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적 책임의 정의사회적 책임이란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해 결함으로써 기업의 이해관계자와 사회일반의 요구나 기대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기업행동의 규범적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1) 사회적 책임은 우리 사회의 목표나 가치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을 추구하고, 그러한 의사결정을 하거나 그러한 행동들을 좇아야 하는 기업인의 의무이다.(2)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관점 및 기업과 사회의관계를 지배하게 되는 윤리원칙의 관점에서 생각될 수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과윤리의 준수가 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3)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경제적 및 법적 의무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무를 넘 어서서 전체사회에 대한 책임까지를 의미한다.(4) 사회적 책임은 주어진 특정시점에서 사회가 기업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경제적?법적?윤 리적 및 재량적 기대를 모두 포함한다.(5) 사회적 책임은 경제적?법률적인 필요요건을 넘어서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업활동을 의미한다.2. 한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례)2000년부터 시작되었던 서울 세계 불꽃 축제, 이제는 이 행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대중화 되었고 또한 매년 행해지는 하나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한화그룹에 의한 행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화 그룹은 이런 메세나 활동)을 비롯하여 많은 다양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부터 한화그룹의 사회적 책임 수행 사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한화그룹은 “사랑의 친구 미래의 친구”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사회 공헌 사업을 펼치고 있다.(1) 칭찬받는 기업에서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한화는 '칭찬 받는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으로서의 올바른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사회공헌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2)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지금까지 각 계열사마다 일시적,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사회공헌 활동을 그룹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시행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회공헌 전담 조직을 구성함은 물론, '사랑의 친구, 미래의 친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회복지, 해외사업, 문화예술, 환경보전, 자원봉사, 자매결연 6가지 분야에 두루 걸친 사회공헌 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3) 각 사의 특수성을 살린 우수한 프로그램 개발각 계열사에서는 사회공헌 담당자가 중심이 되어, 지역조사를 통해 해당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자원봉사 활동 프로그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4) 선진 모금제도, 매칭 그랜트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재정적 자원이 필요합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재정적 자원을 확보하고 임직원들이 함께 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만들기 위해 한화는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라는 선진모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매칭그랜트란 임직원들이 모금한 후원액에 비례하여 회사에서도 후원금을 지원하는 제도로서, 시행 1년여 만에 '임직원의 90% 참여'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으며, 2004년부터는 회사에서 기부하는 매칭 비율을 100%에서 150%로 확대하여 더 많은 모금액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임직원과 회사가 한마음 한 뜻으로 정성껏 마련한 모금액 '밝은세상만들기 기금'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됩니다.(5) 실질적 복지 서비스를 위한 첫걸음, 유급자원 봉사제이제 사회공헌도 단순히 기부금을 지원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자원봉사 활동과 같이 실질적 혜택도 제공하고 봉사자 자신도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깨닫는 '참여적 파트너십 활동'으로 전환되어야만 합니다. 한화는 수혜자의 실질적 복지 서비스 혜택과 임직원들의 자발적 봉사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업무상 결정적 차질이 없는 한 근무시간 중에 자원봉사 활동이 가능한 '유급자원봉사제'를 도입하여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 ◇주요사업으로는 크게 사회복지사업과 해외, 문화예술, 환경보전, 자원봉사, 자매결연등의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1. 