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경계선성격장애란 무엇인가?1. 성격과 성격장애1) 성격2) 성격장애의 정의와 주요 특징2. 경계선이란 무엇인가1)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선2) 성격조직으로서의 경계선3) 치료하기 어려윤 환자에 대한 명칭으로서의 경계선4) 경계선에 대한 현대의 견해Ⅱ. 경계선 성격장애의 진단기준(DSM-Ⅳ)Ⅲ.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과 유형1. 문제 영역별 핵심 특징1) 불규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2) 역설적인 인간관계3) 변덕스러운 사고 패턴4) 불확실한 자기상5) 불안정한 정서 상태2. 경계선 성격장애의 하위 유형1) 위축형 경계선 성격장애2) 충동형 경계선 성격장애3) 분개형 경계선 성격장애4) 자벌형 경계선 성격장애Ⅳ. 경계선 성격장애의 발달배경1. 아동기의 외상 경험1) 신체적 및 성적 학대2) 중요한 타인의 상실3) 부정적이고 비일관적인 부모의 양육방식2. 불확실성의 사회Ⅴ.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과1. 발현 시기2. 발생빈도와 성별 분포3. 진행 경과Ⅵ. 경계선 성격장애의 치료1. 심리치료의 유형1) 지지적 치료(supportive therapy)2) 재구성적 치료3) 지지적 치료와 재구성적 치료의 절충2. 협조적 치료관계 형성하기1) 관계 형성의 중요성2) 관계 형성 방법3) 치료관계의 종결4) 치료의 예후3. 인지치료 사용의 예Ⅶ. 사례연구 - 영화속의 경계선 장애1. 얼굴없는 미녀2. 위험한 정사Ⅰ. 경계선 성격장애란 무엇인가1. 성격과 성격장애경계선 성격장애에도 여러 가지 성격장애들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성격장애란 무엇인지, 성격장애가 다른 심리적 장애들(예: 신경증이나 정신증)에 비해 어떤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1) 성격성격이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주어진 환경에 대처해 나가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을 말한다. 즉, 사람들이 가지는 비교적 지속적이고 중요한 심리적 특징들을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이 가지는 비교적 지속적이고 중요한 심리적 특징들을 성격이라고 할 수하는 것은 자신의 성격 자체가 아니라 성격장애로 인해 초래되는 부부간의 불화라든지 주위 사람들과이 마찰로 인한 스트레스, 업무수행의 비효율성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성격장애의 또 다른 주요 특징으로 장애의 지속성을 들 수 있다. 성격장애는 짧은 시간 동안 경험되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해 온 성격특질들은 사춘기나 적어도 성인기 초기에는 고착된 특질로 굳어지게 되며, 이렇게 고착된 성격특질은 이후의 삶의 과정에서 지속즉으로 발현된다. 따라서 한번 형성된 장애적인 성격은 잘 변치 않는 안정성과 지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2. 경계선이란 무엇인가경계선 성격장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계선’이라는 용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경계선이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심리학자들간에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게선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이 용어의 의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다음에 제시되는 경계선이라는 용어의 네 가지 용법 중에 현대 심리치료 전문가들 사이에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마지막 용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나머지 세 가지의 용법들은 잘못되었거나, 잘못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특정한 이론적 맥락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1)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선신경증적 문제는 현실 인식과 생활 적응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지는 않지만 주로 정서적 또는 행동적 측면에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도의 불편과 고통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감정의 변화가 심하거나, 우울?불안, 공포 등 부정적 감정을 계속해서 경험하거나, 주어진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을 되풀이하거나, 의기소침, 의욕상실, 무기력 등이 지속되거나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데 도움이 안돼는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되거나, 주별 사람들과 마찰과 갈등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 등이 신대로 이해하기는 했는지 등 철저한 자기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치료자의 실수나 전문성 결여로 인한 치료의 실패를 내담자나 환자에게만 책임지우려 한다면 그것은 변명이나 자기합리화와 다를 바 없다. 유감스럽게도 치료자들 사이에 경계선 장애란 이름하에 이러한 관행이 한때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경계선이라는 용어를 치료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남용하는 잘못된 명칭 사용의 대표적인 용법중의 하나이다.4)경계선에 대한 현대의 견해현대의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주로 DSM-Ⅳ에 제시된 진단 준거에 들어맞는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계선이라는 진단명을 부여한다. 경계선이라는 용어의 다양한 용법 중에서 DSM-Ⅳ에 제시된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고 적절하다.Ⅱ. 경계선 성격장애의 진단기준 (DSM-Ⅳ)인간관계, 자기상 및 정서의 불안정성과 현저한 충동성의 지속적 패턴이 초기 성인기부터 발현되고, 다음에 제시되는 것들 중 다섯 가지 이상이 다양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경우.1) 실제 혹은 상상적인 방기를 피하려는 극도의 노력(주의: 기준5에 포함되는 자살 혹은 자해행동은 포함하지 않음)2)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특징 지워지는 불안정하고 강렬한 인간관계 패턴3) 정체성 장애 : 자기상 혹은 자기에 대한 감각이 현저하고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경우4) 잠재적으로 자기손상적 성질을 지나는 최소한 두 가지 영역에서의 충동성(예: 소비, 성, 약물남용, 부주의한 운전, 폭식)(주의: 기준5에 포함되는 자살 혹은 자해행동은 포함하지 않음)5) 되풀이되는 자살행동이나 제스처 혹은 위협, 또는 자해행동6) 기분의 현저한 반응성으로 기인하는 정서적 불안정성 (예: 며칠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강한 기분저조나 초조 혹은 불안 에피소드)7) 만성적인 공허감8) 부적절하고 강렬한 분노 혹은 분노통제의 어려움(예: 빈번한 분노폭발, 지속적 분노 상태, 되풀이되는 신체적 충돌)Ⅲ.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과 유형1. 