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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실태와 대책과제
    學 士 學 位 論 文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실태와 대책과제00 00 大 學 校 社 會 科 學 大 學0000學科000000指導敎授 0000002007年 5月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실태와 대책과제指導敎授 000000이 論文을 社會科學學士學位請求論文으로 提出함2007年 5月00 00 大 學 校0000學科000000000000의 社會科學學士學位請求論文을 認准함2007年 5月委員長委 員委 員00 00 大 學 校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실태와 대책과제목차○ 요약Ⅰ. 비정규직에 대한 정의Ⅱ.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현황1. 근로 형태별 비정규직 여성근로자 규모2.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분포가. 연령계층별 분포나. 교육정도별 분포다. 혼인상태별 분포라. 산업별 분포마. 직업별 분포Ⅲ.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근로실태와 비정규관련법1.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근로조건가. 임금수준나. 복지수혜수준다. 사회보험 가입비율2. 비정규직 고용 유형별 관련법과 문제점가. 기간제 여성근로자나. 시간제 여성근로자다. 파견근로자Ⅳ. 결론1. 정리2. 대책과제○ 요약현재 여성노동시장에서 간과하여선 안 될 변화는 경제위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 비정규직의 증가가 빠르게 대규모로 전진된다는 점이다. 현재 여성 비정규직 근로는 동일한 범주로 분류할 수 없는 다양한 고용형태가 출현하고, 직종 및 산업에 따라 근로의 양태가 변화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구분되는 집단 내부에서도 동일한 집단으로 간주하기에는 매우 다른 근로방식, 임금, 고용조건 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각 비정규근로자 집단이 요구하는 정책대응 역시 매우 상이한 현실이고,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대책과제의 발굴은 실질적으로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여성근로자의 비정규직화는 성차별과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다중차별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성근로자가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열악한 위치와 저임금, 기업의 고용조정의 용이함은 여성 취업에 대한 요구와 일자리의 부재라는 노동시장 제약과 함께 여성근로자의 수적고 파견), 용역), 일일) 등 비전형) 근로자가 1,015천명, 시간제 근로자)가 790천 명 순으로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월대비 여성 비정규직 증감을 보면 비정규직 가장 큰 규모를 보인 한시적 근로형태가 39천 명 감소한 반면 시간제와 비전형 근로형태는 각각 54천 명과 74천 명 증가하였다. 이에 여성 임금근로자 대비 한시적 근로형태는 25.5%, 시간제는 12.3%, 비전형 근로형태는 15.8%의 비율을 보였다.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근로형태별 분포단위 : 천 명, %2005.82006.8임금근로자 중비율(2006.8)비정규직2,7472,75242.7한시적1,7511,71226.6시간제73679012.3비전형9411,01515.82.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특성가. 연령계층별 분포비정규직 여성근로자를 연령계층별로 보면 40대가 717천 명으로 가장 많고, 30대 653천 명, 20대 617천 명, 50대 411천 명, 60세 이상 271천 명, 10대 82천 명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0대가 32.2%로 가장 낮았고, 60세 이상 여성은 73.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연령계층별분포단위 : 천 명, %비정규직임금근로자 중비정규직 비율15~198268.920~2961732.330~3965339.140~4971744.950~5941153.260+27173.2나. 교육정도별 분포여성 비정규직 근로자의 교육정도별로 보면, 고졸이 1,191천 명으로 여성 비정규직의 43.3%를 차지했고 초졸 470천 명, 대졸 이상 420천 명, 중졸 338천 명, 전문대졸 331천 명 순으로 비정규직 규모가 크게 나타났다. 한편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교육정도가 낮을수록 높게 나타나서, 초졸 여성 임금근로자의 62.5%, 중종 50.5%, 고졸 44.2%, 전문대졸 34.3%, 대졸 이상 30.9%가 비정규직이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중 여성비율의 경우 초졸에서 가장 높았으나 다음으로 순위로 전문대졸,규직 임금 대비 비율61.841.8100.066.0주 : 2006.3~6월 월 평균 임금 기준.임금형태별 분포를 보면, 월급제가 38.2%, 일급제가 21.4%, 실적급제가 17.4% 순으로 높은 비율을 보여, 정규직 여성은 대부분이 월급제로 79.6%를 차지했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한편 근로형태별로 보면 기간제 근로자)(43.5%)와 파견(66.2%), 용역(69.4%)의 경우에는 다른 근로형태에 비해 월급제 비중이 높았고, 특수고용)(89.3%)과 가정 내(51.9%)근로자)는 실적급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여성근로자의 근로형태별 임금형태임금근로자정규비정규한시적기간제시간제비전형파견용역특수고용가정 내일일시급제4*************2*************(7.0)(2.6)(12.8)(11.1)(11.6)(33.9)(7.6)(4.6)(5.7)(4.6)(8.1)(19.6)일급제8**************************21150(13.2)(7.1)(21.4)(21.1)(22.5)(22.4)(22.4)(20.0)(20.5)(5.6)(13.1)(65.2)주급제3*************15(0.5)(0.2)(0.9)(0.6)(0.6)(1.8)(0.8)(0.0)(0.0)(0.5)(0.6)(2.2)월급제3,9982,9381.