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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아동 성폭행의 실태 평가A+최고예요
    과 목 명 : 사회정책론담당교수 : 이재갑 교수님제 출 일 : 07-06-04학 과 : 행정학과학 번 : 32030607이 름 : 박윤원아동 성 폭행《 차례 》① 아동 성 폭행이란?② 특징③ 원인④ 실태⑤ 대책과 한계⑥ 마치면서...1. 소아 성 폭행이란?「아동성폭행이란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적인 쾌락을 얻고자 강압적으로 혹은 고의적으로 유도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소아 성폭행이란 소아를 대상으로 한 성기 삽입은 물론이고, 성적인 목적의 신체 접촉이나, 신체적 접촉이 없는 성적 학대도 포함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① 성적인 신체 접촉이란 성적인 쾌감을 얻을 목적으로 어린이의 몸을 만지거나 애무하는 것 이외에 어린이로 하여금 가해자의 몸을 만지거나 애무하는 것을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행위를 말한다.② 신체적 접촉이 없는 성적 학대란 적나라한 선정적인 내용의 말을 아이에게 표현하는 것 외에 가해자의 신체 일부분을 아이에게 노출 시키거나 어린이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 등을 말한다. 아이의 벗은 모습을 보고 쾌감을 느끼거나 아이를 유인하여 난잡한 성교 장면의 비디오나 사진을 보여주는 것 역시 소아성폭행 범주에 드는 행위이다.2. 소아 성 폭행의 특징① 소아 성폭행의 주범은 대개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에 의해 가해지는 것이 60% 이상이다. 근친을 비롯하여 친인척, 이웃사람, 심지어 학교 선생님, 원장, 문방구 가계주인, 외판원, 목사까지 가해자의 범위는 예측할 수 없다.② 성인의 성폭행은 대개 야간에 이루어지는 데 비해 소아의 성폭행은 대낮에 행해진다. 범행 장소도 으슥한 곳이 아닌 피해 아동의 집이나 가해자의 집이 가장 많았고 학교 건물 주변,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이 많았다.③ 소아 성폭행의 대상이 되었던 연령은 최소 첫돌도 안된 아이부터 시작하여(외국의 경우 4개월 된 여아가 밝혀진 최소 연령) 국민학교 6학년까지 다양했다.그 중 가장 취약한 연령은 초등 학교 3,4학년으로 아마 이 연령이 여성적 외모에 비해 상대적으로반 이상은 매일 음란물을 검색한다. 인터넷감시기구(IWF)의 지난해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51.1%), 러시아(14.9%), 일본(11.7%), 스페인(8.8%), 태국(3.6%)에 이어 2.16%로 세계 6번째 아동 음란물 생산 국가로 보고되고 있다.」「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아동포르노물을 유포하는 경우에만 법적인 처벌이 가능하며 아동포르노물 소유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전무하는 등 아동포르노 근절을 위한 처벌규정이 미약한 편이다.반면 미국은 지난 2월 말 대법원에서 아동포르노물 20건을 소유한 혐의로 기소된 애리조나주 출신 50대 남성에게 징역 200년을 확정하는 등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줄어든다'는 논리에 따라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② 범죄 예방 시스템의 미비「실종 40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제주도 양지승(9) 어린이를 살해한 송모(49)씨가 10년 전에도 미성년자를 납치하는 등 23차례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의 성범죄 예방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청소년 상대 성범죄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온정주의 판결에서 벗어나 보다 강력히 제재하는 한편 재범자 실태 파악과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③ 신속한 대책 미흡「지난 3년동안 유괴돼 살해당한 어린이는 5명입니다. 숨진 시점은 모두 범행 후 24시간을 넘기지 않았음. 납치된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무엇보다 경찰의 신속하고 치밀한 초동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4. 현 실태① 아동 성학대 20%급증「4월29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2006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3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학대 신고건수는 8903건으로 2005년 8000건에 비해 12.3% 증가했다. 이 중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돼 정부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를 받은 경우는 5202건으로 전년비 12.3% 늘었다.아이를 돌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방임`이 2035건(39.