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민의 사명과 국어의 나아갈 길1.머리말국어(國語))는 ‘나라의 말’이다. 이는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어떤 사회가 구축한 문화는 언어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언어를 잘 살펴보면 그 사회의 문화적 특징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근래 통신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를 ‘통신언어’)라 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면 개인 PC의 다량보급과 채팅의 활성화, 청소년들의 언어생활 등을 찾아 낼 수 있듯이 언어는 그 자체가 사회상이나 시대상을 대표할 만한 문화유산이다. 또 국어란 우리 생활과는 따로 떼어 놓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와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우리들은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말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말은 우리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낸 표본이기도 하다.그러나 현재 우리는 우리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우리말의 정체성은 민족의식의 정체성혼란과도 일치한다. 이글에서는 국어의 중요성과 이용실태 그리고 국어가 나라에 이바지 하는 영향 등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국어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도록 한다.2. 국어의 중요성 인식(실태)세계화나 지역화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국어와 관련된 문제이다. Fischer(1999)에서는 미래에는 언어의 소멸 속도가 급속도로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300년 이후에는 영어와 중국어, 스페인어만 살아남을 것이고, 부유한 사회를 가지고 있는 일본어, 독어, 불어, 이태리어는 문화적인 이유로 몇 백년 정도 존재할 것이라고 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언어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어의 소멸위기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민족의 얼이 담겨져 있는 국어의 소멸은 민족의 소멸을 위미하기도 하며 동시에 강대국의 식민지화를 재촉하는 역할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국어 즉,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첫째,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모국어 교육과,우리말 찾기 운동의 국내적인 모색과 국외적인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의 발전을 조명해 보도록 하자.2-1.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모국어) 교육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국어교육은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 ‘말하기’나 ‘쓰기’는 초등 교육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읽기’와 ‘말하기’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지 않다. 굳이 학교에서 교육시키지 않아도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또 익히기 때문에 국어과목에서 실행되고 있는 부분은 ‘문학’의 영역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많은 학생들은 국어는 ‘문학’과 연관 지어 타고난 재주가 있는 사람만이 그 과목을 전공한다든지 공부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만 해도 입시위주의 문학작품 평론에만 급급하지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훈련하는 모국어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모든 언어교육은 언어환경에 따라서, 자연습득과 인위습득의 두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자녀에게 건네는 언어에서도 이 양면의 실태와 기능을 찾아볼 수 있으며, 사회(직장)나 학교에서도 자연히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가정 ·사회 ·학교에서의 자연습득에 언어학습의 기본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언어에 의한 소통 ·표현행위 ·이해작용 그 자체에 언어에 대한 교육 영위가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에 두고 우리는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인위습득 측면에서 실생활에 바로 이용가능한 모국어 교육을 시켜야 한다. 국어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국어 이용의 타당성과 확실한 언어체계 그리고 사고방식을 정확한 이해능력과 논리적 사교 체계를 키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인위습득이 한 세대에서 이루어진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이런 교육은 자연습득으로 넘어가게 된다. 언어교육 즉, 국어교육으로서의 모국어 교육은 자연습득과 인위습득은 따로 놀아서는 안 되고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사용되어져야 한다.2-2. 국가 자체에서의 국어 보존의 특성화우리나한마디나 단어 하나 하나마다 우리 조상들이 말로써 글로써 다지고 다져온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말을 뜻이나 그 의미 면에서 변화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뻔히 알고 있는 우리말을 놓고도 의미강조와 세련미(?)를 더하기 위해 외국어를 범람시키고 있으며 그 뜻을 숨기기 위해 비교육적인 은어사용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우리말의 모습을 갖춘 우리 민족의 삶을 바르게 전망하고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말 보존 즉, 국어보존은 예전보다는 현재가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시급할 것이다. 