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내 또래라면 어린시절 누구나 구슬치기를 해봤을 것이다. 난 구슬치기보다는 각양각색의 크기와 색깔의 구슬이 좋았다. 투명한 구슬 안에는 신비한 문양이 담겨있었는데 한쪽 눈을 감고 뚫어져라 쳐다보면 그 속에 또 다른 세계가 보일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사람들이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상상했었다.아폴로 17호가 지구에서 달로 가는 길에 찍은 지구를 본 적이 있는가? 깜깜한 우주 속에 내가 보아온 그 어떤 구슬보다 더 아름답고 푸르며 신비한 모습으로 우주를 빛내고 있다. 내 어릴 적 동경하며 꿈꿔온 상상처럼 사람들은 그곳에 살고 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는 것뿐이다.언젠가 불에 그슬린 구슬을 본 적 있는데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흉측했다. 깨끗이 씻으면 나아질까 싶어 열심히 닦았지만 시꺼먼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그마한 구슬이 이러한데 지구는 어떨까? 현시대에 미디어들이 지구의 위기를 경고 하는 것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 한가운데 지구온난화라는 화두는 항상 등장한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이 경고를 무시하면 지금도 간간히 일어나는 재앙들이 더욱 자주 발생하리라는 것이다. 또 이 문제를 간과할 시 지구를 다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단다. 불에 그슬린 구슬 안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상상속의 사람들이 떠올라서 등골이 오싹해진다.그렇다면 지구 온난화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학자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일까? 왜 이런 형상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나라와 세계, 나아가 지구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그리고 점점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기상재해에 대한 대책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이 많은 질문에 대해 정답이 아닐지 모르는 짧은 대답이나마 충실하게 해볼까 한다.2. 지구온난화란지구온난화란 일시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 지구 기후에 전반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현상이다. 기후는 지구의 대기 순환, 해류, 대기 구성성분이때 적외선 파장을 흡수한 이산화탄소 내의 탄소분자는 들뜬 상태가 되고 안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 에너지로 인해 지구가 더워지는 것이다.실제 대기에 의해 일어나는 온실효과는 지구를 항상 일정한 온도로 유지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만약 대기가 없어 온실효과가 없다면 지구는 화성처럼 낮에는 햇빛을 받아 수십도 이상 올라가지만 반대로 태양이 없는 밤에는 모든 열이 방출되어 영하 100℃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나쁜 영향으로 많이 거론되는 온실효과 그 자체가 문제가 되기보다는 일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기체들이 과다하게 대기 중에 방출됨으로써 야기될지 모르는 이상고온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문제시 되는 것이다.이러한 온실효과를 부채질하는 원인은 복합적으로 나타나지만 대표적인 것들을 말해보겠다.1) 온실가스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가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배가되었기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고 있다. 그럼 온실가스란 정확히 무엇인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이산화탄소다. 그렇지만 다른 종류들도 여럿 존재한다. 온실가스로 분류되는그림② ▲ 이산화탄소의 양이 2배가 됐을 때 기온이 증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예상도. 빨간 부분일수록 기온증가 정도가 높은데, 극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한 것을 알 수 있다.화합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반사되어 나가는 적외선 복사에너지 중 일부를 사로잡아 공기를 데운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전체 온실가스 방출량의 80%를 자치하기 때문에 거론된다. 우리는 가정, 자동차, 공장, 발전소에서 화석연료(석유, 천연가스, 석탄)를 태울 때, 나무를 베거나 삼림을 불태울 때, 시멘트를 제조할 때 등등 늘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 메탄(CH₄)과 아산화질소(N₂O)도 인간의 활동으로 그 양이 증폭되었다. 현재 대기 중 메탄의 60%가 인간이 방출한 것이다. 쓰레기 매립지, 가축축사, 화력 연료 연소지, 하수 처리장, 기타산업부문 등등에서 메탄이이 매년 훼손되고 있어 오래지 않아 공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삼림자원은 충분치 않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3) 지구시스템의 파괴지구는 살아있다. 어떤 원인으로 하나의 문제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로 인해 다른 문제가 파생되는 유기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를 더 잘 일으킬 수 있는 프레온가스는 그 효과에 비해 양이 미비해서 온실효과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프레온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더 많이 알려졌다. 오존층파괴와 지구온난화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가 앞서 말한 프레온가스이고 둘째가 기후변동이다.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지면 기온이 상승하여 오존층 파괴를 부추긴다. 오존층이 파괴되면 자외선으로 인해 식물들이 금세 죽는다. 식물들이 죽으면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하여 다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된다. 이렇듯 발생원인을 살펴볼 때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현상들이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런 시스템 안에서 지구온난화가 다시 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는 주장도 있다.4. 지구온난화의 영향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는 복합적인 효과와 관련성이 있다. 식물과 동물의 종이 변화된 기후조건에 적응해 가면서 많은 생태계가 기후조건에 따라 전이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지구 규모로 수문순환)을 강화할 것으로 예측되며 수자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초래되는 기온상승과 해수면 상승은 에너지, 산업, 교통기간망, 농작물 수율, 인간보건 등에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1) 육상생태계에의 영향인간 활동의 결과 나타난 대기 중의 온실효과가스의 지구규모의 증가와 이와 관련하는 기후변화는 육상 자연생태계와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인류사화에 대하여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시나리오는 최근 10년간에 약 0.3℃의 기온상승을 예측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1만년 동안 보지 못한 상승률이라고 한가하기 때문에 북아프리카와 중근동의 대초원의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생각된다. 