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영어 자기소개] 영문 자기소개서
    Let me introduce myself.My name is 이름 and I was born in 지역 on June 30 1979.I'm now 25 years old and a law student at Hongik Unversity.My present address is ,번지, 아파트이름, 동, 호수, 동, 구, Seoul, Korea.I'll tell you something about my family. My father is 48 and my mother is 44. My younger sister is 17 and my brother is 13. My father is an officer and my mother is an officer too. And my sister goes to a senior high school and my brother goes to an elementary school.I'm 179 cm and weigh 70 kg. I think I am average in height and weight in Korea. I have short straight hair and I have black eyes, pale skin. My face is triangular. I am very cheerful and careless by nature, so I make at least one blunder almost everyday. My hobbies are not worth mentioning. I enjoy listening to music, such as R&B music.I have been interested in Law since middle school. I think it is a very interesting subject. I thought I will attend a bank after I graduate from University.I'm interested in a job opportunity at your company.I believe my education and all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give me the qualifications you require.A degree in law might seem to have no relation with banking. But I strongly believe the law courses I have taken gave me a broad background of the way of approaching to problems from legal point of view and deeper understanding of problem solving. I had no relations of Statistics but I had many opportunities of learning to experience and solve problems while I studied law.I focused on participating in extracurricular activities as well as my own major. Through especially soccer club and service club, I have developed interest in human relations. As a result, I have learned communication and organization skills, attributes which will help me in pursuing my career. And I took off a year in 2004 to go to Australia and experienced different cultures. Those were great experiences for me to meet people from other countries with different backgrounds and enabled me to think from the point of other people's view.I made my Excel - operating skill the best by taking computer courses during vacations and school terms and I got honor that web site was selected as the best site when I was taking a computer courses and I can operate MS word.
    취업| 2005.06.09| 2페이지| 3,000원| 조회(1,842)
    미리보기
  • 토탈리콜
    토탈리콜(Total Recall)토탈리콜 영화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류는 우주공간에 대한 식민을 시작해서 이때 쯤 태양계의 행성의 대부분에 식민기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행성은 화성이었는데, 여기에는 레이저 폭탄을 만드는 타비니움라는 광석이 대량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주인공은 더글라스 퀘이드(슈왈드제네거). 그는 뉴욕에 살고 있는 건물철거에 종사하고 있는 평범한 노동자이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밤마다 화성에 관련된 악몽에 시달린다. 그는 단서를 찾아 화성에 가고 싶어하지만 비용때문에 그럴 형편이 못된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그럴듯한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가상현실 기법을 이용한 가상여행이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리콜사를 찾아가고, 퀘이드는 기억을 이식받는다. 그 일로 인하여 커다란 충격에서 깨어나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사실 퀘이드는 실제 화성에 간적이 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화성 식민정부의 정보원으로서 복무해왔다. 그러나 지구로 추방되면서 정보원으로서의 기억전체가 봉합되었고 대신에 그의 뇌속에 가공적인 다른 기억이 심어졌다. 그는 사실 착암기를 조작하는 기사 퀘이드가 아니라 최근까지 화성총독의 핵심 오른팔이었던 하우저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뇌속에 가공적 경험이 이식되면서 은폐되어 있던 실제경험과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발작이 일어나면서 이식은 중단된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화성으로 향한다.코하겐은 화성으로 달려가 꿈에서 만나곤 하던 갈색머리의 여자가 진짜 아내 멜리나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 당시 화성은 코하겐이 인간이 숨쉬는 대기를 제한시켜 반군과 정부군과의 전투가 한창인 혼란한 상황이었으며 코하겐은 자신의 독재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외계인이 만든 자연 대기 제조장치를 숨기고 공기를 무기로 화성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태양광선으로부터의 해로운 물질을 차단하는 대기가 없어 많은 화성인들이 끔찍한 모습의 돌연변이로 태어나고 있었다. 퀘이드와 멜로나는 택시 기사에게 속아 코하겐에게 사로잡히고, 다시 정신 이식을 받는 위기일발을 맞지만, 극적으로 탈출한다. 멜로나와 공기제조장치를 가동하고, 이를 막으려던 코하겐은 도움밖으로 떨어져 처참하게 죽는다. 공기제조장치에서 내뿜는 엄청난 공기는 곧 지구와 같은 아름다운 대기가 조성되고, 퀘이드와 멜로나는 화성인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취한다.
