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사진전 감상문역사의 거울 앞에서, 울고 웃다퓰리처상사진전2014.6.24.~ 9.14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최근에 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 한국사 공부를 하다 관련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시험이 끝난 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올해 퓰리처상사진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역사를 사진으로 본다는 생각에 흥미를 가지고 보러 갔다. 그동안 내가 공부했던 것이 글로 쓰인 지식 습득이였다면, 전시회는 사진 하나에 많은 역사 속 이야기를 풀어내고 더욱 생생한 역사 현장을 보여줘 눈과 귀와 마음이 즐거웠다. 전시 구성은 제 1,2전시실에는 세계사적으로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시대별로 진열돼 있었고 제 3전시실은 한국전쟁이 따로 특별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보통 전시회가 끝나갈 무렵에 사람이 많을 텐데 전시를 시작한 지 3주. 그리고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이 별로 없을 평일 낮에 미술관을 방문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미술관 앞은 기대감에 찬 관객들로 시끌법적했다. ‘퓰리처상’이라는 단어 자체의 위상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처럼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그 말 한 마디로도 ‘볼 만하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겨 멀리서도 온 사람이 많았으리라 생각됐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왜 이 사진들이 어떤 이유에서 퓰리처상을 받게 되었을까’라고 궁금했는데, 전시를 본 후에는 ‘ 이 사진을 찍은 기자들에게 이 상을 줄 수밖에 없구나.’하며 수긍이 갔고 이 사진을 남긴 작가들에게는 숭고함이 생겼다.사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사진이 그냥 그 때의 한 순간을 담은 장면이 아닌, 말을 하는 움직이는 동영상 같았다. 유독 전쟁 사진이 많았는데 전쟁 사진의 경우 보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사진 속 군인 혹은 노예, 어린아이, 도망치는 자들은 ‘이 전쟁을 말려주세요. 저를 살려 주세요.’하며 애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고통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되는 듯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관람하는 사람들 중에서 초등학생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책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배웠으리라. 하지만 사진전에서 현실은 우리가 일궈온 역사는 평화롭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가난, 질병, 전쟁의 희생으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사진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요? 세계는 평화로운가요?’, ‘전쟁이 계속되는 곳은 없지 않은가요?’, ‘어린아이들이 배고픔에 죽어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현대인들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눈앞의 이익을 쫒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산다. 그런데 이 사진전은 그런 우리들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무거우면서도 중요한 삶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듯 했다. 역사를 배우는 것과 이러한 사진들을 보는 것은 다시는 똑같은 아픔과 비극을 겪지 않도록 반성하기 위해서임 일 것이다.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일 것이다.사진전을 관람하는 내내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진이 가지는 힘은 진실성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 사진에 담긴 상황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긴 총대 앞에 인간의 존엄성을 잊은 채 언제 죽을지 모르고 일렬로 서있는 패전국의 포로들 사진을 보고는 소름이 돋았다. 사진 설명에는 사진을 찍은 기자는 사진 찍은 것이 발각되자 거짓으로 다른 필름을 넘겨주고 풀려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망쳤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목숨과 바꾼 기자의 용맹함이 그때의 순간들을 후세의 우리들도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단순한 글자가 아닌 진실로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진이 빛나는 것은 사진에 진실을 담기 위해 쏟았을 사진작가들의 희생과 사투도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란 걸 느꼈다. 911테러 당시 쌍둥이 빌딩이 터지는 순간의 사진들 역시, 언제 어디서 사건 사고가 터질지도 모르는데 찰나를 위해 평소에 얼마나 철저히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을 저널리스트의 사명감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폭파되기 직전의 사진 속 폭격기는 멈춰있지만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긴장감이 돌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모두가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숙연함이 돌았다.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암시하는 위력은 엄청났다.