*************42431590400(61.9)(79.6)(38.2)(47.3)(43.5)(25.6)(23.8)(66.2)(69.4)(0.0)(25.0)(0.0)연봉제*************0521359000(9.1)(9.0)(9.2)(14.5)(16.3)(0.3)(1.3)(7.7)(3.9)(0.0)(0.0)(0.0)실적급제*************2*************(8.3)(1.4)(17.4)(5.3)(5.4)(15.3)(43.9)(3.1)(0.4)(89.3)(51.9)(13.0)기타826626100010(0.1)(0.1)(0.2)(0.1)(0.2)(0.8)(0.1)(0.0)(0.0)(0.0)(0.6)(0.0)간이 총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이 법으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는 이로 인하여 기간제 근로자의 반복고용갱신이 불가능하게 되고 이직이 불가피하게 되어 고용불안이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2005년 한국여성개발원이 수행한 여성임시직근로자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며 전체 조사대상자 1천553명 중 44%가 현재 근로하는 직장에서 재계약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약을 한 집단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평균 재계약회수는 2.9회에 달해 약 3회의 반복계약갱신을 하고 있는 사례가 많았다. 이 법의 결과로 1년을 기준으로 2회의 계약을 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므로 기업들은 2회의 계약 후 다른 인력의 신규채용을 선호할 것이므로 현재 기간제 근로자의 노동이동은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반복계약이 이루어진 부문이 비교적 인력수급이 원활한 100인 이상 기업들임을 고려한다면 정규직화보다는 신규고용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고용불안의 심화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일반적으로 신규채용 및 훈련에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직종은 기업의 핵심직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단순반복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일수록 인력대체의 비용이 낮고 신규채용 및 훈련에도 낮은 비용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용투입의 분포에서 전문가 집단은 이미 정규직 고용비중이 높으며 단순노무직의 경우 정규직화의 유인이 낮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간직종에 위치한 집단을 대상으로 계속고용의 가능성이 발생할 것이며 기업의 인력운용이라는 큰 틀에서 기업들은 이들의 계속고용을 유지하나 분리된 직군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적응을 해나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이러한 기업의 대응은 규모가 큰 기업을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또 다른 고용형태의 출현이 가능해질 것이다.이러한 변화들은 체계적인 인력운용을 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여성근로자를 중심으로로자를 고용할 경우에는 즉시 직접고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논란이 되었던 파견허용대상업종은 현행과 같이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나 시행령에서 현재보다 허용업종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향후 파견허용업종의 확대에 따라 여성파견근로자의 확대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파견법에 있어서의 쟁점은 파견허용업종의 문제, 파견기간제한, 고용의제조항 문제로 정리되어 왔으며 파견법은 이러한 쟁점을 고루 담고자 하였다. 파견허용업종을 제외한 파견기간제한 및 고용의제조항은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 여성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었던 파견허용업종문제는 시행령으로 넘겨진 상태로 여전히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근로자파견대상업무한국표준대상업무비고직업분류213컴퓨터 전문가의 업무241사업 전문가의 업무243기록 보관원, 사서 및 관련 정보 전문가의 업무사서(24321)의 업무를 제외한다.2444언어학자, 번역가 및 통역가 업무31141전신?전화통신 기술공의 업무보조업무 중 난청지역에 수신상태를 확인?점검하는 업무에 한한다3118도안사의 업무3121컴퓨터 보조원의 업무31317녹화장비 조작원의 업무보조업무에 한한다31325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장비 조작원의 업무보조업무보조업무에 한한다33409달리 분류되지 않은 기타 교육 준전문가의 업무3431관리비서 및 관련준전문가의 업무347예술, 연예 및 경기 준전문가의 업무자료입격기 조작원(4113)과 계산기조작원(4114)의 업무를 제외한다411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의 업무414도서, 우편 및 관련 사무원의 업무4215수금원 및 관련 근로자의 업무4223전화교환 사무원의 업무전화교환사무원의 업무가 당해 사업의 핵심업무인 경우를 제외한다5113여행 안내요원의 업무5122조리사의 업무관광진흥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관광숙밥업의 조리사업무를 제외한다5131보모의 업무51321간병인의 업무간호조무사의 업무를 제외한다5133가정 개인보호 근로자의 업무52204주유다.
