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말이란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읽히기를 희망한다. 또한, 풀과 나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인 이기철. 그가 2005년 봄에 시선집 『가장 따듯한 책』을 펴내었다.이번에 현대시의 이해 수업에서 자의가 아닌 발표수업으로 인해 우연히 접하게 된 시인이기 이전에 우리 학교 교수이었던 이기철 그의 시는 나에게 많은 감동과 이야기를 들러주었다.현대에는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모든 사물들과 심지어 사람들까지 화폐로 환산되고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는 대부분 가치는 화폐로 환산된다. 심지어 더욱 나아가 사람들까지 화폐로 그의 가치를 판단해버리는 시대까지 왔다. 즉 사람을 순수한 그 자체가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 노예로 비추어지고 있을 뿐이다. 시인 이기철은 현대 인간성 상실에 대해 안타까움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가치에 대해 그의 시집 『가장 따뜻한 책』을 통해 나에게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낯선 골목 헤맬 때어깨 때리는 바람 소리 귓가에 들린다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아픈 날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안 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병을 사랑하자, 삶을 사랑하자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세상은 이 시에서처럼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의문을 나에게 던져주는 시이다. 이 시는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시 중의 하나다.세상은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절대 홀로 살 수 없으며 서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렇기에 시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고 믿으며 더 나아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까지 아름답게 보고 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람이 싫어지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온통 주관적 가치가 아니라 객관적 가치인 화폐로 환산되고 실리적이며, 힘의 논리로 설명되는 각박하고 어두운 현실로 느껴진다. 이기철 시인은 이러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사람을, 그리고 세상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그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을 지키려고 한다. 여기서 사람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모습을 발견해볼 수 있다. 비록 비참한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도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 현실 속에서도 남녀노소 범죄자 구별 없이 그 사람의 내면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그렇지 않다. 강도나 범죄자들을 보면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물건 보듯이 보고 피하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껏 그래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범죄자이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똑같이 그들의 부모 아래서 태어났으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일 뿐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 사실을 지나쳐 겉만 보고 판단할 때 이기철은 시인의 눈으로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찾아낸다. 「사람의 이름이 향기이다」에서 ‘사람이 사람 생각하는 마음만큼 / 이 세상 아름다운 것은 없다.’라고 한 것과 「마음은 때로 백조가 되어」에서 ‘이 세상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이름 / 사람의 이름보다 향기로운 것은 없다.’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여러 시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연스럽게 묻어난다.이기철의 시집을 읽으면서 문득 지금 TV에서 방영 중인 ‘인순이는 예쁘다.’가 생각이 난다. 주인공인 인순이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처음에는 살인자라 하여 많은 사람이 자신을 피하고 사람취급도 해주지는 않지만 점점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짐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달라진다. 즉 사람들은 그녀가 저지른 사실은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녀가 가진 내면적이고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시인 이기철의 마음처럼 바로 사람들의 겉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그 속에 감추어진 사람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각박하고 딱딱한 이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보여주려 하였으며 이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 건 아닐까?다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발표수업에서 같이 조사한 분들이 이기철의 시는 거부감이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뿐만 아니라 그의 시집 대부분이 그러하게 나타난다. 그의 시는 난해하거나 심오한 뜻을 품고 있지 않다. 또한, 시속에 등장하는 시어들은 요즘 시들과 다르게 인간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김수영의 「풀」에서 풀은 바로 우리 민중을 뜻한다고 알고 있고, 박두진의 「해」에서의 해는 바로 광복이라고도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이상향, 순수한 세계 등등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배워왔다. 이처럼 대부분 시는 인간과의 관계에 집중조명을 하고 그 뜻을 해석하려 한다. 이기철의 시에서는 그러한 해석이 없어도 시를 읽고 느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이기철 자신은 스스로 말하길 ‘모더니스트도, 포스트 모더니스트도 될 수 없나 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에서 단지 느낌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기철의 시 에서는 그러한 해석 자체가 필요치 않다. 그냥 우리도 시인처럼 그 자체를 느끼면 된다. 외적인 개입이 전혀 필요 없다. 이는 시 자체가 바로 이미지이며 풍경이 된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사실 혹은 진실을 소유하지 않고, 욕망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따뜻한 책』 서는 주장하는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또 후회하는 모습도 자기변명의 모습도 구차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단지 어린아이의 눈으로 꽃을 처음 보듯이 사실 그대로 비춰줄 뿐이다. 