학대행위자의 46.8%가 실업자, 단순노무직, 비정규직 등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② 초등생 성매수의 급증「20일 청소년위원회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을 성매수했다고 법원 판결을 받은 사례는 2004년 7명에서 2005년 18명,2006년 21명으로 3년만에 세 배 늘었다. 성매수를 포함한 성추행·폭행은 2004년 577명→2005년 698명→2006년 774명으로 증가하고 있 다.피해 아동과 부모가 신고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성매수, 성폭행·추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④ 제 12차 성범죄자 신상공개 자료 분석보고서(ⅰ) 전체 청소년대상 성범죄 중 13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건은 282건으로 전체의 25.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유형별로 보면, 강간은 27.0%, 강제추행은 64.8%, 성매수는 2.4%, 알선/강요는 0%로 강제추행의 경우 13세미만 피해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세미만 성범죄의 유형 (단위: 건,(%))피해자연령범죄유형계강간강제추행성매수13세미만40(27.0)228(64.8)14( 2.4)282(25.5)13세이상108(73.0)124(35.2)578(97.6)824(74.5)계148(100.0)352(100.0)592(100.0)1106(100.0)(ⅱ) 성범죄 유형별 및 13세미만 여부별 성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최종심결과를 살펴보면, 13세미만의 경우 강간은 유기징역의 비율이 가장 높고, 강제추행은 집행유예의 비율이 가장 높고, 성매수는 벌금형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모든 범죄유형에서 피해자가 13세미만인 경우에는 13세이상인 경우보다 유기징역의 비율이 높고, 벌금형의 비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유형 및 13세미만 여부에 따른 최종심결과 (단위: 건,(%))피해자의 연령최종심범죄유형계강간강제추행성매수13세미만무기징역0( .0)1( .4)0( .0)1( .4)유기징역32(80.0)57(25.0)1( 7.1)90(31.에 13세이상인 경우에는 39.5%만이 공개대상이 되었다. 성매수의 경우에는 13세미만인 경우 42.9%가 공개된 반면, 13세이상인 경우 21.3%만이 공개되어, 세 가지 범죄유형 모두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심의결과가 확연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성범죄유형 및 13세미만 여부에 따른 신상공개심의결과(단위: 건,(%))피해자연령심의결과범죄유형계강간강제추행성매수13세미만비공개0( .0)15( 6.6)1( 7.1)16( 5.7)교육0( .0)54(23.7)6(42.9)60(21.3)공개40(100.0)159(69.7)7(50.0)206(73.0)계40(100.0)228(100.0)14(100.0)282(100.0)13세이상비공개3( 2.8)51(41.1)291(50.3)345(41.9)교육8( 7.4)24(19.4)164(28.4)196(23.8)공개97(89.8)49(39.5)123(21.3)283(34.3)계108(100.0)124(100.0)578(100.0)824(100.0)5. 대책「아동에 대한 성범죄는 일반적인 성범죄 중에서도 이전에는 거의 없었지만 현대에 와서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 범죄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 역시 현재 많이 미흡하며 이에 대해 계속 보완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외국 사례와 더불어 최근에 추진 중인 아동 성범죄에 대한 여러 대책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① 미성년자 성폭행 미수도 처벌「지난 2005년 4월 초.강원도 모 시내에서 학원 버스를 운전하던 권 모 씨는 당시 11살된 초등학생을 성폭행하 려다 실패했습니다.다른 학생들을 데려다주고 홀로 남은 여학생을 차량 안에서 성폭행하려다 '경찰에 신고하겠다' 말에 겁을 먹고 미수에 그친 것입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권씨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권 씨는 오히려 '성폭행한 사실이 없다'며 피해 학생의 아버지를 무고죄로 맞고소했습니다.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무엇보다 미성년자 성폭행 미수범에 대한 처벌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아동·청소년 성매수 행위는 사실상 성폭행에 해당되는데도 현행 법률에서는 성관계를 맺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법적 문제점을 지적했다.