    인문/어학| 2005.05.23| 2페이지| 1,000원| 조회(917)
    미리보기
  • 태백산맥을 읽고...
    {책을 접하면서......요즘에 사회적으로 탄핵안 가결 그리고 총선으로 인하여 국민의 관심이 정치에 집중이 되고 있다. 그러함에 따라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 논쟁이 다시 논의 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은 보수가 아닌 진보(개혁)는 자리 잡을 수없는 것일까? 정치에서 정치적 성향이 조금만 붉은 색깔을 띠어도 정치적 생명에 커다란 타격을 입는 것이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이런 때에 태백산맥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태백산맥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좌익을 옹호하는 내용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많아 나왔다. 과연 좌익이 무엇이고 우익이 무엇 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좌익은 나쁜 것이고 우익이 좋은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우익을 옹호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좌익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은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나의 사고에 대해 이 소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평소에 뭐 특별히 남다른 사회비판의식이나 역사의식 같은 걸 갖고 있다고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난 열 권의 분량만큼이나 큰 부피의 놀라움이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 나갈수록 점점 커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난 어릴 때부터 빨치산 하면 우리나라를 공산화시키려고 산 속에서 숨어 다니는 정말 독하고 잔인한 괴물 같은 집단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그런 두려움을 더욱더 커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나와 같은 나이 대는 -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것은 그저 교육시키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세대는 - 누구나 그런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보이는 지금의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고, 상위 계급의 사람들은 매우 부유한 생활을 하는 반면, 가끔 언론매체에서 보여지는 대다수 국민들의 하도 굶다 못해 비쩍 말라있는 모습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런 공산주의를 지향했던 빨치산이란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의 가지는 결말 지향의 서사 원리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실제로 이 소설의 이야기가 1953년의 휴전과 함께 끝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이야기의 종결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결말의 장면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소설의 장면에서 삶의 현실로 튀어나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분단의 현실로, 그 때 거기에서 지금 여기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해 태백산맥의 역사적 배경은 일제시대에서 6. 25 전후까지이다. 우리 나라의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격변적으로 사회가 변천한때 이기도한 이 때는 굉장한 혼란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대의 경제적인 면을 고찰해보면 일제 시대의 경제부터 보아야하는데 일제시대의 경제는 말 그대로 식민지 수탈경제였다.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농민회유정책, 식량의 강제공출등 병참기지로서의 경제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일본은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일제시대 전후의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은 농촌경제 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족 경제의 자생력은 뿌리째 뽑히게 되었다.민족 경제의 자생력이 없기 때문에 해방 후 미국의 원조를 중심으로 한 원조경제체제가 나타나게 되었고, 그 후 외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외자경제체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즉, 국민 대다수인 농민들은 지주제 때부터 박정희 정권 이전까지 거의 풍요라는 것을 모르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해방 후 이러한 빈곤은 거의 극에 달해 있었는데, 일제 시대에 이루어진 자작농의 소작농화, 소작농의 화전민화, 화전민의 걸인화등을 통해서 이미 절대 빈곤의 근간은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절대빈곤의 틈을 비집고 공산주의의 이념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소작쟁의라는 작은 것부터 조직화된 집단의 투쟁까지 다양한 양상을 나타었던 농민운동은 해방 후에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해방후에 결성되었던 농민의 이익보호를 위한 단체의 대표적 단체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적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근거로 들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경제적인 상황을 바탕으로한 악덕지주와 친일파가, 군인과 경찰에게는 시회주의 추종세력들이 피를 흘린다. 결국 사람들은 지주층을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 소작인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 세력, 그리고 둘 사이의 화합을 원하는 중도 세력으로 나뉘어진다. 김범우와 손승호는 중도적 입장에 있는 세력이었다. 그러나 6.25가 발발하여 벌교는 염상진의 부대에 의해 다시 장악되고, 중도 세력이었던 이들은 우와 좌 중에서 하나의 선택을 하게끔강요받게 되자 좌를 선택하게 된다. 