기억에 남는 웃음을 짓게 만드는 따뜻한 사진들도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케롤구지 작가가 찍은 여자 단체 육상 사진이다. 1등은 다른 나라가 했지만 퓰리처상을 받게 된 사진 속 여주인공들은 동메달은 딴 나이지리아 선수들이었다. 사진만 보면 그들의 환희와 기쁨은 단연 금메달을 받은 선수들로 착각할 만큼 행복해보였다. 물론 메달의 색으로 기쁨의 크기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얼싸안은 그들의 모습에서는 끈끈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고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듯 한 근육질의 건강한 몸은 긍정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하얀 이가 시원하게 드러나 보이는 웃음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할 만큼 유쾌했다. 해피바이러스라는 단어가 딱 어울렸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서는 결과보다도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구지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고, 진정한 올림픽 정신 또한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훈훈했다.
생활한복 시장현황과 대중화를 위한 방안현대에 접어들어 평상시에 우리나라 한국의 전통복식인 ‘한복(Hanbok)'을 입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통한복은 이제 명절이나 결혼식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나 입을 법한 예복의 존재가 되어 버렸고, 심지어 결혼식 때 처음으로 한복을 입어본다는 부부도 있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베트남의 많은 사람들은 전통복식인 ’아오자이‘를 일상생활에서 입고 있으며, 일본의 ’기모노‘도 대중화가 되어 있다.대다수의 사람들은 치마 길이가 땅에 끌리는 정도로 길고, 소매통이 넓으며, 저고리 길이도 팔을 들면 가슴이 보일 정도로 짧다는 점 등이 변화해 온 우리의 생활양식에 불편함을 준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통한복의 단점을 보완하여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바로 생활한복이다. ‘생활한복’은 우리의 전통복식을 대중에게 보다 쉽게 어필하고 더 나아가 세계화 시킬 수 있는 ‘업그레이드 의복’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활한복 시장이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왜 생활한복이 대중화되지 못하였는지 그 한계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0. 서론. 생활한복의 정의우리나라 전통복식인 ‘한복(hanbok)’은 우리 민족문화의 일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얼이 담긴 고유한 우리의 옷이다. 전통한복은 치마길이가 길고 소매통이 좁으며 저고리가 매우 짧아 비활동적이며,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의례복으로서의 역할만 간신히 이어지고 있다. ‘생활한복’은 예복이라는 축소된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복을 생활복의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전통 한복의 선을 살리면서 활동하기 편하도록 만든 옷으로 우리 옷의 멋과 실용성을 겸비한 것이다. 길고 폭이 넓은 치마를 땅에 끌리지 않게 짧고 폭이 좁게 하고, 옷고름은 매듭이나 단추로 그리고 대님 또한 매듭 처리로 입기 편하게 디자인하였다.가. ‘생활한복’ 용어의 정의‘생활한복’이란 용어는 ‘생활 속에서 편히 입도록 한 한복’이라는 의미로 90년대 중반부터 여러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여,작된다. 입거리 문화 운동을 전개해오던 뜻 있는 젊은이들의 ‘우리 옷 알고 지키기’ 차원에서 발전한 것이 바로 생활한복 브랜드의 시초이다. 60년대 이후 전통한복이 예복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함에 따라 우리의 것 한복을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부터 바로 ‘생활한복’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88년 올림픽 이후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뛰어난 민족의 정체성을 높이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외국에 대한 개방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민족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동시에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신토불이’나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와 같은 유행어도 바로 이 시기에 유행한 것들이다. 이후 우리나라에 닥친 ‘외환위기’는 근대화, 산업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여 고속 경제성장의 신화를 이루어 낸 국민에게 커다란 위기감을 주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원인을 정부정책이나 대기업의 잘못된 경영에만 두기보다 해외의 자본 탓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고, 이러한 시각은 반외세를 지향하는 민족주의를 팽배하게 하였다. 입거리 문화 운동에 참여했었던 소수 집단들로 시작된 연구소 또는 공방 제품 수준의 초기 생활한복은 전통문화에 대한 전 국민적인 감정 변화에 힘입어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급부상하게 된 생활한복 브랜드들을 ‘생활한복 1세대’라고 한다. 생활문화 연구소로 시작한 최초의 브랜드 ‘질경이’와 문구류 등의 생활용품 공급업체에서 출발한 ‘여럿이 함께’, 지역 문화 운동을 펼쳐오던 원주의 ‘새내’, 옷 입거리 연구회에서 출발한 ‘돌실나이’가 여기에 속한다. 대표자 혹은 디자이너가 대부분 386세대 학생운동권의 미술/의상 전공자 출신들로서 영세한 규모의 자본금과 사업장으로 시작하였다가 예견치 못한 사세 확장을 경험하며 생활한복의 기성복 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들이 선보인 생활한복은 예복의 수준에 머물렀던 전통한복이나, 드레스 형태의 한복과는 달리 일상생활 속에서 한복 착용을 대중화하기 위한 실용적인 옷이었다. 면, 마 등한복에 대한 인식은 나빠졌다. 