「다시 풀잎」에서 ‘너희가 기울이는 외로움만한 희망 / 이슬을 풀의 눈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경(不敬)이다.’에서처럼 그러한 시인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슬은 이슬일 뿐이지 눈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순수한 이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들판은 시집이다천천히 걷는 들길은 읽을 것이 많이 남은 시집이다발에 밟히는 풀과 꽃들은 모두 시어다오전의 햇살에 일찍 데워진 돌들미리 따뜻해진 구름은 잊혀지지 않는 시행이다잎을 흔드는 버드나무는 읽을수록 새로워지는 구절뻐꾸기 울음은 무심코 떠오르는 명구다벌들의 날개 소리는 시의 첫 행이다씀바귀 잎을 적시는 물소리는 아름다운 끝 줄넝쿨풀은 쪽을 넘기면서 읽는 행이 긴 구절나비 날갯짓은 오래가는 여운이다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혼자 남는 파밭종달새 날아오르면 아까 읽은 구절이 되살아나는보리밭은 표지가 푸른 시집이다갓 봉지 맺는 제비꽃은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동시다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해본 적 없는 논밭물소리가 다 읽고 간 들판의 시집을풀잎과 내가 다시 읽는다이번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시중에 하나이다. 여기서 들판이라 하면 우리주변에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황량한 땅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기철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라는 황량한 곳에서 모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지닌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생명을 의인화시켜 마치 친구를 저 멀리서 부르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자연의 친구들을 불러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그의 감성적인 재능은 어디까지 일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에 나에게 단지 들판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시를 써보라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들판 속에서 ‘벌들의 날개소리’, ‘씀바귀 잎을 적시는 물소리’, ‘넝쿨풀’, ‘나비 날개짓’, ‘종달새’, ‘보리밭’, ‘제비꽃’ 등의 시어처럼 표현할 수 있었을까? 황량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표현해내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이런 생각에 잠시 잠겨보니 그의 감성은 아주 다정한 긍정주의자 이었으리라.자연을 시의 제재로 삼은 시인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의 자연은 이기철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들에게서의 자연은 웅대하고 함부로 다가설 수 없는 거룩한 세계와도 같이 그려져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연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예술작품과도 같다며 예찬론을 펼친다. 그러면서 자연파괴를 하는 인간들에 대해 부정을 하고 있다. 또한, 그들에게서의 자연은 인간과 구별되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즉 서로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기철은 이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자연은 길을 걸어가다 밟아 뭉개진 풀잎부터 시작해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들꽃, 심지어 보도블록 틈에서 피어난 풀잎까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제재를 삼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편안하게 다가옴으로써 웅대하고 거대하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장소가 아니라 꾸밈이 없으며,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우리 삶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른 시보다도 편안하게 시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시를 읽으면 자연이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자연이라는 느낌이 든다. 둘로 나누지 않는다. 평범하고 소박한 자연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에서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반대로 인간의 삶에서 자연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서 인간과 자연, 즉 세상은 모두 아름다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김춘수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응당 그의 시 을 들것이다. 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뿐 아니라 시인들에게도 가장 많은 애독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런 그의 오랜 숙원은 사화집을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 숙원을 『김춘수 사색사화집 』을 통해 드디어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본디 문학비평이라 하면 딱딱하기에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다. 감상적인 비평이라고 하기에는 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리리시즘등과 같이 현학적인 말들이 무성하게 퍼져있는 문학 평론들은 과연 그 작품에 대해서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단지 자신의 지식이 해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구유럽의 이론들을 시도 때도 없이 들추어내지 않나하는 조심스런 생각 밖이 들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난해한 작품으로 변모하게 되며 그 작품의 생명력의 불씨를 꺼뜨리는 차가운 물이 되지 아닐까 생각한다. 문학비평이란 것은 그런 어려운 말을 써서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는 그 작품의 좋고 나쁨을 지적해주며 작품의 어려운 부분을 명쾌하게 풀어 설명해주는 한마디로 해설서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작가에게는 작품의 밑거름을 제공하여 다음에 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게 해주며 상호보완적이면서 동시에 동반자적 위치에 있는 것이다.『김춘수 사색사화집 』은 위의 비평의 잘못된 점을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이론을 통해 깊게 들어가지 않고 통쾌하게 자신 나름대로 시를 분석하고 정리한 책이라 볼 수 있다. 책에 서문에서 김춘수는 기존의 다른 사색집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성격을 가진 책을 엮게 되어서 기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근대 · 현대 시사 100년을 네 가지의 계열로 유형화하여 정리하였다. 