기후변화에 따라 해면이 상승되면 연해의 육상 자연생태계에 광범위하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열대의 망그로브, 온대로부터 아한대의 연안저습지의 모든 것이 해면상승이 클 경우에는 소실될 우려마저 있다. 이와 같이 기후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육상 자연생태계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 구조나 구성을 변화하게 될 것이고 존재하는 장소가 이동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는 적응과 이주할 수 있는 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적응과 이주의 능력이 한정된 환경변화에 민감한 종은 서서히 감소되거나 소멸할 것이 예측 된다.2) 해저생태계의 영향해저생태계 역시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육상생태계와 같은 변화를 겪는다. 또한 지구온난화는 적어도 해저생태계에 세 가지 악영향을 미친다. 첫째, 해수의 온도가 섭씨 1도에서 2도 정도만 변하더라도 조류는 생존이 어려워 질 수 있다. 두 번째,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고 해수에 녹게 되는 이산화탄소량도 많아지게 되며 자연히 해수의 산성도는 높아지는데 이 경우 해초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세 번째, 따뜻한 해수는 어류의 남획, 질병, 오염물질 유입 등과 같은 다른 위협 요인에 바다생물들이 쉽게 노출되게 만든다. 그 예로 적조현상, 산호의 백화현상 등이 있다.3) 해수면 상승그림 ▲지구온난화와 빙하만약 2040년에 약 3℃의 기온이 상승한다면 연간 10 km의 속도로 기후대가 극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 결과 강우와 강설 양상이 바뀌고 현재와 다른 계절 변화를 가져와 극 지역의 빙하를 녹이고, 적도 지방에는 사막이 확장될 것이다. 또 지구의 대기 순환이 약해지고, 극지방과 적도 지방의 기온 차는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는 건조 지역에 속하지만 여름의 몬순이 강화될 것이다. 해수면 상승 그리고 무엇보다 기온이 상승하게 되면, 북극이나 남극에 있는 빙하가 녹게 된다. 만약 3℃정도의 기온이 상승할 경우, 북극에 있는 빙하는 대부분이 물에 뜬 빙산기상재해는 비단 다른 나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엄청난 기상이변을 겪고 있다. 2002년 8월 31일 강릉 지역에는 하루 강수량이 870.5㎜를 기록하는 집중 호우가 내렸다.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이 120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년에 내릴 비가 거의 하루에 쏟아져 내린 셈이다. 이는 세계적인 기록으로 남을 만한 일일강수량이다.5) 인간사회(건강 ? 질병)에의 영향인체 내에는 여러 가지 건강을 조절하는 대사기능이 있는데 이와 같은 조절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어떠한 기상조건 범위에 국한되어 잇다. 이 범위를 넘는 기상조건의 변화가 생기면 신체의 생리활동이 혼란스러워진다. 지구 기후변화가 인간건강에 미칠 여러 가지 영향으로는 이상고온의 열스트레스에 의한 직접피해와 또 다른 간접피해가 있다. 직접피해로는 열사병이라 불리는 기상병과 열대성 전염병의 확산 등이 있으며 간접피해로는 기후대의 이동에 의한 농업대 ? 식생대의 이동과 그것에 동반하는 감염병 매개생물이나 병원균 분포의 변화, 그리고 꽃가루 발생 시기나 발생량의 변화에 의한 여러 가지 질병발생이 있다. 또 온도상승으로 광화학 스모그의 심화에 의한 건강피해도 예상된다.5.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1) 세계 각국의 노력지구 온난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은 약 2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자연의 변화를 관측하고 자연의 변화가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1979년 개최된 제1차 국제 기후총회에서는 기후변화문제의 심각성을 서로 공유하였고 1988년 11월에는 유엔환경계획과 세계기상기구가 공동주관으로 기후변화 현상 규명, 영향 및 대응전략 분석 등 광범위한 검토를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기구(IPCC)’를 설립하였다. 이 기구는 과학적 연구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IPCC에서 1990년 채택한 제1차 보고서 는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확인했으며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을 촉구하는 국제적 협약다.
1. 들어가기경영(經營)이란 무엇인가? 한자 그대로를 풀이하자면 어떠한 틀(법, 도리) 안에서 무언가를 짓거나 꾀하는 것을 말하며 사전에서는 ‘① 방침 따위를 정하고 연구하며 일을 해 나감, ② 이익이 나도록 회사나 사업 따위를 운영함’으로 정의하고 있다.나라를 경영하던지 기업을 경영한다던지 누군가가 어떠한 단체를 이끌 때 단순히 경영은 너무나도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은 공통된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 창출은 곧 이익과 연결되며 그것은 단체나 개인의 발전을 의미할 수 있다.앞서 말한 ‘경영이란 무엇인가’ 는 이렇게 나라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것의 답은 무척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고 쉬울 수도 있다. 어떻게 경영하는가에 따라 그 단체의 존망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경영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뜬금없는 말이지만 중국이 뜨고 있다. 특유의 값싼 노동력으로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이 점유하고 있던 수출 분야를 좀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제품을 불법으로 모방한 ‘짝퉁’들을 만들고 있어 우리 업계에 많은 타격을 주고 있다. 동아일보 2005년 10월 18일자 경제면을 보면 인기 좋은 한국 자동차의 디자인과 부품을 똑같이 모방한 중국산 자동차와 부품이 수출까지 되어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국내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10월 20일자 경제면을 보면 중소기업들은 자사제품의 50%의 가격 밖에 안 되는 중국산 때문에 진퇴양난의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그러면 우리기업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 것일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중국보다 더 싼 제품을 만들거나 획기적으로 개량된 제품이나 서비스로 비싸도 선뜻 돈을 내고 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점프가 필요하다.중국의 위협의 해법뿐 아니라 기업이 발전해야하는 이유와 방향을 경창출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의 지식에서 이 두 가지를 높이는 질 좋은 지식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기입지식은 지식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이들을 담고 있는 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차원의 변화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지식점프가 일어 날 수 있다. 첫째, 지식응용이다 지식 구성요소의 변화는 크지 않으나 지식을 담고 있는 틀에 큰 폭의 변화가 생긴 경우다. 둘째, 지식갱신이다. 지식의 틀에는 변화가 없으나 지식요소의 변화가 대폭으로 이루어진 경우다. 셋째, 지식약진이다. 지식요소와 틀 모두에서 변화가 발생한 경우로 지식점프의 정도가 가장 크며 해당분야의 틀 자체가 변화하고 선도기업이 될 수 있다.그러나 지식점프는 절대적이고 객관작인 판단기준이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기업 스스로에게 맡겨진다. 