그 결과 유명업체가 부도로 쓰러지고 생산업체가 위축되면서 생활한복 시장은 침체되었다. 급속한 팽창과 쇠퇴가 뒤이은 시기를 지나 지금은 몇 안 되는 브랜드들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생활한복’이라 불리었던 우리 옷은 다시금 도약할 수 있는 성숙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1) 전통한복과 생활한복의 비교) 전통한복원래 우리가 입던 전통한복은 저고리가 짧아 겨드랑이가 쉽게 보이고 소매통이 넓어 음식조리 시 옷에 묻는 불편함과 치마가 길어 걸을 때마다 끌리고 풍성하게 부풀어 있어서 화장실을 가거나 앉아서 일을 할 때 불편한 디자인이다. 옛날에 일하지 않고 도도하게 방에 가만히 앉아서 하인을 부릴 때 입었던 옷이기 때문에 일상생활뿐 아니라 행사나 명절에도 하루 입고 나면 힘들어 할 만큼 오늘날의 전통한복은 활동하는 데는 불편이 따른다.그러나 한복은 기본적으로 넉넉하게 지어 몸을 여유롭게 해주고, 몸을 가려준다는 점에서 서양의 옷과는 차이가 있다. 몸에 딱 맞게 지어 옷에 몸을 맞추어야 하는 서양 옷에 비해 한복은 몸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참 살이 옷이다. 넉넉함과 건강을 대표하는 것으로 한복은 섶, 직선진동, 사폭, 대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섶은 두루마기나 저고리를 여밀 때 앞에서 겹쳐지는 부분으로 아래로 가는 것이 안섶, 위로 오는 것이 겉섶이다. 위에서 아래로 넓어지는 옷감이 덧대진 것으로 옷을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넉넉함을 줄 수 있도록 해주며, 옷이 약간 줄어들더라도 속이 들여다보일 문제가 없다. 또한 맨 아래 모서리부분에 버선코를 닮은 섶코를 두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우리의 옷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지어진다. 따라서 팔과 몸판이 이어지는 부분인 진동을 서양의 옷처럼 몸 안쪽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하고 있다. 진동을 직선으로 하면 어깨 아래 가슴 부분에 주름이 잡혀 넉넉하고 편안함을 준다. 한복바지는 큰사폭, 작은사폭, 마루폭 등의 사폭을 붙여서 만드는 데 이것 또한 바지를 넉넉하고 편하게 하는 요소이다. 사폭은 바지를아라가야를 찾는 주 고객들 또한 천연 염색을 좋아하는 특정 마니아들로, 주로 주문제작을 통하여 한복을 구입한다. 면 소재로 만든 옷은 30만원, 실크의 경우는 120~200만원.(가) 코세르(02/737-6587)1993년에 문을 연 코세르는 인사동 생활 한복집의 터줏대감이다. 현대적인 2층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너무나도 고운 색상들의 한복들. 전통 한복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제작된 코세르의 한복은 고급스러울 뿐 아니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인사동을 방문했을 때 이 곳의 한복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코세르의 한복은 아름답다. 코세르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옷은 명주로 누빈 재킷과 양털 조끼, 그리고 양단 치마로, 일상복뿐 아니라 특별한 날에 입어도 손색이 없다. 한 벌의 가격은 90~100만원.(나) 가람(02/722-5592)양장에도 잘 어울리는 생활 한복이 많은 가람. 몇몇의 옷을 제외하고는 생활 한복이기보다는 한복의 선과 색상을 모티브로 한 일반복에 더 가깝다. 그래서 가람에는 늘 손님들로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2004년부터는 여성복 라인에서 치마보다는 바지에 더욱 주력해 한국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일상복을 만들어냈다. 또 가람에는 생활 한복과 잘 어울리는 가방, 브로치, 스카프 등의 액세서리들을 많을 갖추고 있다. 면 소재의 한복은 10~20만원, 명주나 실크의 경우는 60~70만원이다.(다) 파랑돌(02/720-6001)생활 한복과 외투를 주로 취급하는 파랑돌은 작은 매장에도 불구하고 마니아 고객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는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옷이 많다는 것이 이 집의 장점. 또 꼼꼼한 바느질과 좋은 소재를 사용하여 심플하면서도 유행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한복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겨울 옷은 100~140만원.(1) 일상복보다 더 편안한 생활 한복() 질경이(02/734-5934)1983년 명륜동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 처0세 이상의 여성 팔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복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의하면 한복을 입는 횟수는 1년에 2회가 30.1%로 가장 많았고, 1회가 28.6%, 3회가 13.5%의 순으로 나타나 평소에는 한복을 거의 입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복을 입는 용도는 결혼식이나 잔치 때 외출복으로 입거나(66.7%), ‘설날·추석 등 명절 옷으로 입는다’ (55.2%)고 대답했다.그러나 한복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 한다’(95.6%),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83.4%)’고 답해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그럼에도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활동하기 불편하다’(81.2%), ‘손질하기 어렵다’(71.4%), ‘맞춤을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다’(61.9%), ‘양복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60.6%) 등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다.정리해 보면 한복이 아름답고 멋있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입기에는 불편하다는 것이다. 