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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nces울타리
    울타리가 빚어낸 영웅의 탄생August Wilson의 Fences모든 장르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작가의 의도 및 압축적인 장치로서의 제목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다. 오거스트 윌슨(August Wilson)의 주요 작품 중에 하나인 『울타리』(Fences) 역시 암울했던 흑인 역사의 굴레를 표면화 시킨 상징적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트로이의(Troy) 울타리는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서 인물들의 내면을 토해내는 가시적 존재인 셈이다. 울타리로 둘러 쌓인 작은 영역에서의 특정 인물들 간의 대화는 시공간이 지닌 한계를 초월하고 동시에 상당한 이미지를 생성시켜 극의 단순성을 보완하고 있다.작품이 시작되면 건장한 외양을 지닌 트로이가 등장한다. 오랜 친구사이였던 보노(Bono)도 그를 추종하리만큼 그는 강한 파워를 지닌 듯하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가장 추악한 밑바닥의 때를 수거하고 벗겨내는 청소부이다. 하지만 자신의 울타리 영역으로 들어오면 그는 본능적인 파괴력으로 가족들을 군림시킨다. 트로이의 장황한 대사들은 그를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만들어 놓지만 그 때마다 부인 로즈(Rose)는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고 이야기한다. 보노 역시 트로이가 거짓말을 그만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는 더욱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서술한다. 디오니소스가 빚어낸 술은 트로이에게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반면인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더 이상 정착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53세 이지만 아직도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았던 어두운 과거의 기억 속에 사로 잡혀 라이언즈(Lyons)와 코리(Cory)의 울타리를 비뚤어진 부권으로 무너뜨려 놓는다.트로이의 가정에는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자와 울타리를 지키려는 자의 불편한 동거가 줄곧 지속된다. 오직 생계를 부양하는 것 이외엔 어떠한 신경도 쓰지 않고, 술과 노래를 도구 삼아 단편적 기억 속에서 거짓 통증을 외쳐대며 살아가는 남편과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자신들의 꿈을 만들어 가려 하지만 늘 방황하는 두 아들 그리고 전쟁의 상처로 불구가 되어버린 가브리엘(Gabriel)의 생활을 신경써야하는 유일한 인물이 로즈라는 분명한 설정은 종속적이고 열등한 주체로서의 여성의 역사에 비극성을 더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울타리 내부는 외부보다 더욱 위협적이고 잔혹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로즈가 왜 울타리 쌓기를 원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트로이와 코리에게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울타리를 쌓고...다른 사람들은 안에 있게 하려고 담장을 쌓는다구.”(Some people build fences to keep people out...and other people build fences hold on to you all.)라며 보노는 로즈의 내면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대변한다.매일 일과 술집을 드나들며 울타리 밖으로 떠도는 트로이에 대한 분노와 걱정은 로즈에게는 일상이며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염원이다. 그러나 결국 외도로 인한 트로이의 부정행위와 새 생명의 탄생은 울타리를 지키려했으나 18년간 갇혀 왔던 로즈의 침묵이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도록 한다. 그녀의 발걸음은 결국 울타리를 넘어 서게 된다. 창문을 통해서 외부의 상황을 감시하고 염탐하는 ‘창문형 인간’(창문이라는 틀 안에서만 보여지는 제한적인 상황만을 인식하는 인간을 의미)이 아닌 직접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 노출된다. 로즈에게 놓인 잔인한 현실에서 오히려 그녀는 더욱 견고해지고 강력해진다. 로즈는 “지금부터...이 아이는 엄마를 얻게 되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가 되었어요.”(From now on...this child got a mother. But you a womanless man.)라고 트로이에게 말하며 부인이기를 포기한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부권에 종속된 여성의 꼬리표를 떼고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독립과 탄생을 선언했음을 의미한다. 주머니에 늘 주급 봉투와 한 손엔 술병을 들고 울타리 위에서 외줄을 타듯 안절부절 못했던 트로이와 달리 로즈는 남편의 외도로 낳은 아이를 받아들이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독후감/창작| 2021.03.10| 3페이지| 2,5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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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어두운 욕망 잔혹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본드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를 중심으로