다른 기업의 입장에서는 지식변화의 폭이 적은 것처럼 보여도 어떤 기업에게는 지식점프라고 표현할 만큼 큰 폭의 지식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3. 지식점프의 여섯 단계 살펴보기지식점프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렇다고 못 이룰 일이나 특별한 곳에서만 주어지는 혜택은 결코 아니다. 지식점프에 이르거나 수많은 지식점프를 이루어내는 기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의도적인 문제제기이다. 항상 2등을 하던 LG전자 에어컨, 경영난에 봉착한 만도위니아, 남의 자동차 지식을 돈 주고 사다가 시키는 대로 자동차를 만들던 현대자동차 등처럼 기업은 언젠가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들 기업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문제를 피하거나 넘기지 않고 왜? 어떻게? 라는 문제제기를 통한 지식점프로 세계로 도약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 의도적인 문제가 지식점프에 왜 도움이 될까? 그것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이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학습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자신들만의 고유한 지식과 역량을 쌓아나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문제풀이를 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자사 특유의 지식을 가지게 된업내부의 지식세계와 외부의 지식세계를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한다. 셋째, 새로운 지식생성을 위한 긴장을 유발하는 기능이 있다.의도적으로 제기된 문제를 성공리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풀이를 위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어야한다. 이 최소한의 지식을 내부지식이라고 하는데 내부지식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때 바탕이 되는 지식이다. 또한 내부지식은 외부지식을 습득할 때 기본이 되는 지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무지식이 없으면 외부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다. 내부지식이 충실하면 외부지식을 선별해내는 능력이 커지거나 외부지식을 적은 비용으로 얻을 수 있다.내부지식 이야기를 하면 이것은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면 실망하는 중소기업들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 내부지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역량이지만 의도적 문제를 계속적으로 제기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부지식이 충실히 쌓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그런데 앞서 말한 동아일보 경제면에서 나온 한 자동차부품을 제조하는 H사 박모 사장은 자재 값 등 고정비용이 너무 올라 기술 개발이니 뭐니 엄두가 안 난다고 한다. 이럴 경우에도 단지 의도적 문제를 계속적으로 제기한다고 해서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이건 내 생각이지만 문제는 제기할 수 있으나 고유가, 고금리로 돈을 유통시킬 수 없어서 개발자금이 없다면 이런 문제제기도 수포로 돌아갈 듯 하다.그러나 문제제기나 내부지식 역량만 가지고는 지식점프에 이를 수 없다.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데 강력한 노력은 앞서 말한 의도적 문제제기나 내부지식과는 지식점프를 위한 또 다른 요소가 되는 셈이다. 이 세 가지는 삼중나선구조를 갖고 있다. 내부지식이 빈약하면 노력의 강도는 높아지고 내부지식이 높으면 노력의 강도는 낮아지는 이중나선구조를 이루는데 이 둘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도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있어야하므로 삼중나선구조의 핵심적인 역할은 의도적문제제기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2) 문제의 종류지식점프는 기업이 적절한 문제에 의도적으로 주목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했을 때만 일제기된 문제가 친숙한지 아닌지 친숙성에 따라 문제를 분류할 수 있다. 생성된 원인과 친숙성에 따라 문제를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첫째, 작업이 정상상태를 벗어남으로 발생하는 친숙성이 높은 ‘일탈형 문제’이다. 일탈형 문제에서는 지식점프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돌출되는 친숙성이 낮고 발생적인 ‘돌발형 문제’이다. 기업이 대처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지만 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지식점프가 일어나기도 한다. 셋째, 의도적인 목표설정으로 생성되며 친숙성이 높은 ‘탐색형 문제’이다. 넷째, 의도적이나 내부지식이 부족하여 친숙성이 낮은 ‘탐험형 문제’이다. 셋째와 넷째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업이 능동적으로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식점프가 일어나는 전형적인 방법인 것이다. 다만 탐험형 문제는 탐색형 문제에 비하여 훨씬 모험적인 목표에 의해 구성되는 문제로 기업의 사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3) 심리적 장벽 이해정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제부터는 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문제제기는 문제를 포착하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를 포착해 내는 것, 그것도 지식점프에 이를 정도의 문제를 포착해 내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다. 이를 방해하는 힘이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문제진입장벽이라고 부르자. 이는 문제를 찾지 못하거나 찾아도 들어가지 못하는 심리적 함정을 말한다. 문제진입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에는 대체로 네 가지 유형이 있다.첫째, 문제의식이 전혀 없어 문제가 있어도 문제로 보지 못하는 ‘심리적 무감각’이다. 둘째, 문제는 알지만 입을 닫고 있는, 의식적으로 문제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침묵’의 상태다. 셋째, ‘열등?우월함정’이다. 열등함정이란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에 자신이 없는 상태이다. 또 우울함정은 자신에 대한 우월의식이 너무 강하여 자신의 지식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제기를 용에서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하나는 구성원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제기에 열등감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자신감을 심어주고 지식을 공급하는 일이다. 앞서 말한 심리적 장벽(문제진입장벽)의 네 가지 유형을 극복하는 해결방안을 알아보도록 하자.첫째, 심리적 무감각의 극복방안이다. 심리적 무감각이 생겨나는 주된 이유는 구성원들이 조직의 문제에 주의집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자극이 없으면 사람들은 일상적인 업무에만 주의를 기울려 문제가 발생하여도 대수롭지 않아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문제의 포착이 일상 업무만큼이나 중대한 업무인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둘째, 침묵의 극복방안이다. 