사회 복지 사업(1) 공부방사업 - 공부방이란 저소득 맞벌이 가정 또는 한 부모 가정 아동들이 방과후 일반 가정처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아이들에게 끼니를 제공하고 학습을 지도해 줌으로써 결식아동 및 청소년 탈선을 예방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시설입니다. 한화는 이러한 공부방에 한화 임직원들이 직접 영어나 수학 선생님으로 나서고 어린이들을 위한 식사와 간식을 함께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2) 집수리사업 - 한화그룹은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와 공동으로 일년에 3백여 저소득 가구 및 사회복지 시설을 선정하여 이들의 주택에 대한 개보수 활동을 벌이고 있다.(3) 아름다운가게 - 한화그룹의 지원과 아름다운재단의 운영으로 나눔과 재사용운동을 펼치는 아름다운 가게를 전국적으로 25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2. 해외사업(1) 중국 우루무치 상업학교 지원 - 2003년 3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시에서 우루무치 상업학교에 대한 지원 협약을 체결하고 상업학교 및 한글학교, 한국문화과정 후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2) 한중 문화 교류 축제 - 또한 2003년부터 연 2회에 걸쳐 중국 우루무치시 우루무치 상업학교 및 한글학교와 교류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3) 북한어린이 영양제 지원 - 한화는 지난 2000년, 임직원 모두의 정성 어린 마음을 모아 북한 어린이 전원에게 나누어줄 영양증진제를 북측에 전달한 이래로 매년 어린이용 구충제와 항생제 일 천만 정씩을 지원하고 있다.
1. 도 입『 한국시리즈 10번째 우승 김응용 감독한국시리즈 내내 잔뜩 찌푸렸던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마침내 웃었다.10 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증권배 2002프로야구 LG와의 6차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4승2패로 정상에 오른 김응용 감독은 "이제 길을 텄으니 내년 시즌부터 더욱 쉽게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연합뉴스 2002.11.10『 프로야구 삼성 김응용 사장 취임식 열려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현장 감독에서 구단 최고경영자로 선임된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정식으로 CEO 자리에 올랐다. …(중략)… 국내 프로야구에서 22년 동안 사령탑을 맡아 최장수, 최다승 감독 출신인 김응용 사장은 올 한국시리즈에서 유례없는 9차전의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한 뒤 은퇴 의사를 밝혔으나 그 동안의 공로를 높이 산 삼성그룹이 구단 최고 경영자로 임명했다. …』 - 중앙일보 2004.12.1아마추어 야구 선수로 시작하여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된 김응룡. 한국프로야구 21년 역사동안 스무번의 한국시리즈가 벌어졌고 그 가운데 열 번을 그가 이끄는팀이 정상에 올랐다. 또한 한국 야구가 1977년 니카라과 수퍼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국제대회 정상에 오를 때도, 2000년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최초로 메달을 딸 때도, 불패신화 로 불렸던 해태시절은 물론 삼성에 한(恨) 을 풀어주며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주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도 벤치에는 김응룡감독이 주인이었다. 그가 최고의 승부사 임을 알게 해주는 업적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무너지기 힘든 금자탑이다. 이런 그가 이제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현장 감독에서 삼성 구단의CEO가 되었다.그는 일본 프로야구의 거장인 나기시마 요미우리 감독이나 뉴욕양키스를 월드시리즈 3연패로 이끈 명장 조 토레 감독처럼 깔끔한 용모의 소유자도 아니며 그들처럼 말솜씨가 수려하지도 않다. 불같은 성질 때문에 퇴장당하거나 벌금을 문적도 많은 감독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사령탑으로서, 최고경영자로서 갖춰야할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그의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그의 야구 인생을 통해알아보고자 한다.2. 선 수 시 절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열 살 때인 1 4후퇴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월남하여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김 감독은 개성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동급생보다 체격이 컸던데다 타고난 운동감각이 있었던 김 감독은 중학시절 반 대항 야구시합에 나갔다가 코치 눈에 띄게되었고 그 때부터 전문적으로 야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는 중학교 때 대회를 앞두고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도 출전을 고집, 모교인 부산 개성중에 제 3회 문교부장관기를 안기기도 했다. 