미국과 영국에서는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기 위해 인터넷 채팅 등을 하는 경우에 처벌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노르웨이도 같은 제도 도입을 위해 법 개정 작업을 진행중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성매수 행위 대부분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단속하기 위해 검사·경찰관 등으로 구성된 청소년위 중앙점검단은 최근 영국 정부를 방문해 청소년 성 보호 정책 조사를 마쳤다. 영국은 만 18세 이상 성인이 만 16세 미만 청소년을 성적인 목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취한 뒤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경우 징역 10년 미만에 처하도록 하는 제도를 지난 2004년부터 시행중이다.」③ 위치추적 전자팔찌의 착용「아동 성범죄자와 상습 성폭행범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는 법안(특정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이 지난달 2일 국회를 통과했다.형기를 마친 성범죄자는 검사가 청구해 판사가 받아들이면 전자팔찌가 채워지고 수감 중에 가석방되는 경우는 법무부의 결정에 따라 이뤄지는데, 팔찌를 채우는 기간은 5년으로 제한했다.하지만 이 법은 단말기 개발과 시스템 운용 등을 위해 1년 6개월동안 준비기간을 두고 있어 빠르면 오는 2008년 10월쯤에나 시행된다.」④ 아동성범죄 예방프로그램의 시행「인천지방경찰청 『ONE-STOP지원센터』에서는 증가하는 아동 성폭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찰뿐 만 아니라 아동에 대한 교육과 국민들의 예방인식이 함께 이루어져야 아동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인천의료원과 하늘 인형극단(대표 이강식, 인천 서구 가좌동 소재)과 공동으로 아동 성범죄 예방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으며, 오는 3월 26일(월) 10시30분부터 인천의료원 대회의실에서 인천 지역 내 「명지」, 「동구사랑」, 「동산 어린이집」 아동 123명을 대상으
    인문/어학| 2007.11.15| 11페이지| 1,500원| 조회(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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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동학농민운동에 대하여
    1. 농민혁명의 시대적 배경19세기 후반 조선은 통치질서의 파탄을 맞았고, 그런 가운데 농민들은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다. 조선 팔도의 농민들이 예외 없이 이런 형편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산업의 거의 전부가 농업이던 때, 농업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호남지역의 농민들은 보다 극심한 수탈을 겪어야 했다. 어떻든 수탈과 궁핍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마을을 떠나거나 유리걸식(流離乞食:정처 없이 떠돌며 빌어먹는 일)하는 소극적 형태로 또는 관에 소장을 올리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또는 물리력을 동원한 봉기의 형태로 저항하였다. 농민들의 무력 봉기를 민란·민요·농민봉기·농민항쟁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농민 저항의 대표적인 형태였다. 기본적인 생존권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무력 봉기는 19세기 내내 전개되었으며, 19세기의 후반인 철종과 고종 때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이렇듯 농민들의 저항은 1세기 가량이나 계속되었지만, 그들의 생계 여건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 뿐더러 더욱 악화되는 가운데 1894년을 맞게 된다.(1) 농민층의 양극화18세기를 넘어서면서 조선사회는 이앙법(移秧法)이라는 새로운 농사법의 발달로 커다란 경제적 변동에 직면하였다. 이앙법은 농지이용도를 높이고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도왔다. 이런 농업생산력의 발전은 농업경영에도 뚜렷한 변화를 불러왔다. 농업노동력의 절감과 생산력의 증대라는 변화를 잘 활용한 지주나 농민들은 경영 규모를 확대해 갔다. 한편 생산력이 발전하는 가운데 상품화폐경제도 급속히 발달하여 농촌경제는 장시(場市:시장)와 연결되었다. 농산물의 상품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일고 있던 새로운 농업경영 즉 광작(廣作: 확대된 경작 형태)이나 상업적 농업(商業的 農業:시장을 상대로 한 농업)에는 일부 자작농이나 소작농이 참여하여 부를 축척하고 부농 또는 서민지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소수 지주나 상인에게 토지와 부가 더욱 집중되고, 많은 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하는 현상을 낳았다. 요컨대 조선후기 농업 경제상의 변동 속에서 농민층은 소수의 부농과 지주준과 이미 삼례집회 단계에서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전라도에서 최대의 동학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손화중의 세력 형성과정과 규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을 보자. '1892년 8월의 일이다. 