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코드란 무엇인가?바코드는 굵거나 가는 바 (검은 막대)와 스페이스(흰 막대)의 조합에 의해 영숫자 또는특수 기호를 광학적으로 판독하기 쉽게 부호화한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정보의 표현과 정보의 수집, 해독을 가능하게 한다.문자나 숫자를 나타내는 검은 바와 흰 공간의 연속으로 바와 스페이스를 특정하게 배열해 이진수 0과 1의 비트로 바뀌게 되고 이들을 조합해 정보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들은 심볼로지라고 하는 바코드 언어에 의해 정의된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다.즉, 바코드는 컴퓨터 내부 로직의 기본인 0과 1의 비트로 이루어진 하나의 언어로, 바의 두께와 스페이스의 폭의 비율에 따라 여러 종류의 코드 체계가 있다. 이 인쇄된 코드는 바코드 인식 장치에 빛의 반사를 이용해서 데이터를 재생시키며 재생된 데이터를 수집, 전송하는 것이다.※ KAN CODE 종류 및 체계 표준형(13자리) --> 우리나라 표준바코드① 국가번호 : 3자리앞의 3자리로 국가식별, 한국은 지난 88년 국제상품코드관리기관에 회원국으로 가입, 880을 국가번호로 취득국가번호는 국제상품코드관리기관에서 각국에 부여한다.② 제조업체코드 : 4자리③ 상품 품목코드 : 5자리5자리 숫자로 자사가 생산하는 개별단품을 식별, 상품품목코드는 "00000-99999"까지 10만가지 단품에 부여할 수 있다. 제조업체에서 자사가 생산하는 상품에 각각 다른 5자리 번호를 부여한다.④ 체크디지트: 1자리하단에 표시된 숫자가 막대모양의 바코드로 올바르게 변환되었는지를 검증하는 숫자이다. 체크디지트는 정해진 계산방식이 있으나 통상 필름마스타업체에 12자리 숫자만 통보하면 필름마스타업체에서 자동 계산, 13자리의 필름마스타를 제공한다.※ 바코드 구조①. QUIET ZONE바코드의 시작과 끝에는 여백이 있는데 이 여백을 QUIET ZONE이라 하여 가장 좁은 요소의 10배 이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시작 문자의 앞과 멈춤 문자의 뒤에 있는 공백 부분을 가리키며 바코드의 시작 및 끝을 명확하게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심벌 좌측의 여백을 전방 여백, 우측의 여백을 후방 여백이라 한다.② START/STOP CHARACTER시작문자는 심벌의 맨 앞부분에 기록된 문자로 데이터의 입력 방향과 바코드의 종류를 바코드 스캐너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멈춤 문자는 바코드의 심벌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 주어 바코드 스캐너가 양쪽 어느 방향에서든지 데이터를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③ CHECK DIGIT검사 문자는 메시지가 정확하게 읽혔는지 검사하는 것으로 정보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이용되고 있다.④ INTERPRETAION LINE사람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정보(숫자, 문자, 기호)가 있는 바코드의 윗부분 또는 아랫부분을 말한다.⑤ BAR/SPACE바코드는 가장 간단한 넓고 좁은 바와 스페이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중 가장 좁은 바/스페이스를 'X' 디멘전이라 부른다. 'X' 디멘전이 바코드의 구조상 가장 최소 단위를 이루는 것이면 모듈이라고 한다. 좁은 바/스페이스와 넓은 바/스페이스는 1:2 또는 1:3 정도의 비율이 필요하다.⑥ INTERCHARACTER GAPS문자들 간의 스페이스('X' 디멘전 크기)를 말한다.※ Interleaved 2 of 5 Code이 코드는 1972년 미국의 Intermec 사가 2 of 5코드의 효율을 증대시키기 위해 개발 하였으며, 산업용 바코드 중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한 개의 숫자가 5개의 바와 5개의 스페이스를 교대로 조합시켜 이루어져 있으며 문자 사이의 갭을 없앴다. 하나의 자리(0부터 9중의 숫자)를 표시하는 데는 5개의 바 또는 5개의 바와 바사이의 공간이 필요하다. 또한 하나의 자리를 표시하는 5개의 바 또는 공간은 폭이 넓은 것, 2개 좁은것 3개로 구성된다. 정보 표시부는 두개의 자리를 표시한 것의 예이다. 정보표시부를 자세히 보면 5개의 바와 5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5개의 바는 하나의 자리를 표시하는데 이때 각각의 바는 어떤 공간을 가지고 떨어져 있게 되므로 5개의 바를 표시해서 하나의 정보를 표시하게 되면 저절로 5개의 공간을 표시하게 되므로 원하지 않더라도 또 하나의 정보를 표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Interleaved 2 of 5는 바와 바 사이 또는 공간을 이용하는 경우 공간을 나누는 바에 의해 언제나 한쌍의 정보(두개씩)를 표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코드는 문자의 수가 짝수여아 하므로 홀 수 개의 문자가 들어 왔을 경우에 "0" 이 맨앞에 붙여지나 바코드 중 가장 짧은 것이 특징이다. 숫자 데이터 표현시 많은 데이터를 짧게 코드화할 수 있고 자체 검사 기능도 뛰어나므로 산업용 및 소매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Interleaved 2 of 5 Code 의 증명하기.① Incode the symbol.=> 1은 drak나 bar로 표현 할 것이고,0 은 light나 space로 나타낼 것이 다. double-wide bar 11, single-wide space 0, single-wide bar 1로 표현 가능.② Interleaved 2 of 5의 기본 구조ⅰ) Start character 는 1010 으로 encode한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고...‘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비평문 쓰려고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소설책은 그냥 무조건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나에게 비평문을 쓰라고? 비평문은 이 소설이나 작가에 대하여 비판을 해야 하는것인가? 아무튼 나는 이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읽으려 노력했다.이 소설이 배경이 나와 연관된 곳 많아서 인지 왠지 모른 동질감과 친근감 같은 것은 것을 많이 느꼈다. 인왕산, 청화대와 가까운 곳 하면 내가 다닌 배화여자고등학교와 비슷하다. 정확하게 학교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보면 학교에서 영주나 할머니가 학교에서 놀고 왔다고 나오던데. 그 장면이 꼭 우리 학교를 나타내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를 추억이 떠올랐다. 그것뿐 만아니라 동구 할머니의 고향이 울 아버지 고향이어서 인지 거기에서 나오는 고추밭 이라던지 노루너미 너무나 친숙한 곳인데....