    인간의 어두운 욕망, “잔혹성”에 대한 고찰:윌리엄 셰익스피어의『리어왕』과 에드워드 본드의『리어』를 중심으로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와 본드(Edward Bond)는 여전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대영 제국 과거의 위상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영국인들의 내재적 욕망 위에 서 있는 작가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혀 다른 시대와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온 그들이지만 셰익스피어와 본드를 이어주는『리어』(Lear)의 탄생은 수 세기의 간극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긴밀하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리어왕』(King Lear)은 매우 훌륭하고 저력 있는 작품이지만 현대판 독자 혹은 관객들에게 과거 시대의 인물과 상황들을 공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본드는 “왕”이라는 타이틀을 의도적으로 과감히 생략하여 리어라는 인물과 독자 혹은 관객간의 거리를 좁히려 하고 있다. 리어라는 가공의 인물이 더 이상 근접할 수 없는 높은 위상의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 혹은 독자들에게 ‘근거리 두기’ 설정을 하게 하여 ‘수직의 시선’에서 ‘수평의 시선’으로 바꾸게끔 유도한다. 이와 같은 시선의 방향 전환은 누구나 한번 쯤 자신이 지닌 내부의 일부를 떼어서 리어에 덧입혀 보거나 혹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을 투사하여 심연에 감춰진 본연의 자아를 찾는 환상의 시발점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관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셰익스피어와 본드가 전혀 다른 시대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인생을 구축했다는 점은 매우 분명하고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인생의 일부를 결코 적지 않게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시킨다는 점은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와 본드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들은 매우 상이할 수밖엔 없다. 그러나 분명 그들이 한 사회와 시대를 형성하는 작은 개체라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그들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구조나 사건을 전개해나가한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인간에게 내재된 악의 기원과 본성 그리고 파괴적인 운명의 존재를 파헤치려한다. 이런 역경의 과정 속에서 야기되는 혼란, 무질서, 이념의 전복, 불확실성 등의 모든 예기치 않은 상황들을 수용하고 동시에 해체하는 이중 작업은 인간의 숨은 욕망과 만나게 된다. 결국 야누스의 얼굴을 한 인간의 욕망은 이런 구조를 통하여 세상 혹은 인간이 최소한 인식하고 있는 틈새 사이에서도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본드는 리어라는 대상을 통해 내재되어 결코 볼 수 없었던 욕망의 잔상들을 관객 혹은 독자들에게 경험하도록 한다.셰익스피어와 본드는 작중 인물들에게 다양한 가면을 제공한다. 가면이라는 장치가 인간의 본심이나 본성을 감추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꾸며 언행을 유도하는 위장(disguise)의 어휘와 동일한 힘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guise'는 평상시와는 다른 가장된 겉모습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어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눈에 드러나는 상황과 모습들이 결코 참일 수만은 없다.리어왕. 아니, 너는 이런 극한의 날씨에 옷을 입지 않은 체 있는 것 보단 무덤 속에 있는게 낫겠구나. 인간이 이보다 더 나아야 하지 않겠느냐? 저 사람을 자세히 보아라. 너는벌레에서 어떤 비단도, 짐승에게서 가죽도, 양에게선 털도, 고양이에게서 향내도 얻 지 못했구나. 아하, 여기 우리 세 사람은 세련되게 옷을 입었는데, 너는 본래 그 자 체구나.