문제 영역별 핵심 특징1 차장과 행동을 하거나, 극단적인 쾌활함을 보이거나, 자신을 부풀리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 그들로부터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얻고자 분투한다. 이런 행동은 쉴새없이 하고 계획성이 없고 대안적인 행동고려도 없다. (무책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의 사람들이 보이는 이러한 현란한 행동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들은 거부와 좌절을 되풀이해서 경험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인정을 영원히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들에게 깊은 절망을 초래한다.3) 분개형 경계선 성격장애수동 공격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내는 분노나 공격적 행동에 비해 이들이 나타내는 분노나 공격적인 행동은 훨씬 더 강렬하고 빈번하다. 끊임없는 불평, 불만으로 이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언제 불만과 분노가 표출 될지 몰라 항상 전전긍긍해야 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는 내면의 소망과, 타인을 자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게 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휘돌림을 당하지 않으려는 이중적이고도 양극적인 욕구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4) 자벌형 경계선 성격장애분개형 경계선 성격장애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인정과 관심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분개형과는 달리 내면적으로 경험되는 불만과 분노를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응적이고 사교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외면적인 순응성과 사교성의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분노와 적개심이 들끓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의 분노와 적개심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타인의 요구와 기대에 지나치리만큼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유형의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경험하는 분노와 적개심, 타인에 대한 불만을 억제하고 조절하고 통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Ⅳ. 경계선 성격장애의 발달배경1. 아동기의 외상 경험외상적 사건(traumatic events)이란 한 개인이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스트레스 사건을 말한다. 이러한 외상적 사건은 극심몸담고 있는 사회의 특성 또한 경계선 성격장애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불확실성’은 우리 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점점 더 ‘경계선적 성격화’해 나가는 것 같다.경계선 성격장애의 핵심적 특징 중의 하나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전 시대를 이끌던 확실성과 절대성을 더 이상 이 시대에서 찾을 수 없는 아동과 젊은이들은 경계선 성격장애에 매우 취약한 사회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날로 급변하고 유동적인 삶의 환경 속에서 일관성 있는 자기정체감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로 인한 방황과 혼란은 경계선 성격장애의 증상과 매우 유사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Ⅴ.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과1. 발현 시기경계선 성격장애는 청소년기나 성인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기정체성에 문제를 지닌 청소년들이나 성인기 초기에 막 접어든 사람들에게는 성급히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진단 내려서는 안 된다. 흔히 이 시기의 개인들의 실존적 딜레마에 빠져 정서적 불안정성이나 강한 불안, 정체감의 혼란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발달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의미를 발견하고 보다 확고한 정체감을 형성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성급히 경계선 성격장애 진단을 내리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경계선 성격장애는 발달 과정에서 한때 나타나는 일과성의 심리적 장애가 아니라 비교적 지속적인 패턴을 지니는 성격구조상의 문제이다. 따라서 앞서 제시한 DSM-Ⅳ의 진단 기준들에 확실히 들어맞지 않는 경우에는 경계선 성격장애의 진단을 내려서는 안된다.2. 발생빈도와 성별 분포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약 2% 정도가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APA,1994). 또한 외래정신과 환자들의 약 10% 정도가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니고 있으며,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 중 약 20%정도가 경계선 성격장애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있다.
목 차1. 모래놀이치료 이론 12. 모래놀이치료 대상 23. 모래놀이치료 효과 24. 모래놀이치료 특징 25. 모래놀이치료 방법 36. 모래놀이치료의 적용 47. 모래놀이치료의 문제점 4※참고자료 8모래놀이치료(SAND PLAY)1. 모래놀이치료 이론놀이치료와 놀이진단은 서로 상보적이다. 놀이치료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진단과정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경우, 진단을 한 다음에 치료와 연결된다. 그러나 모래놀이는 치료와 진단의 관계가 다른 이론적 접근의 놀이치료보다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진단과 치료가 각각 별개로 발전되어 왔다. 놀이진단과 놀이치료의 목적은 다르다. 놀이진단은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하는 관찰이다. 놀이치료자의 치료목표는 아동의 정신병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쳐서 병리현상을 줄이는 것이다.모래놀이치료의 원형은 영국의 로웬팰드가 1929년에 아동을 위한 치료기법으로서 고안한 "World Technique"이다. 로웬팰드는 아동은 성인과는 다른 복잡한 정신적 요소가 얽힌 존재이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시각과 함께 촉각과 같은 감각 요소를 합한 기법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아동이 감각적인 체험을 할 때 처음으로 스스로 느끼는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소재로서 눈앞에 들어와 있는 모래상자와 작은 인형을 제공하면 거기에는 아동의 내면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법에 치료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스위스의 칼프는 세계기법에 융의 분석심리학의 생각을 도입하여 스스로 치료의 실천에 근거한 이론을 적용하였다.