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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 자연과학, 자연지리]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기후에 영향주는 요소(climate forcing)◁1.지구 밖에서의 원인①궤도의 변동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궤도의 변동은 태양 에너지가 분배된 것의 영향을 받아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와 계절 변화를 일으킨다.다음 그림은 이심율, 황도 경사각, 근일점 경도(궤도정의요소)3개 요소의 과거 100만년 간의 변화를 나타낸다.과거 100만년 사이의 이심율은 0.0005~043, 지축경사각은 22?03‘~24?27’, 기후세차는 -0.054~0.053의 범위 변동이 있었다. 이들 요소의 기본주기는 5개가 있어,이심율은 41.3만년과 약 10만년 지축 경사각은 4.1만년 기후세타는 2.3만 년과 1.9만년이다.이 궤도 요소의 주기에 따라 일사의 변동이 계산되고, 기후변동의 주기도 알수있다. 각 궤도 요소의 영년 변화에 대한 밀랑코비치와 최근의 베르거와 로우트리에 의한 일사량 곡선은 기후변동의 주기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밀랑코비치 가설에 예측된 1.9만년, 2.3만년, 4.1만 년의 주기는 실제로 빙하기 기후의 긴 기록에서 발견된다.②태양 에너지의 변동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 산출은 가끔 약하게 바뀌는데, 지구 대기와 기후에 영향을 주는 에너지 흡수량을 바꾼다.태양에너지는 어느 때에는 비교적 강하고 어느 때에는 약하다. 이것은 태양활동의 강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데 태양은 어느때는 조용하나 때로는 대폭발을 일으켜 태양표면에 흑점을 나타낸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의 폭발과 흑점이 11년 주기로 해서 극소기(태양 활동이 약함)와 극대기(태양활동이 강함)로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태양 활동은 지상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고있다. 긴 기간을 통해보면 태양활동의 주기는 한랭한 기후나 따듯한 기후를 나타내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다음 그림은 태양 활동을 표시하는 지수로 사용되고 있는 상대 태양 흑점수이다.이 상대 태양 흑점수에 따른 극소기와 극대기는 소빙기나 간빙기의 변화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2.지구 안에서의 원인.③화산활동의 미세(연막)물질.화산폭발은 큰 연막물질을 대기로 유입하여, 지구의 반사율을 증가시키고, 지구의 한랭화를 촉진한다.1985년의 탐보라 화산, 1993년의 크라카도아 화산, 1963년의 아군화산, 1980년의 미국의 세인트 헬렌즈, 1982년의 멕시코 엘치촌 화산,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의 분출등은 최근에 있었던 화산분출로 기후에의 영향을 잘 보여주었다.화산재가 일사를 막아 일사량을 감소시키고, 기온저하를 타나내는 영향을 화산분출의 양산작용이라 한다. 일사량을 감소는 화산분출로 생긴 화산성 성층권 에어로졸이 작용한 것이다.화산분화에는 용암의 유출이 주를 이루고, 분연은 그다지 내놓지 않는것도 있으나 기후변화에 중요한것은 분연이나 수증기, 아황산가스, 유화수소 등의 가스를 폭발적으로 분출하여 성층권까지 주입하는 분출이다. 아군 화산이 분출한 후 대기를 조사 하였는데, 화산분연 속에미세한 화산회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무거운 규산염은 차차 낙하를 시작하였다. 1개월 후 다시 대기를 조사하였는데 규산염을 주로 한 화산회의 양은 감소하였고, 반대로 규산염의 화산 에어로졸이 증가한 것을 알게 되었다.아황산 가스가 많은 분출은 아황산가스와 같이 수증기를 분출하므로 화학반응을 일트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산염의 미립자로 변해간다. 다시말해 에어로졸은 점점증가해 분출 후 성층권 중에 오랫동안 체류도어 직달 일사량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미립자가 직달광을 산란시키므로 산란광은 증가한다. 높이 25km까지 올라간 에어로졸은 1.3~1.8정도 성층권에 체류한다. 화산성 에어로졸이 장시간 성층권에 체류하면 태양방사가 대기 하층으로 투과되는것을 막는다. 화산성 에어로졸의 크기는 태양방사의 파장에 비해 그다지 적지 않아, 에어로졸이 태양방사를 흡수하기는 하지만 반사, 산란 작용도 커서 저온화에 영향을 준다. 일사량이 감소한 후 적도 지방의 기온은 약간 저하 하지만, 고위도에서의 기온은 상당히 저하한다. 그 때문에 남북의 기온차가 커지고, 편서풍이 강해져서 예년과는 다른 기상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④대류권의 미세(연막)물질대류권의 연막물질은 구름의 구성요소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지구의 반사율도 높인다.⑤대기중에 잔재하는 가스탄소산화물, 메탄, 그외의 다른 상존 부유물질은 적외선 에너지를 흡수하여, 결과적으로 온실효과를 가져온다.이 물질들은 온실가스라고 불리는데, 온실효과 가스의 주류를 이루는 이산화타소는 전세계 탄소순환 중의 한 현상으로 전 지구 탄소순환, 그중에서도 특히 바다의 역할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생물권에는 대기의 3배에 가까운 탄소가 저장되어있으나, 바다에는 대기 탄소량의 50배가 저장되어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2005.08.04| 3페이지| 1,000원| 조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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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문화] 수원 화성 답사보고서 평가B괜찮아요