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너처럼 비참하고 벌거벗은 두 발 달린 짐승에 지나 지 않는다. 벗어라, 벗어 버리자. 빌린 것들을. 단추를 풀어 버리자.(자신의 옷을 찢으며)LEAR. Why, thou wert better in a grave than to answer with thy uncovered body this extremity of the skies. Is man no more than this? Consider him well. Thou ow'st 죽이게 될 장본인 맥베스의 새로운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다.본드의 『리어』에서도 새로운 위장술 혹은 다양한 가면들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덤을 파는 일꾼의 아들이자 코델리아의 남편이었던 청년이 죽어 유령으로 재등장한다. 이런 유령의 설정은 모든 것으로부터 패배한 리어에게 실제로 소멸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완벽한 가면이 된다. 오직 리어만이 유령을 볼 수 있고, 유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어가 두 눈을 모두 잃어 앞을 철저히 볼 수 없는 실명이 된 상태에서도 유령을 볼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설정은 변함이 없다. 즉, 유령은 리어에게 있어서 자신이 만들어 낸 철저한 위장술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작품에서 인물들은 보이지 않은 위선으로 위장한 외부 세계와 맞서 대항할 수 있는 정당한 밑바탕을 가면이라는 장치로 재포장한다. 그러나 감추면 감출수록, 위장하면 위장할수록 인물의 내적 욕망은 더욱 잔인하고 비참하게 노출된다. 광기나 음모 혹은 결코 끝날 수 없는 승패, 피로 얼룩진 죽음 등은 완벽한 위장술이 만들어낸 인간의 내적 욕망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와 본드는 인간의 내부를 표출시키기 위해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무엇보다 먼저 셰익스피어와 본드의 계속된 욕망을 탐색하는 가운데에 본드의 리어를 현 시점으로 가정해보겠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셰익스피어의 리어는 과거의 시점 속에 머물게 된다.두 작가의 작품 완성 시기를 고려했을 때 이미 수 세기라는 너무 커다란 간극이 발생한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거의 리어와 현재의 리어는 전혀 개선된 점이 없다. 오히려 그의 독단적인 성향은 자신이 쌓아 올린 성벽만큼이나 더욱 높아졌으며, 그의 광기는 무대 위에 수많은 전쟁과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결코 마르지 않은 피로 가득 찬 우물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과거의 리어가 보여주었던 광기 이전의 모습조차도 현재의 리어의 지나친 폭력으로 인해re not ourselves when nature, being oppressed, commands the mind to suffer with the body)(2:2:296-298)라며 자신이 보여 지는 것들은 거친 행동이나 언어들은 광기가 아닌 단지 급한 성질(more headier will)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친 들판에서 보여 지던 리어왕의 포효 혹은 광대와의 말장난을 주고받는 행위는 그에게 잔인한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일종의 ‘난폭한 광대놀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도적 놀이 속에서 리어왕은 자신의 분노와 내재적 폭발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탈피하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리어는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순 없게 된다. 리어가 죽고 난후 에드거는 그를 기리며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볼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오래 살 수도 없을 것이야.”(We that are young shall never see so much, nor live so long.)(5:3:324-325)라고 말하며 막이 내려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두려움은 에드거와 같은 젊은이들에게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에드거 역시 리어의 모습과 꼭 닮은 노인이 되었을 때, 에드거가 보여줄 죽음으로부터의 몸부림은 리어왕이 작품 내내 보여주었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을 것이며 이것은 바로 인간의 숙명과 직결된다. 