아무튼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70년대 80년대 초반에 잠깐 잠깐 나오는 사건들이 물론 동주의 시선에서 이 책을 쓰기 때문에 자세하기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통령 할아버지가 죽었다던가, 탱크가 있어서 동구가 학교에 못갔다던가, 주리 삼춘이랑 박선생님이랑 이태혁이 하는 민주화나 군부 독재와 같은 대화에서 잘 나타나있었다.과연 이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란 무엇일까? 처음에는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이란 삼층집 정원이였다. 그냥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동구에게는 정원이였다. 하지만 동구가 박선생님을 좋아하고, 동생 영주가 죽고 난후 동구의 정원은 마음의 정원이 아닌가 한다. 동구는 이제 순수하게 그대로를 아름다운 정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에 힘겨워서 박선생님이나 영주와 그리고 엄마에 대한 고통이 너무 커서 여기서 나오는 금빛 가슴털의 새, 야윈 곤줄박이는 지치고 힘든 자신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인왕산을 떠나서 견디기 너무 힘드니 잠시 도피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작가는 황금빛 깃털의 새 챕터나 정원을 떠나며 챕터에 동주가 얼마나 슬픈지는 그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실제로 가장 슬픈 사람은 동주이다. 단지 야윈 곤줄박이나 자면서 우는 것이 대신했다. 집적적으로 작가가 동주의 슬픔을 자세히 서술했다면 아마 그 아픔이 덜 전달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남의 눈으로나 야윈새에 빗대어서 표현함으로써 아픔을 극대화 시켰다.영주의 귓속에서 색깔이 어두운 애벌래가 느릿느릿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애벌레는 생전 처음으로 맡는 밤 공기 내음이 마음에 드는지, 잠시 발검음을 멈추고 귓바퀴의 물렁뼈 위에서 몸을 부풀리며 휴식을 취했다. 라는 부분에서 작가는 왜 피를 애벌래라고 표현했을까? 아마도 동주의 눈에는 애벌래로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냥 피가 흘렀다고 하면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영주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 올지 모르니 동주는 그냥 애벌래가 기어나온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단지 회피하는 것에 불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난 이푠이 가장 맘에 든다.이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평범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어린아이가 선생님을 좋아하고 엄마는 할머니한테 구박받고, 너무나 뻔한 스토리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책이 가슴속 깊이 애려오는 이유은 슬픔의 표현을 집적적으로 하지 않는다. 슬픔을 느낄 수 있게 비유나 은유를 통해서 슬픔을 나타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슬픔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 박하사탕을 보고..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며 그것의 예술성이라 함은 여러 영화제에서도 입증되었듯이 너무나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영화를 보는 동안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약 2시간동안 영화 그 자체를 즐겼다기 보다는 그저 주인공 영호 역을 맡았던 설경구라는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하여 그의 연기를 감상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그것이 단순히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괴리인지 아니면 영화 자체가 386세대를 배경으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나에게 있어 어렵게 느껴졌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둘 다 작용 했을 것이다.나는 전형적인 공대생 이어서 영화를 볼 때 에도 저감독은 아니면 저주인공은, 저사람은 왜 저런 행동들을 했을까?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것은 무엇일까? 에 대해서 분석하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이상한(?)버릇이 있다. 그래서 이감상문을 쓸때에도 내가 이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이감독이 과연 말하는것이 무엇일까에 대하여 내가 느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전개된다. 가장 오염되고 타락하여 결국엔 ■■나 다시 돌아갈래 ■■라고 절규하며 기차에 뛰어드는 마흔 살에서, 박하사탕을 좋아하는 이름 없는 꽃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는 가장 순수했던 스무 살로 말이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바로 왜 시간을 거슬리는 구도로 잡았을까 하는것이다. 글의 처음에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난해했다. 연호가 왜 무턱대고 기차에 뛰어들었는지부터 아무런 설명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의문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가면서 하나씩 풀어져 갔다. 아마도 작품이 과거-현재-미래라는 일반적인 형식을 따랐다면 관객으로 하여금 너무 쉽게 결말을 예상하게 했을것다. 하지만 이유는 말해 주지 않은 채 결과부터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것이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하나씩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처럼 느끼게 하여 관객을 지루하지 2시간동안 붙잡아 둘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되었다. 또한 시간순의 구성을 취했다면 주제는 어쩌면 386세대의 한 개인이 타락해가는 과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그가 점점 타락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왜 그랬는가 되짚어 감으로써 영호에게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를 줄 수 있었것 같다. 