이때 독립군으로 나간 김범우의 형 김범준이 북한군 소장이 되어 마을로 오지만,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는 역전이 되고, 그들 세력은 산으로 들어가 기나긴 투쟁의 길을 걷게 된다. 2년여의 투쟁 과정에서 빨치산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염상진과 손승호도 죽음을 맞게 된다.작가가 『태백산맥』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의 형상화 방법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 작품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만들어 냈지만, 당대의 현실 속에서 그들이 살아나오도록 하고 있을 뿐, 결코 인물을 통해, 그 인물의 위대성을 통해 그 시대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그러므로 이 작품에는 대표적인 영웅이 없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영웅적이지만 낭만적 영웅 숭배자들이 노래하는 그러한 영웅은 아니다.지금까지 태백산맥을 읽고 난후 인상 깊었던 인물들에 대해 써보았다. 사실 이들 말고도 너무 많은 인물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몇 번이나 주인공을 바꿨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경멸했던 최익승이 - 그의 끝없는 치졸함과 교활함이 너무 싫었다. - 그랬고, 이태식의 이, 이이, 이이이 가 갖는 각기 다른 의미도 기억에 남았고, 심재모가 과연 순덕을 만났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제발 그랬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앞에 놓여진 역사 라는 것에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전혀 몰랐던 일을 너무 적나라하게 알게 되어서 그런지...한동안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잔인한 피비린내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던 극우 에 속하는 지주 유지들, 이승만 정권, 친일 학생신분인 멸공단 일원들은 남원장 요정에서 기생을 끼고 술판을 벌인다. 염상진과 염상구는 친형제이다. 염상진은 좌익을 염상구는 우익을 택했다. 염상진은 장남이라는 명목 아래 어려서부터 어려운 살림 속에서 편안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염상구는 천대를 받으면서 잡초처럼 자라난다. 어려서 부터의 불만이 얼마나 쌓이고 쌓였으면 형에 대한 원한이 그렇게 깊을까하는 의문이 나를 감싼다.한편 벌교가 군경의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정하섭은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에서 정보수집 및 자금 조달을 하기 위한 거점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외딴집 현씨 제각에서 살고 있는 무당딸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이 피어나고 소화는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 아들 정하섭 덕분에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살아날 수 있었던 지주이며 양조장 주인인 정현동은 다시 경찰이 들어오자 살아난 것이 죄가 되어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헌국회의원 최익승의 음모가 깔려 있었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요구하고, 속수무책인 정현동은 이를 수락한다. 정현동은 경찰에서 풀려난 뒤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맡는다. 한가지 의문은 단지 살아난 게 죄가 된다는 점이다. 살아난 것이 무슨 죄가 된단 말인가!군경토벌대의 진군을 앞두고 민심은 흉흉해진 가운데 여수, 순천 진압당시 미군기의 무차별 폭격과 함포 사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무자비한 진압군의 좌익 색출과 처단에 관한 소문이 퍼져들어 왔다. 우익들을 빼놓고는 모두가 동네별로 학교 운동장에 끌려나가 심사를 받는다고 했다. 눈이 감겨진 채 실시되는 그 심사는 손가락질로 좌익을 가려내는 것이었고 일단 지목을 받으면 그걸로 끝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몽둥이로 때려죽이거나 대창으로 찔러 난자하게 죽였다. 골짜기로 끌려가 수십 명씩 총살을 당하기도 했다. 악명 높았던 김종원 대위는 일본군용도를 휘둘러 목을 잘랐다. 같은 민족 같은 동네사람들끼리 있던 심재모는 농지개혁 요구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 지주들로부터 불만을 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친일 경찰 및 일본군 출신 군인들과는 달리 심재모는 임만수등에게도 증오의 대상이 된다. 율어 해방구에서 염상진은 인민의 열렬한 환영과 지원, 협조로 혁명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벌교 읍민들의 눈에는 율어가 부러움의 대상으로 비추어졌다. 또한 염상진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쌀가마니를 다리 위에 놓고 벌교인민들이 고루 나눠 설 명절을 보내라는 격문을 붙이고 가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심재모는 김범우의 중개로 한 노파의 부탁을 들어준다. 즉 외아들로 입산한 고두만의 어머니 감골댁 노파가 찾아와 대를 잇기 위한 것이니 며느리를 이미 좌익의 수중에 든 율어에 들여보냈다가 씨를 받아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 것이었다. 심재모는 단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대민 심리전까지 고려한 끝에 이를 수락했지만, 그 사건을 안 읍내 유지들의 모함으로 서울로 압송된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온 사람이 백남식이라는 관동군 출신의 친일경력을 지닌, 또 하나의 사악한 인물이다. 그가 하는 짓이라는 것은 벌교 사람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서민영을 괴롭히는 등 나쁜 행동 뿐이다. 가진 자들은 왜 그렇게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갖은 모함을 써가면서까지 몰아내려고 할까? 조금이라도 서민에게 도움이 되고 지주의 마음에 들지 않고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김범우와 손승호는 벌교를 떠나 서울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이나 백범 김구 암살사건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게 된다. 이들은 백범과 몽양을 죽인 것은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 반역집단이라고 규정짓는다.이 땅의 무법천지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지, 그들의 눈에는 민족의 암울한 미래가 자꾸 어른거린다. 집권욕에 불타고 민족개념이나 조국 통일은 안중에도 없는 시대착오적 반 민족성이 날이 갈수록 그 본.