    목 차1.답사일정표2.역사관 답사3.수원화성 답사4.참고자료시간내용비고AM 9:00사당역 도착지하철비 1,000원AM 9:10사당역=>수원 국토지리정보원광역버스 1,600원AM 10:20수원 국토지리정보원 도착지각비 2,000원10:30~12:30국토지리 정보원화성 팔달문 이동14:40~18:00화성 답사(팔달문->화서문->장안문->창룡문)19:40서울 도착1.역사관part1. 고지도(세계지도)-동양에서 제작된 전통적인 세계지도를 전시하고 있었다.-전시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원형천하도, 곤여만국전도, 지구전도, 지구후도,황도북항성도, 황도남항성도, 천지도, 천하총도.중국이 중심에 있으며 가장 크다고 생각했으며 중국 이상은 가지 않았으므로상상에 의존해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동양 최초의 세계지도이다.옛 사람들이 그린 이러한 상상의 세계 지도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세계의 중심이고 대륙의 바깥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천하도이다. 천하도 에서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표현되어 있다.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이름도 세계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part2. 조선전도-우리나라 전체지도를 전시하고 있었다.-전시 지도:팔도총도, 조선총도, 조선국팔도통합도, 동국지도, 조선방역지도, 동국여지지도, 동국대지도, 아국총도, 조선팔도지도, 해좌전도, 대동여지전도, 대한여지도, 대한전도대동여지도-1985년 8월 9일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이며, 22첩으로 이루어져있다. 1861년(철종 12) 김정호 자신이 판각하여 초판을 발간하고 1864년 재간하였다.1834년에 펴낸 《청구도》의 자매편으로서 그 내용을 보충하고 일반인이 편리하게 사용할수 있도록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책자 형식의 분첩절첩식으로 만들었다.즉, 전체를 22첩으로 꾸며서 접으면 책자가 되고, 2~3첩씩 합쳐서 볼 수도 있으며 모두펼치면 전도(全圖)가 되게 제작한 것이다. 각 첩은 가로 20.1㎝상열차분야지도part7.세계 고지도:세계의 고지도 전시.part8. 지도의 종류:토지, 지형, 교통, 도시계획 등 다양한 목적에 따른 지도의 유형 전시1.축성 동기수원은 본래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이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의 주민을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이주시키고 여기에 관청과 향교, 사직단 등을 세워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다. 주민들이 이사를 하고 새 관청이 세워진 것은 1789년 정조13년 7월이다.수원부를 새로운 장소로 이전한 표면적인 이유는 수원부가 있는 화산 아래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겨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종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즉위한 지 13년 뒤, 부친의 무덤을 서울 청량리 밖 배봉산에서 수원 고을이 있는 화산 아래로 옮겼다. 화산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좋은 무덤터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대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하는 국가적인 사업이 단지 효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신하들에 의한 좌지우지되지 않겠다는, 굳건한 왕권을 세우려는 왕권 강화의 의지가 있었다.수원 고을의 이전은 사도세자의 무덤을 주산인 화산 아래로 옮기면서 취해진 부득이한 조처로, 옮긴 곳은 기존 고을에서 북쪽으로 약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팔달산 아래였다.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비좁았던 이전 고을과 달리 삼면이 넓게 트인 평활한 곳이었다. 게다가 새 고을 터는 서울에서 삼남, 곧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였다.또 수원의 번영책으로, 서울의 부호2~30호를 모집해서 무이자로 1천 냥을 꾸어 준 다음 상점을 짓게 하고, 관청에서는 기와를 구워 싸게 팔게 하며, 시장을 열되 세금을 거두지 않아 수원은 빠른 속도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고을이 점차 큰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자 왕은 1793년, 이 고을의 명칭을 '화성'으로 고치도록 명했다. 