또한 생존하고 싶은 욕망의 불꽃은 무자비한 피나 혹은 잔인한 살육이 자행될지라도 결코 꺼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 철저히 감추어둔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본드의『리어』에서는 리어왕이 결코 다 보여주지 못했던 처참히 짓밟힌 잔혹의 잔상들을 더욱더 과격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내고 있는 리어왕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는 있으나 아직은 죽음의 그림자가 멀리 있기 때문에 거친 폭풍 속에서도 꽤 오랜 시간 견딜 만한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본드의 리어에게는 결코 리어왕만큼 생존 전략을 짤 만큼의 시을 더욱 과시하기 위해 왜 그토록 많은 죄를 저질러야하는지에 대한 햄릿의 질타인 셈이다. 이는 결코 클로디어스에게 국한된 메시지가 아닌 본드의 리어에게도 적용되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리어가 자신이 지닌 권력을 위협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무고한 약자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룩한 피의 성벽은 결과적으로 죽음, 반역으로 인한 두려움의 맥락으로 귀결된다. 즉, 리어왕이 서서히 변모하며 보여 지던 두려움의 극대화와 달리 리어는 성벽 속에서 자신의 내적 욕망과 그로 인한 극도의 공포를 타인들의 희생과 피로 처음부터 이미 실행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초반부의 리어와 마지막에서 보여 지는 리어는 피폐해진 신체만큼이나 정신세계 역시 매우 달라져있다. 그토록 자신과 그 권력 그리고 딸들을 지키기 위해서 고수해 왔던 성벽이 결과적으로 리어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성벽에 대한 집착으로 권력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으며, 죽은 딸의 해체 된 내장까지 지켜보아야 했고, 두 눈마저 잃어 앞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불구자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을 잃고서야 리어는 성벽을 부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성벽 쌓기는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고, 또 다른 절대 강자는 리어가 걸어온 똑같은 역할 놀이를 되풀이 할 뿐이다.인물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다양한 가면을 쓴다. 셰익스피어와 본드의 주요 인물인 한 때 절대 강자였던 리어왕과 리어의 추락하는 욕망을 지금까지 보았다면, 그들을 둘러싼 여인들의 살아남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된 더욱 잔인한 전략은 기존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적인 여성성을 과감하게 없애야만 가능해진다. 남성 중심의 세력이 팽배하다는 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과 같다. ‘부권 살해’를 통해서만이 여성은 자유로울 수 있고, 절대적 힘을 갈취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의 반란은 사회가 금기시하는 영역의 경계를 위협하고 허물어서 ‘반사회’를 .
    인문/어학| 2015.09.10| 11페이지| 4,000원| 조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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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로가는기사들(riders to the sea)
    바다의 양면성: 죽음의 바다 그러나 탄생의 바다John Millington Synge 의 Riders to the SeaJ. M. Synge의『바다로 가는 기수들』(Riders to the Sea)은 바다를 생계 목적의 주요한 수단으로 살아가는 섬마을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 또한 그들에게 바다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해결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출입해야 하는 절대적인 통로인 것이다. 마치 태아가 엄마 자궁 안에서 몸이 형성되어지고, 하나의 완전체로 탄생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바다는 곧 양수였듯이 말이다. 섬마을 사람들에게 바다는 그렇게 삶을 이어가고, 좀 더 풍요롭고 완전한 현실을 동경하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 그러나 분명 한 것은 바다가 그들의 삶을 지탱하게끔 하지만 그들의 삶을 처절히 짓밟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바다가 지닌 극단적인 양면성을『바다로 가는 기수들』에서는 모리아(Mauria)라는 한 늙은 여인의 가정을 통해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더욱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비단 바다의 횡포가 모리아의 가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섬마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들이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되어왔다는 사실 역시 작품의 비극성을 더한다. 