    경영/경제| 2008.10.25| 21페이지| 3,000원| 조회(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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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야마부시코를 보고.. 평가A좋아요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고...새벽 늦은 시간, 컴퓨터를 키고 며칠 전 받아놓은 영화를 틀었다. 그 이름도 생소한 “나라야마 부시코”. 일본 영화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내용도, 시대배경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눈으로 뒤덮인 자연 경관을 맨 먼저 보여준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가 정말 무방비하게도 남성들의 노상방뇨장면을 봐버렸다. 당황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일단 진정하고 다시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작은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 자급자족의 원시공동체 생활, 무질서한 성생활, 옳고 그름의 시비가 모호한 그 곳에서는 70세가 된 노인은 나라야마에 버려진다는 풍습이 있다. 사실 이건 내가 보기에 풍습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식의 관념에서 나온 방식인 듯 하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찾아보니 “나라야마 산의 애절한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서 이 애절한 노래는 주인공 가족들이 자꾸 자꾸 부른다. 70세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해서 일을 잘 하는 오린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야마에 가야한다. 아들 다츠헤이는 이런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결국 다츠헤이는 아버지처럼 공동체의 관습을 배신하진 못한다. 다만 나라야마 산 정상에 올라가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힘들게 어머니를 그 곳까지 모셔다 드린다.이 영화는 “기로전설”이라는 민간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로전설”이란 사람이 노쇠하여 70세가 되면 산속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풍습에 따라 한 아들이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속에 버렸다. 그 때 같이 간 그의 아들이 지게를 가져가려 하자 이상히 여겨 물으니 나중에 “아버지가 70세가 되면 이 지게로 산에 버리려고요”라고 대답하였다. 이를 듣고 깨달은 아버지는 다시 지게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 효도하여 이런 풍습은 사라졌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풍습에 따라 슬퍼할 뿐 이 풍습을 무시하진 못한다. 이 공동체에서는 음식을 훔치는 것이 가장 큰 죄이다. 마을에 아주 큰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음식을 도둑질하면 사람을 빠뜨려 죽인다. 이들에게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문제여서 아들을 낳으면 논에 내다 버리고 딸을 낳으면 소금장수를 만나 소금과 바꾸기도 한다. 생산이 불가능한 겨울이 오면 사람들의 이런 행태들은 더더욱 심해진다. 모든 것이 먹고 사는 것과 결부되어 규정짓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츠헤이의 효도심은 쓸데없는 감정낭비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가족들이 부르는 애절한 노래는 단지 흥얼거리는 리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이 영화에서 생존의 이유란 먹고 사는 것과, 性의 문제 밖에 없는 듯싶다. 대체로 부정해 보이지만 또 그들의 기준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 여기서 지금의 문화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았다. 이들은 먹을 것을 훔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지만, 마을의 여자는 돈을 주거나, 감자를 주기도 하여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남편이 마을 남자들과 잠을 자주라며 유언을 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을 훔치는 것은 물론 범죄이지만, 먼저 이를 불쌍히 여겨,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동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성매매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아주 불온하고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토록 다른 사회적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이것이 문명의 발달과 연관 짓기엔 어폐가 있다고 보는 바이다. 문명의 발달이란 말 자체에서의 어폐이다. 문명은 어느 것이 발달했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문명이 발달했고 어떤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느 누가 정한 기준인가. 그러한 발달의 기준은 또한 무엇인가. 이런 것들은 모두 지배계급들과 특권층에 의해 만들어진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문명이 더 발달했기에 자신들의 지배와 특권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마을과 지금 우리의 문화가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말할 수 없다. 그 당시의 상황이 기준을 만드는 것이지 절대기준에 의한 시비가 가려짐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굶주림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기 때문에, 음식을 훔치는 것은 곧 굶주림으로 이어져 사람들을 큰 벌을 받게 했다. 그것이 죽음이다. 훔친 이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음식을 훔쳐 누군가를 죽게 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훔친 사람들은 곧 죽게 한 것이다. 이것은 이 때 당시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관점으로는 꽤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나는 이 때의 시대상황으로 이해하기로 하였다.