이 명칭은 현륭원이 있는 화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이러한 여러 조처가 이루어진 다음에 실행된 것이 도의 여장을 쌓고 여장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을 뚫어 놓았다.성벽의 아래 부분은 큰 돌을 쓰고 위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돌은 잘 다듬은 네모난 것을 서로 이가 맞물리도록 해서 쌓았다. 돌을 맞물리도로 쌓는 이유는 돌들 사이의 마찰력을 더 강화하는 방식을 이용한데 있다. 화성의 성벽은 조선시대 축성술의 가장 발달된 모습을 보여 준다.4.성문화성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다. 서울을 향한 북문이 장안문, 반대 방향의 남문이 팔달문, 동문이 창룡문, 서문이 화서문이다. 이 가운데 장안문과 팔달문은 같은 규모, 같은 형태로 지어져 화성의 남북 대문 구실을 한다.①장안문장안문은 서울을 향하여 북향하고 서 있는데, 돌로 높이 쌓은 사다리꼴 석축 가운데 홍예문(문얼굴의 윗머리가 무지개처럼 굽은 문)을 내고 석축 위에는 2층으로 된 장중한 누각을 세우고 문 앞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다. 전면의 옹성을 제외한아면 전체적인 문의 형태가 서울 남대문과 흡사하다.홍예문에는 두 짝의커다란 나무문을 달아는데 문에는 철엽이라는 작은 철판을 대서 문짝이 불에 타지 않도록 했다. 홍예 상부에는 물통인 누조를 설치하였으며 그 안팎으로 여장을 쌓았다.석축 위에 사운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장대한 건물로 처마에는 화려하고 복잡한 다포식 공포를 결구하여 성의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내세웠다. 누각 내부는 1층과 2층을 따로 고분하여 그 사이에 마루를 깔았는데, 2층 마루에 올라서면 성밖을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우진가지붕이란 지붕 사방이 모두 경사면을 이루는 것이다. 우진각지붕은 조선시대 특별한 건물에만 사용하던 지붕 형식이다. 조선시대에 일반적으로 사용한 지붕 형식은 앞뒷면에만 셩사면을 이룬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이었다.우진각지붕에는 긴 추녀선이 생기는데 이렇게 긴 추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휘어진 아주 큰 나무가 필요하다ㅏ. 따라서 목재가 충부했던 고대에는 궁전에 우진각지붕을 자주 채택했지만 목재가 귀해진 조선시대에는 좀처럼 만들지 못한을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하여 항아리 옹자를 넣어 옹성(甕城)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옹성벽에 반복되는 세로줄은 현안으로 짙은 그림자를 남기는 세로줄이 강하게 그어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3)창룡문창룡문은 장안문에 비해 문의 규모도 작고 형태고 간랸한 평이다. 창롱문에도 옹성이 있는데 출입구가 서울 동대문처럼 한쪽 모서리에 있다.(4)화서문화서문은 수원성의 서문으로 북서쪽에 치우쳐 있다. 창룡문과 함께 화서문은 장안문이나 팔달문 보다 격을 한단계 낮춘 것으로 팔작지붕에 익공식 공포, 문루도 정면 3칸에 단층건물이다참고1>지붕의 형태-맞배지붕:건물의 앞뒤에서만 지붕이 보이고 용마루와 내림마루로만 구성되었으며 주로 주심포집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맞배지붕은 측면에는 지붕이 없기 때문에 추녀라는 부재가 없으며 측면가구가 노축되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풍판을 사용하였다.행랑이나 헛간 같은 부속건물에 주로 사용한다.-팔작지붕:팔작지붕은 맞배지붕 위에 우진각지붕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현존하는 건위건물의 지붕 형태 중에서 가장 많은 형태의 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가 모두 갖추어진 가장 화려하고 가장 장식적인 지붕이다.-우진각지붕:우진각지붕은 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만들어진 형태이다.전, 후면에서 볼 때는 사다리꼴 모양이고 양측면에서 볼 때는 삼각형의 지붕형태이다.용마루와 추녀마루만 있고 내림마루가 없는 지붕 형태이다.참고2>주심포와 다포공포:한국·일본·중국 등지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 은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다포 양식:원(元)이 중국 동북 지방에서 성행하던 두공이 많고 장중하고 위풍 있는 옛 북조 계통의 목조건축 분위기를 가진 양식을 중원에 이식시킨 것으로, 고려와 원의 교류 과정에서 한국에 전해졌다. 조선 전기에는 왕궁, 사찰의 주요 법당 등에 부분적으로 채용되었는데, 매우 성행하여 말기에는 지방의 조그마한 비각에도 채용되었다 두공이 많아서 기둥머리 위,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라는 두공을 배치한 것이 설치한 것이다. 이 포사는 한 칸사방의 규모로, 안에는 온돌방이 있고 사면에는 판자문을 대고 그 문에는 짐승 얼굴을 그려 었다.6.