그러나 바다의 이러한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모리아 가정을 비롯한 섬마을 사람들은 늘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 이런 모순된 관계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가는 목적을 찾아본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작품이 시작하면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여인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물레를 돌리고, 빵을 굽는 일을 하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두 자매 캐서린(Cathleen)과 노라(Nora)대화는 그렇게 일상적인 내용은 아니다. 엄마는 며칠 내내 잠을 못자고 있으며, 그녀들은 노라가 가지고 온 꾸러미가 바다로 떠난 뒤 실종된 오빠 마이클(Michael)의 것인지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해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의 환경에 노출되어있다. 비단 이런 비극적인 환경이 이 시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되고 있음을 모리아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이 집에는 남편도 있었고, 시아버지도 있었고, 아들이 여섯 명이나 있었지.... 그들 중에 몇 명은 발견되었지만 남은 몇 명은 발견하지도 못했어.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가버렸지...”(I've had a husband, and a husband's father, and six sons in this house-six fine men,... and some of them were found and some of them were not found, but they're gone now the lot of them... 93) 수면 위로 둥둥 떠다니는 시체들이 잔존하는 죽음의 바다에서 그 많던 아들과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의 흔적조차 찾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리아의 고통과 절규만으로도 바다의 폭력은 댄(Dan)이 오랜 세월동안 노라(Nora)에게 휘둘렀을 몽둥이보다 더욱 파괴적이다. 그러나 모리아의 비극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아들 바틀리(Bartely)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극이 진행될수록 더욱 좁혀지고, 뚜렷해지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씽은 모진 날씨로 인해 바다의 폭력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색깔이라는 이미지로 죽음이 그들의 삶의 일부로 들어와 늘 공존하게끔 유도한다. 바틀리는 무대 위에 등장하자마자 새 밧줄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검은 색을 띤 발을 가진 돼지가 씹어 먹고 있어서, 캐서린이 마이클의 시체를 찾게 되면 짜 줄 관을 만들기 위해 모리아가 이전에 사 놓았던 하얀 널빤지 위에 걸어 놓았다는 설정으로 묘사된다. 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틀리는 장에 가기 위해 바다로 나간다. 이때 그는 붉은 암말을 타고 그 뒤로 잿빛 조랑말을 데리고 간다. 흰색, 검은색, 회색이라는 무채색을 사물에 이용하여 죽음이 늘 그들의 삶에 엄습해있으며, 결과적으로 바틀리의 시체가 인물간의 대사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눈(등장 인물들을 비롯한 관객 혹은 독자)에 그대로 드러남으로서 슬픔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현저히 각인시킨다.
    인문/어학| 2015.01.15| 2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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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노와 공작 저널
    주노의 새로운 이름 ‘캡틴’Sean O'Casey 의 Juno and the Paycock모든 장르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작가의 의도 및 압축적인 장치로서의 제목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다. 션 오케이시(Sean O'Casey)의 주요 작품 중에 하나인 『주노와 공작』(Juno and the Paycock)은 단순히 아일랜드의 암울한 역사의 일부로서 더블린에 위치한 공동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보일(Boyle) 부부의 일상을 다룬 내용으로 단정 짓기에는 상당히 모호한 부분들이 많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주노’와 ‘공작’이라는 특정한 두 어휘를 이용하여 제한적이면서도 결코 구체적이지 않은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주노’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여신이며 주피터의 아내이자 특히 여자들의 삶, 결혼 생활의 전반과 관련이 깊은 어휘다. 