부산상고에 진학하면서도 한 길을 고집한 그였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입단을 부탁하러 찾아간 당시 최강이던 농업은행팀에서 문전박대 당하고 한국운수에 연습생 신분으로 겨우 입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한일은행 선수로 실업야구에 데뷔게 되었고, 그 이듬해 대표선수 4번을 달게 되는 등 화려한 실업야구 선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1965,67년 실업야구 홈런왕으로 대표적인 홈런타자가 되었고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결정적 홈런을 날려 한국팀에게 대회참가 첫 감격의 우승을 안겨주게 된다. 또한 20년동안 국가대표 선수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3. 감 독 생 활김 감독의 감독생활은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한일은행 실업팀에서 시작된다. 김 감독은 한일은행에서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으면서 한일은행을 우승팀으로 이끌었고 이어 1977~1980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1977년 「니카라과」「슈퍼월드 컵」우승, 78년 「이탈리아」세계선수권대회 3위, 80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등 초기 감독 생활때부터 화려한 기록을 남겨 일본 야구인들은 김 감독을 金銀銅감독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한국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서틴조지아대에서 야구 유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성적의 김 감독이 프로 감독으로 쉽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유학중이다가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되던 82년 초에 귀국하였지만 프로팀 중에서 그를 감독으로 영입하려는 팀은 없었고 김 감독은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이후 82년에 당시 하위권에 머물던 해태 타이거즈에서 김 감독을 영입함으로써 김응룡 감독은 프로야구에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개성이 많은 선수가 많아 모래알팀으로 불리던 해태를 김 감독은 그의 탁월한 지도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조련하였고, 1983년을 시작으로 1986~1989년까지 4연패, 1991년, 199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함으로서 해태 타이거즈를 한국 프로야구 최고 명문팀으로 만들어 냈다. 또한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어 한국야구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그의 능력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2000년 당시 해태의 재정난으로 삼성으로 팀을 옮긴 김 감독은 만년 우승후보 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지않은 성적을 냈던 삼성을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끔으로서 삼성의 한(恨 ) 을 풀어주었고 개인적으로도 한국시리즈 통산 10회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후 2003년도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패한 것을 끝으로 2004년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감독으로 있으면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통산 2653경기, 1463승, 1125패, 65무(승률 0.565)라는 기록을 남겼다.4. 「김 응 룡」 리 더 십{ 주간조선/1674호. 매일경제 2005.5.17『"체육기자 출신인 경향신문 이영만 편집국장은 최근 김응룡식 야구단 운용법을 소개한 (은행나무)을 펴냈다. 10여년간을 프로야구 일선에서 김응룡 사장을 지켜본 저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심하고, 뱀처럼 냉정하고, 어느 순간엔 여우보다 더 교활하다"며 "겉모양은 장비이지만 지략은 제갈공명이고, 시침 뚝 떼고 던지는 잔꾀는 조조를 닮았다"고 김 사장을 평가했다."』 -일간스포츠 2005.3.61) 강한 승부욕의 소유자김 감독은 지난해 말 삼성 사령탑을 맡은 뒤 "왜 삼성으로 옮겼는가"라는 질문에 "우승하러 왔다"고 간단히 답변했다. 김 감독다운 대답이다. 해태 때도 그랬고 삼성때도 그랬다. 김 감독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경기 중 승부처라고 판단되면 초반 번트작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투수 운용도 마찬가지. 만약 선발투수가 나가 있는 상황에서 5회에 3대2로 이기고 있는 수비에서 위기상황이라면 가차없이 선발을 교체한다. (선발투수가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려면 5회까지 던져야 한다.) 그런 경기 운영이 때로는 프로답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프로는 이기는 것이다"라고 김 감독은 못을 박는다. 바로 이런 강한 승부욕이 그의 리더십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2) 철저한 팀 정신『"조직이 항상 우선이야. 애들 앞에서 칭찬해봐. '전마(저 사람)하고 친척아냐' 하며 색안경 끼고 보지. 칭찬도 자주 했었어. 표가 안났을 뿐이지. 변소 가서 볼일 보는 척하면서 잘한 놈들 칭찬해 주거든."』 -매일경제 2005.5.17김응룡 감독은 삼성 감독으로 취임한 뒤 선수단에 "정해진 주전은 없다. 1군, 2군 구별없이 실력으로 가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해태 시절부터 누누이 강조했던 그의 철학이다. 