김소월에서 황동규에 이르기까지 48편의 시와 그 외에 네 가지 계열에서 벗어나는 다른 시까지 포함하여 는 시를 네 가지 계열로 나누어 이른바 실천비평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독특한 이 사화집은 우리 시단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는 시를 바로 보는 김춘수의 깊은 안목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새로운 시적경험이 될 것이다.김춘수는 자신의 책 『김춘수 사색사화집』에서 시를 네 가지의 계열로 뽑아 놓고 있다. 전통 서정시계열, 피지컬한 시의 계열, 메시지가 강한 시의 계열, 실험성이 강한 시의 계열 로 정리하면서 그는 문학적인 장르로 시는 산문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나라의 근대 혹은 현대의 참여적이고 사회적인 시들이 자칫 이 범주를 그르치는 경향이 있었고, 유치환의 말을 빌어 "참의 시는 마침내 시가 아니어도 좋다" 는 극단적인 표현에 대한 반감을 예문으로 시의 예술성을 중요하게 인식 시키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이미 시라는 장르적인 요소를 갖춘 후 논해져야 한다는 김춘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김춘수가 분류하고 있는 네 가지 계열을 간단히 살펴보자.첫 번째로 전통 서정시 계열에는 김소월-엄마야 누나야, 왕십리 / 김영랑-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내 마음을 아실이 / 서정주-冬天, 歸蜀途 / 박목월-나그네 / 박재삼-봄바다 / 박용래-겨울밤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대부분의 시는 고등학교 때 이미 한번이상 경험한 시를 실고 있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보아도 쉽게 공감이 갈수 있을만한 시를 선택했으리라 나또한 이계열의 시를 읽으면서 그동안 서정적이 다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해온 나 자신 스스로가 서평을 읽으면서 보다 그 정서를 구체화 시킬 수가 있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본다면 노래로도 익숙한-시는 운율이 있기에 노래이기도 하다-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란 작품을 봐도 설명을 하라고 하면 막연해지는 게 사실이다. 김춘수는 이 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시는 정서는 애매하고 메시지는 완전 차단이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정시의 본질은 안타까움의 정감을 일깨워주는데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말은 모든 이들이 막연하게나마 공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 김소월의 다른 작품인 왕십리에서도 그는 이 시는 사상은 없고 따라서 암시적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다른 계열의 시들과 구별되는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준다고 하고 있다. 즉 독자로 하여금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긴장감 없이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해방감을 주는 시가 바로 좋은 시로 규정하고 있다.두 번째로 피지컬한 시의 계열이다. 책에서는 정지용-九成洞 / 김광균-都心地帶 / 백석-외가집, 秋夜一景 / 박목월-佛國寺 / 김종길-春泥, 公州에서 / 전봉건-미끄럼대 / 김종삼-북치는 소년 / 조영서-가을 이미지, 皆旣月蝕 / 박용래-저녁눈 / 김영태-하늘 / 노향림-강변 마을 / 정지용-長壽山1 / 정진규-모슬포 바람으로 구성이 되어있다.김춘수는 이 계열의 시에 맞게 매우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 요소가 강한 시들을 엄선하여 모아놓았다.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 작품을 예를 들어 살펴보면 정지용의 구성동을 살펴보자.골짝에는 흔히 / 流星이 묻힌다. // 黃昏에 / 누리가 소란히 쌓이기도 하고 //꽃도 / 귀양사는 곳 // 절터더랬는데 / 바람도 모이지 않고 //山 그림자 슬핏하면 /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이 시를 보면 어떠한 정서보다는 우선적으로 머릿속에는 이 시의 정경이 연상이 될 것이다. 이 시를 비롯해 다른 시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매우 감각적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또한 관념이 배제되어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김춘수 시인은 피지컬한 시를 다른 요소를 제외한 오직 사물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피지컬한 시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작품은 서정적인 시와는 다르게 일반 독자들이 많이 보지 못한 시들을 분류해놓았는데 이는 많이 알려진 작품은 그만큼 작품자체의 이미지의 모습만을 감상하는 데에는 오히려 반작용을 할 것이라는 그의 세심한 배려에서 그렇게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처음 접하기에 다른 요소가 배척된 그 작품 자체의 순수한 이미지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세 번째로 이 책에서는 메시지가 강한 시의 계열을 분류해놓고 있다.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유치환-일월 / 김수영-풀 / 신경림-농무 / 김지하-어둠 속에서 /정희성-踏靑 으로 구성이 되어있다.메시지가 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메시지는 관념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즉 관념이 시 깊숙이 박혀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념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딱딱하다. 어렵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기피하려 한다. 나 또한 그런 생각에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관념은 깊이 파고들수록 헤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적정선에서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고 쉽게 풀어 설명을 해나가는데 평범한 사람들까지 쉽게 이해를 돕고 있기에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여기에서는 시의 본질(예술성)과 관념이란 두개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관계 속에서 시가 되느냐 산문(과학적인 기록)이 되느냐를 작품을 통해서 어떠한 것은 시가 되고 어떠한 것은 시의 형태만을 빌린 산문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성보다 관념이 앞서면 그건 산문이 되며 그 반대일 경우는 메시지가 강한 시로 본다는 것이다. 시의 형태만을 빌린 관념이 너무 강한 시와 관념을 중시하되 예술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를 비교의 방법을 통해 더욱더 이해를 돕고 있다.마지막으로 실험성이 강한 시의 계열, 즉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시로 분류를 하고있다. 이상-詩第一號 / 김수영-孔子의 生活難 / 조향-바다의 층계 / 이승훈-가을 / 오규원-테크노피아 / 이형기-루시의 죽음 / 오규원-뜰과 귀 / 황지우-벽?1 / 박남철-사직서 / 송찬호-총알 / 박상순-양 세 마리 / 김혜순-서울의 밤으로 구성이 되어있다.모든 시중에서 가장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는 시이다. 