    인문/어학| 2005.05.23| 9페이지| 1,000원| 조회(456)
    미리보기
  • 홍대용
    I. 서론1.생애와 학문배경조선 영.정조 시대의 철학자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자는 덕보(德保)이며, 호는 담헌(湛軒)이다. 그는 영조 7년 신해년(辛亥年 1731) 봄 음력 3월 초하룻날에 태어났다. 충청도 천원군(天原郡) 수신면(修身面) 장산리(長山里) 수촌(壽村) 마을에서 아버지 홍역(洪轢1708~67)과 어머니 청풍 김씨(淸風金氏) 사이에 태어난 첫 아들이었다.홍대용이 열네 살 때 아버지가 과거에 급제한 이래로 외관(外官)으로 지방에 전전해 벼슬살이를 했기 때문에, 부자는 늘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러나 대대로 과거한 집안에 나서 경학(經學)에 뜻을 세운 아들에 장래에 대해 아버지는 늘 자애로운 관심으로 보살폈다. 홍대용의 일가 가운데 숙부 억(檍, 1722~1809)과 사촌 동생 대응(對應, 1744~1808)은 특히 담헌과 관련된 많은 인물이다. 숙부 홍억은 홍대용보다 아홉 살 연상으로, 어릴 때에는 놀이 친구였고 자라서는 공부의 선배로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 숙부가 중국으로 가는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된 것은 홍대용으로서는 일생에 다시 얻기 어려운 일대 사건이었다. 서장관이 된 숙부가 홍대용을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추천하여 함께 북경 여행에 오르는 행운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영조 41년(1765)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평생을 꿈꾸어온 중국 여행에 오르게 되었다. 억의 수행관으로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학자들 및 독일계 선교사들을 만나 서양문물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귀국후 과거에 여러 번 실패한 뒤, 74년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가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 영천군구 등을 지냈다.홍대용은 열두 살 이전에 천자문에서부터 사서에 이르기까지 모두 통달했고, 이때 집안 대대의 박사업을 버리고 ‘고학’에 뜻을 두었으며 章句(장구)와 迂儒(우유)의 학문을 하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이 말은 벌써 열두 살 때에 그의 학문적 자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용(容:대용)은 십여 세 때부터 뜻을 고학에 두어,제도 개혁을 위해 과거제를 폐지하고 공거제(貢擧制)에 의한 인재 등용, 혁신적 개혁사상을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근대 개화사상에 밑거름이 됐으며 박지원, 박제가등에게 이어져 북학파의 선구를 이루게 되었다.II.본론1.학문적 사상 『담헌서(湛軒書)』내집(內集) 제 1권에는 주로 심성설(心性說)과 유교의 경전들에 대한 논의와 문변(問辯)을 모아놓았다. 이곳에는 心性問(심성문)을 비롯하여 소학문의(小學問疑), 가례문의(家禮問疑), 삼경문변(三經問辯) 등이 들어있다. 이 글들의 특징은 대개 물음이나 문의 문변등의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는 점이다.)일찍부터 유학에서 학문하는 방법으로는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篤行(독행)의 다섯 가지를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특히 명변과 독행은 학문의 성취를 가늠하는 조건으로 일러왔다. 따라서 이곳에 보이는 홍대용의 학문적 문변은 그의 학문태도와 사상의 경향을 가늠하는 실마리가 된다.1)심성문무릇 이(理)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형(形)은 없고, 이(理)만이 있다”고 한다. 이미 ‘이’가 있다고 하면 ‘형’이 없는데 어찌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개 소리가 있으면 있다고 하고 빛이 있으면 있다고 하고, 냄새와 맛이 있으면 있다고 하니, 이미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이 는 형체가 없고 방소(方所)가 없음이니, 이른바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중략)또 이른바 ‘이’라는 것은 기(氣)가 선(善)하면 선하고 기가 악하면 악하니, 이는 ‘이’가 주 재하는 바가 없고, ‘기’의 하는데에 따를 뿐이다.「심성문」『국역 담헌서』 I )소리를 들으면 어떤 소리라도 우리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빛도 있고 냄새나 맛이 있으면 모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형체가 없는데도 이기론자들은 이것이 있다고 한다. 이데 대해 의문을 말하는 홍대용은 ‘이’가 형체도 없고 자리도 없는데 그런데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먼저 묻고 있다.‘이’는 주재하는 바가 없고, ‘기’가 하는데 따를 뿐이므로, 곧 ‘기’가 있을또한 악하다. ‘이’는 스스로 주재하는 바가 없고, ‘기’가 하는데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기일원론적 심성론이다.