    독후감/창작| 2008.10.25| 2페이지| 1,000원| 조회(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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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의 고독을 읽고 평가B괜찮아요
    백년의 고독을 읽고이 소설은 한 일가가 백년동안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의 이야기 이다.처음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대부터 마지막 이모와 조카 사이의 자손 아우렐리아노까지의 시간은 약 백년정도 소요되지만 그 시간은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아 보인다. 그들은 각자 사랑하는 또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또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근친상간을 하고 또 정부를 가지며 어찌 보면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그 속에서 온갖 질투와 시기심과 사랑과 애욕과 절망과 시련과 고통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한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겪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두려운 모습들과 어떨 때는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주인공들의 행동들까지도 나에겐 다 교훈이 되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김약국의 딸들’이란 작품도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한 가문의 역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으며 또 결말도 비극적이어서 그랬나 보다.맨 마지막에 나와있던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있는 라는 말은 정말 놀랍기 까지 했다.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점점 나는 이 소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양피지의 글귀에 정신을 차렸던 것이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물론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와이고 최후의 인간은 아마란따 우르술라와 아우렐리아노가 낳은 아직 이름도 결정하지 못한 아기일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엔 양피지 글귀에서 ‘묶여 있고.....되고 있다.’ 라는 말은 더욱 섬뜩하고 무섭게 다가왔다. 그 진행형 말투는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 순간에 그 글을 읽을 것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예언인 것이다. 잊혀진줄 알았던 멜키아데스가 다시 내 머리 속에서 살아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것도 잊혀질 때처럼 희미한 모습이 아닌 살아 생전 우르술라와 만나던 때처럼 아주 정확하게 말이다.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처음 마꼰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에게 농삿일을 가르치고, 어린 아이를 키우고 가축을 사육하는 일에 조언을 하고, 마을이 번창할 수 있도록 모든 이들과 협력하여 심지어 육체 노동까지도 마다않던 일종의 젋은 족장으로 활기차고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남자로 살아갔다. 초창기부터 그의 집이 그 마을에서 가장 좋았기 때문에 다른 집들도 그 집 형상에 따라 비슷하게 꾸며졌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집 안에는 널따랗고 햇빛이 잘 드는 거실, 화사한 꽃들로 장식한 테라스형 식당, 침실 두 개, 거대한 밤나무가 있는 마당, 잘 가꾸어진 채마밭, 염소, 돼지, 닭들이 평화롭게 한데 모여 사는 우리가 있었다. 그 집에서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서 사육이 금지되어 있던 유일한 동물은 싸움닭뿐이었다. 우르술라의 근면성도 남편 못지 않았다. 평생 단 한번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활동적이고, 세밀하고, 엄격하고, 불굴의 활력을 지닌 우르술라는 항상 사라사 치마가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를 달고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집 안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르술라 덕분에 흙을 다져서 만든 집안 바닥, 석회를 바르지 않은 진흙담, 자신들이 손수 만든 거친 목재 가구들은 늘 깨끗했고, 옷을 보관하는 오래된 장롱들은 은은한 박하향을 발산하고 있었다.그러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의 글귀처럼 밤나무 밑에서 죽어 갔다. 한편 우르술라는 점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면서 조금씩 몸이 줄어들어 태아처럼, 미라처럼 되어갔고,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에는 잠옷 속에 말려는 작은 살구씨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죽은 몸으로 성 목요일 아침을 맞이했는데 그 당시 백열다섯 살에서 백스무 살사이라고 한다. 그녀가 죽었을 땐 이미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백년의 고독이란 책 제목은 백년 동안의 근친 상간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처음 마꼰도 설립의 기본 동기도 사촌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결혼한 우르술라가 근친 상간으로 인해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부부 생활을 거부하게 되고, 이를 비웃는 쁘루덴시오 아길라르를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죽임으로써 이루어졌던 것이다. 근친 상간의 결과에 대한 가공할 만한 공포로 인해 우르술라는 후손들에게 엄한 주의를 주지만 근친혼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가문의 삶에서 근친 상간적 경향은 영원히 바로잡을 수 없다. 형 호세 아르까디오와 동생 아우렐리아노는 삘라르 떼르네라를 공유하고, 자매간인 레베까와 아마란따는 삐에뜨로 끄레스삐를 동시에 사랑하고, 쌍둥이 형제간인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삐뜨라 꼬떼스를 공유하며, 레베까는 친오빠처럼 자란 호세 아르까디오와 결혼하고, 아마란따와 조카 아우렐리아노 호세도 근친 상간 직전까지 이른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모와 조카사이닌 아마란따 우르술라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관계를 맺어 돼지꼬리가 달린 자손을 낳고, 선조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종말을 고한다. 이 외에도 실제로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근친 상간의 경향이 드러나는 관계 또한 많이 발견된다. 아르까디오의 어머니 삘라르 떼르네라에 대한 욕정, 미녀 레메디오스와 아울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열 일곱 아들들과의 관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자신의 딸 레나따 레메디오스와의 관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르난다 사이에서 태어난 호세 아르까디오와 증조고모할머니 아마란따와의 관계 등이 그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10.25| 3페이지| 1,000원| 조회(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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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운의 생애
