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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심리학] 시청각자료와 교육심리
    먼저 이와 같은 의미있는 작업을 하게 해주신 탁수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리포트의 시작은 아니며, 그냥 알림글 정도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처음 교수님께 리포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뜩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더 ‘나는 꼭 그것을 주제로 리포트를 써 볼 테야’ 라고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텍스트란 것이 만화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는 70편 정도되는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었다고는 하나 제가 리포트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만화책이며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시청각자료의 예로는 꼽아지지 않았었습니다. 질문을 드려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하마 안된다고 하실까봐 꾹꾹 참았습니다. 시청각 자료 선택의 기준이 ‘공평성’뿐이라면 저도 할 말은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할 만화 텍스트는 단행본 기준 총 18권이며, 다시 한번 읽느라 12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이 정도면 노력이 가상하여 보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럼 텍스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몬스터’라는 텍스트는 해리성 인격장애요소를 지닌 이란성 쌍생아를 설정하여 사건을 이끌어 갑니다.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탄탄한 플롯과 작가의 세심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혹시 아직까지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웬만한 책방가면 거의 있습니다) 미학적 측면으로 본다면 훨씬 재미있는 리포트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교육심리학적 측면에서도 할 말이 많은 자료라 생각합니다.서설이 쓸데없이 길었습니다.서론저자 :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출판 : 소학관(小學館), 세주문화사80~9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일본인 의사 덴마가 수십명을 연쇄살인한 괴물, 요한을 쫓는 스릴러물이다. 1995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어 2002년 18권으로 완간되었으며 99년에 연재중인 작품으로는 최초로 제 3회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일본에서만 2,000만부 이상 팔릴 정도로 대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마스터키튼, 몬스터, 20세기소년 등으로 만화매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만화 몬스터는 주인공격인 뇌외과 의사 겐조 덴마와 반동인물 요한 리베르토 사이의 갈등관계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구동독의 고관이었던 리베르토 부부가 이란성 쌍생아 남매를 데리고 서독으로 망명한다. 그 후 얼마 안되어 부부는 강도살인으로 보이는 죽임을 당한다. 쌍둥이의 오빠인 요한은 두부 총상을 입고 쌍둥이 동생 니나는 정신착란을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강도가 들지 않았으며 요한이 자신의 양부모를 죽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목격한 니나가 오빠에게 총을 겨눈 것이었다. 그와 같은 경과를 모르는 덴마는 요한을 수술로 살리게 되고 자신의 신념대로 한 것이 화근이 되어(사실은 수술 바로 직전에 市長이 뇌경색증으로 실려 왔는데 덴마는 병원장의 지시를 어기고 요한을 집도한다) 덴마는 출세길이 막히게 된다. 그 후 덴마는 잠든 요한의 앞에서 푸념을 늘어놓는데 그 내용은 의사로서의 신념과 처세술이라는 양갈래 길에서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원장과 외과부장의 탓이다, 그들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깨어난 요한이 그 말을 듣게 되고 병원을 몰래 빠져나가기 전 요한은 독이 든 캔디로 그들을 살해하여 덴마를 외과부장의 자리에 앉힌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덴마는 의심을 받고 그 이후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플롯이 정밀하게 겹쳐 있지만 대개 해리슨 포드 주연의 ‘도망자’와 끊임없는 인술을 감동적으로 펼치는 ‘허준’과 그 구조가 흡사하다.본론이상 사건의 시발점과 전체구조를 간략히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이 글의 목적과 더불어 살펴볼 것이 있다. 첫째는 반동인물 요한, 그리고 그 요한이 가서 교육받게 된 구동독의 고아원 ‘511 킨더하임’, 마지막으로 요한과 같은 고아원 출신인 볼프강 글리머의 이야기이다.① 요한서설에서 요한과 니나에게 해리성 인격장애요소가 있다고 언급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탄생과 취학 이전의 경험에 기인한 것이다. 그들의 부모는 우수한 아이를 낳기 위해 선발된 자들이었다. 511 킨더하임이라는 실험실에 우수한 형질의 아이를 넣는 것을 목적으로 사랑을 했다. 511 킨더하임은 구동독의 극우파들이 제2의 히틀러 양성을 목표로 세운 고아원이다. 그 곳의 교육은 일종의 실험으로 고아원 내에서 완벽하게 군림하는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 30세가 넘어서야 카리스마가 발현하여 조직을 이끌어 갔지만 어려서부터 카리스마를 나타낸 아이가 있다면 히틀러보다 위대해질 것이라는 게 그들의 계산이었다. 