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카치오의 중 넷째날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고, 거기서 나타나는 근대적 사고들을 지적하시오.- 넷째 날에는 사랑이 불행한 결과로 끝나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이 사랑을 받고 베푸는 것의 정당성을 얘기하면서, 여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필리포 발투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일침을 가한다. 여자에 대해서 정열이 불타지 않는다면 오히려 애정결핍에 걸린 사람이라며 비난하였다. 이렇게 사랑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전제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첫 번째 이야기는 딸인 기스몬다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딸의 연인을 죽이게 된 탕그레디 공의 이야기 이다. 탕그레디 공은 딸을 너무 귀여워하고 있어서 항상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했지만, 딸은 부친에게 시중을 들고 있는 신분이 낮은 귀스카르도라는 청년에게 매혹되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아버지에게 들키게 되어, 아버지는 귀스카르도라는 청년을 감옥에 쳐 넣은 후 딸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서 믿었던 딸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기스몬다는 사랑하는 연인하는 연인에 대한 걱정으로 속으로는 슬픔에 잠겨 울 뻔했으나 곧 냉정함을 되찾고, 아버지가 젊었을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자신에게도 왕성하게 청춘의 힘이 솟아나 강렬한 사랑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귀스카르도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신분이 낮은 귀스카르도와의 연애를 못마땅한 아버지에게 인간들은 모두 똑같은 육체로 되어있으며 평등하게 태어났고, 이 평등함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탕그레디 공이 귀스카르도라를 죽여 그 심장을 기스몬다에게 보내니 기스몬다는 이 심장을 아버지가 주신 훌륭한 선물이라고 반어적으로 칭하며 죽음을 결심한다.아버지인 탕그레디공이 아무리 기스몬다의 연애를 막으려고 해도 인간의 본능으로 자연스러운 감정인 사랑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랑 기스몬다가 죽기전 아버지에게 받았던 자신의 연인의 심장을 ‘훌륭한 선물’이라며 반어라는 수사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도 근대적 사고의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두 번째 이야기는 수도사 알베르토의 이야기이다. 그는 겉으로는 수도복을 입고 금욕의 절제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겉모습에 불과하였고, 오히려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여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알베르토는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랑을 질리도록 늘어놓는 리제타 다 카 귀리노 라는 어리석은 부인을 만나자 자신을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속여 밤마다 그녀를 찾아가 쾌락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키게 되어 알베르토는 감옥에 처넣어져 죽어갔다. 그가 죄에 대한 벌을 받자 사람들은 앞으로 이러한 일을 저지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선인으로 가장하고 온갖 나쁜 일을 저질렀으며 그에 대한 댓가로 비참하게 죽는다.알베르토는 진실하고 금욕적일 것 같은 수도사지만, 역시 그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인간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줬다.알베르토 이야기에서는 인간이 이렇게 완벽하지 않고 많은 결점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였다. 또한 그에대한 대책으로 죄는 벌로써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에서 근대적 사고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천사라고 속여 여자를 꾀었던 알베르토의 우스꽝스러운 태도를 통해 그래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교훈을 얻기도 한 것 같다.셋째이야기는 세 사람의 청년들과 사랑해서 크레타 섬으로 도피를 한 세 자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의 환락을 맛보기 위해 여러 가지 물건들을 돈으로 바꾸어 크레타 섬으로 떠난다. 하지만 사랑을 불태우기 위해 떠난 섬에서 니네타를 사랑하고 있던 레스타뇨네가 되려 싫증을 느끼고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어 니네타의 질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분을 삭히지 못한 니네타는 레스타뇨네를 독약을 먹여 죽이게 되고, 여러 라고 볼 수 있다.넷째이야기는 직접 만나지 않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했지만 죽음이라는 결말로 끝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제르비노와 공주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제르비노는 공주가 시집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공주를 구하러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자신은 현재 사랑을 하고 있고, 당신들도 사랑을 했거나 앞으로 사랑을 할 사람이니 자신의 심정을 잘 알아 줄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약 승리하게 되서 자신이 공주를 얻게 되면 그 배에 있는 금은보화를 당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흥분하여 돌진하였다. 하지만 공주는 결국 적들에 의해 죽게 되고, 이에 분노가 폭발한 제르비노는 물불가리지 않고 싸워서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엔 서약을 어기는 국왕이라고 평판받기보다 손자를 잃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죽게 된다.