이 시들 중에 이상의 시가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시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이상에 와서 현대적 차원의 해체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상은 전통을 완전히 무시 하였는데 이는 자크 마리탱의 모더니즘 이론에서 과격 모더니즘 이라고 한다. 반대는 온건 모더니즘으로 이는 전통을 존중하는 모더니즘 경향을 말한다. 현대적 차원에서의 시의 모습을 이상이 처음으로 열었다고 볼 수 있기에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소설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삶이 힘들때 사람들은 유토피아 혹은 천국을 꿈꾼다. 그러나 그곳은 애초에 존재하기 힘든 곳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인물을 꿈꾼다. 유신 독재의 박 대통령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일본에 ‘오다 노부나가’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더불어 일본의 3대 명장으로 불리는 이들. 그런데 얼마전 현대 일본에서 다시 ‘노부나가 열풍’이 몰아쳤다고 한다. 자서전, 초상화 등등,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왜일까, 대체 ‘노부나가’의 어떤 힘이 현대 일본인을 움직인 것일까.부동산 바람과 더불어 제테크 바람이 불면서 자산관리나 재산불리기에 관련한 책들이 많아졌다. 유명CEO들의 성공 비법을 적은 책도 많다. 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이라는 것이다.그의 카리스마 경영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장이니 무리를 이끄는 힘이 굉장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경제 ? 문화 ? 예술할 것 없이 경계를 뛰어넘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선보였던 것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노부나가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세권의 책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권이지만,) 한권은 소설에서 다루어진 오다 노부나가 이고, 한 권은 노부나가의 매력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룬『오다 노부나가, 카리스마 경영』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현대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부나가의 매력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책을 엮어가고 있다.소설을 읽게 되면서, 나는 왠지 그에게 성큼 다가설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는 짧은 어투로 불필요한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은 대부분 서술자의 의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노부나가의 획기적인 생각들을 묘사해 놓은 부분에서 그는 어김없이 ‘천재적인 발상이다’, ‘세계를 뛰어넘는 천재’라는 지 않는가’당시 전장에서 쓰이던 창의 길이는 약 9척(2.7미터) 정도였다. 그런데 오부나가는 이것을 약 2장 1척이라는 4분의 1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여버렸다. ‘창의 용도는 찌르는 것이다’라는 상식을 과감히 깨버렸다. 창끝을 상하좌우로 휘둘러 적을 내리친다는 것이다. 찌르는 것에만 익숙한 이전의 군대,는 요리조리 짧은 창을 휘두르며 오는 그네들을 비웃기 바빴다. 하지만 다가온 이들은 찌르는 것과 내리치는 것을 병행했다. 말하자면 원래 있던 기능을 그대로 두고, 그것이 가지고 있던 다른 기능을 살려 한 가지 능력을 더 보탠 것이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대활약을 했다. 발명은 언제나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주 간단한 생각의 전환이 군대의 승패를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노부나가의 카리스마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온 아이디어의 적절한 사용’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난세의 영주들과는 얼굴이 달라’전국시대의 영주는 용모가 우락부락하고 선이 굵은 것을 최고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다 가는 대대로 미남미녀의 혈통을 자랑했다고 한다. 얼굴이 길고 피부가 흰 호남형. 그게 노부나가의 첫인상이었다. 그런 용모와 젊음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코밑 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기품을 높여주는데는 한 몫 했을지 모르나 무사적인 카리스마에는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첫 대면에서 상대는 그를 얕잡아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기’로 상대방을 눌러 앉힌다. 애초에 도전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납작하게 엎드리든지, 아니면 그를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노부나가는 예측불허였다. 그의 위력을 깨닫지 못한 상대가 안심하고 있는 동안, 그는 끝없이 달리고 싸웠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배경에는 ‘오와리의 꼴통’이라 불렸던 노부나가의 수많은 시련이 있었을테지만, 그는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갔고 결국, ‘일본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혁명아’라는 별칭까지달려있다.”)노부나가는 독특한 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던 성에 대해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이렇게 감탄했다.“포르투갈에서 인도로, 그리고 마카오를 거쳐 일본으로 왔지만 아직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움 궁전을 보지 못했다.”)전쟁에 나가면서 외모를 가꾼다는 발상은 어찌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거나, 풀과 같은 위장을 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몸에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생각하는 ‘미적 아름다움’이란 지금의 것과 그 의미가 사뭇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폴레옹이 입었던 붉은색 군장이나 요즘 사극에 등장하는 휘양찬란한 전투복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파티장에 가면서 온통 검은 옷을 입는 것 보다는 반짝이라도 하나 더 달고, 리본이라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파티장의 분위기와 흥을 돋구어 주는 데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전장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세심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노부나가의 모습이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소설속에서 노부나가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 했다. 더 크고 뿌리가 깊은 나무로 성장하는 중이었다.