김 감독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선수단의 마인드를 바꾸기 위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펼쳤고 팀의 목표인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조직이 살아남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즌 중엔 국민타자 이승엽을 제자리가 아닌 6번으로 기용하는 모험을 걸었고 경기중에 이승엽에게 희생번트 사인을 내보낸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실력있고 개성있는 선수들이 많았던 삼성에서 톱 타자였던 이승엽을 움직임으로서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파급효과를 노렸던 것이었다.주전 선수를 일부러 라인업에서 제외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후보선수들에게는 출전기회를 늘리고 주전 선수들에게는 분발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었던 것이다.훈련 때에도 김 감독 스스로가 훈련을 매우 중요시 하고 선수들을 다그쳤기 때문에 삼성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하였고 김 감독의 카리스마 앞에서 누구도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김 감독은 팀을 생각하는 마음에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다. 훈련 때 김 감독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제 모자나 운동복도 거부하고 반드시 팀에서 나누어준 것만 항상 착용하는 모습을 보였다.3) 구조조정의 황제김응룡 감독의 야구는 관리야구에 가깝다. 철저한 관리야구를 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김 감독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겁내지 않는다. 선수가 나태해지면 그날부터 두번 다시 기용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의 단적인 사례로 '제2의 장효조'로 알려졌던 정성룡이나 슬러거였던 이병훈이 지나친 술로 나태해지자 가차없이 처단했다. 또한 1990년 해태에 입단했던 포수 정회열의 실력을 인정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공신이었던 장채근 주전 포수마저 포기했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선동열에게도 칼을 들이댔다는 점. 구조조정의 의미를 확대한 것이지만 그 충격요법의 효과는 대단히 컸다. 지난 90년의 일이었다. 김 감독은 투수로서 최고봉에 올랐다고 생각한 선동열이 다소 해이해지자 '국보급 투수'에게 형벌을 가했다. 방법은 시즌 막판 이미 승부가 난 경기에 한국 최고 투수라는 선동열을 패전 처리용 투수로 활용한 것. 이렇게 하고도 김 감독은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Ⅰ. 서 론국민 여러분!저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책임자로서, 오늘 매우 결연한 의지를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우리의 부동산 시장은 더 이상 시장 자체의 질서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중략)… 이번 정책은 과거 대증요법에 급급했던 단기처방이 아니라, 서민의 주거 안정과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매우 장기적이며, 근원적 처방입니다. 이제 정부는 부동산 정책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바뀌고 말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조치를 통해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고, 부동산의 거품을 제거하여 시장을 반드시 정상화시킬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시장에서 부동산 투기 필패 라는 사회적 믿음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이는 2005년 8월 31일 한덕수 부총리가 부동산 대책에 대하여 발표한 발표문의 서문이다.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대책을 통하여 반드시 부동산 투기의 뿌리를 뽑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정부의 대책들은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결국 부동산 불패 라는 말만 남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대책 역시 어느정도 그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지만 앞으로의 결과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Ⅱ. 8.31 부동산 대책 총정리이번 대책은 . 서민주거안정 . 주택 및 토지공급확대 . 부동산 투기수요 억제 . 부동산 거래투명화 등 4가지로 요약된다.1. 서민주거안정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무주택자에 주택 구입자금을 지원하고, 청약자격 우선권 을 주는 방안이 마련된다. 또 서민 주택공급 활성화 일원으로 그린벨트 260만 평을 풀어, 2012년까지 국민임대단지100만호를 건설키로 했다.우선 지난 2003년 12월 중단된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을 10월 재도입된다. 또 영세서민의 전세자금 대출금리를 3%에서 2%로 낮추고, 근로자의 전세자금 대출금리를 5%에서 4.5%로 인하할 계획이다.아울러 연소득 2,000만 원이하의 가구주가 처음으로 주택을 마련할 경우에 한 해 주택금융공사의 모기지론{ 부동산을 담보로 주택저당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여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을 우선지원하고 지원금리도 0.5%~1% 인하키로 했다. 이와 함께 무주택기간, 소득, 자산, 가구현황 등을 고려해 청약 우선권을 부여 할 계획이다.이밖에 모기지보험을 새로 마련해 비투기지역 내 전용25.7평 이하 주택구입자 에 한해 주택담보대출비율을 높여줄 방침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점차 까다로워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금융지원은 무주택 서민에게 파격적인 지원책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2. 