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 머리말2.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바라본 수영의 효과(1) 정신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수영의 효과(2) 정서 순화 효과3. 육체건강의 측면에서 바라본 수영의 효과(1) 호흡기 발달(2) 천식 개선 효과(3) 허혈성 심장병 치료(4) 비만치료(5) 당뇨병 치료4. 의학전문가의 의견.(1) 수영과 귓병(2) 수영과 좌골신경통(3) 수영과 퇴행성 관절염5. 질병과 수영6. 맺음말7. 참고문헌1. 머리말현대사회의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문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며,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보다 더 건강 한가? 한마디로 그렇지 못하다.우리 몸의 각 기관은 신체 활동을 해야 발달되고, 심장은 심장대로 운동을 해야 그 기능이 발달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생계수단이 바로 신체활동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건강증진을 위한 별도의 운동은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과학의 발달로 모든 사회구조가 자동화됨에 따라 자동차, 엘리베이터, 세탁기를 비롯한 모든 기구들이 신체활동을 대신하고 있어 우리 몸에는 운동부족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더불어 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른 영양 과잉으로 비만 현상이 나타나고, 대기오염,수질오염 등으로 환경생활이 복잡해짐에 따른 스트레스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체는 무기력해지고 각종 질환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며, 정서가 불안하고 매사에 의욕이 감소되는 등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소위 현대병인 심장, 고혈압, 뇌졸중, 당뇨병, 암, 신경통 등의 성인병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성인병은 더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인병은 의학적 처방만으로 치료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성인병의 특징 중 하나는 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체내에 서서히 진행되어, 자각증상을 느낄 때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라는 점이다. 따라서 의학계에서는 성인병을 신체 내부를 붕괴시키는 무서운 병으로 단정하고 있으며, 한참 활동할 나이 때문에 이를 위해 시간을 우선적으로 할애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헬스클럽을 찾으며, 에어로빅을 하고 산을 오르는 것 등 더없이 좋은 일이다.더우기 오로지 건강만을 위해 수영장을 찾는 중년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국민 건강면에서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운동 중에 가장 많은 근육이 동시에 동원되고, 전신운동이 이루어지는 운동은 수영 외에는 별로 없을 뿐아니라, 수영은 한 번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있는 운동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건강을 지키는데 수영을 적극 권하고 싶다.2. 정신건강의 측면에서 바라본 수영의 효과(1) 정신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수영의 효과사람들이 객지에 살면서 나이가 들었거나, 생존경쟁이 너무나 치열하여 실망하거나, 뜻하지 않는 재난이 와서 어쩔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고향에 돌아 가고 싶은 충동이 생겨 나게된다.어릴 적 살았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했던 고장에 되돌아가고 싶은 심리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구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굴에 돌아가고 싶어하고, 잠수함을 타고 해저로 가고 싶어하는 욕망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어머니 뱃속(子宮內)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심리 때문이라고 정신심리학 (Psychoanalysis)은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인류가 40억 년 전 최초로 태어나 살던 곳이 바로 바닷물 속이었다고 한다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은 당연하다 하겠다.수영이 인간의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은 이와 같은 강력한 회귀본능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영이 정신 건강에 좋은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성경에도 나오는 바 있지만 세례로 몸을 깨끗이 씻음으로 해서 자신을 죄악과 오염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계기가 된다 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자신도 모르게 남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실망시키고 하는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할 것이다. 아무리 양심적으로 살고, 남의 모범이 된 삶을 산 사람이라 할지라도 , 엄격히 따 따라서 일종의 가면을 쓰는 심리와 같다 할 것이다.