    백남운의 역사인식目 次Ⅰ. 서론Ⅱ. 사상적 배경Ⅲ. 한국사에 대한 인식1. 원시공산사회2. 고대노예국가3. 아시아적 봉건국가Ⅳ. 역사인식과 정치노선의 접합Ⅴ. 결론Ⅰ. 서론우리나라의 식민지시대 그리고 해방 후의 격동기를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백남운의 활동영역은 광범위하였다. 그는 식민지시대 대학 강의와 저술활동을 통해 독립정신을 고취했고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기술했다. 또한 일제의 패망 후에는 직접 정계에서 투신하여 미국과 소련에 의한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자주적인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모택동사상의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세력과 제휴, 정치활동을 전개하면서 한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임을 자처한 조선공산당과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Ⅱ. 사상적 배경백남운은 동경상과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기술하였다. 그는 민족의 역사를 특수화하려고 할 경우 세계사적인 발전법칙과는 동떨어진 역사를 기술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일제의 식민통치도 합리화 될 소지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리하여 한민족을 특수한 전통의 아들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진화된 정상적인 인간으로, 다른 문화민족의 역사적 발전법칙과 구별될 만한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걸어오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반성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세계사적인 역사법칙을 한국역사에 공식적으로 기계적으로 적용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한 사회의 역사발전을 고찰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발전법칙과 함께 그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자신이 특수성과 일반성의 변증법적 관계를 무시하고 양자를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식민통치하의 참담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한민족이 처한 현실을 특수한 것으로 보지 않고,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백남운은 자신의 경제사 방법론을소가 그 사회의 기초가 된다는 것, 둘째, 잉여노동 잉여 생산물 잉여가치 3자에 관한 사회적 관계가 인류사회의 바탕을 규정한다는 것, 셋째, 사회적 관계에 있어 내적 발전이 어떤 단계에 도달하면 역사적 비약 즉 질적 전환이 생긴다는 것 등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과학적 역사관을 소유할 경우에만 인류과거의 역사를 사실 그대로 과학적으로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백남운의 과학적 역사관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서문에 나오는 견해를 압축한 것으로, 마르크스는 생산관계의 종합이 진정한 사회적 기초로 사회의 경제적 기초를 구성하며 그 위에 법률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발전의 일정단계에서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기존의 생산관계와 갈등을 일으켜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게 되므로, 사회혁명이 발발하며 전 상부구조가 급속히 변화한다고 주장했었다.이처럼 백남운은 한민족의 특수성을 부인하고 마르크스주의의 논리를 수용하여 한국사를 분석했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일반성에 입각하여 한민족의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Ⅲ. 한국사에 대한 인식백남운이 말한 경제사란 각 시대에 있어서 경제조직의 내면적 관계, 내재적 모순의 발전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생산관계의 계기적 교대의 법칙성과 불가피성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이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한민족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원시씨족 공산사회, 3국시대의 노예경제, 신라 통일기 이래의 아시아적 봉건제, 현재 진행 중인 상품생산제 등 4개의 사회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즉 외면적으로는 원시시대의 무계급사회로부터 계급사회로 전환한 것에 대해, 내면적으로는 혈연적 공동생활로부터 잉여생산물의 착취양식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생산양식의 발전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증하는 것을 경제사의 임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계급사회의 출현과 동시에 잉여가치의 분배문제를 놓고 계급투쟁이 발생했다고 하는 계급투쟁론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접근했다.1. 원시공산사회원시씨족공동체에 대한 모르간의 「고대사회」를, 사유재산 ? 국가 등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서는 엥겔스의 「가족 ?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제시된 논리를 적용했다.백남운은 원시선조가 한반도에 이주하면서 최초 모계씨족에서 부계씨족제로, 부계씨족제에서 가부장적 가족형태로 점차 전환되었으며 씨족원은 혈연적 유대에 의해 결속되고 토지를 공유하며 공동생활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즉 원시씨족공동사회란 사회적 단위로서 씨족 공산주의적 세대 하에 인격적 존재와 안정, 사회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토지재산을 공유하며 공동생활을 유지하는 자연발생적인 민주주의적 공동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공동체도 역사의 진행 앞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물질적 생산력이 발전한 결과, 사유재산제가 출현하고 권력 및 노예제가 발생하여 생산관계가 계급화되어 국가형성의 요소가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생산력이 발전함으로써 공동체의 유대로서 혈연관계가 이완 또는 단절되었으며, 공동재산으로서의 토지 및 가축이 점차 개인적 소유로 되어 공산주의적인 세대가 분열되어, 결국 씨족공동체를 파멸시키고 노예국가를 성립시켰다고 그는 분석했다.2. 