모래놀이치료는 모래가 담긴 상잔에 여러 가지 종류의 장난감(사람, 동물, 나무, 꽃, 탈 것, 집, 담, 철책, 자연물, 로봇, 예수, 부처 등)을 이용하여 다채로운 표현을 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억압된 무의식 세계는 발산하도록 한다.이러한 모래치료를 통하여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면, 치료과정 속에서 나쁜 감정을 쏟아 붓고 난 후의 긍정적인 면들이 부각되기 시작하며,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이든한 수단으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내담자가 자기 치유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법이기 때문에 이것은 치료자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게 한다. 모래를 사용함으로써 내담자의 치료적 퇴행을 용이하게 하며 이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내담자 자신이 어느 정도 자기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므로 자연스런 feedback이 작용하게 된다.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 창조적, 치료적 행위를 격려함으로써 아동은 스스로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감을 느끼며 치료자와 심리적 모자관계를 갖도록 도와준다.2. 모래놀이치료 대상일반 정상아동 및 성인을 비롯해서 틱 장애, 주의산만, 성격장애, 부적응장애, 말더듬이, 야뇨증 등 정서상의 어려움을 지닌 정서장애 아동과 전반적으로 발달상의 지체를 보이는 발달장애 아동들이 있다.걸음마를 시작하는 유아부터 아동들에 이르기까지 부드러운 모래밭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공간이다. 감각적인 탐색과 다양한 형태의 놀이(젖은 모래와 마른 모래의 차이, 모래산 쓰러뜨리기 게임, 숨긴 물건 찾기, 두꺼비집 만들기, 모래케익 만들기 등)로 아이의 나이에 맞게 즐길 수 있다.3. 모래놀이치료 효과1) 모래치료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고 왜곡된 부분들이 풀린다.2) 치료과정 속에서 자신의 나쁜 감정을 다 발산하여 긍정적인 면들이 부각될 수 있다.3) 문제행동이 감소되어 현실생활에서의 적응력이 생긴다.4) 자신의 무의식세계의 부정적인 내면을 표출함으로써 정서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다.5) 주의가 산만한 아동을 모래놀이시간을 통하여 집중력이 향상된다.4. 모래놀이치료 특징1)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중시하여 내담자의 표현은 치료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람 속에 있는 자기 치유능력을 믿고 그러한 안정된 치료적 인간관계를 지켜주는 공간 속에서야말로 사람은 스스로 변화, 성장하여 표현이나 상징도 뛰어나다는 것이다.2) 이러한 치료자의 표현을 파악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분석심리학적 입장 제한은 그러한 체험이 일상적 현실에 반영되기 위한 필요성을 나타내고 있다.Sand-play를 할 때 생기는 두 가지 측면의 통합은 그 사람이 많은 내적인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과 외계와의 필요한 적응을 몸에 익히는 것을 자력으로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커다란 과제는 자신 안에서의 대립상황 즉 일상과 비일상, 생과 사, 선과 악, 의식과 무의식, 문화와 자연, 마음과 몸을 수용하느냐 통합하느냐인데 sand-play therapy에 자주 생기는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융은 인간의 의식의 중심으로 자기(self)와 의식의 장(ego)을 구별하여 생각했으나 이 치료에 있어서는 자기란 소위 자기상의 자아와 자기 구축(중심)상에 존재하는 변화하고 성장해 가고 있는 자아의 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5. 모래놀이치료 방법1) 놀이실과 놀이자료(1) 모래상자모래상자놀이치료는 57*72*7(cm)의 상자 속에 모래를 넣고 그 모래를 파거나 혹은 준비된 작은 크기의 장난감을 가지고 치료자의 보호 속에서 자유롭게 놀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에서 생긴 이미지를 스스로 표현하도록 한다. 자유롭게 놀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에서 생긴 이미지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으로 아동의 문제행동이 치유되는 방법이다.상자의 안은 파랗게 칠해져 있으며, 모래상자의 크기는 상자를 허리높이에 놓고 내려다 볼 때 한 눈에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적절한 크기이다. 상자의 안쪽을 파랗게 칠한 것은 모래를 팠을 때 ‘물'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나타내며 위한 것이다.(2) 모래와 장난감모래는 마른 모래와 젖은 모래 2종류를 준비하면 좋으며, 장난감은 특별히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많은 종류를 준비하여 가능한 다채로운 표현을 창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와 색깔을 갖추는 것이 좋다. 모래상자를 꾸밀 수 있는 장난감 종류로는 사람, 동물, 나무, 꽃, 자동차, 자전거, 건축물, 다리, 담, 철책, 돌, 괴물, 가족인형, 군인, 경찰, 특수인물, 종교물, 집, 무기, 로버트, 만화주인공 등간, 자아의식의 발달과 무의식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를 재형성한다.(2) 모래놀이의 규칙① 모래놀이는 분석 작업이 심적으로 보호된 방에서 가장 잘 진행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일대일 상황에서 사용된다.② 치료실에서 모래상자를 사용하기 위한 모든 심적 에너지는 내담자로부터 나와야 한다.③ 놀이치료자와 아동이 함께 작업하는 것은 놀이치료자의 심리적 요소가 아동의 자유로운 표현을 어지럽게 한다.④ 아동의 모래세계는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에 해석되거나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6. 모래놀이치료의 적용1) 상징체험 : 모자(母子)의 일체성의 표현으로 관계가 성립된다.2) 내담자 자신이 자기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전체성의 상징 을 표현하기 시 작 한다.3) 개성기술적 접근 : sand-play therapy는 개인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개성 기술적 접근이 이 치료의 본질이다. 따라서 완구도 하지 않고 치료자 각각에게 선택을 맡긴다. 