서양말에 인격은 페루소나(Person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페루소나란 말은 바로, 가면이란 뜻이 있음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사람들이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것은 바로 이제 말한 인간의 가면- 옷을 벗어버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따라서 옷을 벗고 수영이나 사우나를 하게 되면 자신의 모습을 숨기거나 감추는 일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진면목(眞面目)을 들어내는 행위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밝히고 한다면 사람들은 무한히 친밀감이 생겨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십 년 사귄 사람보다 더 큰 친밀감을 느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이렇게 볼때 수영이나 사우나가 단순히 물속에 들어가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스스로가 진실하고, 솔직하게 된다는 이점이 따라온다 할 것이다.수영장이나 사우나가 주는 네 번 째의 즐거움과 의미는 그곳에서 평소에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TV나 화면을 통해서만 겨우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우나 장이나 수영장에서도 옷을 벗은 채 아무런 방어심이 작용함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큰 즐거움이 아닐 것이다.아무런 선입견, 체면, 방어심, 가면 등이 없는 가운데 이들을 만나게 되고 대화를 갖게 되면 참으로 큰 즐거움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복잡한 체면치레나, 대화의 기술, 자기를 더 잘 보이기 위한 기교 등의 필요가 없어지고 오직 친절과 성실성 등만이 있으면 된다 할 수 있다.이와 같이 적나라한 가운데 사람을 만나게 되고, 대화를 하며, 인생과 사회와 민족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실로 큰 기쁨의 원천이 된다 할 것이다.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몸을 씻는다는 것은 다각도의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으며,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것은 즉 인 효과수영은 상, 하체의 주요한 근육들이 모두 사용되는 전신 운동이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형태의 유산소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하체의 주요한 근육들이 많이 사용되지만 수중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의 특성은 신체 움직임에 따른 물의 저항으로 자연적인 근육강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수영은 수중운동이기 때문에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운동들과는 달리 부상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스포츠 종목이다. 다시 말하면, 수중 부력은 체중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시켜 주므로 수영은 근육 부상을 거의 유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영은 비만 환자, 관절염 환자, 부상 치료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 고령자, 근·골격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운동이다. 또한, 지상 운동시 발생되는 각종 열병을 방지할 수 있으며 땀 분비로 인한 불쾌감이 없는 시원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제 구체적으로 육체건강에 수영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각 부분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1) 호흡기 발달수영은 보통 30-50센티미터의 수심에서 행해지며, 이때 신체는 0.03-0.05 정도의수압을 받게 되어 복부는 압박을 받는다. 그 결과로 복부는 횡경막이 올라오게 한다. 그래서 공기를 체외로 내쉬는 것에 비하여 체내로 들이마시는 것이 극히 곤란하게 되는 것이다. 즉 수중에서 수영을 할 때, 폐활량은 육상에서의 운동에 비하여 6%정도가 감소하게 된다. 수중에서 호흡을 반복하는 것은 호흡근에 큰 부하를 주게 되어 가슴근육의 발을 촉진하게 한다.예를 들어 장기간 수영을 한 선수는 숨을 들이 마실때의 가슴둘레의 최대값과 숨을 내쉴 때의 최소값의 차는 10-16센티미터에 달한다. 즉 호흡근이 발달하여 폐활량이 증대하고 가슴근육도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2) 천식 개선 효과수영은 기관지운동을 위한 최적의 운동일 뿐만 아니라, 폐활량을 증대시키는데는 수영 만한 운동이 없다천식은 기관지벽 근육압박, 기관지 점막 손상 또는 점막 이상 발육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데 운동선수들의 경우 무리한 기관지 식사량을 늘리거나 약의 용량을 줄여야 한다. 당뇨병환자는 발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므로 양질의 운동화나 양말을 착용하고 발의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여, 발에 물집이나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4. 의학전문가의 의견(1) 수영과 귓병수영 후 부주의로 귓병을 호소하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일명 풀(POL)이라고 통칭되는 귓병은 통증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 많은 환자는 귀가 너무 아파 잠을 못 자고 식사도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건강한 귀를 가진 사람은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 물이 들어간 쪽 귀를 밑으로 하고 고개를 세계 흔들면 쉽게 물이 흘러나올 수 있는 데 귀지가 꽉 차있는 상태에서 수영을 하면 콩이 물에 불듯 귀지가 물에 불어 귀가 갑자기 멍해지거나 근질근질하게 돼 귓속을 닦아 내다 귓속 연한 피부를 손상시켜 외이도염으로 앓게 되는 것이다.중이염 환자는 특히 귓병에 주의해야 한다. 