“무릇 물은 같으면 모두 같고, 다르면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이란 것은 천하의 같은 바이고, 기란 것은 천하의 다른 바이다. 지금 저 심의 물됨이 자취가 있고, 작용이 있으니 ‘이’라 할수 없고,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기’라 할 수도 없다.”)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에서는 앞의 「심성문」과 같은 ‘기일원론’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과 물의 마음이 다 같이 ‘기’에 의지한다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요지를 뚜렷이 밝혔다. 그는 ‘심이란 것이 신명(神明)하여 헤아릴수 없는 꿈’이라 하여 마음을 ‘물’로 설명하고 또 사람과 ‘물(동물)’을 상대화 하여 일원론을 이끌기도 했다. 또한 홍대용은 기일원론의 전통을 이어, 결국 “같은 것은 모두 본연이고 다른 것은 모두 기질 뿐”이라는 전제에서 심성론을 펴고 있다.2)소학문의 (小學問疑)이 대목은 주자가 쓴 「소학제자(小學題辭)」에 나오는 문구를 문제 삼고 있다.곧 여기서 “덕과 업을 나누고 가제국치한 연후에야 시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홍대용은 먼저 덕과 업은 둘이 아니고 한가지라고 주장했다. 마음의 얻음(得)으로 말하면 덕이라 하고 일의 이룸(成)으로 말하면 업이라 하지만 실은 한가지 이며 반드시 나누어서 병폐를 이루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문을 하여 마음이 바르고 몸이 닦아짐에 이르면 공부가 극에 이르러 벌써 그 시초(始初)를 회복한 것이 된다는 해석이다.또 옛날의 교육은 어릴 때부터 벌써 육예(六藝)로써 가르쳤기 때문에 그 교육 자체가 벌써 전인 교육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육예란 예(禮), 악(樂), 사(射 ;활쏘기), 어(御 :말타기), 서(書 :글씨쓰기), 수(數 :셈하기) 등으로, 이른바 통합 교과였다. 그러니까 학문을 하여 몸을 닦는데 이르면 공부가 극에 이를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시초를 회복하는 일이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서문변 가운데서도 수신과 치국의 문제를 다룬 ‘헌문’편에 대한 의문이 가장 많은데 여기서도 대개 본말(本末)과 내외의 관념, 학행(學行)과 실사(實事) 등에 관한 해석의 문제를 문변하고 있다.③맹자문의(孟子問疑)이 글에서는 특히 송시열의 「호연장(浩然章)」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여 의문을 던지고 있다. 홍대용은 송시열이 ‘이’와 ‘기’를 일물로 보는 병을 면치 못했다고 주장하고, 심은 오직 기일뿐, 이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인물성동론’과 함께 낙론계(洛論系)의 EH 하나의 주장인 ‘미발심체본선 (未發心體本善)’ 의 사상에 서서 주장을 펴고 있다.④중용문의(中庸問疑)「중용」은 유가의 철학론으로, 이 문의에서는 천도(天道)의 무성무취(無聲無臭)와 귀신의 불견불문(不見不聞)에 대한 주석들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무성무취’가 곧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는 뜻임을 강조하면서, 훈고(訓?)에 대해 열을 올리는 것이 깨달은 바를 본받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4)삼경문변(三經問辨)①시경변의(詩經辨疑)이것은 김창협(金昌協)의 삼주일록(三洲日錄)에 보이는 「시경」의 해석을 중심으로 시경에 대한 의문을 변의한 글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 서울 시절의 연구노트일 것이다.그는 시경의 해석에서 몇 가지의 전제를 세우고 있다. 첫째는 시경의 해석에는 먼저 시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주자의 시경 해석이 바로 ‘주자의시’라고 보는 점이다. 먼저 시의 개념과 관련하여, 옛날의 시는 모두 사곡(詞曲)이었다고 말하고, 그러기에 시와 소리를 둘로 나누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주자의 시경 해석이 바로 주자의 시라는 주장은 그의 시론 내지 문학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천수백 년 뒤에 나서 천수백년전의 시를 해석하면서 의문이 없게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시경에서 소서를 빼고, 시를 가리켜 “방탕한 뜻을 경계하고 선심을 감발한다”고 한 주자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음양오행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음양에 얽매이고 의리에 집착하여 천도를 살피지 않는 것은 선유의 허물이다”)라고 하여 당시 성리학자들이 기존의 음양론이나 의리론에 얽매여 천도를 관찰하지 못한 것을 비관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만물이 봄과 여름에 화생하는 것은 교(交)라하고, 가을과 겨울에 거두어 저장하는 것을 폐(閉)라 했으니, 옛사람이 말을 세움에 각각 까닭이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을 미루어 본다면 실상 태양 빛의 얕음과 깊음에 속할 뿐이다 천지 사이에 별도로 음양 두 기가 있어서 때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여 조화를 주장한다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말이다.)