그런 목표로 세워진 고아원에 니나가 가기로 결정된다. 그러나 511 킨더하임 계획을 세운 프란츠 보나파르트는 니나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자식들이 실험 대상자가 되는 것이 싫어서 그 계획을 알고 있는 전원을 파티에서 독살하고, 그것을 니나가 목격한다. 과도한 분노나 슬픔, 강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에게 다른 인격이 나타난다고 보나파르트는 설명하고 있다. 니나는 모든 것을 요한에게 말해주어 요한 역시 해리성 인격장애요소가 발현했다고 본다. 실제로 요한은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메시지를 남기곤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Sehen Sie mich! Sehen Sie mich! Das Monstrum in meinem Selbst ist So groβ geworden!(날 봐! 날 봐! 내 안의 몬스터가 이렇게 커졌어!))이것 역시 해리성 인격장애의 증거라고 생각하며, 이는 아동에게 정신적 쇼크가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동에게 있어서 쇼크는 평생의 행동을 좌우하는 의식, 무의식의 기제라고 할 수 있다.또한 요한에게는 여동생 니나에 대한 집착이 강렬한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요한은 아버지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마음놓고 좋아할 수 있었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없음) 그런데 어머니는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여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이 다시 집착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만화에도 그런 장면이 여러 번 노출된다. 니나에게 ‘모든 것은 너를 위해 준비되어 있어’라는 대사를 날리고, ‘원하는 건 다 네 거야’라는 대사, 그리고 511 킨더하임에 가게 된 원인(이 부분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성이 있어서 자세히 언급은 하지 않겠음)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② 511 킨더하임511 킨더하임은 몬스터 사건의 최초 진원지인 셈이다. 이곳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구동독의 소년들에게 과학적인 인격교정을 실행하고 있던 실험장이었다. 그곳의 초대원장이었다는 페드로프는 ‘교육은 실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육이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창출해내는 것으로 어떠한 교육을 시행하면, 요구하고 있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점에서 교육은 실험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511 킨더하임 출신인 글리머는 그 실험이 실패라고 하였다. 511 킨더하임 출신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은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글리머가 페드로프를 만났을 때 그는 다시 사설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글리머는 그가 511 킨더하임의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주 즐겁게 웃고 있었고 페드로프는 요한에 의해 살해되어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암흑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애정의 발견은 무척이나 새로웠다.’ 즉 그는 511 킨더하임에서와는 다르게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글리머는 애정이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몬스터 전체의 주제와도 관련이 깊다. 몬스터는 혼자 읽는다면 정말 오싹하고 소름 돋을만한 만화이지만 실제로 만화의 어디를 봐도 그 주제는 ‘사랑’인 것이다. 정서의 유형에서 애정(affection)은 유아의 정서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성격의 기초가 되는 욕구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힘을 발휘한다. 또한 부모로부터의 애정의 욕구충족은 아동의 자아개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페드로프는 그 점을 깨닫고 죽는다.511 킨더하임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원생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영화 ‘배틀 로얄’ 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른바 그 폭동에서는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었다.(글리머를 포함한 살아있는 여럿은 그 사건 이전에 고아원을 떠난 사람들이다) 요한의 능력은 그런 성격의 것이다. 실제로도 요한은 사람을 여럿 죽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살인을 많이 하였다. 그 능력은 협박이 아니라 교화 쪽에 가깝다 하겠다. 또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철저히 고독하게 만들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는데 이것 역시 그의 능력이었다. 교육을 통해 이와 같은 것이 능력으로 길러질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다. 이런 부분에서는 예비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로크는 아동을 백지라고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교사들에게는 무서운 말이 될 수도 있다. 교사의 지도 여하에 따라 아동은 성인군자도 될 수 있고, 파렴치한 범죄자도 될 수 있다. 교사의 지도 여하에 따라 아동은 보석도 될 수 있고, 괴물도 될 수 있다.)