전라도 무장현 선운사 도솔암 남쪽 수십 보쯤 되는 곳에 50여 척이나 되는 층암절벽이 있고, 그 절벽 바위 전면에는 큰 불상 하나가 새겨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 석불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검당선사의 진상(眞像:참 모습)이라고 하며 그 석불의 배꼽 속에는 신기한 비결(秘訣)이 들어 있다고 하며 그 비결이 나오는 날은 한양이 다된다(몰락한다)는 말이 자자하였다. ……(손화중 휘하의 동학교인들이) 석불의 배꼽을 도끼로 부수고 그 속에 있는 것을 꺼내었다.' 이처럼 '손화중 포(包)에서 무장 선운사 석불 속에 있는 비결이라는 것을 꺼낸 이후, 무장·고창·영광·장성·흥덕·고부·부안· 정읍 등 여러 고을 사람들이 이민(吏民:지방 아전과 백성)을 물론하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손화중의 세력 확대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농민혁명 직전의 사회 분위기 즉 새 세상이 열렸으면 하는 농민들의 기대와 무장일대의 강경한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다. 전봉준으로서는 이런 손화중의 동참을 이끌어 내야 했고, 이를 위해 12월 비밀리에 무장으로 내려가 손화중을 만났다. 하지만 '무장회동'에서 전봉준은 손화중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제1차 응징 대상인 군수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전임발령이 나자, 통문의 서명자 집단의 거사계획은 당분간 보류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나. 고부농민봉기의 전개와 해산익산군수로 전임발령이 난 군수 조병갑은 전임지로 부임하지 않고 계속 고부 관아에 남아 있으면서 전라감사 김문현을 통해 재취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사이 전봉준은 사발통문의 거사 의지를 누르고 전주감영에 다시 수세감면을 비롯한 폐정을 호소했으나 김문현은 이들을 몰아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조병갑은 고부군수로 재임명되었다. 조병갑이 고부慶廟)가 있는 영지(靈地)였다. 따라서 전주는 조선정부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봉기를 확대하려는 농민군에게 있어서도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었다. 사발통문거사계획 단계에서부터 전주가 주 공격목표가 된 것도, 농민혁명의 시작과 함께 관군의 거점이자 농민군의 1차적 점령 목표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남하하던 농민군이 감영병과 경군을 격파하고 전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북상하고 그 뒤를 홍계훈이 하루 차이로 쫓아옴으로써, 이제 농민군과 관군 사이에 전주성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전라감영 전주가 농민혁명의 중심무대로 떠오른 것이다. 전주성은 김문현이 4월 18일자로 이미 파면되었고 후임 감사 김학진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으며 감영병은 홍계훈을 따라 남행하였으므로,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26일 농민군은 전주 삼천까지 진격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전주성 공략의 채비를 마친 2∼3만여 명의 농민군은, 이튿날 전봉준, 김순명을 비롯하여 아기장수 이복용과 박선봉장 등의 지휘하에 서문밖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들은 용머리고개에서부터 일자로 진을 펼치며 전주성을 압박하였다. 4월 27일 전주 서문밖 장날, 장터 건너편 용머리고개에서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고 서문과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며 한편 총질을 하였다. 이때 전봉준 대장은 천천히 대군을 거느리고 서문으로 들어와 전주성에 무혈 입성하였다. 이로써 농민군은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자 전라도의 수부(首府: 한 도의 감영이 있던 곳)인 전주성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전투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였으며, 정부에 대한 전면적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나. 청,일의 개입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경악한 정부는 이원회를 양호순변사(兩湖巡邊使:조선시대 군무를 띠고 변경을 준검하던 특사. 주요 임무는 변방의 전반적 상황을 순찰하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진출의 기회를 노렸다.