사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도 역시 동성간의 성 관계를 "존재자체"보다는 "행위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성적 정체성 이나 "동성애자" 그 자체의 개념을 중국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비서구사회 문화의 관점 내에서, 이러한 경향은 인간의 성이 단순 논리의 내재적인 성적 욕구나 욕망이 아닌 친족, 결혼, 사회적 역할과 습관의 결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헌에서 는 동성애 욕구를 특정한 사람들의 영속적인 성격으로 보는 관점들이 있다.네덜란드 학자 로버트 반 귀릭(Robert van Gulik)은 "판사 디(Judge Dee)"의 유명한 명 나라의 소설들에서 동성과의 성적 관계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들의 "본질"의 한 부분으로 "이상한" 쾌락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전형적으로 연령, 성, 사회적 지위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그것은 그 사회의 성의 구성형태에 영향을 주나, 그러한 양식 들은 인생 전방에 걸쳐 개인들을 변화시킨다. 왜냐하면 오직 아동과 청소년들은 연장자 남자들과의 동성애 관계에 있어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며, 어른이 되면 그들은 젊은 남자 들과의 성관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들도 옛 문헌에서 발견 되어지는데, 중국의 역사는 많은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동시에 젊은 남자 애인을 두면서 동시에 동성연애와 이성연애를 경험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또 하나의 중국의 연령-구성적인 동성애 관계의 관습이 중국 남동부의있어서 과거에서부터 독점적이지 않다는 일깨워 주고 있다.봉건시대 일본 사회의 동성애는 그것이 가지는 고대사회와 근대사회의 교량적 성격으로 비교문화 연구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일본 사람들은 신화와 전설 을 통하여 대중적으로 동성애-남색(nanshoku)-가 중국의 승려 국개(Kukai)에 의하여 소 개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일본 에도(Edo) 막부시대는 가부키 극예술과 연관한 사무라이 전 사 및왕실 사회에서의 성별-전환 및 연령-구조적인 동성애 관계의 특이한 예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이러한 전통의 흔적들은 현재의 일본사회의 게이/레즈비언과 동성애에 관한 문 학 및 상징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비슷한 문화 양식이 중국과 다양한 문화적 측면을 공유하는 한국 고대 사회에서도 아동 들에 대한 성적인 애착이 지배 사회 및 다른 계층에서 알려지고 실행되었다. 신라시대의 "꽃소년 (Hwarang, 화랑)" 이라고 불리는 집단과, 또한 조선의 "미동 (good-looking boy)"의 개념은 연장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동성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특히 이 아름다운 소년들은 악사와 연예 단원들과 동행하며 연극, 노래 등에서 소녀와 같이 치장 을 하였고, 연장자 단원들과 "결혼"을 하여 "아내"의 역할을 하였다. 비록 그 소년들의 연 령-구조적인 그리고 성별-교차적인 동성애 역할의 예술적인 측면도 매우 중요하지만, 샤 머니즘과 주술의 전통도 이러한 관습들과 연관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동 성애 관습이 단순히 연령과 성별의 기능에 따르지만은 않는 첫 번째 예를 볼 수 있다.3.동서양 규제의 역사가톨릭과 기독교 등의 종교에 바탕한 서구 문화는 성경의 해석과 가르침에 따라 동성간 성행위를 죄악시해왔다. 성경에 기록된 동성애 금지는 로마법과 유럽의 교회법 등에 영향을 줘 중세 영국에서 항문성교를 시도한 남성들은 교회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생매장이나 화형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1804년 프랑스에서 제정된 나폴레옹있다.
광장 을 읽고...신문방송학과19960729권순호최인훈의 「광장」이라는 소설을 접하면서 나는 책의 제목이 무언가 커다란 것을 내포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졌다그러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처음 바라본 이데올로기 소설이라는 그 책의 짤막한 소개는 「광장」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일으켰다. 선입관을 가지고 읽어서일까? 틈틈이 그 책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라는 주제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파악해려고 애쓰며 읽었다. 주인공 이명준의 행동, 대사, 독백 등을 열심히 읽었지만 ‘책이 소설치고는 난해하다.’라는 느낌과 광장에 대해서 책의 소개정도와 같은 내용밖에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나는 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작가가 주인공,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어떤 사상을 찾아 읽기보다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이명준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보게 되었다. 줄거리를 대강 알고 읽었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해서 문장하나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것처럼 확실히 이명준은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방황을 했다.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했던 것은 민주주의에도, 공산주의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작가는 그저 이명준이 민주주의 쪽으로도 공산주의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시각에 의의를 두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가장 큰 의의일지도 모르지만 난 촛점을 여기에 두고 싶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아버지를 향한 이명준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전략)……저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보람 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었습니다.정말 삶다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남녘에 있을 땐, 아무리 둘러보아도,제가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광장은 아무데도 없었어요. 아니, 있긴해도 그건 너무나 더럽고 처참한 광장이었습니다.……(중략)……당이 명령하는 대로 하면 그것이 곧 공화국을 위한 거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버리시오’라구요. 아하, 당은 저더러 생활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이면 일마다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걸.……(후략)이 책의 제목과 구지 관련을 시켜보자면 이명준이 찾고자 했던 것은 광장과 밀실이었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말이 있다.「광장은 대중의 밀실이고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이명준은 남한, 즉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가 보장한다는 대중을 위한 광장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광장은 인간의 비루한 욕망, 탈을 쓴 권세욕, 그리고 섹스로 가득차 있을 뿐, 광장에서 넘쳐야 할 바람직한 사회, 인간관계를 광장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더럽고 처참한 광장」만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중의 밀실」로서의 광장을 침해 당하고, 월북했지만 밀실을 전혀 배려해 주지 않는 공산주의에 그는 또다시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택한 길은 ‘중립국’이었다.그 어느쪽에 맞부딪힘없이 도피해버린 것이다. 그런 도피길에서 난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았다고 믿는다. 그의 삶에서 중요했던 것, 그에게 꼭 필요했던 것은 이데올로기도, 광장도, 밀실도 아니었다. 그는 앞의 세 가지 중 어는 것도 찾지 못했다. 그가 찾은 것은 바로 사랑이었던 것이다. 물론 광장이 처음 쓰여졌을 때에는 사랑에 대한 비중이 거의 없었다고한다. 이명준의 자살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 방황을 하다가 도피해버린 것으로 밖에 설명한 수가 없었다. 그러나 4번의 개작끝에 완성된 광장은 갈매기 두마리를 은혜와 자신의 딸로 봐서, 이명준의 자살은 사랑을 찾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자살을 함으로써, 즉 사랑을 되찾음으로써,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