    교육학| 2004.12.10| 5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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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시)비평]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또 다른 고향 {국어교육과 11983052 박창현{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윤동주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어둔 방(房)은 우주(宇宙)로 통(通)하고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백골(白骨)을 들여다보며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白骨)이 우는 것이냐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지조(志操)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어둠을 짖는 개는나를 쫓는 것일 게다.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백골(白骨)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백골이라는 것은 이미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은 뒤에 남은 흰 뼈{) 이기문, 동아 새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96, p 841.이다. 1연에서 시적화자인 나 가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 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백골이 있다는 것은 나 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연에서 어둔 방 은 우주 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는 천둥소리 같은 무언가를 심판하는 소리일수도 있고 어떤 계시(啓示)와 같은 소리일 수도 있을 터이다. 그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3연에서 시적화자가 소리라고 느끼고 있는 그 바람에 의해 백골이 풍화작용을 하고 있다. 바람에 깎여가고 있는 것이다. 그 깎여가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누군가가 눈물을 짓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나 인가 백골 인가 아름다운 혼 인가를 반문한다.4연에서는 화자의 어조의 바뀜, 즉 어떤 퍼소나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윤동주의 시작습관{) 서시 의 2연 1행, 또 태초의 아침 의 4연, 별 헤는 밤 의 9연, 간 의 5연 등.처럼 보인다. 그래서 4연에서는 태도의 전환도 나타난다. 이제까지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자인하고, 자신의 백골이 하늘의 소리 같은 바람에 쪼이는 것을 보며 눈물짓던 화자가 갑자기 개 {) 지조 높은 개 는 이육사의 광야 에서 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 라는 구절의 닭 과 비견될 만하다.를 끌어들인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라고 말하고 그 어둠을 짖는 개 가 나 를 쫓고 있는 것이라 추측한다.{) 일종의 피해의식일 수 있다.5연은 여태까지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대단원의 연{) 정병욱 씨의 회고를 보면 별 헤는 밤 의 끝부분이 허하다는 느낌을 말하자 윤동주는 4행의 시 를 덧붙이게 되는데 이것은 그의 결벽적인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다소 작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이다. 내가 이미 죽었고, 내 백골이 고향에 따라온 것, 그리고 그 백골이 하늘의 소리에 의해 풍화작용했던 것, 그 백골을 들여다보며 울었던 것, 지조 높은 개가 나를 쫓는 것과 같은 諸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 쫓기우는 사람처럼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라고 외치는 것이다. 외침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외침이 아닐 수도 있다. 가자! 라고 외치는 것이라면 굳건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몰래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는 것이라면 의지를 드러낼 만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조곤히 속삭인다고 해보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라고.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답은 자명하다. 바로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이다. 또 다른 고향 이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실제 윤동주의 고향이 북간도의 명동촌이라고는 하지만 고향의 의미가 이미 확대되어 있고, 고향을 잃어버린 화자는 상실감 역시 확장되어 있다. 또 다른 고향 이란 지조 높은 개에게 쫓기지 않고도, 백골이 아닌 평범한 몸으로도 떳떳하게 돌아갈 수 있는 화자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건청, 『한국현대시인연구』,「윤동주」, 문학세계사, 1992, p 122 ~4 참조역사·전기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는 할 말이 많아진다. 슬픈 족속과 팔복, 자화상과 별헤는 밤, 십자가를 잇는 연장선에 또 다른 고향이 있고 또 다른 고향이라는 이정표를 지나면 서시와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가 있다. 쉽게 씌어진 시에 와서야 비로소 윤동주는 나와 내 가 악수를 하게 되지만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이전에 부끄런 고백도 있었고 그리운 사나이도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라는 이 시의 조곤한 자기외침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4.06.12| 2페이지| 1,000원| 조회(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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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학] 영화 '사마리아' 비평문 평가B괜찮아요