나는 이 이야기에서 많은 근대적 사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싸움을 하러 나가기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 인간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내세워 그들을 설득하려 했던 점도,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면 배안에 있는 가득한 금은보화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마구 흥분했던 점도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과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낸 것 같다.여기에서 드러나는 완전히 실제적이고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통해 개인주의적인 근대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다섯째 날의 이야기는 리자베타라는 예쁜 누이동생을 둔 오빠들이 그녀의 연인을 죽이게 되는 이야기이다. 리자베타가 청년 로렌초와 사귀는 사실을 알게 된 오빠들은 누이동생의 수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를 죽일 모의를 한다. 몰래 로렌초를 죽이고 파묻은 후 리자베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하다가 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로렌초가 나타나서 자신이 어떻게 죽었고 어디에 묻혔는지 알려주었다. 그 끔직한 사실을 알게 된 리자베타는 로렌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두개골을 꽃리오토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어 사랑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안드레우올라가 어느 날 밤 괴물이 가브리오토를 빼앗아가는 불길한 꿈을 꾸고, 그와 만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만나고 싶어하는 그를 말릴 수 없어 결국 만나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가브리오토는 괴로운 듯하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안드레우올라는 그 순간 죽으려고 결심했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하녀의 충고를 듣고 체념하였다. 그의 시체를 들고 그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 경비원의 눈에 띄게 되서 붙잡히게 된다. 그녀가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내보내야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한 장관은 어이없게도 자신의 말을 들으면 석방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 이후로도 장관은 청혼을 해왔지만 그녀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가브리오토는 서민이 아닌 귀족의 형식으로 성대하게 엄숙히 묘지로 운반되어 갔다.이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안드레우올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애인을 죽이지 않았음에도 끌려갔고, 죄가 없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장관에게 농락을 당하고 그에 대항해야했다. 결국 그녀는 그 대항방법으로 수녀가 되는 길을 택한다. 이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발견하면서 사회와 개인의 갈등관계가 드러나게 되는 근대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야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꿈은 반드시 진실하다고 할 수 없으며 거짓이라고도 판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근대적사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일곱째 이야기는 샐비어 잎으로 입을 문질러서 불행한 일을 겪게 되는 시모나와 파스귀노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이다. 피렌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시모나와 같은 신분인 파스귀노는 서로 열렬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는데 조금도 진전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었다. 서로의 사랑 속에서 대담해지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버리고 부부의 언약을 맺게 된다.어버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같은 날에 죽은 연인들이라며 부러워했고 천한 인간들의 악의로부터 벗어나 저승에서 둘이 더욱이 행복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들은 서로를 정신적 사랑의 대상으로 여김과 동시에 성적 매력을 가진 이성으로서 서로를 바라보며 대담한 사랑을 나눈다. 이 부분에서 정신적 사랑 만큼이나 육체적인 성적인 욕구 만족을 중요시 하는 근대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시모나가 범인으로 몰리는 부분에서는 한 사람이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지목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범인으로 몰아가 결국엔 화형을 당하기 전까지 가게 되는 것은 허위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지막에서 시모나가 결국 죽게 될 때에는,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서 한번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죽는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인간의 유한성에대한 자각이라는 근대적 사고가 반영되어있던 것 같다.여덟 번째 이야기는 지롤라모와 살베스트라의 이야기이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서로 떨어져 있게 된다. 