전통 한복을 개량하여 생활한복으로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은 70년대부터 있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부터이다. ‘질경이 우리 옷’, ‘여럿이 함께’ 등 몇몇 업체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 옷 입기 운동’을 펼치면서부터 활동성과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생활한복’이 기성복으로써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현재는 30여개 이상의 생활한복 업체들이 획일화된 형식을 탈피, 품질 좋고 편안한 일상복으로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생활한복의 97년도 전체 시장규모는 300억 원 정도. 우리 것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맞물려 의류시장의 한 흐름을 형성할 만큼 생활한복이 우리 곁에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다.이러한 흐름에 대해 ‘우리 옷 달맞이’에서 홍보 일을 담당하는 심희수 씨는 “우리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우리의 전통적 흐름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대중에게 와 닿는 생활한복들이 많이 개발된 때문”이라고 말한다.작년에는 몇몇 초등학교가 가방 없이.
역대 정부별 발생한주요 노동운동의 발생원인, 경과, 특징2010년 1학기목차Ⅰ.서론 노동운동의 의미와 서론Ⅱ.본론1. 이승만 정권하의 노동운동2. 박정희 정권하의 노동운동▶대한조선공사 쟁의,▶전태일 열사의 분신 항의 투쟁▶신민당사 농성투쟁3. 전두환 정권하의 노동운동▶사북 동원탄좌 노동자들의 점거농성 투쟁▶구로 동맹 파업▶1987년 7·8월노동자대투쟁4. 노태우 정권하의 노동운동▶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의 구성과 노동법 개정 투쟁▶KBS 방송 민주화 투쟁▶5월 1일 총파업 투쟁5. 김영삼 정권하의 노동운동▶노동법 개악반대 총파업 투쟁6. 김대중 정권하의 노동운동▶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7. 노무현 정권하의 노동운동▶이랜드 파업Ⅲ.결론 요약 및 결론참고자료정부별 발생한 주요 노동운동의 발생원인, 경과, 특징Ⅰ서론‘노동운동이란’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창출 및 증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력의 상대적인 과잉화를 초래하여 산업예비군을 만들어 내고, 필연적으로 약자인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절대적 궁핍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자본축적에 따른 빈곤의 축적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항과 투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투쟁이 바로 노동운동이다. 즉,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일상적인 요구, 끊임없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 임금 등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기본목적으로 하면서, 크게는 노동자계급이 임금의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이러한 노동운동은 목적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생산자로서의 임금노동자들이 임금 등 노동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벌이는 노동조합운동. 둘째, 영국의 노동당과 같이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노동자 정당운동. 셋째, 로치데일의 소비조합운동과 같이 노동의 재생산(再生産)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전개하는 노동조합운동이 그것이다.‘정부별러나 회사측은 강경한 자세로 조정안을 거부하고 퇴장해 버렸다. 이에 대하여 금속노조는 회사측이 사태해결에 미온적이고 조직을 파괴하려 하다고 공개 비판하고 전국임시대의원대회 소집 및 총파업 등 전면적인 투쟁대책을 수립하기로 결의함과 동시에 전국 조직의 지원을 촉구하였다. 이러는 동안 정부는 쟁의발생 2개월이 지나도록 중재안 하나 제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파업이 장기화하여 외국에서 발주 받은 선박의 건조작업이 중단되는 사태를 빚게되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였다.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은 노동법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로써 노동조합은 파업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그러자 회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그 날, 16명의 노조간부를 해고하였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긴급조정권 발동에 따라 즉각 조정에 나섰고, 회사측은 부분적으로 작업을 재개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과 금속노조는 그간 회사측의 불법적인 장기간의 직장폐쇄와 노조간부 해고등 노동기본권 침해를 규탄하는 한편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여 쟁의권을 제약한 데 대해 강력히 비난하였다. 한편 9월 19일 정부로부터 긴급조정권 발동을 통보 받은 지부는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긴급조정에 응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조합원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던 중 소란이 벌어지고 3명의 조합원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9월 27일 중앙 노동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긴급조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중재에 회부하였다. 이 사이에 회사측은 조합원 사이에 벌어진 소란을 트집잡아 폭행 및 기물파괴, 명예회손 등의 혐의로 12명의 간부들을 고발하였고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구속하였다. 