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똘레랑스나는 이번 서유럽사회와 문화라는 과목에서 프랑스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배우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부끄럽게도 나에게 프랑스는 파리와 에펠탑이 전부였다. 바로 하드웨어적인 것만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수업에서 프랑스의 핵심은 바로 프랑스인들의 정체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 나의 이목을 가장 끈 것은 바로 똘레랑스(tolerance)이다. 똘레랑스는 프랑스인들 스스로 프랑스에 태어나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되는 즉 사회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라 말할 수 있다. 마치 한국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이라는 것을 습득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똘레랑스는 우리나라 말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정’이라는 말뜻을 다른 나라언어로 옮기기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똘레랑스를 만약에 우리의 사회에 접목시킨다면 ‘우리는 좀 더 합리성과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열린사회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번 과제의 주제를 똘레랑스로 잡은 이유이다. 비록 실질적으로 눈에 드러나는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료를 수집하는 면에 있어서나 분석하기에 난해한 면이 많았지만 그래도 우선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기본 코드를 잡아야만 진정으로 프랑스의 똘레랑스 정신을 이해할 수 있기에 여러 서적을 읽은 결과 어느 정도 똘레랑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똘레랑스는 사회적 의미가 우리나라의 ‘정’보다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정’은 감성적인 표현이라면 똘레랑스는 이성의 표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똘레랑스란 무엇이며 그 정신을 프랑스가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자.똘레랑스는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남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정신자세를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똘레랑스는 종교에 대한 군주의 구체적인 태도를 가리켰는데, 종교개혁 시기, 기독교적 진리의 단일성이 산산 조각나고 국가 권력이 확립될 무렵, 신앙의 다양성에 직면한 군주는 그의 시민들에게 진리에 동참하도록 강제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놔둘 것 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의 똘레랑스는 공적인 소관 사항으로서, 종교의 진리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탄압하지 않은 정치와 그런 정치를 실행하는 군주의 개인적 태도를 가리켰다. 군주는 자유인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조금씩 ‘사적인’ 똘레랑스에 관한 생각이 자리를 잡아 결국 똘레랑스는 프랑스의 철학전통인 회의론에서의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회의에 의해, 나의 사상과 행동만이 옳다는 아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18세기 초에 이미 똘레랑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 몽떼스끼외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으며 사회운동의 실천과정을 통하여 보편적 가치로 다져져 사회 안에 정착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사회에서 똘레랑스의 의미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예로 프랑스 공원의 잔디밭에 가면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라고 적혀 있는 팻말을 볼 수 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요구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똘레랑스는 바로 이 팻말과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정치적·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인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길 요구하고, 자기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을 남에게 강제하는 행위를 반대하는 것, 똘레랑스의 첫 번째 뜻이다. 똘레랑스가 강조되는 사회에선 강요나 강제대신 토론을 한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노력한다. 싸우지도 않는다. 미워하거나 앙심을 품지도 않는다. 이런 똘레랑스의 사회에서 모든 정치적 이념이 인정된다. 똘레랑스의 요구는 정치적 성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적용된다. 똘레랑스는 이웃을 인정하고, 외국인을 인정하고,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화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은 내국인과 똑같이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으며, 가족수당, 주거수당 등의 제반 수당을 똑같이 받을 뿐만 아니라 무료교육을 받을 권리도 있다. 똘레랑스의 원칙은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80퍼센트에 가까운 가톨릭 인구를 갖고 있는 프랑스인데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모든 공립학교에서 신앙교육은 배제되며 가톨릭학교에서도 특별한 장소에서나 가능하며 신앙교육도 제한을 받는다. 가톨릭학교는 무신앙자나 타종교자도 받아들여 교육을 시킨다. 이것은 나와 다른 신앙에 대한 그리고 무신앙에 대한 똘레랑스가 있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자기가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남을 존중하며, 당신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다른 사람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며, 다른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를 존중하라고 요구한다. 실제 사회생활에서 똘레랑스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소수민족에 대한 다수민족의. 소수 외국인에 대한 다수 내국인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를 막으려는 이성의 소리로 나타난다.똘레랑스의 두 번째 말뜻은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이다. 똘레랑스는 원래‘허용 오차’를 뜻하는 공학 용어인데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어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라는 뜻이 되었다. 똘레랑스의 첫 번째 말뜻이 나와 남을 동시에 존중하고 다수가 소수를 포용하기 위한 내용을 품고 있다면, 두 번째 말뜻은 권력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 예를 들어 제한속도 100의 도로에서 10~20의 똘레랑스를 보이는 것 그러니까 110~120의 속도는 괜찮다는 말이다. 파리의 차도에는 차선도 중앙선도 없는 길이 꽤 많다. 그래서 차선 위반이나 중앙선 침범으로 적발되는 일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또한, 인도 가운데까지 차지하고 영업하는 카페나 식당들이 있는데, 약간의 점유 비를 지불하고 인도에 베란다를 설치, 좌석을 늘려 영업할 수 있게 허용된 것이다. 그리고 시내 요소요소의 인도에는 “인도 위에 주차 허용됨”이라는 팻말이 있다. 주차의 권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허용되는 곳이기 때문에 주차료를 내지 않는다. 똘레랑스는 “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지되는 것도 아닌 한계자유”를 뜻한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 익숙한 프랑스인들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구호나 지시 또한 싫어한다. 그렇다고 행정지시를 안 따르며 공중도덕도 엉망이라는 프랑스인들이지만 해변의 유원지 같은 곳에서의 지킬 것은 지킨다. 즉, 공권력의 영향력에 대하여 약자로서 강자에게 똘레랑스를 요구하며 응수하지만, 같은 개인에 대해서는 “내가 존중받으려면 남부터 존중한다.” 는 첫 번째 의미의 똘레랑스를 지키는 것이다. 똘레랑스는 개인이 권력에 요구하는 것이지 권력이 개인이나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