    성을 상품화하지 않겠다는 의식의 상품화김기덕 감독 본인도 밝힌 바 있듯이 김기덕 감독 영화의 중요한 소재는 ‘성’이다. ‘섬’, ‘파란 대문’, ‘나쁜남자’에 이어 ‘사마리아’까지 ‘성’이라는 소재의 연장선 상에 있다. ‘김기덕 감독은 창녀영화만 만든다’는 여성단체의 비난과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김 감독은 꾸준히 ‘성’소재의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것은 일부 단체에서 주장하는 ‘성의 상품화’와는 오히려 동떨어진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마리아’는 ‘성을 상품화하지 않겠다는 의식’자체를 상품화한 기이한 영화다. 남성관객을 위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 영화라면 남성인 필자도 얼마든지 유쾌하게, 순수하게 즐기면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잇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사마리아’는 즐거운 영화를 관람하려는 개인의 소시민적인 생각을 철저히 깨부순다. 김기덕 감독은 그 점이 영화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의도된 것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를 테면 저예산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 그 자체가 이중적인 광고일 뿐이다. 굳이 헐리우드 식의 블록버스터와 그래픽 일색의 영화를 차치하고라도, 영화는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상업주의 예술양식이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투자에 비례해 그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정상적인 발상인 것이다. 신인 배우를 발굴하거나 무명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시나리오가 다듬어지지 않고 매우 엉성한 것, ‘셋트’라는 개념에 대해 도외시를 넘어서 무시하다시피 한 것 등의 사실이 관객에게 주는 허무함은 가히 엄청난 것이어서,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 ‘저예산으로도 할 수 있다’, ‘열흘 만에 찍었다’와 같은 김기덕 감독의 말은 자신의 천재성과 작가의식을 자화자찬하려는 ‘감독의 변’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는다.문제는 바로 그 곳에 있다. 16mm 독립영화를 찍겠다는 것도 아닌데 저예산으로, 짧은 시간 안에 촬영하였음을 강조하여 광고하는 것이다. 그 광고로 인해 영화는 작품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포장되며, 그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감독은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대중성을 따지는 관객과 평론가들의 의식까지 은밀히 비판하려 한다.이와 같은 감독의 계획의도 덕분에 영화는 계속 일그러진다. 여진의 아버지(이얼 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연기자들의 연기가 평균이하를 맴돌고 몇몇 조연들은 TV재연 프로그램 출연자의 연기보다 더 어색함을 버젓이 드러낸다. 특히 음악을 한다는 남자의 연기는 대사를 감정없이 읽는다는 느낌마저 들어 대본을 읽어보는 것이 훨씬 공감이 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내가 더럽니? 내가 더럽구나.” 라고 말하고 차를 몰고 가버리는 장면, 병원에서 전화를 받는 장면 등) 또한 사건의 전개가 전혀 극적이지 않고 리얼리티가 현저히 떨어져서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재영(한여름 분)이 남성들과 관계를 맺는 동안 줄기차게 경찰들이 들이닥쳐 결과적으로는 재영이 죽게되기까지 하지만 여진(곽지민 분)이 남성들과 관계를 맺을 때는 경찰차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남성은 여진의 아버지가 ‘어린 여자 만나러 왔습니까?’라고 묻는 말에 부정하지도 않으며, 재영이 죽었을 때 음악가 남자는 여진 앞에서 아주 어설픈 연기로 확실하게 통화를 한다. 마치 여진이 남자의 전화내용을 당연히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진의 아버지가 딸의 원조교제 장면을 발견하는 대목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위화로움이 발생한다. 살해된 여자가 있던 방과 딸이 관계를 하던 방이 마주보고 있었다는 우연성은 논의에서 빼자. 그렇다고 해도 딸이 잇던 방의 투명창문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살해된 여자가 있던 방의 불투명 창문을 열고 아버지가 내다보니, 반대편에 자신의 딸이 나이든 남자 품에 안겨있는 장면이 투명창문을 통해 엿보인다. 감독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모텔에 의뢰해 불투명 창문을 투명창문으로 바꾸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와 같이 사건과 사건의 인과성이 떨어지고 대단히 ‘작위적’인 점은 소소한 사건을 넘어서 이야기의 중심사건에서도 이어진다. 영화 초반부에서 여진의 가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더 나아가 화목하다. 어머니가 없는 대신 아버지가 직접 찌개를 끓이고 계란프라이를 해서 아침을 준비하고, 음악을 틀어줌으로써 딸의 아침을 조심스레 깨우며, 학교가는 차 안에서 매일 해외토픽 기사를 외워서 이야기해주는 등 여태까지 다정다감하고 자상하게 딸을 대했을 아버지는 사건 이후 딸과 대화를 하려 하기는커녕 집요한 추적과 활극을 이어가는 사이코로 내비친다. 이것은 이얼의 내면연기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는 면이 있으며, 아내가 죽은 상황에서 딸만 보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입장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쉽지는 않지만 충격의 수위를 공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딸을 둔 아버지의 투신자살은 어떻게도 공감할 수 없다. 아버지는 딸과 관계를 맺고 나오는 남자를 집요하게 따라가 잘못했다는 반성의 말(현실감있게 들린다)을 듣지만 여기에서 그만두지 않고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집에 쳐들어가 막말을 하고 남자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린다. 이런 왜곡된 인물의 행동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해될 수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남자의 투신자살은 작위를 넘어선 감독의 폭력이다. 남자는 이얼이 쳐들어올 당시 식사중이었다. 부인과 어머니, 딸과 늦둥이인 듯한 아들까지 있는 가장이 식사 중에 자살을 한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감상적?낭만적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도 안되는 죽음 앞에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또한 딸의 방황을 중단시키려는 의지없이 관찰만 하는 아버지의 무책임한 태도와 집요한 활극은 우발적인 상황에서만 이해되고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인데 패턴이 심화되어 반복됨으로써 그의 태도와 행동이 전혀 우발적이지 않고 철저히 계획적이지 않느냐 하는 의심까지 일게 한다. 사랑이라면 모든 걸 용서해줄 수 있다는 태도 하에서도,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살인도 불사하는 아버지의 활극이 등가로 교환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불만족스럽다.이 영화에서 그나마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두 장면이 죽은 비유로 일관됨은 감독의 참신함에 대한 고민이 그리 길지 않았거나, 감독의 수준이 그 정도에서 머물렀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첫 번째 장면은 아버지가 샤워기의 물을 내리맞는 장면, 이 장면은 처녀성을 잃은 여진이 한 행동과 중첩되는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성서에 나오는 물에 의한 세례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성서와 그리스도교에서는 물에 의해 씻김을 당함으로써 원죄를 치유받게 되지만 영화 속 아버지는 치유받기는커녕 활극으로 일관한다. 두 번째 장면은 강가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다가 하는 말, ‘아버진 이제 따라가지 않을 거야.’이다. 이것은 딸을 놔두고 가버리는 다음 사건을 암시하는 동시에 운전을 하는 동안뿐 아니라 앞으로도 너는 나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역시 ‘인생=길’이라는 죽은 비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쓸쓸한 눈길이 여운에 남을 뿐 기억에 남을만한 참신한 쇼크는 될 수 없다.