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1894년 5월 청군의 조선파병은 일본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따라서 일본은 조선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청국과 동시에, 더 많은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하지만 청,일군대의 출병 직후에 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함으로써, 조선의 정국은 일본의 기대와는 일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선정부는 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했으므로, 즉 내정이 안정되었으므로 일본군은 철병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철병을 거부하는 한편, 청과 분쟁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조선정부는 청군의 철병도 요구했으나 역시 일본군의 증강을 앞세워 거부하였다. 조선정부는 양국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조선 주재 서양 각국의 공사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러시아, 영국과 미국 등이 중재에 나섰으나, 일본은 열강의 모든 조정안을 거부했다.일본은 청·일전쟁을 도발하고 조선을 장악하기 위한 계획을 서둘러 세워갔다. 즉 일본은 '조선국왕을 포로로 잡아 조선정부를 장악하고(1단계) →조선정부를 압박하여 청국 군대의 축출을 일본에 의뢰케 하며(2단계) → 조선의 의뢰를 기다려 청군을 공격한다(3단계)'는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해 간 것이었다. 일본은 6월 21일에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일본군은 용산에 있는 병력을 출동시켜 궁궐 출입문을 폭약으로 부수고 들이닥쳤다. 이것이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이다. 조선정부를 장악한 일본은 고종을 협박하여 아산에 있는 청군의 철퇴를 일본에 의뢰토록 강압하였다.이렇게 개전(開戰)의 구실을 만든 일본군은 아산만 앞 풍도에 주둔한 청군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로써 청,일 전쟁의 막이 올랐다. 풍도(豊島,경기 안산시 대부동(大阜洞)에 딸린 섬) 기습공격과 충청도 아산, 성환 전투에서 청군은 패퇴하였다. 청·일전쟁에서 가장 큰 전투는 평양에서 전개되었다. 청군 2만여 명과 일본군 12,000여명이 평양성을 사이에 두고 격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청군을 궤멸시킨데 이어 대동강과 압록모인 것은 아니다. 상당수 지역의 농민군은 보은에 집결하지 않고 해당지역에서 세력을 이룬 가운데 해당 관아를 점령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또한 이들은 인근 지역의 농민군과 힘을 합쳐 주변지역을 공격함으로써 북상하는 주력 농민군을 측면 지원하였다. 충청도 일대의 농민군이 대대적을 봉기하여 집결하자, 최시형은 10월 11일경에 이 사실을 전봉준에게 알렸다. 이에 전봉준은 4,000여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삼례를 출발하여 10월 12일 논산에 도착하였다. 손병희가 이끄는 농민군도 보은을 출발하여 15일경에는 논산에 합류하였다. 거의 같은 때인 14일 김개남은 8,000여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남원을 떠나 16일 전주에 도착하였다. 한편 삼례에 올라와 있던 최경선은 전봉준과 상의한 후에 광주, 나주로 가서 손화중과 함께 일본군의 해로를 통한 협공에 대비하였다. 이렇게 10월 16일까지는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의 농민군이 총동원되었다. 그리하여 전봉준, 손병희는 북상하고, 김개남은 북상군의 거점지인 전주에 남아 다른 날에 대비하며, 손화중과 최경선은 후방을 수비하는 총력전의 형태를 갖추었다. 10월 중순에는 실질적으로 무력 봉기할 수 있는 체제가 완성된 것이다. 이제는 본격적인 북상이 시작되었다.한편 개화파 정권은 9월 9일 이두황을 장위영 영관, 성하영을 경리청 영관으로 임명하여 경기도와 충청도로 내려보냈다. 이어 21일 농민군 진압을 도맡을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을 설치하고 도순문사(都巡撫使)에 신정희, 선봉장에 이규태를 임명하여 농민군을 진압토록 하였다. 10월 11일 서울을 출발한 이규태는 남하 도중에 일본군 1대와 합류하였다. 그는 휘하의 군대를 미리 공주 일대로 진군시킨 데 이어 자신은 24일 공주에 도착, 이후 공주전투에서 관군을 지휘하였다. 이와 별도로 이두황은 장위영병을 지휘하며 경기, 충청도 일대의 농민군과 잇따라 접전을 벌이며 남진하였다. 일본도 9월9일 농민군 진압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18일 일본군대를 보내어 농민군 진압을 돕겠다고 나섰고
    인문/어학| 2007.11.15| 26페이지| 2,000원| 조회(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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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기][감상문]국립중앙 박물관을 다녀와서...