이에 금속노조는 긴급중앙위원회를 열어 회사측의 횡포를 비난하고 구속중인 노조간부의 즉시 석방과 쟁의기간 중 해고된 간부의 즉각 복직 등 4개항의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전국적 총파업도 불사하겟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의 매수에 넘어간 부지부장 노두홍은 10월 11일 일방적으로 쟁의를 취하하고 10월 16일자 조간신문에 회사와 공동명의로 ‘노 정문을 부수고 창문에 올라가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습격하였다. 이어 경찰들으 s당시 안에 있던 국회의원, 신민당원, 취재기자와 여공들을 가리지 않고 난타하며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이러한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100여명이 부상했고, 김경숙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특징YH 노동자 투쟁으로 국민들은 정권의 폭력에 분개했고, 정치상황은 10.26까지 그 긴장이 확대되어 유신정권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8월의 YH무역노동자들의 투쟁은 회사의 폐업반대에서 시작되어 야당인 신민당사 농성으로 발전하였으며 끝내는 유신정권을 몰락시킨 기폭제가 된 것이다.2. 전두환 정권 하의 노동운동11~12대 대통령. 1980. 9 ~ 1988. 280년대 전반기 노동운동은 정치적으로 보면 70년대 유신체제시대의 연장으로서의 1980년의 봄과 유신체제 계승자로서의 전두환 신군부정권 하에서 전개되었다. 이 시기의 국가권력은 잔혹한 폭력적 탄압에 이어 엄혹한 제도적 장치와 정책을 통해 노동운동을 억압하였다. 물론 80년 봄 짧은 기간동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유신체제의 붕괴위기에 따라 통제정책이 이완되고 노동자들이 제도상의 제약을 뛰어넘어 투쟁을 전개한 결과 이루어진 것이지 억압구조가 해체된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초 노동기본권을 원천봉쇄 해왔던 ‘국가보위법’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유신헌법도 그대로 살아 있었다. 더욱이 1980년 말 이후의 제도 정책상의 억압장치들은 사실상 노동운동을 질식시킬 만큼 전멱적이었다.▶ 사북 동원탄좌 노동자들의 점거농성 투쟁? 발생원인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국 각지로 번지던 4월 20일, 강원도 깊은 산골 사북에서는 광부들의 욕구가 폭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임금 인상과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을 벌인 끝에 경찰력을 물리치고 사북읍을 이틀 간이가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투쟁의 발단지는 동원타좌였다. 동원탄좌는 7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재벌의 모기업으로 전국채탄량의 9 %를 생산하는 국내최대이 투쟁은 대우자동차 투쟁과 달리 제조업 가운데 경공업, 중소기업 분야의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이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이 투쟁은 1950년대 이후 기업단위 노조가 주체가 되어 벌인 최초의 지역연대투쟁이었다. 노조들은 개별 사업장의 이해를 뛰어넘어 구호로만 외쳐지던 노동자의 연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연대투쟁은 각 노조가 파괴의 위기에 직면하여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기업별 노조차원의 충실한 일상활동과 지속적인 연대활동의 결과물이었다. 다음으로 ‘구속된 노조간부 석방’, ‘민주노조운동을 짓밟는 모든 노동악법의 철폐’,‘임금동결정책의 포기와 최저생계비 보장’ 등을 투쟁목표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초보적이나마 정치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특히 정치적 요구들이 소수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대중 조직의 틀을 바탕으로 노동자 대중의 요구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변화였다.또한 다른 부문의 민중운동에 각성을 촉구하면서 민중운동 내에서 노동운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다 분명히 하였다. 연대투쟁은 노동운동을 경제적인 투쟁으로 파악하는 시각, 단지 부문운동으로만 파악하는 시각 등 기존의 인식들을 바꾸는 계기를 이루었다. 또한 노동조합에 대해 법의 틀에 묶여 주어진 조건 속에서만 투쟁하는 조직체라는 인식을 타파함으로써, 기업별 노조라는 정책적 틀에 함몰되지 않고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을 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운동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7년 7·8월노동자대투쟁? 발생원인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 등 소위 3저 호황에 힘입은 경제성장은 1987년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국민경제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1987년 상반기까지도 노동자들은 생계비 이하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이로 인해 잔업, 야간노동, 휴일특근 등 장기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있던 노동자들은 지속된 호황으로 성장을 배분받을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정부의 노동정책은 그 이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부는 물리력에 의한 노동통제를 중심으 이에 KBS 사원들은 4월 13일 노조원만이 아니라 비노조원, 부장급 간부까지 포함된 3,500여 명이 참석해 ‘사원총회’를 열고 서기원 사장이 퇴진할 때까지 무기한 제작거부 및 밤샘농성을 계속키로 결의하였다. 이러한 KBS노조의 투쟁은 언노련과 전노협 등 노동단체는 물론이고 ‘방송민주화’를 지지하는 많은 시민단체와 각계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KBS의 투쟁은 4월 말로 접어들면서 울산의 현대중공업 파업 등과 맞물려 더 큰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와중에 김용갑 전 총무처 장관의 중재에 영향을 받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제작거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나, 4월 30일에 열린 비상사원총회는 이를 부결시켰다. 