고대노예국가백남운은 국가란 발전단계에서 나타난 사회의 한 산물이라고 전제하고, 사회내의 계급대립이 객관적으로 융화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이 존재하는 한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의 국가관을 설명한 레닌의 구절을 인용한다. 국가란 무계급사회가 계급사회로 분열함에 따라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이다.)정복국가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은 동시에 노예소유자계급의 국가이며, 이러한 특성을 갖춘 3국은 정벌사업의 진행, 노예노동에 의한 민중의 실업증대, 노예소유계급의 향락생활과 봉건화 등 일련의 사회적 모순이 확대되었고 이러한 것들이 고대국가를 멸망시키는 잠재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덧붙여 백남운은 중국 봉건제 문화의 이식에 의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노예경제의 본질적 모순은 급격히 확대되고 봉건사회로 전환하려는 분위기가 성숙되었다고 주장했다.백데, 그는 노예제로부터 농노제로의 전환은 분명하고 나타나지 않고 분산적으로 점차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즉 한민족의 역사적 발전과정은 외관상으로는 혁명적인 비약의 단계가 인정되지 않으나 내면적으로 검토하면 사회적 생산력의 자기운동에 의해 씨족공산체로부터 노예국가가 전환되었으며, 다시 이 노예국가는 기원후 6세기 이래 아시아적 봉건제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3. 아시아적 봉건국가백남운은 3국통일을 계기로 봉건적 요소로서 대토지소유제가 발생했으며 이에 기초해서 농노제가 형성되었고, 노예제도의 생산적 중요성은 상실되었으며, 재정의 파탄과 권력의 분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중세 유럽에 있었던 장원의 존재유무를 갖고 봉건제를 논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장원제도란 면세 기타의 특권을 향유하며, 내면적으로는 토지소유자와 경작노동자의 주종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사적 대토지소유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라 말기 이후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는 봉건사회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한반도에 나타난 유럽의 봉건제와 외형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여 봉건제 앞에 ‘아시아적’이라는 형용사를 첨부했다.그는 신라의 지방 세력이 육성됨으로써 나라가 멸망하고, 고려왕조가 성립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성립은 신흥지방세력에 있어서는 정치적 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농민에 있어서는 해방은 고사하고 농노적 경작권 이외에는 얻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그는 봉건사회의 기본적인 생산관계는 유일한 생산수단인 토지의 소유자와 오직 노동수단만을 소유하고 토지에 긴박된 채 잉여생산을 강요당하는 농민과의 사회적 관계라고 정의하고, 고려시대에는 그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관상으로는 이런 특징이 드러나지 않지만, 생산수단인 토지와 직접 생산자인 농민과의 사회적 구성관계로 볼 때, 충분히 봉건사회라고 할 만한 성격이 부여된다고 말했다.백남운은 부르주아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상호보험이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주장을 예로 들어, 도 아니라고 단언했다.이처럼 백남운은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분석 정리함으로써,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의 한국사연구가 고려시대까지로 중단되고 말았으나, 한국사의 발전단계를 세계사적인 단계와 결합시킨다는 그의 목표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Ⅳ. 역사인식과 정치노선의 접합정치적으로 백남운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민족의 자주독립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을 쟁취하려고 했으며, 해방 후에는 좌 · 우의 대립 분열을 지양하여 통일전선을 결성하려고 했었다.일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그는 일차적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보편적인 역사발전법칙이라고 생각한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한국사의 발전단계를 세계사적 발전단계에 결합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특수사관을 부인하고 한민족도 세계사적인 발전단계를 걸어왔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는 미리 고정적인 단계론을 갖고 이에 자료를 끼워 넣는 공식주의적인 경향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그러나 해방 이후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한민족에 의한 자주독립정부의 수립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연합국의 개입에 의한 정부수립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백남운은 “세계사적 발전형태의 제범주를 통관할지라도 조선사회의 현 단계에는 어느 것이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여 일반성을 부정하고 특수성을 인정하였다. 이에 그는 논리적 일관성을 잃게 되었지만, 이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실현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비록 그는 사상사적 관점에서 볼 때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었을지 몰라도, 자주독립의 실천이라고 하는 정치적 일관성은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현실정치에 부딪혀 정치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경우, 현실문제의 중대성으로 인해 종래의 사상에서 일탈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이 정치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그의 설명처럼 “사회사정의 일반성과 특수성의 상호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주독립의 실현이 일차적다.