또한 기품 있고 의젓한 여성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지닌 어휘가 바로 주노라는 단어이다. 반면 ‘공작’은 조류의 일종으로 특히 수컷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어휘 역시 조류의 특정 명칭에 그치지 않고, 겉치레꾼 즉, 허세를 부리거나 거만하게 구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즉, 오케이시가 완성한 『주노와 공작』은 매우 우월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주노’와 이에 비해 확연히 열등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공작’이라는 어휘를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대등하게 병치시킨 위치 설정은 관객 혹은 독자에게 다양하게 각색될 공간을 부여한다. 물론 이 작품에서 주노와 공작은 보일 부부를 지칭한다. 작품의 큰 틀은 아일랜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한 보일 가정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에 힘을 실어 놓고 보자면 가족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한 생계에 전혀 신경 쓰려 하지 않고, 술과 시(노래)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캡틴’이라고 불려지게 된 과거의 단편적 기억 속에서 거짓 통증을 외쳐대며 살아가는 남편과 머리를 리본으로 장식하고, 실크 스타킹을 신고 데모하는 딸 그리고 폭탄과 총알로 불구가 되어버린 아들의 생계를 신경 써야 하는 유일한 인물이 주노라는 분명한 설정은 종속적이고 열등한 주체로서의 여성의 역사에 비극성을 더해준다.작품이 시작되면 작은 거울로 자신의 머리를 빗질하며 치장하는 메리와 달리 주노는 현실에 찌든 안색으로 한 손에 음식 꾸러미를 들고 등장하며 “그는 아직 안 오셨니?”(Isn't he come in yet?) 라는 대사를 한다. 물론, 매일같이 술집을 드나들며 떠돌아다니는 남편에 대한 분노와 걱정이 저변에 깔린 일상적인 표현이며, 기존의 여느 부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보기의 일환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현실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캡틴이라는 이름표에 젖어 술과 시에 취해지내는 남편 보일의 상황을 집중했을 때 더 이상 캡틴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전쟁의 비극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아들 조니의 신체적 불구와 정서적 불안은 아내와 엄마로서 살아온 주노에게 또 다른 캡틴의 탄생이라는 희망을 상실케 한다. 곧이어 제리(Jerry Devine)가 등장하자마자 “캡틴 어디 있습니까? 보일부인, 캡틴이 어디에 있는 겁니까?”(Where's the Captain, Mrs.Boyle, where's the Captain?)라며 다급하게 물어댄다. 작품의 인물들은 진정한 캡틴을 늘 염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노 역시 그녀의 캡틴을 남편에게서 찾으려했고, 아들에게서 찾으려 했기에 모든 생계와 현실의 짐을 혼자 감당했는지도 모른다. 보일이 늘 언급하면서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약간의 기운으로부터 주노는 희망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주노는 작품 내내 돈을 꾸러 가거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가던지 즉, 어딘가를 가야하는 의지와 상황을 설정한 체 묘사된다. 늘 동일한 주점을 드나드는 남편과 다른 인물에게 끌려가 죽기 전까지 작품 내내 집안에서만 머물고 있는 아들과 달리 주노의 발걸음은 늘 외부로 향해 있다. 창문을 통해서 외부의 상황을 감시하고 염탐하는 ‘창문형 인간’(창문이라는 틀 안에서만 보여 지는 제한적인 상황만을 인식하는 인간을 의미)이 아닌 직접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 노출된다. 주노에게 놓여진 이러한 열등한 현실의 조건 속에서 그녀는 더욱 견고해지고 강력해진다. 현실적인 생계에만 매달렸던 작품 초반부의 주노의 모습과 달리 작품 후반부의 주노는 예상치 않은 많은 빚더미와 온전하지 못한 딸의 임신, 아들의 죽음이라는 매우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 늘 안절 부절하지 못했던 그녀는 오히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갈 거야. 메리, 우리 여기에 다시는 오지 말자구나. ... 아기를 위해서 함께 일하자구나.”(We'll go. Come, Mary, an' we'll never come back here agen. ... we'll work together for the sake of the baby.)라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이와 미래를 이끌어갈 후세대를 위해 과거에 얽매인 현실을 버리고 미래만을 위해 살아갈 결심을 한다. 아버지가 없을 아이에 대해 걱정하는 딸에게 주노는 “훨씬 더 좋아질 거야. 엄마가 둘일 테니깐.”(It'll have what's far better-it'll have two mothers.)이라는 말로 메리에게 힘을 실어준다.