그러는 동안 살베스트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 지롤라모는 큰 비탄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녀의 침실로 들어가서 그녀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그녀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자, 비통함에 빠졌다. 그리고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자 정말로 숨이 끊어져 죽어버렸다. 그녀는 죽은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사랑의 감정이 일어 동정의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픔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그의 시체위에서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동정했다. 사실 나도 이이야기를 읽고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들었다. 둘의 사랑을 반대했던 부모님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만 떨어져 있어야만 했고, 그걸로 인해 둘의 사이는 멀어져서 그
라흐마니노프 (Sergej Wassiljewitsch Rachmaninow, 1873-1943)* 라흐마니노프의 생애러시아의 노브고로드(Nowgorod)주에 위치한 오네그(Oneg)에서 세르게이 바실리에비치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의 귀족이며 근위대의 대장이었던 부친과 교양이 높은 모친 사이에서 1873년 4월 1일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에게 4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나이 9세 때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그의 가족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사하고 라흐마니노프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12세 때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원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1885년 니콜라이 츠베레프(Nicolay Zverev)에게 피아노를 사사한다. 츠베레프는 매우 엄격한 선생이었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는 아침 6시부터 피아노 앞에 앉아야 했으며, 연습 외에도 때때로 다양한 연주회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 사이에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을 하였지만 츠베레프의 지나친 간섭과 불화로 자신의 사촌 형이며 피아니스트인 알렉산더 질로티(Alexander Ziloti)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함과 동시에 화성법과 작곡법을 아렌스키(Arensky)에게, 대위법을 타니예프(Taneyev)에게 배웠다. 그는 이미 그때부터 탁월한 피아니스트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1세부터 시작된 그의 창작세계는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기 전까지인 20대 초반까지 이미 여러 곡의 노래를 비롯한 소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시기에 작곡한 대부분의 소품들은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이며, 특히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해 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연탄곡으로 편곡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1892년에 작곡된 5곡의 환상적 소품 가운데 세 번째 곡인 “전주곡 c#단조”를 들 수 있으며, 이 작품은 후에 뉴욕에서 있었던 한 자선 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하여 백만달러를 모금하는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나이 24세 때인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손의 뛰어난 기교를 바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면은 피아노가 목관악기군과 더불어 꿈같은 대화를 펼치는 제 2악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협주곡에서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주관적인 선율과 오케스트라로 하여금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와 결부시켜 한 개인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를 밑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제 2번 협주곡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함과 처지를 피력하고,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1906년 그는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옮겨서 작곡과 연주에 몰두하였으며, 1909년에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을 작곡하였다. 그는 이 협주곡을 미국에서의 연주를 위해 작곡하였다고 말하였으며, 그 해 가을에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여 11월 28일 뉴욕에서 자신의 연주로 초연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피아니스트로서 미국 전역을 연주여행을 하며 원숙한 피아노 연주로 호평을 받았다. 제 3번 협주곡은 그의 제 2번 협주곡에서 음악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미 초연 당시부터 이 협주곡은 연주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제 2번 협주곡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더욱 강한 기술과 표현으로 극복하였다. 