고막이 터진 상태의 중이염 환자가 부주의하게 수영을 할 경우 터져 있는 고막을 통해 불순물이 귓속을 자극, 각종 세균들이 중이 속으로 쉽게 들어가 염증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외이도염과 달리 중이염은 통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외이도염은 1-2주의 극심한 통증은 있지만 특별한 합병증 없이 쉽게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중이염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중이염이 있을 때는 원칙적으로 수영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가피하게 수영을 하게 될 경우엔 귓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흔히 약솜으로 귓속을 막는 것은 오히려 귓속으로 물이 스며들어 좋지 않다. 또 귓속을 꼭 틀어막도록 고안된 견고한 귀마개는 귓구멍을 자극할 수 있어 역시 좋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귓구멍 모양에 따라 자유롭게 귀를 막을 수 있는 고무처럼 물렁물렁한 실라스틱(SILASTIC)귀마개는 상당히 효과적인 편이다.수영 전에는 반드시 귓속에 귀지가 딱딱해질 정도로 오래 쌓였다면 수영장에 가기 전 먼저 의사를 찾아가 귀지부터 제거하는 것이 있다
-내가 배운 다산학-차례1.인간 다산2.개혁사상(실학)3.목민심서4.평등사상5.맺음말1.인간다산다산이 유배시절에 거처하던 다산초당이 있는 산 이름으로, 차가 많이 생산되어 붙여진 이름인데 그는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다산 40세 1801년 신유년에 신유교옥이 일어났다. 정조때에 정치적인 이유로 서교(西敎)와 서학(西學)을 구별을 하지 않고 정치적 반대파들의 몰락만을 추구하던 벽파(?派)와 공서파(攻西派)들은 신유옥사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다산은 신유사옥에 의해 귀향을 가게 되어 18년동안 유배지에서 머무름으로써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다. 강진에서의 유배기간은 다산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유배지에서 500여권의 저서를 남기고 경세학과 더불어 다산사상의 두 축을 이루는 경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때 이루어진다. 이때 다산초당에서 18명의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점차 퍼져 나감에 따라 다산학이라는 학문이 생긴다.2.개혁사상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다산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한 이조 후기의 학자이다. 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답게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의학, 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500여 권에 이르는 이 저술들은 깊고도 넓은 학문 세계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고전이 되고 있다.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은 이조 봉건사회의 해체기로, 봉건적 병폐가 누적되어 그 말기적 현상들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의 사회는 전란으로 고갈된 국가재정을 메우기 위하여 백성들로부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온갖 협잡을 자행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과 이를 둘러싼 지방관들의 부정부패를 말한다.그뿐 아니라 집권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면서 자체 분열을 하여 그 결과 살아남은 소수의 특권층이 국가의 요직을 독점하게 된다. 이들을 벌열(閥閱)이라 부른다. 이들 1조 반계 유형원이 반계설을 26권 저서했고, 2조는 성호 이익이고, 3조는 다산 정약용인데, 집대성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다산학이라 부른다. 주자학은 조선 500년대를 주름잡았다. 주자는 관념적으로 해석을 한것을 말하고, 4서 6경을 ‘성리 이론’으로 해석해서 성리학이라고도 부른다. 다산학은 주자학을 반대하는 편에 있었고, 4서 6경을 실학적으로 해석했다. 즉, 민중적이며 경험적으로 해석해 놓은 것이다. 또한, 다산학은 행위와 실현에 바탕을두는 실심(實心), 실사(實事), 실행(實行), 실체(實體)라고 할수있다.다산의 논문 ‘원덕’이라는 글에서 확인할수 있는데 “명(命)과 도(道) 때문에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자기와 남이 있기 때문에 행(行)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그 성과 행 때문에 덕(德)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만 가지고는 덕이 될 수 없다…”(인명이도 유성지명 인기이인 유행지명 인성이행 유덕지명 도성불능유덕세...)라고 쓰여져 있다.유학의 중심적인 명제(命題)들인 명(命)·도(道)·성(性)·덕(德) 등에 대하여 주자의 관념적이고 이론위주의 해석에서, 행(行)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여 행위와 실천이 더해진 경험적인 세계만이 올바른 철학이고 삶의 원리라고 다산은 말하고자 했다.실학자로서 다산의 면모는 실학 시대 이전의 주류 사상이었던 주자학 또는 성리학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성리학은 주로 철학적인 여러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지만, 우리나라 중세기의 성리학은 단순히 철학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학 전반을 지배하는 하나의 중세적 이데올로기로 군림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성리학에 도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천리(天理) 또는 이(理)에 대해서 다산은 비판적인 입장에 있었다. 이것은 이(理)의 구현이라 생각되는 모든 사회질서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로 확대된다. 