치료할 때 개인을 하나의 세계로 보고 거기에 자기를 관련시키는 것에 의해 생기는 사상(事象)을 충실하게 관찰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치료의 실제에서는 주관의 세계에 관련한 태도가 필요하다.4) ‘자기 의 표현이 나타난 뒤에 모래상자 놀이의 다음과 같은 단계가 생긴다.1 단계 : 동물적, 식물적 단계2 단계 : 투쟁의 단계3 단계 : 집단에의 적응의 단계이것은 먼저 동물이나 식물에 의한 표현이 있고 다음에 어떤 것과의 대립이라든지 투쟁의 표현이 나타나며, 이와 같은 대립자의 통합을 거쳐 자아가 그 환경에 적응해 가는 단계가 생기게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모래놀이 상자는 아동에게 있어서 현실세계로부터 자기자신의 깊은 내면세계에로 도달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모래상자에 여러 가지 장난감을 함께 사용하면 아동이 자유롭게 자신을 심상표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모래놀이치료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아동은 자신이 어느 정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므로 자연스런 피드백이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아동이 자신의 작품의 의미를 내용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 같이 보이면서 그 표현의 정도가 점점 통합성이 높은 것이 되어 가는 경우에도 인정된다.또, 빈곤한 표현보다는 풍부한 표현이 통합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빈곤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사용된 장난감의 수나 종류가 적다는 것에 관계되는데,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적은 장난감으로써 풍부한 표현이 이루어지는 수도 있고, 반대로 사용된 장난감은 많지만 통합되어 있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배열이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짜임새 있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너무나도 움직임이 없거나 깊이를 느낄 수 없는 고정적인 인상을 주는 작품도 통합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통합성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어떠한 힘의 균형이나 움직임이 깃들여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앞에서, 적은 수의 장난감으로 통합성이 높은 것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은 이 때문이고, 소수의 것이라도 그 사이에 강한 힘의 관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통합적인 작품과는 달리, 완전히 혼동되어 있는 작품이 있다. 즉, 전체가 뒤죽박죽이어서 아무런 관계도 찾아 낼 수 없는 경우이다. 이것은 치료자에 대한 공격적인 의도에서 이루어지거나 할 경우는 이해도 가며, 거기에도 치료적인 의도에서 이루어지거나 할 경우는 이해도 가며, 거기에도 치료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으나,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혼란된 작품의 경우라면 작업 도중에 중단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때도 있다.2) 공간배치모래상자놀이의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모래상자놀이의 상자의 넓이를 주어진 하나의 공간이라고 볼 때, 상자의 왼쪽에는 많은 장난감을 놓고 오른쪽에는 장난감을 별로 놓지 않는 사람, 또는 동물을 나열하더라도, 전부가 오른쪽을 향해서 움직이는 경우, 혹은 산을 만들 경우에도 바로 앞에 만드는 사람과 멀리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 이럴 때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가 당연히 문제시된다.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점에 관해 유럽에서는
Ⅰ.금융혁신금융기관경영론1. 금융혁신의 원인과 유형1)금융혁신의 원인수요조건에서 시장상황의 변화, 그리고 공급조건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금융기관에서 규제회피 노력 및 금융자율화2) 금융혁신의 유형ⅰ. 상품혁신(product) - 옵션, 선물, 변동금리형 주택저당대출, 무이표채권, 유러채 등신 금융상품을 도입하는 것.ⅱ. 과정혁신(process innovation) - 금융서비스를 종전보다 편리하고 저렴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ⅲ. 조직혁신(organizational innovation) -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상의 변화2. 금융혁신의 사례1) 시장상황의 변화최근에 일어났던 시장상황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자율의 변동성이 크게 증가한 점이다. 이자율의 커다란 변동은 큰 폭의 자본이득이나 손실을 초래하고 투자수익률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이자율변동에 기인하는 손실의 위험을 금리위험(interest rate risk)이라고 부르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금리위험은 크게 증가하였다.( 금리위험 : 이자율 변동에 기인하는 손실의 위험. 금리위험의 증가는 이러한 위험을 감 소시킬수 있는 금융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가ex) 변동금리형 모기지, 금융선물 및 옵션, 금리스왑)2) 정보통신기술의 발달ⅰ. 은행신용카드 - 신용카드는 제2차 세계대전 훨씬 전에 등장하였다. 여러 백화점들은 개별적으로 고객들에게 신용카드를 발행하여 자신의 상점에서 외상구매를 허용하였다. 초기 신용카드는 운영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부유한 개인 및 기업에게만 제한적으로 발급되었다. 신용카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거래비용을 낮추고 그 수익성을 증가시킨 요인은 1960년대 후반에 있었던 컴퓨터공학의 발달이었다. 신용카드는 이제 물품구입시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현금서비스를 통한 대출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편익을 제공한다.ⅱ. 정크본드 -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증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기업의 재무상황에 대한 정보를 입. 종전에 은행의 단기차입에 의존하던 다수의 기업들은 이제 CP시장에서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CP시장의 성장은 은행산업의 장래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ⅳ. 금융시장의 국제화 - 금융시장의 국제화는 세계의 금융시장이 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 공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뉴욕이나 초쿄에 있는 딜러들은 거래소의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세계에 걸쳐 주가와 정보를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주야간 어느 때나 거래할 수 있다. 저렴한 국제통신비용으로 말미암아 해외증권시장에 투자하기가 수월해지고 주식과 채권이 하루 24시간 동안 국제적으로 거래되고 있다.ⅴ. 증권화 - 주택모기지와 같이 비유동적인 금융자산을 시장성 있는 자본시장증권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말한다.3) 규제회피 및 금융자율화금융산업에서의 혁신은 다른 산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요 및 공급조건의 변화에 대응하여 일어난다. 그러나 금융산업에 있어서 혁신을 야기하는 더 중요한 요인은 정부규제이다. 