마치 고등학교 때 배웠던 미괄식의 구성처럼 가장 마지막에 주제를 드러낼 때 그것이 좀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출발점으로 즉, 예전 때묻지 않았던 시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므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도 들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그것을 영화에서 시간을 되돌리면서 이뤄낸 것이다.영호는 순임이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기를 왜 그냥 팔아버렸을까? 젊은 시절 영호는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 그것은 영호의 바램이었다. 적어도 그때 영호는 꿈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가 순임이게서 사진기를 받았을 땐 이미 그런 꿈을 모두 사라진 후였다. 그렇다고 사진기를 판 돈으로 고작 빵과 우유를 사먹는 영호의 마음이 절대 홀가분하거나 즐거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팔 정도로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세상에 패배하고 변해버린 자신에게 더욱 철저히 실망하고 좌절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것이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로 인해 마지막에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결국은 죽음을 택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삶은 아름답다?! 영호는 그가 경찰일 때 고문했던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두 번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경찰 시절 질문하던 영호의 심정과 다시 가구점 사장이 되어 만났을 때의 심정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처음 고문하던 때의 영호는 순수와 타락(비유가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도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따라서 그의 질문속에는 인생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말과 동시에 그래도 개인에 따라 삶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식당에서 다시 그를 본 뒤 질문을 하던 그의 말 속에는 더 이상의 희망은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마치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삶은 아름다울게 없다는 그리고 당신도 이미 그걸 느끼고 있지 않느냐는 식의 이미 답은 결정된 문제에 대해 단지 그의 생각을 확인하려는 차원의 질문 같았다.군산으로 간 영호는 다방 여종업원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왜 그녀가 그리 쉽게 영호에게 허락했는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단순히 몸을 내줬다는 의미를 떠나 어떻게 그녀가 영호의 말 몇마디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생각을 공감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진실은 통한다라는 말처럼 그것은 아마도 그 이야기를 하던 그 순간만큼은 영호의 마음이 순수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하필 왜 그녀였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경찰이었던 그 시기까지만 해도 영호에겐 예전의 모습 즉, 순임과 사랑을 나누었던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왜 영호가 순임을 버린것일까? 그것은 사진기를 팔아 버린 것과 유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순임과 함께 했던 시간은 영호가 젊음의 열망을 가졌던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영호는 점점 변해가고 있었고 순임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내재되어 있던 자신의 광기가 터져버린 뒤였다. 따라서 그때의 영호에게 있어 순임과의 사랑이라는 것은 한 때 지나간 기억억에 불과했다. 그런 사랑을 하던 김영호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후였던 것이다.감독은 과연 영호는 유죄라고 생각하는가 무죄라고 생각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선 애매한 점이 많았다. 과연 영호의 죄가 무엇인가부터 말이다. 단순히 이 오발사고에 대한 것을 묻는다면 이것은 법률적으로 너무나 명백히 유죄다.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지만 형법에 의한 과실치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따라서 이 점에 대해선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같고 그가 고문을 가했던 행위를 죄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감독이 그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느냐하는 질문이므로 도덕적인 측면에서 과연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감독은 오히려 영호가 가해자가 아니라 역사에 의한 피해자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영호라는 한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그를 통해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반영까지는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영호의 행동에 그 당시 사회적인 배경이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가 그토록 잔혹하게 변해버린 것은 그 당시 사회가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자신에게 그런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것을 떠나서 또 설사 그에게 그러한 면이 잠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감싸주지 못하고 그것을 끄집어 내어 영호에게 더욱 더 잔인해지길 부채질해 결국 그를 타락하고 정신적인 황폐를 겪게 한 것이라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