    인문/어학| 2008.10.25| 3페이지| 1,000원| 조회(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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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 이황과 성학십도
    Ⅰ. 퇴계 이황의 생애이황(1501~1570)은 연산군 7년 경상도 예안현 온계에서 진사 이식의 7남 1여 중 막내로 태어나 선조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엄격한 교훈을 받고 자랐다. 그는 1528년(중종23) 경상도 향시(진사)에 급제하였고 32세 때(1533년 중종 28)에 성균관에 들어가 그 이듬해에 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승정원부정자에 취임하였다. 그 후 그는 10여 년 동안 여러 직책을 맡았다. 43세에서 53세까지 그는 정부에서 주는 여러 직책을 때로는 사양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직을 자청하기도 하였다. 53세 때부터는 조정에서 예소판서 등 고위직을 몇 차례 제수하였지만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그의 나이 59세 때 33세의 기대승과 8년에 걸친 사단칠정 논쟁에서 리기호발설 내지는 리동설을 주장하여 확립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는 주희를 추종하면서도 독자적인 성리학을 수립하게 되었다.퇴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에만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임란이후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일본 퇴계학파가 형성되었고 특히 그의 [자성록]과 [주자서절요] 등은 일본의 유학자들간에 많이 읽혀졌다. 그리고 그들은 명치유신 때 교육이념의 기본 정신을 형성하기 위하여 그들이 교육칙어를 만들 때 퇴계의 [성학십도]를 원형으로 삼기도 했다.이황은 명종10년(1555) 고향으로 돌아가 사액서원인 도산서원에서 학문과 사색의 생활을 함으로써 많은 저서를 남겼고 많은 제자를 길러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지만 그러나 경세사상에 있어서는 많은 관직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성학십도]나 사직소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경세사상은 정통 유가의 경세사상을 드러내고 있다.Ⅱ. [성학십도]의 저술 목적유가경세사상은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현국과 그를 보필하는 현명한 재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가경세사상에서는 성군의 자질을 조소]를 선조에게 올리고 다시 4개월 후에 [성학십도]를 지어 봉정했다. 성학이란 말은 성인을 배우는 학문이라는 뜻과 성왕을 배우는 학문이라는 뜻의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성학이라는 말은 후자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그는 [무진육조소]의 제3조에서 성학을 돈독히 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우라고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성학을 돈독하게 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워야 합니다. 신이 듣건대 제왕의 학문은 그 심법의 요체가 위대한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명한 말에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란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으니, 오로지 정밀하게 살피고 한 가지 것에 집중하여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대저 천하를 전수함에 있어서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편안하게 하고자 함이니 그 부탁하는 말이 정치에서 이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순 임금이 우임금에게 정녕 경계하여 고하는 말이 이 몇 마디에 불과하니, 어찌 학문을 쌓고 덕을 이루는 것으로 정치의 큰 근본을 삼지 않겠습니까? 큰 근본이 서면 천하의 정치는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 가지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학문을 하는 큰 법입니다. 큰 법으로써 큰 근본을 세우면 천하의 정치는 다 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이황은 공자 이래 꾸준히 추구해 왔던 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군주가 한 가지 것에 집중하는 심법으로 정치를 해야만 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심법이 곧 그의 수양론의 핵심사상인 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군주도 경에 기초하여 성덕을 쌓고 경을 통하여 정치에 임한다면 덕치 곧 왕도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뜻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다시 [성학십도]를 지어 선조에게 바쳤다. 그는 이 그림과 그림의 해설을 바치면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성학은 큰 단서가 있고 심법은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고 해설로 가리켜 사람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과 덕을 쌓는 기초를 보여주는 것책임이 모이는 곳이요 모든 욕망이 서로 공격하고 많은 바른 생각이 번갈아 뚫고 나아가는 곳입니다. 한번 게을러 소홀히 하고 방종이 계속되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번지는 것 같아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일상생활에서 경외를 떠나지 않으면 중화와 위육의 공을 이룰 수 있고 덕행이 이륜에 벗어나지 않으면 천인합일의 묘를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그림과 그림의 해설은 겨우 열 폭 종이 위에 적어놓은 데 불과하고, 생각하고 익히는 공부는 다만 평일 편안한 곳에서 하는 것이지만, 도를 깨달아 성인이 되는 요령과 근본을 바로잡아 정치를 경륜하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 있습니다. 