왜냐 하면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더 많은 규제를 받고 있으며 금융기관들은 자신의 이윤취득능력을 제한하는 규제를 회피하려는 인센티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상의 제약에 따른 부담이 너무 커서 이를 회피함으로써 큰 이윤을 얻을 수 있을 때 허점발굴 및 금융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 커진다.ⅰ. 유러달러 및 비예금부채 - 1960년대 후반에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고 이자율은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은행들은 법정지급준비금과 예금이자율 상한을 회피하는 새로운 자금원을 개발하려는 인센티브를 갖게 되었다. 소위 비예금부채(nondeposit liabilities)라고 불리는 이러한 자금원으로는 유러달러, 유러CP, 연방자금, 환매채 등이 있다. 비예금부채에 대한 시장은 1970년대 초까지 작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으나 그 후 특히 대형은행에게는 주요한 자금원으로 성장하였다.ⅱ. 새로운 예금상품 - 1970년에 수표 대신에 양도성 지급지시서(negotiable order of withdr혁신우리나라의 금융혁신은 광범위한 규제하에서 그때그때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금융당국에 의해 주도되었다.1) 금리자유화정부는 금융의 국제화 및 개방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1991년 8월에 「단계별 금리자유화 추진계획」을 마련하였다. 1991~94년에 걸쳐 제 1, 2, 3단계 금리자유화를 성공적으로 실시하였고, 1997년 7월에는 제 4단계 금리자유화를 일부 실시하였다. 1998년 말 현재 규제대상 금리로는 보통예금, 당좌예금 등 요구불 예금의 수신금리와 재정관련 여신금리만이 남아 있다.ⅰ. 금리자유화의 필요성- 미시적 측면에서 금리의 가격기능을 회복시켜 금융시장을 통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것으로 기대- 거시경제적으로 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여 경기조절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 금융기관의 경쟁을 촉진하여 금융기관의 경영효율성을 제고시킬 것으로 기대- 공개시장조작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통화관리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것으로 기대ⅱ. 금리자유화 추진의 장애요인- 자금에 대한 초과수요상태에서 금리자유화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금리상승을 가져오고 이로 인한 기업의 금융비용 증가는 국제경쟁력을 악화시킬 우려- 금리자유화는 금융기관간의 가격경쟁을 격화시켜 금융기관의 경영수지를 악화시킬 우려- 공개시장조작을 행할 만한 시장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간접규제방식에 의해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하는 한계- 금리자유화를 실시하기 위한 선결요건으로서 물가안정, 국제수지 흑자, 단기금융시장의 발달, 정책금융의 축소 등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2) 금융자율화 - 은행의 경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인사.조직 등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창구지도를 근절하고,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의 하향조정 등 선별금융과 정책금융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며, 상품의 운용 및 개발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고, 영업지역 및 점포설치에 대한 규제를 환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3) 신상품 도입 - 선진국의 금융개혁과정에서 신상품 개발의 원동력은 금융자유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었다. 특 보험의 3대 금융권역별로 핵심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대해 직접경영의 범위를 확대하고, 핵심 업무에 대해서도 자회사 방식의 상호진출을 확대하기로 하였다.4) 금융국제화 - 국내외 금융기관이 상대국에 상호진출하고 외환자유화 및 자본자유화가 진전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오늘날 각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해외점포망의 확대와 외국 금융기관과의 업무제휴를 통하여 세계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금융의 범세계화(globalization)는 국제간 자본이동이 빈번해지고 국내외 금융 시장간 차익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등 내외금융이 일제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Ⅱ. 금융개혁1. 우리나라의 금융개혁1) 외환 및 금융위기의 배경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직접적 요인은 단기적으로는 외화유동성 부족에 있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되어 온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정부주도의 개발시책은 우리 경제의 양적 확대를 가져왔지만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질적 개선을 이룩하기에는 미흡하였다. 정부규제와 정경유착, 노사분규, 부동산 투기, 족벌형태의 기업지배구조, 관치금융 등 비효율적인 제도와 관행은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를 초래하여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크게 저하시켜 왔다.우리나라의 은행은 관치금융하에서 대출심사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정책금융과 담보위주의 대출을 일삼아 왔다. 더욱이 은행의 인사 및 경영자율성이 정부의 간섭에 의해 침해당함으로써 은행의 책임경영체제가 확립되지 못하였다.금융기관의 부실화는 동남아 금융위기와 맞물려 한국정부 및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하락시켜 해외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였다. 이는 다시 국내 외환시장에서의 환율급등과 주식시장에서의 주가하락을 초래하고 해외자금의 유출을 촉진하였다. 정부는 외환보유고의 고갈로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여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직접적 원인은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인한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증대, 금융기관의 부실화에 따른 대외신인도의 하락과 금융기기관과 부실채권의 정리부실금융기관의 존재는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대외신인도를 하락시켜 외자조달을 어렵게 만들며, 대내적으로 금융기관의 역선택 및 도덕적 해이문제로 인하여 자금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부실금융기관의 조기퇴출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부실금융기관을 단시일 내에 정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고, 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부실금융기관의 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특정 금융기관이 지급불능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원가회계방식은 장부상 및 장부외 항목을 잘못 평가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문제를 한동안 감춰준다. 