수문화성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성내를 관통하는 대천이라고 부르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 하천과 성문이 만나는 곳에 수문을 두었다. 수문은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으며, 각 수문에는 돌로 쌓은 홍예문 수구가 있는데 이곳으로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1)북수문:북수문에는 물이 이를 수 있는 일곱 개의 홍예 수문이 있고 그 위에는 화홍문이라는 누각이 세워져 있다. 북수문이 있는 곳은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경관이 아름다워서 이곳에 누각을 세워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누각은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의 건물로 사면에 분합문을 달고 동,서,남 삼면에 난간을 달았다. 북쪽은 성 바깥이 되므로 전돌로 성가퀴를 높이 쌓고 여러 개의 총구멍을 냈다. 이 주변은 넓은 바위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일곱 개 홍예가 열을 지어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2)남수문:남수문은 단지 아홉 개의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통로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장포라고 하는 전돌로 만든 긴 건물을 세웠다. 장포 안에는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많은 대포 쏘는 구멍을 설치해서 이곳을 지키도록 했다. 수문 외에도 성안의 물을 조절하는 곳으로 남은구와 북은구가 있다. 은구는 가는 물줄기를 설치해서 성안의 물을 빼내는 장치이다.7.장대:장대란 성 주변 사방을 살피면서 장병을 지휘하던 곳으로,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1)서장대: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곳에 오르면 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대석으로 대를 쌓고 그 위에 2층 지붕의 건물을 세웠다. 건물 모습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와 같이 하층을 개방하고 상층은 폭을 좁힌 독특한 것이다. 서장대 뒤편에는 노대를 세웠는데, 이곳은 쇠뇌(여러 개의 화살이 잇달아 나가게 만든 활)를 쏘는 노수가 머물던 곳이다.(2)동장대:동장대는 성의 동북쪽에 있다. 이곳은 지형이 높지는 않지만 사방이 트여
    사회과학| 2005.08.04| 19페이지| 2,000원| 조회(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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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람후기] 국제 갤러리
    감상문 1>국제 겔러리를 다녀와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5월5일... 오랜만에 꿀맛 같은 휴일도 양보 한 체 친구와 함께 계획한 미술관 관람.전공이 지리학과인지라 수많은 답사로 인해 익숙해질 데로 익숙해진 햇볕과 언덕(때때로 산과 들 그리고 강..)이라 생각했는데 5월의 무더위는 생각보다 훨씬 뜨겁고 강렬했다. 친구와 함께 조촐한 캔음료를 위로 삶아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 언덕을 넘고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국제 겔러리” 앞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겔러리..국제 겔러리..’ 처음 미술관 이름만 들었을 때는 굉장히 웅장하고 화려할 줄 만 알았는데 의외로 미술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미술관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환영하기에 적절한 느낌의 미술관이 였다.미술관의 정문이라 그런지 역시나 모던하고 심플했고, 정문을 열자마자 진한 커피향이 우리를 먼저 맞이했다. 솔직히 작품보다는 커피에 미리 매혹 당했던 것 같다.커피향의 강한 유혹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입구 구석에 마련돼 있는 소파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며 사전에 준비해간 전시 내용을 읽어 보기로 했다.이곳에서는 4월12일부터 5월13일 까지 루이스 부르주아(Louis Bourgeois)의 단독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녀의 생애와 간단한 약력이 적힌 인쇄물을 한줄 두 줄 읽어 나갔다.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대대로 양탄자 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8살 때부터 양탄자 무늬를 제작하는 작업에 참여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양탄자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패턴을 가진 무늬였고, 느낌 또한 그와 흡사했다.