조직 내에서 침묵이 발생하는 이유는 임원급에 속한 사람들이 부하들에 대래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장시간에 걸쳐 정착되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노출시키기를 꺼려하는 침묵현상이 증가하게 된다. 이럴 때에는 조직 리더는 조직 안에서 권위주의적 발언을 금지하고 구성원들이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만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 침묵의 해결자는 조직 리더인데 침묵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조직 리더지만 침묵을 벗어나게 하는 것도 조직 리더의 열린 마음과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셋째, 열등함정의 극복방안이다. 열등함정은 실제로는 문제의 해결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평가절하 하여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것을 부수는 것은 구성원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자신감, 상호협력, 지식획득이다. 구성원들이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은 무모하기 때문에 상호협력을 해야 하며 선진국 기업들도 이루지 못한 고도의 생산성을 이룰 기술과 지식을 생성해 내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넷째, 실패공포의 극복방안이다. 실패공포는 절대적인 지식과 능력의 부족에서 오는 심리적 현상이다. 기존 지식의 양과 질로서는 문제해결을 할 수 없다는한다.
≪목차≫1. 들어가기2. 통념적 독립문에 대해서1) 독립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2) 독립문을 세운 단체, 독립협회에 대해서3. 우리는 독립문이 어떠한 것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1) 우리가 모르는 독립문이 세워진 배경2) 독립문을 세운 단체는 친일단체? 그 정체성에 대해서3) 다시 세우는 독립문에 대한 우리의 자세3.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1. 들어가기‘독립문’은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의 상징물이며, 사대외교를 청산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독립문은 자주독립 결의를 다짐하며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세워졌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울 19세기 말 자강운동의 한 기념물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통념 때문인지 ‘자유무역에 관한 농민들의 시위’나 ‘3ㆍ1절’과 같이 독립과 관련된 행사시에 사람들이 북적이기도 한다. 허나, 과연 독립문이 ‘독립’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건축물일까? 이 점에 대해 나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2. 통념적 독립문에 대해서1) 독립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살해하자, 이에 겁먹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하고(아관파천), 이어서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이 앞을 다투어 조선을 넘보기 시작한다.이때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미국에 망명해 있던 서재필이 1896년, 중추원 외부의 미국인 고문으로 귀국하면서 조직한 독립협회의 주도하에 국왕의 동의를 얻고 뜻있는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독립문을 완성하였다. 독립문 건립은 오래도록 계속되어 온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당시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던 일본, 러시아, 서구열강들의 간섭으로부터 탈피하여 영구 독립을 이루기 위한 상징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독립문은 독립협회의 공사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2) 독립문을 세운 단체, 독립협회에 대해서그럼, 독립협회는 어떠한 단체일까? 아관파천)으로 친일내각이 무너지고 친러내각이 성립되어 일본의 세력은 일단 견제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자주성은 크게 손상되었고 열강의 이권침탈은 더욱 심해졌다.이러한 상황에서 서재필 등은 자유 민주주의적 개혁사상을 민중에게 보급하고 국민의 힘으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1896년에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를 창간했다.‘독립신문’을 발간하여 민중계몽에 나선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 이승만, 윤치호 등이 적극 참여하였으며, 협회 발족 당시에는 이완용, 안경수 등 정부 요인들도 다수 참가하였다.독립협회는 근대 개혁사상을 지닌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도부를 이루고 열강의 침탈과 지배층의 수탈에 불만을 품은 도시 시민층이 주요 구성원이었다. 독립협회는 강연회와 토론회의 개최, 신문과 잡지의 발간 등을 통하여 민중에게 근대적 지식과 국권, 민권 사상을 고취하였다. 이로써 독립협회는 민중 속에 뿌리를 내려 광범한 사회계층의 지지를 받았고 민중에 기반을 둔 시민단체로 발전하였다.또한 자주국권운동, 자유민권운동, 국민참정권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를 개최하여 헌의 6조)를 결의함으로써 중추원을 개편하여 의회를 만들려고 하였다.그러나 시민의식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구식 입헌군주제의 실현을 목표로 하였기에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보수세력은 황국협회를 이용하여 독립협회를 탄압하였고 이로 인해 독립협회는 3년 만에 해산되고 말았다.3. 우리는 독립문이 어떠한 것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1) 우리가 모르는 독립문이 세워진 배경지금도 서울 서대문구 독립 공원 한가운데에 독립문이 우뚝 서있다. 사람들은 오며 가며 독립문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까? 돌이켜보면, 당시 조선이 나라를 부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독립국임이 분명한데, 도대체 '무슨 독립을 기념하고자' 독립문을 세웠을까?여기거’를, 청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뒤 일본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둔 점이다. 청이 청일전쟁에서 진 뒤, 일본의 강요로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약문에서 ‘조선에 대한 종주권 포기'를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독립협회가 감사한 ’하느님'은 일본인 셈이다. 이 점은 1898년 8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에 왔을 때, 독립협회가 그를 ‘한국의 독립에 큰 공이 있는 사람'이라고 극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이상의 사실에서 독립협회가 청으로부터의 조선독립과 이를 가능케 해준 일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함께 표한 것이 독립문의 ‘독립기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나라인데, 이때에는 무슨 이유로 조선의 독립을 원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1876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킨 뒤, 조선 침략을 두고 가장 대립한 나라는 청이었다. 당시 외세 의존적인 민씨 정권은 청의 힘을 빌려 권력을 유지하였고, 청은 종주권을 명분으로 민씨 정권을 보호해주면서 일본과 대립하였다. 