은행의 진정한 자기자본을 모른다면 규제당국이 효과적인 폐쇄기준이나 적기시정조치를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로 규제당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규제유예의 유인을 지니고 있다. 도산을 막아보려는 정치권의 압력, 금융기관의 도산에 따른 정치경제적 충격, 이에 대한 감독책임이 규제담당자 자신에 게 돌아올 가능성, 처리비용의 조달문제 등이 있다.부실은행 지원(open-bank assistance)은 예금보험기구가 경제적으로 지급 불능상태에 있는 부실은행을 구제하기 위하여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 지원형태로는 현급제공, 주식매입, 후순위채 매입, 중앙은행의 장단기융자, 합병의 주선, 은행지주회사에 의한 인수의 주선 등이 있다. 예금보험기구의 지원액은 통상 그 은행의 자산과 부채의 시장가치의 차액, 즉 그 은행의 (-)순자산가치와 동일하다.끝으로, 가교은행(bridge bank)은 예금보험기구가 부실은행의 매각을 추진하는 동안 정부감독하에 한시적으로 그 은행의 정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다. 그 취지는 도산은행의 자산은 청산시의 가치보다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가교은행 방식은 잠재적 인수은행들에게 하여금 도산은행의 상황과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이점이 있었다.
「독일의 자존심 슈타이너 학교」는 와세다 대학 교수로 있는 고야스 미치코가 1970년대 초 독일 유학중에 자신의 딸 후미를 뮌헨의 슈타이너 학교에 보내면서 느낀 이 학교의 독특한 교육 방법과 사상을 담은 책이다.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알 수 없는 지루함에 책 첫 장을 넘기기가 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에 소개된 슈타이너 학교의 독특한 교육 방법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후미가 학교에서 말을 하는 과정은 책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유아교육과정 Book Review 「독일의 자존심 슈타이너 학교」처음 독일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후미는 6살 이었다. 처음 고야스 부부가 독일에 왔을 때 이 부부는 각자의 공부 때문에 두달간 떨어져 있었다. 이때 후미는 엄마와 함께 이자론에서 하숙생활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독일 유치원을 다니게 된다. 후미는 외국에서의 첫 유치원 생활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었다. 비록 조금의 긴장은 했지만 참을성 있게 유치원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또래아이들에 비해 예의가 바르고 침착한 후미는 아직 독일어에 능통하지 않았다.유치원에서 돌아온 첫날, 후미는 엄마를 꼬옥 껴안고 훌쩍훌쩍 울었다. 어린 딸 후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엄마는 후미를 위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면서 후미의 응석을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그 후 차츰 후미는 웃는 낯으로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미의 이런 밝은 행동은 집에서 뿐이었고 유치원에서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독일어에 대한 교육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졌고 독일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치원에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하는 말을 곧잘 알아들으면서 ‘네’, ‘아니요’등의 짧은 대답이나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후미는 결국 이자론의 유치원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뮌헨으로 이사를 했다.뮌헨의 대학 주변 한 모퉁이에 있는 주택가에 세 가족은 둥지를 튼다. 후미는 이곳에서 또 새로운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 여전히 밖에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곧잘 알아듣고 거기에 따라 반응도 나타내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후미는 단지 말을 하지 않을 뿐 잘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였다. 후미의 이런 행동에 부부는 고민을 하던 차에, 슈타이너 학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후미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되기 때문에 부부는 슈타이너 학교에 대하서 알아보게 된다.경영학과 02025159 최은주슈타이너 학교는 에포크(Epochenunterricht)라는 독특한 수업방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는 여느 학교에서 사용하는 여러 과목으로 짧게 수업하는 방법이 아니라 3,4주일마다 에포크 제도로써, 국어 에포크라면 애일 국어만, 수학 에포크라면 수학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이다. 이 학교의 특징은 학교 담임은 8년간 한 선생님이 맡는다. 이 학교는 12년제의 일관성 잇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입학해서부터 8년간은 한 반을 같은 선생님이 계속 담임을 맡는 것이다. 또 점수를 매기지 않는 독특한 성적표가 또 다른 특징이다. 저학년에서는 일체 시험을 보지 않고 학년말의 성적표에는 아이들의 학교생활 현황과 교사의 의견이 글로 기술되는 것이 이 학교의 성적표이다.슈타이너 학교의 기본 이념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나 궁핍이 반드시 인간을 발전시켜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의 고도성장이나 부 또한 반드시 인간을 성장시켜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도덕적인 슬로건이라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올바른 인산을 만들 수 없다.”부부는 후미를 보낼 학교로 슈타이너학교를 정하고 슈타이너 학교를 찾아가게 된다. 신입생 신청이 마감되었지만 회의를 통해 결국 입학하게 되었다.후미는 입학과 동시에 다른 학교와는 차별된 교육을 받았다. 첫날부터 매일 계속해서 크레용으로 선같은 것을 그려왔다. 이는 ‘포르멘’이라고 부르는 작업이다. 포르멘은 ‘형태’라는 의미의 독일어이다. 선을 그린다든지 그것을 어떤 크기의 평면으로 나눈다든지, 어쨌든 형태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일은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 작업을 포르멘이라고 부른다. 이 작업은 정신 집중력과 손끝의 훈련이라는 중요한 목표가 있는 것이다. 손가락 끝의 신경을 두루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에게 연필이나 펜 등을 쥐게 해서 작은 글씨를 쓰게 하기보다는 크레용으로 선명한 색을 내게 하는 것이 좋으며 이 손끝 훈련은 두뇌 발달과도 연결되는 것이다.