어린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시절에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이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르주아는 1938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의 뉴욕으로 이주했고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그녀의 나이 69세부터 세기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인생은 70부터 라는 말은 정녕 그녀를 위한 그녀에 의한 말인 것 같다. 지금도 90이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정도의 얄팍한 지식을 가진 체 무식한게 힘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너무나 당당하게 그녀의 작품 앞으로 다가섰다. 두둥~그녀의 작품을 접하자마자 우리는 아니 나는 그야 말로 멍~하다는 한마디로 모든 작품이 설명가능 한 이름 하여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부르주아 이름에서 느껴졌던 친숙함은 온데 간데 없고 그녀의 작품들은 너무나 형의상학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 였다. 조형물 두점과 동판화 5점 그리고 드로잉과 천조각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 전시돼 있었는데, 우리가 처음으로 접한 작품은 ‘더 홈’ 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형물이 였다. 이 조형물은 철창과 거울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에 놓여진 집을 표현한 작품인데, 큐레이터의 설명에 의하면 집은 통념적으로는 여성, 부르주아의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매개체라고 한다. 이유인 즉슨, 집은 항상 누군가를 보호하고 감싸 안아 주고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며 적들에게서 보호해주는 기능을 가졌다는 점을 여성의 삶과 비교해서 표현했다고 하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철창과 거울은 누군가에게 항상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삶을 표방했다고 한다. 큐레이터의 설명 후에나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품을 다시 한번 찬찬히 감상 할 수 있었고 그제 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다음으로 감상한 작품을 동판화로 ‘사팔뜨기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5개의 시리즈로 구성 돼 있었는데 하얀색 정사각의 천조각위에 빨간색 잉크로 찍어낸 판화 작품이 였다. 작품의 주인공의 여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팔뜨기의 눈으로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체 등장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신화속의 매두사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작품의 주인공이 사팔뜨기인 이유는 사팔뜨기의 눈은 오직 자기만을 가리키고 자기만을 향해 있다. 이것은 곧 작가는 어머니처럼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 또는 신념을 나타낸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부르주아는 자신의 심경을 색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안정적인 심리 상태 일 때는 푸른색을 불안과 초조를 표현하는 색은 주로 붉을색을 사용한다고 한다. ‘사팔뜨기 여인’에서는 아주 강렬한 붉은색을 사용해 제작됐는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작가가 왜 불안해하고 초조해 했을까??!! 나름 데로의 해석 끝에 내린 결론은 작가 또한 여성이고 어머니였으므로 완벽한 개인주의에서 벗어 날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체능| 2005.08.03| 2페이지| 1,000원| 조회(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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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미술] 서양미술 400년전