‘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전투의 양상이 달라진다’앞서 언급한 긴 창을 짧은 창으로 바꾼 발상의 전환 이외에 노부나가를 ‘혁명아’로 지칭할 수 있는 이유를 꼽자면 바로 ‘철포의 사용’ 들 수 있을 것이다.전국의 영주들은 철포 채용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유용한 무기이지만 너무 고가였다. 사무라이에게는 ‘철포는 비겁한 자의 무기’라는 의식이 있어, 아시카루(보병)만이 사용하는 무기로 취급했다. 또한 총탄과 화약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노부나가만은 철포에 전력을 기울였다.철포가 요긴하다고 판단한것은 ‘적은 무기로 다수를 공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총탄과 화약만 넉넉하다면 기본적인 사용법만 알고도 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었다. 칼과 창을 들고 적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위치할 필요도 없었다. 철포만 상용상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리함까지 갖추고 있던 것이었다.‘나는 죽는다. 내가 한 모든 일은 헛된 꿈이 되고 말 것이다.’노부나가는 상을 내리는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부하가 부자가 되는 것을 배아파 하지 않았다. 그가 은밀히 꿈꾸고 있는 이상사회, 그것은 전란의 세상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질서 하에서는 거대한 영지를 가진 영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군사력과 재정은 중앙의 통일정권이 관장한다. 노부나가는 구태의연한 기득권을 타파하려 하였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었다.하지만 그는 갑작스런 사태에 직면하여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를 친 사람은 가장 곁에 두었던 ‘아케치 마츠히데’였다. 당시의 사람들이나 후세의 역사가들이 그 원인을 규명하려 했으나, 납득이 가는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어느 시대에나 혁명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했다. 단, 노부나가만이 돌출적인 흔적을 역사에 남기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진행시켰으며, 나아가 짧은 시간에 개혁을 추진하여 그에 대한 반발을 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결정적인 것은 미쓰히데가 원래 쇼군 직속의 부하로 있다가 노부나가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와 매우 적대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고, 쇼군 측에서는 예전에 자신의 부하였던 마츠히데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빠른 노부나가가 이런 동태를 몰랐을 리 없다.마츠히데는 중간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다 군에서 중요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고,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주고쿠 공략을 기점으로 히데요시는 새로운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마츠히데는 정체된 상태였기에 둘의 차이가 점차 좁혀지게 되었던 것. 결국 노부나가의 죽음에는 마츠히데의 소속 문제, 히데요시의 이간질, 노부나가와의 마찰 등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는 얘기다.나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을 떠올렸짧은 시간. 그것이 천운이었다.뜻을 이룰 수 없기에 뜻이다. 차면 모자란다. 찰 수 없었기에 노부나가의 뜻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하얀 달빛을 받으며 노부나가는 죽어갔다.)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노부나가의 화려한 업적에 비할 데 없는 쓸쓸한 마지막인 듯 하지만, 그래서 그가 휘어잡은 한 세월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진보하는 자를 경계하는 버릇은 어느 세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 번 쯤은 존재했었던 것 같다. 후대 사람들이 자료를 모으고 문헌을 정리해서 이것저것 엮다보니 이제서야 그 천재성이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사의 시대가 곧 하극상의 시대라고 할 만큼, 제 자리에 대한 위협은 당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공포였을 것이고, 그래서 웃지 못할 헤프닝도 많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아끼던 부하의 손에 죽게되는 일처럼 말이다.그러나 노부나가의 발상은 값진 것이었다. 전쟁의 시대를 종결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세상을 이룩하는 것, 글의 서두쯤에서 말했던 유토피아 건설의 꿈을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그였다. 그것은 언제나처럼 실패로 돌아갔다. 저자가 그렇게도 ‘천재’라고 칭송하던 노부나가도 결국 별 수 없는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자신의 죽음을 예견했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지금은 비록 누군가의 글로 그의 마음을 대신 읽을 수 밖에 없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희망을 져버리지 않았다. (물론 그 중에 몇 가지는 현실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허망하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켜냈던 그의 굳건한 마음, 나는 그것을 높이 사고 싶었다.‘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다기를 내게 주게’노부나가는 모든 문화의 원천이 다도에 있다고 생각했다. 전란이 계속되는 시기에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고 하면 할 일이 없어지는 것도 당연지사다. 전국시대를 평정하여 평화가 찾아온 후에는 당연히 살아가는 목적을다.
구조기능이론1. 구조기능이론이란 무엇인가?사회문화적 체계 속에서 사회, 문화적 현상들이 수행하는 기능과 관련하여 그것을분석하는 것으로 기능주의에서 사회는 그 어떤 부분도 전체와 분리되어서는 이해될 수 없는 상호 관련된 부분들의 체계로 인식된다. 전체에 대해 부분은 모두 기능(역할)이 있다. 사회는 기능적 부분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부분의 변화는 일정 정도의 불균형을 야기하고, 이는 차례로 체계의 다른 부분들의 변화와 일정 정도 체계 전체의 재조직 화를 초래한다. 기능주의는 생물학의 유기체모델에 기반을 두어 발전했다.2. 구조 기능이론의 특징1)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각자의 역할이나 기능을제대로 수행할 때 사회 메커니즘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고 이때 비로소 가장 큰이득을 누릴 수 있다.2) 사회는 상호의존적인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체계이다. 