이 작품에서의 피아노 선율은 점점 전체 화성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의심할 수 없는 창조성과 본질로서 전체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는 바로 자신이 인생의 시작점에 서있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이 협주곡의 제 3악장에서 피아노의 선율은 점점 더 몰아치며 강해지고 웅장해지는 등 피아노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을 이끌어 내고 있다. 반면에 오케스트라는 짧은 응답과 더불어 선율을 모방하며 진행하는데, 이는 제 2번 협주곡에서 보여준 오케스트라의 모습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서유럽과 미국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라흐마니노프는 잠시 모스크바에서 음악생활을 하였지만 1917년 10월 혁명 이후 그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난다. 그는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파리와 드레스덴 그리고 스위스에서 잠시 동안 머물렀으며 1시된 코렐리라는 이름을 나중에 빼길 원했다. 이 작품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시종일관 죽음과 이별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살아왔던 생애를 피아노를 통하여 노래하고자 하는 인상을 갖게 한다. 이 같은 죽음과 이별을 느끼게 하는 테마는 그의 말년 작품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1934년 그는 스위스 여행길에 올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착상하고 같은 해 8월에 완성하여 11월에 스토코프스키의 지휘 아래 자신이 피아노 독주를 맡아 초연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뛰어난 기교와 아름다운 선율을 훌륭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1942년 초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연주회 일정을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1943년 2월 17일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병석에 눕고 곧이어 1943년 3월 28일 캘리포니아의 비버리 힐즈에서 세상을 떠났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세계라흐마니노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러시아 음악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대작곡가로 칭송받는다. 그는 독창적인 음악적 요소를 개척했고, 피아노곡 뿐만 아니라 관현악곡, 실내악곡, 성악곡의 분야에 걸쳐서 수많은 작품들을 작곡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라흐마니노프의 최고 걸작은 지금 소개하고자하는 피아노 협주곡일것이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있어서는 화려하고 피아니스틱한 효과 위에 선율의 풍부함과 사색적인 깊이가 가해지고, 그것을 꿰뚫는 농후한 러시아적 색채에 의하여 독자적인 음악성이 물씬 풍긴다. 그의 양식은 대부분 그가 배운 모스크바 음악원의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 피아노 기법의 원류를 찾으면, 많은 러시아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쇼팽과 리스트와 연관되는 점도 있으나, 오히려 직접적으로는 루빈스타인에서 차이코프스키로 이어지는 러시아 피아노 음악의 계통을 지녔다. 그와 같은 시대의 러시아 작곡가 중에서 스크라빈과 같은 급진적인 수법을 추구한 사람도 있고, 또 글라주노프처럼 국민주의적 아카데미즘의 경향을 지닌 인물도 있었지만, 그는 어아노, 플룻2, 오보에2, 클라리넷2, 파곳2, 호른4, 트럼펫2, 트럼본3, 튜바, 팀파니, 큰북, 심벌즈, 현악5부.- 연주시간 : 약 26분.- 제 1악장 (Moderato c단조 2/2박자)소나타 형식으로, 움직임이 적은 관현악과 기교적이고 화려한 독주 피아노를 대비시킨 차분한 악장이다.먼저 독주 피아노가 종과 같은 울림의 어둡고 장중한 화음을 8마디에 걸쳐 연주한다. 이것의 강도를 더해서 도입 악절이 끝나면, 피아노가 아르페지오(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를 계속하는데, 그러면 클라리넷과 현악기가 제1주제를 들려준다. 이것을 받아서 첼로가 주제를 중심으로 한 경과구를 진행시키고, 피아노는 여전히 아르페지오의 음형을 중심으로 계속하는데, 끝날 무렵에는 주제의 선율을 담당하고 있다. 템포를 빠르게 하고 그 끝에 격렬한 투티가 와서 제1주제를 마무리한다.제2주제는 달콤하고 센티멘탈한 감각에 넘친 것으로 가장 라흐마니노프적인 선율 중에 하나다. 비올라에 이끌려서 독주 피아노가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에피소드를 낀 제2주제가 변형되어 속도가 빨라지면, 금관 악기도 더해져서 제시부를 마친다.전개부에서는 목관과 비올라에 제1주제의 변형이 나타나고, 이에 얽혀 저음현에 새로운 음형이 제시된다. 이것은 도입 주제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개부에서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제 2악장 (Adagio sostenuto E장조 4/4박자)3부 형식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멋진 악장이다.약음기를 단 현과 클라리넷, 파곳, 호른에 의한 반음계적 구조의 서주로 개시되어 곧 피아노가 세잇단음의 분산 화음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 음형 위에 독주 플룻이 주요주제를 불고, 후반은 클라리넷에 이어받아져 애달프고 감미로운 선율을 연주해 간다.중간부는 주부에서 파생한 주제가 피아노로 노래되고, 파곳이 대비 선율을 연주한다. 이하 거의 피아노의 독무대로 동일 주제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 발전이 행해일컬어지는 유명한 선율이다.오보에와 비올라가 노래를 계속하여 독주 피아노로 되고, 템포를 빨리하여 팀파니의 트레몰로와 심벌즈를 배경으로 독주 피아노가 노래하면 템포가 다시 돌아와서 론도 주제가 변형되어 나타난다. 피우 모소 프레스토로써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거세지다가, 이내 속도를 떨어뜨려서 부주제를 재현하며, 최후에는 투티의 강주로써 높아졌다가 일단 조용해지고, 곧 격렬함과 강력함을 회복하여 호쾌하게 막을 내린다.