    “누나 나 레포트 써야 되는데 서양미술 400년전 같이 가자.”“싫어!!입장료 너무 비싸서 못가”이렇게 동생과 나는 미술관을 가냐 마냐 하는 기로에 서서 티격태격 실갱이가 시작 됐다.결국은 동생의 날카로운 한마디 “우리가 언제 세계 전시관 돌아다니면서 이런 대작을 감상하냐?? 이런 기회 흔치 않으니깐 만원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같이 가자. 후회 할 일 없을거야.” 라는 절묘한 발언에 무릎은 탁 치며 동생과 함께 동행한 “서양미술 400년전”가히 전시의 규모만큼이나 전시를 찾은 사람 또한 많았다. 입장권을 구하는 데만 1시간을 조금 넘게 소비하고 입장하는데 30가량 소비하고....동생과 나는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얽히고 설킨 줄을 기다리며 전시관 안에 들어가면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감상 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안고 큰마음 먹고 구입한 도록을 이래저래 살펴보며 대작과의 즐거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전시장 내도 밖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파에 밀려 질 높은 감상을 하는 데는 다소 부족 한 점이 있었다. 그래도 어렵게 찾은 전시관인지라 실망스럽다고 대충 감상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를 악 물고 작품 하나를 놓칠 새라 작품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 감상에 임했다.전시의 전체적인 구성은 시대별로 4부분으로 나누어 지며, 각 시대에 따라 서양미술 400년의 대표 작가들의 대표적인 오리지날 작품119점을 세기별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2층에는 17~19세기 그리고 3층에는 19~20세기의 그림과 고갱과 마티즈의 특별전이 전시되고 있었다.우리는 우선 2층 17세기의 그림부터 시대별로 찬찬히 훍어 보기로 하고 빽빽한 인파를 헤집고 우리의 좌석을 확보하기 시작했다.17세기 전시관에는 근대회화의 시조인 푸생의 작품과, 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루이 14세 수석화가 르브룅의 선과 색의 우위에 대한 심도 있는 이론과 조형적 미학을 감상 할 수 이었었다. 이 바로크 시대는 엄격한 선묘를 중시하였던 고전주의와, 색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화파의 대립으로 서양회화사에서 선과 색의 첫번째 논쟁이 시작된 시점 이라고 한다.이 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작품이 있는데 샤를르 앙퐁스 뒤프레누아의 작품인 ‘율리시스에게 틀킨 아킬레우스’라는 작품과 니콜라 푸생의 ‘두발을 물에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이라는 두 작품이다. 먼저 율리시스 에게 틀킨 아킬레우스라는 작품을 감상 할 때는 다소 의아해 하면서 감상 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신화에 관심이 많은지라 아킬레우스가 여장을 한 사실을 발견 한 사람은 율리시스가 아닌 오디세우스로 알고 있는데... 이 그림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약간 갸우뚱 하면서 감상 했었던 것 같고 푸생의 ‘두발을 물에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은 그야 말로 사람의 마음을 평온 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는 그림 인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시원한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며 감상 할 수 있었던 느낌 좋은 작품 이였다.그리고 18세기의 넘어가서는 선과 색의 화합을 모색한 쿠아펠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특징인 신선하고 섬세한 색을 사용하는 부쉐의 장식적인 회화의 양상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정확한 윤곽선에 가치를 둔 장엄한 화풍의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전시되어 있었다.이 곳에서는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마라의 죽음’일 것이다. 항상 교과서 내지는 서양미술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씌여진 책에 빠짐 없이 등장 하는 그림을 말하라면 아마도 ‘마라의 죽음’이 아닐까 한다. 그 만큼 대중적인 그림이기에 ‘마라의 죽음’작품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다음은 19세기의 화가들과 만날 시간이다.이 시기는 선과 색의 가장 중요한 논쟁인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와 대립을 앵그르와 들라쿠르와의 작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화가들은 이제 색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선에서 자유로와지며, 빛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사조의 탄생과 발전 양상을 쿠르베. 인상주의 화파의 선구자인 모네등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고갱의 판화 및 드로잉 20여 점이 별도로 꾸며져 원시생활 속의 그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었다.
    예체능| 2005.05.15| 2페이지| 1,0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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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칵테일은 왜 예술인가??