주택 및 토지공급확대이와 동시에 중대형 아파트 수요 흡수를 위한 여러 방안을 들고 나왔다.송파 거여지구 국공유지 200만 평이 강남대체 신도시로 개발되고, 양주.옥정지 구, 김포 신도시 규모를 확대해 4,200만 평의 택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택지지구 내 전용25.7평 이상 중대형 아파트 공급비율을 현행 40%에서 50 %로 확대키로 했다.또 공공택지에 공급되는 모든 주택에 원가연동제{ 아파트 분양 가격을 택지비와 건축비 등 원가에 연동시켜 책정하는 제도.가 적용되고, 25.7평을 초과 중대형 아파트에 주택채권입찰제도가 의무화된다. 이와 함께 공공택지 내 분양 권 전매 제한기간이 수도권의 경우 현행 5년에서 10년, 지방의 경우 3년에서 5 년으로 강화된다.이는 서민 주거안정과 상반기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지적된 중대형 공급부족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니신도시 건설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고, 기존 그린벨트지역 내 국민임대단지 조성에 따 른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발 등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3. 부동산 투기수요 억제부동산 투기수요 강화방안으로 주택 및 토지 보유세제와 양도세제{ 자산(資産)의 양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득.가 대폭 강화 된다. 주택의 경우 현재 50%에 머물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종합토지세 외에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토지와 주택 소유자에 대해서 국세청이 별도로 누진세율을 적용해 국세를 부과하는 제도.(이하 종부세) 과표 적용율 을 2009년까지 100%로 높일 계획이다. 또 과세기준을 기준시가 9억원에서 6억 원으로 하향 조정키로 했다. 논란이 됐던 종부세 부담 상한은 전년대비 1.5배 에서 3배 수준으로 올리는 선에서 결정됐다.주택 양도시 과세기준도 2007년부터 모든 거래에 실거래가로 적용된다. 또 수도권 광역시의 경우 기준시가 1억원, 기타지역의 경우 기준시가 3억원을 초과 하는 1가구2주택 보유자에 대해서는 50% 단일세율로 중과키로 했다. 다만 이사 근무 혼인 등 불가피한 사유로 1가구 2주택이 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할 방침 이다. 1가구2주택 양도세 중과는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2007년부터 도입된다.또 재건축, 재개발 등의 주택공급사업에 대해 기반시설부담금이 부과된다. 토지의 경우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종부세 과세기준이 '인별 합산 6억원(공시 지가{ 건설교통부 장관이 조사 평가하여 공시한 표준지의 단위면적(㎡)당 가격.)'에서 '세대별 합산 3억원'으로 강화된다. 또 과표 적용율을 2009년까 지 100%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세부담 상한도 전년대비 1.5배에서 3배로 상향조 정된다.토지 양도세는 2007년부터 모든 거래에 대해 실거래가로 과세하고, 비사업용 나대지 잡종지와 부재지주소유 농지.임야.목장용지에 대해서는 양도세율을 60% 단일세율로 인상키로 했다4. 부동산 거래투명화2006 년부터 부동산을 거래할 경우 거래당사자와 부동산중개업자가 실제 거래가 격을 시.군.구에 의무적으로 신고토록하는 방안이 도입된다. 또 시.군.구에 신 고된 실제 거래가격을 부동산 등기부에 기재토록 해 시장 투명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거래세의 경우 과세표준의 현실화를 감안해 개인 간 주택거래 에 한해 취.등록세를 각각 0.5% 인하키로 했다Ⅲ.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한 세제 정책8.31일 부동산 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무엇 보다도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따라서 투기 억제를 위한 정책에 대하여 좀 더 조사해 보도록 하겠다.이번 정책에서는 종부세의 과표 적용율을 높이는 것과 양도세율을 50% 단일세율로 중과하는 등 기존보다 무거운 과세를 적용하였는데 이는 투기 수요의 억제를 위하여 세제를 합리화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세제 합리화의 초점은 '보유세 강화'가 핵심인데 우선 주택 보유세 중 종합부동산세 대상 기준 금액은 9억원(공시가격)에서 6억원으로 낮춰 대상을 크게 확대했으며, 개인별 합산 과세도 세대별 합산 과세로 조정했다. 현행 50%인 과표 적용률은 2009년까지 100%로 높인다.. 종부세 대상 인원 및 세액 (추정){현행( 05년)개선안( 06년)주택분- 기준금액 9억원 초과(인별합산)- 기준금액 6억원 초과(세대별 합산)* 인원 : 4만명* 세액 : 900억원* 세대 : 1만 6000세대** 전체 970만 세대의 1.6%* 세액 : 2300억원비사업용 토지- 기준금액 6억원 초과(인별합산)- 기준금액 3억원 초과(세대별 합산)* 인원 : 3만명* 세액 : 3100억원* 세대 : 1만 1000세대* 세액 : 4400억원사업용 토지- 기준금액 40억원 초과(인별합산)- 기준금액 40억원 초과(인별합산)* 인원 : 8000명* 세액 : 3000억원* 세대 : 8000세대* 세액 : 3500억원계*인원 : 7만 8000명*세액 : 약 7000억원* 세대 : 27만 8000세대* 세액 :약 1조원(출처 : 국정브리핑 2005-8-31){{{{종부세 세부담 상한은 전년 대비 1.5배에서 3배까지로 늘렸으나 재산세의 경우 현행 세부담 상한인 전년 대비 1.5배를 유지키로 했다. 이에 따른 종부세 대상자에 대한 평균 실효세 부담률은 2009년까지 1%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정부는 주택분 재산세 과표적용률에 대해서는 당초 2006년부터 5%포인트씩 상향 조정할 계획이었으나, 서민들의 주택 보유 부담 완화를 위해 시행을 2008년으로 2년 늦추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