사회는 긴장과교란을 해소하고 규제하며, 항상성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는자기유지적 체계이다.3) 이러한 체계로서의 사회는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본적 욕구와 요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체계로서의 사회가 생존하고 안정된 상태를 보존하고 균형을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요구와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4) 이러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 들은 각기 전체 체계에 대하여 기능적이다.5) 사회는 상호의존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의 한 부분의 변화가일어나면, 그와 관련된 부분들이 변화를 일으켜 균형의 회복, 즉 재균형을 이루려는경향이 있다.6) 구조기능이론은 윤리에 대한 사회구성원 간의 합의와 사회질서유지의 역할을강조한다. 이는 윤리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본다.7) 통시성보다 동시성을 강조한다. 동시성은 시간에 대한 안정성을 의미하며, 통시성은시간에 따른 변화를 의미한다.8) 의도한 결과보다 의도하지 않은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둔다. 구조주의자들은주관성과 의식과 같은 개념들을 불신하면서 인간행위에 대한 통제와 의Social Dawinism)"라고 불리게된다.5) 사회적 다윈주의는 새로운 종류의 사업조직부터 자국의 관습까지 새로운 형태를포함한 사회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혁신들은 채택되고 인정되었는데,이는 이전의 행동형태보다 그들이 더 소중히 여기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에게그런 것들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강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이러한 사회적 다윈주의를 채택하고 인정하였다.6) 자연적인 선택, 가장 잘 적응한 것의 생존, 그리고 새로운 사회형태의 양도는그 사회에서 강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유리한 이론으로 작용하였다.■ Spencer. h(스펜서, 1820-1903)스펜서는 사회를 산 유기체로 보고 다윈의 적자생존이란 용어를 빌려 썼다. 그는 사회속의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고 국가의 역할을 다만 개인의 자유를 유지시키는 기능에 한해서만 인정하였다. 스펜서는 무제한의 기업 경쟁을 옹호하고 자유 경쟁과 적자생존의 원칙을 깨는 국가의 구빈사업을 반대하였다.사회적 진화론은 자유방임 경제를 주장하는 쪽에서나 반대하는 쪽에서나 다 같이 환영을 받았다. 사회적 다윈주의가 파생시킨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은 아마도 인종주의와 전쟁 찬미론일 것이다. 생물학 이론을 정치학에 적용하여 얻은 왜곡된 사회 진화론에 의하면 다만 '더 우월한' 민족만이 생존하기에 적당하다는 것이다.3. 사회적 다윈주의의 비판다윈의 진화론은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 하나가 사회적 다윈주의의 발생인데 이러한 사회적 다윈주의는 비판을 낳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는 조직들은 우월하고 그렇지 못한 조직은 열등하다는 인종차별적인 성격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약육강식을 합리화 하는데 일조하였다는 비판과 함께 근대 서구 열강의 식민 정책을 옹호하는데도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가지고 있다.4. 요약1) 공동체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부분의 집합으로써 가장 잘 생각될 수 있다. ;이것은 되풀이 되고 반복적이고 상호 연결된 활동의 조직이다.2) 이 공동체는 증가하는 차별적이고 더 특수에야 노출되기 쉽다고 주장했다.*갈등의 폭력성핵심개념은 ‘현실적인 문제’이다. 현실적인 갈등은 실제하는 적대의 원천을 기반으로 특수한 목표와 관련되어 그런 목표를 추구할 때 초래되는 비용에 대한 평가를 코저는 추론한다.또한 쟁점이 비현실적이면, 갈등은 폭력적이 될 수 있다. 갈등이 핵심적인 가치에 관련된 것일 때, 그래서 감정적으로 참여자를 동원하고 이들의 타협하고 싶지 않게 만들 때, 이러한 비현실주의가 특히 나타나기 쉬운 법이다.*갈등의 지속성코저는 광범위하거나 모호한 목표를 가진 갈등이 더 지속되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도력은 갈등과정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데, 지도자들이 목표들의 완전한 달성이 가능하지 않다고 지각할수록, 그리고 그들의 능력이 추종자들로 하여금 갈등을 종결시키도록 더 잘 납득시킬 수 있다면, 갈등을 덜 지속될 것이다.*사회갈등의 기능들1) 사회는 다양하게 상호 관련된 부분들의 한 체계로 볼 수 있는데, 모든 사회체계는 다양하게 상호 관련된 부분들 사이에 이익의 불균형, 긴장 그리고 갈등을 드러낸다.2) 부분들 사이에 또는 부분들 내에서 체계의 통합과 적응성을 유지하고 변동시키며, 증가시키거나 혹은 감소시키는 작용들이 일어난다.3) 폭력, 부동의, 일탈, 갈등과 같이 파괴적일 수 있는 과정이 특정 조건 아래에서는 체계의환경에 대한 적응성뿐만 아니라 통합의 기초를 강화할 수도 있다.*사회갈등의 긍정적 기능들)1) 집단구조의 결정 : 외집단에서 오는 갈등적인 압력은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강도의집단 규범과 구조 및 조직을 재정비하는 기회를 가지게 한다.2) 이데올로기의 창출 : 성원들에게 갈등 상황의 정당성을 믿게 하고 타 집단과의 투쟁의식을고취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해 낸다.3) 세력균형의 창출 : 타 집단과의 객관적인 힘의 비교는 자기 집단 내의 새로운 세력균형을창출하는 게기를 마련해 준다.4) 집단결속의 기능 : 다른 집단과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성원들은 ‘우리’의식을 갖고자기 집단을 유지하려는 응집력이 강화된다.5) 집이다. 그렇게 주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 모두는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한다면 인간의 생활은 모두 상징(의미)을 매개로 하여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2.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과 전제1) 사회는 무수한 개인들간의 상징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축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과정적인 형상이다. 따라서 사회는 하나의 인정된 사회구조와 법률과 역할들로구성되어 있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대로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미드에 의하면 사회는 인간의 행위와 상호작용이 서로뒤섞인 채 복잡한 의미의 집합체로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서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자체가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상황의 정의(definition of situation)로 설명되는데, 예를 들면 청소년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상황을 목격한 한 사람이당시 상활을 정의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청소년 흡연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묘사하면 그것이 바로 사회문제가 되는 것이다.2) 사회문제의 발생과 원인에 있어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가에 따르면 사회문제는 어떤것이 사회문제라고 고정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사회문제는 특정한 인간의 집단이어떤 사회적 현상을 문제로 규정하고 인식하여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비로소 사회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사회문제는 특정 집단의 사람이 어떤 상황을 어떻게규정하고 문제로 삼느냐의 여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 집단이란일반 시민이나 영향력이 있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3) 사회문제의 해결방안에 있어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따르면 어떤 사회적 현상이 상황의정의나 해석에 의해서 사회문제로 인식되면 그러한 사회문제에 연루된 사람은 보통일탈자로 간주된다. 