여기정한 것이다. 이러한 탈 성리학적 기조 위에서 다산의 개혁안이 펼쳐진다.탕론에서 보면 ‘(탕방걸가호아 심벌군이가호아 왈고지도야가)탕 임금이 걸 임금을 쫓아 내는게 옳은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가? 이것은 옛부터 있었던 진리이다.’라며 잘못하는 임금을 언제든지 바꾼다는 사상이다.‘이계심 사건’에서 다산 36세에 황해도 곡산 도호부사로써 발령을 받았는데, 이계심이 직접 나타나서 전 군수의 잘잘못을 12가지 언급하니 용서한 사건으로 다산이 이 사건을 자주 언급했다.이조 후기 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이른바 '삼정의 문란'으로 집약된다. 삼정의 문란이란 전정(田政), 환곡(還穀), 군정(軍政)의 문란을 일컫는다. 다산은 ‘천하 부이구 (온 세상이 부패한지가 오래다’, 또는 ‘일모 일발 무비 병이 (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는 것이 없다)’라며 탄곡했다.제도의 개혁 중에서 다산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토지제도의 개혁이었다. 농업 생산이 국민총생산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농업 국가에서 토지제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농민들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것, 이것이 다산의 큰 관심이었다.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농민들을 만성적인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다산은 원칙적으로 토지는 농민의 소유여야 하고 생산물은 직접 생산에 종사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들이 전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생산물을 노동 일수에 따라 공동으로 분배하자는 것이 이 개혁안의 골자다. '전론'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전지를 얻게 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전지를 얻지 못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곡식을 얻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곡식을 얻지 못하게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함이고, 힘쓴 것이 많은 사람은 곡식을 많이 얻고, 힘쓴 것이 적은 사람은 곡식을 적게 얻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언급했다.환곡이란 풍년에 국가가 곡식을 사들였다가 흉년에 싼 이자로 빌려주어 빈민을 구제하고 물가도 조담은 책이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인데, 경세유표는 죽어서라도 경륜할수 있는 유언적인 정책건의서이다. 다산은 ‘신아지구방 (오래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자)’, ‘급금불개 필망국이후 (及衾不改 必亡國而後 ;지금에 미쳐서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에 나라는 망한다)’ 하며 경세유표를 지은 이유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목민심서는 지방행정의 개혁 방안을 법질서 안에서 모색한 것이다. 다산은 또한 환갑에 이르러서야 ‘자찬묘지명’과 ‘집중본’을 저술했다.다산은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먼저 ‘관료시스템’을 어떻게 바꿀것인가? - 즉, 8도를 14부로 분류했고, ‘이용감’을 신설하여 국내 기술개발, 국외 기술도입을 주장했다. 즉, 법고창신(法鼓創新)(우리의 주체성과 철학은 지키되 선진문화는 받아들이자)을 기록해 놓았다. ‘이용감(利用監)’이라는 새로운 정부부서를 새로 설치하여 중국을 통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나라에 과학기술을 발전할 방도를 전문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온갖 공업기술의 정교함은 모두가 수리학(數理學)에 근본을 두고 있다”(百工之巧 皆本之於數理)라고 말하면서 기하학(幾何學)이나 수학(數學)의 원리에 밝아야만 공업기술은 발달할 수 있다는 탁견을 주장하였다.다산의 개혁사상은 현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이러한 개혁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전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산의 합리적 사고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사고'와 연결된다.다산은 수원성(水原城)을 축조할 때 기중기를 창안하였고, 박제가(朴齊家)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종두법(鐘頭法)을 연구해 보급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50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남기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3.목민심서목민심서는 강진에서의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감하던 해인 1818년 봄에 초고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해 8월에 해배되어 고향인 마재로 돌아온 다산은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여 18있다.1)부임 6조: 수령으로 임명되어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임지로 가는 과정과 임지에서 첫 장사를 보기까지 수령이 지켜야 할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2)율기 6조: 수령 개인이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으로, 집안 식구들의 행동거지와 손님 접대, 검소한 일상생활 등의 강령이 기록되어 있다.