    군입대하기 전 전철로 통학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이 건축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었다. 그때는 그저 박물관이라는 것에 흥미도 없었고 관심도 없던 나였기에 그저 지나가는 풍경 보듯이 흘려보곤 했었다. 그리고 전역 후 다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의 모습을 보며 그 크고 화려한 모습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여태껏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비록 자의적이진 않지만 리포트를 계기로 하여 생각만 했던 곳에 드디어 갈 수 있었다.처음 박물관에 도착하여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는 많이 당황했다. 평소 길치였던 나였기에 어디에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지 몰라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마침 앞에 눈에 띈 표지를 따라 무작정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 본 것은 외국인이나 우리나라사람이 돌아가시면서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한 발짝 발을 디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토록 찾던 도자기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가 박물관에서 도자기들을 전시해놓은곳 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전시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몇 시간 후에 3층이 도자기 전시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와 제일 처음 볼 수 있었던 도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였다.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 거북이 등과 같이 오래 사는 것들을 생활 곳곳에 그려 넣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였는데 이곳에 전시된 백자에서도 조상들의 그런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본 것은 비록 짧은 기간동안 만들어졌지만 가장 한국적인 미관을 담고 있는 분청사기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본 것은 연꽃은 상감기법으로 장식되어 있고 윤곽선은 흰흙, 안쪽은 검은 흙을 채워 그 문양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낸 연꽃넝쿨 무늬 분청사기였다. 비록 백자와 청자같이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은 아니지만, 분 [연꽃넝쿨무늬분청사기 & 백자] 청사기만의 생동감과 자유분방한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다음 전시장에서는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의 토기들을 볼 수 있었다. 청자, 백자등과 같은 자기들과는 달리 토기에는 소박함과 푸근함,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토기도 다 같[고려 & 조선토기] [통일신라토기] [백제토기]은 것이 아니라 신라의 토기는 화려함을 백제의 토기는 수수함속의 우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고려와 조선의 토기는 재료만 흙일 뿐 청자, 백자와 그 모습이 유사함을 볼 수 있었다. 청자, 백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그런지 토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토기전시장을 지나던 중에 옆 전시장에서는 기와를 볼 수 있었다. 수업시간 영상물에서도 본 기와는 평소 만들기도 쉽고 흔하다는 생각과는 달리 제작과정도 힘들고 또한 예술품의 하나로 여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도자기이다. 이러한 기와를 이곳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는데 고구려의 기와는 연꽃무늬를 새긴 화려한 모습의 기와였으며 고려의 기와는 특이하게도 청자기와였다. 평소 기와는 흙의 색깔을 뗬거나 약간 푸른색이라고 생각했지만 고려의 기와는 청자의 색깔과 똑같고 그 모습 또한 기와라기보다는 도자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그 화려한 푸르른 색에 빠져 있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고려시대 청자기와] [연꽃무늬 기와]2층에서의 관람이 모두 끝나고 3층으로 가던 중에 특이한 이력의 도자기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외국의 토기들이었다. 생김새부터 여태껏 보아왔던 토기들과는 달리 특이해서 쉽게 눈에 뜨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토기같은 경우에는 마치 커다란 술잔을 보는 것같이 특이한 모양새였고 이란의 토기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의 장독에 손잡이를 달아놓은 모습이었다. 색 또한 우리나라 토기의 진한 갈색계통이 아닌 살색과 같은 연한색이어서 많은 차이를 보여주었다.[이란의 토기] [아프가니스탄토기]처음부터 왔어야 했던 3층 도자기 전시관을 박물관에 도착한지 무려 2시간 만에 오게 되었다....;; 2시간 만에 찾아온 도자기 전시관에서 맨 처음 나를 반겨준 것은 백자였다. 그중에서도 청화 백자였다. 새하얀 바탕에 파란색의 문양을 집어넣은 깔끔함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색의 조화였다. 청화백자의 다음으로 본 것은 철화백자였다. 철화백자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수업시간에 교수님 말씀을 소홀히 했을 수도;;) 당연히 본적도 없어서 신기했다. 철을 안료로 하여 포도넝쿨을 뛰어넘는 원숭이를 새겨 넣었는데 새하얀 흰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문양을 새겨 넣어서 인지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독후감/창작| 2006.06.23| 2페이지| 1,000원| 조회(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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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문]정보화시대의 자아정체성(시몬,AI를 보고)