청의 간섭만 아니면 당장에라도 조선을 먹을 수 있던 일본에게 청은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일본은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에도 조약의 제 1조에서 조선은 자주 독립국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따라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에게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도록 한 것은, 진정으로 조선의 독립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 동안 조선 침략에 눈엣가시였던 청을 제거하여 조선을 자기 뜻대로 주무르려는 데 그 속셈이 있었다. 독립협회는 이러한 일본의 간교한 술책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고마워하였던 것이다.그렇다면 독립협회는 왜 일본의 속셈을 깨닫지 못했을까?먼저 독립협회가 일본의 속셈을 깨닫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정치적 기반과 개화사상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협회의 대다수 구성원은 개항이후 보수 반동적인 민씨 정권과 근대화 문제를 두고 대립하였던 개화파의 후신이었다. 개화파에게는 자신들이 구상하는 개화정책을 추진하는데 민씨정권방식은 독립협회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때문에 이들은 일본의 침략 속셈에 스스로 장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독립협회의 많은 구성원이 한일병합을 전후하여 친일파로 변질되는 데서도 알 수 있다.2) 독립문을 세운 단체는 친일단체? 그 정체성에 대해서사람들은 ‘독립문’을 세운 ‘독립협회’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독립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허나 역사를 되짚어 ‘독립협회’가 생겼을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 단체가 누구를 위한 독립을 위해 세워졌는지 의아스러워진다.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를 보면 「한일병합이 있은 지 열흘 뒤 일본은 조선 침략에 공이 큰 자들에게 돈과 귀족 작위를 주었다. 일본의 은전을 받은 독립협회 회원은 김가진, 안경수, 이완용, 김종한, 민상호, 이근호 등이었다. 거의 모든 독립협회 간부들이 일본의 합방 공신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독립협회의 성격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라고 밝혀져 있다. 즉, 이 말은 독립협회의 대부분 사람들은 친일파였으며 독립협회는 절대 자주독립을 위한 대표적인 애국적 기관이 아니라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살펴보면 「서재필은 순수한 조선인임을 스스로 거부했다… 논설에는 ‘이토 히로부미는 당금 세계의 유명한 정치가요. 또 우리 대한 독립한 사업에 대공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 유람차로 오니, 정부와 인민에 각별히 후대하기를 바라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독립협회를 조직한 인물이 이런 논설을 하였는데 과연 독립협회를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만 바라 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여기서 독립협회에서 만든 독립문의 성격에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의 이순우) 기자의 기사)를 보면 「독립문의 앞뒤로 달려있는 편액은 과연 누가 쓴 것일까? 상당히 언짢은 일이겠지만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라는 주장이 사실인 것 같다.」라는 글로써 독립문이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상징이 아니라, 독립문은 중국과의 사대외교를 거부한 지식인들이 일본의 힘을 바탕으로 독립을 꾀하기 위해 만든 것이깨워 주는 역사의 산 교육장을 삼기 위해…」라는 말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서대문 형무소’와 위에서 밝힌 ‘독립문’이 같은 성격의 건축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한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외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보존한 것이지만 ‘독립문’은 한마디로 말하면 ‘친일세력의 잔존물’이다. 과연 이 두 건물들이 공존할 수 있을까? 독립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면 정부가 제작 당시 철저한 고찰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허나 정부는 그 건물들의 정확한 의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두 건물을 기념관으로 붙어놓았다. 매년 200백만의 국민이 이 건물들을 보고 간다. 정부는 지금 아주 잘못된 행동을 방치해 놓는 것이다. 간절히 독립을 바랬던 정부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나는 부끄러움을 감출수가 없다.또한 내가 ‘독립문’의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전에 ‘독립문’이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연인 즉 고가도로의 건설을 두고 독립문의 위치가 겹치게 되어서 독립문을 이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립문’에 대해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독립문’을 진정한 나라의 독립의 상징으로 보았으면 과연 그런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나 정부는 개발의 명목아래 진지한 고찰도 없이 이전시켜 버렸다. 나라의 지식인들이 이러니 과연 국민들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독립협회가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을 때 서양의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 민중을 깨우치는데 역사적으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에 이용당하면서 이름에 맞지 않게 진정한 독립에서 벗어나는 활동을 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 독립문은 다시는 타국에게 이리저리 이용당해 나라를 풍전등화로 만들지 말라는 역사의 교훈으로 우뚝 서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진정한 역사에 어두운 장님들이 아닐까? 이제 깨어날 때가 된 듯 하다.4.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나는 평소 과거사에 연다.
목차1. 들어가기2. 중국은 우리와 다르다?!(1) 거리(2) 자전거와 휴대폰(3) 내 것이 아닌 우리 것(4) 그 외의 모습3. 영화가 내게 던진 뜨거운 감자4. 나오기1. 들어가기중국은 만만디(慢慢地)의 나라다. 모든 일을 느긋하고 여유 있게 천천히 하라는 의미다. (반면에 게으름을 가리키기도 한다). ‘빨리빨리’가 떠오르는 우리나라의 추진력 있는(반면에 조급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민족성에 대비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말해주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만만디 정신으로 그들은 세계에서 제일 긴 성을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북경자전거’는 만만디였다. 진한 녹차 한잔을 마시며 반쯤 눈이 감긴, 나른한 오후 같은 영화였다. 느리고 조용한 듯하지만 예리한 시선과 끓어오르는 힘이 느껴졌다. 솔직히 이런 영화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본 중국영화들은 대부분 상업영화였기 때문에 잔잔한 이 영화에 선뜻 적응하지 못 했다. 