    인문/어학| 2004.05.30| 4페이지| 1,000원| 조회(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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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비평] 김동리와 시간의식
    Ⅰ. 김동리의 작가 세계와 시간의식을 알아보시오.김동리 소설에서의 전반적인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 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작품적 경향은 소위 한국적 인간상에 의해 상당부분 제시되고 있다. 한국적 인간상의 제시는 토속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작가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며, 후에 김동리는 작품 속에서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하게 된다.김동리의 작가세계는 몇 가지 개념적 사고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구경(究境)적 삶김동리의 작가관은 불교적 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홀로 태어나 각각 자라나고, 사라지는 것 또한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인생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만물을 이루는 모든 것은 인간인 우리를 비롯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 우리는 모두 공통적인 운명을 부여받은 채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공통된 운명을 발견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즉 문학을 하는 이유이며 불완전하고 운명적인 우리 삶을 구경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김동리 그의 생각이다.「문학하는 사람은 시 쓰고 소설 쓰는 것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생각하고 해답을 가져야한다.참된 문학이라는 것이란 어떤 구경적인 생의 형식이 되어야하며, 아울러 모든 문학적 생산, 혹은 창조는 생의 긍정을 전제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이면 가지는 삶의 형식(직업적 삶)을 한 단계 높인 의욕적 결실인 신명(자아 속에서 천지의 분신인 자기)을 찾아야 한다. 즉, 우리에게 부여된 공동의 운명을 발견, 이것의 전개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구경적 생의 형식을 문학하는 것이라 할 때 내용과 형식에서 종교와 다른 그 중에서도 종교가 이미 있는 신에 대한 귀의라면 문학은 각자가 자신 속에, 혹은 자신들을 통하여 영원히 새로운 신 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가능성,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결국 소설에서 말하는 구경적 삶이란 작가가 지닌 자아추구이며 또한 공통된 운명을서 민족 문학의 전통을 확립하고 확대시킨 작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그의 문학 작품 가운데서 신라 때부터 전승되어 온 민족 신화의 정신적인 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문학 가운데 민족 문학의 특색을 강하게 지니면서 세계성을 띈 작품을 말하라고 하면, 우리는 서슴없이 김동리의 단편 와 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비록 대부분의 그의 작품의 배경과 무대는 도시가 아닌 오지인 전원이며 작중 인물들은 인구 밀집 사회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형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작품의 주제를 보편화시킴은 물론 민족 문학의 향취와 개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가 비록 원시적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한 다른 어느 작가의 작품 못지 않게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게 만든 것은 그의 작품의 소재가 원시적인 것의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원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작을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진정한 한국 문학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샤머니즘그가 새로운 정신적 원천으로서 샤머니즘을 선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무교가 한민족의 원시 종교인만큼 한민족 고유의 신관, 내세관(저승),현세관(이승)등이 이 속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 당시는 일본 총독 정치가 우리를 다스리고 있을 때인 만큼 한국의 고유한 얼을 문학 작품에서나마 담아 영원히 간직해 나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둘째, 19세기 말로 모든 기성 종교, 따라서 기성적인 '신'은 문화창조의 정신적 원천으로서는 이미 쇠잔해진 것이라 판단하는 동시 새로운 정신 원천은 새로운 성격의 신을 찾는데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새로운 성격의 신을 찾는 방법으로서도 샤머니즘을 택했던 것이다.내가「무녀도」에서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충돌을 시도했던 것은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 동서문화의 충돌이라든가 신?구 정신의 대립이라든가 하는 따위가 아니고 나대로는 좀 더 미래적인 세계를 제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김동리의 문학은 그 성격상 크게 다음의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1)초기 작품에 나타난 작품의 경향.그의 초기 작품인 「화랑의 후예」 는 그가 아직 뚜렷한 자신만의 문학관을 확립시키지 못했음을 알게 한다. 그는 몰락한 양반의 후손으로 시대착오적인 삶을 사는 황진사가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풍자 혹은 연민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화랑의 후예」이후에 발표한「바위」와 「무녀도」는 전작에 비해 김동리적(的) 소설의 특성이 보다 두드러지는 작품들이다. 