아동의 소근육 발달을 수업시간의 이런 자연스러운 작업을 통해 이뤄내는 것에 감탄을 하였다. 아동학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새로운 지식들은 후에 내가 교사가 되었거나 혹은 엄마가 되었을 때 아이들 교육에 유용한 것이 많았다. 이 슈타이너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포르멘 작업 또한 좋은 교육 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하루는 후미의 담임선생님인 헤르 볼프의 가정방문이 있었다. 그는 3시간정도 후미의 집에 머무르면서 후미의 방을 구경하고 후미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등을 살펴보았다. 또 후미 부부에게서 간단한 일본어를 배웠다. 그는 이 부부에게 자신이 곧 학교에서 후미에게 말을 하게 만들어 보이겠다고 자신하며 돌아갔다.며칠 후 후미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흥분하면서 말을 했다. 볼프 선생님이 ‘木’자를 칠판에 쓰고 자신에게 그것을 읽어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뜻을 물어봤고 후미는 대답을 했다. 오늘은 일본어를 후미에게 배워보자며 다른 단어도 물어보며 후미가 읽고 말하게 했다. 교실에서 말을 하지 않았던 후미에게 볼프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든 후미가 아니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해서 억지로 말을 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강제가 없었고 오히려 후미에게 말을 하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 것이다. 후미는 이후 점점 말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은 물론 너무 떠들어서 선생님께 지적을 받기고 했고, 싸움도 하곤 하였다. 이제 후미는 슈타이너 학교에 완전히 적응하며 독일에서의 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1. 신라의 불교 수용과 전파신라는 삼국중에서 지리적인 조건이 가장 불리하여 새로운 문물의 유입이 어려웠으며 불교 수용 또한 고구려나 백제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신라의 불교 수용은 포교승들의 끊임없는 방문과 왕실의 불교공인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씨족 중심 귀족들의 끊임없는 반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그러나 법흥왕 대에 이르러 씨족적인 기반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적 국가를 확립하고자 했던 왕실파들은 불교를 새 지배체제의 구축을 위한 정신적 지주로 삼아, 왕법과 불법을 동일시하고 부처의 위력을 왕의 위력으로 대치하여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법흥왕 7년인 520년, 왕은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조직에 관한 정비를 일단락 짓고, 527년의 이차돈 순교를 계기로 배불파(排佛派)를 제압하고 불교 공인을 선포하게 되었다.이차돈의 순교는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아야 할 종교적 사건으로서, 신라 불교는 이 사건으로 인해 이미 그 시초부터 찬란한 빛을 발현시키기 시작했다. 이차돈의 순교는 신라의 만백성들이 마음껏 불교를 믿을 수 있는 자유를 안겨다 주었고, 그의 순수한 수교의 정신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신라인들은 위대한 신라불교의 불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었다.죽음을 통한 새로운 탄생, 이것이 신라불교를 영원히 빛나게 만든 것이다.법흥왕은 불교를 통해서 백성들이 선량한 민본주의 관념을 가질 수 있고, 신라의 문화가 향상?발전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으며 뒷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법흥왕에 의해서 시작된 신라불교가 신라 풍토에 알맞은 불교로 정착하게 된 것은 진흥왕부터 이며, 이것은 왕 자신의 신앙심과 불교 정책에 의해서였다.진흥왕은 재임 37년 동안 한마음으로 불법을 신봉하였고, 그때까지 삼국 중에서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를 삼국통일의 주체국으로 만든 것이다.또 불교이념에 의한 수양단체인 화랑도를 창설하여 신라 청소년의 윤리를 종교의 깊은 곳으로부터 배우게 하는 등 백성들의 정서 함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화랑도는 불교 사상을 근간으로 설치된 청소년 수양단체로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할 목적으로 불교의 미륵신앙과 이상국가 사상인 전륜성왕 사상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룩한 것이다. 따라서, 이 단체에서는 신라의 미륵을 상징하는 국선(國仙)이 모든 무리를 통솔하고, 그 아래에 각각 소 단체의 우두머리인 화랑이 있어서 자기 무리의 낭도(郎徒)를 거느렸으며, 또 낭도에는 일반 소년 낭도와 달리 한 사람의 스님이 낭도로 있으면서 국선을 보좌하였다. 이와 같이 화랑단체는 불교적인 사상이 뒷받침된 것이다.신라인이 불교의 참뜻을 새롭게 수용한 과정으로 그 시대의 삶과 앎이 깊은 관계를 맺은 포괄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신라는 제30대 문무왕 때에 삼국통일을 이룩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이에 따라 불교도 크게 융성하여 신라의 승려가 당나라에 가서 그곳의 불교 교학을 배워 왔다. 따라서 신라는 우리나라 불교사상 유례없는 황금시대를 가져왔고 수많은 학승이 배출되었다. 신라불교는 대승의 종파와 교학이 크게 일어나게 된 이때를 전기로 처음에는 학해불교(學解佛敎), 다음에는 실천 활동으로서의 선불교가 유행하였다. 특히 중국의 달마선(達摩禪)이 전래 성행하던 때를 후기로 나누고 있다. 35대 경덕왕 때까지 활발했던 신라불교는 그 후 침체되어 갔다.2. 신라불교의 대중성왕실에 의하여 불교가 강력하게 지지? 발전하게 된 것은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불교가 적합하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한편 귀족 세력과의 타협 없이는 불교가 수용 될 수 없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윤회전생의 사상은 귀족들의 특권을 인정해 주는 이론으로서 환영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불교는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귀족 국가의 사상체계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불교에 호국적인 성격이 강한 것은 당연한 이치로서 호국경으로 유명한 인왕경(仁王經)은 지극히 존중되어졌다. 그 예로, 인왕경의 설에 의해 백좌강회라는 국가의 평안을 비는 의식을 들 수 있다. 또 팔관회, 백제 왕흥사의 건립, 신라 황룡사의 9층탑 건립 등도 호국적인 의미를 가진 것들이다. 미륵불이 하생하여 화랑이 되었다는 신념도 이런 호국신앙의 표시였으며, 호국만이 아니라 아울러 불교를 수호하는 호법정신 역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삼국시대의 가장 중요한 종파는 계율종이었다. 백제의 겸익이나 신라의 자장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인데 특히 자장은 대국통으로서 신라의 불교를 총괄하였다. 