이 영화는 그동안 내 눈을 잠식했던 수많은 무협, 홍콩느와르영화를 한 꺼풀 벗기고 진짜 중국을 보여주어 중국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이제껏 내가 영상매체를 통해 보았던 중국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거대하거나 희화화 되어 우스꽝스럽거나 비정하고도 비현실적인 홍콩마피아 영화들 속에서 정작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중국의 이런 소박하고 현실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그럼, ‘북경자전거’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감독은 현재의 중국을 군더더기 없이 묘사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재로 자전거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면 자전거를 통해서 우리가 영화에서 엿볼 수 있는 중국은 현실은 어떠한가?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삶을 꾸릴 수 있는 수단이자 자신이 북경에 존재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구웨이는 자전거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고 그러면 북경에 있을 이유가 사라진다. 또한 지안에게도 자전거는 또래 집단에 속하게 해주며 자신을 자아를 확인 시켜주는 사춘기 소년의 정체성이다. 이와 같이 북경자전거는 두 주인공의 자전거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에 따른 두 할 내가 느낌 점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기 전보다 중국에게 더 다가섰다고 자신한다.2. 중국은 우리와 다르다?!영화를 보며 느낀 바를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말해보도록 하겠다. 스치듯 지나치는 프레임을 중국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나의 시선으로 살펴 본 것이라 어이없을 정도로 단편적이고 얕디얕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중국을 좀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1) 거리거리에 자전거가 사람 수만큼 쏟아져서 깜짝 놀랐다.) 북경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영화 속에서는 자동차보다도 자전거가 더 많아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거대한 구름이 우르르 몰리듯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진풍경이다. 우리나라에 허울사진 ① 북경 시가지 모습좋은 자전거도로가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얼마 전에 나는 고장 나고 녹슬어 몇 년 째 타지 못했던 자전거를 고친 후 들뜬 마음으로 동네를 돈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곧 집으로 핸들을 돌려야 했다. 자전거 도로에 대해서 인식이 거의 없는지 사람들이 자전거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아 나는 요리조리 그들을 피하기에 바빴고 도로에 둔덕과 오르내리는 곳이 많아서 자전거 타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쌩쌩 페달을 밟으며 시원한 바람을 맞는 지안의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 지안처럼 도로에서 자전거로 달리면 자동차에게 생명을 위협을 몇 번이나 느끼게 될 것이다.사진 ② 자전거에 냉장고 싣고 가는 뒷모습또 하나의 경악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 아니, 자전거보다도 더 큰 짐이 뒤에 달린 안장에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나이 드신 분들도 여럿 싣고 가는 게 아닌가. 한두명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가득 자전거에 싣고 거리를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방송에 나올 정도로 신기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국 곡예단의 신기에 가까운 아는 질서가 있는지도 모른다. 또 자전거들이 아무렇게나 다니는 것 같은데 자전거신호등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나라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전거도로도 잘 정비되고 신호등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중국의 부산스러운 거리는 차도에는 차만, 인도에는 사람만이 다녀야 하는 우리나라 나름대로의 질서정연함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마지막으로 느낀 거리의 특이한 점은 곳곳에서 보이는 붉은색이다. 영화에서 보이는 중국의 간판이나 조명은 붉은색이 유난히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붉은색 택시)가 내 눈을 잡아끌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은 왜 이토록 붉은색을 좋아할까?사진 ④ 붉은색 택시들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 색이라고 해서 붉은색을 도외시했다. 붉은색이 사회주의 색이 된 것은 사회주의가 민중의 피(붉다)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본 만화에서 공산당을 빨간색이 덕지덕지 붙은 옷을 입은 악당으로 묘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사회주의자들을 공산당 아니면 빨갱이라고 부르면서 “공산당=붉은색”이라는 공식이 생겼고 우리는 대외적으로 붉은색을 쓰는 것을 꺼려했던 것 같다. 그럼,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붉은색을 좋아하는 걸까?누구나 어릴 때 붉은색 펜으로 이름을 쓰면 주위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것을 굉장히 터부시 했다. 나는 그것이 붉은색을 좋아할 수 없는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왜 붉은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고 한 것일까? 그것은 붉은색이 중국 황제의 색이므로 황제만이 붉은색으로 서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로부터 중화민족은 붉은색을 신성한 권위, 위엄, 삶, 환희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아울러 여전히 중국은 붉은색을 상서로움과 경사로움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라서가 아니라 위와 같은 이유로 중국은 행사나집단은 구성원들 나름의 의식, 가치, 규범, 세계관등을 공유하고 발전시킨다. 그리고 끈끈한 유대감을 위해 같은 취미나 패션, 소지품등을 나누기도 한다. 특히 사춘기 시절이나 학창시절에 또래집단에 소속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영화에 나오는 지안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전거가 필요하다. 중국 청소년 사이에서는 좋은 자전거를 갖고 있거나 자전거를 묘기 부릴 정도로 잘 타면 인기가 좋은가보다. 똑같이 우리나라도 또래집단이 발달되어 있지만 중국과 우리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우리 청소년들을 보면 같은 머리,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휴대폰이 없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된다고 한다. 휴대폰은 문자로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고, 비밀이야기를 나누는 매개체인 것이다. 좋은 휴대폰을 갖고 있으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진다. 또 휴대폰은 이성친구와의 소통에도 아주 중요하다. 중국의 자전거와 우리나라의 휴대폰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지안은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떼를 쓰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들켜서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다. 