허나 우리말 보존은 특정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을 모국어로 쓰고 있는 모든 사람이 국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국가 자체에서의 탄탄한 노력을 뒷받침 받아야 한다. 그 대표적인예로는 1926년 지금의 한글 학회에서 ‘가갸날’)이라 하여 기념하기 시작하여, 1946년 공휴일로 지정되고, 정부의 공휴일 줄이기 위한 정책 일환에서 1990년 공휴일에서 제외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지정해 한글창제의 위상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 사실상 우리말은 몇 번이고 없어질 위기를 거쳐지나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한글 자체가 약간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이 말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나 ‘식목일’ ‘부처님 오신 날’처럼 한글날도 국경일로 재지정 되어 기념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되어졌다 다시 제외된다 하더라도 국가는 관련 공청회라든가 또는 TV토론 등 보다 더 폭넓고 중요한 의견 수렴을 통해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게 금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2-3.한국어의 위상을 세계에 알림.국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구소련 지역, 미국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언어들은 부분적으로 방언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하나의 언어이다. 사용하는 인구로 보아서도 7천만을 상회하며, 그 순위를 보면 세는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데 이것은 국어를 사용하는 인구증가, 이민자의 수 증가, 한류열풍, 종교적 이유 등이 있다. 이는 언어를 뒷받침 해 주는 힘은 경제력임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국어 즉 우리말을 내국인끼리 사용하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어를 멀리 확산시킴은 제2의 외교적 역할까지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이론과 교수 학습 방법, 자료 등을 개발되어져야 한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민들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러시아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들에게 한국어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관광부의 “한국어세계화” 사업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양성), 해당국의 언어로 된 한국 문학, 국어학 관련 자료의 번역 사업 등이 이루어져서 한국어 사용 인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2-4 우리말 찾기슈가 → 설탕쥬얼리 → 보석 솔리드 → 고체언타이틀 → 제목없음 이글파이브 → 독수리오형제앤드 → 그리고 빅마마 → 큰엄마버블시스터즈 → 거품자매들 노이즈 → 소음페이지 → 쪽수 윤도현밴드 → 윤도현합주단플라이투터스카이 → 하늘로 날다 세븐 → 칠YG family → 양군 가족 바이브 → 진동클릭B → B누름 노브레인 → 무뇌크라잉넛 → 울부짓는 견과류 문차일드 → 달아이UN → 국제 연합 패닉 → 공황왁스 → 광택제 체리필터 → 앵두 거르개롤러코스터 → 청룡열차 삐삐롱스타킹 → 이동용 호출기 긴 여성용 양말블랙비트 → 검은장단 west life → 서양의 생활Backstreet Boys → 뒷골목 소년들 레이지본 → 선천적으로게으른틴틴파이브 → 십대십대5 녹색지대 → 지대 녹색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한글로 바꿔본 가수 이름들’이다. ‘슈가’나 ‘웨스트라이프’ ‘레이지본’등은 외국어 그 자체로는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데 비해 한글로 바꾸었을 때에는 가수 이름 치고도 지나치게 어색하다. 문제는 가수 이름조차 외국어가민족주의적) 발상이 아니다. 다만 가수명을 비롯한 다수의 간판적 효과를 발휘하는 언어가 한국어 보다는 외국어로써 사용되어지고 있고 한국어가 사용되었을 경우 그 특성을 알리는 효과는 외국어 사용보다 미흡하다는 우리들의 관념이다. 이런 관념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어 그 상황을 규정짓는 일이 더 어색한 일이다. 고유어 보다는 영어나 혼성어로 바꾸어 쓰고 있는,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문제의식 조차 느낄 수 없는 우리들의 언어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에서부터 사용되는 언어의 철저한 의식을 가지고 외국어 남용 등을 규제해야 한다. 또 위의 가수명 등을 우리말로 사용하였을 경우에도 100% 그 뜻이 전달됨과 동시에 어색하지 않는 우리말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사용되어야 한다.3. 결론98년 6월 ‘국제어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이 출판되면서부터 우리나라에는 ‘영어공용화’)에 대한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어공용화’는 논쟁에 있는 단계가 아니라 우리나라 일부분의 지역에서는 지금 실행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어공용화’는 우리말의 뿌리를 쉽게 뽑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계획이 실행되고 있는 현실은 모든 국민이 국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여러 이익을 전부인양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어보다 영어를 쓸수록 경제력은 높아진다는 관념은 더욱이 국어의 존재를 가볍게 무시하고 만다. 그러나 국어는 박물관언어가 아닌 실생활에 밀접해 있는 실용학문임을 깨닫고 모든 학문에 기초가 되는 국어의 발전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말 잘하려면 국어부터 잘하고 외국말 잘 하려면 한국말부터 잘해라’라는 남영신의 말처럼 외국어학습 역시 모국어교육이 바탕에 깔렸을 때만이 더욱 효과적이고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어공용화’와 같은 주장 앞에서 무조건적인 국어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국어의 발전을 탐구하여 국어.