이에 정부는 즉각 대규모의 경찰을 투입하여 330여 명의 조합원을 연행하고 농성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노협이 총파업을 호소하고 나서고, MBC, CBS 노조 등이 동조 제작거부에 들어감으로써 KBS의 파업은 전체 언론노조 차원의 투쟁으로 비화되었다. 이에 정부는 5월 4일에는 수배중인 KBS노조 간부를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MBC에도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강경자세를 고수했지만, KBS노조도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제작거부를 계속해 나갔다. 이후 계속되는 투쟁에 한계를 느낀 KBS 비상대책위원회는 5월 11일 전국사원총회를 열고 5월 18일부로 제작에 복귀하여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민주화운동을 계속해 나가기로 결정함으로써 한 달 반에 걸친 KBS의 파업투쟁을 마무리하였다.? 특징KBS의 파업투쟁은 ‘방송민주화’운동과 언론노조운동으로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4월말의 현대중공업 파업과 5월 1일을 전후한 전노협이 주도하는 총파업으로 연결됨으로써 민자당 출범 이후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압박정책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5월 1일 총파업 투쟁? 발생원인전노협과 노동운동탄압에 대한 항의를 위해 전노협은 5.1절을 기해 전국적인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기로 하였다. 전노협은 이 투쟁의 방향을
인간이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이유우리는 평상시에 숨을 쉬고, 먹음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낀다. 살기 위해 숨을 쉬고, 먹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왜 그러한가는 정작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생물의 특징을 보면 체제를 갖추고, 물질대사를 하고, 생식과 생장을 하고, 자극과 반응을 하고, 적응과 진화를 하고, 그리고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인간이 숨을 쉬고 음식을 먹는 이유는 생물의 특징인 물질대사와 관련이 깊다고 본다. 물질대사는 생물체 내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분해나 합성과 같은 모든 물질적 변화를 말하는데, 모든 생물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을 흡수한다고 한다. 흡수한 물질들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기도 하고, 또는 물질을 분해하면서 그로부터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명활동의 근원인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숨을 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가스 교환을 통하여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호흡은 외호흡과 내호흡으로 구분 할 수 있는데, 외호흡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코나 입으로 숨 쉬는 것으로 보는 경우이고 내호흡은 세포호흡이라고도 하는데, 해당 작용, 크렙스 회로, 그리고 전자전단계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폐에서 받아들인 산소를 혈액속의 헤모글로빈이 세포내 미토콘드리아로 운반해주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를 이용하여 포도당과 같은 영양분을 분해시켜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이때 포도당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고 세포내 모든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생성되어 생물체의 기능이 유지 된다.이렇게 얻어진 유용한 에너지는 대부분 열에너지로 되어 우리 몸의 체온을 유지는 하는데 쓰인다. 그리고 나머지는 생체내의 물질을 합성시키거나 ATP의 화학에너지가 기계적 에너지로 조절해서 골격근의 수축과 이온에 의한 근육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ATP에서 에너지를 얻어 물질교환과 흡수를 하고 동물의 소화관에서의 양분흡수, 신장에서의 양분의 재흡수를 하는 능동 수송을 하기도 한다. 또한 소리를 내는데 이용되기도 하고 ATP에 축적된 화학에너지를 빛에너지로 전화시켜서 빛을 내는 등 여러 가지 생명 활동에 이용된다.우리가 숨을 쉬는 이유는 이러한 에너지를 얻기 위함도 있고, 또한 공기 중의 산소를 얻기 위함도 있다. 산소는 몸속에서 영양분을 태워 에너지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산소는 몸속에 들어가서 혈관을 타고 이동하면서 몸 속 각각의 기관에 공급된다. 이렇게 공급된 산소는 몸을 움직이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두뇌활동에 무엇보다 산소가 중요한데, 집중력이나 기억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뇌의 활동이 증가되어 뇌의 에너지 요구량이 증가한다. 이러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당질대사가 증가하게 되고 당질대사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따라서 산소요구량이 늘어나므로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 줄 필요가 있다. 이 외에 숙면, 피로회복, 피부미용, 숙취해소, 면연력 증가 등에 효과가 있어 산소는 인간이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여기서 짚고 넘어 가야 할 점은 호흡의 주된 목적은 산소를 얻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호흡의 주된 목적은 또 그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우리 몸에서 빨리 제거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격렬한 운동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흡이 빨라지는데 왜 그럴까? 