즉 홍대용은 음양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파악하지 않고 빛과 연관된 본래적인 의미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오행에 대해서도 “오행의 수는 원래 정론(定論)이 아니다 그런데 술가(術家)에서 이를 조종으로 삼아 하도(河圖)와 낙수(洛數)로써 억지로 맞추고 역(易)의 상수로 들어가 생극(生克)이니 비복(飛伏)이니 하여 지루하게 얽매이고 여러술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니, 끝내 그런 이치는 없다”)라고 하였다. 즉 홍대용에 있어서 오행은 궁극적 요소도 아니요 상생 상극하여 만물의 변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 그는 우주의 시원과 천지자연의 생성과 운동은 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형이상학적 자연관에 기초하면서도 보다 구체적인 서양과학 기술의 지식을 접목시켜 상호 보완적 체계를 이루고자 하였다.홍대용은 일식과 월식 때 비친 그림자로 달이 둥글고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근거를 제시하여 지원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땅의 모양이 둥글다고 하면 사람은 왜 떨어지지 않는가? 이에 대해 홍대용은 상하지세(上下之勢)를 말한다. 그는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땅의 회전에 의해 기가 천지에 모이게 되고 여기서 상하지세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지구의 자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이전의 천운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우주론을 이룩한다. 천운설은 천과 지를 일대일 대응관계로 파악함으로써 천과다.
    인문/어학| 2004.05.05| 10페이지| 1,000원| 조회(852)
    미리보기
  • 일본문화
    섣불리 일본을 말하지 말라(日本人이 본 日本 )I.서론일찍이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述而21)“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서는 그 나은 점을 배우고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그의 못한 점을 고치는 것으로써 배우라고 하셨다. 즉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이 있다는 의미이다.우리보다 한발자국 앞서 나가고 있는 일본에게서는 얼마나 배울 점이 많겠는가. 그러기에 앞서 그들의 다양한 사상. 문화를 분석. 파악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II.본론제 1 부하라키리 문화중국인이나 서양인과는 달리 일본인은 언어에 큰 의미와 비중을 두지 않는다. 천 마디의 말보다는 무언의 의사전달 방법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 하나의 예가 할복(腹切, 하라키리) 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에게 하라키리란 마음에 와 닿는 세계이며 마음으로 느껴 알고 있는 세계이다, 이론이나 설명이 필요 없고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이다.하라키리는 에도시대에 사무라이의 형벌로서 확립되었다. 자발적으로 할복함과 동시에 중개인(가이샤쿠닝)이라고 하는 뒤에서 칼로 목을 쳐주는 사람이 있어 할복하는 자의 목숨을 끊어 준다. 하라키리의 이유로 전장에서 체포 되는 치욕을 당하느니보다는. 이라든지 사무라이의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사형대신 자결을 택한다 라든지 또는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라고도 말 한다. 그렇다면 찔러도 금방죽지 않는 복부보다는 심장을 찌르거나 동맥을 자르거나 하는 즉석에서 단 한번으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이면 왜 복부인가!일본인들에게 있어 복부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여성에게 있어서는 아기를 잉태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풍요의 대지와도 같은 신앙적 의미가 있고 남성에게 있어서는 마음. 생각 감정. 기분 등 일종의 자기주장을 의미한다.이렇게 일본인에게 있어 복부중심 관념은 강조된다. 복부에 대한 일본인의 이런 강한 중시 경향은 세계에서도 드문 일이며 이 점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자결방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하라키리는 단순한 자결행위와는 다르다. 살수만 있으면 살고 싶은데 그 정황이 자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 그런데 몸은 죽지만 대신 무엇인가를 존속. 