    인문/어학| 2015.09.10| 2페이지| 1,000원| 조회(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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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ynge의 aran islands에 대한 기록문을 통한 연구
    ‘실제 여행’을 통해 만들어낸 ‘가공의 진실’-J.M. Synge의 작품을 중심으로-존 밀링턴 씽의 (John Millington Synge)작품『서쪽 나라의 멋쟁이』(The Playboy of the Western World)의 서문에서 그는 “입센과 졸라는 재미없고 활기 없는 단어들로 삶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사실성과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Ibsen and Zola dealing with the reality of life in joyless and pallid words. On the stage one must have reality, and one must have joy.)는 언급을 한다. 씽의 이러한 확고한 생각은 그를 비롯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주요한 동력이 된다. 즉, 싱이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삶을 미화 혹은 왜곡된 장치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 창작의 공간을 현실의 세계 속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가장 최적화된 지름길로 보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주요 극작가로서의 씽은 비단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극작품에서만 국한시키지 않고, 시와 같은 장르에서도 여실히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시와 번역집』(Poems and Translations)의 서문에서 작가들이 “일상적인 생활”(ordinary life)에 대한 시적 감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으며, "과거의 시인들은 그들 개인의 삶 전체를 자신들의 작품의 소재로 사용했다...”(Many of the older poets used the whole of their personal life as their material...)(219)고 말했다. 실제로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매우 응축된 시어라기보다는 삶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술하듯이 나열된다.섬에서당신은 한 마리의 마도요를 낚아챘고, 암탉을 끌어 당겼으며,일곱 명의 사람들의 셔츠를 빨았지요.당신은 내 베게를 채우고, 홑이그는 “게일어를 많이 사용하고, 유럽에서 남겨진 가장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곳이 이니시만이기에 이동하기로 결정했다.”(I have decided to move on to Inishmaan, where Gaelic is more generally used, and the life is perhaps the most primitive that is left in Europe)(10)는 언급을 하며 이니시만과 이니시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즉, 좀 더 문명의 이기로부터 벗어나 원초적인 자연 상태의 틀 안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삶을 영위하는 그들이야 말로 씽이 동경하던 근본적인 뿌리의 잔상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래전의 생활 및 의식들이 현재까지도 유지해올 수 있던 것은 섬이 지니고 있는 지리적인 특성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씽이 게일어를 배워야만 그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었고, 문명의 주요 전유물 중에 하나인 시계와 사진기를 지닌 그가 그들에게는 매우 신기한 대상이 된다는 것 역시 섬이라는 외부와의 단절된 공간적 위치 효과인 것이다. 그러나 씽은 초반부보다 오히려 마지막 방문에서 섬이 지닌 이러한 고유한 특성들에 대해 절대적인 고독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사람들이 미사를 갔고, 밖에서 부엌문을 걸쇠로 잠 가 버려서 빛을 들어오게 하기 위해 문을 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는 이 작은 오두막에 홀로 있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 잡힌 체 난로 옆에 거의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나는 여기에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던 것에 익숙해져 이 공 간이 어느 누가 자기 혼자 살았고, 일을 했는지에 느끼지 못했다. 잠시 후 나는 기 다렸고, 서까래와 벽면의 희끗하게 볼 정도의 굴뚝으로부터 들어오는 빛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에 잠겼다...When I got up this morning I found that the people had gone to Mass andlatched (24) 라고 말하며 동시에 아버지와 둘이 살던 곳은 “밭에 말 못하는 짐승들을 제외하곤 그 곳에서 나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어요.”(There wasn't anyone heeding me in that place saving only the dumb beasts of the field.)(24) 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형제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아버지를 피해 이미 다른 세계로 떠났기 때문에 크리스티는 오직 아버지와 단 둘이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을 하고 재미있는 일이라곤 어두워지면 언덕에서 토끼를 잡거나 쇠꼬챙이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 그의 유일한 놀이거리였다. 이런 크리스티에게 페긴은 “당신이 스포츠라고 부르는 게 혼자 나가서 어두운 구석에서 있던 거란 말인가요?”(And it's that you'd call sport, is it, to be abroad in the darkness with yourself alone?)(24)라며 재차 언급한다. 외부세계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된 크리스티의 일상에서 야기된 고독이 오히려 그에게 놀이가 되는 아이러니한 관계는 고독의 윤곽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는 불가피한 장치가 된다.