이처럼 우리 청소년들도 휴대폰 기기와 요금 때문에 부모님과의 불화가 심해졌는데)변화하는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 같다.다만 어떤 것이냐는 차이만 있을 뿐인데 그것은 청소년들 사이에 어떤 물건이 많고 요긴하게 쓰냐는 작은 차이인 것 같다. 맹목적인 열광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중국이 후에 휴대폰이 많이 보급되면 우리 청소년들처럼 휴대폰에 열광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사족으로 아직은 중국청소년들이 옷차림이나 머리스타일을 볼 때 더 개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똑같은 머리나 비슷한 옷차림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우리 청소년들을 하나같이 모습들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이런 말 하면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의 우서도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는 구웨이의 행동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누구에게 법적 소유권이 있을까?지안이 속아서 장물을 구입했다면 지안은 선의취득자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민법으로 이 경우를 살펴보면 지안은 법적책임이 전혀 없고 선의취득이기 때문에 자전거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된다. 또 구웨이가 지안에게 자전거를 되돌려 받고 싶다면 지안이 자전거를 구매한 가격을 변상하고 반환을 청구해야 한다.) 예상을 뒤엎고 법적으로는 지안에게 자격이 있었다.그럼, 둘은 왜 경찰서로 가서 잘잘못을 따지고 법적으로 해결하지 않았을까. 이는 감독의 영화적 장치로 이를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시골에서 올라온 구웨이와 가난하지만 북경이란 대도시의 학생인 지안이 농촌과 도시를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구웨이는 중국전통을, 지안은 현대중국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웨이와 지안의 공유는 이들이 상징하는 전통과 현대의 ‘공유’를 비유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에 자전거(정체성)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이득을 위해 자전거를 공유하게 되었다. 현실적인 계산만이 있을 뿐 다른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화해나 우정은 찾아볼 수 없다. 중간에 지안이 구웨이에게 손을 내밀며 이름을 물어보지만 화해라고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단지 이렇게까지 너와 얽히게 되었는데 통성명이나 하자는 심보가 아니었을까. 감독은 이 둘을 통해서 전통과 현대가 사랑으로 화합해야 한다기보다는 실질적 이해관계를 통해 같이 발전하고 살아가자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감독의 이런 의도적 장치를 떠나서 이런 식의 공유는 우리나라 6,70년대에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이런 ‘공유’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서울에서 저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당장 경찰서로 달려갈 거고 거기서 해결이 안 되면 법원까지 갈 것이다. 구웨이와 지안이 지금 서울에서 산다면 시골에서 막 올라온 구웨이는 자전거를 잃어야하고.
1. 들어가기오천년 동안 흘러 온 중국 역사에서 오직 열명의 인물과 열 가지 사건만을 추리는 것은 무척 망설여지고 벅찬 일이었다. 사건 또는 인물의 중요성과 시간의 순서에 구애 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주관으로 선택하고자 마음먹었는데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다.2. 은허의 발굴에서 천안문 사태까지은허의 발굴은 전설로만 존재했던 중국의 첫 국가의 실증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두었다. 분서갱유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점이 없잖아 있기에 선택하게 되었다. ‘분서는 춘추전국 각 나라 역사서와 신선사상인 환인과 고조선계통의 문헌을 불태운 것이고 갱유는 신선사상의 방사(道人) 및 그 문하생 460명을 매장한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엄청난 사건이다. 이유는 동이족의 춘추제국은 역사와 족보를 잃어버리고 고조선과의 유대관계가 단절 되고 그때부터 한(韓)민족은 대륙의 역사를 잃어버리며 한반도의 작은 나라로 왜곡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한 이유는 은(殷), 하(夏), 주(周)나라와 춘추전국까지 실질적으로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한(韓)민족의 환국과 고조선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록과 사상을 말살한 것이다. 이렇게 분서갱유로 인해서 한(韓)민족의 고대사는 사라지고 중국사에 편입되어 지금도 한(韓)민족의 고대사는 단절되었다.’ 라는 주장도 있으나 증명된 바는 없는 듯 하다. 아편전쟁부터 신해혁명까지 일련의 큰 사건들은 세계열강들에 의해 좌지우지 된 풍전등화에 놓인 중국이 태동하려고 발버둥치던 시기이자 사건들 사이에 서로 연관이 많이 되기에,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사태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상의 자유가 없던 암흑의 시기로 중국 현대사의 오점이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는 판단 아래 선택하였다.① 은허의 발굴은허는 은나라 후기의 도읍지로 중국 허난 성 북부의 안양 현 샤오툰 촌을 중심으로 하는 유적지이다. 1899년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거기에서 발굴된 갑골 문자를 거듭 연구함에 따라 유적지로 유명해졌다.은허는 1928년부터 1954년까지 여러 차례에 지불해야 될 배상금은 결국 백성들의 세금으로 마련되었고 청나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와 원망은 높아만 갔다. 이때 중국 남부 광동성에 홍인곤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떠돌이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랐다. 그러다 거리에서 선교하는 한 크리스트교 선교사의 설교에 이끌린 그는 큰 깨달음을 얻어 ‘상제회’라는 단체를 만든다. 상제회는 가장 높은 임금, 즉 상제인 여호와를 받드는 모임이라는 뜻이다.이때부터 그는 이름을 홍수전이라고 바꾸는데 그 이름의 전(全)자를 따로 떼어 보면 인간(人) 세상의 지배자(王 )라는 뜻이다.그의 교리는 크리스트교의 교리를 본받아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평등과 해방을 주장한 것으로 아편 전쟁 이후 청나라 재정이 어려움에 빠져 가난에 시달리자 하층민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전국적인 규모로 퍼져 나갔다. 만주족인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새 나라를 세우자는 새로운 사상을 앞세워 ‘태평천국’이라 하였다. 이 운동은 독자적인 군제 ? 관제를 갖추고 엄격한 종교적 계율 아래 아편 ? 도박 ? 전족의 금지 ? 남녀평등의 실시 ? 외국과의 대등한 친선 ? 토지 분배 등 사상 ? 종교 ? 사회 ? 경제의 모든 분야에 걸친 변혁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홍수전의 외침에 억눌리던 민중이 곧바로 따르게 되었고, 특히 일부 한족의 지지가 컸다. 1850년에 일어난 태평천국운동은 만주족에 저항하는 한족의 봉기였으며 사회 불평등에 저항한 민중의 항거이기도 하였다. 태평 천국군은 날로 그 세력을 넓혀 1853년에 난징을 ‘천경’이라 고치고 수도로 정하였다. 이미 비탈길로 들어선 청나라 조정은 태평천국의 세력을 누르기에도 힘이 벅찼다. 전 중국 대륙이 태평천국의 손에 떨어질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청나라의 위기를 도와서 일어난 것이 증국번, 이홍장 등이 이끄는 의병이었다. 