소생 시켜 두어야 하겠다는 의지. 이러한 상반성을 하라키리는 내포한다.하라키리에는 매저키즘적인 요소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일본인은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면서 또 감각적으로 느끼면서 능동적으로 죽어갈 수 있는 장렬미는 하라키리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다. 심리학적으로 보아 하라키리는 매저키즘적인 자아도취로 이해된다.하라키리의 전통적 요인을 여기서 요약해 보자.첫째 사약제도에 대한 사무라이의 선망의식, 둘째는, 자결의 명확한 증거를 남기기 위한 하나의 방법, 셋째, 복부 속에 들어있다고 믿는 자기의 정신이나 의지의 자기 방출이다.일본인에게 있어 하라키리에는 자신의 복부를 스스로 갈라 뱃속의 진심. 감정. 자기. 의지력이 들어있는 복부를 스스로 갈라 해방 방출 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제 2부의식주일본에서는 봄과 가을이 아주 짧고 무더운 여름과 혹독한 추운 겨울이 길게 계속된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의 두 계절 중 일본인은 농경이라는 생산의 계절인 여름에 모든 중요성을 둔다. 일 년의 축제역시 여름의 농경을 주축으로 하여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행사로 짜여져 있으며 가을의 수확이 끝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내년의 농경을 생각한다. 이러한 여름중심의 사고방식은 일본인의 모든 생활에 기준이 되고 있다. 그중 자세히 살펴볼만한 것은 일본의 가옥과 의복이다. 일본의 가옥은 여름에 알맞게 만들어져 있으며 겨울을 고려해 넣은 구석은 도대체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생산기인 여름을 위주로 하는 철저한 관념 때문이며 겨울의 추위나 부자유스러움은 참으면 된다는 식이다. 겨울은 생산하지 않는 계절이므로 내핍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또한 일본의 의복은 소매나 옷의 품은 넓고 하반부는 스커트 형으로 소매면 팔뚝이 그대로 노출되고 하의 자락을 들추면 무릎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웃통을 제끼면 어깨나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는 여름에 극히 편리한 의복이다 겨울에는 여러 겹의 옷을 껴입어 추위를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하였다.일본인의 식생활은 전통적으로 매우 검소하다. 도회지도 그렇지만 일본의 농촌만큼 식생활이 검소한 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물다, 일본인 사회에서는 관혼상제와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관념이 전통적으로 뿌리 깊다.제 3부외래문화일본은 근대에 있어서 서양에 대항할 수 있었던 동양의 유일한 국가이며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좀더 다른 면이 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농경문화에 만족하여 안주해서 살아가는 경향이 많은데, 일본인은 이러한 면도 있지만 다른 한 측면도 아울러 갖고 있어 상반되는 이 두 성질이 마치 조울증이나 되는 것처럼 교차하며 나타나는 이면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외국의 정황에 무관심하여 자기만족적인 일종의 폐쇄된 상태 이면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외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모방하려는 면이 숨어있다.농경민적 일본인이 눈을 외부로 돌리는 태도로 돌변하는 시기 즉 외래문화의 적극적 섭취기를 보면 이러하다6세기 전반 정치적으로 나라시대는 이른바 율령시대(律令時代)의 최성기에 해당하여 중앙집권적 정치제도가 완성되었다. 문화적으로는 백제(百濟)와의 교류가 가장 왕성하였고, 또백제멸망 후 그 유민(遺民)의 유입과 전후 여섯 차례에 걸친 견당사(遣唐使)의 파견 등으로 백제 및 대륙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 시기이다. 그런 반면 거국적인 조사 조불(造寺造佛)의 대사업은 국민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고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한반도와 중국 등 아시아 대륙의 문화뿐만 아니라 일본이 전혀 모르고 있는 아주 이질적인 유럽 문화까지 포르투칼 선박의 내항을 필두로 하여 일본에 밀려온 시기가 아즈치 모모야마 이다 화승총을 위시한 서양문화가 기리시탄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던 기독교 문화가 일본에 대거 밀려와 일본 개국 이래 처국제적 격동기에 휩쌓이게 되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아시아 대륙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유럽선이 일본에 건너옴으로써 일본이 국제적으로 노출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지방의 호족들이 신흥세력으로 대두하며 그들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수가 되었다. 