율기제1조 칙궁는 공사에 여가가 있거든 반드시 정신을 모아 고요히 생각하며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 지성으로 잘되기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제2조 청심는 청렴하게 한다는 것은 수령 된 자의 본연의 의무로서, 온갖 선정의 원천이 되고 모든 덕행의 근본이 된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 노릇을 한 사람은 아직 없다.( 염좌목지복무 만선지원 제덕지근 불여비 능목자 미지유야)제3조 제가는 자기 몸을 바르게 가진 뒤라야 집안을 바로 이끌어 갈 수 있고, 집안을 바로 이끌어 가게 된 뒤라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천하에 통하는 원칙이다. 그러니, 그 고을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바르게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제4조 병객는 친척이나 친구가 관내에 많이 살면 거듭 단단히 단속하여 남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일이 없게 하고, 서로 좋은 정을 보존하도록 할 것이다.제5조 절용는 개인적으로 절약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능히 할 수 있으나, 나라의 돈과 물건을 절약하는 것은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공물을 사물처럼 아껴야 이것이 현명한 수령이다.제6조 낙시는 수령으로서 자기의 녹봉을 절약하여 그 지방 백성들에게 돌아가게 하고, 자기 농토의 수입을 풀어서 친척들을 도와준다면 원망이 없을 것이다.3)봉공 6조: 수령의 일상적인 집무 자세를 제시한 것으로, 조정으로부터의 명령을 전달하는 방법, 모든 일을 따라 처리할 것,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그리고 동료 수령들과의 대인관계, 공문서 작성 요식, 수령이 국가의 다른 일에 차출되었을 때의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4)애민 6조: 고을의 노인, 어린이, 과부, 홀아비 등 외로운 사람과 상을 당한 사람다.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차례1.서론2.본론1)흑산도 아득한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2)내 의지를 밝히다3)세상살이 구부구불 위험해지네4)자상하신 임금님 말씀에 절로 눈물 흐르네5)귀양살이 타향살이6)유배지에서 보낸 편지7)다산학이 우뚝 서다3.결론1.서론‘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는 다산의 생애, 다산의 사상, 다산이 살아왔던 모습들을 보여준다. 다산은 영특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그에게 사상을 심어준 성호 이익 선생에 대한 내용에서, 정조와의 만남,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그리고 500권의 저서를 남긴 역사적 인물로 남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책 한권으로 보여준다.다산은 농업중심인 조선의 개혁을 원했고, 탐관오리 관리들을 타파하고, 농업과 과학의 발전을 바라는 실학자이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라고 한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다산 정약용을 봄으로써 현재의 모습과 인물을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2.본론1)흑산도 아득한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다산은 인간적인 애(愛)를 가지신 분이다. 나라에 대한 애(愛), 자식에 대한 애(愛), 형재애가 지극한 분이다. 여기서 '다산은 그가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썩고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탄식했다.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며, 썩어 문드러졌다고 그는 거듭 탄식했다. 다산은 전 생애를 통해서 이 병들고 썩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온갖 방책을 강구하는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 현실에 활용하면 부패와 타락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혁안을 마련해두었으니, 그게 바로 다산의 개혁사상이요, 실학사상이다.'라고 언급한다.또한 귀양지에서 막내 농아의 죽음을 듣고 애통해 하고, 유배지에서 고인이 된 둘째형님 정약전의 죽음에 통곡하였으니 이 얼마나 자식과 형제에 대한 애(愛)가 충만한 지를 알수 있다.이 소제목에 있듯이 신유옥사에 의해 다산은 귀향을 가게된다. 이것은 신유박해를 이용한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신유년 정초에 시파나 신서파는 모두 정부에서 축출되고 노론 벽파인 이병모, 김관주, 심환지 등이 요직에 오르게 되는데, 정조대왕의 재위시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던 정순대비 측근들과 그들에게 미쁨을 받으려던 공서파 일당은 특히 정조의 사랑을 이가환과 정약용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된 것이다. 당시 홍희운이라는 공서파의 과격파가 "천 사람을 죽이고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자찬묘지명)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분명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2)내 의지를 밝히다다산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은 다음달인 6월 16일에 태어났다. 신방진사로 이름을 날리며 하급직의 벼슬에 오른 다산의 아버지는 그런 끔찍한 사건에 넋을 잃어 벼슬할 뜻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무렵 다신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다산의 이름을 '귀농(歸農)'이라고 지었다. 농사짓는 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으리라.