태평천국이 이루고자 한 것은 서민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로 이는 대지주, 부유한 상인 등 지방 중심세력이던 향신층)에게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무능한대하여 마오쩌둥이 시작한 ‘권력 만회’ 투쟁이었다. 문화라는 이름이 위에 붙여져 있는 것은 먼저 부르주아적인 사상 ? 문화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문화혁명, 이것은 무엇이며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1949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쫓아내고 중국을 통일한 공산주의 국가 ‘중화 인민 공화국’. 그리고 중국 대륙 최고의 통치자로 모습을 드러낸 마오쩌둥. 그때의 중국은 성한 데가 없었다. 외국 자본 ? 제국주의자들의 수탈, 계속된 일본과의 전쟁, 가난, 국민당과 공산당의 투쟁 등 중국 민중은 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8억에 가까운 중국 인구의 허기진 배와 쇠퇴한 산업을 짧은 동안에 다시 일으킬 수는 없었다. 중공은 1958년부터 의 지도 아래 경제 건설을 위한 ‘대약진 운동)’을 펼쳤으나 순수 마르크스 레닌 사상에만 마음이 쏠린 마오쩌둥은 외국의 경제 도움을 모두 물리쳐 뒤떨어진 기술, 허술한 경제 바탕으로 ‘대약진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마오쩌둥은 이에 책임을 지고 국가 주석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뒤를 이어 류사오치)가 선출되었다. 류사오치의 정책은 마오쩌둥의 정책과 크게 달랐다.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정책이 중국인민의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공로를 인정하지만 중국이 더 이상 혼자 떨어져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중국은 더욱 세계에 뒤쳐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중국에게 필요한 자본은 자본주의 국가에게 빌려 올 수도 있고 기술도 배워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의 급진 사상과는 반대로 그는 현실적이고 온건한 타협 쪽으로 흘렀던 것이다. 이러한 류사오치의 정책은 당연히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급진 보수 세력의 큰 반발을 사게 된다. 하지만 류사오치 등 소위 수정주의 ‘실권파’는 의식적으로나 또는 조직적으로 마오쩌둥의 지시에 배반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들은 중국 경제 문제를 좀더 현실적으로 대처하려 한 것뿐이었다.1966년, 마오쩌둥은 공산당 전당 대회에서데 중국의 혼란기를 거쳤기에 선택하게 되었다.① 공자공자는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이며 교육가이고 정치가로, 이름은 구이고 자는 중니이다.유교를 창시하여 중국 ? 한국 ? 일본의 학문과 풍습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공자는 석가모니 ? 예수 그리스도 ? 소크라테스와 함께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자란 공자는 15세 때에 학문에 뜻을 두어 30세 때는 학문과 덕망이 높은 인물이 되었다. 노나라의 관리가 된 후 차츰 지위가 올라 50세 때에는 재상에 이르렀다.공자는 노나라의 주공을 훌륭한 정치가로 받들었다. 그래서 자기가 태어난 노나라에 폭력을 버리고 덕을 바탕으로 한 어진 정치를 펴고자 애썼다.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권력을 쥔 자들에게 쫓겨났다. 공자는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왕을 찾아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69세 때에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서 제자들 교육에 남은 생애를 바쳤다.그는 인을 덕의 으뜸으로 삼고 효도와 우애, 정성과 인정을 사람다움의 바탕으로 하여 예를 갖추어 실천에 옮기라고 하였다.공자의 가르침은 후에 그의 제자들이 모여 엮은 )에 실려 전해진다. 뒷날 맹자가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켰다.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중국의 전통적 도덕사상을 유교라 하고 그 바탕이 되는 학문을 유학이라 한다.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집안을 잘 다스린 뒤에라야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온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가르침이다.② 진시황제진시황제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과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국역사상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통일제국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폭군으로 부각되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전국 7웅( 한 · 위 · 초 · 연 · 조 ·제)에 의해 분열되어 서로 각축을 벌일 때인 기원전 259년에 태어난 그는 불과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나 초의 인물이 조조였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손자병법은 대부분 조조에 의해 정리된 것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 ‘손자병법’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조조병법’인 셈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조조의 우주론과 인간관이 잘 담겨있다. ‘조조병법’에 집약되어 있는 상징적인 병술은 한번씩 되뇌어 볼 만하다.‘땅과 하나가 되라’는 병술은 지형을 활용하는 자만이 승리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정보전에서 이기는 자가 마지막 승자’라는 말은 1800년 이라는 시차를 뛰어넘어 지금도 적용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과 함께 뜨고 함께 가라앉아라’는 전쟁터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다. ‘승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병술은 조조의 실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조조는 간신이 아니다. 탁월한 리더십과 철학을 가졌던 불세출의 영웅이다.진수가 정사 를 쓴 것이 서기 290년이다. 나관중이 소설 를 쓴 것은 1368년이다. 역사책이 나오고 1000년이 흐르면서 민간전승과 전설 등이 여기에 더해졌다. 그러면서 유비는 후덕한 영웅이고 조조는 권모술수가 능한 간웅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은 선한 영웅도, 악한 영웅도 없다.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난세를 열심히 살아갔던 ‘사람’일 뿐이다.중국의 런청진은 라는 책에서 조조가 정말로 간사하고 덕이 없는 인물이었다면 그의 주변에 그토록 많은 책사와 맹장들이 운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반문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조조에게 덕이 없던 것이 아니라 갖가지 ‘술수’를 사용했던 인물이라서 우리가 조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내 생각에도 나관중이 소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유비에 상반되는 인물로 조조를 그렸고 우리는 그 이미지에 아직까지도 조조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것을 뒤집어 조조를 재평가하여 그를 바로 보는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④ 두보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이라 불렸으며, 또 이백과 병칭하여 이두라고 일컫는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