이는 호흡의 조절중추인 연수가 자극을 받아 교감신경이 촉진되어 숨을 할딱할딱 쉬는 호흡항진이 일어나서 호흡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신속하게 이산화탄소를 혈액 내에서 제거하려는 목적이 있다.다음으로는 인간이 음식을 먹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 보자. 처음에 인간이 숨을 쉬는 궁극적인 이유가 삶의 근원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듯이, 음식을 먹는 이유 또한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물계의 에너지 생성과정은 태양 에너지부터 시작된다. 태양 에너지로 광합성을 하는 녹색식물이 최초로 에너지화 하는 과정을 거치면 포도당의 형태로 저장되게 된다. 이렇게 저장된 에너지는 초식동물에서 먹이로 제공되며, 이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먹이로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육식동물이 대형 육식동물에게 먹히는 먹이사슬의 순환을 겪게 된다. 여기서 스스로 에너지를 합성하는 광합성 생물류를 독립 영양생물이라 한다. 이에 비교되는 초식동물을 비롯한 섭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생물류를 종속 영양 생물이라 한다. 인간은 이 중 종속 영양생물에 속하는 생물이기 때문에 섭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에너지를 얻는 과정을 보게 되면 먹은 음식물은 소화계에서 분해되고, 음식으로부터 나온 양분은 내장을 나와 혈류와 세포로 이동된다. 세포에 도달하기 위해 양분은 세포막을 통과하게 되고, 세포 안에서는 세포질을 거쳐 미토콘드리아로 이동된다. 이 때 미토콘드리아는 음식물의 화학결합에 저장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ATP를 생산하게 되는데, 이 때 생성된 에너지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물학적인 일의 에너지원으로 쓰인다.섭식을 통해 섭취된 에너지의 절반은 체온을 조절하고 유지되는데 쓰이며 나머지 절반은 생물학적인 일을 하는데 쓰인다. 생물학적인 일은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대사과정을 뜻하는데 그 첫째는 생체막을 통한 물질의 수송이다. 생체의 기본 구조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세포는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포와 세포간의 물질 수송과 연락체계는 모두 다 이 세포막을 통해 일차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두 번째로는 근육을 움직여 운동을 하는데 에너지를 쓴다. 그 밖에 생물학적인 일은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질대사와 합성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세포의 상당수는 소멸되고 있으며 또 그만큼 새롭게 채워지고 있다. 피부의 상피세포는 일주일에 한번씩 떨어지고 또 새롭게 재생된다. 적혈구는 석 달마다 파괴되고 또 형성되어 그 수를 채운다. 이러한 세포의 사멸과 재생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는 물질대사를 통한 에너지와 합성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에 대한 경영 전략 제시서울 디자인 올림픽 이대로 좋은가?- SWOT 분석을 통한 서울 디자인 올림픽의 약점과 위협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경영 전략 제시서울 디자인 올림픽은 2010 세계디자인수도 지정을 계기로 서울시가 세계 디자인, 문화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마련한 세계인의 디자인 문화 종합 축제이다.디자인을 통해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도록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세계디자인수도의 첫 공식 지정도시로서 국제 디자인 행사이다.올해로 두 번째로 열린 2009 서울 디자인 올림픽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키고, 도시가 중심이 되어 디자인을 활용함으로써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잠실 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서울도심과 한강공원에서 열렸다.각종 여론과 주변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양지가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여기에선 서울 디자인 올림픽 운영에 있어 취약점을 짚어보고 비판적인 평가를 함으로써 바야흐로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더욱 성장 할 수 있는 전략 방안을 모색해보도록 하겠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의 swot 분석.① S (강점)무료 입장과 접근성 용이로 인해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참여 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3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또한 전시, 컨퍼런스, 공모전을 같이 진행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디자인 교류의 장을 만들 수 있었다. 디자인 소재의 참신함과 다양한 전시와 체험프로그램은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게 하고, 어린이, 가족 단위의 휴식공간으로 안성맞춤 이였다.② W (약점)그러나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주말에 찾아와 주중 관람객 수는 저조한 반면, 주말에는 인파가 몰려 혼잡하고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의 수용 인원에 있어 한계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체험 공간은 흥미로우나 사실상 어른들의 디자인 체험은 전시 구경으로만 그쳐야했다. 일부분 난해한 전시 작품 설명이나 행사의 진행에 있어 심층적인 질문을 했을 경우 대답을 디자인 작가에게 돌리거나 얼버무리는 등 축제 전문인력의 부족함이 보였다. 