치 숙 (동아일보1938.3.25-30)-채만식-치숙은 1938년 동아일보에 실린 작품으로, 일제 강점하에 사회주의 활동을 한 아저씨를 풍자적으로 희화화하면서 체제에 순응하여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어린 조카의 독백으로 된 소설이다. 여기서 ‘치숙’이란 ‘어리석은 아저씨’라는 뜻이다.“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THEME1. 소설 전체가 서술형이 아닌 독백체인 이유는 무엇일까?소설은 주관적인 판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한다.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구성은 은근히 아저씨를 비꼬는 말투로 문제제기와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를 같이 이루어 나간다. 그리고 내가 작중인물보다 한결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작가의 의식이 작품 전체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위해서이다. 이러한 효과는 읽는 이가 가져야 할 의문과 앞에 나올 내용을 추측하는 그 과정에 있어 소설 속 주인공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한다. 힘겹게 추리를 해 가며 읽는 소설과는 달리 편히 읽을 수 있고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듯 하다. 어떤 면에서는 독자보다 앞서나가 독자만이 할 수 있는 걱정을 대신 해주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 또한 독백 형식은 시대상황을 파악하는 언어형식이라는 점에 있어 시대상을 폭넓게 관찰하고 시대의 모순이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대화와 경쟁이 필수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우리 아주머니가, 그래도 그 아주머니가, 어질고 얌전해서 그 알량한 남편양반 받드느라......”THEME2. 화자를 조카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혼자서 화자는 자신의 시각으로 아저씨의 사고나 행동 등을 마음대로 질타하고 조롱한다. 질타하는 내용은 크게 보아 사회주의에 발을 들였다가 그에 대한 사회통제가 강력해지는 가운데 신세를 망친 아저씨의 삶이다. 그리 가깝지도 않고 또 신경을 아예 꺼버릴 수 없는 남이 아닌 처조카의 설정은 적당했다고 본다. 화자는 대학까지 나왔지만 생산성이 없는 일을 구상하는 아저씨를 비난하며 그 와중에 자신의 현실 가능한 미래를 계획한다. 이 과정에서 아저씨와 자신은 철저히 반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아저씨는 이런 조카를 조카는 아저씨를 못 마땅히 여긴다. 이런 부분에서 일제치하 당시의 사회상을 볼 수 있다. 맹목적으로 나라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사람이란 것은 누구를 물론허고 말이다, 아첨하는 것같이 더러운 게 없느니라.”) 현실에 타협할지 모르는 절대적인 인간과 현실을 파악하고 자기의 신념이란 애초에 없는 (“내지 여자한테 장가만 드는 게 아니라 성명도 내지인 성명으로 갈고 집도 내지인 집에서 살고 옷도 내지 옷을 입고 밥도 내지식으로 먹고 아이들도 내지인 이름을 지어서 내지인 학교에 보내고......”) 상대적인 인간상을 삼촌과 조카로서 대비시킨다.“사람이란 건 밥 두 그릇이 하필 밥 한 그릇보다 더 배가 부른 건 아니니까”THEME3.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나타난 부분을 찾는다면?아저씨와 화자와의 대화이다. 화자는 대학까지 나와서 놀고먹는 아저씨를 비난하지만 자신도 대학을 나왔으면 혹시 아저씨 모양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공부 길로 들어서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며 안심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학교 출신을 우러러 보는 화자 자신을 공부길 만이 높이 되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아저씨에 대한 비난을 동정으로 돌리기도 한다. 또 경제학과 이재학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신은 오히려 당당하고 그것을 전공한 아저씨는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해 버리는 흑백논리는 뭔가 아이러니컬하다.
배따라기-김 동 인-전경 좋은 봄날, ‘나’는 대동강에서 봄의 정취 감상하고 있다가 배따라기를 구슬프기 부르고 있는 한 사내를 만난다. 봄날의 전경은 왜 이야기의 주된 계절일까?소설의 주변 환경으로 나오는 배경은 봄이다. 서술자는 주변 날씨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대동강에서 첫 뱃놀이하는 날의 날씨. 아주 친숙하게 표현하고 있고 또 구슬프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소설의 배경과 주제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 소설의 가장 큰 핵심어는 바로 ‘운명’일 것이다. 작가는 아마 ‘운명’라는 요소를 겨울과 같이 차갑고 서있기 조차 힘든 추운 현실로 내 비치기 보다는 그저 아무 곳에 누워만 있어도 포근하다고 느낄 수 있는 ‘봄’의 계절적 특성을 이용한 것 같다. 소설에서 나오는 형제의 운명은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의식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의 사항이 아니라 평범한 삶의 요소이고 팔자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아우와 아내의 의심 속에 아우가 떠나고 아내는 죽음을 맞이한 후 아무 시련 없이 떠돌아다니기에 계절적 배경인 봄은 적합하다. 형은 왜 그의 아내에게 집착하였을까?사내는 정착하고 싶었다. 잠시 사내의 성격을 집어본다면 그는 속마음과 행동일 일치하지 않는 전형적인 촌사람이다. 감정에 솔직하게 보이지만 종종 그의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 폭력이 아내를 자신의 옆에 잡아둘 수 있는 행위이자 사랑의 방법으로 착각하는 감정표현 방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결국 그 감정 때문에 아내를 죽음으로 내 몰고, 아우를 떠돌이로 만들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라든지 아내를 자기 옆에 소유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려볼려는 정착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단지 그 머물고 싶다는 욕망이 잘못 표현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사내에게서 ‘나’는 그와 그의 아우 또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성격이 쾌활하고 곱게 생긴 아내를 가진 그는 그의 아내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또 상냥하게 대하는 것을 내심 불편해 한다. 특히나, 그의 아내가 아우에게만은 더 각별한 것을 알고는 시기와 질투심에 종종 그의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한다.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우와 아내를 의심한 끝에 아내는 바다에 빠져 자살하고 아우는 마을을 떠난다. 이어 그는 자기가 한 의심이 의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떠난 아우를 찾아 헤매인다. 형과 아우가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게 된 이유는?자기 반성이다. 아우는 다분히 형이 ‘어떤 이유로 형수와 자기의 관계을 의심했냐’며 따지거나 항의 할 수 있었으나 그는 투쟁적인 방법 대신에 회피의 방법을 택했다. 이리저리