    “칵테일은 왜 예술인가?”우선 칵테일인 왜 예술인가를 거론하기 전에 칵테일의 정의를 먼저 내려 보기로 하자.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과 리포트를 위해 개인적으로 찾은 자료를 통합하여 봤을때 칵테일이란 여러 가지 양주를 기주로 하여 고미제, 향로, 설탕을 혼합하여 만든 혼합주 즉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음료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칵테일은 모든 혼합음료를 가르켜 믹스·드링크(Mixed drinks)라 말하고, 좁은 의미의 칵테일은 혼합의 과정에서 세이커(Sharker)나 믹싱 글라스(Mixing glass)를 사용하여 칵테일 글라스에 넣어 마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칵테일의 정의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다음으로는 칵테일이 대중화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예술이란 이름으로 불리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세계적인 통계를 봐서 알겠지만 우리민족만큼 술을 사랑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유렵의 어느 나라처럼 입맛을 돗구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술이 아니라 우리나라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술이라 생각 했을 때가 있었다.우리나라가 1차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무렵에는 대부분이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자연히 사람들은 힘든 육체를 잊기 위해 알코올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술의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미각적인 환상의 필요성은 전혀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장 싼 값으로 알코올의 효과를 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경제 여건이 점점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질 높은 술을 찾게 된다. 과거에 흔하게 단순히 먹던 소주나 막걸리가 아니라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의 음주문화 또한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즐기고 분위기를 즐기는 분위기를 변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 증거는 고급술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칵테일과 양주는 우리의 일생생활에 들어옴에 따라 우리도 이제 술을 알고 마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칵테일은 양주 보다 훨씬 더 질 높은 음주 문화라는 생각도 한다. 진화론에 비춰 말하자면 칵테일이 양주보다 한 단계 더 진화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여기서 칵테일이 왜 예술인가에 대해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칵테일이 예술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첫째로는 예술의 정의와 연관지어 말하고 싶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정확한 대답이란 있을 수 없다.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정답이 수백가지 수천가지로 나올 수 있는것중 하나가 바로 이 질문인 것 같은데 나는 예술이란 새로움의 창조이다! 라는 정답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칵테일은 진정한 예술이다. 칵테일의 정의에서 보았듯이 칵테일은 혼합 즉 섞어서 만든 음료이다.따라서 칵테일은 재료와 양주의 종류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창조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기본주의 색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색깔을 낼수 있으며,여러가지를 섞으므로 여러 가지 향을 즐기수 있으며, 알콜 도수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과일을 장식하여 화려한 시각적인 효과를 얻을수 있다.이렇게 만드는 사람의 창조성을 가지는 술이 또 있을까?또 예술의 진가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칵테일 자체는 마시면 없어지지만 그 제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하다.여기에 더불어 우리는 칵테일이 예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귀로 전할 수 있냐에 따라 예술의 높낮이는 평가한다. 그리고 미술은 눈만을 즐겁게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으로 얼마만큼의 아름다움을 가시적으로 전달 하냐에 따라 그 예술의 가치를 판단한다. 그리고 최근들어 예술이라 불리우는 영화는 눈과 귀는 예술의 가치를 판정짓게 할지 모르지만 미각까지 확대 시킬 순 없다.하지만 칵테일은 위에서 말한 어느 예술보다 훨씬 더 광범위 하게 예술을 느끼해 해준다.우선 현란한 색채를 통해 눈을 즐겁게 한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칵테일 바를 한번씩은 가 보았을 거라 생각된다. 그 만큼 대중화 되었단 말이기도 한데...대부분 칵테일 바를 처음 가서 칵테일을 보았을 때 하나같이 하는 말이 뭔가? 자신들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 한마디.“ 예술이다.”칵테일을 접해본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말 한마디를 했을 꺼라 짐작된다. 사실 위 예가 칵테일은 왜 예술인가? 란 질문의 가장 원천적인 대답일 지도 모른다. 맛을 보기 전에 느껴진 시각적 효과가 일단 술을 접한 사람에겐 예술로 와 닫는다.
    사회과학| 2005.05.11| 5페이지| 1,000원| 조회(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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