또한 ‘세계인의 디자인 문화 종합 축제’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내국인이 대부분이고 외국인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실정을 약점으로 들 수 있다.③ O (기회)디자인 올림픽의 가장 큰 기회는 단연 서울이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과 세계의 시선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홍보의 파급효과 또한 크다. 재원조성에 있어서도 많은 후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다른 나라 디자인 수도와 교류하여 축제의 폭을 넓히고 질을 높힐 수 있다.④ T (위협)서울이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것이 지금까지는 기회이지만 이는 또한 미래에 위협으로 다가 올 수 있다. 2010년이 지난 후 서울 디자인 올림픽의 브랜드 확립이 확고해 지지 않은 상태라면 단순히 외부에서 ‘이곳이 디자인 수도였다’라는 명목만 남을 뿐이다. 2010년이 지난 후의 디자인 올림픽 브랜드의 가치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swot 분석을 토대로한 경영 전략자신이 아픈 곳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듯이, 지금까지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진단해 보았다. 이제는 서울디자인 올림픽의 약점과 위협의 요소는 최소화 시키고 강점과 기회의 요소는 최대화 시킬 수 있는 경영전략을 모색해 보겠다.① 서울을 창조 도시로! 축제의 브랜드화 전략서울이 2010년 디자인 도시로 선정되었는데, 서울이 디자인 도시가 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우수한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서울 자체가 디자인 도시에 걸맞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스트랫포트의 셰익스피어 축제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라는 당위성이 있고, 보령의 머드 축제는 보령의 자연적 여건을 활용한 당위성이 있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는 이유가 서울에 창의적인 디자인이 많다거나 (건축, 공공재), 시민들이 특별히 창의적이라던가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많이 머문다는 등의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서울 자체가 창조도시가 되어야 한다. 노력할 수 있는 방안들로는 정부가 건물에서부터 전화부스 울타리 등 서울 도시의 경관을 새로 디자인 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 있다. 환경 그래픽(벽화) 활용이나 디자인 조형물의 설치, 거리와 상점 정비 등도 좋으나 이들은 실질적으로 규모가 크고 예산이 많이 든다. 그래서 필자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안은 우리 자신이 creative 계급이 되는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 자신이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고, 디자인을 일상 속에서 활용하며 즐길 줄 아는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면,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2012년이 지나서도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계속 받으며 브랜드 가치를 확립하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② 전문 인력 확충 및 프로그램 질 높이기정부나 지자체 중심의 축제 기획이나 개발은 그 유인력이나 매력도 창출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내가 십상이다. 브랜드로서의 방문가치를 갖는 축제의 기획을 위해서는 축제를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인력이 확보와 확충이 필요하다. 디자인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진행요원과 안내요원들의 디자인 올림픽의 성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이 이뤄줘야한다.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전략은 모든 축제의 성공 요소에 포함 될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디자인 올림픽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수한 디자이너의 작품 전시에서부터 신인 디자이너 발굴에도 게을리 하면 안될 것이다. 무료관람으로 올해 많은 관람객들이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찾았는데, 이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관람객 수로 축제를 평가하는 보여주기식 행정의 일부 일수도 있다. 그래서 일정한 요금을 받아 시민이 관람하는 동기의식을 높혀 프로그램의 질을 높힐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성공적인 축제는 또한 평소에 느낄 수 없는 일탈적 요소가 가미되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디자인 요소는 정적일 수 가 있다. 디자인만의 참신함을 살려 연출력을 강회해야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번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한 상상의 놀이터는 흥미롭고 일탈적이였음) 한가지 전략을 더 말하자면 장소의 변환을 들 수 있다. 1회 2회 다 종합 잠실 운동장에서 열렸는데, 디자인올림픽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 전문가는 “서울시 곳곳에 부스를 설치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쾌적한 환경에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보아 축제는 엑스포형태 행사가 아니고 꼭 전용행사장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장소의 확대를 꾀해도 좋을 것이다.③ 도시 이미지 확산 및 통합마지막 전략으로 서울이 디자인 도시라는 브랜드 가치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홍보 마케팅 전략을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