따라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일탈행위를 하는 개인의 설명을들어 이해하거나 일탈행위를 보이는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이 있다.3.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1) 미드(G. Mead)의 상징적 상호작용론심리적개념들은 내성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배격하고,어떤 유기체에 주어지는 자극과 이로부터 생기는 반응을 중심으로 인간행동이 연구되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행태주의적 입장을 자극-반응모델(Stimulus-Response model)이라고 하였다.② 인간의 학습은 특정한 환경으로부터(자극)의 적절한 (반응)이라는 조건화된 연합으로발생되며 인간은 환경에 지배되는 피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③ S-R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의 대상은 인간의 행태인데도이러한 관심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는 등 애매한 허구적개념들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2. 행동주의 이론의 세 가지 접근방법1) 파블로프(Pavlov)의 고전적 조건화(Classical Conditioning)특정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던 자극(중성자극)이 그 반응을 무조건적으로 이끌어내는 자극(무조건자극)과 반복적으로 연합되면서 그 반응을 유발하게끔 하는 과정을 말한다.*파블로프의 개 실험파블로프는 조건화라는 과정을 통해 행동의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조건화란 평소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자극(중성자극, Neutral Stimulus : NS, 종소리)이무조건적인 반응(무조건반응, UnConditioned Response : UCR, 침을 흘리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자극(무조건자극, UnConditioned Stimulus : UCS, 음식)과 연합하는 과정을 말한다.조건화가 이루어지면 중성자극은 조건자극(Conditioned Stimulus : CS, 종소리)이 되어조건반응(Conditioned Response:CR, 침을 흘리는 반응)을 이끌어낸다.예) Watson&Rayner(1920)는 알버트라는 아이가 흰쥐에게 공포를 느끼도록 하는 실험2) 스키너(Skinner)의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어떤 반응에 대해 선택적으로 보상함으로써 그 .
古와 新, 사회와 개인의 대립과 현실인식-차범석 희곡 연구-목차Ⅰ. 머리말Ⅱ. 작품의 갈등구조1. 최노인과 가족의 갈등2. 古家와 신식건물의 갈등3. 개인과 사회의 갈등Ⅲ. 양극의 대립속 인물 유형1. 古와 新의 갈등으로 본 사회상의 피해자 '최노인'2. 부조리한 사회상의 피해자'경수와 경애'Ⅳ. 작가의 현실인식Ⅴ. 희곡사적 의의Ⅵ. 맺음말?참고문헌Ⅰ. 머리말희곡작품은 현재화된 인생표현의 문학이다. 그런 만큼 그 시대의 상황과 아주 많이 닮아있다.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현대희곡의 역사는 100년 정도로 다른 장르에 비해 짧다. 1910년대부터 희곡이 창작되기 시작했으며, 점점 다양한 극작가들의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현대희곡의 기초가 해방기에 이르러 확립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의 작품들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편중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문학의 발전을 기대할 수 가 없다. 그 이유는 문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시작은 있으되, 종점이 없기에 계속해서 그전의 장점을 본받아 새로운 장르가 생기고, 시대의 모습에 따라 변하는 게 예술이기에 그러하다. 특히 1950년대에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민족 분단이 있었고, 전쟁으로 인하여 그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찾아온 엄청난 속도의 근대화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이라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는 줄곧 민족 분단과 전쟁에 대한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양산되기도 했다.하지만 이 시기의 작품은 하나같이 전쟁의 참담함을 다루고 있었다. 문학작품은 그 시대의 모습만을 담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 시대의 현실적인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 삶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갈등상황이 진행될수록 가족들은 조금씩 집을 팔자는 쪽으로 몰아간다. 최노인은 어쩔 수 없이 집은 팔지 못하나 전세라도 놓을까 싶어 복덕방 노인을 부르지만 큰 아들 경수는 집을 팔수 없다고 하며 복덕방 노인과 싸우고 나가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배우가 되려고 오디션을 보러 간 경애는 풀이 다 죽어서 들어온다. 누가 봐도 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야기가 반전이 생긴다. 바로 큰 아들 경수가 취직신청서를 낸 제약회사에서 경수를 채용하겠다는 편지가 날아온다. 그런데 경수는 이미 취직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사회를 원망하다가 자기 방에서 하얀 붕대로 싼 무엇인가를 들고 나가버린다. 그렇게 점점 힘들어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최노인은 전형적인 인물의 모습에서 벗어나 결국은 古家를 팔 생각을 하게 된다.최노인이 결국 고집을 꺾음으로서 이 작품의 갈등이 해결되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경수는 취직이 되었고, 경애는 시집을 갈 수 있고, 경재 또한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으며, 경운은 힘든 인쇄소 식자공 노릇을 그만 두어도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반전이 드러나게 된다. 가장 갈등이 심해지는 절정부분에 해당된다. 바로 경수가 형사에게 붙잡혀 오게 된다. 취직소식을 알지도 못하고 사회에 불만을 품어 권총으로 귀금속을 훔치다 잡힌 것이다. 거기에다 영화배우를 위해 자신의 돈과 한 여자의 순결마저 바쳤으나 사기를 당해버린 경애는 결국 자살을 해버린다. 독자는 갈등이 해소될 듯하다, 오히려 반전에 의해 비극적인 결말이 오히려 더욱더 극대화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비극이 그리는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서 관객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유발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 인간적 정념이 어떠한 형태론가 순화된다는 하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작용(昇華作用)으로 해석될 수 있다.2. 古家(구시대) : 신식건물(신시대)의 갈등최노인과 가족 사함을 깨닫고 심사위원을 매수하게 된다. 