승려들이 지켜야 할 생활 기준으로서의 계율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를 통한 인심의 귀일이라는 정치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신라가 국통, 주통, 군통 등의 승관을 두어 계율을 통해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통제한 것은 이와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또 밀교가 크게 성하여 치병, 양병, 강용 등의 기적을 행한 것도 그 당시 불교에 대한 관념을 잘 말해 주고 있다.이렇게 불교가 국가적 지위를 얻음으로써 승려들은 때로 정치적 자문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중국문화 수입의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에 중국에 유학하는 대부분은 승려였다. 그리고 이들은 국민의 정신적인 교사이기도 하였다. 즉 원광이 세속오계를 말하고, 화랑도에 승려가 참가하여 도의면의 교육을 담당한 깃은 그런 데에 착안한 깃이다.이렇게 삼국시대의 불교는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 같이 존경과 믿음을 받는 종교로서 중대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였다.3. 신라 불교사상의 흐름1) 귀족주의 불교신라는 부족신앙 단계에서 고대국가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불교의 이념이 필요했다. 부족 단위의 사회와 달리 고대 국가에서는 다양한 부족과 민족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라의 불교는 매우 정치적이며 국가적이었다.당시의 승려들은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오는 등 시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원강과 자장 등이 대표적 인물인데, 이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이들 또한 국가를 위한 불교를 지원 하게 된다. 최초의 유학승으로 알려진 원광은 세속오계, 걸사표, 백고좌회 등을 통해 신라에 대승계율을 소개하고 외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하면서 호국불교의 기초를 다졌다. 세속오계는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원광이 화랑에게 일러 준 다섯 가지 계율을 세속오계라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군이충(事君以忠) :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 사친이효(事親以孝) :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 교우이신(交友以信) : 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 임전무퇴(臨戰無退) :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 살생유택(殺生有擇) : 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다이는 뒤에 화랑도의 신조가 되어 화랑도가 크게 발전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이룩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자장은 대국통으로서 승니의 숙정과 계율의 전파로 신라인들이 열에 아홉은 불교를 믿게 되는 기초를 놓았다.2) 민중주의 불교당시 신라사회는 원광과 자장의 교화에 큰 영향을 입었으나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불교와 일반 서민불교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가 있었다. 당시의 승려들은 대게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을 했다. 민중의 무지와 나약함 때문에 석가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민중을 외면했다. 이러한 때에 불교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민중계열의 승려가 등장한다. 사북, 혜숙, 혜공, 대연이 대표인물이다.태종 무열왕 당시 등용된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는 학승으로서도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민중교화승으로서 국가계열과 민중계열의 불교를 종합하였다. 원효는 지방의 촌락을 두루 돌아다니며 무애호(無碍瓠; 이상한 모양의 큰 표주박으로 두드리면서 無碍歌를 불러서 붙여진 명칭)를 두드리면서 불교를 민중의 깊숙이 전파하였다. 의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 무애가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인 것이다. 이는 불교의 이치를 노래로 지어 세상에 유포시킴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에까지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노래에 담겨있는 무애사상은 원효의 사생활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거사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기도 하는가 하면, 석공들의 쇠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새기기도 했다. 에 대한 해설서를 지어 그것을 강의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여염(보통사람이 모여 있는)집에서 유숙하거나 혹은 명산대천을 찾아 좌선하기도 했다. 이렇듯 어떤 일정한 틀에 박힌 생활태도가 없었다. 행적도 뚜렷한 규범이 없었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방법도 일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효의 이러한 행적은 귀족중심의 불교를 대중에 확신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3) 화엄종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일화에서 많은 사람들은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큰 깨달음을 얻은 채 결연히 신라로 발길을 되돌리는 원효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그러면서 쓸쓸한 뒷모습을 보인 채 중국으로 향하는 의상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독한 어깨위에는 결연한 의지가 있다. ‘그래 마음을 깨친 것은 그대이지 나는 아니다. 나는 초지일관, 학문의 완성을 도모하리라’ 그는 종남산 지상사로 발길을 옮긴다. 화엄학의 대가였던 지엄의 문하에서 화엄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노력한다.의상은 귀국 직후 화엄십찰을 건립하여 화엄학의 전교 도량으로 삼았다. 그 10개의 사찰 가운데, 스님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 부석사이다. 부석사는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태백산 봉황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신라 문무왕 16년에 고승 의상조사가 창건한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총 본산이며, 경내에는 천년 고적을 아직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으니 목조의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비롯해서 석등, 석탑, 본존불상과 조사당의 벽화 및 석조여래상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국보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