    ■ 서 론 ■인터넷 보급률 세계1위의 우리나라. 21세기 정보화시대에 발맞춰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기는 하나 실제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정적인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정보화의 실태이다. 그러한 부정적인 면들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사이버 세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컴퓨터가 보급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우리의 생활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어왔다. 몇 백 자리 숫자의 계산도 단지 1초도 되지 않아 계산 해내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얘기할 수도 있으며, 집에서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여 은행업무, 생필품 구입, 민원업무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10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 과연 우리에게 좋기만 한 것일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찬란한 정보화 시대에도 그늘은 존재한다. 그러한 그늘 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러한 정보화 시대에 흔들리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보면 온라인 게임 상의 아이템을 놓고 다투다 벌어진 초등학생들의 칼부림 사건과 같이 무엇이 더 중요한지의 가치를 판단할 능력을 상실한 일하며, 조금은 우습지만 현실에서는 남성이면서도 사이버 세계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여 여성으로 활동하며 그것을 즐긴다든지 하는 성 정체성의 혼동등과 같이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시몬’ 과 ‘A.I' 이 영화 두 편을 통해 정보화 시대인간 정체성의 중요성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본 론 ■영화 ‘시몬’ 과 A.I'는 사이버 세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내지는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여배우에 집착해가며 고통 받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와 상상 속에 엄마를 찾아 떠나가는 한 로봇의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이 두이야기는 단순히 영화상의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에게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는, 실현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와 닿는다. ‘시몬’에서 감독이 만들어 냈던 가상의 여배우 ‘시몬’은 현재 우리의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이야기이다.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비록 잠시였지만 사이버 가수로서 한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아담’을 생각해 낼 수 있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사실적이진 않지만 ‘아담’도 ‘시몬’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세계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간이다. ‘아담’이라는 사이버스타의 탄생과 함께 필연적으로 많은 팬들이 확보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열광했었다. 하지만 아직 인간과 완벽히 같지 않고 이미 가상의 인물이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몬’에서처럼 사이버 인간이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고 또한 대중에게 실제 살아있는 인간으로써 홍보된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인간에게는 없는 그 완벽함에 매료될 것이고 또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면 그에 따른 충격은 클 것이다. 현실에서 스타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 팬이 따라서 죽는 것처럼 가상의 인물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현실과 사이버 세계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혼란을 겪게 될 것이고 잘못된 선택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로봇’의 경우는 사이버세계에서와는 달리 실제로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있는 더욱 사실적이라는 것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을 가져올 여지가 충분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실제로 보고 만져지는 로봇의 경우에는 단순히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경우와 달리 그 혼란의 크기가 더욱 클 것이다. ‘로봇’과 ‘사이버인간’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피부로 느낄 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영화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든 어려움이나 역경이라 하더라도 미리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독후감/창작| 2006.06.08| 2페이지| 1,000원| 조회(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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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문]21세기 창조적공론에 대해 평가A좋아요