토속적, 한국적인 소설 세계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들의 배경은 토속신앙의 발상지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무속신앙의 본고장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회 신분적으로 천대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 김동리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2) 중기 작품에 나타난 작품 경향6?25가 발발함을 계기로 하여 많은 작가들이 그랬듯 그 역시 역사적, 현실적 의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역마?, ?밀다원 시대? 와 같은 작품들이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김동리는 점차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움직임은 「솔거」에서 드러나고 있다. 현실로부터의 소외로 절대적인 미를 추구하게 되는 일종의 예술가 소설로 볼 수 있는 그 작품은 현실과의 부조화, 선험적 상실성으로 구체화되는 미학적 자질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것은 솔거, 정원, 타인에 대한 억압, 기생과의 결혼 등을 통해 극복된다. 미적 형성이 김동리 특유의 문학관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자신의 삶 전부를 예술화함으로써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러한 태도는 자아의 정신적인 소외를 보상하려는 시도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이처럼 낭만주의에서 유미주의로 전이되는 심리적인 매체가 그의 문학적 특징 중 하나인 것이다.3) 후기 작품에 나타난 작품 경향1940년대 문학 분야는 좌?우익의 분열 대립 시기로 이때부터 두파 문인들의 논쟁이 시작되게 된다. 30 작가 김동리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며, 근대 문명에 대한 차원 높은 비판 의식을 형상화하였다. 작품 ?등신불?과 「사반의 십자가」가 좋은 예라 하겠다. 「사반의 십자가」에서 김동리는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과 교육과정, 즉 무속세계와 기독교의 이 질감에서 형성된 방황을 문학으로 형상화하였다. 『문학과 인간』에서 보여준 '신보다는 인간'이 라는 다소 서양적인 인간 중심의 사고가 「사반의 십자가」에 이르면 도양의 그것과 견주어 봄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사반'이라는 가공적 인물을 통해 기독교적 서양 제국 문화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신의 존재를 모색해 보는 작품이다. 이처럼 인간 중심주의며 현실주의자 사반과 신중심주의며 내세주의자 예수와의 가치관의 대립은 화합할 수 없는 서양의 정신에서 그는 동양으로 눈을 돌리게 하였다. 특히 동양의 대표 종교인 불교에 관심을 돌려 그 결과 1960년 「등신불」이라는 작품이 창작된다. 「등신불」은 신의 질을 추구하되 인간적인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가부좌상에 얽힌 이야기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문제에서 인간을 배제할 수 없었던 그에게 신의 모습은 이 등신불과 같은 기형적 불상의 모습이었다. 그가 추구하는 '신성을 가진 인간'에 「등신불」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였고 신과 인간의 공존 문제를 끊임없이 시도해 온 김동리는 불교에서 샤머니즘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김동리의 시간 의식1) 시간의식의 정의소설은 어느 문학장르 보다도 시간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시간의식을 내포하고 있거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의 시간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시간과 의식이라는 두 단어로 연결된 합성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시간?과 ?의식?을 따로 생각해야함으로써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흘렀음을 ?의식? 해야만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의식이 흐른다고 느끼기 때문이라 가진 소설에서 시간의식은 곧 작가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 즉 ?삶의식? 이며 ?역사의식? 인 것이다. 결국 시간의식의 개념은 시간과 의식을 별개로 정의하기보다 ?시간의 모태는 의식?이다라는 명제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그렇다면 작품에서 보여지는 작가 김동리의 시간의식은 어떤 것일까. 앞에서 시간의식이라 함은 삶의식, 역사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쓰일 수 있음을 보였기 때문에 그의 시간의식은 그가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자신의 역사의식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화랑의 후예」에서 시대착오적 인물인 황진사에 대해 작가는 전적으로 풍자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불쌍히 여기고 있지만도 않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러한 인물에 대해 관조할 뿐인 것이다. 「바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작가의식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둥병 환자인 여인이 삶에의 절망을 느끼고, 바위를 껴안고 죽는다는 「바위」는 현실적으로 신분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 김동리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를 마치 문둥이 취급하듯 격리시킨 채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현실 사회가 그에게는 계급을, 시대를 잘못 타고난, 그저 운명적인 한계였다. 그러나 김동리는 그것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문둥이들의 극복 의지는, 다시 말해 그의 극복 의지는 소설 속에서 예술의 형태를 빌어 분출되고 있다. 거기서도 우리는 김동리의 시간의식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Ⅱ. 김동리의 무녀도에 나타난 시간의식을 논해보시오.시간의식은 순환적 시간에 순응하던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르네상스 이후 정신적 풍토가 인간 또는 개인이나 집단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산문이 발달하던 인본주의의 선형적 시간의 시대를 거쳐 종래의 시간관에 반역을 시도하며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현대의 실존적 시간을 경험하는 가운데 변질되어 왔다. 이러한 시간의식의 변화는 한국에 적용하여도 비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원시종교적 우주관 또는 불교 전래 후의 윤회사되었다.