제 2번에 이어 많이 연주되는 제 3번은 모든 면에서 제 2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자기 스타일을 확립한 라흐마니노프가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꼼꼼히 완성한 곡으로 세련된 수법을 볼 수 있는데 반면에 개성적 요소는 희미해진 느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개개의 아름다운 선율과 전체에 흐르는 달콤한 분위기와 러시아적 정서, 피아노 기교의 묘미는 이 곡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겠다. 1908년 러시아로 돌아온 라흐마니노프는 이듬해 미국 및 캐나다로 연주여행 하면서 보스턴 교향악단을 지휘한 이외에 각지에서 피아니스트로 출연하였는데 그 사이에 이 협주곡이 완성되었다. 이 곡은 작곡자 자신이 미국을 위해 작곡했다고 전한다.- 악기편성 : 독주 피아노, 플룻2, 오보에2, 클라리넷2, 파곳2, 트럼펫2, 호른4, 트럼본3, 팀파니, 큰북, 캐스터네츠, 탬버린, 심벌즈, 현악5부.- 연주시간 : 약 35분.- 제 1악장 (Allegro ma non tanto d단조 4/4)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다.현과 파곳에 의해 속삭이는 듯한 2마디의 전주로 인도되어 곧 피아노가 제1주제를 연주한다. 이것은 점차 발전하는데, 평탄하게 이어져가고 있다. 이윽고 주제는 관현악에 옮겨지고 피아노는 아르페지오에서 장식적인 음형으로 발전한다. 이어 클라리넷과 호른에 새로운 동기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나중에 발전해서 제2주제의 요소로 사용된다. 다음에는 피아노 독주만의 카덴짜가 삽입된 후, 다시 제1주제가 관현악으로 다루어져 서서히 가라앉아 일단락된다. 피아노가 악상을 반친다.
* 지붕위의 기병 (Le hussard Sur Le Toit)-대부분의 프랑스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존의 프랑스 영화가 다소 모호하고 차별화된 소재로 신선한 충격을 주곤 했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지붕위의 기병”은 전반적으로 대중성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엄한 스케일과 남녀 주인공의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충동적인 감정에 이끌려 여자를 범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지켜주려는 안젤로의 절제된 사랑이었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요즘,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두 남녀는 뜻하지 않은 동행을 하게 되면서 처음엔 순종적이지 않고 동등한 위치를 취하려 했던 뽈린느가 안젤로를 신뢰하고 점차 그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뽈린느는 외적으로 독립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고 강인한 내면의 소유자지만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은 여자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안젤로 역시 자신의 임무를 뒤로 하고 뽈린느를 끝까지 지켜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냉철한 이성만이 아닌 사랑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 사랑을 애써 감추려는 듯한 안젤로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뽈린느를 뒤에서 말없이 지켜주는 것이다. 표현하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랑이기에 더욱 순수하고도 애틋한 사랑이다.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콜레라로 죽어가는 뽈린느를 필사적으로 구해내려는 안젤로의 모습이었다. 안젤로가 감춰온 사랑을 표출하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두 연인의 위대한 사랑이 더욱 부각되었다. 그리고 안젤로가 그를 쫓는 사람들을 피해 지붕 위를 전전하다 미끄러져 쓰러졌을 때, 죽은 줄 알고 날아든 독수리에게 “아직은 안 죽었어”라고 말한 장면은 보도사진작가 Kevin Carter가 찍은 를 떠올리게 했다. 극심한 기아로 엎드려 있는 한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섬뜩한 독수리의 모습이 담겨진 사진이다.그리고 후반부에서 뽈린느를 이해하고 미련 없이 그녀를 보내주겠다고 다짐하는 후작의 나래이션을 통해 뽈린느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기술]2. 현대 사회에서 인격의 성숙도는 어떻게 가늠되며, 인격 형성과 사랑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이 책에서는 사랑을 관념적인 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천부적인 능력도 아닌 훈련과 인내와 습득이 필요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만일 내가 여지껏 사랑을 감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사랑과 인격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랑이 인내와 습득이 필요한 과정이라면 인격과 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현대 사회의 인격의 성숙도는 어떻게 가늠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프롬은 인간의 성격 및 경향을 일컫는 인격은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가치가 대부분 경제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은 개별성의 말살과 자발성의 배제로 수동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즉 사회분위기에 영향으로 형성된 현대사회에서의 인격을 비생산적 정향 혹은 시장 지향 형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남에 의해 평가되어지는 것에 중점을 두어 자기는 물론 남들도 물품으로 여기게 되며 교환가치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공급에만 의존하게 되며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20세기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훈련화 되며 엄격하고 규격화된 일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순응하는 수동적 형태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요구 되었다. 