    ■ 서 론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2년생으로서 나에게 ‘취업’이란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꾸준히 미래의 일자리를 위해 준비하고 애쓰지 않으면 취업이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꾸준한 노력과 자기 개발만이 취업의 성공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I.M.F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안타까울 때도 있곤 했다.21세기 세계는 ‘국제화시대’에 발맞추어 급속히 변해 왔고, 또 현재 계속 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시대에 옛날과 같이 자신의 나라 울타리 안에서, 같은 언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생활을 하며 평생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로 발전 없는, 비전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손자병법에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얘기했다.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좁은 울타리안의 ‘나’와 ‘너’만이 경쟁상대 이며, 배워야 할 상대가 아니라 더 나아가 울타리 밖의 ‘그들’에게서 배우고 또 경쟁하며 그것을 통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의 실태와 비록 적은 아니지만 해외의 성공한 사례 등을 제대로 알고 배운다면 작게는 좁은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 좀 더 폭넓은 사고로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며 유연하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취업’ 나아가서는 ‘성공’으로 가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본 론 ■이런 의미에서 ‘창조적 공론’이라는 글은 이런 나에게 열쇠로써의 의미를 갖게 해주었다. 또한 현재 세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한 차원 더 높은 시야를 갖게 해주는 좋은 계기를 가져다주었다.우선 처음으로 나왔던 일본과 독일의 세대간의 공존은 ‘무조건 어른 먼저’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나라에서 자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두 나라에서는 노인층 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신들의 권리만을 외치지 않고, 또 젊은 층이라고 해서 노인층에 대한 연금을 거부하지도 않은 채 서로의 ‘창조적 공론’을 모색한 결과 위기를 타파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다음으로 소개된 핀란드와 중국의 차별화된 교육정책 또한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고, 공고를 겉으로는 대학진학이 목표가 아닌 기술을 가르쳐 사회에서의 전문직 인력을 생산한다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고나 공고에 진학한 대부분의 학생이 인문계 진학에 실패한 소위 공부 못 하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그런 면에서 핀란드의 꼴찌도 챙기는 교육제도는 정말 이상적이라 할 수 없었다. 꼴찌도 뒤처지지 않게 챙겨 일정수준 이상 올라가면 그 뒤로는 자율적으로 경쟁시켜 능력을 향상시키는 제도는 어찌 보면 꼴찌는 버리고 1등만을 챙기는 우리나라의 실태와는 달리 ‘정’이 있다고 느껴진다.또한, 중국의 경우에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난다’라는 격언을 잘 살린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일반 ? 고급 ? 특급교사의 구분을 나눠 교사라는 명함만 따면 정년까지 발전 없이 안전하게 생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교사가 되는 것과 동시에 경쟁을 통해 스스로 노력하고 개발하여 그에 따른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제자만을 채찍질하지 않고 그 스승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중국의 거꾸로 된 발상은 정말 기발하다고 밖에 생각 할 수가 없다.기업 경영의 예로 나온 덴마크와 美위스콘신주의 ‘유연한 안정성(Flexicurity)', 그리고 일본과 미국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경영자나 노동자 두 입장에서도 가장 이상적으로 여길만한 경영 모델이라고 보여진다. 안정을 원하는 노동자와 기업경영 간의 능률성과 경쟁력을 원하는 경영자의 욕구 모두 충족시킬 수 있으며, 둘 사이의 욕구가 충돌하여 ‘제로섬’이 아닌 ‘시너지’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본받을 만한 경영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터키와 EU의 사례에서는 문명에 대한 ‘창조적 공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과 같이 유사한 문명끼리의 협력이 아닌 전혀 다른 아시아와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문명의 협력에서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며 ‘창조적 공존’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국제화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다음으로 소개된 한류에 대한 사례는 경영, 교육, 문명에 이어 문화에 관한 사례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류는 아시아 각국의 나라와의 문화 교류를 통한 공동체적인 것이 아닌 ‘한류 패권주의’로 비유되는 일방적인 문화교류라고 볼 수 있다. 지금 TV를 틀고 어느 채널을 보더라도 해외에 진출한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모습만 볼 수 있을 뿐 우리나라에 진출한 해외 연예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홍콩의 사례로 든 것과 같이 한쪽의 일방적인 문화교류는 그 수명이 오래 갈 수 없다. 반짝하는 한류가 아닌 100년이 지나도 번영할 수 있는 한류를 위해서는 대상 국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 단독 제작이 아닌 합작이나 공동제작, 배우 중심이 아닌 시스템 중심의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고 정착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新한류’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06.08| 3페이지| 1,0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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