    인문/어학| 2004.05.30| 5페이지| 1,000원| 조회(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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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비평] 현진건의 생애와 문학 평가A+최고예요
    1. 서론빙허 현진건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마련해 놓은 문학사적 의미를 떠나서라도 일본의 식민통치로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한 지성인으로서 특이한 면모를 남긴 작가였다. 이 글에서는 현진건의 생애를 바탕으로 그의 문학관과 작품세계를 다루어 봄으로써 그 이해를 보다 충실히 하는데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2. 현진건의 생애1 현진건의 가계현진건은 구한말 통신원 전보국장을 역임하였던 연주(延州) 현씨 현경운(擎運)이 대구 우체국장 시절에, 어머니 이정효(李貞孝) 사이에서 4남으로 1900년 음력 8월 9일에 출생하였다. 위로 홍건(鴻健)·석건(奭健)·정건(鼎健) 형이 있었고, 생모가 일찍 세상을 뜨자 후실 정선(旌善) 전씨(全氏)에게서 동생 성건(聖健)이 있다{)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 p11.. 그의 집안은 조선조 대대로 역관을 세습할 정도로 역관을 많이 배출한 집안으로, 구한말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사회 변동기에는 정치 문화 엘리트를 많이 배출했다. 그의 집안 출신 중에서 구한말 새로운 계층으로 부상한 인물들이 많다{) 지금까지 그의 가문에 대해서는, 武弁으로 이름난 집안, 서울 중인으로 武弁, 역관집안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이는 어떤 실증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숙부가 군령부 참장을 지낸 사실과, 그의 叔行내지 형제 行列에 있는 사람들 중에 외국어학교 출신이 많아서 구한말 통역업무 또는 외교업무에 종사한 일에서 추측한 결과인 것이다.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 p11.{) 현길언 『현진건-식민지 시대와 작가 정신』,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5. p13..부친은, 무과에 급제한 후 내장원 경(卿)을 역임, 구한말 창원 감리겸 재판소 판사였던, 현학표(玄學杓)의 장자로, 현진건의 삼촌으로는 용궁 군수를 지낸 철운(轍運), 대한제국 군령부 참장이었던 영운(暎運), 태복사 기사를 지내고 대한체육회 창설 멤버였던 양운(暘運), 태복사{) 태복사 : 조선 후기 임금의 거마(車馬)와 조마(調馬)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기 기록해 놓았다.「첫째는 그가 미남자인 것이니 《백조》시대의 빙허는 장안 삼대 미남자중의 한 사람으로 이름난 사나이다. 키는 五尺三寸 이요 중량은 四十貫으로 약질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체격의 균형이 잡히어 있고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눈썹이 검고, 눈동자가 맑아 多少 찬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여자와 같이 雅淡한 얼굴이요, 짐짓 전형적인 선비 모습이다. 더구나 얼굴이 속살보다 흰 것이 남다른 점인데 속살이 검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얼굴이 한층 더 희다는 말이다......」 - 백기만編「씨뿌린 사람들」{) 김우종 『작가론』동화문화사, 1973, pp.63-64그는 열한 살 때(1910년) 생모를 여읜다. 이후 계모로 旌善 全氏가 들어오긴 하나 계모와 현진건 사이에 별 특별한 문제는 없었던 듯하다. 이는 생모를 여읜 후 현진건은 집을 떠나 서울, 동경, 상해 등지에서 공부를 하게 되고, 뒤에 언급되겠으나. 1919년에는 당숙 보운(普運)의 양자로 가게 되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양모를 모시고 살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현진건은 어머니가 죽을 때 까지는 대구에서 주로 한문을 공부하게 된다. 이후 1913년 서울로 올라와 일어와 산술을 배우게 되고, 14년에는 서울 모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915년 현진건 나이 열여섯에 대구 부호인 경주 이씨 집안 진사 李吉雨의 딸 순득(順得)과 결혼하고,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어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일본에서 돌아와 대구에서 동인지《거화(炬火)》를 이상화 · 이상백 · 백기만 등과 함께 간행했고, 이어 1918년 아무도 모르게,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숙형 정건을 찾아 상해로 건너가서 호강대학( 江大學) 독일어 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일본과 상해로 건너간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1915년 결혼하였고 그 후에 일본에 건너갔으며 귀국 후 1917년 《거화(炬火)》동인지를 만들었고, 그 후에 상해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상해로 가서 일 년 동안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에서 공부하였다. 그 시기에 현진건이 형 정건을)와 훈도(薰陶)를 받던 빙허의 정신적인 경향이 어떤 면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는지는 구태여 설명을 첨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빙허의 가계가 대부분 입신출세하고 영달한 것은 사실이나 빙허가 중형(仲兄)을 찾아가 그의 곁에서 공부를 했던 사실을 비롯하여 평생 처세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그는 누구보다도 정신적으로는 중형(仲兄)을 닮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중형(仲兄)이 행동적인 독립투사였음에 반하여 빙허는 문학을 통해서 조국의 운명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김우종 『작가론』동화문화사, 1973, P.65..이 기간에는 창작보다는 몇 편의 신변잡기적인 문장을 발표하였고, 그 동안 발표하였던 번역소설을 묶어 간행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문학에 대한 정리와 아울러 새로운 모색을 도모한 것 같다. 그러한 점은 장편에의 관심을 통하여 나타나며, 이즈음 쓴 문장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대할 수 있다. 