요즘은 다시 또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창조성이 있으며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인격을 선호하고 지향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인격은 이렇게 변화함으로써 그 성숙도의 기준 또한 시대에 따라 혹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변하지만, 프롬에게서 본다면 현대사회의 인격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기준은 사랑에 있어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행동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대체 인격과 사랑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해 사랑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첫째 현대인이라 불리 우는 우리들에게 프롬이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토대가 개인의 독립적 존재를 바탕으로 한 타인과의 만남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인간이 하나의 독립체가 되기 위해서는 '분리'의 과정을 잘 극복해 나가야한다.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극복하기가 힘이 드는데, 예를 들면 자녀를 제 품속에 두려고 하기만 하지 자녀 스스로가 자신의 실존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프롬은 자녀에 대해 온전히 실존하는 한 인간으로 바라 보아야 하는 것에 관하여 참으로 우리 내면 깊이까지 들어가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프롬은 '분리' 즉 인간의 홀로서기에 대하여 명확한 뒷받침을 하고 있다.두 번째로 사회가 개개인의 인격에 영향을 주었듯이 인격도 사랑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동적으로 수용하기만하는 수용적 정향을 가진 사람의 경우 수동적으로 사랑이 오기만을 기다리거나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결코 사랑에 있어서 성숙하다고 할 수 없다. 즉 이러한 성향을 버리고 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만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변신]4. 그레고르의 체험을 의사소통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논의해 보자.-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있다면 어떨까. 먼저 그 징그러운 모습에 당황하겠지만, 역시 가장 괴로운 것은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자신이 왜 벌레의 형상을 하게 되었는지, 그렇게 된 자신의 행동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지, 질문도 변명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를 통해서도 이러한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나타나는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에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변신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벌레여서 자신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단정 짓고는 그와 가족들 간의 대화가 차단되고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신경 쓰지 않으며, 그의 감정을 무시해버린다. 처음에 그레고르에게 동정적이었던 누이동생이 음식을 갖다 주지만, 그 음식은 그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아 먹지 못한다.이러한 상황을 누이동생에게 알리려고 하지만 누이동생과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져 간다. 하지만 그가 집안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가족들을 놀라게 하자, 결국 여동생의 태도는 돌변해서 그레고르를 오빠가 아닌 괴물이라고 주장하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괴물이 부모님을 죽일 것이라고 하며 그레고르를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혹시나 그레고르가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여동생은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지어버린다. 그레고르는 변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괴물로 취급되며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만다.이러한 상황에서 더해져만 가는 그에 대한 가족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소외감과 고독감이 느껴졌다. 그는 변해버린 가족들과 화해하려고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혼자만의 웅얼거림 일뿐 가족들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할 수 없는 막막함. 가장 서로를 이해해 주어야하는 가족과의 대화조차도 할 수 없었기에 그는 더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 그를 쓸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의 의사소통 단절과도 관련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어떤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란 존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이며, 또 내 가족에게 나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가까운 사람들마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나와 의사소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무런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다면 과연 나란 존재는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현대 사회가 인간을 그리고 가족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 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