씽은 『애런 제도』에서 더 이상 극작가가 아닌 여행자이자 동시에 방랑자(이방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씽이 애런 섬을 여행하기로 시작했을 때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행이라는 뚜렷한 목적은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향성은 제공되지 않았다. 설령 그에게 그런 방법이 존재했었을 지라도 이곳 섬사람들에게 거대한 문명이라는 외부 세계의 작은 침입자로서의 씽의 영향력은 실질적으로 크게 작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애런 섬을 구석구석 살피고 정처 없이 떠도는 씽은 흡사 방향성을 상실한 체 배회하는 방랑자의 모습을 띠게 된다. 이는 결국 외부(섬의 환경과 현지인들의 생활과 이야기)의 시선에만 고정시켰던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의 방문에서 씽이 자신 내부 시선의 변화에도 반응하도록 야기한다.여러 가지 점으로 이곳의등장이다. 남편 댄이 지팡이를 들고 노라를 집에서 내쫓으려고 하자 트램프는 “우리 함께 가요. 추위도 있을 것이고, 서리도 내릴 것이고, 억수같은 비도 내릴 것이지만 태양은 또 뜰 것이고, 골짜기로 불어오는 남풍도 있을 것입니다.”(...We'll be going now, I'm telling now, and the time you'll be feeling the cold, and the frost, and the great rain, and the sun again, and the south wind blowing in the glens....117)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노라에게 이야기를 한다. 집에서 쫓겨난 노라는 앞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트램프와 함께 있기에 외롭지도 혹은 고립되지도 않을 것이다.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체 살아가는 노라의 고립되고 폐쇄적인 공간과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 넓고 개방적인 공간의 대치는 결국 노라가 트램프와의 진정한 소통으로 귀결되어 더 이상 죽음의 그림자에 두려워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바라보는 내적 성장을 이끌어 낸다.『바다로 가는 기수들』에는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많은 방랑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다에 나갔거나 혹은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섬마을 사람들을 의미한다. 물론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와 거친 파도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바다가 그들을 언제든지 덮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바다를 포기할 수 없다. 섬마을 사람들에게 바다는 생계 목적의 주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출입해야 하는 절대적인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즉, 바다를 나가는 사람들은 비록 개개인이지만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안에서 그들은 같은 처지의 인간일 뿐이다. 모리아는 여섯 명이나 되는 아들들과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을 모두 바다에서 잃어 마을 주민들이 시체를 운반해 오는 광경들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것이 결코 rld, looking over a low ditch or a high ditch on my north or my south, into stony scattered fields, or scribes of bog)(23)라며 자신의 떠도는 삶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삶이 그에겐 이미 익숙해져 가고 있다. 왜냐면 크리스티는 이미 어릴 적부터 북쪽을 비치는 햇살이나 별, 안개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watching the light passing the north or the patches of fog)(24-5) 자신의 즐거움을 찾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의 정착보다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할 때 크리스티는 진정한 해방을 느껴왔던 것이다. 따라서 살인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페긴과의 결혼 약속 그리고 마을의 모든 시합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만드는 모순적인 상황 설정은 크리스티에게 방랑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더욱 부각시키는 힘을 실어준다. 한 곳에 영구히 정착할 수 있는 상황을 크리스티에게 만들어주지만 페긴의 술집에 걸려있는 거울을 통한 그의 모습은 전혀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또한 죽은 줄로 알았던 아버지의 등장은 이틀간의 시간동안 이 마을에서 일어났던 아이러니한 모든 일들이 크리스티에게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무력해지도록 만들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먼지로 휩싸인 체 첫 등장한 크리스티가 진정한 멋쟁이로 거듭나서 마을을 떠나는 결말에서의 뚜렷한 변화이다. 이는 불가피한 도망자의 삶이 아니라 크리스티 자신 스스로가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진출인지 혹은 다시 과거의 집으로의 회귀인지 작품에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크리스티에게 방랑의 삶은 온전한 해방을 통한 자아의 성찰인 것이다.씽은 『애런 제도』에서 삶과 죽음 결코 분리되지 않고 늘 공존한다는 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애런 섬을 네 차례 방문을 하면서 자신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던 늙은이들은 죽고, 어린 아이들은 성장하여 돈벌이를 위해이다.
    인문/어학| 2015.09.10| 11페이지| 5,000원| 조회(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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