오직 상께서 깊이 살피시고 특별히 유의하시어 시종 끊임없이 반복해 보시고 경미한 일이라 해서 소홀히 하거나 번잡하다 해서 버려두는 일이 없으시면, 종사와 신민에 다행한 일이 되겠습니다.…”이황은 이처럼 [성학십도]의 저술 목적은 성군이 되는 요령과 정치 경륜의 근원을 밝혀 선조가 그것을 가까이 하도록 하여 성군에의 입지와 자질을 기르는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성군의 정치 곧 지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군주가 성군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유가경세사상의 핵심을 체득하고 이 저술을 오랫동안 기대승 등과의 논의를 통해 찬진하였다. 이 [성학십도]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교육칙어의 모델이 되었으며, 중국의 양계초와 같은 학자는 여기에서 제시한 이황의 도학?이학의 깊이를 탄복하여 [성학십도]를 찬양하는 시를 지어 이황의 교호가 300여 년이 되는 이때 만국이 다같이 흠앙한다고 칭송한 바 있다.이황의 이러한 성군의 자질을 기르려는 애틋한 노력은 군주의 턱치에 의한 교화가 가장 바람직하고 그것이 유가적 경세 이념에도 부합한다고 본데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풍기군수 시절 경상감사에게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생각하옵건대 교화는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야 하며 그렇게 되어야만 그 교화는 뿌리가 박히고 멀리 뻗고 또 오래 이니 어찌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윗사람이 이끄는 바를 아랫사람이 쫓게 마련이면 임금이 숭상하는 바를 온 국민이 흠모하는 법입니다.”이황은 이와 같이 위로부터 성군에 의한 덕치와 교화를 통하여 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정통유가의 경세사상을 답습하고 있다. 그는 동시대의 조식의 강력한 실천의지나, 기대승의 포괄적 경제사상이나, 이이의 강력한 개혁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이단을 배척하면서 성리학의 울타리를 새롭게 구축하고 그 속에 안주하면서 소극적 온건한 개혁에 그쳤다. 물론 이러한 온건한 개혁입장은 군왕의 성학 이념을 원론적으로 강조하고 그것에 따라 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리존기비적 그의 형이상학적 치도론의 반영이긴 하지만 당시의 국내외적 어려운 여건을 감안할 때 특히 그의 학문적 비중으로 보거나 그가 상당기간 관직에 봉직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Ⅲ. [성학십도]의 내용 구성1. 태극도 - 태극은 세계와 만물의 근원적 원리북송의 염계 주돈이는 ‘태극도’라는 그림과 그것에 대한 해설인 [태극도설]을 지어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는데, 주자는 태극을 리(理)로 보아 해설한 바 있다.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주렴계의 태극도설 전문과 주자의 해설을 일부 발췌해 싣고, 자신의 보충해설을 덧붙였다.퇴계는 자신이 [태극도설]을 첫머리에 내세운 것은 성학의 근본이 [태극도설]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학]과 [대학] 등 구체적 공부를 통해 효과를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다시 하나의 근원적 원리인 태극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치를 완전히 탐구해야 성품대로 살면서 천명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 서명도 - 우주 안의 모두가 한 가족두 번째 그림인 서명도의 근거가 된 [서명]은 북송의 신유학자인 횡거 장재의 유명한 [정몽], 편의 한 대목인데 원래 이름은 정완(완고한 사람을 바로잡아 준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정이가 [서명]이라고 이름을 고친 것이다. [서명]의 내용을 정임은이라는 사람이 그림으로 만든 것이 서명도다.퇴고 덧붙였다.3. 소학도 - 청소하고 응대하는 공부세 번째 그림인 소학도는 퇴계 자신이 그린 그림인데, 주자가 쓴 소학제사라는 서문이 실려 있고, [대학혹문]이라는 주자의 책에서 인용한 글이 붙어 있으며, 퇴계의 부차적인 해설도 곁들여 있다.퇴계는 [소학]과 [대학]이 서로 의존관계에 있어서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임을 강조했다.4. 대학도 - 수기치인의 공부네 번째 그림인 대학도는 [대학]의 경문을 조선 초 권근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해설로는 [대학혹문]에서 인용한 글과 퇴계의 보충 설명이 있다.퇴계는 앞서 나온 태극도와 서명도는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고, [소학]과 [대학]은 구체적인 실천학문이며, 이후 나올 여섯 개의 그림은 수양에 관한 것인데, 역시 [소학]과 [대학]을 바탕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서, [성학십도]의 열 개의 그림이 모두 경의 의미를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고 설명하고, 특히 [태극도설]에서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만 말하고 경을 말하지 않았지만, 주자가 해설에서 경을 보완했으므로 [태극도설]도 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5. 백록동규도 - 학문의 목적은 의리와 자각과 자기 수양다섯 번째 그림인 백록동규에는 주자가 쓴 동규후서와 퇴계의 설명이 붙어 있다.퇴계는, 이 백록동규가 학생들에게 제시된 것이지만, 제왕의 학문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도리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 그림을 잠언으로 삼으라고 (선조에게) 권하는 보충해설을 실었다.6. 심통성정도 - 마음을 경으로 지켜라여섯 번째인 심통성정도는 글자 그대로 ‘마음이 성품과 감정을 통괄한다’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특이하게도 그림이 셋이다. 하나는 정임은이 그린 것이고, 두개는 퇴계 자신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 정임은과 장재의 심통성정도설을 덧붙이고, 퇴계 자신의 해설을 추가했다.퇴계는 성품과 감정을 이원적으로 설명하면서, 결국 성품과 감정을 통합해 몸을 주재하는 마음을 경으로 키우고 지켜 본연의 성품이 발로되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된다.
    인문/어학| 2008.10.25| 5페이지| 1,000원| 조회(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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