구세력. 구체제를 뒤엎기 위해서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화승총, 기독교, 또한 무역과 경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사카이의 상인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며 구제도가 가지는 고도의 문화에 대항하여 외래문화를 대거 들여오며 이는 신진지배계층으로 하여금 위압적이고 호화롭게 보이도록 하는데 기여했다.1853(메이지 시대)년 미국 선박의 선장 코모도르페리는 우라가만에 닻을 내리고 일본에 교역항을 열것을 요구했다. 막부 정권은 재정상의 궁핍과 약한 군사력 때문에 외국인들을 격퇴할수 없었으므로 이를 허가할수 밖에 없었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불평등 조약에 조인했다. 결국, 권좌에서 떨어진 데다가 다른 사무라이의 반란으로 도쿠가와 사문의 쇼군은 사임하지 않을수 없었다. 1868년 수도는 에도로 옮겨져 도쿄로 이름 붙여졌고 메이지 천황의 통치로 군주 정치가 복구되었다. 그러나 군주제를 북구한것은 메이지 자신이 아니었으며 당시 그는 겨우 열네 살뿐이었다. 그의 배후에서 정치적 혁명을 주도한 이전의 사무라이 무리들은 정부를 움직이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2年 안에 사무라이 계층은 몰락하고 다이묘가 토지를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 항구들은 외국에 열렸으며 일본 전역에서 유럽화 경향이 일어났다.메이지 유신으로 봉건제도가 철폐되고, 문벌이 아니라 능력 본위로 구성되는 근대적 정부기구가 세워졌다. 메이지 시대는 한마디로 열광적인 변화와 실험의 시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카라’ 라는 말이 생긱게 한 서양 양복을 입으며 정부의 정책을 따랐다. 일본은 서양 제국주의의 팽창에서 실마리를 얻어 해외 팽창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지금까지 서술한 나라. 아즈치 모모야마 메이지라는 3개의 외래문화 습득기에 공통되는 사항은 일본의 국제적 변동을 초래하는 외국의 압력에 직면해 있는 시기라는 점과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은 하위로부터 상위로 그리고 변방으로부터 중앙으로 갓 진출한 신흥세력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새로이 권력을 장악하는 세력집단은 구세력.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외래문화를 정치적 수단 내지는 정치적 무기로 이용했다. 외래 문화는 일본 국내의 통일 밑 재정비를 촉진시켰으며 구체제가 가지는 세련된 고도의 전통문화에 비하여 문화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신흥지배자들은 외래문화로써 자신들을 장식하고 그것으로 문화적 장점을 삼았다.제 4부털손질 사회애지중지하다. 총애를 받다. 뒤를 봐주다. 덕을 보다. 마음에 들다. 신임을 받다... 이상의 말들에서 첫째로 느껴지는 것은 일본인은 털손질에 대한 욕구가 유난히 강하다는 것이다, 어떤 일본인이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때 그 사람이 사회적이나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무언가 신경을 써 주고 관심을 가져 구고 자신의 뒤를 봐주는 그러한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털 손질 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일본인은 누구나 자신이 털손질 받을 권리가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중에 털손질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털손질을 해주지 않은 상대방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치고 털손질을 획득한 경쟁자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게 되며 심지어 극단적인 보복심까지 가지기도 한다.일본 사회에서는 남녀 관계보다 남성끼리의 관계를 우선으로 친다. 이는 남성과 남성 사이의 털손질에 생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 모든 생활을 의존해 온 일본 여성들은 남편이나 연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억제하고 눈물을 삼키며 남성끼리의 세계를 우선시켜 준다. 요컨대 일본 여성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사적인 것으로 남성끼리의 관계를 공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적인 세계는 동성애적 감정으로 견고하게 다져지기 때문에 일본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세계에 끼어들 여지가
    독후감/창작| 2004.05.05| 4페이지| 1,000원| 조회(686)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2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11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