영화배우는 연기력이 아닌 미모와 돈으로 말이다. 심지어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자신의 순결까지 팔아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그 심사위원이 사기꾼이라는 사실과 텅 빈 사무실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만 돌아왔을 뿐이다. 결국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쳤던 그녀는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됨으로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자 결국은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사회에 맞서기에는 개인의 힘이 너무나 약하고 그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Ⅲ. 양극의 대립 속 인물 유형1. 古와 新의 갈등으로 본 사회상의 피해자 '최노인'옛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의 갈등 속에서는 최노인과 古家 그리고 古家를 둘러싼 주위의 환경에서 비롯되고 있다.변화한 상가에 자리 잡은 최노인의 낡은 기와집. …(중략)… 해묵은 지붕에는 푸른 이끼며 잡초까지 자라나서 오랜 풍상을 겪어 내려온 이 집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배경으로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건물의 행렬이 엿보이고 좌우편에도 역시 3, 4층이나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서 이 낡은 기와집을 거의 폐가처럼 멸시하고 있다.)최노인 가족이 살고 있는 古家를 중심으로 점점 높은 고층건물, 즉 신식건물이 세워지고 있다. 그 높은 건물로 인해 햇볕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정성스럽게 심어둔 화초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즉 여기서 화초는 최노인 가족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이제 이곳은 옛날과 다르게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당한 곳이라는 것을 암시해주는 매개체이다.최노인 : (화단 쪽을 가리키며) 저기 심어놓은 화초며 고추모가 도무지 자라질 않는단 말이야! 아까도들여다보니까 고추모에서 꽃이 핀 지는 벌써 오래 전인데 열매가 열리지 않잖아! 이상하다 하고생각을 해 봤더니 저 멋없는 것이 좌우로 탁 들어 막아서 햇볕을 가렸으니 어디 자라날 재간이있어야지! 이러다간 땅에서 풀도 안 나는 세상이 될 게다! 말세야 말세!)최노인은 신식건물이 빠르, 경수와 경애는 부조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피해를 입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2. 부조리한 사회상의 피해자 '경수와 경애'앞서 말했듯이 1950년대는 해방과 더불어 서양 문물의 빠른 수용과 함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소위 말하는 황금만능주의, 즉 돈이 가장 중시되는 사회였다. 돈을 벌기위해 사람은 단지 도구로 취급이 되고 있었는데 극작가 차범석은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의 모습을 '경수와 경애'라는 인물을 통해 그 시대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어머니 : 원 애두 …… 참 거 영등포 어느 공장에서 오란다는 애기는 어떻게 되었지?…(중략)…경 수 : (혼잣소리로) 밤낮 기다리라지! 육시헐! 죽을 때까지 제깟놈 말만 기다리고 살란 말인가?)경수는 전쟁을 참가하고 돌아온 제대군인이다. 전쟁동안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제대하기까지만 해도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잘 해나가리라 다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취직을 구하는 동안 그러한 마음이 점점 약해져 결국은 포기해버리게 된다. 취직이 안 되는 이유는 경수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 시대 깊게 박혀버린 물질만능주의에 길들어져 버린 사회의 모순이 경수를 파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경 수 : (냉소를 뱉으며) 그걸 안다면 세상이 이 꼴이겠어요? 모두가 자기에게 필요할 때만 형님이요,아저씨지 볼 장 다 보면 지나가는 똥개 취급이라니까요…… 하하…… 요컨대는 취직에도 먹자판이지!밑천 안 넣고는 어림도 없어! 그러니까 또 취직만 되면 그 본전에다 복리까지 가산해서 주어 잡수시기가 일쑤 아니예요. 그러나 내겐 그 돈도 없어! 돈!)취직을 하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돈이 없으면 비참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현실주의자인 경운은 그러한 오빠를 보면서 타협을 해서라도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수는 타협은 곧 '도둑질'이라 여기며 타협하지 않는다. 경수의 자기 독단은 전쟁에서 터득한 '삶에 대한 강한 애착'에서 기인하고 있다. 죽음이라회의 구조가 너무나 단단하다.최노인과 경수, 경애는 그 시대에 살았던 서민들의 삶의 유형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전부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실패하게 되는 자들만 설정하지는 않았다. 경운과 경재는 그러한 모순된 사회 속에서도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려는 인물을 설정하고 있다. 그렇게 두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서 변화하는 시대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잘 파악하여 앞으로 전개될 비전으로서 막내아들 경재와 막내딸 경운을 현실적 인물)로 그려 놓았다고 할 수 있다.Ⅳ. 작가의 현실인식차범석의 작품 세계는 크게 두 계열로 양분된다. 하나는 사회 비평적인 요소가 짙은 일련의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로컬리즘을 바탕으로 하는 풍속적인 작품들이다.) 이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이 는 전자의 경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중에서 에 나타난 작품 세계를 통하여 그의 현실 인식 태도를 살펴보자.에 나타난 차범석의 현실 인식 태도는 철저한 서민 지향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보이는 이러한 그의 성향은 초기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작품에 나타나는 최노인은 신식만을 고집하는 현대인들의 혼례태도에 큰 불만을 가지면서 끝까지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한다. 이러한 고집은 문명화된 세계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간의 최후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그리고 古家또한 서민의 전형을 보여주는 매개물로 보고 있다. 신식건물에 가려 햇볕도 들어오지 않고 마구 버린 물 때문에 기둥이 썩어 들어가는 모습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보여준다.작가는 한쪽은 혜택을 받지만 그 혜택으로 인해 다른 한쪽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상반되게 묘사함으로서 더욱더 서민들의 삶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서민을 관조의 자세로 보지 않고 언제나 피해자로밖에 살 수 없었던 서민들의 실상을 묘사해 낸다.최노인 뿐만 아니라 경수나 경애 또한 문명의 피해자이다. 경수는 전쟁의 피해자이고, 경애는 출세 지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