명문으로8대 옥당 집안인 아버지의 핏줄과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의 혈맥을 타고난 어머니 해남 윤씨의 영특함을 이어받아서인지, 약용은 어려서부터 매우 영리하여 문자를 잘 알았다. '작은산이 큰 산을 가렸네 멀고 가까움의 지세가 다른 탓이지' 는 다산이 일곱살에 지은 시이다. 이 시를 본 아버지는 "분수와 소장에 밝으니 역법이나 산수에 능통하리라"하며 말해주었다 한다.다산보다 위로 조선의 실학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올린 이는 성호였다. 성호 이익은 반계 유형원의 학문을 이어받아 실학사상의 기틀과 체계를 세웠다. 16살 어린시절에 다산은 성호의 학문을 접합으로써 실학의 꿈을 이루어 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다산은 "나의 미래에 대한 큰 꿈은 대부분 성호 선생을 딸 사숙했던 데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호가 남기고 간 저술을 일고 학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어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이 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다산은 22살에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정조와 첫만남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총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가 만난다는 '풍운지회(風雲之會)'라고 할 수 있다. 또한 , 성균관에 들어가 깊은 학문을 배울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이다.3)세상살이 구부구불 위험해지네임금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수재이면서 많은 노력을 했음이다. 특히 서양의 수리학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마 그리하여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거중기를 창안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노량진에 베다리를 놓아 정조가 수원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을 능행할 수 있게 했다.다산은 정조임금의 극진한 총애로 오히려 고난의 길을 가는 발단이 된다. 위당 정인보는 "주우는 화태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정도로 임금의 지우를 입음이 바로 화란의 모태였다는 뜻이다.다산이 암행어사로 있을 때 "법의 적용은 임금의 측근부터 시작해야 한다"와 민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국법을 존엄하게 해야 한다"는 다산의 경세논리가 드러난다. 그러나, 다산은 '호사다마' 라는 말이 있듯이 업무수행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하여 마가 끼는 불행을 맞는다. 곧, 탐학을 부리는 서용보를 임금에게 고하는 일로 미움을 사 다산은 신유사옥때에 유배령을 받는다.4)자상하신 임금님 말씀에 절로 눈물 흐르네다산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면서 반대세력에 더 심한 비방을 받게 된다. 다산은 천주교 신자라는 비방과 모함을 받은 것에 대해 '자명소'라고하는 긴 장문의 글을 임금에게 상소하게 되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알기에 다산에게 더욱 동정적이고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다.다산은 곡산 도호부사로 발령이 났다. 다산은 곡산에서 이계심 사건을 맞게 되는데, 이계심은 실정법을 위반해 체포령까지 받은 수배자였다.……곡산 땅에 들어서니 호소하는 글을 가지고 길을 막는자가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그가 바로 이계심이었다. 그 글을 받아 보니 백성을 병들게 하는 12가지 조항이었다 .곧바로 이계심에게 뒤따라오도록 했더니 아전이 말하기를 "이계심은 오영에서 체포령이 내려진 죄인입니다. 법에 따라 붉은 포승줄로 결박을 하고 칼을 씌워 뛰따르게 함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라고 했으나, 다산이 물리쳤다.관청에 오른 뒤에 이계심을 불러 앞으로 나오라 하며 말하기를 "한 고을에 모름지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형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백성을 위해 그들의 원통함을 폈으니, 천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와 같은 사람은 얻기가 어려운 일이다. 오늘 너를 무죄로 석방한다."면서 마침내 불문에 부쳤다. 이에 백성들의 원통함이 펴지고 화락해졌다…. 박석무 저 p263이 글의 내용에 맞게 솔로몬의 재판이라고 지은 것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옛이나 지금이나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듯이, 법 행정이 그리 옳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심히 걱정이 될 수 있다.다산은 목민관에 있으면서 약한자들을 위해 있었고, 양민은 일으키고, 도적을 소탕하였다.5)귀양살이 타향살이다산은 다산과 다산일파를 보호해 주었던 정조와 체제공의 죽음으로 무너지게 된다. 여기서 다산은 모함으로 유배지에 가게 된다.다산은 경상도 해안 벽지인 장기로 귀향을 가서 타지에서 농민들과 일어나는 일들을 풀이해 놓은 것이다. 다산은 장기에서 7개월 기간에 수많은 시를 지었다. 장기는 바다를 낀 고을이어서 농업이나 어업을 했는데, 다산은 농기구 제조와 개량에 관심이 있어서 편농, 편어를 역설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에서 보면 의서를 저술했고 당대 최고의 의원이라고 한다. 이러한 면목으로 보면 다산은 우선 백성을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자신을 발전 시킬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6)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사암연보'에 기록되어 있듯이 신유년의 신유사옥은 정치적 의도에서 일어난 일로 다산과 다산일파를 없앨려는 의도로 다음내용을 보면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