그는 바쁜 신문기자 생활에서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하더니,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역사 현장 순례에 나섰고{) 古都慶州巡禮紀行文을 《동아일보》(1929.7.18 - 8.19)에 발표하고, 檀君聖跡을 순례했다(1931.7.8-10.23) -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참고, 「古都巡禮 · 慶州」를 13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발표하고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역사 속에 소멸되어가는 현재의 비통함을 극복하고서, 미래에 새롭게 생성될 새 역사를 확신하게 된다. 1930년 9월에는 주나라 하강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웃는 포사」를 4회에 걸쳐 발표하다가{) 《新小說》(1930.9)과 《解放》에 3회(1931.1-3)걸쳐 발표하다가 중단됨. -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참고중단했다. 그가 단군성적(檀君聖跡)순례에 나선 것은 잊혀져 가는 민족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이러한 가운데 만기 출옥한 형 정건의 죽음에 이어 형수 윤덕경의 자살, 양모 밀양 박씨의 죽음 등 충격적인 집안일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참고, 『조선의 얼골』도 금서 처분을 받았다. 이 시기에 자신의 문학적 입장을 밝힌 글 「역사소설제문제」와「문학종횡담」(인터뷰 기사)이 있다. 현진건은 1939년 11월 『文章』지 기자와《文章》誌 기자와의(彰義門 밖 付岩町, 自宅書齋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활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게 되고{) 나는 양계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으며, 작가는 오직 공직에 얽매이지 말고 작가로서의 생활만을 가져야 한다. 문학은 독자를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은 신문 소설의 한계성을 절감한다. 文은 곧 氣이기 때문에, 예술이란 體得할 것이지 누구에게 배울 것이 아니다, 「역사소설제문제」(문장, 12월)란 글에서 이념형 역사소설이 필요함을 말했다. 그는 마지막 작품「선화공주」를 《춘추》에 연재하다가{) 1941. 4 - 9. -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참고완성을 못보고 딸의 결혼{) 1943년 3월 25일 셋째 딸 和壽 육당의 주례로 月灘의 아들과 결혼함한 달 후, 1943년 4월 25일에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길언 『현진건-식민지 시대와 작가 정신』,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5. pp.13-15.그는 전통적인 한국의 벼슬아치 집안에 태어나서 격동기에 개화 지향적인 주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정치적 · 사회적으로 격심한 변동기를 대처해 나가는 다양한 삶의 양식을 집안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확인하였고, 그러는 가운데 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서 겪는 갈등과 고통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립하였다. 그는 생활에 절도를 유지하였고, 문단의 세기말적 분위기에{) 조혼한 사회명사들 특히 문인들이 소위 신여성과의 애정 행각은 하나의 사회적인 풍조였고(김병익, 『韓國文壇史』, 일지사, 1973, pp.104-106), 문사들의 도덕적 악성병이 널리 퍼져서 춘원이 「文士와 修養」이란 글을 쓸 정도였다. 이광수『春園全集』(16)(三中堂, 1964), pp.22-23. 玄吉彦『玄鎭健小說硏究』이우출판사, 1988,층민이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는 「이러쿵 저러쿵」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예술이 예술되는 소이연은 거기 예술적 표현의 유무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로되, 그 결정된 예술이 인생에 대하여 중대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오로지 그 작품의 내용적 가치, 선전적 가치를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憑虛, 「이러쿵 저러쿵」, 『開闢』44호, 1924.2.(이하 인용은 주 생략)또한 그는 상아탑 속에 숨어서 은피리를 불고 있는 문학 을 거부하고 오늘날의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 인생에게 가장 귀한 것을 만드는 오늘의 문학 을 선언한다. 그리고 최서해의 작품과 비교해 신사-프롤레탈리아 문학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푸로레타리아문학이란 글자와 가치 푸로레타리아 자신의 문학이라야 한다. 그런데 푸로레타리아의 즐겨할듯한 문학, 푸로레타리아의 이익에 될듯한 문학을 가지고 배심조케 푸로레탈리아문학이라고 엇개를 뽑내는 군이 만타.또한 그 당시 프로문학과 양립하던 민족주의 문학에 대해서는 昨日문학의 화석에 엎어놓고 찬미 하는 문학이라고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과거를 더듬으며 한숨쉴 일이 아니오. 미래를 바라보며 팔만 벌리고 있을 것이 아니다. 손아귀에 단단히 힘을 주어 현재를 움켜쥘 것이다.즉물적 현실에 기반을 둔 그의 문학관은, 현실을 거부하고 과거에 몰입함으로써 단아함을 지키려는 민족주의문학과 민중과의 공감적 흐름을 외면한 채, 미래의 행복을 성급하게 선동하는 프로문학을 비판하고, 현실 속에 고통받는 민중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그 비참과 고통을 나누어 가지려는 오늘 의 문학관이다.{) 최원식,「현진건 연구」,『한국근대문학을 찾아서』, 1999. 65면.현진건의 문학관이 집약되었다고 볼 수 있는 다음 글을 보자.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모것도 존재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 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든든히 듸듸고서야 될줄 안다. 현대문학인 다음에야 현대의 정신을 힘있게 호흡해야 될줄 안다.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 …달뜬 기염에서 노?
    인문/어학| 2004.05.30| 13페이지| 2,000원| 조회(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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